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와 기차 바퀴의 마찰음에 어느새 남자의 호흡 소리가 뒤섞여 있다. 코러스 안에서 한 사람만 음정이 어긋난 것 같아 귀에 거슬린다.
넌 노래하지 마, 라고 지휘자가 말한다. 그런데도 음치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을뿐더러 그 소리만 점점 더 커진다. - P59

그러다 별안간 으윽 하는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날아갔다. 쿵 하고 나동그라진 몸의 무게 탓에 건너편 위쪽 침대가 삐걱거린다. 여자 목소리가 새나오고, 남자 목소리가 새나온다. 침대가 밑으로 꺼져버릴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괴로운 소리를 냈다. 당신은 그제야 간신히 상황을 이해했다. - P59

 조금 전 상인이 두 침대 사이를 넘나들며 두 복숭아 요정과 번갈아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갓집 아가씨의 소녀 취향으로 보였던 그 복장이 이 지역에서는 창부의 제복이란 말인가. - P59

 당신은 그제야 간신히 상황을 이해했다. 조금 전 상인이 두 침대 사이를 넘나들며 두 복숭아 요정과 번갈아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갓집 아가씨의 소녀 취향으로 보였던 그 복장이 이 지역에서는 창부의 제복이란 말인가. - P59

각자 자기의 광기를 토해내는 게 허락된 밤이라면, 내놓을 공연물이 없는 인간만 손해다. 내게는 내놓을 만한 게 없구나, 당신은 통감한다. - P60

다시 뛰어넘을 속셈이겠디 하며 당신이 숨죽인 채 각오하고 있는데, 남자가 욱 하고 양다리를 벋디디는 소리를 흘리는가 싶더니데구루루 구르며 두 침대 틈새로 곤두박질쳤다. 끔찍하게 큰 소리가났고, 당신은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가로막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눈을 떠 살펴보자니, 바닥에 떨어진 남자는 신음 소리를 흘렸고그후로 움직이지 못했다.  - P60

 허리가 부러졌을까. 당장 의사를 부르지 않으면 손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승무원에게 말할까. 경찰을 부르려나, 남자는 병원으로 실려갈까, 아니면 체포될까. - P60

얼토당토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것같은 기분이 든다. 이 나라에서는 범죄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열차가심하게 흔들려서 아무런 결단도 내릴 수 없다. - P61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이야기다. "열어 할 줄 아시나요"라고 물어서, 당신은 "조금"이라고 대답했다. 상대의 목소리는 새하얀 숨결에 삼켜져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왠지 모르게 미국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 1986년 이후 소련의 고르파초프 정권이 추친했덩 정책의 기본 노선 - P62

당신이 장갑을 낀 채 허공에 손가락으로 에이비시디라고 필기체 소문자를 쓰기 시작하자,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실은 부탁이 있어요. 이 문장을 이 그림엽서에 베껴 써주세요. 제 필적으로는 곤란해서요"라며 당신에게 크렘린 그림엽서와 종이쪽지를 건넸다. - P63

당신은 호텔로 돌아가서 용궁처럼 장식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앞에는 같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화려한 격자무늬 셔츠에화학성을 판달봉을 입은 연주자들이 <칼린카>*를 팝품으로 연주하고있었다 전기기타와 드럼 세트는 번쩍번쩍 빛나고 노랫소리는 감미로했지만, 연주자들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엄격한 나무꾼 같은 분위지가 감돌았다.


* 러시아 노래, 1860년에 만들어진 후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으며, 결혼식에서도 종종 불린다. - P63

내일부터는 드디어 긴긴 시베리아철도 여행이 시작된다. 밤에 침대로 들어갔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벽만이 사방에서 노려본다. 널찍한 침대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고 있자니, 불현듯 그 엽서가 떠오르며 만나본 적도 없는 마리라는 여성의 운명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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