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0장
사후 세계에 대한
플라톤의 상상 - P112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와 하데스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혼백은 그리스어로 ‘프쉬케(Psukhe)‘를 옮긴 말인데, 원래 뜻은 호흡할 때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 P112

헤르메스가 혼백들을 이끌고 가는 하데스의 세계는 어두침침하고 습기 가득한, 우울하고 생기가 없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리로 간다니, 죽고 싶지 않겠지요? - P113

플라톤이 쓴 대표적인작품 『국가(Politeia)』의 마지막 10권에 나오는 내용인데 일명 ‘에르(Er) 신화‘라고 합니다. - P113

에르는 잠시 저승에 갔다 왔다고 했죠. 죽는 순간, 에르의 영혼은 몸에서 쑥 빠져나갔고, 같이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저승으로 갔다는 겁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신비스러운 곳에 이르렀죠. 그곳에는 땅으로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하늘을 향해서도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들의 입구에는 심판자가 있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심판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답니다. - P114

그런데 좀 다른 게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올바르게 살았는가, 못되게 살았는가를 두고 심판을 받는 건 비슷한데, 최후의 심판은 아니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가는 것도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곳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영원히 지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 P114

그들은 천 년 동안 각각 하늘과 땅을 여행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던 건데, 완전히 상극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혼들은 깨끗하고 환하게 빛이 나고 행복해 보였는데, 땅속에서 나오는 영혼들은 오물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던 겁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받았던 겁니다. - P115

플라톤에 따르면 또 다른 삶을 부여받기 위해서였답니다. 그런데 천 년이 지났다고 모두 제자리로 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쥔 채 수많은 백성을 괴롭히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죽인 독재자들이나, 요즘 말로 소위 부당한 ‘갑질‘을 일삼아 힘없고 약한사람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은 지하에서 천 년 동안 고통스러운 여행을 끝내고도 곧바로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 잡혀서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두들겨 맞고, 가시덤불에 던져져 문질러지다가 땅속 깊은 타르타로스로 처박힌다는 겁니다. - P115

운명의 여신 앞에 다시 서서 새로운 인생을 부여받는다니, 이건 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비슷합니다. - P116

이렇게 보니, 에르 신화는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적절하게 섞인 이야기 같습니다. 영혼들은 심판을 받고 천 년 동안 천국이나지옥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새로운 운명을 선택해서 또 다른 삶을 다시 사는 거니까요. 여러 가지 삶이나 일과 관련된 덕은 주인 없이 놓여 있는데, 영혼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덕을 갖출 수 있게되며, 그 선택에 따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분야가 결정됩니다. - P116

운명의 여신들로부터 새로운 운명과 삶의 수호신인 다이몬을 인정받고 난 다음에 영혼들은 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확인받은 후에 ‘레테 (Lethe)의 평야‘로 갔답니다. - P116

영혼들은 망각의 평야에서 무심의 강물을 마시고서, 자신의 전생과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운명을 모두 망각하게 되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 P116

특히 우리가 철학자로 알고 있는 플라톤이 이런 종교적인 신화를 이야기해 준다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은 정말 재미있는 철학자입니다. 딱딱하고 추상적이고 어려운 철학적인 개념이나 논변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신화를 지어내어 자기 생각을 전하기도 하니까요. - P117

그런데 플라톤은 왜 이런 에르 신화를 지어낸 걸까요? 다 아시다시피, 플라톤의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찾는 작품입니다. 대화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의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논의하죠. - P117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법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힘으로 약한 자를 억누르니까, 정의는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 겁니다. 법에 정한대로 세금을 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공정하게살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라고 반박했죠. - P117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없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부정을 저질러서 부자가 되고 권력을 획득한 사람은 잠시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 망하게 되고반드시 응분의 벌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지요. 반대로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설령 오해와 모함을 받아 실패하고 고생하는 것 같지만, 결국 보상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고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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