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은 안경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며 말했다.
"자네는 학파 사람 같지 않은데."
"학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하지만 나는 대답할 길이 없었다.
"이름은?"
"네모입니다."
"그건 이름이라고 할 수 없는데." 도서관장은 약간 기분이 상한 듯했다.  - P332

솔직히 말했건만 도서관장은 내가 얼버무렸다고 생각한 것같았다.
"바깥에서 오는 건 불길한 인간들뿐이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마왕이 정해." - P333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꼭대기를 헤치며 지나는가 싶더니 우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바다 위를 활주하듯 이동하고 있었다.
포대 섬은 순식간에 뒤로 멀어져 갔다. 앞쪽 바다를 보니 로프웨이의 지주가 되는 철골이 점점이 서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것이라곤 그것뿐, 움직이는 것은 철탑에서 무리 지어 날개를쉬는 바닷새 정도였다.
어느 순간 작은 섬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하늘에서 그림물감 한 방울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 P334

한 번 보이고 나니 어째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섬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섬이 있군요!" 나는 경탄했다.
"물론 있어요. 당연하잖아요."
마왕의 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 P334

"저는 제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가 죽어 있나요?"
마왕의 딸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를 붙들며 웃었다.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은데요."
"당신들은 다르죠." - P335

나무들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이자 마왕의 저택이 눈 아래나타났다. 로프웨이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섬 반대편 비탈에 있기 때문이었다. 콘크리트 2층 건물 앞마당의 종려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주위는 고요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사야마 쇼이치를 따라 학파 관측소를 찾아갔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지붕까지 이어지는 휑뎅그렁한 현관홀, 무기질적인 콘크리트 벽, 서늘한 냉방 저택 내에 감도는 비현실감은 관측소와 매우 비슷했다.
"아버지는 서재에 계세요."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는 당신 혼자 가요.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 방이에요." - P337

나는 서재를 가로질러 창으로 다가갔다.
저물어 가는 태양에 물든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때 바다 저편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열차가 보였다. 관측소 섬에 표류한 날 동틀녘의 바다를 달려간 그 열차였다. 나는 얼마 동안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문득 뒤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열차에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군."
나는 흠칫 놀라 돌아봤다.
하지만 실내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 P338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을 겁니까?"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여도 보이지 않지."
나는 서안 앞을 벗어나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 앉았다. 그리고 눈앞의 공간을 응시했다. 서안 너머 유리창으로 바다와 하늘이 보였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하고 자신에게 일렀다.
다음 순간 서안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 P339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물론 알지."
"그럼 ・・・・・・ "
"나한테 알아내려고 해봤자 소용없어. 기대에 부응해 주지못해서 미안하네만 말이지. 물론 자네 심정은 이해해. 자네한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 바다에서 자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거든. 학파의 무법자들과 마찬가지로 멋대로 내 영토에 침입해 왔어. 딸을 도와준 것은 고맙지만 따져보면 자네가 스스로 초래한 사태야. 특별 취급할 이유가 못되네." - P340

마왕은 자상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서안에 놓인 카드 상자가 신경 쓰였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마왕은 나무 상자 뚜껑을 열고 안에서 카드를 꺼내 훑어보았다. 대체 뭘 하는 걸까. - P341

(전략).

마왕은 눈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재미있군."
그 순간 나는 가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됐다. 목이 바싹말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마왕의 눈은 창밖에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처럼 텅 비어 있었다. 얼마 동안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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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85년 5월 18일

KGB의 방첩 담당 부서 K부에서 이것은 일상적인 도청 작업이었다. - P15

한 시간 뒤 그들의 작업이 끝났을 때 이 아파트의 거의 모든 구석에 KGB의 눈과 귀가 심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옷장 안의 옷과 신발에 방사성 가루를 뿌렸다. 방사능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KGB가 방사능 탐지기를 사용하면 착용자의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농도의 방사성 가루였다.  - P15

몇 시간 뒤 러시아의 고위급 정보 요원 고르디옙스키가 런던에서 출발한 아에로플로트 항공기를 타고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착륙했다.
KGB의 올레크 안토니예비치 고르디옙스키 대령은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 P16

단단한 운동선수 같은 몸집의 고르디옙스키는 북적거리는 공항에서 자신 있게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미약한 두려움이 부글거렸다. KGB 베테랑이며 소련의 충실한 비밀 요원인올레크 고르디옙스키가 사실은 영국의 스파이였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영국의 해외 정보국인 MI6에 포섭된, 녹턴이라는 암호명의 정보원은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첩자 중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 P16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도 이 소련 첩자가 준 엄청난 정보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두 지도자 모두 알지못했다. 심지어 고르디옙스키의 젊은 아내도 남편의 이중생활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P16

고르디옙스키가 KGB의 레지덴트(레지덴투라라고 불리던 KGB해외 지부의 지부장을 지칭하는 러시아어)로 임명되자, 그에 관한 정보를 아는 소수의 MI6 요원은 몹시 기뻐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소련의 최고위급 정보 요원이 된 고르디옙스키가 소련 첩보망의 가장내밀한 기밀에 접근해 KGB의 계획에 대해 미리 서방에 알려 줄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7

런던의 안가(家)에서 급히 소집된 회의에서 MI6의 담당관들은 고르디옙스키에게 가족과 함께 망명해 영국에 남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회의의 참석자들은 모두 이번 일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알고 있었다. - P17

M16 요원들은 고르디옙스키의 비상 탈출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핌리코라는 암호명의 이 계획은 7년 전 영원히 실행할 일이 없기를바라며 작성된 것이었다. MI6는 그때까지 소련에서 누군가를 탈출시킨 적이 없었다. 하물며 KGB 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교하고위험한 탈출 계획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이었다. - P17

 공항은 감시 때문에 항상 분위기가 딱딱했는데, 그날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았다. 고르디옙스키는 만약 KGB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소련땅에 발을 디딘 순간 체포되어 이미 KGB 감방으로 끌려가고 있을것이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택시에 올랐다. - P18

(전략). 그런데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 번째 잠금장치, 이 아파트 건물이 처음 지어질 때 설치된 것으로 열쇠를 넣어 돌리게되어 있는 구식 잠금장치가 잠겨 있기 때문이었다.
고르디옙스키는 이 세 번째 잠금장치를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 잠금장치의 열쇠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18

누군가가 그의 정체를 알렸다. KGB가 그를 감시 중이었다. 동료 스파이들이 그를 염탐하고 있었다. - P19

1

KGB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의 인생은 KGB 그 자체였다. KGB가 그를 형성하고, 사랑하고, 비틀고, 망가뜨리고, 나중에는 거의 죽일 뻔했다. 소련의 첩보 기관 KGB는 그의 심장과 혈관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 P23

KGB (<국가 보안 위원회>를 뜻하는 Komitet GosudarstvennoyBezopasnosti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는 지금껏 만들어진 모든 정보기관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광범위한 곳이었다. 스탈린이 만든 첩보망의 직속 후계자인 KGB에는 국외와 국내 정보 수집, 국내 보안 강화, 국가경찰의 역할이 모두 결합하여 있었다. - P23

서방 세계의 눈에 KGB라는 머리글자는 공포 정치와 대외 공격및 체제 전복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얼굴 없는 관료 마피아가 경영하는 전체주의 정권의 모든 만행을 짧게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KGB의 엄격한 통치하에 사는 사람들의 시각은 달랐다. 그들이 공포 속에 복종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공격을 막아내는 보루, 공산주의를 수호하는 친위대로 KGB를 우러러보는 마음도 있었다. 이 특권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 P24

이 기관에서 한번 일을시작한 사람은 평생 그 일을 놓지 않았다. <전직 KGB 사람이라는것은 존재하지 않는다.>¹ 전직 KGB 요원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말이다.

1 블라디미르 푸틴이 FSB에서 한 연설. Anna Nemtsova, "A Chill in the Moscow Air."
뉴스위크2006년 2월 5일 자에서 재인용. - P24

그의 아들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아버지고르디옙스키는 신념 때문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에 가담해야 할 때도 결코 흔들림 없이 당에 헌신했다. 1932년에 그는 카자흐스탄의 <소비에트화>에 참여해, 소련 군대와 시민을 먹일 음식을 농민들에게서 징발하는 작전을 기획했다. 그 결과 발생한 기근으로 약 150만 명이 죽었다. 안톤은 국가가 초래한 기아를 바로 코앞에서 직접 보았다. 그리고 그 해에 국가 보안을 맡은 기관에 들어갔다. - P25

혁명이 내부의 치명적인 위협과 맞닥뜨렸다는 스탈린 동지의 발표가 나오자 안톤 고르디옙스키는 반역자들을 솎아내는 데 일조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시행된 대숙청은<국가의 적>을 대대적으로 일소하는 작업이었다. - P25

<첩자 한 명을 놓치느니 무고한 사람 열 명이 고통받는 편이 낫다.>NKVD의 니콜라이 예조프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 P25

NKVD도 내부 직원들을 조사해서 숙청하기 시작했다. 한창 피가 낭자하게 흐르던 무렵에는 고르디옙스키 일가가 살던 아파트 단지가 6개월 동안 열두 번도 넘는 불시 단속을 당했다. 체포는 밤에 이루어졌다. 가장이 가장 먼저 끌려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다음에 끌려가는 식이었다.
이때 국가의 적 중 일부를 적발한 사람이 바로 안톤 고르디옙스키였을 가능성이 있다. <NKVD는 언제나 옳다>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분별 있는 말이자 완전히 틀린 결론이었다. - P26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관계가 돈독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 - P28

집안의 어른 중 누구도 진정한 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숨 막히는 획일주의가 지배하던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속으로 몰래 다른 생각을 품는 것은 가능했지만, 가족에게조차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 P28

 어느 날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옹호하는 순진한 연설문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어학실에서 녹음해 동료 학생들 몇 명에게 들려주었다. 그들은 기겁했다. 「이거 당장 없애 버려.
올레크 두 번 다시 입에 담지도 말고」 덜컥 겁이 난 올레크는 혹시 학생 중 누가 자신의 <급진적>인 견해에 대해 당국에 알리지 않았을지 걱정스러웠다. 학교 안에도 KGB의 첩자들이 있었다. - P29

국제 관계 대학교는 소련 최고의 엘리트 대학으로, 헨리 키신저에게 <소련의 하버드>³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외무부가 운영하는 이 대학은 외교관, 과학자, 경제학자, 정치가, 그리고 스파이를 길러 내는 최고의 훈련 기관이었다. 올레크는 역사, 지리, 경제, 국제 관계를 공부했으나, 모든 학문은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왜곡된 형태로 전달되었다.

3 Tatiana Smorodinskaya, Karen Evans-Romaine, Helena Goscilo (eds.), Encyclopediaof Contemporary Russian Culture (Abingdon: Routledge, 2007)에서 재인용 - P30

대학 도서관에는 해외 신문과 정기 간행물 몇 종이 들어와 있었다. 비록 심하게 편집된 상태였어도, 세상을 언뜻 들여다볼 수는 있었다. 올레크는 조심스레 이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서구에 대해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의심받을 수 있었다. 가끔은밤에 「BBC 월드 서비스」나 「미국의 소리」 방송을 몰래 듣기도 했다. - P30

구가 친해진 학생 중에 대학 육상 팀 소속으로 역시 달리기를 즐기는 스타디슬라프 카플란이 있었다.
(중략).
 두 청년은 서로의 포부가 충돌하지 않고 생각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유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공산주의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올레크는 카플란이 솔직하게털어놓는 의견에 짜릿한 흥분과 미약한 경계심을 느꼈다.  - P32

스탄다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올레크가 우상처럼 숭배하던 형 바실리였다. 바실리는 당시 전 세계에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소련의 비밀 요원, 즉 <불법 스파이>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 P32

첫 번째 종류는 소련 외교관이나 영사관 직원, 문화 담당관이나 무관, 공인된 언론인이나 무역 대표 등 공식적인 위장 신분을 갖고 활동했다. 외교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 <합법적>인 스파이들이 설사 발각되더라도 간첩 혐의로 기소될 위험이 없다는뜻이었다. 그들은 해당 국가에서 외교상 기피 인물 판정을 받고 추방될 뿐이었다. - P32

 반면 <불법> 스파이 (러시아어로 넬레갈)에게는 공식적인 지위가 전혀 없었다. 대개 그들은 가명으로 만든 가짜 여권으로 돌아다녔으며, 어떤 나라에 배치되든 눈에 띄지 않게 섞여 들어갔다(서구에서 이런 스파이들은 공식적인 위장 신분이 없다는 뜻의 non-official cover 를 줄여 NOC라고 불린다). KGB가 전 세계에심어 놓은 불법 스파이들은 평범한 시민 행세를 하며 신분을 숨기고 파괴적인 활동을 했다. - P33

 그들은 공식적인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활동했으므로, 흔적이 남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없고 외교관의 보안 채널로 통신을주고받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대사관에서 신분을 인정받은 스파이들과 달리, 그들은 방첩 수사관들이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모든 소련 대사관에는 상설 KGB 지부, 즉 레지덴투라가 있고, 다양한 공식 신분을 지닌 KGB 요원들이 레지덴트(MI6CIA의 표현으로는 지부장)의 지휘를 받아 움직였다. - P33

KGB는 국제 관계 대학교 내에도 사무실을 두었다. 여기 소속된 요원 두 명은 자질이 보이는 학생들을 찾는 역할을 했다. - P34

올레크는 대학 시절이 끝나갈 무렵 6개월 동안 현장을 경험할 수있게 동베를린으로 파견되었다. 소련 대사관의 통역관 직책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신이 난 올레크는 동독에 대한 브리핑을 받으러 S부로 오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 P34

하루아침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어도, 올레크는 KGB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당국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능이고, 복종은 각인된 습관이었다. - P35

그해 크리스마스에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가짜 신분으로 살고 있는 바실리와 합류했다.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는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는 이야기는 바실리에게 하지 않았다. 그의 형 바실리는 이미 KGB의 정식 요원이었으므로, 그렇게 이념적으로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 P36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에게 1962년 7월 31일부터 KGB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이미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면서 왜 그 이데올로기를 집행하는 기관에 들어갔을까? KGB일은 해외여행의 가능성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 P37

민간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에 올레크는 스탄다 카플란과 함께 흑해 해안에서 열린 학교의 방학 캠프에 참가했다. 카플란은 한달 더 대학에 남아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막강한정보국인 SB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두 친구는 곧 소련 블록을 위한 첩보 활동에서 동맹이자 동료가 될 예정이었다. - P38

KGB의 <붉은 깃발> 엘리트 훈련 아카데미는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숲속 깊은 곳에 위치했으며, 101 학교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당이 죄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에 죄수를 노출시켜 저항 의지를 꺾어 버리는지하 고문실 101호를 무의식적으로 연상시키는 얄궂은 이름이었다. - P39

<감시를 의식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훈련된 첩보원임이 드러날 수 있다. <첩보요원은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KGB 교관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외국인이 대놓고 미행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감시 기관이 눈치챈다면, 한층 더 비밀리에 더 집요하게, 더 독창성을 발휘해서 작업하게 될 것이다.>⁴

4 Leonid Shebarshin, "Inside the KGB‘s Intelligence School," Espionage History - P39

감시 없이, 또는 심지어 감시받는 중에도 정보원과 접선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비밀 작전의 핵심이다. 서방의 첩보 용어로, 정체를감춘 채 활동하는 요원은 <블랙>으로 불린다. KGB 훈련생들은 정확한 장소에서 특정 인물과 만나는 시험, 정보를 특정 장소에 놓아두거나 가져오는 시험, 미행 여부와 방식을 알아내는 시험, 겉으로드러나지 않게 미행을 따돌리는 시험, 깨끗하게 드라이클리닝을 완수하고 지정된 장소까지 오는 시험을 연달아 치렀다. - P40

그는 <신호 장소>를 설정하는 법, 즉 공공장소에 비밀 신호를 남겨 놓는 법을 배웠다. 예를 들어 가로등 기둥에 분필로 그려 놓은 표시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스파이에게는 특정한 시각에 특정한 장소에서 만나자는 뜻이 될 수 있었다. - P40

올레크는 자신의 첫 첩보명을 선택했다. 소련과 서구의 정보기관들은 가명을 선택할 때 같은 원칙을 사용했다. 본명과 같은 머리글자의 흡사한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누가 스파이를 본명으로 부르더라도, 그의 첩보명만 아는 사람들이 잘못 들었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구아르디예체프>라는 이름을 골랐다. - P41

모든 정보기관에 공통적인 모험심 덕분에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KGB를 직장으로 선택한 것은 그곳에서 하게 될 활동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비밀은 강력한 유대를 낳는다.  - P41

바실리 고르디옙스키는 제1주요부의 불법 스파이 부서인 S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술고래가 되었는데, 일을 마친뒤 대량의 보드카를 마시고도 정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높이 치는직장이었으므로 그것이 딱히 약점은 아니었다.  - P42

올레크는 형처럼 해외를 돌아다니며 신나는 비밀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발령받은 곳은 모스크바의 S부였다. 거기서 그는 불법 스파이들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 P42

올레크는 멋들어진 외국 어딘가에서 비밀 요원으로 일하는 대신 서류나 뒤적이게 되었다. 문서를 작성하는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불법 스파이에게는 그럴듯한 과거를 지닌 가짜 인생, 새로운신분, 위조서류가 필요했다. 그들 각자를 유지하고, 지시를 내리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 위해서는 신호 장소, 버려진 편지함, 스치는 접선을 복잡하게 구성해야 했다. - P43

S부의 복도에서 올레크는 역사상가장 큰 성공을 거둔 불법 스파이 중 한 명인 코논 트로피모비치 몰로디, 가명 <고든 론즈데일>을 소개받았다. 1943년에 KGB는 죽은캐나다 어린이 고든 아널드 론즈데일의 신원을 훔쳐 몰로디에게 주었다. 북미에서 자란 덕에 흠잡을 데 없는 영어를 구사하는 몰로디/론즈데일은 1954년 런던에 정착해 주크박스와 풍선껌 기계를 파는유쾌한 영업사원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포섭해 이른바 포틀랜드 스파이망을 만들었다. - P43

CIA 첩자의 첩보로 체포된 몰로디는 간첩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영국 법원은 재판 때도 그의 본명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올레크와 처음 만났을 때 몰로디는 모스크바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영국인 회사원과 교환되어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였다. - P44

그러나 반(半)은퇴 상태인 소련 스파이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국인 킴 필비였다. 1933년에 NKVD에 포섭된 그는 MI6에 근무하면서 KGB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다가 결국 1963년 1월에 소련으로 망명했다. 영국 정부를 깊이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 P44

소련 정보기관들은 아주 초창기부터 윤리적인 제약과 상관없이 움직였다. KGB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전쟁, 언론 조작, 역정보, 위조, 협박, 납치, 살인을 계획했다. 제13부,
즉 특수 임무부는 파괴 활동과 암살 전문이었다. 소련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지만, 외국의 동성애자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KGB는 동성애자들을 포섭했다. - P45

KGB는 직원들이 국내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멋대로 들여다보았다. 소련에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요원들은 반드시 결혼해서 자녀를낳고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결혼한 요원은 아내와 가족들이국내에 인질처럼 붙잡혀 있으니 해외 근무 중에 망명할 가능성이낮다는 계산과 통제가 모두 작용한 결과였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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رات비트겐슈타인은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언어와 침묵

소통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과 글 짓기를 주업으로 하는 나 같은 사람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게 되는 고민이다.  - P268

 1946년 10월, 런던 정경대학교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킹스 칼리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초대받아 ‘철학적 문제는 실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고 있었다. 청중 가운데에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버트런드 러셀BertrandRussell (1872~1970)도 있었는데, 철학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아주 달랐던 포퍼와 비트겐슈타인 사이의 열띤 논쟁이 벌어지며 비트겐슈타인이 난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부지깽이를 꺼내 들고 포퍼에게 달려드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P268

철학사에서 제일 과격했던 결투였지만, 기념비 따위는 없었다. - P269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로 불리는 비트겐슈타인은 (중략). 그가 생전에 펴낸 단 한 권의 책 <논리-철학 논고īractatus Logico-Philosophicus》와 그가 남긴 초고를 사후에 집대성해 발간한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는 현대 언어철학의 토대로 인정받고 있다. - P268

물리학도 시절 내 주변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논하던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학문적 목적이 바로 언어와 현실을 탐구함으로써 과학의 한계를 알아내는것이었기에, (후략) - P271

앞의 명제들을 예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진공에서 빛의 속력은 일정하다"라는 특수상대론의 명제를보자. 이 명제를 두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할 수 있을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가? - P272

(전략), 비트겐슈타인은 각각의 질문에대해 성실히 답함으로써 그 명제가 더욱 명확해지도록 하는 것이바로 철학의 임무라고 본 것이다. 자연과학 박사도 외국에서는 모두 ‘철학박사 Ph.D.‘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또 대학에서는 학위논문 심사를 디펜스defense, 즉 ‘방어‘라고 부른다. - P272

글자와 소리를 넘어 놀이로

젊은 군인으로서 참전한 1차 세계대전의 전쟁통에서 썼다고알려진 《논리-철학 논고》에 나타난 언어철학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조금 사라진 듯, 《철학적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가 사용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언어놀이language game‘ 개념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규칙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놀이처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273

자기가 쓴 《논리-철학 논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학설을 푸는 모습을보고 있자면, 그를 학문의 영역에서 ‘판매 후 무한책임 서비스 제도‘를 도입한 최고의 양심적 학자로 불러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P273

천둥과 같은 침묵

온라인 공간을 덮어버린 무의미하고 죽은 언어들의 산더미가 오늘 하루에도 얼마나 더 커졌을지 상상해 본다. 언어 뒤에 숨어있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의 개수만큼 커졌을 것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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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노시스의 전통에 의하면 인류에게 크라터(Kratér: 섞는 그릇), 즉 정신적 변환의 용기(容器)를 부여한 것은 바로 그 보다 높은 신이었다. 크라터는 여성원리로서 프로이트의 가부장적 세계에서는 자리잡을 데가 없었다. 물론 프로이트 혼자만이 그런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톨릭 사상의 영역에서 신의 어머니와 그리스도의 신부가 성스러운 신방으로 받아들여져 적어도 그일부가 수용된 것은 수세기의 주저함 끝에 최근에야 비로소 이루어진 일이다. - P367

연금술을 발견하기 전에 나는 동일한 주제의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우리집 옆에 어떤 다른 건물, 말하자면 다른 측면 회랑이나 낯선 부속건물이 서 있었다. - P367

드디어 내가 꿈속에서 그 다른 건물에 다다랐다. 거기서 나는잘 꾸며진 서재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주로 16~17세기 책들이있었다. 돼지가죽으로 제본된 큼직하고 두꺼운 2절판 책들이 벽을 따라 꽂혀 있었다. - P368

내가 잘 모르는 그 부속건물은 내 인격의 일부, 즉 나 자신의한 측면이었다. 그것은 내게 속해 있으나 내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 P368

리하르트 빌헬름이 1928년에 내게 보내준, 중국 연금술에 속하는 ‘황금꽃의 비밀‘을 통해 나는 연금술의 본질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연금술을 배워 알고자 하는열망이 일었다. 나는 뮌헨의 한 서적상에게 부탁해 그의 수중에들어오는 연금술책은 무엇이든지 내게 알려달라고 했다. - P370

나는 그 책을 거의 2년 동안이나 방치해두었다. 이따금 그림들을 들여다보고는 그때마다 ‘아이쿠,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그림이람! 사람들은 이 그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거야!‘라고생각했다.
수그러나 그것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문헌을 철저하게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 P371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이것은 물론 나에게는 바람직한 발견이었다. - P372

확실히 의식의 심리학은 개인의 생활에서 이끌어낸 자료로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노이로제를 이해하려고하면 의식에 대한 인식보다 더 깊이 들어간 병력(病歷)이 필요하다.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비상한 결단이 요구될 때 꿈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해석하려면 개인의 기억 이상의 것이 필요하게된다. - P373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P373

나만의 고유한 과학적 연구는 1903년의 연상실험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그것을 자연과학분야의 작업으로는 나의 첫 연구라고여긴다. 당시 나는 나만의 고유한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진단적 연상실험》 후에 정신의학저서 두 권이 나왔는데, 그것은《조발성치매의 심리학에 관하여》와 《정신병의 내용》이었다. - P374

나 자신의 무의식 이미지에 몰두하게 된 것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 그 시기는 1913~1917년이었는데, 그후로는 환상의 흐름이 차츰 스러져갔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더이상 마법의 산 속에 잡혀 있지 않게 되자, 나는 그 모든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고 거기에 관해 사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 P374

 "내가 프로이트나 아들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견해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내가 거기에 관해 숙고했을 때 유형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판단을 애초부터 결정하고 제약하는 것은 심리학적 유형이기 때문이었다. - P375

내가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을 낸 이래 줄곧 마음에 담아온주제는 리비도에 관한 이론이었다. 나는 리비도를 물리적 에너지의 정신적인 유사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것을 거의 양적인 개념이라고 여겼고 따라서 리비도에 관한 질적인 본질 규정을 모두 배격했다. - P376

물리학에서도 에너지와 그것의 여러 가지 표현, 즉 전기, 빛,
열 등에 관해 말한다.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심리학도 일차적으로 에너지를 취급한다. - P376

내가 심리학을 위해 이루려고 한 것은 자연과학영역의 일반적인 에너지론과 같은 그러한 통일성이었다. 나의 저서 《정신의 에너지에 대하여 (1928)》에서 내가 목표로 삼고 추구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P377

 예컨대 나는 인간의 본능을 에너지과정의 여러 표현으로 여기며, 열이나 빛들과 유사한 힘으로 본다. 현대 물리학자가 모든 힘을 이를테면 열에서만 끌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 역시 모든 본능을 권력이나 성의 개념 따위로 분류할 수 없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초기에 범한 오류였다 - P377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에서는 단지 나 자신이 어떻게 무의식과 관련을 맺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밝혔을 뿐 무의식 그 자체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환상탐구에 몰두하면서 나는 무의식이 변환하기도 하고 변환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377

나의 연구에서 본질적인 점은 일찍부터 세계관의 문제에 간여하고, 심리학과 종교적 문제의 대결을 다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심리학과 종교(1940)》에서 처음으로 그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그 뒤에 《파라셀시카(1942)》에서 다시 다루었다. - P378

내가 무위식의 상징표현이 기독교 또는 다른 종교오ㅓ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항상 생각해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기독교 복음에 문을 열어놓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서구인 정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 P378

기독교 관념과 분석심리학을 대면시키려고 시도하다가 나는 결국 심리적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라는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심리학과 연금술》에서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연금술의 중심개념인 ‘라피스‘, 즉 돌 사이의 유사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 P379

녹색 금은 연금술사들이 인간뿐 아니라 무기물에도 존재한다고 여긴 생동하는 본성이다. 그것은 생명의 혼, 즉 ‘세계혼‘ 또는
‘대우주의 아들‘, 전세계에 살아 있는 ‘안트로포스(Anthropos원래는 인간, 인류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좀더 근원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음-옮긴이)‘를 표현하고 있다. - P380

나는 아이온(1951)》에서 그리스도의 문제를 다시 다루었다.
그 책에서는 정신사적 유비(比)문제를 다루지 않고 그리스도 형상을 심리학과 대면하도록 했다. - P381

이러한 탐구를 하는 동안 역사적인 모습, 즉 인간 예수에 대한의문이 또한 제기되었다. 그 의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가 살던 시대의 집단적 심성은 그 당시 형성되었던 원형,
즉 안트로포스의 원초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거의알려지지 않은 한 유대인 예언자에게 집중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 P381

(전략). 그리하여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환상을 보았다는 소문까지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이 취한 형태는 과거에서는 비교할 만한 것을찾을 수 없고, ‘기술시대‘의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미확인비행물체(UFO) 현상의 전세계적인 확산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 P382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 P219

환자들


취리히대학 정신병원인 부르크횔츨리에서의 수년간은 나의 수련기간이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 P221

정신의학강의가 목표로 하는 것은 병든 인격에 관해 소위 추상화를 하고 진단과 증상의 기록, 통계로 만족하는 정도였다. 그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이른바 임상적 관점에서는 의사에게 중요한 것이 한 인간이요 한 개체로서의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 P221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히스테리와 꿈의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를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 P222

그 무렵 깊은 인상을 남긴 한 가지 사례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사례는 ‘우울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입원하여 내가 근무하는 병동에 와 있던 젊은 부인에 관한 것이었다. - P222

처음에 나는 그 진단에 대해 감히 의심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당시 나는 아직 젊은 데다 신참이었으므로 다른 진단을 내릴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례는 나에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 P222

연상검사를 통해 나는 그녀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비밀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녀가 우울증에 걸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요컨대 일종의 심인성 장애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법은 어떠했는가? 그때까지 그녀는 불면증 때문에 최면제 처방을 받고 있었다. 또한 자살할 염려가 있었으므로 감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외 다른 치료는 시행되지 않았다. 그녀는 신체적으로는 건강한 편이었다. - P224

그럼에도 나는 결과가 아주 불확실한 치료법을 감행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연상검사를 통해 알게 된 모든 사실을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P225

내가 동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이 사례에 대해 논의하면서 어떤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에게 있었다. - P225

1905년 나는 정신의학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같은 해 취리히대학병원 정신과 상급의사가 되었다. 4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다가 일이 너무 많아져 1909년에 사직해야만 했다. 해가 지날수록 개인병원 업무가 한층 늘어나는 바람에 나는 더이상 대학병원 일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13년까지 대학강사직은 유지했다. - P226

(전략).
이것이 나로 하여금 최면을 버리도록 한 체험들 중 하나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부인은 정말 완치되어 기뻐하면서 돌아간 것이다. 나는 늦어도 24시간 안에 그녀가 재발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상태를 알려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통증은 재발하지 않았다. 나는 의혹을 가지면서도 그녀가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해, 여름학기 첫 강의 때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바로 얼마 전에 다시 시작된 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 P228

 드디어 나는 그녀의 통증이 정말로 신문에서 내 강의 공고를읽은 바로 그날, 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나의 추측을 입증해준 셈이었으나 나는 여전히 그 기적적인 치유라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 P228

사실상 그녀로 인해 나는 그 지방에서 마술사와 같은 명의로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곧 두루 퍼져나가 그녀 덕분에 나는 개인적으로 돌보는 환자들을 처음으로 얻게 된 셈이었다. - P229

처음에 나는 내 개인병원에서도 최면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최면술을 사용해도 암중모색으로 그칠 뿐이었기 때문에 곧 이 방법을 포기해버렸다. 우리는 개선이나 치료가 어느 정도 오래 지속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나는 그와 같이 불확실한 가운데 일하는 것에 대해 늘 저항을 느꼈다. - P230

1904~1905년에 나는 대학병원 정신과에 실험적 정신병리학실습실을 개설했다. 그곳에서 나는 몇 명의 학생을 데리고 그들과 함께 심리적 반응, 즉 연상에 대해 연구했다. 프란츠 리클린(Franz Riklin) 1세가 나의 공동연구자였다. - P230

이러한 연상에 관한 연구 덕분에 나는 그후 1909년에 클라크대학으로 초빙되었다. 그 대학에서 나의 연구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와 같은 시기에 나와는 별도로 프로이트도 초빙되었다. - P231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 P236

(전략).
어느 날 저녁 늦게 병동을 지나가다가 나는 그 노부인이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자문해보았다. "왜 저런 동작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고는늙은 수간호사에게 가서 환자가 이전부터 늘 저런 모양으로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런데 내 전임자는그녀가 이전에는 구두를 만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환자의 낡은 병력기록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거기에 그녀가 구두를 수선하는 것 같은 동작을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후략). - P237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가 죽자 그녀의 오빠가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당신 누이동생은 왜 병이 들었죠?"라고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녀의 오빠는 자기 누이동생이 한 구두수선공을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러자 그때 누이동생이 ‘돌아버렸다‘고 했다. 그 구두수선공 같은 동작은 연인과의 동일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 P238

그때 나는 이른바 ‘조발성치매‘의 심리적인 기원에 관해 처음으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후로 나는 모든 주의를 정신병에서 의미있는 관련성들을 찾는 데 돌리게 되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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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을
조립할 수 있을까?

환원주의와 편견

우리는 과학을 흔히 사물의 이치를 ‘근원적으로 이해하려는학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 탓에 ‘가‘와 ‘나‘ 두 가지 학문이 있다고할 때, 어떤 것이 더 근원적인지 비교하며 어떤 학문을 다른 학문의 뿌리라고 생각하곤 한다. - P57

물론 진실을 조금 담고 있는 농담이지만, 이처럼 학문들을
‘근원‘과 ‘응용‘으로 나눠 줄 세우려는 시도의 배경에는 근원적인이해를 위한 최선의 과학적 방법은 연구 대상을 지속적으로 더작은 부분으로 쪼개나가면서 각 부분을 더 세세히 살피는 것이라는 환원주의 철학 reductionist philosophy이 있다. - P58

쪼갤수록 이해에서 멀어지는 역설

물론 대상을 계속 잘게 쪼개가면서 탐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근대과학이 태동하고 성공하는 데 기여한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P58

그 능력을 과신했던 천체역학자 피에르시몽 드 라플라스Pierre-SimonLaplace (1749-1827)는 "지금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위치와 속력을 알려주면 우주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말해주겠다"라며 자신의
‘신성한‘ 능력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 P59

하지만 이렇게 근원적인 과학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서만우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라플라스의 의기양양한 주장은 과학의 발전을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 20세기 말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 P59

대표벅으류 고체물리학 soild-state physics또는 응집물리학 condensed-matter physics에 큰 족적을 남기며 197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필립 W. 앤더슨Philip W. Anderson (1923~2020)은 많으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라는 에세이에서 물리학적 환원주의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자물리학particle physics(원자보다 작은 소립자들을 연구하는 물리학) 전문가들이 만물의 근원을 찾겠다며 원자를점점 더 작게 쪼개면 쪼갤수록 오히려 그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세포, 생명체, 인간 그리고 사회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일로부터는 더욱더 멀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 P60

근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보이는 것들

물론 또 다른 부류의 과학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자세로 전문지식과 상식이 (가끔은 아주 기발하게) 결합된 현실적인 방식으로 복합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P61

(전략). 그런데 약 10만 개나 되는 인간 유전자 각각의 역할을 알아낸답시고 유전자 단백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운동 방정식을 풀려는 환원주의자들의 시도는 100이면 100 모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유전자 제거는 이러한 접근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물체로부터 특정 유전자를 없애버린 다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함느로써 그 유전자의 엳할을 역으로 추적하는 철저히 경험주의적 방법이다. - P61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프롤로그

나는 물리학자다. 그 가운데에서도 나는 나를 문화를 연구하는 ‘문화물리학자‘로 부른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문화 연구를 과연 물리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 P5

물리학과 문화. 나는 두 낱말늬 뜻을 들어다보기만 해도 둘 사이의 연결고리 찾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여겨왔다. 문화란 인류의 삶의 방식과 이를 통해 만들어 낸 것들의 총체이므로 물리학도 응당 문화에 포함되고, 물리학이란 모든 물체들의 이를 알아내는 학문이므로 문화도 당연히 그것의 탐구 대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 P6

. 하지만 여행에서 즐거움의 태반은 지도에 없는 마을에 도착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기분 좋은 놀라움)에서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 P6

그 결과 나는 과학과 문화의 진정한 연결고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깨닫고, 이로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조각의 시공간을 끊임없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모습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P7

상상만 해도 머릿속이 아찔해질 정도로 광활한 우주에 비할바 없이 작디작은 사람의 몸으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 해내는 힘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 P8

 복합계 과학의 넓은 지평을 몸소 보여주신 미시간 대학교의 마크 뉴먼Mark Newman 지도교수님. 소중한 청춘기에 나에게 배움을 청함으로써 오히려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아람, 도흠, 승규, 세미, 경연, 규현, 동혁, 한라, 소희, 진영, 동주, 민상, 성필, 병휘, 이 길을 갈 기회를 주신 KAIST와 문화기술대학원의 동료 교수님들. 매일같이 하늘을 눈에 담은 채 공상에 빠져 있는 게 일상이던 어린 아들과 동생의 마음이 끝없이 자유로울 수있게 해주신 나의 부모님과 누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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