이 소설에는 ‘모토‘가 딸려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중에 <빌트와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이 모토는 뵐이 처음부터 <빌트>를 겨냥했음을 의미한다. - P290

하지만 <빌트>는 인기 여배우의 허니문 같은 말랑말랑한 주제만 다루는 평범한 스포츠 연예 전문지가 아니다. 매일 400만부 넘게 팔리는, 첨예한 정치 사회 이슈도 과감하게 다루는 영향력 막강한 일간신문이다. 그런데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루는 <빌트>의 시각은 매우 보수적이며 왕왕 극우적이다. 보도 스타일은 극도로 선정적이다. - P291

<빌트>가 뵐을 향해 쏜 ‘헤드라인 총탄‘에 맞서 뵐은 <빌트>를 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폭탄을 던졌다. 헤드라인이 신문의 일상적 무기라면, 작가에게는 때로 소설이 무기가 될 수 있다. - P291

1951년 ‘47그룹 문학상‘이 뵐에게 첫 명성을 안겨주었다. ‘47그룹‘
은 1947년 가을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젊은 작가들이 만든 토론 모임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 군정 당국은 점령군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를 잇달아 폐간시켰다. - P292

뵐은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1956년에는 소련의 헝가리 민중봉기 무력 진압을 규탄하고, 수에즈운하 개방에 반대해 이집트를 공격한 프랑스와 영국을 비판한 ‘세계 지식인 105인 선언‘에 참여했다. 유럽 68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독일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에반대하며 수도 본에 결집한 7만 시위대를 앞에 두고 연설했다. - P293

1974년 소련에서 추방당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자기 집으로 피신시켰으며, 1978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청원하기도 했다. - P293

뵐의 소설은 어렵지 않다. 문장은 평이하며 등장인물도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작가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와 생태주의, 평화주의 성향이 뚜렷한데, 작품에서는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물신숭배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존엄성과 휴머니즘을 강력하게 옹호한다. - P293

과 <빌트>의 전쟁은 결코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뚜렷한 역사적 배경과 확실한 계기가 있었다. 1968년 서독에서는 대규모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4월 11일 그 유명한 루디 두취케(Rudi Dutschke) 저격 사건이 터졌다. 요제프바흐만이라는 청년이 반전 학생운동 지도자 두취케를 죽이려고 총 세 발을 쐈다. - P294

특히 <빌트>는 연일 "두취케는 동독의 앞잡이로서 서독 청년들의영혼을 더럽히는 빨갱이며 국가의 적 1호"라는 보도를 내보냈으며, 심지어는 "두취케를 저지하지 않으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빌트>와 <디 벨트>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미국 언론보다 더 친미적인 논지를 펼쳤으며, 반전운동을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반체제 투쟁이라고 비난했다. - P295

68혁명은 전후 독일의 기성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운동으로 치달았다. 청년 학생들은 나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전후독일 사회와 기성세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했으며,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부흥에 대한 자부심을 속물적 물신숭배로 간주했다. 그들은 폭력에 대한 기존의 도덕률에도 도전했다. - P295

이런 상황에서 뵐과 <빌트>의 전쟁을 불러온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1971년 12월 독일 남서부 작은 도시의 한 은행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빌트>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을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그들을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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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0장
사후 세계에 대한
플라톤의 상상 - P112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와 하데스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혼백은 그리스어로 ‘프쉬케(Psukhe)‘를 옮긴 말인데, 원래 뜻은 호흡할 때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 P112

헤르메스가 혼백들을 이끌고 가는 하데스의 세계는 어두침침하고 습기 가득한, 우울하고 생기가 없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리로 간다니, 죽고 싶지 않겠지요? - P113

플라톤이 쓴 대표적인작품 『국가(Politeia)』의 마지막 10권에 나오는 내용인데 일명 ‘에르(Er) 신화‘라고 합니다. - P113

에르는 잠시 저승에 갔다 왔다고 했죠. 죽는 순간, 에르의 영혼은 몸에서 쑥 빠져나갔고, 같이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저승으로 갔다는 겁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신비스러운 곳에 이르렀죠. 그곳에는 땅으로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하늘을 향해서도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들의 입구에는 심판자가 있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심판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답니다. - P114

그런데 좀 다른 게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올바르게 살았는가, 못되게 살았는가를 두고 심판을 받는 건 비슷한데, 최후의 심판은 아니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가는 것도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곳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영원히 지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 P114

그들은 천 년 동안 각각 하늘과 땅을 여행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던 건데, 완전히 상극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혼들은 깨끗하고 환하게 빛이 나고 행복해 보였는데, 땅속에서 나오는 영혼들은 오물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던 겁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받았던 겁니다. - P115

플라톤에 따르면 또 다른 삶을 부여받기 위해서였답니다. 그런데 천 년이 지났다고 모두 제자리로 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쥔 채 수많은 백성을 괴롭히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죽인 독재자들이나, 요즘 말로 소위 부당한 ‘갑질‘을 일삼아 힘없고 약한사람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은 지하에서 천 년 동안 고통스러운 여행을 끝내고도 곧바로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 잡혀서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두들겨 맞고, 가시덤불에 던져져 문질러지다가 땅속 깊은 타르타로스로 처박힌다는 겁니다. - P115

운명의 여신 앞에 다시 서서 새로운 인생을 부여받는다니, 이건 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비슷합니다. - P116

이렇게 보니, 에르 신화는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적절하게 섞인 이야기 같습니다. 영혼들은 심판을 받고 천 년 동안 천국이나지옥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새로운 운명을 선택해서 또 다른 삶을 다시 사는 거니까요. 여러 가지 삶이나 일과 관련된 덕은 주인 없이 놓여 있는데, 영혼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덕을 갖출 수 있게되며, 그 선택에 따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분야가 결정됩니다. - P116

운명의 여신들로부터 새로운 운명과 삶의 수호신인 다이몬을 인정받고 난 다음에 영혼들은 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확인받은 후에 ‘레테 (Lethe)의 평야‘로 갔답니다. - P116

영혼들은 망각의 평야에서 무심의 강물을 마시고서, 자신의 전생과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운명을 모두 망각하게 되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 P116

특히 우리가 철학자로 알고 있는 플라톤이 이런 종교적인 신화를 이야기해 준다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은 정말 재미있는 철학자입니다. 딱딱하고 추상적이고 어려운 철학적인 개념이나 논변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신화를 지어내어 자기 생각을 전하기도 하니까요. - P117

그런데 플라톤은 왜 이런 에르 신화를 지어낸 걸까요? 다 아시다시피, 플라톤의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찾는 작품입니다. 대화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의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논의하죠. - P117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법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힘으로 약한 자를 억누르니까, 정의는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 겁니다. 법에 정한대로 세금을 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공정하게살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라고 반박했죠. - P117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없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부정을 저질러서 부자가 되고 권력을 획득한 사람은 잠시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 망하게 되고반드시 응분의 벌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지요. 반대로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설령 오해와 모함을 받아 실패하고 고생하는 것 같지만, 결국 보상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고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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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인가? 지난 세월동안 숱하게 들은 질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스토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 P10

수많은 작가가 상심에 빠진다. 아무리 열심히글을 써도, 아무리 글쓰기 강좌를 많이 들어도, 아무리 자격증을 많이 따도, 출판 에이전트를 구할 수 없고 출판사와 계약이안 되는 것이다. ‘좋다, 내 재능을 못 알아보는 출판계 거물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리라‘ 하고 자가 출판을 해 보지만, 친구와 가족 말고는 읽어 주는 사람이 없다. - P10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 역시 비슷하다. 에이전트들은 들어온 원고의 96퍼센트를 거절한다(내 체감으로는 그 이상이다). 그러니 작가들이 낙담과 실의에 빠지고 심지어 원망을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 P11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스토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우리 몸이 어떻게 음식물의 영양분을 흡수하는지 우리가 정확히 모르는 것과 같다. 물론 그런 현상이 있다는 건 안다. - P11

이 책을 읽으면 스토리의 감춰진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있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면서, 얼마든지 직접 구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스토리의 고수‘
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순서를 차근차근 따라가며 스토리의 밑그림을 그리면 작업의 첫 단추부터 제대로 될 수 있다.  - P12

인간에게는 ‘스토리 본능‘이 있다. 우리는 무슨 스토리를듣거나 보거나 읽건 간에 항상 뭔가를 집요하게 찾고 거기에반응한다. 어떤 장르의 스토리에서건 우리가 찾는 것은 똑같다. 왜 그럴까? 스토리는 우리 뇌가 쓰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 P12

스토리에 반응하는 것은 우리 뇌에 새겨진 본능이라 따로배우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스토리에휘둘리면서도 그걸 잘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스토리에 한번 사로잡히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몸을 맡긴다. - P13

 미국남부 문학의 대가 플래너리 오코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스토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직접 써 보면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¹그런데 오코너가 놓친 게 하나 있다. 스토리 쓰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스토리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않으면 안 된다는 것.  - P13

1 F. O‘Connor, Mystery and Manners: Occasional Pros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970), 66. - P442

스토리를 밀고 나가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중략)
물건을 작동시키는 ‘전기‘를 생각해보자. 아무리밝은 전등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쓸모가 없듯이, 스토리도플롯, 목소리, 재능을 환히 비추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전기가없으면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 P14

차차 살펴보겠지만, 스토리에서 중요한 것은 플롯도 아니요, 사건도 아니다. 플롯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주인공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로 인해 주인공의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가 중요하다. - P14

주인공의 ‘내적 투쟁‘을 소설의 ‘전깃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열차 선로에는 두 가닥의 레일 옆에 전력을 공급하는 레일이 하나 더 있다. - P15

사건도, 플롯도, 심지어 ‘감각적 디테일‘까지도, 소설 속의모든 요소는 전깃줄과 이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갖고 독자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주인공의 내적 투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미려하게 쓰였다 한들, 아무리 겉보기에 극적이라 한들 소용없다. - P15

출판사로부터든 독자로부터든, 원고가 외면받는 이유는거의 하나다. 전깃줄이 없다는 것. 작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실수이자 패착이다. - P15

다시 말해 주인공의 내적 문제는 플롯 속의 사건들보다 선행하며, 때로는 수십 년 전부터 주인공이 갖고 있던 것이다. 주인공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잘못된 내적 신념이 어떤 이유로 목적 달성을 가로막고 있는지 작가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 P16

그러므로 작가는 플롯을 만들기 전에 주인공의 구체적인내적 문제를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플롯은 저절로 척척 만들어진다. - P16

보다시피 이 책에서는 ‘개요‘보다 ‘밑그림‘이라는 말을 쓴다. 작법 용어로 ‘개요outline‘란 보통외적플롯을 장면별로요약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소설의 겉모습에 해당하며 이 책의 진짜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 P16

이 책에서 말하는 ‘밑그림blueprint‘은 플롯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개요가 아니라, 스토리를 이루는 내적 · 외적 층들을 처음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종합한 것이다. - P17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도 버릴게 없다. 흔히들 글을 쓰기 전에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전 조사와는 다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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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요짱이 혹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촌동생인가요?
가타후치 :  맞아요. 저보다 세 살 아래로, 본명은 ‘요이치‘예요. - P132

가타후치 : 실은 당시 큰엄마 배속에 아기가 있었거든요. 많이커서 언제 태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어요.
필자 : 기미히코 씨가 남기고 간 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가타후치 : 네, 임신 중에 남편을 잃어서 큰엄마도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그런데 요짱까지 그렇게 되다니…………. - P133

구리하라 : ‘창문 없는 방‘ 하니, 아무래도 그 두 집이 연상되네요. 뭔가 관계가 있을까요?
가타후치 : 제 생각도 그랬어요.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봐도 창문이 없다는 것 말고 이상한 점은………… 비밀 구멍도,
열리지 않는 공간도, 물론 누군가 갇혀 있는 듯한기척도 없었어요. 다만……….
구리하라 : 다만..…...?
가타후치 : 붙박이 장지문이 하나 있었어요. - P135

가타후치 : 네. 다만 ②번 방에 들어가려면 ③번 방과 ④번 방을 경유해야 했죠. 그러기가 불편해서인지 ②번 방은 쭉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구리하라 :  ‘쭉‘이라면 이 장지문은 옛날부터 열리지 않았다는말씀인가요? - P136

필자 : 그러고 보니 이 집, 언제쯤 지은 건가요?
가타후치 : 쇼와*시대 초엽이라고 들었어요.

*일본 연호, 1926년 - 1989년 - P137

가타후치 :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가타후치 가문은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여러 사업으로 재산을 쌓았고, 최전성기에는 거대한 저택에다 수많은 고용인을 부릴 만큼 번창했대요.
그런데 어떤 당주가 느닷없이 사업 운영권을 남에게양도하더니만, 집터 구석에 별채를 짓고 틀어박혔다고 해요. 그때부터 집안이 서서히 기울다가 쇼와 시대 중엽에는 저택도 거의 다 부서졌다나 봐요.
그 후로 가타후치 가문의 자손은 유일하게 남은 별채를 개축해 조촐하게 살아왔다고 들었어요. - P138

가타후치 : 실은 요짱이 이 불단 앞에서 죽었어요. - P141

필자 : 정황상 요짱은불단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그렇게 봐야겠죠? - P141

가타후치 :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가족들도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장난으로 불단에 올라가려다가 발을헛디뎌 떨어졌을 거라고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어요.
이 불단은 어린애가 혼자 올라갈 수 있을 만한 높이가 아니었거든요. - P142

가타후치 : 더구나 요짱은 불단을 몹시 무서워했어요. 저도 그랬지만, 요짱은 조금 과하게 겁냈죠. 복도에 나갈 때도 불단을 보지 않으려고 했을 정도에요.
(후략) - P142

구리하라 : 그럼 경찰은요?
가타후치 : 안 왔어요. 큰엄마가 경찰을 불러서 조사해 보는 게좋지 않겠느냐고 한번 제안했지만, 다들 반대해서 결국 포기한 것 같아요. (후략) - P144

셋 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고사가 아니라면 자살, 또는 살인. 가타후치 씨의 이야기를 듣건대 가족의 반응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누군가를 감싸는 걸까. 그럼 대체 누구를, 뭣 때문에………? - P144

구리하라 :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나요? 예를 들면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든가.
가타후치 : 아니요, 제가 깨어 있는 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 P146

구리하라 : 그럼 요짱이 복도로 나가려면 가타후치 씨가 있는방을 지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가타후치 씨가 깨어있는 동안,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않았죠. 즉, 요짱이 죽은건 가타후치 씨가 잠든 새벽 4시 이후인 셈이에요. 시신은 5시에 발견됐으니, 사망 추정 시각은 4시에서 5시 사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 P148

필자 : 예전에 외과의를 취재할 때 들었는데요. 인간이 사망하고 몸이 차갑게 식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출혈이 심하지 않은 한, 대개 두 시간 정도는 온기가 남아 있다고 들었어요. 요짱은 피를 얼마나 흘렸나요? - P148

구리하라 : …… 딱 하나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타후치 : 네? 그게 뭔데요?
구리하라 : 요짱이 불단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하면 시간적으로 모순이 생겨요. 하지만 요짱이 방에서 죽었다면 어떨까요? - P149

필자 :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누가 뭐 때문에 그런짓을?
구리하라 : 분명 범인이 사인을 위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겁니다. - P150

구리하라 : 제 입으로 말해 놓고 이런 말씀을 드리려니 민망하지만, 방금 제 추리는 완벽하지 않아요. 구멍이 두 개 있거든요. 하나는 범인. 이 논리로 따지면 범인은 요짱과 같은 방에 있었던 큰어머님 미사키 씨입니다. 어머니니까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경찰을 부르려 했던 큰어머님이 범인일 가능성은 낮겠죠. - P151

구리하라 : 요짱은 방에서 죽은 게 아니라는 뜻이죠. 제 추리의절반은 오답이에요. 하지만 범인이 사인을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불단 앞에 놓아뒀다는 부분은 틀리지 않았을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범인은 요짱을 방에서 데리고 나가서 집 어딘가에서 살해한 후 시신을 불단 앞에 놓아뒀다. 문제는 어떻게 방에서 데리고 나갔는가, 그리고 어디서 살해했는가예요. - P152

필자 : 저기, 할머님은 왜 거실에 가는데 굳이 복도로 나오셨을까요?
가타후치 : 네? - P154

가타후치 : 듣고 보니…………. 그럼 혹시 ‘옆방‘이란 복도 오른편방이었던 걸까요?
필자 : 그렇다면 ①번 방, 즉 아버님이 주무시던 방이네요.
그럼 할머님 말씀을 듣고 아버님이 뭔가 말씀하실 법도 한데요. - P155

가타후치 : 하지만 그 외에 ‘옆방‘이라고 할 만한 방은 이 집에…………구리하라 : 이 평면도에는 그려져 있지 않은 방 아니었을까요?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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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니가 처음으로 보낸 편지를 실마리 삼아 집을 찾기로 했어요.
주소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소인에 우체국 이름이 있었거든요. 집이 그 부근에 있다는 뜻이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언니가 예전 집을 매물로 내놨다고 했어요. 알아보니 그 지역에서 최근에 매물로 나온 집은 하나뿐이더군요. - P120

그리고 기사 말미에 적혀 있던 ‘시신의 왼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구절, 예전에 어디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났어요.
미야에 교이치 씨 사건이에요. 인터넷 뉴스로 한 번 봤을뿐이지만 ‘왼손이 절단됐다‘는 내용이 묘하게 으스스해서 인상에 남았죠. - P121

혹시 기사를 쓴 사람에게 사이타마에 있는 집의 평면도를보여 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연락드린 거예요.
하지만 ‘그 집에 살던 사람의 여동생‘이라고 하면 분명 경계해서 만나 주시지 않을 것 같았어요. - P121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구리하라씨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무사하세요? 끝나면 이야기 들려주세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P123

카페를 나서자 구리하라 씨에게 전화를 걸어 가타후치 씨와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뜻을 전했다. 구리하라 씨는 흔쾌히 승낙했지만, 지저분한 자기 집에 여자 손님을 들일 수는 없다며 만날 장소를 지정했다. 나와 가타후치씨는 그곳으로 향했다. - P124

구리하라 씨는 가타후치 씨를 약간 경계하는 것 같았다. 구리하라 씨는 아직 가타후치 씨가 거짓말한 이유를 모른다.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기에 집으로 부르기를 꺼린 것이리라. - P125

구리하라 : 과연 ・・・・・…. 그런 거였군요.
가타후치 : 속여서 정말 죄송합니다.
구리하라 : 아니요, 아니요. 하지만 이제야 겨우 안심했습니다.
‘미야에 씨‘가 아니라 ‘가타후치 씨‘로군요?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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