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는 ‘모토‘가 딸려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중에 <빌트와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이 모토는 뵐이 처음부터 <빌트>를 겨냥했음을 의미한다. - P290
하지만 <빌트>는 인기 여배우의 허니문 같은 말랑말랑한 주제만 다루는 평범한 스포츠 연예 전문지가 아니다. 매일 400만부 넘게 팔리는, 첨예한 정치 사회 이슈도 과감하게 다루는 영향력 막강한 일간신문이다. 그런데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루는 <빌트>의 시각은 매우 보수적이며 왕왕 극우적이다. 보도 스타일은 극도로 선정적이다. - P291
<빌트>가 뵐을 향해 쏜 ‘헤드라인 총탄‘에 맞서 뵐은 <빌트>를 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폭탄을 던졌다. 헤드라인이 신문의 일상적 무기라면, 작가에게는 때로 소설이 무기가 될 수 있다. - P291
1951년 ‘47그룹 문학상‘이 뵐에게 첫 명성을 안겨주었다. ‘47그룹‘ 은 1947년 가을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젊은 작가들이 만든 토론 모임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 군정 당국은 점령군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를 잇달아 폐간시켰다. - P292
뵐은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1956년에는 소련의 헝가리 민중봉기 무력 진압을 규탄하고, 수에즈운하 개방에 반대해 이집트를 공격한 프랑스와 영국을 비판한 ‘세계 지식인 105인 선언‘에 참여했다. 유럽 68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독일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에반대하며 수도 본에 결집한 7만 시위대를 앞에 두고 연설했다. - P293
1974년 소련에서 추방당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자기 집으로 피신시켰으며, 1978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청원하기도 했다. - P293
뵐의 소설은 어렵지 않다. 문장은 평이하며 등장인물도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작가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와 생태주의, 평화주의 성향이 뚜렷한데, 작품에서는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물신숭배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존엄성과 휴머니즘을 강력하게 옹호한다. - P293
과 <빌트>의 전쟁은 결코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뚜렷한 역사적 배경과 확실한 계기가 있었다. 1968년 서독에서는 대규모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4월 11일 그 유명한 루디 두취케(Rudi Dutschke) 저격 사건이 터졌다. 요제프바흐만이라는 청년이 반전 학생운동 지도자 두취케를 죽이려고 총 세 발을 쐈다. - P294
특히 <빌트>는 연일 "두취케는 동독의 앞잡이로서 서독 청년들의영혼을 더럽히는 빨갱이며 국가의 적 1호"라는 보도를 내보냈으며, 심지어는 "두취케를 저지하지 않으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빌트>와 <디 벨트>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미국 언론보다 더 친미적인 논지를 펼쳤으며, 반전운동을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반체제 투쟁이라고 비난했다. - P295
68혁명은 전후 독일의 기성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운동으로 치달았다. 청년 학생들은 나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전후독일 사회와 기성세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했으며,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부흥에 대한 자부심을 속물적 물신숭배로 간주했다. 그들은 폭력에 대한 기존의 도덕률에도 도전했다. - P295
이런 상황에서 뵐과 <빌트>의 전쟁을 불러온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1971년 12월 독일 남서부 작은 도시의 한 은행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빌트>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을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그들을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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