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들어섰을 때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카운터 안쪽에 있던 가미오가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가미오 씨, 오늘은 여기 통째로 빌릴 수 있을까요?" - P220

"사과해야 할 일이 있어. 내가 널 속였어."
(중략).
"그 사진, 아직 갖고 있어? 요코스카 라이브하우스에서 찾은, 도모 씨가 모르는 여자랑 찍은사진." - P221

"한가운데 있는 건 사실 다른 여자야. 거기 도모야 씨 아들 사진을 합성한거지. 합성사진이야."
(중략).
그러니까, 하고 야요이는 말을 이었다.
"가시마 씨도 공범이야. 가미오 씨가 도와달라고 부탁한거고." - P222

"무슨 뜻이긴 도모야 씨의 속박 말이야. 당시 넌 그사람 망령에 사로잡혀 있었어. 생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안색도 좋지 않았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남자를 소개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고, 그래서 가미오 씨에게 조언을 구한 거야." - P223

가미오가 말을받았다. "몰래 만났던 상대가 딸이어야 강한 인상을 남기겠죠. 연상연하 커플로 보일 만큼 친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히노 씨는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연상연하 커플∙∙∙∙∙."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유즈키는 기억을 떠올렸다. 이내 생각이 났다.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있던 직원도 공범이었나요?" - P225

"난 그 얘기 듣고 울었어. 전부 지어낸 얘기였는데. 그런 날 보고 속으로 웃었지?"
"말도 안 돼. 나도 필사적이었어. 속이기는 싫었지만,
모두 널 위해서..." - P226

"비밀을 털어놓으며 야마모토 씨도 동요한 모양이군요. 제일 중요한 얘기를 안하고 가시다니. 히노 씨가 알아야할 제일 중요한 일인데 말입니다."
(중략).
"모르시겠습니까? 당신을 속인 공범이 또 있다는걸." - P227

"다카토 료코 씨......."
"(전략). 죽은 남편의 불륜 상대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라고 생각하겠죠. (중략). 게다가 아들이 트랜스젠더라고 거짓말까지 해야 합니다. 여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 P228

"블러디 메리, 야마모토 씨가 이 칵테일을 주문한 이유를 저는 알 것 같습니다. 피를 흘릴 각오가 돼 있던거죠. 친구를 위해서라면, 설령 자신이 상처받는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닙니까?" - P228

유즈키는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자 지금도 도모야와의 추억이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에 대한 감정을 주저 없이 토로할 수 있는 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눠준 존재가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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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진 리스는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일종의 유령으로 보였다.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나사로처럼 말이다. - P7

바스 디아즈가 기대했던 것은 『제인 에어』의 미친 로체스터 부인과 유사해 보인다. 리스는 로체스터 부인의 초상이 심히 왜곡되었다고 여겨 그에 답하는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 - P8

이 소설은 관객과 연기자, 정상과 광기, 기대와 충족, 연기와 실제의 간격 사이에서 협상을 모색한다. - P8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처음 출간되었을 때 널리 호평을 받았으며,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는 아마도 독자에게 제기되는 인지와 해석에 대한 의문들 때문일 것이다. - P9

물론 『제인 에어』는 그 자체로 고딕 양식의 텍스트이다. 작품 속에서 미친 크리올 여인은 갇혀 있지만, 고통 받는 남편과 순수한 제인의 삶에 끊임없이 나타난다. - P9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는 고딕적 상상력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표현된다.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해결보다는 그것의 인식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P9

(전략).

이처럼 소설의 서사적 불확실성은 독자의 상상력을 괴롭힌다.
『제인 에어』는 단정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중략). 반면에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첫 문장은 망설이는 어조를 띤다.  - P10

『제인 에어』를 읽은 독자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을 때, ‘메이슨‘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러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 P15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비밀로 남아 숨겨졌어야 했으나 밝혀지게 된‘ * 모든 것은 친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것이다. 숨어 있고 암시되어 있지만 대부분 말할 수 없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비밀들은 희미하게 보이기는 하나 결코 분명하지는않다.


* 프로이트, p. 345. - P15

『제인 에어』에 나타난 고딕적인 요소들을 되살려 작업하는 것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에서 행해지는 다시 쓰기의 또 다른 양상, 즉 본국 중심부에 대한 식민지 주변부의 응답과 연결된다. - P19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서사의 권력, 즉 다른 서사의 형성과 등장을 막는 힘‘*이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19세기 유럽에서 사실주의 고전 소설이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 P20

로체스터와 앙투아네트 모두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법을 배웠지만, 로체스터가 권위적인 식민주의자의 역할을 그만둘 수 없게 되자 둘 다에게 비참한 결과가 온다. - P21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대부분 독자들이 만나는 존재들보다 더 강력하다. - P21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마지막 부분에서 앙투아네트는 여전히 자신이 꿈꾼 내용을 실행하지 않는다. 그녀는 독자의 상상력이라는 어두운 통로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어쩌면 그 상상력은 그녀를 『제인 에어』로 이끌지도 모르지만,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 P22

『제인 에어』에서 수수께끼 같던 그레이스 풀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마지막 장에서 제 목소리를 얻는다. 하지만 아네트와 메이슨의 결혼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이 서로 어긋나듯, 어떠한 이야기도 모두 잘 들어맞지 않는다. - P23

아무런 동정심 없이 노예제도나 결혼, 혹은 부모자식관계 속에서 서로를 소유하겠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소설을 따라다니는 유령이다. (후략).

-앤젤라 스미스 - P24

제1장

쿨리브리

‘문젯거리가 생기면 대열을 좁힌다.‘ 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가 닥치자 백인들은 결속을 강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리에 끼지 못했다. - P27

어머니는 아버지의 후처였다. 사람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에 비해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마르티니크* 태생이었다. 


*1839년 당시 마르티니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자메이카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이 두 곳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면에서 경쟁적 위치에 있었다. - P27

어느 날 나는 어머니가 우리의 이웃이자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인 러트렐 씨와 담소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영국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불운을 겪은 셈이지요. 노예해방 안이 의회를 통과했을 때 영국 정부가 우리에게 약속한 보상금이 있잖아요. 나는 아직 그것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더 오래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 P28

나는 고독한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직도 무인가를 계획했고 희망을 버리지 못하시는 듯했다. 어쩌면 거울 앞을지날 때마다 어머니는 희망을 되새겼는지 모른다. - P28

"이제 우린 기동성을 잃었어. 우린 고립된 거야. 이제 끝장이구나." *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 원문은 "Now we are marooned." 이것의 원뜻은 "이제 우리는 기동성을 상실했다.", "이제 우리는 고립되었다." 이다. maroon은 스페인어 cimarron에서 파생된단어이다. 야생동물을 잡아 가축으로 사용하기 위해 길들여 놓으면 동물은 산(cima)으로 도망가 버리곤 했고, 따라서 cimarron은 산으로 도망간 동물이라는뜻이다. 자메이카에서 영국의 식민지 정책이 실시되면서 원주민에 대한 압박과 착취가 극심해지자 이에 반대하는 용맹한 청년들이 산으로 피신하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했고, 영국 관리나 백인 대농장주, 영국인에게 아첨하는 종족들을 독살시켰다. 이들이 마룬(maroon) 족으로, 폭동, 암살 등을 주도했다. 아네트가 "Now we are marooned."라고 한 말을 "우리는 이제 마룬 족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마룬 족처럼 사회에서 고립되었다."로 해석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손필드 방화와 같은 앙투아네트의 반란 행위를 예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P29

어머니는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똑똑히 하지 못하는 내 남동생 피에르를 진단해 달라고 스패니시타운에서 의사 한 분을 모셔왔다.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나 피에르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나는 모른다. - P30

엉망이 된 정원처럼, 쿨리브리 저택은 어디를 가나 성한 곳이 없었다. 노예제도가 없어졌으니 ‘누가‘ 일을 하겠는가?  - P30

 어머니는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피에르와 함께 앉아 있거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곳에서 피에르와 산보하기를 즐기셨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고요와 평화였다. 나는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만큼 자랐으니까. - P31

때때로 해변가에 사는 여인들이 우리 집의 빨래며 청소를 해주었다. 그들은 크리스토핀을 두려워했다. 내가 곧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이 수고비 한 푼 안 받고 우리 집에 와서 일하는 것은 크리스토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크리스토핀에 대해서 물었다.
"크리스토핀이 몇 살이나 됐어요? 나이가 아주 많아요? 옛날부터 줄곧 우리와 함께 살았어요?"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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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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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소설은 재미없었다.

 지인에게 취향만 맞는다면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소개 할 것이다.


 위의 문장을 적으면서도 왜 이렇게 적었는지 모르겠다.



 소설은 크게 독립적으로 보였던 이야기들이 끝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되는 골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소설의 제목에 들어간 그림이 매 이야기에 들어가 있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고, 하나하나 있었다면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전 작품인 '이상한 집'을 읽으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영상물을 만들면서 짧게 흡입력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잘 하는 것에 반하여 길게 만드는 것은, 그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 작품에 비하면,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그 연결과 확장이 좋아졌다.



 하지만 지루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공포란 장르는 최종적으로 사람이 이해할 수 없거나 그것이 거부되어야 한다. 스릴러는 최소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이나 그 동기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공포라 볼 순 없고, 스릴러라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작품의 길이에 비해서 일어난 일은 적었고, 해결도 급작스러웠다.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갈등 하나 없이 해결되어 맥이 빠지기도 했다.


 이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원 배틀 에프터 어나더'와는 달랐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딸을 되찾기 위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딸을 찾는데 한 일은 없다는 수준이다. 최종적으로 주인공은 모든 갈등이 끝난 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인간적이었고, 그렇기에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느끼지 못 하게 만들었다,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런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만약 모든 것이 단편이었다면, 그리고 그걸 모아서 수록한 것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소설은 재미없었다.

 지인에게 취향만 맞는다면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소개 할 것이다.

 아직 2편째지만, 점점 나아지는 작가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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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문

(전략).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숨기는 것이 예술의 목표다.
(중략).
비평의 최고이자 최악의 형태는 자서전이다. - P41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뿐이다. - P41

어떠한 예술가도 병적인 존재는 아니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사상과 언어는 예술가에게 예술의 도구다.
악덕과 미덕은 예술가에게 예술의 소재다.
모든 예술의 전형은 형식적인 면에서 음악가의 예술을 따르며, 정서적인 면에서 배우의 연기를 따른다. - P42

1장


화실은 풍성한 장미향이 가득했고, 가벼운 여름 바람이 정원의 나무들 사이를 휘젓자 라일락의 짙은 향기, 혹은 분홍 꽃이 핀 가시나무의 더욱 미묘한 향내가 열어놓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 P43

"난 이 작품을 어디에도 출품할 것 같지 않아." 화가는 옥스퍼드에 다니던 시절 그의 친구들에게서 비웃음을 샀던 자신만의 특이한 방식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대답했다. "아니, 절대로 난 어디에도 내놓지 않을 거야." - P44

"자네가 나를 놀릴 줄 알았어." 그가 대답했다. "그렇지만난 정말 이 그림을 전시할 수가 없어. 이 속에 나 자신을 너무 많이 집어넣었거든."
헨리 경은 소파에서 몸을 쭉 뻗으며 웃었다. - P45

"자넨 나를 이해하지 못해, 해리." 화가가 대답했다. "물론나는 그를 닮지 않았어. 그 사실은 나도 확실하게 알아. 내가그와 닮아 보인다면 나로선 정말 유감일 거야. 이해가 안 되겠지? 난 자네에게 진실을 말하는 거라네. (후략)." - P46

"도리언 그레이라고? 그의 이름인가 보군" 헨리 경이 화실을 가로질러 바질 홀워드를 향해 걸으며 물었다. - P47

"오, 나로선 설명할 수가 없어. 난 어떤 사람을 무한히 좋아하게 되면 그들의 이름을 남들에게 절대 밝히지 않아. (중략). 혹시라도 그 말을 입 밖에 냈다간 나의 기쁨이 모두 사라져버릴 거야. 감히 말하지만 이건 어리석은 습성인데, 어쨌거나 개인의 삶에 크나큰 낭만을 주는 것 같단 말이지. 아마 자넨 나를 끔찍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겠지만." - P47

"자연스러운 척하는 것이야말로 허식일세. 그건 내가 아는 가장 짜증나는 허식이라네." 헨리 경은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 P48

바질 홀워드는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감정을 품고 그린 모든 초상화는 말이야, 그 대상의 초상이라기보다 화가 자신의 초상이라네. 대상은 단순히 우발적으로 그곳에 놓인 대상일 뿐이지. 화가가 그림으로드러내는 것은 그 대상이 아니란 말이야. 오히려 채색된 캔버스에는 화가 자신이 드러난다는 걸세. (후략)." - P49

"간단히 말하자면 사실은 이렇다네." 화가가 약간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두 달 전에 브랜든 부인의 집을 불쑥 찾아갔었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가난한 예술가들은 가끔씩이라도 사교계에 모습을 보여야 하거든. (중략). 자네도 한번 말한 적이 있지만, 연미복을 입고 흰 타이를 매면 누구든지 심지어 주식 중매인조차도 교양 있다는 평을 들을 수 있지. (후략)." - P50

"(전략). 난 언제나 나 자신의 주인이었고, 적어도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늘 그랬어. (중략).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건 양심이 아니었어. 그건 일종의 소심함 때문이지.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한 나자신을 칭찬해 줄 수는 없었으니까." - P51

"그렇지. 그녀는 모든 면에서 공작을 닮았지. 예쁘지 않다는 점만 빼고 말일세." 헨리 경은 길고 예민한 손가락으로 데이지 꽃을 뜯어내며 말했다. - P51

"그래서 브랜든 부인은 그 훌륭한 청년에 대해 뭐라고 소개하던가? 친구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자신의 모든 손님들을 재빠르게 요약하길 좋아하지. (후략)." - P52

"아, 대충 이런 식이었어. ‘매력적인 청년이랍니다. 가난하고 소중했던 그의 어머니와 나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답니다. (후략). 우린 둘 다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지. 그리고 즉시 친구가 되었다네." - P53

홀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중략). "혹은 반목에 대해서도, 물론 그런 일은 드물겠지만. 자넨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그 말은 곧 자네가 모두에게 무관심하단 걸세." - P53

 "정말이야, 자넨 끔찍하게 부당하군. 난 사람들을 넓게 구분한다네. 외모가 훌륭한 이들은 벗으로 선택하지. 성격이 좋은 이들은 지인으로 삼고, 지성이뛰어난 이들은 적으로 삼는다네. 적을 선택할 때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아. 그러니 어리석은 자들은 나의 적이 될수 없다네. 나의 적들은 모두 웬만큼 지성을 갖춘 이들인데, 그래서 그들은 결국 나를 높이 평가하게 되지. 이런 걸 두고 허영이라고 해야 할까? 글쎄, 이건 단순한 허영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 P53

"오, 형제라니! 난 형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내 형은 결코 죽을 것 같지 않아. 내 동생은 다른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고" - P54

"대단하군! 난 자네가 자네의 예술 말고는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 P55

"해리, 난 가끔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가 단 두 차례 있었다고 생각한다네. 그 첫 번째는 예술의 새로운 수단이 나타났을 때고, 두 번째는 역시 예술에서 새로운 개성이 탄생했을 때지. 베니스에서 유화가 처음 발명된 것과, 말기 그리스 조각에안티노오스의 얼굴이 처음 등장했을 때. (후략)." - P55

"(전략). 그의 아름다움이 예술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도 아니라네. 예술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이란 없지. 그리고 내가 도리언 그레이를 만난 이후 해온 작품은 훌륭하고 내 평생 최고의 작품이 될 거라는 걸 나도 알아. (후략)." - P56

"바질,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군! 나도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봐야겠어." - P57

"그렇다면 어째서 그의 초상화를 출품하지 않으려는 건가?" 헨리 경이 물었다. - P57

"왜냐하면,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난 그 속에 이 모든 유별난 예술적인 맹목적 숭배를 웬만큼 표현하고 말았으니까. 물론 이 점에 관해서는 그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는 아무것도 모르지. 앞으로도 그 점에 관해서는 전혀 모를 거야. (후략)." - P57

"난 자네가 틀렸다고 생각하네, 바질. 그렇지만 자네와 말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군. 논쟁은 지성을 잃게 만들지. 자, 말해보게. 도리언 그레이도 자넬 그렇게 좋아하나?"
화가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그는 약간 뜸을 들이며 말했다. - P58

"해리,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내가 살아 있는 한 도리언 그레이의 개성은 나를 지배할 테니까. 자넨 내가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해. 자넨 변덕이 심하니까." - P59

"뭐가 생각났다는 건가, 해리?"
"도리언 그레이의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중략).
"화내지 말게, 바질, 내 애거사 고모님의 집에서 들었다네. 그분이 아주 훌륭한 청년을 찾아냈다고 말씀하셨거든. 이스트엔드에서 고모님을 도와주기로 했다던데 그의 이름이 도리언 그레이였어. 고모님은 그의 용모가 훌륭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지적해야겠군. (중략). 고모님은 그가 진지하다고 말씀하셨다네. 또 천성이 아름답다고도. (중략). 그가 자네 친구라는 걸 내가 진작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 P61

"해리, 자네가 몰랐으니 다행이네."
"어째서?"
"난 자네가 그를 만나는 걸 원치 않아."
"내가 그를 만나는 걸 원치 않는다고?"
"그렇다네." - P61

화가는 다시 헨리 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리언 그레이는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그가 말했다. "그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본성을 지녔지. 자네 고모님이 그에 관해 하신 말씀은 패 정확하다네. 그를 망치지 말게. 그에게 영향을 주려 하지 말라고. (후략)." - P61

2장


그들은 집 안에 들어가 도리언 그레이를 보았다. 그는 피아노 앞에 등을 돌린 채 앉아서 슈만의 「숲 속의 정경」 악보를 뒤적거렸다. "이 책을 꼭 빌려줘요, 바질." 그가 크게 말했다. - P63

"아, 전 정말 자세를 잡고 있는 게 지겨워요. 더구나 실물 크기의 초상화를 원하지도 않는다고요." 청년은 까다롭게 고집을 피우며 피아노 의자에서 몸을 빙그르 돌렸다. - P63

"당장은 애거사 부인의 미움을 받고 있답니다." 도리언이 뉘우치는 듯이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 P64

"저런, 내가 고모님께 당신 안부를 전하죠. 그분은 당신을아주 좋게 보셨어요. 그리고 내 생각엔 당신이 그곳에 참석하지 않은 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것 같소. (후략)." - P64

화가는 물감을 섞고 붓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으며, 헨리 경이 마지막에 한 말을 듣고는 그를 쳐다보더니 잠시 주저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해리, 난 오늘이 그림을 끝마치려 하네. 이제 그만 돌아가 달라고 요청한다면 혹시라도 무례하게 느낄 텐가?" - P65

홀워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리언이 그렇게 원한다면, 물론 자녠 그대로 있어야 하지. 도리언의 변덕은 누구에게나 법과 같으니까, 그 자신에게만 빼고." - P65

"가지 말게, 해리. 도리언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홀워드가 자신의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아. 난 작업을 할 때는 절대 말을 하지 않거든. 그리고 듣지도 않지. 내 불운한 모델은 끔찍하리만큼 따분할 수밖에 없어. 난 자네가 그냥 있어주기를 바라네." - P66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고유한 영혼을 강요하는 것이니까. 결국 그는 자기 본래의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든지, 자기 본래의 열정을 불태우지 못하게 되죠. (중략). 그의 죄악조차, 만약 죄악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면, 빌려온 것이 되는 셈이지요. (중략). 인생의 목적은 자기계발이거든요. (중략). 오늘날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 자신을 겁내고 있어요. (중략). 사회의 공포는 도덕의 기초인데 그건 신에 대한 공포가 종교의 비밀인 것과 같죠. 그 두 가지는 우리를 다스리는 원리인 셈이라오. 그렇지만...." - P67

헨리 경이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우아한 손짓을 곁들였는데, 그 습관은이튼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있던 것이었다. "난 세상 누군가가자신의 삶을 충만하고 온전하게 살려고 한다면, 자신의 모든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 모든 생각을 표현하고, 모든 꿈꾸는 것을 실현해야 한다고 믿어요. 세상이 중세 시대 동안 잊었던기쁨의 신선한 충동을 되찾아야 한다는 거죠. (후략)." - P67

 도리언 그레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만해요! 당신은 나를 당황하게 하는군요.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해줄 대답이 있지만, 지금은 그걸 찾아낼 수 없어요. 말하지 말아요. 생각해 볼게요. 혹은 생각하지 않아 보죠" - P68

도리언 그레이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입술을 약간 벌리고 눈을 이상하게 빛내면서 거의 10분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전혀 새로운 영향이 작용하는 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 P69

음악도 그의 마음을 휘젓는 것이었다. 음악 때문에 그는 여러 차례 심란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음악은 명확한 것이 아니었다.  - P69

(전략).
"그러지, 해리, 벨만 누르게. 파커가 오면 자네가 원하는 걸가져오도록 하지. 난 이 배경을 조금 더 작업해야겠어, 그러니 잠시 뒤에 보게나. 도리언을 너무 오래 잡고 있지 말게. 오늘만큼 그림의 형체가 잘 잡힌 적이 없어. 이 작품은 지금 상태로도 걸작이야." - P71

도리언 그레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키가 크고 우아한 젊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수 없었다. - P71

(전략).
"그레이 씨, 그건 당신에게 대단히 중대한 문제요."
"어째서요?"
"왜냐하면 당신에겐 가장 멋진 젊음이 있으니까. 젊음이란간직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중 하나라오."
"난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헨리 경." - P72

"물론, 지금은 느끼지 못할 거요. 장차 나이가 더 들어 주름이 지고 추해지면, 당신의 생각이 이마에 선을 그어놓고, 당신의 열정이 추악한 불길로 입술에 낙인을 찍어놓으면 느끼게 될거요. 끔찍하게 절감하게 될 테지. 지금은 당신이 어디를 가든세상을 매료시킬 수 있을 거요.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까?... (후략)." - P73

"(전략). 우리가 그토록 겁냈던 열정에 대한 기억, 우리가 굴복할 용기를낼 수 없었던 격렬한 유혹에 사로잡힌 채로 말이오. 젊음! 젊음! 세상에서 젊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단연코 없다오!" - P74

도리언 그레이는 눈을 크게 뜨고 감탄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손에 있던 라일락 가지가 자갈 바닥에 떨어졌다. - P75

약 15분 정도가 지났을 때 홀워드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한참 동안 도리언 그레이를 바라보았으며, 다시 한참 동안 그림을 들여다본 후 자신의 커다란 붓의 끝을 깨물며 인상을 찡그렸다. "거의 완성이야." 그는 마침내 탄성을 질렀으며 몸을 굽히더니 캔버스의 왼쪽 구석에 주홍빛으로 자신의 서명을 길게 써나갔다. - P76

청년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깜짝 놀랐다. "정말 끝난 거예요?" 그는 단상에서 내려오며 낮게 중얼거렸다.
"거의 완성이네." 화가가 말했다. "그리고 자넨 오늘 자세를 아주 잘 잡아주었어. 자네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시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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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


9장

그레타와 버니는어디에 있나?



코로나 사태를 관망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 사실 하나가있다. 그레타 툰베리와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중략), 그레타가 추동했던 운동에 관해 전해 듣는 것이 거의 없다. 버니의 경우엔 감염병 상황이 되자 전 세계에 걸쳐 필수적이라고 공인된 (전 국민 건강보험 같은) 조치들을 옹호하긴 했지만, 그 또한 어디에도 나타나거나 발언하지 않는다. - P99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지구로 번진 반인종차별항의 시위에 잠깐 가려지기는 했지만 그건 고작 몇 주 동안이었다. 요즘 진행 중인 중요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생태적 위기, 인종차별주의라는 세 가지 영역의 상관관계와 관련이 있다. - P100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했던 8년 동안 2010년대의 전반적 경향이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가난한 자와 부자의 간극은 넓어졌고, 거대 자본은 더 망각되었다.  - P101

스파이크 리의 영화 <맬컴 엑스>(1992)에 기막힌 대목이 하나있다. 맬컴이 한 대학에서 강연을 마친 다음 백인 여학생이 그에게 다가와 흑인 해방을 위한 투쟁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는 학생에게 차갑게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고 지나쳐 가버린다……………. - P102

자.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공적 영역에서 그레타와 버니가 사라진 일은 더 통합된 목소리가 필요한 이 바이러스 위기의 시국에 걸맞지 않게 그들이 너무 급진적이라서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들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감염병의 조건에서 재활성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새로운 전망을 제안하는 데 그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P103

10장


맞아요, 붉은 알약....
그런데 어떤 것?

(전략).

우리는 붉은 알약을 선택하고 사회의 거대한 거짓말을 거부한<매트릭스>의 은유가 어떻게 오늘날 새로운 포퓰리스트 우파에 의해.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서 압도적으로 이용되는지 깨닫지 않을 도리가 없다. - P108

역설적이게도 포퓰리즘적 뉴라이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자국민을 완전히 통제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좇는 일부 급진 좌파와 합류한다. - P109

미국에서 계속되는 봉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은 문화 전쟁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중략), 트럼프는 모든 교회, 유대인 회당, 그리고 이슬람 사원의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 P110

이 글에서 내 목표는 팬데믹이라는 실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쉽게 비판을 퍼부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러한 부인을 하게 되었는지 따져보는것이다. - P110

훨씬 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긴장관계에 나타난 최근의 변화로, 이는 팬데믹이 있기 이전에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 - P111

중국은 지금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이 준자치 상태의 도시를 들끓게 만들었던 시위를 베이징에서 직접 무력화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새로운 보안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 P111

만일 중국이 홍콩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대만을 폭력적으로탈환하는 것이 다음 단계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전면적인 태평양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 P112

광기는 우리에게 네 번째의 앞선 세 폭풍에 비해 결코 덜 끔찍하지 않은 폭풍을 몰고 온다. 이 폭풍은 집단적 광기 그 자체, 혹은 우리의 정신건강이 붕괴하고 있다는 조짐이기도 하다.  - P112

조지 오웰은 하층계급의 사교생활에서 선술집이 핵심 요소임을 알고 있었다. (예컨대 1946년에 쓴 「물에 잠긴 달」*을 보라.) (중략). 라캉은 이러한 공적 관습의 영역을 ‘대타자big Other‘ 즉 우리 삶의 상징적 본질이라고 불렀는데, 이 대타자가 해체되기 시작하면 정신병적 신경쇠약이 드러난다.



* [역주]이 에세이는 「물속의 달」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책에 실려 있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 P113

진정한 붉은 알약을 먹는 일은 이러한 폭풍들의 위협에 대면할 힘을 모으는 것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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