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다음 사실을 천명해 왔다. 우리시대의 문화는 활자 이후의 문화이다. 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소통형식이다. 아직까지는 책과 잡지, 신문에 담겨 있는 정보의 홍수가 곧 인공지능에 의해 분류되고 멀티미디어 형태로 제공될 것이다. 지루한 인쇄물은더는 없을 것이다. - P35

 독서를 하면 지혜가 자란다. 혹은 모티머 애들러의 말처럼 "계몽된다." 『독서의 기술』에서 애들러가 밝힌 대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무언가 그러하다는 사실을 그저 아는 것이다. 계몽된다는 것은 그뿐 아니라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가를아는 것이다." 정보를 얻는 것은 사실을 수집하는 것인 데 반해 계몽된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정의나 자비, 인간의 자유)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모아온 사실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그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다. - P36

 어느 신문 이야기란이나 《타임》이나 CNN의
‘헤드라인 뉴스‘ 아침 방송이나 웹사이트 등 어디에서 이 사실을 수집하든 정보 내용에 결정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다. 다만 매체에 따라 사실에대한 경험이 경미하게 바뀔 수는 있다. - P36

 이렇듯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한 사상은 식빵을 씹으며 한 장의 사진이나 자극적인 신문 머리기사를 훑어보는 것망으로는 명료파게 파악될 수 없다. - P36

만약 실제로 책을 읽는 데 문제가 있다면 『일리아드』를 펼치기 전에 보충 학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독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독서를 좌절시키는 원인이 진짜 물리적인 어려움 때문인지 정보 수집하듯 깨달음을 쉽게 얻을 수 없어서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 - P37

다음 구절을 읽기 전에 시계의 초침을 보고 지금 시각을 확인하기바란다.

의외의 장소에서 처음 읽었던 책이라면 정독했든 건성으로 넘겼든 그 매력이 어김없이 유지되는 법이다. 그래서 해즐릿은 자신이 "클랜골른의 이판에서 셰리 한 병과 식은 닭 요리를 앞에 두고 『신 엘로이즈』를 들고 앉아 있던 날이 1798년 4월 10일이었다는 사실을 줄곧 기억했다. 롱펠로 교수가 대학에서 훌륭한 프랑스어 문제를 훈련하는 방법으로 발자크의『상어 가죽』을 읽으라고 조언했던 것을 내가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10여 년 후에 강연 차 떠난 여행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하룻밤 반나절을앉아 있던 끝에 문득 그 사실을 기억해 냈다. 반면 아조레스 군도로 향하는 첫 여정 줃에 범선 위에서 처음으로 휘트먼의 『풀잎』을 만났던 것처럼, 아주 우연히 때로 절망적일 정도로 부벙적인 조건에서 어떤 책과 만났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풀잎』이라는 책은 뭍에서조차 경미한 욕지기를 불러 일으킨다.¹ - P38

이 구절을 읽는 데 1분이 걸리지 않는다면 본격적인 산문을 읽는데 적절한 속도로 이미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낯선 단어가 열 개정도에 그친다면 당신의 어휘력은 이른바 수학 능력을 갖춘 수준에 이른것이고, 문외한인 지성인을 위해 씌어진 어떤 읽을거리라도 읽어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 P38

이 짤막한 구절을 읽는 데 1분이 넘게 걸리고 모르는 단어가 열개 이상이면, 여러분의 실제 물리적인 독서법을 재검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이 장 끝부분에 있는 ‘독서의 두 번째 단계는 속독 연습과 어휘 공부다‘
참조.) 아니면 어떠한 보충 학습도 필요가 없다. - P38

‘하지만 나는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요. 양서 목록을 독파하다가죽어 버릴 거라고요!‘ 독서는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할 하나의 과정이다. - P38

속독이 좋은 독서라는 생각은 비유하자면 컴퓨터 제조업자들이 개간한 자갈밭 농경지에서 자라난 20 세기식 잡초와 같다. 커크패트릭 세일이 달변으로 지적했듯이, 어느 기술에든 고유한 내적 윤리 체계가 있는 법이다. 증기 기술은 크기를 미덕으로 만들었다. 컴퓨터화한세계에서는 빠를수록 좋고 속도가 최고의 미덕이다.³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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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철학인가 헛소리인가?





들뢰즈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들뢰즈는 1925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995년에 사망하였다. 들뢰즈의 철학적 생애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 P40

1. 철학사가로서의 시대 : 1953~1967

흄, 니체, 칸트, 베르그송에 대한 연구를 한다. 문학에 대한 연구로서 프루스트에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이 연구는 후반기의 예술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 P40

2. 존재론의 시대: 1968~1970

들뢰즈 스스로 최초로 철학을 하기 시작한 책이라고 말하는 『차이와 반복』이1968년에 국가 박사 논문으로 제출되었다. 이 시기에 국가 박사 부문으로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가 발표된다 - P40

3. 가타리와의 시대: 1971~1995

정신분석학자 가타리와 공동작업으로 네 권의 책(『앙띠 오이디푸스』, 『카프카』,
『천 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을 집필한다. 라캉의 제자였던 좌파 정신분석학자 가타리로부터 들뢰즈는 여러 개념들(분열 분석, 분자적/물적, 기계적, 추상기계, 리투르넬 등)을 배우고 자신의 철학과 함께 발전시킨다. - P41

들뢰즈의 철학의 이름들

들뢰즈가 철학에 붙어 다니는 이름을 살펴보는 것이 들뢰즈 철학의 성격을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들뢰즈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차이의 철학, 선험적 경험론(empirisme transcendantal)²⁴, 시뮬라크르의 철학, 생성의 철학, 수평적 철학²⁵, 표면의 철학, 일의성의 철학, 비이성적 논리의 철학, 표현주의의 철학, 긍정의 철학, 탈주의 철학, 잠재성의 철학, 리즘의 철학,
유목적 철학, 비표상(비재현)의 철학 등. - P43

24 선험적 경험론에 대해서는 5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것은 들뢰즈가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에 대항하여, 자신의 철학에 붙인 이름으로, ‘선험적‘이란 말과 ‘경험론‘이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인이름이다. 합리론에 대한 경험론적 독해를 실천한 스피노자의 영향이 느껴진다. 경험론자 흄에 대한저작이 들뢰즈의 첫번째 저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경험론에 대한 애착은 알 수 있다.


25 존재와 존재자가 갖는 관계는 매개를 거치지 않는다. 모든 존재자는 범주, 재현 등의 매개를 거치지않고, 존재와 직접 관계 맺는다. "존재는 존재자를 표현하고, 존재는 존재자에 의해서만 말하여진다." 이런 이유에서 들뢰즈는 재현(représentation)의 사유, 범주의 사유를 거부한다. 이 문제는 2권에서 자세히 다룬다. - P43

 들뢰즈가 대항해서 싸우는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재현 또는 표상(representation), (개념의) 동일성(identité), (판단의) 대립(contradiction), (술어의 유추(analogie), (지각의) 유사성(ressemblance), 부정성(négativité), 변증법(dialectique),
통접적 종합(synthèse conjonctive), 위계(hiéarchie), 의미 작용(significaion), 주체화(subjectivation), 조직화(organisation), 일자(I‘Un), 주체(sujet), 형이상학(métaphysique),
이분법(dichotomie) 등 - P43

들뢰즈: 리종적인 삶
"리좀(rhizome)은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리즘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존재이고, 간주곡이다"²⁶라고 말하여지는 리즘은 들뢰즈의 철학적 삶 자체를 설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26)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p.54 - P44

하지만 이 세 철학자의 계보로부터만 들뢰즈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칸트로부터 읽어내는 들뢰즈 『차이와 반복에서 나타나는, 칸트를 넘어서기 위한 들뢰즈의 노력, 의미의 논리에서 보여지는 구조주의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들뢰즈의 진면목을 읽어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스토아학파, 현대 생물학(생명, 진화의 개념,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사후성의 개념, 차이의 개념)을 통해서도 들뢰즈의 중요한 측면들이 드러나며, 들뢰즈의 진면목은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 P44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중간(milieu)만이 있는 책이라서, 어디에서부터 읽기 시작해도 된다고 하지만,
책의 처음부터, 책 전체의 모든 개념이 쏟아져 나와서, 전체를 다 읽지 않고는 처음도이해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중심도 주변도 없는 리좀적인 구조로 짜여져 있다. - P45

콜하스, 들뢰즈

이런 비슷한 경우를 현대 건축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렘 콜하스의 경우가 그렇다.
콜하스 역시 굉장히 많은 계보를 갖는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칸, 한스 샤로운, 60년대 급진적 아방가르드 운동, 러시아 아방가르드, 뉴욕의 마천루 건축가들,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어떤 한 측면에서 콜하스의 진면목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듯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콜하스의 전체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 P45

 르 코르뷔지에가 그러하고, 칸트과 라캉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들뢰즈가 유난히 더욱 리좀적인 사유를 실천하는 철학자로 보이는 이유는 들뢰즈 자신이 철학, 예술, 과학을 가로지르는 사유를 몸소 실천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P46

1권에서, 우리는 위상학의 항목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관계(relation)와 비율(rapport)의 수학이다. 우리는 건축과 도시론이 현대의 어떤 새로운 상황과 맞부딪히는지를 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이 관계와 비율의 위상학적 사유를 요청하게됨을 볼 것이다. 구조주의와 들뢰즈에서 위상학적 사유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 P47

2권에서 우리는 이집, 이질성, 영역의 중첩을 야기하는 위상적 연산으로서의 은유와 생성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중략)
은유와 생성의 항목은 위상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현대 건축가들은 은유를 창조의 방법을 사용한다.  - P47

구조가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전이될 수 있다면, 모든 영역들은 구조에 의해서 교환될 수 있는 걸까? 수학과 예술은 동일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 걸까?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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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언젠가는 융합기술을 직접 사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들어, 최근 뇌에서 발생하는 전류를포착하여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신호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피험자는 생각만으로 ‘오른손 검지를 움직여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연결된 컴퓨터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 P35

고용주가 뇌와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을 통해 모든 피고용자에게 ‘회사 네트워크‘에 연결하라고 지시한 후, 회사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사용자의 마음속에 억지로 집어넣는 한편 사용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 P35

생명 자체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완전히 인공적인 기술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인공장기나 신경이식 등 인공적인 신체부위가 장차 신체의 일부로간주될지, 그저 필요에 의해 신체에 이식한 이물질로 간주될지는알 수 없다. 발전속도로 볼 때 이것들이 신체에 점점 완벽하게 통합되면서 문제가 무척 복잡해질 것만은 확실하다. - P36

 그때 사람들은 줄기세포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누가 그 과정을 중단시킬 것인가? 치료를 중단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P36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고안할 수 있는 모든 종류, 모든 방식, 모든 형태의 인간강화를 받아들인 뒤에도 수명과 기억력과 신체적인 힘의 한계가존재할까? 아니면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정도로 병들고 닳아빠진 부위를 여기저기 때워가며 비참한 모습으로 살게 될까? - P37

흥미로운 질문은 기술을 통해 강화할 수 없고, 오로지 삶이라는 경험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신적,
정서적, 영적 현상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들은 기술로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영역으로 남을지 모른다. - P37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은 상상 속에 그려진 완벽이라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아니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과정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장할 때 우리의 이상과 가치 또한 함께 성장하며 변화한다.³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길을 꾸준히 찾는 것이 본질적으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기 때문에 인류의 모습이 1천 년 후,
5백 년 후, 심지어 1. 2백 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 P38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술은 하나같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개성, 민주주의, 자율성 등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기술은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떠날 것인지 등 매우 사적이고 민감한 문제에 관한 판단능력에 영향을미칠 수도 있다. 자신의 몸과 뇌에 가해지는 깊은 차원의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제한할 권리를 어디까지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생겨나고 있다. - P39

빅터의 이야기에서 보았듯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휴대폰을 점점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기계와의 상호작용이 늘어난다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와 우리가 실제로 통합되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호해지는 상황을 포함한다. - P39

대다수가 매우 긴 수명을 누리며, 기술의 힘을 빌려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한 개인은 얼마나 자유롭게 그런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을까? 다수는 아니라도 상당수의 사람이 기술적 강화를 거부하거나, 비용을 지불할 형편이 못 된다면 어떨까?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최하층 계급이 될까? 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들을 어떻게 취급할까? - P39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인공지능 연구소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 소장인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기계에 점점 더의존하게 되었다면, 새천년을 맞아 우리는 바야흐로 기계 자체가 되려는 순간을 맞고 있다."⁴ - P40

이런 기술이 생명을 살리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기능 회복술로 도입되기 때문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시력을 회복하거나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기억을 회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유한성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죽으꽈 장애에 대한 공포야말로 가장 칸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응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41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우리편 병사가 고글 따위를 쓰지 않고 적외선을 투시하는 능력과 초인적인 청력, 엄청나게 향상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갖는다는 데 반대하거나 망설일 사람이 있을까? 일단 이런 기술이 군사적으로 폭넓게 사용된다면 민간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 P41

나아가 신체와 뇌를 점점 더 쉽게 조작하게 된다면 장차 우리는무선 컴퓨터 기술, GPS, 기타 첨단기술을 거의 모든 소비제품에 통합시켜 ‘살아 숨쉬는 것들‘과 ‘지능적인 것들‘로 구성된 환경과 점점 더 접촉면을 넓혀갈 것이다. - P41

우리는 스마트한 생활 환경에 금방 의존하게 되어 도대체 옛날에는 이런 것들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오늘날 이메일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2

‘똑똑한‘ 기기들이 우리의 활력징후를 의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린다면, 그 정보는 반드시 어딘가 저장된다. 당연히 해킹당할 수있다. 시장경제에서는 이런 정보가 보험회사나 기타 기업, 심지어 잠재적 고용주에게 팔릴 수도 있다. 개인정보 열람 범위를 세심하게 규제하고 제한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 P42

융합기술은 인류의 고통을 크게 덜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보수주의자들은 신체와 정신 양쪽에서 고통이 완전히 없어진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비롯해 고결한 품성을 함양하는 데 고난과 역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상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 P43

과학계는 인간의 경험을 환원주의적 용어로 생각하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모든 경험은 물리적인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및 전기적 과정의 합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난은 완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완전히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 P43

질병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영생을 누린다고 해도 절망과 외로움, 실망 등 삶의 모든 고난과 의미 추구 과정이 없어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 P44

그러나 기술의 개발 속도에 비해 FDA 등 규제기관의 움직임은 달팽이 걸음이다. 환자들이 기술을 하루 빨리 이용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호소는 각국 정부에 엄청난 압력이다. 결국 인간능력 강화라는 문제는 논의 대상에도 못끼는 경우가 많다. - P44

이들의 지능은 최소한 계산능력에서는 우리보다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적 사회에서 이 존재들은 어떤 권리와 의무를 누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 다를 것인가? - P45

 AI가 고도로 발달한 뒤에도 여전히 인류에게 봉사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미래가 올 것이므로 AI, 나노기술, 유전학을 더이상 발달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P45

안데르스 산드베리는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능력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에서 보듯 천편일률적으로 ‘완벽한 휴머노이드 군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기술과 개인 차원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전례없는 수준의 자아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 P46

2장 : 원래 심장보다 더 좋아요.

TAH는 가교기술bridge technology이다. 영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적합한 생체심장을 이식할 때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방법이란뜻이다. 또 한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원래 심장을 제거한 후(당연히 일단 제거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TAH를 대동맥에 연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반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대동맥은 심장에 바로 연결되는 혈관으로,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는 동맥 중 가장크다. - P51

 하지만 성공하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차분히 따져보기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 터였다.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든 심장을 이식받는다는 생각 자체도 상당히 불편했다. 하지만...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녀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 P51

그렇지 않았다면 남성이나 몸집이 아주 큰 여성에게 맞는 신카디아 70cc형 인공심장을 보통 체구의 여성에게 이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대동맥 연결은 큰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심장의 임무를 이어받은 인공심장은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 P52

인공심장의 좋은 점은 분당 9.5리터의 혈액을 안정적으로 박출한다는 점이다. 콩팥은 기능을 회복했고, 그녀 역시 활력을 되찾았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온몸에 생명이 넘쳤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아이들을 보살폈으며, 필요한 것들을 사러 다녔다. 모든 게 기적 같았다. - P53

 스테이시는 곧 익숙해졌지만 모두가 모른 체하고 참아주지는 않았다. 몸이 좋아지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다녔던 교회를 찾았다. 교회 밖에는 "이제 네 모습 그대로 내가 만나기를 원하노라come as you are"고 씌어 있었다. 예배를 마치자 목사가 다가왔다. 그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신도들에게 방해가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 달라고 했다. - P53

인공심장을 지니고 산 지 196일째,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다. 심장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행운에 기쁘고 마음이설렜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누릴 정도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인공심장을 제거한다니 걱정도 되었다. 생체심장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TAH는 거부반응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혈전 방지제만 꼬박꼬박 복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 P53

최근에는 실제로 가벼운 거부반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몸상태가 너무 좋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것이다. 심장전문의는 이식 후 얼마 안 되어 가벼운 거부반응을 겪은 사람이장기적으로 경과가 더 좋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순위는 명백하다. "저는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가족과 함께 사는 거죠." - P54

 TAH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소형화 추세도 계속되어 더 큰 인공심장과 똑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30cc 모델을 개발 중이다. - P54

인공심장의 잠재적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심장질환은 남녀를불문하고 가장 흔한 사망원인이며, 생물학적으로 적합한 생체심장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건강 문제 없이 오로지 심장 때문에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 P55

심폐 이식 분야의 선구자인 외과의사 마크 플런킷Mark Plunkett을 만나보았다. 그는 켄터키의과대학 흉부외과 과장으로 재직할 때 세 명의 환자에게 TAH를이식한 경험이 있다. 얘기를 나누면서 적합한 기증자가 나서기를기다리며 죽어가는 ‘아픈 사람 중에서 가장 심한 사람들‘의 생명을구하는 놀라운 치료와 인공심장에 대한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있었다. - P55

플런킷 박사는 아주 어렸을 때 진로를 결정했다. 메릴랜드 주 동해안의 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그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외과의사가되겠다고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과 일곱 살 때였던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크리스티안 바나드christiaan Barnard라는 의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대 인간 심장 이식수술을 시도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심장을 이식받은 53세의 남성 루이스 와시칸스키Louis Washkansky는 합병증 때문에 18일밖에 살지 못했지만, 이식수술자체는 성공이었다. - P56

플렁킷은 인공장기이식술에 마음이 끌렸다. 생체장기가 턱없이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말기 환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재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적합한 장기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미국에서만 11만 9천 명에 이른다.
매년 7천 명이 기다리다 사망한다.¹ 가장 큰 문제는 장기기증자가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 P56

 거부반응이 일어나거나 심부전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식심장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고령자라면 몰라도,
어린이는 사정이 다르다. 평생 여러 차례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하며,
그때마다 적합한 기증자를 절박하게 기다려야 한다. - P57

현재 몇 가지 인공장기가 개발을 마치고 시험 중이지만, 인공심장의 기초 기술은 오래 전에 개발되었다. 1963년 폴 윈첼Paul Winchell이 최초의 인공심장을 제작했다. 이를 원형으로 삼아 1983년에는 자빅Jarvik 이 개발한 인공심장이 최초로 인간에게 이식되었다. 이후 인공심장은 점점 정교해졌으며, 이식받은 환자들 역시 점점 오래살게 되었다.  - P57

현재 신카디아 인공심장과 박출량이 같으면서 무거운 백팩을 매고 다닐 필요 없이 가벼운벨트형 배터리 팩만 착용하면 충전되는 형태가 우선 목표다. 그 다음 버전은 피부 밑에 배터리를 이식하는 완전 체내형 심장이다. 그는 모든 것이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전망한다. - P57

 우선 환자는 생체이식수술을 받는 데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다른 이식형 장치나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말기 심부전으로 양쪽 심실이 모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대리야 한다. 환자는 보통 심장전문의, 특히 심부전 전문의를 거쳐 이식전문의에게 의뢰된다. 관상동맥질환, 심장발작, 고혈압, 바이러스성 심근염, 심장판막질환 등심부전에 이른 원인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심각하고, 심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 못할 상태다. - P58

심장 기능이 약해져 주요 장기에 적절히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면 심부전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마침내 주요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휴식을 취할 때조차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양쪽 폐에 혈액과 체액 저류되면서 숨이 가빠진다. - P58

이 정도로 나빠지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괴롭다. 폐에 더 많은 체액이 저류되면숨쉬기가 어렵고 물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눕지 못하고 앉은 채로만 잠들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극심한 피로가 가중된다. 이식전문의에게 의뢰되는 환자는 대부분 이런 상태다. - P59

플런킷 박사는 완전인공심장에 대해 설명하고 짧은 영상을 보여주지만 모든 환자가 선선히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실 굉장히 급진적인 생각이죠.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 P59

하지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대개 인공심장을 제안받은 환자는 시술만 가능하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수락한다. 젊은 환자일수록 더 쉽게 받아들인다. 플런킷 박사에 따르면 유럽에는 인공심장에 크게 만족하여 적합한 생체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데도 인공심장을 고수하는 환자가 상당히 많다. - P60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언제 이 장치를 끌 것인지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플런킷 박사는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가상적인 시나리오를 들어 실명했다.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심한뇌졸중을 겪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해보자. 현재 사용되는 인공심폐장치와 마찬가지로 인공심장은 계속 온몸으로 혈액을 순환시킬 것이다. - P61

의료진은 인공심장의 스위치를 내리자고 권고할 가능성이 높다. 뇌사 상태인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치료를 중단할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는 가혹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 P61

인공심장의 작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무리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가 꺼져가는 삶을 움켜잡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생각하며 크나큰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가족을 떠나보낸 마지막 순간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스위치를 내리는 행위를 살인이라고 생각해 절대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 P62

아직 이런 윤리적 질문에 답할 만큼 많은 연구 결과가 축적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심장 기능 보조장치들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 문제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대략 개념을 잡을 수는 있다. - P62

생명윤리학자 린 잭슨 Lynn A. Jansen은 죽어가는 환자에서 심박동조율기를 끄는 문제에 대해 쌌다. 심박동조율기는 전류를 통해 심장을 규칙적으로 박동시키는 장치다. 심장의 전기적 신호가 크게 불규칙해지면 매우 위험하다. - P63

따라서 가족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점점 자주 벌어진다. 심박동조율기를 계속 작동하도록 두어야 할까?
아니면 조율기를 끄고 자연적인 죽음이 진행되도록 해야 할까? 끈다면 언제 꺼야 할까? 이식받은 환자의 심리 역시 매우 복잡하다.
죽음을 막아주는 마지막 방어벽으로 생각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장치에 의존한다. 심지어 심박동조율기를 몸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 P64

잰슨의 입장은 심박동조율기가 자체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있는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기능을 중단한다면 심박동조율기 또한 의미와 용도를 잃는다. 뇌사 상태인 환자의 몸속에서 혈액이 순환을 계속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생명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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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그가가져온 것은 하얀색과 황금색으로 두툼하게 짠 캐시미어이었다. 해러즈 특유의 얇은 포장지에 싸여 아직 해러즈 백화점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미스더버는 해러즈 포장지를 그 안의 물건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지, 숄을꺼낸 뒤 포장지부터 매끈하게 펴서 원래 모양대로 접어다시 상자 안에 넣고, 상자를 최고의 보물만 놓아두는 장식장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숄을 어깨에 둘러 주고자신을 끌어안는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 P19

「괜찮다면 꽤 오랫동안 여기 머무르게 될 것 같아요.
미스 D. 글 쓸 것이 좀 많거든요.」
「말은 항상 그렇게 하지. 지난번에는 여기서 아예 눌러살겠다고 했잖우. 그래놓고 쪼르르 돌아가버렸으면서.」
「어쩌면 2주나 있을지도 몰라요. 편안히 작업하려고휴가를 냈거든요.」 - P20

「항상 크루즈 얘기를 하시잖아요. 이제 자신에게 선물을 줘야 할 때도 됐습니다, 미스 D.」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이젠 흥미 없어요.」
「지금도 제가 비용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고맙기도 하지.」
「원하신다면 전화 문의도 제가 해드리죠. 저랑 같이여행사에 가는 겁니다. 사실 제가 봐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일주일 뒤에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하는 오리엔트 익스플로러호입니다. 제가 물어봤더니, 취소된 표가 하나있다고 하더라고요.」 - P21

핌은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느님과 제가 힘을 합쳐도 미스 D 를 어디로 옮겨 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 P21

사실 당시 그녀의 부엌에는 아무 이상 없이 작동하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지만, 어쨌든 핌은 그 뒤로 여섯 달마다 한 번씩 현금으로 미리 방세를지불했다. 영수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원 옆에그녀를 위해 나지막한 돌담을 지어 주었다. 그녀의 생일에 그녀를 놀래 주려고 벽돌공을 재촉해서 어느 날 오후반나절 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 P22

 핌은 이곳에서 우편물도 손님도 받지 않았고, 외국어로 된 무선 통신 외에는 아무런 기기도사용하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에게 볼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전화기도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미스 더버에게 자신이 런던에 살면서 정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을 많이 하고, 이름이 캔터베리라는 것만 이야기해 주었다. 자식, 아내, 부모, 애인 등 그와 가까운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었다. 여기 미스 D뿐이었다. - P23

3시간 전 빈에서, 매그너스의 아내 메리 핌은 자기 방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남편이 선택한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놀라우리만치 고요한 세상이 거기에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커튼을 닫지도 않고, 불을 켜지도않았다. 어머니가 그녀를 보았다면 손님 맞을 옷차림을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 P24

둘이 함께 가서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스카치와 음료수를 마셨어야 했다. 매그너스는 보드카를마셨을 것이다. 그러곤 전축에 음악을 걸고 춤을 췄을 것이다. 외교적으로 춤을 추는 핌 부부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매그너스가 워싱턴의 부지부장으로 있을 때는 두 사람의 손님 대접이 정말로 유명했고, 모든 일이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갔다. 매그너스가 농담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자극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동안 메리는 베이컨과 달걀을 요리했다. - P25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지난수요일까지의 일. 지금 중요한 것은 매그너스가 공항에세워 두었던 메트로 자동차를 몰고 저 길을 달려와 잭브러더후드보다 먼저 여기 문 앞에 도착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 P25

시끄러운일도 없고, 문제도 없어, 난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다.」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 <나>가 아니라, 잭 브러더후드였다.
「그 소포 소식은 없나 보지?」 브러더후드가 군인 특유의 풍부하고 자신감 있는 영어로 물었다.
「누구한테서도 소식이 없어요. 지금 어디예요?」
「한 30분 뒤 거기 도착할 거야. 가능하면 그보다 빨리갈 수도 있고, 기다려.」 - P26

핌과 마찬가지로 메리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영국 사람이었다. 머리는 금발이고, 턱은 강인했으며, 성격은 솔직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특징이 하나 있다면 세상을 상대할 때, 특히 외국인들을 상대할 때 살짝 코믹하게군다는 점이었다. 메리의 인생은 훌륭한 죽음의 기록이었다.  - P27

 하지만 상심 끝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메리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의 곁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궁하지않게 살 만한 유산과 지독히 애국적인 영혼, 그리고 도싯의 작은 장원을 남겨 주었다.  - P28

매그너스, 돌아와 당신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란을 피워서 미안해. 당신이 6에이커밖에서도 들리겠다고 한 그 목소리로 브리티시 항공 직원에게 고함을 질러서 미안해. 내 외교관 여권을 막 휘둘러 대서 미안해. 그리고 또........잭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남편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어서 미안해…………. - P28

「아, 진짜.」 메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칠게 쏘아붙인다.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하고, 이 망할 고리나 좀 걸어줘.」
가끔 군인 집안의 전통이 내 말버릇을 지배하기 때문이야. - P30

하지만 메리는 여느때처럼 너무 불안해서 미소도 짓지 못하고, 그에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고용인인 벤첼 씨가 베버의 생선 가게에서 얼음을 가져왔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매그너스가 간다. 매그너스는 항상 간다. 메리의 뺨에 쪽 입을 맞추는 편이 더 현명할 때조차 매그너스는 간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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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재미있게 봤었는데.




세찬 바람이 부는 10월 어느 날의 깊은 새벽,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데번주 남부의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은 낡은 시골 택시를 내렸다. 요금을 치른 뒤 기사가 차를 몰고 떠날 때까지 기다린 그는 힘찬발걸음으로 교회앞 광장을 가로질렀다. 그의 목적지는벨라비스타니 코모도어니 유레카니 하는 이름을 달고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하숙집들이 어두운 불을 밝힌 채 늘어서 있는 계단식 단지였다. - P13

강한 바닷바람이 그의 도회풍 양복을 후려치고,
소금기 섞인 빗줄기가 눈을 찌르고, 물거품이 그의 앞길을 공처럼 굴러갔다. 핌은 그것들을 무시했다. <빈방 없음>이라고 표시된 어느집 포치에 다다른 그는 초인종을울리고 기다렸다. 처음에는 외부의 전등이 켜지기를, 그다음에는 안에서 걸어 잠근 고리를 풀어 주기를 그렇게기다리는 동안 교회 시계가 5시를 치기 시작했다. - P14

「세상에, 캔터베리 씨 아니우?」 뒤에서 문이 열리며 어느 노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살아.
또 야간 침대차를 타고 왔구먼. 미리 전화라도 좀 하지.」「안녕하세요, 미스 더버.」핌이 말했다.「 잘 지내셨어요?」
「내가 잘 지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캔터베리 씨 얼른 들어와요. 그러다 죽을라.」 - P14

「쿡 씨는 위쪽 아파트로 갔어요. 실리아 벤이 그림을그리겠다면서 그 방에 들어갔고, 정말 딱 캔터베리 씨답네.」 미스 더버가 빗장을 걸었다. 「석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다가 한밤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남의 방에 왜 불이 켜져 있느냐는 거라니.」 미스 더버는 빗장을 하나 더 걸었다.  - P15

「벤씨의 딸이지, 딱 들으면 모르겠우. 바다를 보면서그림을 그리고 싶답디다.」 미스 더버의 목소리가 갑자기 딱 바뀌었다. 「이런, 캔터베리 씨, 무슨 배짱이우? 그거당장 벗어요.」 - P16

「세상에 끔찍한 검정 넥타이라니, 캔터베리 씨, 내 집에 죽음을 들여놓을 수는 없어요. 절대 안 돼. 그건 누구때문에 맨 거예요?」
핌은 소년처럼 앳되어 보이면서도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50대 초반인 그는 아직 한창 나이였고, 이곳에서는찾아볼 수 없는 열정과 조급함이 가득했다. - P16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입니다.」 핌은 강한 어조로 말하면서 넥타이를 풀어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미스D에게 그 친구의 이름을 알려 줄 생각도 없고요. 그랬다가는 신문 부고 난을 샅샅이 뒤지실테니까요.」이 말을하는 동안 방명록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그가 지난번에왔을 때 천장에 끼워 준 오렌지색 야간 등 불빛을 받고있는 현관홀의 탁자 위에 방명록이 펼쳐져 있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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