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그가가져온 것은 하얀색과 황금색으로 두툼하게 짠 캐시미어이었다. 해러즈 특유의 얇은 포장지에 싸여 아직 해러즈 백화점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미스더버는 해러즈 포장지를 그 안의 물건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지, 숄을꺼낸 뒤 포장지부터 매끈하게 펴서 원래 모양대로 접어다시 상자 안에 넣고, 상자를 최고의 보물만 놓아두는 장식장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숄을 어깨에 둘러 주고자신을 끌어안는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 P19
「괜찮다면 꽤 오랫동안 여기 머무르게 될 것 같아요. 미스 D. 글 쓸 것이 좀 많거든요.」 「말은 항상 그렇게 하지. 지난번에는 여기서 아예 눌러살겠다고 했잖우. 그래놓고 쪼르르 돌아가버렸으면서.」 「어쩌면 2주나 있을지도 몰라요. 편안히 작업하려고휴가를 냈거든요.」 - P20
「항상 크루즈 얘기를 하시잖아요. 이제 자신에게 선물을 줘야 할 때도 됐습니다, 미스 D.」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이젠 흥미 없어요.」 「지금도 제가 비용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고맙기도 하지.」 「원하신다면 전화 문의도 제가 해드리죠. 저랑 같이여행사에 가는 겁니다. 사실 제가 봐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일주일 뒤에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하는 오리엔트 익스플로러호입니다. 제가 물어봤더니, 취소된 표가 하나있다고 하더라고요.」 - P21
핌은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느님과 제가 힘을 합쳐도 미스 D 를 어디로 옮겨 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 P21
사실 당시 그녀의 부엌에는 아무 이상 없이 작동하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지만, 어쨌든 핌은 그 뒤로 여섯 달마다 한 번씩 현금으로 미리 방세를지불했다. 영수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원 옆에그녀를 위해 나지막한 돌담을 지어 주었다. 그녀의 생일에 그녀를 놀래 주려고 벽돌공을 재촉해서 어느 날 오후반나절 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 P22
핌은 이곳에서 우편물도 손님도 받지 않았고, 외국어로 된 무선 통신 외에는 아무런 기기도사용하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에게 볼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전화기도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미스 더버에게 자신이 런던에 살면서 정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을 많이 하고, 이름이 캔터베리라는 것만 이야기해 주었다. 자식, 아내, 부모, 애인 등 그와 가까운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었다. 여기 미스 D뿐이었다. - P23
3시간 전 빈에서, 매그너스의 아내 메리 핌은 자기 방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남편이 선택한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놀라우리만치 고요한 세상이 거기에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커튼을 닫지도 않고, 불을 켜지도않았다. 어머니가 그녀를 보았다면 손님 맞을 옷차림을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 P24
둘이 함께 가서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스카치와 음료수를 마셨어야 했다. 매그너스는 보드카를마셨을 것이다. 그러곤 전축에 음악을 걸고 춤을 췄을 것이다. 외교적으로 춤을 추는 핌 부부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매그너스가 워싱턴의 부지부장으로 있을 때는 두 사람의 손님 대접이 정말로 유명했고, 모든 일이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갔다. 매그너스가 농담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자극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동안 메리는 베이컨과 달걀을 요리했다. - P25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지난수요일까지의 일. 지금 중요한 것은 매그너스가 공항에세워 두었던 메트로 자동차를 몰고 저 길을 달려와 잭브러더후드보다 먼저 여기 문 앞에 도착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 P25
시끄러운일도 없고, 문제도 없어, 난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다.」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 <나>가 아니라, 잭 브러더후드였다. 「그 소포 소식은 없나 보지?」 브러더후드가 군인 특유의 풍부하고 자신감 있는 영어로 물었다. 「누구한테서도 소식이 없어요. 지금 어디예요?」 「한 30분 뒤 거기 도착할 거야. 가능하면 그보다 빨리갈 수도 있고, 기다려.」 - P26
핌과 마찬가지로 메리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영국 사람이었다. 머리는 금발이고, 턱은 강인했으며, 성격은 솔직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특징이 하나 있다면 세상을 상대할 때, 특히 외국인들을 상대할 때 살짝 코믹하게군다는 점이었다. 메리의 인생은 훌륭한 죽음의 기록이었다. - P27
하지만 상심 끝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메리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의 곁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궁하지않게 살 만한 유산과 지독히 애국적인 영혼, 그리고 도싯의 작은 장원을 남겨 주었다. - P28
매그너스, 돌아와 당신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란을 피워서 미안해. 당신이 6에이커밖에서도 들리겠다고 한 그 목소리로 브리티시 항공 직원에게 고함을 질러서 미안해. 내 외교관 여권을 막 휘둘러 대서 미안해. 그리고 또........잭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남편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어서 미안해…………. - P28
「아, 진짜.」 메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칠게 쏘아붙인다.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하고, 이 망할 고리나 좀 걸어줘.」 가끔 군인 집안의 전통이 내 말버릇을 지배하기 때문이야. - P30
하지만 메리는 여느때처럼 너무 불안해서 미소도 짓지 못하고, 그에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고용인인 벤첼 씨가 베버의 생선 가게에서 얼음을 가져왔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매그너스가 간다. 매그너스는 항상 간다. 메리의 뺨에 쪽 입을 맞추는 편이 더 현명할 때조차 매그너스는 간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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