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재미있게 봤었는데.

세찬 바람이 부는 10월 어느 날의 깊은 새벽,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데번주 남부의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은 낡은 시골 택시를 내렸다. 요금을 치른 뒤 기사가 차를 몰고 떠날 때까지 기다린 그는 힘찬발걸음으로 교회앞 광장을 가로질렀다. 그의 목적지는벨라비스타니 코모도어니 유레카니 하는 이름을 달고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하숙집들이 어두운 불을 밝힌 채 늘어서 있는 계단식 단지였다. - P13
강한 바닷바람이 그의 도회풍 양복을 후려치고, 소금기 섞인 빗줄기가 눈을 찌르고, 물거품이 그의 앞길을 공처럼 굴러갔다. 핌은 그것들을 무시했다. <빈방 없음>이라고 표시된 어느집 포치에 다다른 그는 초인종을울리고 기다렸다. 처음에는 외부의 전등이 켜지기를, 그다음에는 안에서 걸어 잠근 고리를 풀어 주기를 그렇게기다리는 동안 교회 시계가 5시를 치기 시작했다. - P14
「세상에, 캔터베리 씨 아니우?」 뒤에서 문이 열리며 어느 노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살아. 또 야간 침대차를 타고 왔구먼. 미리 전화라도 좀 하지.」「안녕하세요, 미스 더버.」핌이 말했다.「 잘 지내셨어요?」 「내가 잘 지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캔터베리 씨 얼른 들어와요. 그러다 죽을라.」 - P14
「쿡 씨는 위쪽 아파트로 갔어요. 실리아 벤이 그림을그리겠다면서 그 방에 들어갔고, 정말 딱 캔터베리 씨답네.」 미스 더버가 빗장을 걸었다. 「석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다가 한밤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남의 방에 왜 불이 켜져 있느냐는 거라니.」 미스 더버는 빗장을 하나 더 걸었다. - P15
「벤씨의 딸이지, 딱 들으면 모르겠우. 바다를 보면서그림을 그리고 싶답디다.」 미스 더버의 목소리가 갑자기 딱 바뀌었다. 「이런, 캔터베리 씨, 무슨 배짱이우? 그거당장 벗어요.」 - P16
「세상에 끔찍한 검정 넥타이라니, 캔터베리 씨, 내 집에 죽음을 들여놓을 수는 없어요. 절대 안 돼. 그건 누구때문에 맨 거예요?」 핌은 소년처럼 앳되어 보이면서도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50대 초반인 그는 아직 한창 나이였고, 이곳에서는찾아볼 수 없는 열정과 조급함이 가득했다. - P16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입니다.」 핌은 강한 어조로 말하면서 넥타이를 풀어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미스D에게 그 친구의 이름을 알려 줄 생각도 없고요. 그랬다가는 신문 부고 난을 샅샅이 뒤지실테니까요.」이 말을하는 동안 방명록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그가 지난번에왔을 때 천장에 끼워 준 오렌지색 야간 등 불빛을 받고있는 현관홀의 탁자 위에 방명록이 펼쳐져 있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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