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IT 팁!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의 가상세계를 뜻해, 무엇을 뛰어넘거나 초월한다는 뜻의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단어야.

소피 상식 팁!
유토피아(utopia)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이름을 딴 단어.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란 뜻으로 천국같이 살기 좋은 최상의 사회를 가리켜,
반대말이 암울한 미래를 가리키는 ‘디스토피아(distopia)‘야. - P15

 이제 현실 세계는 물론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도 AI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어찌 보면 ‘AI가 없이 이 세계가 잘 작동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AI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 P15

준이 사는 이 도시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범죄 도시라 불리던 곳이었다. 60여 년 전에는 자동차 산업이 매우 발달하여 부유한 도시였지만, AI의 등장과 발달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AI가 사람들을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도시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 P15

소피 상식 팁!

기본소득 토마스 모어 소설 『유토피아」에 처음 나온 말이야, 재산, 일에상관없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을 가리켜. - P16

지니어스 IT 팁!

퍼셉트론(perceptron): 1957년 뇌의기능을 모델 삼아 만든 인류 최초의 인공 신경망으로 미국 코넬 항공 연구소의 프랑크 로젠블라트가 고안했어.

대화형 AI: 스마트폰의 시리, 빅스비처럼 음성을 인식해 인간과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 챗GPT도 대규모 언어모델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 시스템이야

강한 인공지능: 영화 「아이언맨」 속자비스와 같이 인간의 지능 수준인 AI를 가리켜. 반대로 호텔 예약을 해주거나 영화를 추천해주는 등 어떤 특정한기능만 하는 AI를 약한 인공지능이라부르지. - P17

레논 박사가 만들고 싶은 어반시티는 자신의 최종 연구 성과가 될 강한인공지능이 있는 스마트 AI 도시였다. 하지만 투자자와 연구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AI가 너무 똑똑해도 문제라고. 그저 사람 대신 특정한 기능만 수행해줘도 충분한데 말이지..."
"강한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도시라 말이야 좋긴 한데, 강한 인공지능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 피해는 어쩌라는 거야? 젊은 풋내기 박사 녀석이 책임진다고 해결될 문제인 건가?" - P17

자이로와 레논,
둘의 어긋나버린 우정

많은 사람은 어반시티의 부활을 알린 사람으로 레논 박사를 꼽았다. 하지만 순전히 레논 박사의 역량만으로 지금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레논 박사의 연구에 자이로의 자본력이 모여 이루게 된 열매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P19

사실 레논 박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존의 AI 로봇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AI 로봇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의 AI 로봇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말하며 행동했다. 감정이 있었고,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레논 박사는 자이로의 탐욕이 어반시티에 미치게 되었을 때 이 AI 로봇들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AI 히어로들이었다. - P22

명탐정과 소녀

반대편 거리에서 걸어오고 있는 준을 발견한 루시는 손을 흔들었다. 준은 평소 루시를 자신의 동생 같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다른 AI 히어로들과는 달리 유독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박사님, 루시는 왜 저런 모습인가요?"
(중략)
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뇨, 박사님. 루시의 모습은 엄청 주의를 끈다고요? - P27

루시는 언어에 특화된 AI 로봇이다. 루시를 처음본 사람들은 루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루시와 몇번 대화를 해보면 로봇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중략).
"준,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구나.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어!!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탐정 활동 중에는 바깥에서 이목을 끌 필요 없잖아. 나이에 어울리는말을 쓰라고." - P28

 반짝이는 유리 상자 안에는 동물의 깃털이 들어있었다.
"루시, 제법인데? 이걸 어디서 찾았어?"
"희망로 주변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의 주소를 조회해 봤어. 특히 집 주변에서 이 깃털을 주로 발견할 수 있었어. 어때? 내 조사 실력이?"
"좋아, 이 깃털을 조사하면 좀 더 사건이 명확해질 거야." - P30

루시가 생각에 잠긴 준에게 말했다.
"일단 범인을 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
"동감이야. 일단 희망로 주변 까마귀들을 잡아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걸 막아야겠어." - P31

"박사님! 빠르고 날쌘 까마귀를 사람이 잡는 것은 어려워요! 사람이 일일이 까마귀를 잡는 것이 어렵다면 AI 로봇을 활용해야만 해요..."
준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AI 로봇의 카메라 센서에 비친 영상에서 ‘까마귀‘가 인식되면 로봇이까마귀를 잡게 하고, ‘까마귀가 아닌 새‘들은 잡지 않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 P31

"그러니 AI 로봇을 포획 작전에 쓰기 전에 학습을 시켜야만 한단다. AI히어로의 도움을 빌리도록 하려무나! 히어로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학습시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거야.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알고리즘에는 K-NN이 있지."
"k-NN 알고리즘이라고요?"
"그래. 특정 대상과 그 대상이 아닌 것을 간단하게 구별해야 할 때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단다."
"그렇군요. 그러면 K-NN을 와이드에게 부탁하면 되겠어요!" - P32

멋진 광경의 까마귀 포획 작전

AI에 달린 카메라가 야생 동물의 눈동자마냥 회전하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떼의 새 무리와 AI 로봇 무리가 서로 마주쳤다. 날아가는새 무리는 V자를 그리며 이동하는 기러기 떼였다. ‘과연 AI 로봇은 어떻게 행동할까?‘ 준은 이 장면을 숨죽이며 쳐다보았다.
AI 로봇은 쏜살같이 기러기 떼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곧 멈추고 선회하여 다른 방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P33

이윽고, 한 무리의 AI 로봇이 까마귀를 그물에 포획한 채 이동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 네가 재빠르게 만든 알고리즘 덕분에 주변의 모든 까마귀만을 포획할 수 있었어. 물론 와이드도 실력 발휘를 했지! 그나저나 불쌍한 까마귀들 본의 아니게 악당에게 이용당해 버렸네. 잘 치료해주고 다시 풀어주자." - P33

‘까마귀… 까마귀 왜 하필 까마귀일까? 다른 새들을 이용하면 더 많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었을 텐데. 가만, 까마귀의 습성이 뭐였더라?‘ - P34

친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

그러면 K-NN 알고리즘은 무엇일까요?
K-NN 알고리즘은 특정 사물을 분류해야 할 때, 그리고 그 대상이 맞는지 아닌지 구별해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합니다. 준의 문제처럼 까마귀인가 까마귀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단순한 문제에도 K-NN이 적합하지요.
필요한 준비물은 데이터인 새들의 사진입니다. 새로운 사진이 입력됐을 때, 학습한 까마귀와 비슷한 사진일수록 학습한 까마귀 사진과 가까운 위치에 놓이게 돼요.  - P36

분류하려는 데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K개의 데이터를 찾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데이터를 판별해야 하므로, K(=이웃 개수)는 홀수로 정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만약 K(=이웃 개수)를 짝수로 설정한다면 동점이 나왔을 경우, 판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점일 경우, 임의의 값을 따르거나 추가로가장 가까운 값을 따르도록 설정해주어야 해요. 그래서 보통 K(=이웃 개수)는 홀수로 정합니다. - P36

K-NN은 우리말로 ‘최근접 이웃‘
이라고 해. ‘가장 가까운 이웃‘이란 뜻이지. 실제 알고리즘도 가장 가까운 이웃에 위치하는 대상을 같은 것으로 판단해주는 일을 해. - P36

아니,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준! 바토우 형사네!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잠깐 경찰국으로 와줄 수 있겠어?"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준은 황급히 경찰국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1분쯤 지나자 자율주행 택시가 준의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 P45

 7구역은 준의 집 외에도 어반시티의 경찰국과 AI 로봇 회사인 자이로스콥이 있는 곳인데 그곳의 AI 로봇들이 길거리의 시민들과 대치 중이었다. 한편으로 몇몇 AI 로봇들은 경찰국의 정문 앞으로 서서히 모여들고 있었다. - P46

말도 안 돼!
AI 로봇들이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니

 반가움도 잠시, 바토우 형사는 사태의 시급함 때문인지 심각한 눈빛을 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준, 지금 뭔가 문제가 생겼어. 7구역의 AI 로봇들이 사람들을 안전상의이유로 통제하기 시작했어. 오늘 20주년 축하 행사 때 풀어놓은 경찰국 AI로봇들도 마찬가지야. 경찰국의 명령을 듣지 않고, 계속 안전을 이유로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있어. 통제에 따르지 않는▮시민들은 AI 로봇들과 대치 중인데... 뭔가 이상해."
준은 바토우 형사에게 다급히 물었다. - P46

"안 그래도 자이로스콥 측에 연락을 취해보고 있긴 한데 AI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로봇 3원칙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 P47

소피 상식 팁!
로봇 3원칙: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가리켜. 1. 로봇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할수 없고, 2.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되 1원칙을 위배할 수 없으며, 3. 로봇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되, 1, 2 원칙을 위배할 수 없어.

엄마와 해본 스무고개로도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아까 호출해 놓아 곁에서 서성이는 소피에게 물어보았다.
"소피, 스무고개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 알아?"
"아키네이터가 있지. https://kr.akinator.com/ 주소로 들어가 봐."
소피가 알려준 대로 접속하니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왔다. - P48

AI 히어로들 중 박사로 불리는 지니어스가 대답했다. "내 추론에 따르면 스무고개와 비슷한 원리로 범인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92%야."
대답을 들은 준의 눈망울이 더 또렷해지고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에지니어스는 준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였다.
"그럼 스무고개와 관련한 공부를 더 해볼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 P50

"맞아, 이렇게 데이터의 상태나 흐름을 눈에 보이게 그래프나 그림으로나타내면 데이터에 숨겨져 있던 의미나 보이지 않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어! AI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 이때, 사용하는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 또는 훈련 데이터라고 하지. 학습이 끝나면 학습이 잘 죄었는지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하는 데이터를 시험 데이터라고 해!" - P52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시험 데이터로 평가해야 진짜 AI 성능을잘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 AI는 사람이 알려준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해. 가르쳐 주지 않은 데이터를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분류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거든. 여기 학습 데이터가 있어! 이번에는 보기 좋게 표의 형태로 보여줄게!" - P52

준은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학습시킨 AI가 무엇을 예측할지 잘 알 수있을 뿐 아니라, 왜 그렇게 예측했는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 P53

범인을 찾으려면
용의자 후보부터 추려봐야 해

준은 범인을 찾기 위해 범인 후보군 목록을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범인 후보군 목록을 작성하고 단계마다 특성이나 질문을 ‘기준‘으로 삼아 통과해 나간다면 최종적으로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감이 붙은 준이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했다. 평소 같으면 레논 박사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레논 박사님도행방불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 P54

"나도 AI 로봇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준! 내 생각엔 누군가 AI 로봇들에게 잘못된 명령을 의도적으로 내린것 같아! 로봇 3원칙을 일부러 깨서 행동하도록 말이야...."
"제가 루카스 박사님을 이곳에 모셔온 이유는 저 AI 로봇들에게 잘못된 명령을 의도적으로 내린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예요. 박사님! 범인 후보군의 목록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세요. 그중에서 단계별로 기준을 잘 설정해서 분류해나간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P55

루카스 박사의 질문에 준은 턱을 괴며 생각했다.
‘에드몬드 경찰국장... 어반시티의 치안을 담당하는 총 책임자. 과거에는도시와 시민들을 위하는 인물이었으나 경찰국장이 된 후로, 자이로스콥과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었지. 자이로스콥의 회장인 자이로는 자신의 탐욕을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벌일 수 있는 인물이지.....‘
"음, 에드몬드 경찰국장과 자이로 회장이요" - P56

제대로 된 질문이 우리에기 범인을 알려줄 거야

지니어스가 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지금쯤이면 어떤 질문을할지 고민할 차례인데 혹시 그 생각이 맞니?"
"맞아, 지니어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범인을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영영 못 찾거나 엉뚱한 누군가를 지목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 P57

"여기 각각의 후보들이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 번따져볼까요? 먼저 일곱의 AI 히어로들은 AI 로봇을 제어하고 조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레논 박사님께서는 제게 AI 히어로들을 작동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죠. 저는 AI 히어로들에게 자이로스콥의 AI로봇들을 제어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AI 히어로들은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P60

게슴츠레한 눈빛을 한 에드몬드 국장이 준을 쳐다보며 말했지만, 준은 별 개의치 않은 눈치였다.
"저 또한 자이로스콥의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이나 힘을 가지고 있지않습니다. 있었다면 진작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죠. 바토우 형사님과 에드몬드 경찰 국장님 또한 저와 마찬가지이실 거고요. 안 그러신가요, 국장님?" - P61

"두 번째 질문은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는 것을 원하는지 여부입니다. 범인은 분명 AI 로봇들에게 로봇 3원칙을 깨는 행동을 하게 했어요. 평소 공공연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깨는것에 찬성하는 용의자가 있다면 그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차례차례 살펴볼까요? 음.. 누굴 먼저 할까요?" - P62

"자이로 회장은 더 많은 AI 로봇들을 판매하길 원하는 기업가입니다. AI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즉시 폐기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고 원칙을 어기도록 한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남는 것은 마지막으로 어반스인데… 어반스가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을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나?"
에드몬드 경찰국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질문을던졌다. - P63

"아시다시피 어반스는 스마트 AI 시티의 모든 시스템을 통제하여 관할하고 있습니다. AI 로봇들이 각자 판단하여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어반스는 각기 AI 로봇들의 판단을 뒤집을 수가 있죠. (후략)." - P64

"국장님. 여기에 어반스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어반스는 다른 AI 로봇들에게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고 내릴 수 있어요. 스마트 시티 곳곳의 고장이나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어반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반스가 로봇 3원칙을 어길 수는 없을까요? 루카스 박사님! (후략)" - P64

어반시티의 지혜로운 시민들, 도와주세요

"현재 어반시티의 길거리와 도로에는 어떤 시민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밤 AI 로봇들과 대치하였던 대다수 시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상황까지 발생했는데요, 방금 들어온 속보에 의하면 AI 로봇들이 현재 어반시티 내의 AI 통제센터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시민 여러분은외출을 자제해주시고, 방송을 시청하시면서 만일에 발생할지 모를 사태에대비하시기 바랍니다."
‘AI 통제센터라니.. 앗, 그곳은?!‘
"AI 통제센터는 어반스가 있는 곳입니다!" 준의 외침에 루카스 박사가고개를 끄덕였다. - P66

스스로 스무고개를 하는 인공지능

준과 여러분이 최종 범인을 어반스로 지목할 수 있도록 도운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은바로 AI 속 숨어있는 스무고개의 원리였습니다. 이 Al 속 스무고개의 원리를 의사결정트리(Decision Tree)라 합니다. 왜 의사결정트리라고 부를까요? - P70

AI를 만드는 방법인 머신러닝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사결정트리입니다. 의사결정트리는 데이터의 분류와 예측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죠. - P70

사실 답을 맞히는 처지에서는 적은 개수의 질문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이 좋습니다. 답을 맞히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의미 있는 질문은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답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진 질문을 먼저 하게 되면 정답이 아닌 특성을 가진 데이터를 단번에 많이 제외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정답에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 P71

의사결정트리는 컴퓨터가 스무고개를 스스로 하게끔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스무고개는 판단의과정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므로 분류 및 예측 결과에 대한 이유나 설명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이러이러한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어떠한 질병이 의심된다고 설명을 해줄 수 있죠. 또 이 이야기에서와 같이 어반스를 범인이라고 판단한 과정과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답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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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흉악범의 사형은
당연한 수순?

법원 판결로 본 사형제도 논란

2004년 20여 명의 노인 여성이 희생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2009년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2012년 무고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오원춘 살인사건, 2014년 총기 난사로 군인 5명이 피살된 임병장 살인사건, 2016년 여성 혐오 범죄 논란을 불러온 서울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2017년 ‘어금니 아빠‘ 이영학살인사건. - P332

 그뿐 아니다. 1997년 이후사형이 한차례도 집행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번 기회에 사형을집행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흉악범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날까? - P332

보성 어부 살인사건. 임병장 사건 등 사형선고

사례 1 저녁 8시 강원도의 전방 부대 안에서 적막을 깨고 난데없는 수류탄 폭발음과 총성이 들렸다. 전역 3개월을 앞둔 병장A씨가 초소에 수류탄을 던지고 부대원들을향해 소총으로 무차별 난사한 것이었다. 평소 인격장애가 있던 A씨는 부대원들이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림한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사망자 5명, 부상자 7명, 희생자 중에는 A씨를 평소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후임병들도 있었다. - P333

사례 4 동네 선후배 사이인 D씨 등 4명은 돈이 필요해 범죄를 모의했다. 먼저 그들은 한동네에 사는 여인이 남편의 교통사고 사망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알아내고 납치를감행했다. D씨 등은 다시 피해자의 딸을 인질로 잡아놓고 돈 1억 원을 찾아오게했다. 돈을 손에 쥔 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녀를 차례로 살해했다. 범행은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D씨 등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복동생이 말을 잘 듣지않는다는 이유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가족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 P334

모두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사건들이다. 위의 사례 중 A씨· B씨· C씨는 사형이 확정됐고, D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법원은
"사형이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죄형의 균형, 사회방위 및 범죄의 일반 예방적 견지에서 피고인을 이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로 사형을 선고했다. - P334

이른바 ‘임병장 살인사건‘
으로 알려진 A씨 재판에서 사형을 확정한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보자.

"사형선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런 심리를 거쳐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대법원 2016. 2. 19. 선고 2015도12980 전원합의체판결)

다소 장황하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사형은 한번 선고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니 심사숙고하란뜻이다. 이 판결에서 13명의 대법관중 4명은 소수의견을 통해 A씨의 사형선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 P335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 고심 끝 무기징역 선고

흉악살인범에 대해 법원이 고심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경우도 있다. (중략)
법원은 판결문에서 "함부로 남의 생을 접어버린 피고인들의 행위는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신의 권력을 탐한 것으로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률이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하는 사형을과할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허여했다 하여 함부로 피고인들을 재단할수는 없고, 피해자 유족들이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이라며 종신형에 처하여줄것을 원하고 있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P336

법원 ‘사형판결‘ 선고도 감소 추세

판결을 통해 볼 때 법원은 대체로 사형제가 극히 예외적이나마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생명을 박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을 끝으로 사형 집행이 중단되면서, 사형선고가 상당히 감소했고 무기징역 선고 비율이 높아진 것도 최근의 판결 경향이다.  - P337

2014년 이후 사라졌던 사형판결이 다시 등장한건 2018년이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로 불리던 이영학이 중학생 딸의 친구를 유괴한 후 엽기적으로 살해한 사건에서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볼 때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이라는 극형의 선택은 불가피하다"고 판결했다(이영학은 2심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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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리 레이코의 과거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어요. 그 여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으니까요. 문신은 그걸 알려주는 단서가 될 거로 생각했죠." - P226

그런 이유뿐이었나, 하고 내심 낙담하면서도 오카베는 혹시나 해서 신주쿠 역 뒤편의 맨션 이름을 메모했다. 그렇게 두 톱모델에게 두 가지 색깔의 나비 문신을 해준 사람을 찾아갔다.
미국인이지만 일본어를 잘하니까 괜찮다, 라고 미리 들었던 대로 벨을 누르자 얼굴을 내민 금발의 남자는 훌륭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질문에 답해주었다. - P227

"거짓말로 휴가까지 냈는데 별다른 수확은 없었어요. 다만한 가지 재미있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말에 어떤 젊은 여자가 미오리 레이코의 가슴 사진을 들고 와서 똑같은 문신을똑같은 자리에 해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모델 레이코를 정말 좋아하는 팬이라면서."
"젊은 여자가?" - P228

"그 과도에 찔린 여자가 문신사를 찾아온 여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건가?"
"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오리 레이코와는 다르게 그 여자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다음 달 초에 볼일이 있어 미국에 갈 거라면서 현지 얘기를 꼬치꼬치 물었다고 한다.  - P228

"이를테면 레이코가 어릴 때 가난하게 자라서 지금도 빵에아무것도 안 바르고 먹는다, 라고 웬만해서는 알지 못할 얘기들을 했다는 게 이상해요. 미오리 레이코와 뭔가 특별한 관계였던게 아닌가 싶은데…."
전화 협박자와 밀고자 외에 또 한 명, 사건의 이면에서 수수께끼의 베일에 감싸인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 P229

"자살로 볼 수는 없을까요?" - P230

12장 누군가 誰か

"자네를 이런 번잡스러운 일에 끌어들여서 미안하네.."
점원이 가기를 기다려 눈앞의 사사하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전화를 받고 사와모리가 자살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 P232

사와모리가 유서에 고백한 사건 날 밤의 행동은 하나하나그날 밤 그 자신이 한 행동이었다. 사사하라에게 죄를 덮어 씌우기로 결심한 것도, 레이코가 담요를 찾으러 잠깐 침실에 갔을 때 지문이 남지 않도록 손수건을 꺼내 독이 든 술잔과 레이코가 마시던 술잔을 바꿔치기한 것도 똑같았다. - P232

그날 밤 사와모리가 그 맨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레이코와 그의 대화와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고, 알지도 못하는 그를 감싸주려고 자신이 한 짓이라는 거짓 유서를 남긴 채 죽어갔다. 라는 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 P233

어제 아침에 마가키 기미코가 그의 전화에 이상한 반응을보였던 게 떠올랐다.
"모레 밤 11시에 다시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어떤 얘기든받아줄 테니까."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가키 기미코도 범인인것이다. 똑같은 큰 착각 아래 그도 사와모리도 마가키 기미코도 살인범이 되었던 것이다. - P234

성형수술이 알려질 우려 때문에 숨긴 것도 있었겠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더 중요한 비밀이 있었던게 아닐까. - P234

이름 옆에 숫자와 알파벳이 있었다. 이시가미 요시코의 이름에는 ‘4-B‘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표시냐고 물어보니 기숙사방 번호이고, 2인 1실이니까 또 한 명 같은 번호를 가진 아이가있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같은 페이지의 조금 아래쪽에 또 하나의 ‘4-B‘가 눈에 띄었다. ‘가와다 기요코‘라는 이름으로, 기숙사에 들어온 건 이시가미 요시코와 같은 시기였지만, 이쪽도 기숙사를 나간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 P236

"이름까지는 몰라도 얼굴이야 대부분 기억하죠. 같이 찍은사진을 짚어주면 누군지 알 거예요."
사감의 말에 그는 앨범을 들춰보았다. 젊은 여자들이 사감을 둘러싸고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중략)
역시 앨범의 중간쯤에서 문제의 얼굴을 찾아냈다. 오년전뉴욕의 병원에서 그 여자가 의사에게 내민 초상화와 똑같은 얼굴이다.  - P237

"이 아이라면 기억이 나요. 옆에 조금 더 예쁘장한 아이가있죠? 약간 시건방진 데가 있는 이 여자애와 같은 방을 썼어요.
아마 한 삼 년쯤 있었을 텐데 좀 음울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남자 친구가 생긴 모양이에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휴일이면 예쁘게 차려입고 신이 나서 뛰어나가곤 했거든." - P237

남자 친구가 생겨 신이 나서 뛰어나가곤 했다는 말을 듣고는 레이코가 어느 날 밤, 모래시계의 모래를 그의 등에 쏟았을 때가 생각났다. 흠칫해서 등 뒤를 돌아보자 레이코는 조금 쓸쓸한듯 중얼거렸었다.
"똑같은 얼굴을 하네?"
그와 똑같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 그 남자 친구와 레이코는 어쩌면 평범한 가운데 나름대로 행복한 일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 P238

도쿄로 돌아와 항상 가던 카페의 텔레비전으로 사사하라의 석방 뉴스를 보았다. 석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에게 연락할 터였지만 그와 마주하는 것을 한 시간이라도 뒤로 미루려고 오랜 시간 카페에서 뭉그적거리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집에 돌아와 우선 이케지마 리사에게 전화했지만 부재중이었다. - P239

기타가와 준은 결국 조용히 침묵해버렸고, 이나키 요헤이는 헉하고 경악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카기 후미코는 파르르 떨며 "나는 그런 거 몰라!"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큰 착각을 깨닫고 사와모리 에이지로도, 나도, 그리고 어쩌면 마가키 기미코도 범인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착각이었다면 더 많은 레이코 살해범이 있는지도 모른다.  - P240

사사하라가 음식 접시에서 얼굴을 들고 테이블 너머로 그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제 누군가 경찰에 밀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야. 범인은내가 아니라 여섯 명 중 한 사람이라는 내용이야. 거기 적힌 여섯명의 이름이 내가 자네에게 알려준 것과 완전히 똑같았어. 설마자네가 그 밀고 편지를 보낸 건 아니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경찰에 보낸 적은 없다. - P241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오늘 아침 그가 깨달은 ‘큰 착각‘은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미오리 레이코의 얼굴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 외에도 미오리 레이코를 살해한 범인이 있다. - P240

어젯밤에는 범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범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한여자를 여러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것은진짜 구역질이 날 만큼 오싹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 P241


그렇게 직원이 내준 잔돈을 상의 호주머니에 넣었을 때 였다.
"이봐, 이게 떨어졌어."
사사하라가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 쪽지는 오늘 아침에 집을나오는 길에 적어온 메모였다. ‘가와구치 시, 세이에이 기숙사,
이시가미 요시코‘라는 세 가지를 급히 갈겨썼다. - P243

어젯밤에 이케지마 리사에게 전화한 것은 경찰에게 자신이 사사하라를 구하기 위해 범인을 찾고 있다는 게 알려져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화하는 목적은 다르다. 조간신문으로 사와모리의 유서를 확인하기전까지는 어차피 망상에 빠진 얘기라서 경찰이 깨끗이 무시할거라고 생각했다. - P244

우선 이케지마 리사와 접촉해 그녀도 미오리 레이코를 죽인한 명이 아닌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상대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고 다음으로 다카기 후미코의 자택 전화번호를 눌렀다. 어젯밤 그의 전화에 다카기 후미코도 특이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 P244

하마노가 수화기를 향해 뭔가 얘기하는 것을 그는 전화박스에서 3미터쯤 떨어진 길모퉁이 뒤쪽에 몸을 숨기고 오로지 시선만 날카롭게 벼린 채 지켜보았다. 하마노는 아주 중요한 것을 그에게 감추고 있다. 그런 눈치를 챈 것은 조금 전 레스토랑 계산대 앞에서 하마노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한 장의 쪽지를 봤을때부터였다. - P245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건가. 어쩌면 그 용의자 목록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대체 왜?
하마노는 유리 전화박스 안에서도 얼굴을 코트 깃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를 응시하는 눈빛이 점점 더 초점이 좁혀지고 어둡게 벼려져 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 P246

"나, 사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사 개월 전의 그 차가운 목소리가 되살아나 얼어붙은 밤바람과 함께 그의 귀를 때렸을 때, 드디어 하마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수화기를 다시 들고 하마노는 또 번호판을 꾹꾹 눌렀지만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박스에서 나왔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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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의 연구 중 하나는 외부에서 적용된 잡음이 확률공명을 통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주걱철갑상어(paddlefish)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어류는 코에 있는 전기감각기 (electrosensor)로 먹잇감인 플랑크톤이 내는 희미한 전기적 신호를 감지해서 먹이를 찾는다.  - P238

잡음 수준이 중간대일 때 최적의 수행성과가 나오는 것은 확률 공명의 특징 중 하나다. 잡음이 너무 작으면 신호가 역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잡음이 너무 심하면 신호가 잡음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잡음-이득 관계 그래프를 그려보면 U를 거꾸로 뒤집은모양이 나온다. - P238

하지만 생물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발생시킨 잡음을 이용한다는 개념에는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초파리의 국소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잡음이 진정한 잡음인가 하는 점이다.  - P239

잡음은 엄격한 수학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잡음처럼 보이는 것들은 보통 다른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신호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 ‘잡음‘의 원천을 가져다가그것이 잡음의 통계학적 발자국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코스코의 말이다. - P240

부자키는 포유류에서 뇌의 활성을 조절하는 잡음 비슷한 신호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에센뷔크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거기에 특화된 잡음 발생 회로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뇌 전체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신경 활동을 지목한다. - P240

자발적 활성이 신경세포 네트워크로 퍼져나가 초당 약 40회 정도의 속도로 신경 흥분이 동기화되는 과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일례로 소위 감마파(gamma wave)라 불리는 뇌파는 서로 다른 인지 과정을 한데 묶어 지각(perception)을 만들어내는방법이라 제안되고 있다.
부자키는 유입되는 희미한 신호가 이런 자발적 활성파의 등에 올라타 역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 P241

과연 자연선택이 무작위 잡음 발생기를 장착한 뇌를 만들어 낸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신경 신호를 빌려다가 잡음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갖춘 뇌를 만들어낸 것인지 밝히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느 쪽이 맞든 초파리의 뇌는 약간의 디더 없이는 기능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 우리의 뇌도 디더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 P241

3
우연과 수학
기이하기 짝이 없는 우연의 수학

우연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을 정량화하거나, 생물학 표본의 집합처럼 취급해서 분류할 수 있을까? 우연은 서로 다른 강도로 찾아오나? 이 장은 행운과 우연의 과학과 수학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마냥 숫자만 언급하지는 않는다. - P129

내가 아는 우연, 내가 모르는 우연

지금쯤은 당신도 눈치 챘겠지만 인간의 뇌는 패턴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이것은 과학의 주춧돌이 되어준 능력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패턴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것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밝히려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학을 이용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 P130

약 한 세기 전만 해도 모든 것이 간단해 보였고, 세상은 행성의 궤도, 밀물과 썰물 같은 자연현상처럼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과 오솔길에 떨어진 우박의 패턴같이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으로 나뉘었다. - P130

하지만 1870년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의 발견으로 질서(order)와 혼돈(chaos)을 나누고 있던 벽에최초의 균열이 생긴다. 무작위인 사건에도 통계적인 패턴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31

날씨는 진정 무작위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어떤 패턴이 있을까? 주사위는 정말 무작위로 수를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사실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것일까? 물리학자들은 아주 작은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인 양자역학에서 무작위성을 그 절대적인 기반으로 삼았다. - P131

 만약 내가 ‘공정한 동전던지기를 해서 6번 연속 앞면이 나왔다고 해도 7번째 던지기에서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똑같다. 반대로 한 계의 과거가 미래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그 계는 질서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 날 해가 뜨는 시간을 몇 분의 1초 단위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매일 아침마다 그 예측은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동전 던지기는 무작위적이지만 일출은 그렇지 않다. - P132

일출의 패턴은 지구 궤도의 규칙적인 기하학에서 기원한다. 무작위 동전 던지기에서 나타나는 통계적 패턴은 훨씬 당혹스럽다.
공정한 동전으로 던지기를 오랫동안 하면 앞면과 뒷면이 비슷한 빈도로 나온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 P132

동전을 얇은 원형의 원잔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 만약 원잔을 수직으로 던져 올릴 때 그 속도와 회전속도를 알 수 있다면, 동전이바닥에 떨어져 멈출 때까지 몇 바퀴나 돌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원반이 바닥에 닿았다가 튀어 오르면 계산이 더 어려워지기는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던져 올린 동전은 고전역학계(classical mechanical system)인 것이다. - P133

당신이 동전을 던져 올린순간 그 동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바람이나 지나가는 고양이, 기타외부 요인은 무시하자). 하지만 당신은 동전의 속도나 회전속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 필연적인 운명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 P133

주사위도 마찬가지다. 주사위 역시 역학적인 행동을 나타내고 결정론적인 운동방정식의 지배를 받는 튀어 오르는 정육면체로 모형화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초기 운동을 충분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충분히 빠른 속도로 계산을 할 수 있다면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 P133

카오스는 무작위성과는 다르다. 하지만 모든 측정에 따라오는 정확성의 한계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무작위 계에서는 과거가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카오스계에서는 과거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 P134

진정한 카오스계에서는 이런 오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주사위의 모서리가 바로 이런 기하급수적인 발산(divergence)을 야기한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정육면체가 편평한 탁자에 부딪혀 튀어 오를 때는 이런 모서리 때문에 카오스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 P135

여기에 답하기 위해 물리학에서 무작위 모형이 처음 큰 성공을거둔 예를 살펴보자. 바로 통계역학이다. 이 이론은 기체의 물리학인 열역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 P135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분자를 작고 단단한 구체로 모형화해서 서로 튕겨 나가는 분자들이 기체 법칙이나 다른 것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최초로 탐구한 사람이다. 그의 이론에서는 압력, 부피, 온도 같은 고전적 변수들이 내재적인 무작위성을 가정하는 통계적 평균으로서 나타났다. 이런 가정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 P136

하지만 볼츠만은 모든 구체의 정확한 경로를 일일이 추적하는 대신 구체들의 위치와 속도가 어느 특정 방향으로 왜곡되지 않는 통계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다. - P136

통계역학은 엄청나게 많은 구체의 결정론적인 운동을 평균 같은 통계적 측정치로 표현한다. 바꿔 말하면 거시 수준에서 결정론적 모형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시 수준에서의 무작위 모형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 P136

그렇다. 당시에 볼츠만 자신은 몰랐지만 이것은 정당한 방법이다. 그는 사실상 2가지 주장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는 구체들의 운동이 카오스적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카오스가 잘 정의된 평균 상태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종류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부터 에르고드 이론(ergodic theory)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가 통째로 생겨났고, 수학자들이 이룬 발전 덕분에 볼츠만의 ‘가설‘은 이제 ‘정리‘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 P137

그럼 기체는 실제로 무작위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것은 모두 당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 어떤 측면은 통계적으로 모형화하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어떤 측면은 결정론적으로 모형화하는것이 가장 좋다.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맥락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전혀 특이한 상황이 아니다. - P137

그렇다면 진정으로 무작위적인 것은 없다는 말인가? 양자세계의 뿌리를 이해하기 전에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아원자 수준까지 파고들어가 보면 우주는 진정으로, 그리고 환원불가능한 방식으로 무작위적이라고 주장한다.  - P138

이런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학적 논증은 분명히 존재한다.
1964년에 존 벨(John Bell)은 양자역학이 무작위적인지, 숨은 변수에 지배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숨은 변수란 사실상 우리가 아직 어떻게 관찰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양자적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 P138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벨의 연구에 기초한 실험을 통해 양자계는 무작위성이, 그리고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이라는 이상한현상이 지배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은 양자론에서 무작위성이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무시해버리는 경향이있다. 이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 P139

(전략), 핵심은 수학적 정리 (mathematicaltheorem)에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벨은 자신의 주된가정은 명확하게 밝혔지만 그의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일부암묵적인 가정도 끼어들었다. 이 점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벨연구의 실험 버전에는 허점도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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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하얀 피부에 검고 큰 눈동자의 인형을 갖고 있었다. 엄마도 없고 자매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외로워서 항상 그 인형을 마주하고 놀았다. 인형은 긴 속눈썹이 달린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감으면 조용히 잠든 것 같고, 뜨고 있으면 까만눈동자가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인형에게 들려주었고 인형도 내게 이런저런 말을 해주었다.  - P193

인형이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 레이스 옷을 입히고 다정하게 품에 안고 긴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쓰다듬으며 나는 엉엉 울면서 애원했다.
"얘, 제발 부탁이야, 뭔가 말 좀 해봐."
하지만 인형은 두 번 다시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 P193

오 년 전 마가키 선생의 패션쇼에서 처음 그 애를 만났을때, 곧바로 어린 시절의 그 인형이 떠올랐다. 긴 속눈썹도, 까맣고 쓸쓸해 보이는 동그란 눈동자도, 이따금 미소 짓는 것 외에는 항상 백지처럼 마음을 닫고 있는 무표정도 완전히 꼭 닮았다. - P194

반년쯤 뒤에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어느 패션쇼 무대가 파한 뒤에 슬쩍 말을 붙였다.
"우리, 친구할래?"
"응, 좋아." 그 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내 집에 따라왔다. "한숨 자게 해줄래? 어젯밤에 거의 잠을 못 잤어."
그렇게 말하고 그 애는 내 무릎을 베개 삼아 눈을 감았다.
그 애가 잠든 동안 나는 내내 그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 - P194

"우리 친하게 지내자. 넌 나의 인형이야."
그렇게 속삭이자 그 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슴을 드러내 붉은 나비 문신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친구가 된 징표로 너도 나비 문신을 하는 건 어때?"
그때도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검은 나비가 좋은데." - P194

우리가 침실에서 은밀히 어울린다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톱 모델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미워한다고 자기들 좋을 대로 소문을 퍼뜨렸다. 오히려 나는 그 애를 지나칠 만큼 사랑했다. 그애가 르네 마르탱의 패션쇼에 나가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내 인기를 뛰어넘었을 때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고내 품에 그 애의 얼굴을 안고 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P195

"너도 웨딩드레스 잘 어울려. 이다음에 마가키 선생에게 꼭입혀달라고 내가 부탁해볼게."
어린 시절의 그 인형은 훨씬 더 무모한 떼를 썼다. 달에 데려가 달라느니 너희 아버지가 너무 싫으니까 흠씬 패주라느니..
침대 위에서 노닐 때, 그 애의 왼편 젖가슴의 나비가 높아진 심장 소리를 빨아들여 살갗에서 불쑥 떠올라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좋았다.  - P196

그러면 그 애도 긴 속눈썹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온갖 억지를 부려 나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이 신문기사, 공개해도 돼?"
올 2월 말, 오래 전 신문 기사의 스크랩을 불쑥 내게 들이밀었을 때,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는구나 하고 어이없어 했을 뿐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다. - P197

신문 기사는 내가 어릴 때 살던 연립주택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으로 우리 아버지가 체포되었다는 내용이다. 그사건으로 연립 한 동의 반절쯤이 불에 탔고 어린애 한 명과 한창 나이의 회사원 한 명이 숨졌다.  - P197

 나는 고아원에 보내졌고 그 뒤로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어떻게 그 기사를 찾아냈어?"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물었다.
"십칠 년 전의 신문쯤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 - P197

 하지만 그 애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이 펄쩍 물러서더니 내 뺨을 찰싹 내리쳤다.
"그 더러운 손, 치워! 여태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몸을 맡긴것은 너의 더러운 손에 나도 똑같이 더러워지면 업계에서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제 이런 곳은 견딜 수가 없어. 왜 빙글빙글 웃어? 너를 증오한다니까? 너도 나를 엉망으로 망가뜨린 인간이야. 오늘부터 그 앙갚음으로 너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 줄 거야." - P198

"신문 기사만으로 내 아버지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그러자 그 애는 핸드백에서 다른 종이를 꺼내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내게 툭 던졌다.
"흥신소에 의뢰해서 네가 살던 고아원을 조사해달라고 했어. 사진도 있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고아원이다. 거기서 찍은 사진들은 그곳을 나올 때,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는데…. - P198

"네가 얘기해준 본명도 가짜였어. 열여섯 살에 고아원을 나온 뒤로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면서? 하지만 고아원 선생님이 잡지에서 모델로 활약하는 네 모습을 보고 꼭 한번 만나고 싶다던데?"
조사 보고서의 메마른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한 가지 과거가 적혀 있었다. 아니, 단 한 사람에게 말했었다. 그 애였다.  - P199

. 그렇듯 동정심을 보여주었던 그 애가 설마 사 년 뒤에 협박자로 표변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네가 신문 기사며 흥신소 조사 보고서를 진짜로 주간지기자에게 보내겠다면 나도 지난 팔 개월 동안 네가 나를 협박했다는 거, 세상에 까발려줄게." - P199

"너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한 일이 있을 텐데?"
4월이었던가, 내가 그렇게 쏘아붙인 적이 있었다.
(중략)
"내일까지 백만 엔 준비해. 내가 입 다물어줬잖아, 싫다고는 못할걸? 돈을 못 주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얘기, 주간지에 알릴 거야."
혼자 주워섬기더니 뭔가 이상했는지 갑자기 말투가 달라졌다. - P200

게다가 사람들에게 알리고싶지 않은 과거의 비밀일 터였다.
"그 전화만이 아니야. 언젠가 톱 모델 둘이 똑같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과거가 있는 게 너무 우습다고 했지? 하지만 가족이 모두 화재로 죽었다는 얘기라면 굳이 숨길 필요가없잖아, 다들 가엾게 생각해서 오히려 인기가 올라갈 텐데, 너,
뭔가 더 큰 비밀이 있지? 나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곤란한 과거가 있지?"
"그래, 협박당했어. 하지만 그 여자가 원하는 건 돈뿐이니까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아." - P201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냐. 너의 파멸이지."
그 말과 함께 다른 때보다 더 거친 손길로 20만 엔의 돈을찢어발겼다.
"너를 파멸시킬 거야. 나는 모두 다 잃었어. 그러니까 너한테서도 모든 걸 빼앗을 거야." - P201

"나를 죽여. 나를 죽여…."
그 아이도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죽여..."
두 개의 술잔을 바꿔놓으면서 내 귀는 단지 인형의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인형은 머리칼을 쥐어뜯기고 한쪽 눈이 일그러지고 얼굴이 뭉개진 채 침대 위에 내던져져 있었다. 아니, 인형이 아니라 그 애였다. - P202

돌연 차임벨이 울렸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베갯머리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경찰입니다. 밤늦게 죄송하지만, 잠깐 물어볼게 있어서..."
경찰이라고? 조금 전 전화한 남자가 경찰에 신고한 걸까.
하지만 괜찮다. 그런 어이없는 얘기, 당연히 거짓말이다. - P203

추운 듯 싸구려 코트 깃을 세우고 어깨를 웅크린 것이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본 형사를 그대로 닮았다.
"이케지마 리사 씨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형사는 현관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실은 오늘 저녁에 이상한 편지가 경찰서에 도착했어요."
그렇게 말을 꺼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편지에 미오리 레이코를 살해한 자는 이케지마 리사라고 적혀 있었다, (후략). - P203

"하지만 편지에 당신이 미오리 레이코에게 협박을 당했다고 적혀 있던데요."
"주간지마다 내가 레이코와 항상 경쟁하고 시샘한다는 기사가 실렸지만, 실은 진짜 친한 사이였어요. 왜 협박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 P204

"알리바이 조사인가요?"
그녀는 번거롭다는 듯이 되묻고 집 안에서 스케줄 수첩을가져왔다.
"어디 보자, 12일부터 14일까지는 일이 없어서 여기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냈네요. 15일과 16일에는 규슈 여행을 했어요. 15일 점심때 비행기로 도쿄를 떠났다가 16일 밤늦게 돌아왔죠. 사진작가 기타가와 준 선생님과 동행했으니까 그 쪽에 물어보시면 알 거예요." - P204

(전략), 12일과 13일 이틀 동안에도 그랬다고 대답했다.
"근데 왜 그 이틀 동안이죠? 신문에는 사망 추정 일시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나왔어요. 그러면 15일이나 16일밤일 수도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미오리 레이코는 15일 아침에 파리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 P205

문을 닫아걸면서 대체 누가 그런 밀고 편지를 경찰에 보냈을지 생각해보았다. 아까 전화했던 그 남자인가. 하지만 어떻게 레이코가 나를 협박한 것을 알고 있을까. 2월 말부터 둘이 만날 때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특히 주의했던 것이다. - P206

 경찰에서는 자살한 사와모리 에이지로를 진범이라고 단정했다. 그녀가 레이코를 죽인 것은 경찰에서는 결코알 수 없다. 그녀의 소녀 시절을 빨갛게 불태웠던 옛날 얘기도주간지 기자가 알아낼 일은 영원히 없다……

. 그런데 그 이유를 이제야 겨우 알 것 같았다. 나비가 아니라 불꽃 모양을 평생의 낙인으로 가슴에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레이코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였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레이코의 협박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 P207

아버지가 범죄자라는 것 따위, 알려져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애의 목소리는 항상 그다음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것만 같았다.
"불을 지른 건 너희 아버지가 아니야! 너희 아버지는 진짜범인을 감춰준 것뿐이었어!"
거울에 비친 오른편 젖가슴의 나비 모양 불꽃은 금세라도활활 타올라 그녀의 몸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 P208

11장 경찰 警察

12월 2일 밤, 사와모리 에이지로의 자살 현장에서 돌아온지세 시간 만에 아사이는 책상 위에서 한 통의 봉투를 발견했다.
겉에 경찰서 이름과 ‘형사과장님께‘라고 적혀 있었다. 아침 일찍배달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이조 경찰서 관할의 자살 사건 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사이는 다시 사사하라를 취조했다.  - P210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사와모리 에이지로의 유서 내용은신빙성이 높다. 따라서 사건을 재검토하고자 한다"라는 설명으로 대충 둘러댔다. 하지만 경찰 윗선에는 사사하라 노부오를 체포한 건 잘못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10

그리고 여섯 명의 남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케지마 리사, 사와모리 에이지로, 마가키 기미코, 기타가와 준, 이나키 요헤이, 다카기 후미코.
편지를 단순한 장난으로 묵살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중한 명인 젊은 사장 사와모리 에이지로의 유서에는 미오리 레이코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저 어림짐작으로 넘겨짚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 P211

경찰에 편지를 보낸 뒤에 오늘 아침에는 직접 사와모리에게 전화했다, 라는 가능성도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유서 내용만 봐서는 사와모리에게 전화한 인물은 사건 당일 밤에 우연히 현장 부근에 있었던 것뿐일 거예요. 이 편지를 보낸 자는 조금 더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 같네요. 피해자가 사와모리를 협박했다는 건 장본인 외에는 알 수 없잖아요.
근데 그걸 알고 있어요.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 P211

"다만 이 여섯 명의 이름을 보니 생각나는군요. 약혼한 무렵에 레이코가 내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는 사람이 일곱 명이라고 했어요. 그중 여섯 명이 이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면 일곱 번째 사람은?"
"실은 일곱 번째 사람에 대해서는 레이코가 입을 딱 다물었어요. 아마 남자인 것 같긴 한데. 어쩌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그 일곱 번째 남자인지도 모르겠네요." - P212

편지에는 ‘진범은 여섯 명 중 한 명이다‘라고 분명하게 단정하고 여섯 명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제7의 인물이 있다면 그자가 자신을 지키려고 이런 밀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 P212

아니, 사사하라도 실제로 뭔가를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 게아닐지도 모른다.
사와모리가 레이코 살해를 고백하고 자살했다는 소식을전했을 때, 사사하라는 뜻밖에도 한순간 못 믿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부정하듯이 머리까지 가로저었다. 사와모리가 그런 고백을 하고 죽은 게 그에게는 예상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 P213

어요?"
았다.
"당신, 혹시 사와모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증이라도 있그러자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러더니 갑자기 홱 바뀌어 유서를 긍정하는 말을 늘어놓
"네, 범인은 역시 사와모리겠네요. 레이코가 생전에 그에대해 자주 얘기했습니다.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라면 태연히 살인도 저지를 사람이라고." - P214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의문이 머릿속 한 귀퉁이에서 계속 맴돌았다. 사와모리의 자살 소식에 사사하라가 크게 동요하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사건에는 조금 더 깊은 속사정이 있는지도 모른다.  - P214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취조한 다음에 고려해보겠습니다.
사와모리가 진범이라고 해도 그가 사용한 독약은 당신이 가져간 것이었어요. 미오리 레이코의 맨션에서 자살할 생각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하셨지만, 그게 거짓이고 조금이라도 살의가 있었다면 실제로 일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법률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그보다 미오리 레이코의 사체는 어떻게 되지요?" - P215

"아뇨, 아무도 없을 겁니다. 혈육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어서 자신은 죽을 때도 혼자라고 레이코가 자주 말했으니까요. 그너에게 큰 배신을 당하긴 했지만 그렇게 딱하게 죽었으니 최소한 내 손으로 장례식은 치러주고 싶군요. (중략)." - P215

전원이 탐문 수사를 나간 뒤, 아사이는 혼자 창가에 앉아컴컴한 겨울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징계처분보다사건 자체의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중 하나는 미오리 레이코라는 여자의 신원이었다. 계속수사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오 년 전 데뷔하기 이전에 대한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얼굴의 미세한 부분까지 성형을 했다는 건 알아냈지만, 그녀의 과거는 원래 얼굴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에 감싸여 있었다. - P216

또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날짜와 시각이다. 사와모리 에이지로의 유서에도 ‘11월의 그날 밤‘이라고만 적혀 있고, 사사하라도 13일인지 14일인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욱더 마음에 걸리는 건 그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발동해온 형사의 직감에 뭔가가 몹시 거치적거리는것이다. 용의자 체포와 그것을 뒤엎는 진범의 자살... 그러나 사와모리가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엽총의 폭발음만으로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 - P216

예상은 했었지만, 네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미오리 레이코에게서 협박당한 사실이 없다고 부정했다. 허식의 세계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부정했다고 해도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 P217

밀고장에 이름이 적힌 여섯 명 중에 다카기 후미코라는 인물만은 경찰서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연예 주간지에 전화해보니 그녀는 인기 가수 여러 명이 소속된 전국 톱클래스의 레코드회사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여자라고 알려주었다.  - P217

"밀고장에 나온 대로 미오리 레이코가 여섯 명 전부를 협박했을 수도 있어요."
오니시의 의견이었다. 아사이는 사사하라가 얘기했던 일곱 번째의 남자가 다시 어두운 그림자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별다른 말 없이 다른 형사들의 보고며 의견을 듣고 있던오카베가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째서 네 명 모두 가장 중요한 13일과 14일 밤의 알리바이는 없고, 오히려 15일 밤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는 걸까요..." - P218

"맞아, 내가 만난 사진작가 기타가와 준도 13일 밤에는 신주쿠 뒤쪽의 처음 들어간 바에서 술을 마셨다는 불확실한 얘기뿐이고 14일 밤의 알리바이는 아예 없었어요. 혼자 암실에 틀어박혀 일했다는데 그건 증인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15일 밤에 대해서는 이케지마 리사와 규슈에 갔고 나가사키 호텔 바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고 확실한 알리바이를 대더라고요."
15일 아침 일찍 갑작스럽게 이케지마 리사가 전화로 규슈에 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운젠에서 나가사키까지 돌아보자는 그녀의 제안에 기타가와는 망설임 없이 응했다고 한다. - P219

"13일과 14일 밤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더니 15일밤에 나가사키 호텔에 숙박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서 세세하게 얘기해주더라고요. 호텔 직원과 바텐더 중에 자신과 이케지마 리사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이 있으니까 그쪽에 물어보면 안다고까지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레이코 씨가 15일아침에 파리로 떠날 예정이었으니까 사건이 일어난 건 그 이전,
즉 13일이나 14일 밤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때까지 냉정하던 기타가와가 약간 안색이 달라지면서 그걸 어떻게 아느냐, 레이코는 변덕이 심해서 그 전에도 여러 번 외국 여행을 당일에 취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갑작스레 마음이 바뀌어15일 밤에도 도쿄에 있었을지 모른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케지마 리사도 완전히 똑같은 진술을 했어." - P220

이나키는 13일 밤에는 9시까지 파티에 참석했지만, 그다음 날인 14일은 종일 제삼자가 증언해줄 만한 알리바이가 없었다. 그런데 15일 얘기가 나오자 저녁때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 모델 세 명,
조수 다섯 명과 함께 철야로 작업을 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다카기 후미코도 마찬가지여서 13일과 14일 밤의 알리바이는 애매한데 15일 밤에는 5시에 회사를 나와 마치다 시에사는 고등학교 동창을 찾아가 밤새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협박이라는 말에 얼굴이 새파래졌던 다카기 후미코도 15일 밤의 알리바이에는 자신감을 되찾은 듯 열을 내어 얘기했다는 것이다. - P220

그리고 다음 날, 사사하라 노부오는 석방되었다.
사와모리의 유서는 이제 결정적인 것이 되어서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사하라가 레이코의 맨션에 청산가리를 지니고 간 것에 대해 살의가 있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한 채, 자살을 위해서였다는 그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 P221

아사이의 마지막 임무는 그날 4시, 정문 앞에 몰려든 보도진을 피해 뒷문으로 몰래 사사하라를 차에 태워 내보내는 것이었다. 차가 떠나기 직전, 사사하라는 지난 이틀 동안 부쩍 핼쑥해진 얼굴을 묘하게 무표정으로 유지한 채 아사이를 향해 목례를 건넸다. - P222

사사하라는 자택이 아니라 아사이가 예약해준 긴자 뒤편의 작은 비즈니스호텔에 은신하기로 했다. 그는 우선 지난 삼일간의 신문을 구해달라고 프런트에 부탁했다.  - P222

7시가 되자 그는 요요기에 있는 하마노의 오피스텔에 연락했지만 아직 집에 오지 않았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음성을 바꿔 병원에도 연락해봤는데 교환 여직원이 하마노는어제부터 삼일 동안 휴가를 냈다고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세 시간을 계속 시도한 끝에 10시에 드디어 콜 사인이 통화 중으로 넘어가서 하마노가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귀가하자마자 어딘가에 전화를 한 것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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