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는 무엇보다도 일상의 폭력을 저지할 필요에서 생겨난 듯하다.
그렇다면 폭력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 P62

우리는 처음부터 곤경에 빠지는데, 그것은 근본적인 것으로 보이는 금기들이 아주 대립적인 두 영역에 동시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죽음과번식은 사실 긍정과 부정만큼이나 대립적인 것들이다.
원칙적으로 죽음과 출생은 정반대의 것들이면서도 그 대립성은 제거가 가능하다. - P62

 생명이란 다른 생명의 부패의 산물이다. 생명이란 결코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은 빈자리를남기며, 죽음에 따르는 부패는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물질을 순환시킨다. - P63

 죽음에의 저항은 인간에게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존재의 소멸과 관계 있을뿐 아니라 생명을 온통 삭게 만드는 죽은 육체의 부패와 관계한다. 사실 이상적 문명 사회가 보여 주는 죽음 앞에서의 장엄한 의식과 그것에 대한 경외심은 엄청난 공포의 다른 표현이다. - P63

살아남은 사람들은 막연히나마 죽은 사람의 부패에서 자신들을 향한 죽은 자의 원한과 증오를 보며, 장례식은 바로 그것을 진정시킬 목적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 P63

육탈된 하얀 뼈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더 이상 끈적거림의 위협에 내던지지 않는다. 부패(왕성한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와 죽음의 근본적인관계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 P63

 부패 (왕성한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와 죽음의 근본적인관계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초기 인간들의 반응을 알던 사람들에게는 그 관계가 얼마나 필연적인 것으로 보였던지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땅과 물에서 자연 발생하는 어떤 생물들은 죽음과 부패가 생성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 P63

기실 시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 시체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각인된다. 시체,
진중한 태도로 우리를 위협하면서 길게 누워 있는 그 시체에게서는 더 이상 그가 살아 있을 때 우리에게 주던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 P64

예컨대 사람의 시체라고 해서 그것을 죽은 동물, 사냥감과 다른 어떤 것으로 볼 이유는없다. 부패가 심해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물러서는 행위도 필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억지 짓들이많다. 시체 앞에서의 공포감은 우리가 배설해내는 배설물 앞에서 느끼는 느낌과 아주 가깝다. - P65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기의 외설성과 번식의 기능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는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라는 통렬한 말을 한 바 있다. 시체나 월경의 피와 달리 똥은 사회법에 저촉되는 금기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오물, 부패, 그리고 성은 관계가 아주 밀접하며, 그것들은 서로 오밀조밀 한곳에 있음도 사실이다. - P65

살아 있던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되면 그것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이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구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다. - P65

우리는 배설물의 악취가 우리를 역겹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것을 애초에는 불쾌하게 취급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거기에서 악취를 느낄까?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은채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혐오 감정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애쓴 과거가 있다. 아이들이 우리의 반응을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다. - P66

생명을 낭비하고 싶은 충동과 그러한 충동에 대한 두려움 - P66

예컨대 그 공허의 문을 여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부재를 시체 안에 끌어들이며 그부재와 관계하는 것은 부패이다. 나는 부패(직접적인 체험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이 아닌 상상력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부패의 체험)에 대한 나의 혐오감과 외설에 대해 느끼는 나의 감정을 바교해보고 싶다. - P66

죽음의 화려한 광경 앞에서 에로티즘의 의미를 발견하고 거기에 생명의 약속이 있음을 알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죽음은 곧 세상의 청춘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죽음만이 세상을 샘솟게 하고, 그것이 없이는 생명도 그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려고 한다. - P67

미생물과 비교해서 포유동물은 엄청난 에너지를집어삼키는 괴물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들이 다른 가능성의 전개를 돕는다면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끔찍한 순환도를 끝까지 한번 추적해 그려 볼 수 있다.  - P68

이러한 먹이사슬의 시각에서 보면, 생명을 낳는 과정이 비싼 대가를 치를수록 새로운 생명체의 생산이 많은 희생을 요구할수록 작업은 완벽한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간단히 생산하려고 하는 욕구는 초라한 인간성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사회 속에서 보자면 그것은 자본주의자, 다시 말해 ‘회사‘ 경영자의 옹졸한 원리이다. - P68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생명이란 극도의 괴로움도무릅쓰는 낭비, 견딜 수 없는 극도의 괴로움을 무릅쓴 극한 상황에서의 낭비를 간절히 욕구한다. 다른 말들은 윤리학자의 객소리들일 뿐이다. - P68

얼마나 끔찍한지 종종 까닭 모를 조용한 공포가 우리에게 불가능의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그 조건과 관계 깊은 역겨움이 없다면 우리는 만족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 P69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거부‘의 몸짓

결국 인간의 반항은 충동을 가속시킬 뿐이다. 즉 고뇌는 충동을 가속시키는 동시에 더욱 분명히 느끼게 할 뿐이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거부의 태도를 취한다. - P69

부패와 성행위는 다양한 양상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에 보여 주는 유사성 때문에 결국 우리들에게 똑같이 반감과 구역질을 자극한다. 죽음과 관련된 금기와번식을 겨냥한 금기 사이에 아주 오랜 시간적 개입이 있다 해도 금기들은 둘을 향해 같은 반응을 일게 하며 그만큼 금기들은 밀접하다고 하겠다.(가장 완벽한 금기조차도 사실은 더듬거림 속에 대략 만들어졌다.) - P70

인간이 과연 노력했을까? 사실 인간은 폭력에 (자연의 극단적인 폭력예) 아니라는 분명한 대답을 한 적이 없다. 오직 기력이 다하면 자연의 충동에 눈을 감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활동정지 상태의 최후가아니라 잠깐 동안의 휴지였을 뿐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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