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 대한 이러한 수학적 개념이 운동이라는 물리적 현상 개념을 만족시키는가? 우리의 직관으로 볼 때, 운동이란, 물체가 매번 다른 순간에 다른 지점에 있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닌가? 여기서도 우리는 직관을 신뢰해도 좋다. - P553

초한수의 대수 또한 또 놀랄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 개념에 존재하는 다른 어려움을 해결할 수가 있다. 먼저 (a)와 (b)라는 두 집합을 생각해보자.

(a) 1, 2, 3, 4, 5, 6, 7, ...
(b) 6, 7, 8, 9, 10, 11, 12,...

집합 (a)에 있는 각각의 수는 그 아래에 있는 집합 (b)의 수와 일대일로 대응하며, 그 역도 성립함이 분명하다. - P553

 다시 말하여 다음이 성립한다.

Ň_0-5=Ň_0(1)

식 (1) 이 제시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무한의 양에서 유한한 수를 빼도 여전히 동일하게 무한한 양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 P554

우리는 무한하지 않은 유한수에 적용되는 논리에 비추어 사고하는 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식에 비논리적인 것은 전혀 없다. 유한수에 적용이 되는 성질이초한수에 적용될 필요가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 P555

무한이라는 양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기본 개념은 집합, 즉 원소들의 집합이라는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수들의 집합, 한 직선 위에 있는점들의 집합, 시간상의 순간들의 집합 등. 그러나 불행하게도 겉보기에이렇게 간단하고 기본적인 개념에는 우리가 아직까지 살펴보지 못한 어려움이 놓여 있었다. - P555

첫 번째 예는 고전적인 예이다. (중략) 바울은 티투스에게 쓴 편지에서 크레타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 중 하나가 아니 심지어 그들의 예언자도, 크레타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이고, 사악한 짐승들이며 탐욕스럽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찰은 사실이다. 크레타인들에 대한 이러한 비방은 다음과 같이 좀더 흔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크레타인린 에피메니데스는 크세타인글이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 P556

다음에는 정직한 마을 이발사의 딜레마를 살펴보자. 그 이발사는스스로 면도하는 사람들을 면도하지는 않지만, 자기 혼자 면도를 하지못하는 모든 사람을 번도해주었다고 자랑스럽게 광고하였다. 하루는그의 얼굴에 비누거품을 칠하다가 갑자기 자기가 스스로를 면도하는사람들 중 하나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 P556

이제 1음절과 같은 모든 단어들, 그러니까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에는 적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이중구조적이라고 부르자. 그러면 어떤 단어든지 간에 x가 그 자체로 x 가 아닌 경우에 그 단어를 이중구조적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x가 바로 이중구조적이라는 단어일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만일 이중구조적이 그 자체적으토 이중구조적이 아닌 경우에 단어 ‘이중구조적‘이 ‘이중구조적‘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 P557

이 모든 역설 중에는 명백한 집합들이 포함되어 있다. 크레타인들의 집합, 면도해야 할 사람들의 집합, 그리고 마지막 예에서 본 것처럼이중구조적인 단어들의 집합. 이들을 분석해보면 이들 집합에 관한 진술들은 모두 자기 모순적이다. - P557

 미적분학을 계속 사용하면서 그것이올바른 것인가에 대하여 논쟁을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논쟁이 되고 있는 정리들이 계속 적용되고, 아주 유용한 것으로 입증되고있다. 미적분학의 역사는 또한, 마침내 그 어려움이 해결되었듯이, 현대의 것들도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준다는 점에서 수학자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 P558

각 시대마다 바로 그 시대가 만든 것을 엄격히해야 할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탁월한 미국수학자인 무어 (E.H. Moore)는 ‘어떤 이론이든 그 이론이 발표된 그 날까지만 진리이다‘ 라고 말하였다. 다른 수학자들은 이를 좀더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 P558

그러나 많은 수학자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진정한 발전을 이루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수학자는 통찰력과 직관이라는 행위로 창조한다. 그리고 논리는 직관이 정복한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학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건강하고 강력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실행하는 스스로의 건강법이기도 하다. - P558

 그러나 이 기둥은 좀더 깊은 곳에 있는, 아마도 좀 분명하지 않은 직관에 기반하고 있다. 비록 직관을 정밀한 사고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수학이 궁극적으로 놓여 있는그 지반의 성질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그 구조에 힘과 높이를 더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 P559

우리는 오히려 가장 모호하고도 가장 해결되기 어려운 직관의 어둠을 해결하고자, 얼마나 정확한 사고가 적용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무한 집합에 적용된 것과 같이, 양의 개념을 정밀하게 만듦으로써, 칸토어는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엄청난 양의 철학적 논쟁을 처리하여 주었던 것이다. - P559

무한수에 대한 이론은 19세기 비판적 사상가들이 창조한 것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내용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 이론은 논리적이고도 유용한 것이다. - P559

28장,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예술인 수학


근대적 발전을 이룩하면서, 순수수학이라는 학문은 이제 인간 정신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물임을 주장해도 될 듯하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P618

 근대로 접어들면서 수학적 아이디어는 아주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였다. 그에 따라 수학의 영향력도그 수량과 깊이 그리고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수학 분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 아주 면밀히 연구하여 그 흔적을 찾아보면, 오늘날까지도 그 관련성이 계속이어져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P618

다만 이책의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수학이 근대 문화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했으면 한다. - P618

 그 옛날 그리스인들의 업적만 보더라도 근대 수학의 성격을 다소나마 예상할 수 있긴 하였지만, 그 이후의 세월과 특히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은 수학의 역할과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 P619

. 불행하게도 끝없이 연속되는정의들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용어나 개념도 정의될 수 없다.
물론 무정의 용어들의 의미를 물리적 사례에 의해 암시할 수도 있다. - P619

 그러나 물리적 설명은 결코 수학의 일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수학이란 논리적으로 독립적이며 자기충족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개념은 정의되지 않은 개념을 기초로 정의되기도 한다.
가령 원은 주어진 한 점으로부터 정해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평면상의 모든 점들의 집합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점과 평면, 그리고 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정의한 것이다. - P619

만일 어떤 용어들이 정의되지 않고, 우리가 습관적으로 이들 용어와함께 연상하는 물리적 그림이나 과정이 순수수학의 일부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한 어떤 사실을 추론에 사용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공리에서 찾을 수 있다. - P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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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와 기차 바퀴의 마찰음에 어느새 남자의 호흡 소리가 뒤섞여 있다. 코러스 안에서 한 사람만 음정이 어긋난 것 같아 귀에 거슬린다.
넌 노래하지 마, 라고 지휘자가 말한다. 그런데도 음치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을뿐더러 그 소리만 점점 더 커진다. - P59

그러다 별안간 으윽 하는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날아갔다. 쿵 하고 나동그라진 몸의 무게 탓에 건너편 위쪽 침대가 삐걱거린다. 여자 목소리가 새나오고, 남자 목소리가 새나온다. 침대가 밑으로 꺼져버릴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괴로운 소리를 냈다. 당신은 그제야 간신히 상황을 이해했다. - P59

 조금 전 상인이 두 침대 사이를 넘나들며 두 복숭아 요정과 번갈아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갓집 아가씨의 소녀 취향으로 보였던 그 복장이 이 지역에서는 창부의 제복이란 말인가. - P59

 당신은 그제야 간신히 상황을 이해했다. 조금 전 상인이 두 침대 사이를 넘나들며 두 복숭아 요정과 번갈아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갓집 아가씨의 소녀 취향으로 보였던 그 복장이 이 지역에서는 창부의 제복이란 말인가. - P59

각자 자기의 광기를 토해내는 게 허락된 밤이라면, 내놓을 공연물이 없는 인간만 손해다. 내게는 내놓을 만한 게 없구나, 당신은 통감한다. - P60

다시 뛰어넘을 속셈이겠디 하며 당신이 숨죽인 채 각오하고 있는데, 남자가 욱 하고 양다리를 벋디디는 소리를 흘리는가 싶더니데구루루 구르며 두 침대 틈새로 곤두박질쳤다. 끔찍하게 큰 소리가났고, 당신은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가로막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눈을 떠 살펴보자니, 바닥에 떨어진 남자는 신음 소리를 흘렸고그후로 움직이지 못했다.  - P60

 허리가 부러졌을까. 당장 의사를 부르지 않으면 손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승무원에게 말할까. 경찰을 부르려나, 남자는 병원으로 실려갈까, 아니면 체포될까. - P60

얼토당토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것같은 기분이 든다. 이 나라에서는 범죄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열차가심하게 흔들려서 아무런 결단도 내릴 수 없다. - P61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이야기다. "열어 할 줄 아시나요"라고 물어서, 당신은 "조금"이라고 대답했다. 상대의 목소리는 새하얀 숨결에 삼켜져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왠지 모르게 미국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 1986년 이후 소련의 고르파초프 정권이 추친했덩 정책의 기본 노선 - P62

당신이 장갑을 낀 채 허공에 손가락으로 에이비시디라고 필기체 소문자를 쓰기 시작하자,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실은 부탁이 있어요. 이 문장을 이 그림엽서에 베껴 써주세요. 제 필적으로는 곤란해서요"라며 당신에게 크렘린 그림엽서와 종이쪽지를 건넸다. - P63

당신은 호텔로 돌아가서 용궁처럼 장식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앞에는 같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화려한 격자무늬 셔츠에화학성을 판달봉을 입은 연주자들이 <칼린카>*를 팝품으로 연주하고있었다 전기기타와 드럼 세트는 번쩍번쩍 빛나고 노랫소리는 감미로했지만, 연주자들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엄격한 나무꾼 같은 분위지가 감돌았다.


* 러시아 노래, 1860년에 만들어진 후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으며, 결혼식에서도 종종 불린다. - P63

내일부터는 드디어 긴긴 시베리아철도 여행이 시작된다. 밤에 침대로 들어갔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벽만이 사방에서 노려본다. 널찍한 침대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고 있자니, 불현듯 그 엽서가 떠오르며 만나본 적도 없는 마리라는 여성의 운명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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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산 대화면 TV는 아직 다른 가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거만한 태도의 전학생, 그것도 도심에서 시골로 온 학생 같은 위화감을 자아냈다. - P9

화면에 비친 점수판에는 0이 줄지어있었다. 8회초 마운드에 오른, 현역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에이스는 아주 당당해 보였다. - P10

등을 보이며 달려가는 건 막 수비수로 들어온 선수였다. 몸집은 크지 않지만, 끈질긴 커트와 선구안으로 높은 타율을 자랑하며 올 시즌 팀의 원동력으로 활약했다. 다만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지휘하는 감독에게 반발한 탓에 주전에서 제외될 때가 많았다. - P10

관객 모두가 숨을 삼키는 짧은 침묵 후, 중견수가 쳐든 왼손 글러브에 흰색 공이 보였다. 관객석에서 장내 분위기를 뒤집는 환성이 솟아올랐다. - P11

중고등학교의 추억은 사춘기 특유의 창피한 일화가 많아서인지 좋든 나쁘든 실체를 띠고 있다. - P11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성적은 뽐낼 수준이 못 되게 뒤처졌고 운동도 고만고만한 수준이 되어 생활이 점점 처량해졌으니 초등학교 시절이 제일 나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 P12

담임 구루메(경칭 없이 이름으로 부르는 데서 내가 그 담임 교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차리기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 두 문제를 늘 어렵게 내므로 100점 만점을 맞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 P12

게다가 구루메는 독특한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체격이 좋고,
얼굴은 배우처럼 단정하게 생겼고, 치열도 가지런했다. 그 당시구루메는 30대 후반이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보다 젊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훨씬 엄격한, 무서운 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 P13

"선생님." 사쿠마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시험지에 잘 안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요."
어디가, 하며 구루메가 사쿠마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예상대로다. 각오를 다졌다. 사쿠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커닝작전‘에 협력해주려고 한다. 내가 결행하지 않으면 어쩐단 말인가. - P14

처음 계획을 세울 때 나는 "어차피 메모를 넘길 거면 정답을적는 역할도 내가 맡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제안했다. 산수시험이라면 나도 어느정도 높은 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었고,
안자이가 정답을 적은 종이를 내게 넘기고 그걸 내가 다시 구사카베에게 넘기는 과정을 밟기보다 내가 정답을 적어서 구사카베에게 넘기는 편이 훨씬 순조로울 것 같았다. - P15

메모를 받고 나서 왼쪽에 앉은 구사카베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커닝을 실행했다는 죄의식과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섰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 P15

"가가는 이 미술관에 와봤어?" 묻는 안자이에게 나는 "여기가뭐 하는 건물인지도 몰랐어"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 P16

책가방을 멘 채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추상화가의 작품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그림, 우리 지역에 사는 작가의 작품이래." 안자이가 작게말했다.
"그래? 몰랐어."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대답했다. - P16

알아들은 척하며 대답했다. "이런 낙서 같은 그림이 대단하다고?"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두둔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 그림은 진짜로 낙서 같았다. 선을 그어놓았나 싶더니, 소용돌이 같은 모양이 나오고, 파란색과 빨간색이 사방에 어지러이 튀어 있기도했다. - P17

소묘화가 진열된 벽에서 멈춰 섰다. 엽서 세장 정도 크기의 소품인 데다, 색깔도 없이 거친 밑그림 같은 느낌이라 나는 솔직하게 "이 정도라면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 하고 감상을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안자이가 물었다. - P17

"데생력이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허물어뜨릴 수 있는 거야."
안자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 물론 나는 몰랐다. "하지만 그릴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하고 끈질기게 받아쳤다.
그러자 안자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포인트지." - P18

"어땠어? 그림은?" 나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안자이의 손을 보았다. 안자이는 두루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안자이가 세운 작전은 이랬다. "네가 직원의 주의를 끄는 사이에 내가 다른 그림과 미술관의 그림을 바꿔쳐서 가져가는 거야." - P19

전학을 온 안자이는 무뚝뚝하지는 않았지만 붙임성이 좋다고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같이 놀래?" 하고 물으면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끼었지만, 자기가 먼저 끼워달라며 찾아올 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 P20

"가가 같은 녀석한테 골을 먹을 줄이야." 쓰치다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신문사의 높은 사람이라는데 그거랑 관계있는 건지(관계있다고 나는 믿지만 언제나다른 아이들을 깔보았다. 쓰치다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 70퍼센트는 자기 자랑이고, 나머지 30퍼센트는 남을 깔보고 놀리는 말이었다. - P21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무렵 구사카베의 유일한 낙은 집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는 것으로, 홈런이나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그 모습을 곧잘 흉내 냈던 모양이었다. - P21

"야, 구사일생 구사카베, 구사코." 쓰치다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들린 듯 구사카베는 허겁지겁 멀어졌다.
"구사코?" 안자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 P21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뭐 어쩌라고."쓰치다가 화냈다. 불만 있느냐고, 너도 여자냐고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쭈뼛거리기만 했다. 설마 안자이가그렇게 강하게 자기 의견을 내세울 줄은 몰랐다. - P22

그때 일은 나도 기억난다. 구루메는 상급생의 담임이었지만,
마침 전교 조회가 있었을 때 연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구사카베에게 "넌 옷을 여자처럼 입었구나" 하고 말한 것이다. 놀리는 게 아니라 교과서를 읽는 듯한 말투였지만, 주변의 동급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안자이는 그제야 사정을 이해했다는 것처럼 말했다.
"구루메 선생님은 그런 면이 있지." - P22

"아니, 딱히 구루메 선생님을 욕하고 싶은 건 아니야. 다만,
안자이가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재촉했다.
"분홍색 옷을 입었다고 해서 여자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지." - P23

장면이 바뀐다. 집 근처 어린이 공원이다. 거기서 안자이가 들려준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대화의 세세한 내용은 다른 기억들처럼 어슴푸레하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 P23

"해골 마크가 들어간 옷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라니?"
"그걸 입고 학교에 가면, 예를 들어 구루메 선생님이나 쓰다가 이렇게 말하겠지. 해골 마크가 들어간 옷을 입고 오다니가가는 촌스럽구나."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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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미래


미래사회는 근대사회에 들어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과 기술변화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후 과학과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여 사회변동 시기는 3·4·5차 산업혁명처럼 점차 짧아지고 있다. - P267

20세기 초반의 컨베이어 벨트와 대중매체는 대중사회를 가져왔고, 20세기 후반의 반도체와 인터넷 기술은 정보사회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AI를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노동시장 구조와 문화생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 P267

20세기의 컨베이어 벨트를 기초로한 2차 산업혁명은 포디즘으로 명명되는데, 포드자동차는 조립공장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여 공정 간에 이동을 자동화하여 생산량을 급속히 늘렸다. - P268

이러한 형태는 포스트 포디즘으로 불리며 포디즘 시기와 구별되는 노동시장 구조와 노동특성을 초래하였다. 즉 자동화의효과로 인한 생산성 증대로 제조업 인구는 정체 또는 감소하였고 단순노동은 로봇이 대체하였으나, 서비스산업에는 많은 인구가 집중되었다. - P268

 4차 산업혁명은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전문직의 일들을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와 약사, 회계사, 교수 등 지식관련 직업들을 AI가 대신한다고 한다. - P268

둘째, 20세기는 소비산업이 발달하였다는 점에서 19세기까지와는 구별된다. 20세기는 대중사회라고 불리는데, 이는 대도가 발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69

 20세기에 방송국들이 생기면서사람들은 음악, 드라마, 스포츠 등을 즐기면서 산다. 그리고 도시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광고에서 선전된 상품들을 시장에서 산다. 그리고 도시의 술집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활한다. - P269

20세기 후반 자본에 의한 소비수단의 발달로 소비사회는 한층 발달하였다. 대중매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첨단매체들로 바뀌었고, 대중문화는 개성을 존중한 특정집단들의 문화들로 바뀌게 되었다. - P269

사회학자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이러한 현상을 맥도날드의 변천과정인 맥도날드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 P269

셋째, 과학 및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사회관계의 변화를 들수 있다. 사회관계의 변화는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P270

 산업혁명에 의한 산업사회로의 변화는 19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관계의 대립으로 나타났고, 이는 노동 관련 정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 형태로 발달하였다. 20세기에 들어 가장 큰 변화는 노동삼권의 제도화, 노동 관련 정당의집권, 공산 국가의 출현 등을 들 수 있다. - P270

산업 선진국의 경우 제조업 중심의 노사관계 대립과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20세기 후반 제조업이 정체하고 정보산업과 소비산업이 확장되면서 크게 바뀌었다 - P270

그러나 공산체제의 몰락으로 자본주의체제는 공고해졌으며 이는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제도로 사회관계에서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해지고 있으며, 작업과정에서는 권위주의와 억압적 인간관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 P271

 68혁명은 전쟁, 성차별, 인종차별, 권위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신사회 운동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 운동은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양차 세계대전, 유대인 대량학살, 핵전쟁, 냉전 등 과학과 기술의 발달 시기에 일어난 인간의 비극에 대한 반성이며, 지식과 이성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다. - P271

 인간이 사는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자연재해의 영향보다 사회에 의해 발생하는 재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사회가 될것이다. 사회는 복잡한 요인들의 영향으로 이루어지는데 자본의 영향이 매우 크다. - P272

 그리고 자동화에 의한 노동력의 대체로 비정규직의 노동력은 계속 증대하고 실업 현상도 증대할 것이다. 자본 만능의 자유주의에 의존한다면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대립하고 있다. - P272

 인간의 불평등은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면서 주인이 없는 땅을 사유화하면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고 농사를 짓고 사유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다.
이러한 결과물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자기 소유, 세금, 약탈 등의 형태로 배분되었다.  - P273

이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1970년대 이후 사회현상은 부정적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자본의 힘은 강화되고 노동의 힘은약해지고 있다. 금융자유화, 조세율 감소, 국제기구의 영향력 미약, 노동조합의 쇠퇴, 비정규직의 증대로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후퇴하고 있다.¹



1)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로버트 커트너 저, 박형신 역의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한울, 2020 참조 - P273

 인간은 생명체로 생존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에서ㅠ살기도 하지만 인간은 인권을 가진 존엄한 존재여야 한다. 인간의 하루는 일하고 놀고 자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일을 준비하거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은 매우 중요하다. - P274

이윤이나 권력보다 노동하는 인간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경제민주주의이고 산업민주주의이다. 노동과정에서 인간의 기본권이 정착되어야 하고, 노동조직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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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는 일찌감치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그 무렵 당신은 물론 침대차는 타지 않았다. 커다란 보따리를 몇 개씩 든 육중한 몸집의 여자들과 함께 딱딱한 의자에 앉아 흔들리며 밤새 달려갈 작정이었다. - P48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후로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복도에서 이어졌다. 얼마쯤 지나자 인상이 험악한 남자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신을 보고 예의상 겉웃음을 지었지만 웃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안 좋았다. - P48

. 당신은 방해되지 않게 꼬고 있던 다리를 슬며시 풀었다. 남자는 또다시 히죽 웃었고, 당신의 손목시계, 청바지, 신발을 한차례 훑어보더니 난데없이 달러가 있느냐고물었다. 러시아어는 아니었지만 슬라브어인 것은 틀림없었고, 당신은 모른 척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 P49

 남자는 자기 혼자 덥석 베어 물었다. 소리가 전혀 안 나게 품위 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난 후, 창을 열고 뼈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비닐봉지에서 작은 보드카 병을 꺼내더니 또다시 당신에게 권했다.
당신은 거절하고 계속 책을 읽는 척했다. - P49

그때 승무원이 제복 차림의 남자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당신은 기차표와 여권을 건네주었다. 제복을 입은 남자들은 당신의 여권을 돌려읽더니 어린애처럼 웃으며 뭐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맞은편 남자는 기차표만 건넸다.  - P49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 자기는 여권이 없다고 당신에게 말했다. 당신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남자는 문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이런 짓을 해서 여권이 없다며 칼로 사람을 찌르는 몸짓을 했다. - P50

당신은 책에 열중하는 척하며 생각했다. 설령이 남자가 끔찍한 악인이라도 내게는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좋은 행동만 할지도 모른다.  - P50

꿈속에서 텅 빈 투명한 병들이 선로 위에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열차가 지나간 흔적이 병이 된 걸까, 아니면 이제 열차가 와서 그 병들을 산산이 깨뜨리는 걸까. - P50

이제 십 분 후면 베오그라드에 도착하니 거기에서 커피를 사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실은 일초라도 빨리 밤의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말았다. - P51

 주위에도 보드카를 마시는 남자들이 보였다. 얼마쯤 지나자 목도리에 턱을 파묻은 야윈 남자가 다가와 당신의 동행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의 동행이 손목시계 세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자, 지폐를 몇 장인가 건네고 사들이더니 아무 말없이 사라졌다. 커피는 쓰기만 할 뿐 향이 없었다. - P51

당신은 친구와 유스호스텔에서 만나기로 했다고거짓말을 했다. 남자는 시선을 피했다. 그때 당신은 남자의 왼쪽 눈 옆에 있던 상처 딱지가 거의 다 벗겨져서 대롱거리는 것을 알아챘다. - P51

남자가 허둥지둥 당신의 팔을 붙들더니 기다리라고, 이제 레스토랑에 가자고했다. 당신이 이제 갈 시간이라고 말하자, 순식간에 위협적인 표정으로 변하더니 레스토랑에 꼭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집게손가락이 이상한 갈고리 형태로 변해 있었다.  - P52

남자가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젠 가야 한다고 당신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들었다. 남자는 갑자기 정치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잘 가, 고마워, 라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당신과 남자의 얼굴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했다. 당신은 역 출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 P52

다섯번째 바퀴
베이징으로

당나귀 한 마리에실을 정도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는 여자가 있다. 아이의 손을 이끌고 조급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남자가 있다. 일행인 두 남자.
허리가 굽은 노인, 영화배우처럼 이마가 반짝이는 젊은이, 길가에 지장처럼 늘어선 것은 구두닦이 소년들이다. - P53

당신은 운동화와 배낭에 붙은 상표를 감춰주는 땅거미가 고마웠다.
절대 고가품은 아니지만, 아직 1980년대인지라 자본주의국가 회사의 제품을 몸에 걸친 것만으로도 외국인임이 드러나고 만다. - P53

 자기가 탈 열차를 찾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당신뿐이 아닌 듯하다. 두리번거리며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더 있다. 눈앞에 열차가 멈춰 서 있지만,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 P54

당신은 주머니에서 투명할 정도로 얇은 차표를 꺼내본다. 열차번호가 흐릿한 잉크로인쇄되어 있다. 이게 정말 차표일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아니라면, 속았으니 다시 돈을 내고 새 차표를 살 수밖에 없다. 속는 게 가장 좋은 공부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 P54

이렇게 어두운 역은 처음이었다. 표찰처럼 보이는 부분으로 다가가보니, 단순한 얼룩이었다.
차체 아랫부분에 암호 같은 숫자가 적혀 있지만, 이건 기술자에게나 볼일이 있는 기호일 테지. - P54

역무원 제복 같은 옷을 입은 여성이 눈에 띄어 기차를 가리키며 "베이징?" 하고 물어보았다. 여자는 자기 아이를 대하듯 허물없이
‘어머, 뭐라는거야, 발음을 통 못알아듣겠네. 지금 바쁘니까 방해지 마‘라고 말하듯 당신을 떨쳐버렸다.  - P54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등을 만졌다. 뼈와 뼈 사이의묘한 틈새로 손가락을 집어넣듯이. 흠칫몸서리를 치며 돌아보니, 어제 만난 눈썹이 아름다운 학생이 서 있었다.
어제 시안 중심가에서 그 학생이 말을 건넸다. 7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야간열차 차표를 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자기가 사다줄 테니 당신은 관광이라도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기에, 큰돈을 건네고는 저녁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 P55

경찰에 얘기해봐야 비웃음만 사겠지. 우리 나라에서도 낯선 이에게 돈을 건네고 뭘 사다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는다. 왜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말았을까. 일주일간 먹고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 P55

어학 실력이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어학이 그렇게 뛰어난 게 오히려 더 수상쩍지 않은가. 착실하게 생활하려는 사람이 7개 국어나 공부할까. - P55

섬세한 손가락, 나긋나긋한 목, 부드러운 목소리, 살짝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 나쁜 짓은 못할 것 같은 얼굴이긴했다. 하지만 양의 스웨터를 빌려 입은 호랑이도 있기 마련이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인간 중에 도덕적으로 뛰어난 인간은 없다고 옛중국의 현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 P56

당신은 끝내 저녁에 배탈이 나고 말았다.
안절부절못하며 일찌감치 로비로 내려가 기다리고 있자니, 학생이 약속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낮에 봤을 때와 똑같이 해맑은 눈썹으로 야간열차 차표와 거스름돈을 당신에게 건넸다. 거스름돈은 예상보다 많았다. - P56

학생은 당신이 어느 열차를 타야 할지 모르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와준 게 틀림없다. 학생이 검은 열차를 손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열차에 올라탔다. 창밖에서 학생이 손을 흔들었다. - P56

지불한 요금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호화로운 침대차였다.
계급 없는 사회의 일등칸이었다. 당신은 새하얀 시트가 덮인 눈빛 침실로 혼자 들어가, 아래쪽 침대에 누워 문고본을 읽기 시작했다. - P56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가지나 있었다. 입구에 체격 좋은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부에 지방층이 있는 듯 보이는 건 조명 때문일까. 인사를 주고받았다.  - P57

 남자가 베이징에서는 어느 호텔에 묵을 예정이냐고 거만한 말투로 물어서 모르겠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해두었다. 당신은 누워 있다보니 출구를 가로막고 선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서 얘기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상대는 불만스러운 듯이 콧소리를 울리며 맥주를 마시겠느냐고 물었지만, 당신은 몸이 안 좋아서 마실 수 없다고 대답했다. - P57

얼마쯤 지나자 화사한 두 여성의 목소리가 뒤엉키며 가까이 다가왔다. 옅은 분홍빛 요염함이 감도는 아가씨가 문을 열고 당신에게 미소를 건넸다. 그 등뒤로 엇비슷한 여자 한 사람이 또 나타났다. - P58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이렇게 화려한 옷차림에 화장도 했다. 대체 그녀들은 뭘 하는 사람일까. 당신은 그녀들을 정의할 수 없어, 복숭아 농원에서 야간열차로 잘못 올라탄 요정이라 여기기로 했다. - P58

문가에 선 채로, 위쪽 침대에 누워 있는 복숭아요정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말할 때마다 두 사람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음소리 사이사이에 말도 섞여 있었다. - P58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남자는 문을 닫고 모습을 감췄다. 아무래도 남자는 다른 객실의 침대를예약한 듯했다. 당신은 마음이 놓였다. 머지않아 승무원이 와서 차표를 검사하고, 불을 끄고 나갔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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