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하기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나오미는 양손으로 식칼을 움켜쥐고 남자에게 덤벼들었다. - P140

몸싸움이 벌어질 줄 알았다.
뜻밖에도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는 칼에 찔려 피가 철철 흐르는 배를 손으로 누른 채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졌다. - P140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 P140

제3장

미술 교사의
마지막 그림


미우라 요시하루


교편을 잡은 이후로 미우라 요시하루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쓴 적이 거의 없었다. (중략).
휴일에는 졸음을 참으며 가족을 데리고 야외로 놀러 나가서 텐트를 치고,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중략).
친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몇 시간이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일자리 소개는 물론 가끔은 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 P145

미우라는 호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그려야 한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

녀석을 위해서. - P146

1992년 9월 21일, L현 K산에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피해자는 부근에 사는 41세 남성 미우라 요시하루. 고등학교 교사로, 담당 과목은 미술이었다. - P146

-1995년 8월 28일・・・・・・ L현 지방신문사 ‘L일보‘ 본사


두툼한 파일을 앞에 두고 19세 청년 이와타 슌스케는 생을 삼켰다.
파일 표지에는 K산 미술 교사 살인사건(1992) 취재 자료 모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 P149

이와타 슌스케


이와타 슌스케는 올해 L일보에 입사한 신입이다. 3년 전,
어떤 일을 계기로 신문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L일보의 문을 두드렸다.
면접 때는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진실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열띠게 표현했다. 면접관의 반응은좋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 P150

L일보의 사원은 300명이 넘지만, 기자의 숫자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자로 활동하는 건 회사의 노른자위인 편집국 소속의 엘리트 사원뿐이다. 그들은 전부 대학을 졸업했다. - P150

구마이 이사무

(전략) 구마이는 예전에 편집국 소속 기자로서 수많은 기사를 써냈다.
그 당시 별명은 ‘개코 구마 형사 사건의 특종 냄새를 구마이보다 더 잘 맡는 사람은 없었다. - P151

어떤 사건을 쫓던 도중에 식도암이 발병했음을 알아차리고, 처음으로 장기 휴가를 얻었다. - P152

"구마이.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알다시피 기자는 목숨을갈아 넣어서 돈으로 바꾸는 직업이지. 병에 걸린 몸으로는 힘들 거야. 오늘부터 총무국으로 옮겨. 이제부터는 몸을 잘 챙기면서 느긋하게 일하도록 해." - P152

(전략). ・・・・・・ 그건 알지만 구마이는 이와타가 너무 가여웠다.
기자로 일하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없다.‘ .....현재 자신의상황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만큼, 응석을 받아줄 수는없다. 구마이는 호랑이 선배가 되기로 마음먹고 총무국 일을 철저하게 가르쳤다. - P153

"프리랜서 기자가 될 겁니다."
"......원래 기자를 지망했댔지."
(중략).
"3년 전에 K산에서 발생한 미술 교사 살인사건이요." - P154

이와타 슌스케


"좋은 선생님이셨어?"
구마이의 질문에 이와타는 대답을 망설였다. ‘좋은 선생님‘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미우라는 완벽한 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P155

"이와타 이거 알아? 역 앞 슈퍼에서 파는 하나야기 도시락‘이라는 건데, 선생님은 이걸 좋아해서 매일 사먹어. 넉넉하게 샀으니까 가져가서 할아버지랑 같이 먹으렴."
미우라는 그렇게 말하고, 매일 ‘하나야기 도시락‘을 두 개들려 보냈다. 덕분에 이와타는 가난해도 배를 곯지는 않았다. - P156

이와타는 사건이 미궁에 빠진 채, 미우라 요시하루라는 인간이 잊혀가는 사태를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미우라가 살해당해야 했는지 꼭 알고 싶었다. - P157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내가 보기에 넌 기자가 적성에 안 맞아."
(중략).
그 한마디에 이와타는 분노가 솟구쳤다.
"구마이 씨!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저는 진심으로 기자가 되고 싶다고요!"
(중략).
"난 3년 전까지 이 회사에서 기자로 일했어. 그건 알지?"
(중략).
"이건 말하지 않았지만, 난 당시 K산 사건을 취재 중이었어." - P158

"응. 그래서 사건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지.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도, 넌 지금까지 눈뜬장님처럼 지냈어. 왜 내가 예전에 기자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건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지?" - P159

구마이는 자기 책상 서랍에서 두툼한 파일 하나를 꺼냈다.
표지에는 K산 미술 교사 살인사건(1992) 취재 자료 모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이 사건에는 애착이 있어서 기자를 그만둔 후에도 자료를 처분하지 못했어. 간직해두길 잘했군." - P159

솔직히 가능하다면 은사가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진상을 밝히겠다‘고 결심한 건 이와타 본인이다.
이와타는 생침을 삼켰다.
"이와타, 각오는 됐나?" - P160

7시 50분에 학교 도착, 교무실에는 들르지 않고 바로 미술실에 가서 당시 3학년이었던 여학생 가메이도와 일대일로 수업을 진행했어."
"일대일? 미술부 수업인데요?"
"듣기로는 미우라 씨가 너무 엄격하게 수업해서 미술부원숫자가 확 줄어들었대." - P162

"덧붙여 미우라 씨는 수업 중에 오후부터 K산에서 캠핑할예정이라는 걸 가메이도에게 말했어." - P163

"도요카와…………? 그건 누군가요?"
"미대 시절부터 미우라 씨와 친구였던 남자야. 뭐, ‘친구‘라고는 해도 도요카와는 미우라 씨를 내심 싫어했던 것 같지만." - P164

"미우라 씨는 이렇게 제안했어. 도중까지 같이 산에 오르다가 도요카와만 그날 하산하면 된다고."
"도중까지는 무조건 같이 가자는 건가…………. 어쩐지…… 막무가내네요." - P165

"맞아. 나도 취재하러 몇 번 올라갔는데, 경사가 완만해서아주 편하더군. 등산로에는 로프를 쳐놔서 길을 잃을 걱정도 없고 말이야. (중략).
4부 능선과 8부 능선에 ‘광장‘이라고 불리는 휴게소가 있거든. 4부 능선 광장에는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어서 밥을 먹기에 딱 좋아. 한편 8부 능선 광장은 캠핑에 적합하지.
(후략).
그 후, 하산하던 사람 몇 명이 등산로를 올라가는 미우라씨를 봤어. 16시경, 6부 능선 부근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지. (중략). 즉, 미우라 씨가 8부 능선에 도착한 건 17시 이후로 추정돼." - P166

"...그 남자는 왜 그렇게 아침 일찍 산에 오른 건가요?"
"K산을 담당하는 산림 정비사였거든. 8부 능선의 설비가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태를 확인하러 간 거야
(중략). 즉, 일요일 낮에 대학생등산 동아리가 장난으로 걷어차서 부러뜨렸다는군."
"난폭한 짓을 했네요." - P168

"산림 정비사는 하산해서 경찰에 신고했어. 정오쯤 현장 검증이 실시됐지. 현장에 남아 있던 배낭에서 미우라 씨의 신분증이 발견됐고, 산기슭 주차장에 미우라 씨의 차가 세워져 있었으므로 시체의 신원은 미우라 씨로 추측됐어." - P169

"(전략). 툭 까놓고 말하자면 간신히 인간 형태를 유지한 뭔가였지." - P169

".......만약 신원 은폐가 목적이라면, 신분증을 현장에 남겨놓는 건 이상해요. 즉・・・・・・ 극심한 원한… 쪽이겠죠."
"맞아. 범인은 미우라 씨를 몹시 증오한 거겠지." - P170

"그런데 미우라 선생님은 언제 살해된 걸까요?"
"(전략), 다행이랄까 위장에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검출됐지. ‘하나야기 도시락‘의 내용물과 동일했대. (후략)." - P170

"그렇군요....... 어? 잠깐만요. 미우라 선생님이 8부 능선에 도착한 건 17시 이후였잖아요."
"응, 요컨대 미우라 씨는 8부 능선에 도착하자마자 살해당한 거야." - P171

"그리고 미우라 선생님이 일요일에 산을 오른다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야기 속에 나온 인물 중 수상한 건.. 미우라 선생님의 부인, 미술부원 가메이도씨, 그리고 도요카와 씨로군요." - P173

"응. 다만 고려해야 할 힌트가 하나 더 있어. 미우라 씨의소지품 중에서 없어진 물건이 있었지. 침낭, 그리고 단팥빵과 돈가스 샌드위치야, (중략). 하지만 먹기 전에 살해당했을 테고, 부검 결과 위장에서는 검출되지 않았어. 즉, 범인이 가지고 갔을 가능성이 커." - P174

"그렇구나. ‘범인은 산에서 밤을 보냈다‘고 경찰이 오해하면 밤부터 아침에 걸쳐 알리바이가 있는 자신은 용의자에서 제외된다・・・・・・ 그런 작전이로군요." - P175

"그럼 범인은...... 도요카와." - P176

"요컨대 도요카와는 산을 내려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중략).
"아니, 그런 목격 증언도 없었어. 말하자면 도요카와는 4부 능선에서 느닷없이 사라진 거야. 경찰의 생각은 이랬어. 도요카와는 미우라 씨와 헤어진 후, 등산로를 벗어나 8부 능선까지간게 아닐까." - P177

"B시간에만 알리바이가 있어서・・・・・・ 의혹이 더 커졌다는 건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범인은 도요카와밖에 없다. 하지만...... - P178

"이렇게 수상한데요?"
"수상하기만 해서는 안 돼. 명확한 증거가 딱 하나만 있어도 간단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런 증거는 발견되지않았어.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지. (후략)." - P179

구마이는 파일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뭐, 이뿐이라면 수많은 엽기 살인사건 중 한 건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이 사건에는 기묘한 점이 하나 더 있었어." - P179

"기묘한 건 이 그림이 아니야. 이다음, 8부 능선 광장에서그린 마지막 그림이지."
"마지막 그림?" - P180

"이거・・・・・・ 정말로 미우라 선생님이 그리신 건가요?"
"응, 미우라 씨의 그림이 틀림없어. 8부 능선 광장에서 보이는 산줄기의 모습을 그린 거래.

(후략)." - P181

"이상하지? 다른 그림과는 그림체가 전혀 달라. 더구나 이건 영수증 뒷면에 그린 거야." - P182

"(전략). 각 산의 높이, 경사, 위치 관계, 그리고 산 위에 위치한 송신탑까지 충실하게 재현했어.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싶었던 거겠지. 보조선까지 만들었어."
"보조선・・・・・・ 이 뭔가요?"
"사진을 자세히 봐. 종이에 접힌 자국이 있지?"
"......확실히 촘촘하게 접은 듯한 자국이 있네요." - P183

질문을 받고 이와타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하나 떠올렸다.
"...... 미우라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P185

"선생님은 생전에 K산 8부 능선에 여러 번 올라가셨잖아요. 예전에 갔을 때 그린 그림이 지갑에 들어 있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건 아니야. 아까도 말했잖아. 그림이 그려진 영수증은그날 낮에 역 앞 슈퍼에서 발행된 거야." - P186

미우라는 범인이 처분하지 않게끔, 쉽게는 풀 수 없는 암호를 남겼다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의문이 샘솟는다. 범인은 왜 그림을 현장에 남겨둔 걸까.  - P187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에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즉,
미우라는 평소 보조선을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유형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산줄기 그림을 그릴 때는 일부러꼼꼼하게 보조선을 그었을까. 그렇게 하면서까지 정확하게그려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 P188

다음 날 점심시간, 이와타는 책상에 수첩을 펼쳤다. (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수상한 사람은 도요카와다. - P191

"그렇구나.......
그런데 그건 어쩌기로 했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잖아..…………."
(중략).
"응....... 그게 좋아.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월급을 포기할건 없어. 프리랜서 기자는 언제든지 될 수 있으니까. 서두를필요 없겠지."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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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자연철학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자연철학은 실제로 대학의 연구 활동에서 사라져 버렸다. - P11

우선 자연에 대한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철학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자체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이다.¹

1 이 책이 포함된 Darmstadt 과학 총서 중에서 H. Noack이 쓴 입문서, Allgemeine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참고. - P11

철학은 "계속적인 물음(Weitefragen)"을 제도적 특징으로 삼는다. (중략). 반면 철학은 고유한 과제 설정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것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확히 특징지어진다. - P12

철학은 당대의 이론들에 대한 기초 보강작업(Unterfangen)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역사적-비판적 해석"이다. - P12

 자연철학의 형태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전제들을 연구하는 다른두 학문 분야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 P14

1. 과학학(Wissenschaftswissenschaft, science of science): (중략). 원래 "자연과학사"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이러한 종류의 매력적인 연구는 자연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참고 Kuhn 또는 van den Daele 등).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 P14

2. 과학론(Wissenschaftstheorie, philosophy of science): 논리적 분석과 경험주의를 하나로 결합한 분석철학의 토대 위에서 자연과학의 ‘방법‘에만 치중하는 철학의 연구 경향이 폭넓게 발전했다. (후략).⁴


4 이것에 대한 설명은 무엇보다 참고문헌에 나오는 책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더 자세한 참고 자료는본 총서 중 E. Ströker가 쓴 입문서와 『W. Stegmüller 1969』에 있다. - P15

(전략). 오히려 우리는 자연과학의 ‘내용‘에 의존하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내용이 과학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이다. (중략).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오늘날까지 주로 수리물리학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 P15

2장

무엇이 실재인가?


우리는 잡다한 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실재 "자체"라고 하는 고전물리학적 관념에 젖어 성장했다. 수많은 지각 가능한 속성(Eigenschaft)과 변화는 모두 물리학의 근본 법칙에 따른 극소 미립자의 운동에 환원된다. - P19

오늘날의 자연과학은, 그것이 설명하는 바가 플라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수리적인 과학이다. "바탕에 깔려 있는 실재(zugrundeliegende Wirklichkeit)"라는 것도근대 물리학에 의해 완전히 추상화되었으며 수학적 형식 체계를 통해서만 서술할 수 있다. - P21

근대 물리학에 대해서는 다음 장들에서 논할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시사한 것과는 세부적인 면에서 크게 다르고 더욱더 복잡하다. - P22

칸트는 실재를 또 다른 측면, 즉 인식하는 주관의 측면에서 고찰했다. 칸트의 사상을 다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무엇보다 오늘날의 경험주의적 발상들을 고려할 때 유익한 일이다.³

3 C.F.v.Weizsäcker 1977 a참고 - P22

흄은 인간의 인식 영역에는 두 가지, 즉 "사실에 대한(on matters offact)" 영역과 "관념의 관계에 대한(on relations of ideas)"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 P22

 즉, 과거의 사건에서 논리적으로 미래의 사건을 추론하는 일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 - P22

그러나 흄은 이러한 귀납 원리의 증명이 이미 귀납 원리를 전제하고있다는 점을 정당하게 지적했다. 즉 우리가 과거로부터 미래를 추론할수 없다면, 과거에서 거둔 귀납 원리의 대성공도 미래에서 그 타당성에대한 추론을 불허할 것이다.⁵

5 오늘날의 논의에서 이에 대한 증인으로 불려 다니는, 칼 포퍼(K. Popper, 1935)의 정식은 이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일반적 법칙은 실증 사례들로 이루어진 자료에 의해 ‘검증(verifiziert)‘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법칙의 타당 범위가 수없이 많은 사례, 특히 미래의 사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포퍼의 타개책은, 법칙 가설(Gesetzeshypothesen)은 최소한 단 하나의 반례(Gegenbeispiel)에 의해 반증 가능(falsifizierbar)하며, 그것이 반증을 견뎌 낼수록 더욱더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퍼는 하나의 가설을 반증하는, 측정장치(Mäßgerät)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은 이미 참인 것으로 가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했다. - P23

(전략).
이것을 또다시 동어반복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만큼만 경험할 수 있다. 칸트는 경험이 성립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고, 따라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흄의 습관과 믿음으로부터의 설명을 강화했다. - P24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그가 사물을 그 자체(an sich selbst)로만 바라보려 했던 것이 아니라 -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것은 인간의경험 외부에 존재하게 되므로 - ‘우리에 대한(für uns)‘ 경험이 가능해지기 위한 제반 조건을 고찰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는 실재 자체라기보다는 경험을 수행하는 우리의 능력에 의해 미리 각인된(vorgeprägt) 실재인 것이다. 지각하는(wahrnehmend) 생물의 "주관적" 조건이 지각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생물학적 사이버네틱스⁶의 인식은 이것과 같은 방향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6 K. Lorenz 1973, H.v.Ditfurth 1976, C.F.v. Weizsäcker 1977b - P25

앞서 말한 대로 칸트는 만약 우리가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그대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인정한다면, 객관성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요구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 P26

우리는 우리 능력의 본질을 실재의 분석에 포함하는 또 다른 이론을 마흐(Ernst Mach, 1838~1916)에게서 볼 수 있다.⁷



7 예를 들어 E. Mach 1933 IV4와 그곳에서 인용된 논문들. - P26

물리학은 마흐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원자나 소립자의 특성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근대에 이르러 오히려 플라톤보다 더 순진하게 실재의 단순 요소를 탐구하려 했다. 흥미롭게도, 마흐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원자 가설을 자신의 감각 요소와 비교하며 터무니없이 위험한 사고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 P28

(전략). 이 논증은 물질의 어떤 부분들은 분명인간이 더 나눌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인간이 결코 ‘배제‘할 수도 없다는 것, 인간이 그 시대에 그 부분들의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을 때조차 그러한 부분이 여전히 그것의 부분들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있다.  - P30

내가 보기에 이러한 결론은 부분들을 전체와 같은 종류로 여기는 한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 P30

근대 물리학은 부분과 전체의 동질성을 지양하며, 이율배반의 또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중략). 여기서는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의 가분성의 명제(These zur Teilbarkeit)를 설명하고자 한다.  - P31

(전략), 원자는 핵과 전자껍질로 이루어지고, 그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양성자, 중성자, 전자 그리고 약 200가지 이상의 소립자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⁸®



8 Particle Data Group 참고.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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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저키스트가 우연히 새디스트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변태성의 각 주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상반되는 변태성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같은 변태성을 가진 사람의 어떤 특정한 "요소"인 것이다. - P49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용어는 단지 두 사람의 실제적인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의 주제는 무의식의 세계에 떠도는 "익살"의 형태이긴 하나 항상 계속해서 발견되고있다. - P50

변태성의 능동적 측면과 수동적 측면 중 어느 한 측면이 더 집중적으로 발전하여 개인의 지배적인 성적 활동을 대표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새디스트는 동시에 매저키스트이기도 하다.⁸ - P50

세 번째 논의는 변형과 관련되어 있다. 이 논의는 목적과 그 대상에 따라 (반대성향으로의 역전, 자신으로의 회귀) 성본능들이 서로 합치거나 변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의 역시 대단히 이상하다. 변형이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어져 있기 때문이다. - P51

사실 프로이트는 다윈보다는 조프루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와 더 많은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변태가 된다기보다는 단지 유아기의 변태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할 때의 프로이트의 공식은 조프루아가 기형성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공식과 매우 유사하다.  - P52

두 가지 유형의 본능들이 서로 복잡하게 결합하여 전체적인 어떤 형태들의 계층을 이루어내며, 개인들은 이 중 어느 한 계층에서 고착되거나 퇴행한다. - P52

변태성의 문제에 있어서 그 변태성의형성과 구체적이고 특수한 표현을 추상적인 "연도관(管)"처럼, 마치 공통적인 리비도 물질이 여기저기 형태를 바꾸며 흘러다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 P53

 쾌감-고통 콤플렉스는 새디즘과 매저키즘 모두에 공통적인 일종의 중립적 물질로 생각된다. 또한 그 연관성은특정한 주체에 적용되어 더 구체화되며, 각각의 경우에 그것들이발생하는 구체적인 형태와는 상관없이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 모두가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 P53

(전략). 거의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 상이한 요소들로 구성된 단일한 일련의 연속적 결과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진화론"에 빠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이라는 것은 상이한 연속적 상관성의 결과로서, 또는 유사해 보이지만 전적으로 상이한 메커니즘에서 형성된 결과로서 등 몇 가지의 독립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54

나는 새디즘과 매저키즘, 그리고 이들 간의 공통분모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쾌감-고통 콤플렉스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같은 기원을 가지며 동시에 병존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유추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 P54

8. 『성의 이론에 대한 세 가지 에세이』, 심리학 전집 (호가스, 1955-65), VII권, p.159. - P162

4

마조흐 작품에 나타난 세 명의 여성

바흐의 여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잘 발달된 신체에 자신만만한 성격, 친절함과 순진성이 강조되는 순간에도 오만한 의지와 잔인한 성향을 잃지 않는 인물들이다. - P55

(전략). 그러나 옴팔레 (Omphale)가 헤르클레스(Hercules)에게 여성의 옷을 입혀 그의 남성다움을 빼앗듯이 결국 승자는 여성원리인 아프로디테이다. 남녀 간의 동등성은 여성이 남성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는바로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왜냐하면 "남성은 여성이 자신과동등해지자마자 불안감에 떨게 되기 때문"이다. - P56

 실제로 마조흐는 그가 그리스인 또는 아폴로라고 부르는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에게 여성의 새디스틱한 욕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 P57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자웅동체 유형도 새디스틱한 유형도 마조흐의 이상을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 P58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창녀의 주제로 시작하여 새디스틱한 주제로 끝난다. 그러나 그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이 양 극단 사이, 즉 또다른 제3의 요소에서 전개된다. (중략). 매저키즘은 한쪽의 극점에서는 아직 작동을 못하고 있고, 다른 쪽의 극점에서는 이미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 P59

그렇다면 그 중대한 행위가 발생하는 두 영역 사이의 장소, 그 기본적인 매저키즘의 요소는 무엇인가? 창녀와 새디스트 사이를 잇는 제3의 여성의 유형은 과연 무엇인가? - P60

 매저키즘의 이상은 냉정함-모성-엄격함-차가움-감성-잔인성이라는 말들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박해자 여성과 그 "상반되는 짝"의 차이, 창녀와 새디스트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 P61

새디스트의 "냉담성"은 근본적으로 감정에 대한 냉담성이다. 모든 감정들, 특히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감정까지도 비난을 면치 못한다. - P61

사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진짜 난봉꾼들은 쉽게 격정적인 감정에 휘말리며, 순수히 악 자체를 위한 행위 도중에조차 "첫 번째 불행으로 전향하기 쉬운" 그런 인물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 P61

마조흐는 당시의 저명한 민족학자이며 헤겔파 법학자인 바호펜(Bachofen)의 저서를 잘 알고 있었다. 헤겔뿐만 아니라 바호펜 역시 그에 못지않게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꿈 이야기에 영감을 제공해 주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 P62

(전략).
그런데 창녀 시대의 난잡한 육감성인 그리스적 이상이 어떻게해서 여성정치적 감성에 의한 새로운 질서라는 매저키즘의 이상으로 변형되는 것일까? 이것은 간단하다. - P63

매저키즘의 환상 속에서 모피는 실용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모피는 장식이 아니라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입는 옷일 뿐이다.  - P64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꿈속의 여인은 잃어버린 그리스 세계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를 이야기한다 : (후략). - P64

사드와 마찬가지로 마조흐 역시 자연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나 사드와는 다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조야한 자연은 임의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어디서나 교활함과 폭력, 미움과 파괴, 무질서와 육감성이 난립한다. - P65

마조흐가 보여주는 세 명의 여성들은 세 명의 근원적인 어머니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첫 번째는 자궁의 이미지를 가진 원시적이고 창녀와 같은 어머니이며, 배설과 늪의 어머니이다. 두 번째는 연인의 이미지를 간직한 오이디푸스적인 어머니로서 피해자나 공조자의 모습으로 새디스틱한 아버지와 연결된다. 이 사이에 양육과 죽음을 모두 관장하는 대초원의 어머니인 구강적인 이미지의 어머니가 있다. - P66

매저키즘 특유의 요소는 바로 자궁의 어머니와 오이디푸스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가움, 고독, 죽음의 이상을 의미하는 구강적인 어머니인 것이다.¹³ - P67

13. E. 베르글러, 「근본적인 신경증」 (뉴욕: 그륜, 1949). - P162

5


부모

어머니와의 명백한 갈등과 모든 원인을 어머니 탓으로만 돌리려는 매저키스트의 태도를 생각해 볼 때, 매저키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주장이 있다. - P68

"아버지"에 대한 가설에는 진지한 현상학적 · 중후학적 증거가 필요하며, 이미 병인학(病因學)을 전제로 하고 있는 추론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 P68

(전략). 그러나 죄의식의 새로운 형성과 수동적 역할에서 발생하는 거세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매저키스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처벌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대체시키는데, 이는 약화된 형태의 처벌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애정관계 그 자체로 대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 P69

확실히 새디즘에는 부계적 가부장적 주제가 지배적이다. - P71

 사드는 어머니를 "부드러운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 보호·재생산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는 이차적 자연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아버지는 사회의 보수주의라는 점에 있어서만 이차적 자연에 속할 뿐이며, 본질적으로는 기존의 모든 질서를 초월하며 무질서와 혼란을 퍼뜨리는 거친 분열성의 분자들로 구성된 일차적 자연을 대표한다. 아버지는 곧 일차적 자연인 것이다. - P71

새디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생산적인 것들에 대해 완벽한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일차적 자연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 P7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나서 (The Passing of the Oedipus Complex)"에서 프로이트는 두 가지 경우를 그 가능한 결과로 보고 있다. 즉 어린이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적극적이고 새디스틱한 경우가 있고,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수동적이고 매저키스틱한 경우가 그것이다. - P72

매저키즘의 주체가 속죄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자신과 아버지의 유사성, 자신 내부에 숨어 있는 아버지와의 닮은 모습이다. 매저키즘의 공식은 바로 굴욕을 당하는 아버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매질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질을 당하는 사람이다. - P73

매저키스트의 이상적인 여성이 곰이나 늑대를 사냥하고 그 털가죽을 벗긴다. (중략). 매저키즘의 시작은 여성이 이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곰과 털가죽에는 독자적인 여성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 P73

그러나 아버지의 기능을 세 명의 어머니들의 이미지로 전이시키는 것은 매저키즘의 환상이 보여주는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 P74

사드의 "범죄동료들의 사회"에서 보이는 보편적 매춘이라는 꿈은 어머니를 파괴하고 딸에게 우선권을 주기 위한 객관적 제도에서 구체화된다(어머니는 추방되고 대신 딸이 협력자로 등장한다). 반대로 마조흐의 경우, 매춘의 이상적인 형태는 사적인 계약에 근거하며, 이를 통해 매저키스트는 선한 어머니로서의 능력을 갖춘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성에게 제공한다.¹⁶ - P75

구강적 이미지의 선한 어머니에게 모든 기능들을 집중시키는것은 아버지의 모습을 지우고 아버지의 자질과 기능을 세 명의 여성에게 분배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이며, 이러한 사실은 종국에가서는 구강적 이미지를 가진 어머니의 승리로 끝나는 세 여성의 투쟁과 현현(顯現)에 의해 더욱 명확해진다. - P76

세 명의 어머니들은 매저키즘의 세계에서 문자 그대로 아버지를 쫓아낸다. - P76

자끄 라깡(Jacque Lacan)이 최초로 공식화시킨 근본적인 법칙에 따르면, 상징적 차원에서 폐기되었던 대상은 환각의 형태로서 "실제"적 차원으로 복귀한다.¹⁸ - P78

텍스트의 모든 묘사들은 그 장면의 완전한 "실제성"이 환각의 형태로만 경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있는데, 이때 환각은 환상의 추구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P78

테오도르 라이크는 자신을 막 때리려는 여성에게서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흔적을 주체가 인식하자마자 모든 "마술적" 효과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매저키즘의 한 장면을 인용하고 있다.¹⁹ - P78

그렇다면 현실과 공격적인 아버지의 복귀라는 환각에 대한 매저키스트의 방어책은 무엇인가? - P79

. 우리는 여기에서 매를 맞고 굴욕과 조롱을 당하는 것이 매저키스트의 내부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 아버지와 닮은 어떤 것, 아버지의 공격적인 복귀 가능성이라는 것을보았다. 맞고 있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인 것이다. - P79

 이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매저키즘의 결과에 대한 전조이며 새로운 인간을 나타내지만, 반면에 새디스틱한 역할에 의해 그는 매저키즘이라는 실험을 방해하고 그 결과에 제동을 거는 거칠고 위험한 아버지를 대표하기도 한다.  - P80

그러나 사실 (아버지가 환각적 형태로 복귀하는 최악의 결과로접어들지 않는 한) 제3자는 자궁의 이미지를 가진 어머니와 오이디푸스적인 어머니를 선한 어머니로 대체함으로써 두 양 극단의 어머니들을 중화시키기 위한 것일 뿐, 제3자 자체를 위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 P81

매저키즘이 반드시 여성적이고 수동적이며 새디즘은 남성적이고 적극적인가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 P81

여성성은 완전무결한 것으로 간주되며, 부인에 의해 정지(페니스의 부재가 반드시 남근의 부재를 의미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페니스의 존재가 반드시 남근의 소유를 의미할 필요도 없다) 된 남성 옆에나란히 위치한다. 그러므로 매저키즘의 경우 이상적인 남근과 재생의 능력을 소유한 매질하는 어머니와 관련하여 소녀도 아들의 역할을 별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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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드와 마조흐의 언어


"그것은 너무나 이상적이기에 … 그토록 잔인하다."
도스토예프스키, 『학대받은 사람들』


문학의 용도는 무엇인가?  - P17

질병의 이름이 특정 환자의 이름에서 유래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의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로저스씨병, 파킨슨씨병 등), 우리는 질병의 이름을 붙이는 원리에 대해서 세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 P17

(전략). 의사가 어떤 질병에 자신의 이름을 부여할 경우 증상들의 집단에 고유명사가 연결되는, 즉 고유명사가 증상들을 의미하게 된다는 점에서 언어학적으로나 기호학적으로나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P18

매저키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던 크라프트-에빙은 마조흐가 고통과 성적 쾌감의 관계뿐만 아니라 포박과 굴욕에 관련된 더 근본적인 어떤 것을 통해 그 임상의학적 실체를 재정의한 공을 인정했다[제한된 경우이기는 하지만 기통애(愛)가 없는 매저키즘이 있으며, 매저키즘 없이 기통애만 있는 경우도 있다.]¹ - P19

원래 폭력이라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또 말을 한다고 해도 아주 적게 한다. 반면에 성은 거의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성적인 수줍음은 생물학적인 두려움과는 무관하다. - P19

그렇다면 우리는 마조흐의 경우 역시 스스로 박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인 그가 박해자의 그 위선적인 언어로 말한다고 할 수있으므로 마조흐의 언어 또한 사드와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가? - P20

포르노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 명령문(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식의) 뒤에 외설적인 묘사가 뒤따르는 형태의 문학이다. 폭력과 에로티시즘은 분명히 만난다. - P20

사드에게서 우리는 고도로 정교한 논증적인 언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언어의 고차원적 기능으로서의 이러한 논증은 연속적인 묘사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있다. - P21

(전략). 새디스트에게는 상대를 확신시키거나 설득시킨다는 것, 즉상대를 교육시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의 실제 관심은 전혀 다른 데 있다. - P22

바타이유는 다시 사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드의 언어는 화자와 청자 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언어이다." (후략). - P22

마조흐의 작품에서도 명령의 초월성과 묘사의 고차원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경우 그의 언어는 매우 설득적이고 교육적이다. - P24

포르노 문학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한계, 즉 어떤 의미에서 비언어라 할 수 있는 상황과 대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말하지 않는 폭력,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에로티시즘).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언어의 내적 분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P27



1. 크라프트 예방이 자신의 매커니즘과 무관한 "매절당하기"를 지적하고 있다. CF 『성의 병리학』 ( 몰 개정판, 1963) - P161

2

묘사의 역할

사드의 경우 초월적 기능이 논증적이고 바흐의 경우 그것이 변증법적인 만큼 묘사의 역할과 중요성 또한 상당히 다르다. - P28

 사드의 묘사는 그 자체로서 외설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극적인 요소는 사드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마조흐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 P28

(전략). 의심할 바 없이 이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굴욕적인 상황으로부터 이차적인 이익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는 바로 매저키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P29

마조흐의 묘사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두 종류의 ‘전이‘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 P30

사드 작품의 저변에는 넓고 깊은 의미에서의 부정 (否定, neg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선 부정의 두 가지 수준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P30

파괴는 단지 창조와 변화의 역일 뿐이며, 무질서는 또다른 형태의 질서이고, 죽음에 의한 해체는 생명의 구성과 동일시된다. - P30

사드의 작품에는 이성주의가 접목될 수 없다. 사드가 이성 특유의 극단적 속성인 망상의 사상을 전개시키는 것은 특유의 내적 필연성 때문이다. - P31

「소돔 120일」에서 난봉꾼은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없는 것", 부재하는 대상, 즉 "악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 P32

생 퐁(Saint-Fonal)은 자신의 이론적 제계(사드는 이 체계를 통해 이성의 순수한 망상이라는 개념을 전개시키고 있다)를 설명하면서 "이차적인 자연에서 발생한 B라고 하는 어떤 구체적인 고통"이 과연 어떤 조건 하에서, 일차적인 자연에서 필연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영원히 재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 P32

즉 논증적 이성의 냉정함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미 잘 알려진 난봉꾼 특유의 그 냉담성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며, 사드가 보여주는 포르노 학자의 이와 같은 자제력은 보기에 딱할정도로 스스로 "열광"에 빠져버리는 일반적인 포르노 작가들과사드를 구별해 주는 요소이다. - P33

새디스트가 자신의 논증을 위해 이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논증적 기능이 묘사적 기능을 복종시키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것을 확대·응축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4

『쾌락원리를 넘어서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프로이트는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또는 파괴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 간의 차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34

죽음의 본능과 에로스의 결합은 말하자면 타나토스의 "재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 P35

(전략), 이러한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무의직속에는 노(No, 순수부정)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가 죽음의 본능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절대적 부정인 타나토스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때의 타나토스는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에서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 P35

죽음 또는 파괴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 사이의 구별은 사드가 구별한 두 가지 요소, 두 가지 자연의 구별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 P35

프로이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인 [否認: Vernenung. Verwerfung, Verleugung: 라깡(Lacan)은 각 용어들의 차이를 구분하고 있다]의 과정을 암시하는 저항의 형태들을 분석하고 있다. - P35

 프로이트가 보여준 가장 훌륭한 예는 바로 물신숭배이다. 물신은 여성남근 (fermale phalus)의 이미지 또는 그 대체물로서, 이를 통해 우리는 여성에게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다. - P36

부인과 믿음의 진행과정으로 정의된 물신숭배는 필연적으로매저키즘에 속한다. 새디즘에도 물신숭배가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물론 새디스트가 저지르는 살인에 의식(儀式)이 선행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 P37

반면에 일차적인 의미에서 물신숭배 없는 매저키즘이란 있을수 없다. 마조흐가 자신의 이상주의, 즉 "극도의 감각주의"를 정의하는 방식은 보기에 오히려 하찮은 것처럼 보인다. - P37

마조흐의 소설에서 그가 의도한 효과가 정점을 이루는 순간은 바로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마조흐를 긴장감을 낭만적 소설의 필수요소로 이용한 최초의 소설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P38

 마조흐의 미학적이고 드라마틱한 긴장감은 사드의 기계적이고 절정을 지향하는 반복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P39

이제 마조흐의 작품에 외설적인 묘사가 부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물론 묘사의 기능은 남아 있다. 그러나 묘사에 따르는 잠재적인 외설성은 부인되거나 정지된다. - P39

 사드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성(城)은 잔인한 박해자들의 움직임을 극대화시키는 빛과 어둠이라는 잔악한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 마조흐의 배경을 이루는 무거운 태피스트리 장식, 떠들썩한 친교관계, 여성의 침실과 벽장은 정지된 움직임과 정지된 고통만이 눈에 드러나도록 하는 명암의 대조를 형성하고 있다. - P40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근본적인 차이는 부정적인 것과 부정, 부인과 긴장감이라는 상반된 과정들로 요약될 수 있다. - P40

3


사드와 마조흐는 상호 보완관계인가?


사드와 마조흐에게 문학의 기능은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묘사되어 있다. - P42

흔히 일정한 한새를 넘어서는 지나가아이에서는애로틱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에로티시즘은 독단적싼 것을환영하고 거기에서 폭력을 이끌어내며 그 목적이 다시 책임것을 감각에 연결시킨다는 의미에서 여기에 ‘정성적 가지를 채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계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침실의 철학에서 사드는 사악함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다. 하나는 무미건조하고 흔해빠진 사악함이고 또 하나는 순수하고어제 감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지적인 사이다.) - P42

결국 사드는 뒤집어진 거울을들고 태초로부터 1789년 대혁명까지의 자연과 역사 전체를 새롭게 반영하고 있다. - P43

마조흐에게서도 역시 유사한 야망을 엿볼 수 있다. - P43

과연 사드와 마조흐를 어느 정도까지 동반자로, 또는 보완관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 P44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실체는 프로이트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크라프트-에빙, 하벨록 엘리스(HavelockEllis), 페레(Féré)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P44

세베린의 새디즘이 보여주는 그 절정은 속죄와 속죄의 필요성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인해 가끔 차별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드디어 허용되는 의미한다. - P45

고통과 모욕 속에서 그가 느끼는 것은 속죄가 아니라, 사드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마음 속 깊이그런 대가를 치를 정도로 충분히 극단적인 행위를 실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P45

결국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서로 모습을 바꾸며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P46

우리의 가정은 마조흐가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엉터리 실체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해석과직관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사드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임상의학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46

새도매저키즘의 실체에 대한 믿음은 대체로 오해와 부주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언뜻 보기에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는 당연히 서로 어울릴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 P46

진짜 새디스트는 결코 매저키즘적인 피해자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쥐스틴느』에 등장하는 한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해자가 고통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한다. 그들은 제 발로 이곳에 걸어들어 오는 소녀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매저키스트 역시 새디스틱한 박해자를 원하지 않는다. - P47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그 고유한 세계에서 분리하여 추상적한 실체로만 다루게 되면 혼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일단 그들은 그것들을 둘러싼 고유의 환경에서 분리하여 살과 뼈를 제거하고 나면 서로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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