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1 칸제이, 패거리 그리고 노동

사물과 달리 외적으로 감지해 낼 수 없는 체험으로서의 에류티즘

(전략)
 인간의 행위도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한다면 인간의 행동들은 곤충의 행동이 아니듯이 인간의 행동일 수도 없다. 물론 인간은 일단 동물이다. 인간은 인간의 반응들을 동물의 반응들에 대해 연구하듯 연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171

기존 관념은 인간의 짐승 같은 부분을 감추려하고 침묵시키며 우리의 의식 속에 그것의 합법적인 자리를 갖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가 겉보기에는 동물의 행위와 달라 보이지 않아도, 구분해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171

인간은 비록 일시적일 망정 어느 정도 절대적 목적성을 지닌다. 양도 불가능의어떤 절대적 목적성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을 죽이는 일도, 먹는 일도 못 하게 한다. 인간을 죽이는 일이나, 드물게는 먹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냥 지나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172

오늘날 세상에서 사물로의 환원이 가능한 것은 동물뿐이다. 인간은 동물을 아무런 제한 없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으며, 동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인간이 근본적으로는 그가 죽이는 동물과 크게 다르지않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 P172

정신은 주체적이고 내밀한 진리이며 사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그것뿐이다.
정신은 불경스러운 육체에 머물지만 신성한 것이다. 그리고 육체는 죽음이라는 통과 제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정신이 지니는 신성을 획득할수 없다. - P175

정신의 반대편에서 들끓는 성적 과잉은 우리 안에 들어앉아 있는 집요한 동물적 삶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육체의 편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성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물처럼 고찰할 수 있는 대상이다. - P173

한마디로 성은 한쪽 발이 사물이듯이 사물이다. (엄격히 말해서 손은 인간적인 것이며, 눈은 정신적 삶의 상징이지만, 성기와 다리 등은 아주 동물적인 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흥분이 극에 달하면 우리는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하지 않던가. - P173

어떤 것들은 내용에 겉모습을 부여하는, 즉 내용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물을 통해 접근하기만 하면 파악이 어렵지 않다. 반면 어떤 뚜렷한 외적인 결과들과 결부시킬 수 없는, 그래서 오직 내부로부터 인지될 뿐인 것들이 있다면, 어찌 그에 대해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¹

1) 내가 나에 대해서 명백하게 말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나를 마치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의 개별적현실로 간주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에게 개별적인 모습을 부여해 사물로 대할때만 나는 그들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 P173

현상들은 그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내적으로 관찰된 것들이다.
그것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은 사실이지만 응답자들의 고백이나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결과들에 대한 검증, 특히 사람들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결과들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검증은 체계적이긴 하지만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 P174

인간의 성행위가 그들의 방대한 조사 덕분에 이제 거의 우리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 듯하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그들이 보여 준 엄청난 노력은 성행위에 관한 현상들이 그들의 기계적 작업이 행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결코 사물이 아니었음을 반증해 준다. 보고서가 나타나기 전까지 성생활이 뚜렷한 사물의 특성을 지니려면 가장 천박한 수준으로 타락해야 했다. - P174

 지적 활동은 결국 하나의 통로이다. 그런데 그것은 원하던 결과 너머로 기대 이상의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 P174

 즉 의식은 사물의 내용들을 가능한 한 외적인 관찰을 통해 파악하려고 하지만, 외적인 관찰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때는 내적인 관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때가 있다. - P175

성행위에 대한 외적 관찰을 반대하는 나의 입장은 관례 때문만은 아니다. 성의 어떤 전염성이 관찰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 P175

그러나 어쨌든 성행위 또는 성행위를 예고하는 것, 말하자면 설령 거의 눈에 비치지 않을 정도의 약간의 동요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약간 흐트러진 옷일 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기에 금방 참여하게 한다.(육체의 아름다움은 망가진 옷매무새조차 게임을 의미하게 만든다.) 그러한 혼란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체계적인 또는 과학적인 관찰을 배제한다. - P175

 바로 그런 점에서 웃음이나 흥분(하품을 포함하여)은 사물이 아니다. 우리는 돌이나 나뭇조각에 참여할 수는 없다. - P175

레비브륄이 원시인이라고 부른 사람은 돌과 함께할 수도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의 돌은 원시인 앞에서 사물이 아니었다. 원시인이 보기에는 돌도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레비브륄은 그러한 사고방식이 오직 원시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잘못 보았다. - P176

오늘날 너무 흔해빠져서 식육(肉)의 차원으로 타락해 버린 성행위에 시의 특권을 부여하는 듯해서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사실을 말하자면 시도 오늘날에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저질을 원하며스캔들을 지향한다. 그리고 성적 현상을 놓고볼때 더욱이상한 것은육체는 사물의 비속성을 예고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로 동물성 때문에 시적이거나 신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 P176

 그리고 성적 현상을 놓고 볼 때 더욱 이상한 것은육체는 사물의 비속성을 예고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로 동물성 때문에 시적이거나 신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사용한 방법의 기이성과 폭넓음은 대상을 대상으로(객관적 고찰 대상으로) 대할 수 없음을밝히는 동시에 기실 육체가 시적이고 신적인 것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 P176

 그것은 바로 보고서들이 도표나 곡선 너머로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사물과는 대립적인) 어떤 내적인 요소이다. 그 내적 요소는 결코 빈도수, 행위방식, 나이, 직업 그리고 계급 등의 외적인 관찰만으로는 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 P176

우리는 솔직히 그 책이 성생활을 주제로 다룬 책인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사람 수, 키, 몸무게, 나이 또는 눈의 색깔 등에 관한 연구가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의미하는 것은 그러한 개념 너머에 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지의 사실들에 비본질적인 다른 사실들을 첨가시키고 있을 뿐이다.³

3) 신체인류학의 기초 자료라 해도 그것들이 의미를 가지려면 기지의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또는인간을 동물군 안에서 파악하게 할 수 있을 때이다. - P177

예를 들어, 어떤 도표를 보면 열 번째 칸에 미국 국민에게 있어서 오르가슴의 원천이라는 제목이 있으며, 자위, 성희, 혼인 관계 또는 혼외 관계, 수간,
동성연애 등등의 어휘에 숫자가 덧붙여 있는데, 만약 그러한 내용을 읽고 우리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면 그 웃음은 그것이 보여 주는 불가능에 가까운 몰상식 때문이다. - P177

 그러나 적어도 그 불행은 성행위가 역할을 하는 그러나 끄집어내는 순간 진실이 박탈되는 심층을 지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 자신도 그들이 보고하는 성적 현상이 얼마나 깊은 곳에 묻혀있는지를 모르지는 않았으면서도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방향과 취약성은 그들이 방법(관찰을 하는 대신 피관찰자의 이야기에 의존하는 방법)에 예외를 둘 때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때가 없다. - P178

관찰과 관찰 대상의 모순, 사물에 유효한 방법과 언제나 불편할 수밖에 없는 내밀성의 모순은 우리를 웃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만든다. 성인에 대한 관찰은 더한 난관이 기다린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경우만을 가지고 우선 말하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그 앞에 있으면 우리를 무장 해제시키는 한없는 해맑음은 시계의작동을 무색하게 하지 않는가. 연구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명백히 드러난다.  - P178

우리의 의식과 관계하는 동시에 사물의 객관성과 관계하는노동은 성적 충동을 억제한다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사는 집단은 패거리일 뿐


(전략)
다만 보고서에나타난 자료들을 나름대로 분석해 나가면서 내가 제기한 문제를 밝혀볼 생각이다. - P179

갤럽연구소의 방법을 생각나게 하는 그들의 보고서는 한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우리는 방대한 자료의 집적과 엄청난 노고에 대해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보고서의 자료를 낳게 한 이론적 개념은 찬사를받을 수 없다.) - P179

최초의 보고서에 나타나는 일련의 아주 흥미로운숫자는 오르가슴의 주당 빈도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이, 사회적 부류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오르가슴의 빈도수는 전체적으로 7회에 못 미치며, 7회 이상은 높은 빈도수(높은 비율)라고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유인원의 오르가슴 빈도수는 하루에 한 번이라고 한다.  - P179

그러나 정상적인 유인원의 오르가슴 빈도수는 하루에 한 번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주장하기를 정상적인 남자의 빈도수도, 만약 종교적 제약만 없다면, 다자란 원숭이의 그것에 못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 P179

신교도들 중 독실한 사람들은 7.4퍼센트,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11.7퍼센트가 주당 7차례 또는 그 이상의 빈도수를 나타냈다.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독실한 사람들은 8.1퍼센트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20.5퍼센트가 주당 7차례 이상이었다. - P180

왜냐하면 종교적 의무감은 명백히 성행위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평하고 지칠 줄 모르는 관찰자들 앞에 있다. 그들은 그들의 원칙에 알맞은 자료를 작성해 내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 - P180

노동은 노동자를 하나의 수단이 되게 한다. 인간에게만 있는인간의 고유한 노동은 동물성과 유일하고도 분명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숫자와 통계를 중시하는 이 보고서는 전적으로 내적인 그래서 사물화가 불가능한 성은 배제한 채 사물화가 가능한 노동과 노동자의 세계만을 떼어 내 관찰하고 있다. - P180

처음에 말했듯이 인간과 사물의 근본적 대립은 동물과 사물의 동일시를 내포하지 않고는 언급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편에 외부 세계, 다시 말해 동물을 포함한 사물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 내적인 인간의 세계, 다시 말해 (주체적) 정신의 세계가 있다. - P181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 사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동물은 사물일 수 없다. 다만 인간이 그렇게 취급할 뿐이다. 동물들은 노동의 대상(사육) 또는 노동의 도구 (짐바리, 또는 수레용)로서의 사물이다. 동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유용한 활용의 범주에 들어가면서 사물로 환원된다. - P181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채 때를 기다려 머리를 쳐드는 집요한 인간의 동물성, 즉 성적 충동도 우리에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하고 살 수 있을 때에만 사물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동물성을 부정해 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 P181

인간이 소나 돼지의 노동력, 도구 또는 사물로 환원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안에서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성의 내부에는 (동물성의반대 의미에서) 동물로도 사물로도 환원시킬 수 없는 요소가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결코 종속될수도 제거될 수도 없다. - P182

 인간의 시간 안에서 노동하는 반 동물적인 인간성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물화시키는부분이며, 반면 동물성은 우리 안에서 자신을 위한 주체적 실존의 가치를 지켜 내는 부분이다.
이 말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동물성‘, 즉 성적 충일은 우리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사물이 되지 않게 하는 어떤 것이다. - P182

성적 충일과의 대립으로서의 노동,
사물에 대한 의식의 조건

킨제이의 보고서 중 숫자로 나타난 자료들은 이러한 나의 일차적 원칙에 아주 정확하게 답하고 있다. 노동은 하지 않은 채 온통 ‘인간성‘
부정의 행위만을 일삼는 패거리만이 49.4퍼센트라는 높은 빈도수를 보여 준다. - P182

세부적인 지표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체적으로 수치는 인간화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인간화된 만큼 성적 충일은 줄어든다. 상세하게 옮겨보면, 인부들은 15.4퍼센트라는 높은 빈도수를 나타낸 반면, 노동공은16.1퍼센트, 숙련공은 12.1퍼센트, 하급 ‘화이트 칼라‘는 10.7퍼센트, 고급 화이트 칼라는 8.9퍼센트의 빈도수를 나타냈다. - P183

고급 ‘화이트 칼라‘로부터 지도 계급에 해당하는 중역으로 넘어가면 수치는 세 단위 이상 건너뛰어 12.4퍼센트에 이른다. 이 수치들이 얻어진 조건을 생각하면 소수점 이하는 무시할 수 있는 수치이다. 인부로부터 고급 ‘화이트칼라‘에 이르기까지의 감소는 아주 일정한 반면, 고급 화이트칼라와 중역 간에는 오히려3.5퍼센트 증가하는데 이 수치는 실질적으로는 약 30퍼센트가 증가한것이다. - P183

그러므로 그 계급은 명백히 노동 계급보다는 더한 성적 충동 속에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계급은 다른 계급보다 인간화되었지만 그렇게 보상받는 것이다. - P183

지배 계급의 예외는 더욱 명백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동물성의 신성한 측면과 인간성의 비굴한 측면을 지적하면서도 나는 한 가지 사실은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83

 그러한 현상은 어떤 사회 계층에서나 확인할 수 있지만 특히 지배 계급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하다. 사실 사물로의 환원은 상대적 의미밖에 없다. 사물로 존재한다는것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물건, 동물, 사람은 사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때의 그것들은 어떤 한 사람의 사물이다. - P184

원칙적으로 마지막에 남는 그 몫은 인간성을 사물로의 환원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사람, 자기 안의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도 계급에게로 돌아간다.
대개 최종 단계의 지도 계급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성 에너지가 측량 가능하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사실 그 계급은 그것을 원칙적으로 패거리에 필적할 만큼 활용했다.⁵ - P184

비교적 지수는 낮지만그래도 그것은 상류층의 정력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 P184

 사실을 말하자면 성생활에 소비된 에너지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는 사정 횟수만으로는 부족하다. 성적 유회가 요구하는 에너지의 소모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번의 오르가슴에 약10초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는 유인원의 에너지 소모량과 성희를 즐기면서 수시간을 보내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에너지 소모량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성희를 지속시키는 기법은 계급 간에 불균등하게 나타난다. - P185

내가 상류 사회 남자들의 성적 유희를 비호하려는 의도로 이러는것은 아니다. 나의 고찰은 다만 위에 설명된 자료의 전체적인 의미를파악하고, 내적 생명의 충동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기 위한 고찰일뿐이다. - P185

그런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성적 충일은 우리를 의식에서 멀어지게한다. 그것은 우리의 분별력을 약화시킨다. - P185

 인간이 노동과 의식으로 정의되는 한 인간은 성적 충동을 조절해야 하며 때로는 그것을 무시하기도하고 저주하기도 해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외면은 인간을 대상에 대한 의식으로부터는 아니더라도 자아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등 돌리게 만들었다. - P186

 동시에 그러한 외면은 세상에 대한 외면, 자아에 대한 무지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만약 노동 덕분에 인간의 의식이 깨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아직도 동물의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을것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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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 순사

맹순사가 동양의 대현이라는 맹자님과 어떤 혈통의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또 우리나라 명재상 맹고불이 맹 정승과 제몇 대손이나 되는지, 혹은 아무것도 안 되는지, 그런 것은 상고하여보지 못하였다. - P305

맹순사의 아낙 서분이도 미상불 언변 좋고, 똑똑하고(즉 객관적으로 바꾸어 치면 건방지고) 하기로는 좀처럼 남에게 질 생각이 없으나, 오직 옷 호사 한 가지만은 어엿이 고개를들 자신이 와락 없었다. - P306

"넉살두 좋으이 날 같으믄 입이 꽝우리 구멍이래두 헐 말 없겠네. 바보, 빈충이, 천치."
"못난 남편 싫여?"
"졸 게 어딨어?"
"그럼, 갈릴까?" - P307

"허허허허,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고나, 이런 노래 들어보지 못했어?"
"정신 차려요, 괘-니.인전 돈두 몇 푼 남은거 없구, 무얼 가지구 살림은 해나가랄 텐구? 낼모레믄 쌀, 남구 들여와야 해요." - P307

그러나 서분이가 순사의 아낙으로 옷 호사에 자신이 없다는것이 결단코 서분이 스스로의 무능한 소치거나 과실이거나 한것은 아니었다. 그 소위 칼자루 십 년에 실상은 팔 년이었다-팔 년 순사에, 집안 여편네 뉴똥치마 한 벌도 해주지 못할 지경으로, 남편 맹순사란 위인이 지지리 주변머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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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는 무엇보다도 일상의 폭력을 저지할 필요에서 생겨난 듯하다.
그렇다면 폭력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 P62

우리는 처음부터 곤경에 빠지는데, 그것은 근본적인 것으로 보이는 금기들이 아주 대립적인 두 영역에 동시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죽음과번식은 사실 긍정과 부정만큼이나 대립적인 것들이다.
원칙적으로 죽음과 출생은 정반대의 것들이면서도 그 대립성은 제거가 가능하다. - P62

 생명이란 다른 생명의 부패의 산물이다. 생명이란 결코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은 빈자리를남기며, 죽음에 따르는 부패는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물질을 순환시킨다. - P63

 죽음에의 저항은 인간에게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존재의 소멸과 관계 있을뿐 아니라 생명을 온통 삭게 만드는 죽은 육체의 부패와 관계한다. 사실 이상적 문명 사회가 보여 주는 죽음 앞에서의 장엄한 의식과 그것에 대한 경외심은 엄청난 공포의 다른 표현이다. - P63

살아남은 사람들은 막연히나마 죽은 사람의 부패에서 자신들을 향한 죽은 자의 원한과 증오를 보며, 장례식은 바로 그것을 진정시킬 목적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 P63

육탈된 하얀 뼈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더 이상 끈적거림의 위협에 내던지지 않는다. 부패(왕성한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와 죽음의 근본적인관계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 P63

 부패 (왕성한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와 죽음의 근본적인관계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초기 인간들의 반응을 알던 사람들에게는 그 관계가 얼마나 필연적인 것으로 보였던지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땅과 물에서 자연 발생하는 어떤 생물들은 죽음과 부패가 생성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 P63

기실 시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 시체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각인된다. 시체,
진중한 태도로 우리를 위협하면서 길게 누워 있는 그 시체에게서는 더 이상 그가 살아 있을 때 우리에게 주던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 P64

예컨대 사람의 시체라고 해서 그것을 죽은 동물, 사냥감과 다른 어떤 것으로 볼 이유는없다. 부패가 심해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물러서는 행위도 필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억지 짓들이많다. 시체 앞에서의 공포감은 우리가 배설해내는 배설물 앞에서 느끼는 느낌과 아주 가깝다. - P65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기의 외설성과 번식의 기능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는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라는 통렬한 말을 한 바 있다. 시체나 월경의 피와 달리 똥은 사회법에 저촉되는 금기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오물, 부패, 그리고 성은 관계가 아주 밀접하며, 그것들은 서로 오밀조밀 한곳에 있음도 사실이다. - P65

살아 있던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되면 그것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이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구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다. - P65

우리는 배설물의 악취가 우리를 역겹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것을 애초에는 불쾌하게 취급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거기에서 악취를 느낄까?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은채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혐오 감정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애쓴 과거가 있다. 아이들이 우리의 반응을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다. - P66

생명을 낭비하고 싶은 충동과 그러한 충동에 대한 두려움 - P66

예컨대 그 공허의 문을 여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부재를 시체 안에 끌어들이며 그부재와 관계하는 것은 부패이다. 나는 부패(직접적인 체험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이 아닌 상상력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부패의 체험)에 대한 나의 혐오감과 외설에 대해 느끼는 나의 감정을 바교해보고 싶다. - P66

죽음의 화려한 광경 앞에서 에로티즘의 의미를 발견하고 거기에 생명의 약속이 있음을 알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죽음은 곧 세상의 청춘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죽음만이 세상을 샘솟게 하고, 그것이 없이는 생명도 그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려고 한다. - P67

미생물과 비교해서 포유동물은 엄청난 에너지를집어삼키는 괴물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들이 다른 가능성의 전개를 돕는다면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끔찍한 순환도를 끝까지 한번 추적해 그려 볼 수 있다.  - P68

이러한 먹이사슬의 시각에서 보면, 생명을 낳는 과정이 비싼 대가를 치를수록 새로운 생명체의 생산이 많은 희생을 요구할수록 작업은 완벽한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간단히 생산하려고 하는 욕구는 초라한 인간성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사회 속에서 보자면 그것은 자본주의자, 다시 말해 ‘회사‘ 경영자의 옹졸한 원리이다. - P68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생명이란 극도의 괴로움도무릅쓰는 낭비, 견딜 수 없는 극도의 괴로움을 무릅쓴 극한 상황에서의 낭비를 간절히 욕구한다. 다른 말들은 윤리학자의 객소리들일 뿐이다. - P68

얼마나 끔찍한지 종종 까닭 모를 조용한 공포가 우리에게 불가능의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그 조건과 관계 깊은 역겨움이 없다면 우리는 만족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 P69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거부‘의 몸짓

결국 인간의 반항은 충동을 가속시킬 뿐이다. 즉 고뇌는 충동을 가속시키는 동시에 더욱 분명히 느끼게 할 뿐이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거부의 태도를 취한다. - P69

부패와 성행위는 다양한 양상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에 보여 주는 유사성 때문에 결국 우리들에게 똑같이 반감과 구역질을 자극한다. 죽음과 관련된 금기와번식을 겨냥한 금기 사이에 아주 오랜 시간적 개입이 있다 해도 금기들은 둘을 향해 같은 반응을 일게 하며 그만큼 금기들은 밀접하다고 하겠다.(가장 완벽한 금기조차도 사실은 더듬거림 속에 대략 만들어졌다.) - P70

인간이 과연 노력했을까? 사실 인간은 폭력에 (자연의 극단적인 폭력예) 아니라는 분명한 대답을 한 적이 없다. 오직 기력이 다하면 자연의 충동에 눈을 감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활동정지 상태의 최후가아니라 잠깐 동안의 휴지였을 뿐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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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소설, 그러나 읽을 시도도 해 본 적 없던 소설.
그래서 읽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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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칠던 : 아메리칸 예술 공예품 상사의 주인
다고 노부스케 : 태평양연안연방 주재 일본 무역대표부 소속 고위관료
프랭크 프링크 : 유태인 공장노동자
에드 매카시 : 프랭크 프링크의 예전 직장 동료
바이네스 : 스웨덴인 기업가
줄리아나 프링크 : 프랭크 프링크의 전처
조 치나델라 : 트럭 운전수로 일하면서 줄리아나에게 접근하는 사내
야타베 신지로 : 늙고 은퇴한 일본인 사업가
후고 라이스 : 샌프란시스코 주재 독일 영사
크로이츠 폼 메레 : 샌프란시스코 주재 태평양연안연방 보안국 지부장
호손 아벤젠 : 소설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의 저자 - P9

칠던이 조바심을 내며 우편물을 살펴본 지 일주일째다.
וח llll ג → - P11

그는 벽에 걸린 자판기에서 5센트짜리 인스턴트 차를 한 잔뽑아들고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예술 공예품 상사‘의 현관은 금세 개점 준비를 마쳤다. - P11

 그때 전화가 울렸다. 칠던은 돌아서서 전화를 받았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칠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고미입니다. 남북전쟁 모병포스터는 아직입니까? 기억나시죠? 지난 주 안으로 된다고 했잖습니까."
신경질적이고 사무적인 목소리에 간신히 예의와 격식을 벗어나지 않는 어투였다. - P12

"대신 다른 거라도 구해야겠군. 뭐가 좋겠소, 칠단 씨?"
다고미는 일부러 이름을 틀리게 발음했다. 그 태도에 실린모욕을 느끼고 칠던은 귀까지 화끈 달아올랐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신분이 주는 끔찍한 치욕, 로버트칠던의 열망과 두려움, 고통의 감정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그를 집어삼키고 말문을 막아버렸다. - P13

그는 서른여덟 살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나날, 그리 오래되지 않은 지난 시절을 기억할 수 있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만국박람회, 세상은 그때가 더 좋았다.
"괜찮은 물건 여러 가지를 일하시는 곳으로 가지가 보여드릴까요?"
칠던은 웅얼거리듯 말했다. - P13

힘겹게 서 있던 칠던은 누군가 두어 명쯤 가게에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다. 젊은 남자와 여자, 둘다 멋지게 생기고 잘 차려 입었다. 완벽하군. 칠던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전문가답고도 자연스러운 자세로 다가갔다. - P14

 그 모습을 보니 고마웠다. 물건 볼 줄 아는군.
"정말 멋진 물건들이군요."
젊은 사내가 말했다.
칠던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두 사람은 인간적인 유대감만이 아니라 예술품들을 보며 서로의 취향과 만족을 함께 즐기는 데서 오는 따뜻함이 담긴 눈길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 P14

칠던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이 물건이 쓰레기 같은 기념품도 아니고, ‘미국 태평양연안연방 마린카운티뮤어우즈 국립공원‘이라는 글씨가 박힌 삼나무 명판도 아니고,
장난스러운 표지판도, 어린여자애들이나 끼는 반지나 금문교사진이 들어간 엽서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 P15

칠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는 현대미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지난 세월만이 그의 가게 같은 곳에 남아 있을 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오신 지 오래되셨나요?"
칠던이 물었다.
"전 여기 무기한 주재원으로 왔습니다."
사내가 말했다. - P15

사내의 얼굴에 자부심이 흘렀다. 군인이 아니다. 탐욕스러운무식쟁이 얼굴로 껌을 씹어대고, 상점가를 어슬렁거리며 음란한 공연이나 외설스러운 영화, 사격 연습장, 중년이 다 된 금발여인들이 주름진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꼬집은 채 추파를 던지는 사진이나 내건 싸구려 나이트클럽을 넋 놓고 바라보는 촌스러운 징집사병도 아니다. - P16

어쩌면 기껏해야 태평양연안 무역대표부 소속 고위관료인 고미 씨보다 더 고상하고 학식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다고는 늙은이었고, 전시내각 시절의 사고방식이 몸에 익은 사람이었다.
"미국 전통 민속 예술품을 구해서 선물하시려는 건가요?" - P16

"가방 몇 개에 물건들을 챙겨 가서 집에 어울리는 것들로 제안해드릴 수 있습니다. 한가하실 때 말이죠. 이런 거야말로 저희 전문 분야죠."
칠던은 들뜬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내리깔았다. 잘하면 수천 달러짜리 거래가 될 수도 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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