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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마조흐의 언어
"그것은 너무나 이상적이기에 … 그토록 잔인하다." 도스토예프스키, 『학대받은 사람들』
문학의 용도는 무엇인가? - P17
질병의 이름이 특정 환자의 이름에서 유래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의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로저스씨병, 파킨슨씨병 등), 우리는 질병의 이름을 붙이는 원리에 대해서 세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 P17
(전략). 의사가 어떤 질병에 자신의 이름을 부여할 경우 증상들의 집단에 고유명사가 연결되는, 즉 고유명사가 증상들을 의미하게 된다는 점에서 언어학적으로나 기호학적으로나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P18
매저키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던 크라프트-에빙은 마조흐가 고통과 성적 쾌감의 관계뿐만 아니라 포박과 굴욕에 관련된 더 근본적인 어떤 것을 통해 그 임상의학적 실체를 재정의한 공을 인정했다[제한된 경우이기는 하지만 기통애(愛)가 없는 매저키즘이 있으며, 매저키즘 없이 기통애만 있는 경우도 있다.]¹ - P19
원래 폭력이라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또 말을 한다고 해도 아주 적게 한다. 반면에 성은 거의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성적인 수줍음은 생물학적인 두려움과는 무관하다. - P19
그렇다면 우리는 마조흐의 경우 역시 스스로 박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인 그가 박해자의 그 위선적인 언어로 말한다고 할 수있으므로 마조흐의 언어 또한 사드와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가? - P20
포르노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 명령문(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식의) 뒤에 외설적인 묘사가 뒤따르는 형태의 문학이다. 폭력과 에로티시즘은 분명히 만난다. - P20
사드에게서 우리는 고도로 정교한 논증적인 언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언어의 고차원적 기능으로서의 이러한 논증은 연속적인 묘사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있다. - P21
(전략). 새디스트에게는 상대를 확신시키거나 설득시킨다는 것, 즉상대를 교육시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의 실제 관심은 전혀 다른 데 있다. - P22
바타이유는 다시 사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드의 언어는 화자와 청자 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언어이다." (후략). - P22
마조흐의 작품에서도 명령의 초월성과 묘사의 고차원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경우 그의 언어는 매우 설득적이고 교육적이다. - P24
포르노 문학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한계, 즉 어떤 의미에서 비언어라 할 수 있는 상황과 대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말하지 않는 폭력,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에로티시즘).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언어의 내적 분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P27
주
1. 크라프트 예방이 자신의 매커니즘과 무관한 "매절당하기"를 지적하고 있다. CF 『성의 병리학』 ( 몰 개정판, 1963) - P161
2
묘사의 역할
사드의 경우 초월적 기능이 논증적이고 바흐의 경우 그것이 변증법적인 만큼 묘사의 역할과 중요성 또한 상당히 다르다. - P28
사드의 묘사는 그 자체로서 외설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극적인 요소는 사드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마조흐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 P28
(전략). 의심할 바 없이 이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굴욕적인 상황으로부터 이차적인 이익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는 바로 매저키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P29
마조흐의 묘사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두 종류의 ‘전이‘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 P30
사드 작품의 저변에는 넓고 깊은 의미에서의 부정 (否定, neg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선 부정의 두 가지 수준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P30
파괴는 단지 창조와 변화의 역일 뿐이며, 무질서는 또다른 형태의 질서이고, 죽음에 의한 해체는 생명의 구성과 동일시된다. - P30
사드의 작품에는 이성주의가 접목될 수 없다. 사드가 이성 특유의 극단적 속성인 망상의 사상을 전개시키는 것은 특유의 내적 필연성 때문이다. - P31
「소돔 120일」에서 난봉꾼은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없는 것", 부재하는 대상, 즉 "악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 P32
생 퐁(Saint-Fonal)은 자신의 이론적 제계(사드는 이 체계를 통해 이성의 순수한 망상이라는 개념을 전개시키고 있다)를 설명하면서 "이차적인 자연에서 발생한 B라고 하는 어떤 구체적인 고통"이 과연 어떤 조건 하에서, 일차적인 자연에서 필연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영원히 재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 P32
즉 논증적 이성의 냉정함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미 잘 알려진 난봉꾼 특유의 그 냉담성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며, 사드가 보여주는 포르노 학자의 이와 같은 자제력은 보기에 딱할정도로 스스로 "열광"에 빠져버리는 일반적인 포르노 작가들과사드를 구별해 주는 요소이다. - P33
새디스트가 자신의 논증을 위해 이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논증적 기능이 묘사적 기능을 복종시키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것을 확대·응축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4
『쾌락원리를 넘어서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프로이트는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또는 파괴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 간의 차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34
죽음의 본능과 에로스의 결합은 말하자면 타나토스의 "재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 P35
(전략), 이러한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무의직속에는 노(No, 순수부정)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가 죽음의 본능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절대적 부정인 타나토스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때의 타나토스는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에서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 P35
죽음 또는 파괴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 사이의 구별은 사드가 구별한 두 가지 요소, 두 가지 자연의 구별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 P35
프로이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인 [否認: Vernenung. Verwerfung, Verleugung: 라깡(Lacan)은 각 용어들의 차이를 구분하고 있다]의 과정을 암시하는 저항의 형태들을 분석하고 있다. - P35
프로이트가 보여준 가장 훌륭한 예는 바로 물신숭배이다. 물신은 여성남근 (fermale phalus)의 이미지 또는 그 대체물로서, 이를 통해 우리는 여성에게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다. - P36
부인과 믿음의 진행과정으로 정의된 물신숭배는 필연적으로매저키즘에 속한다. 새디즘에도 물신숭배가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물론 새디스트가 저지르는 살인에 의식(儀式)이 선행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 P37
반면에 일차적인 의미에서 물신숭배 없는 매저키즘이란 있을수 없다. 마조흐가 자신의 이상주의, 즉 "극도의 감각주의"를 정의하는 방식은 보기에 오히려 하찮은 것처럼 보인다. - P37
마조흐의 소설에서 그가 의도한 효과가 정점을 이루는 순간은 바로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마조흐를 긴장감을 낭만적 소설의 필수요소로 이용한 최초의 소설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P38
마조흐의 미학적이고 드라마틱한 긴장감은 사드의 기계적이고 절정을 지향하는 반복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P39
이제 마조흐의 작품에 외설적인 묘사가 부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물론 묘사의 기능은 남아 있다. 그러나 묘사에 따르는 잠재적인 외설성은 부인되거나 정지된다. - P39
사드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성(城)은 잔인한 박해자들의 움직임을 극대화시키는 빛과 어둠이라는 잔악한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 마조흐의 배경을 이루는 무거운 태피스트리 장식, 떠들썩한 친교관계, 여성의 침실과 벽장은 정지된 움직임과 정지된 고통만이 눈에 드러나도록 하는 명암의 대조를 형성하고 있다. - P40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근본적인 차이는 부정적인 것과 부정, 부인과 긴장감이라는 상반된 과정들로 요약될 수 있다. - P40
3
사드와 마조흐는 상호 보완관계인가?
사드와 마조흐에게 문학의 기능은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묘사되어 있다. - P42
흔히 일정한 한새를 넘어서는 지나가아이에서는애로틱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에로티시즘은 독단적싼 것을환영하고 거기에서 폭력을 이끌어내며 그 목적이 다시 책임것을 감각에 연결시킨다는 의미에서 여기에 ‘정성적 가지를 채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계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침실의 철학에서 사드는 사악함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다. 하나는 무미건조하고 흔해빠진 사악함이고 또 하나는 순수하고어제 감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지적인 사이다.) - P42
결국 사드는 뒤집어진 거울을들고 태초로부터 1789년 대혁명까지의 자연과 역사 전체를 새롭게 반영하고 있다. - P43
마조흐에게서도 역시 유사한 야망을 엿볼 수 있다. - P43
과연 사드와 마조흐를 어느 정도까지 동반자로, 또는 보완관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 P44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실체는 프로이트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크라프트-에빙, 하벨록 엘리스(HavelockEllis), 페레(Féré)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P44
세베린의 새디즘이 보여주는 그 절정은 속죄와 속죄의 필요성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인해 가끔 차별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드디어 허용되는 의미한다. - P45
고통과 모욕 속에서 그가 느끼는 것은 속죄가 아니라, 사드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마음 속 깊이그런 대가를 치를 정도로 충분히 극단적인 행위를 실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P45
결국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서로 모습을 바꾸며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P46
우리의 가정은 마조흐가 새도매저키즘이라는 엉터리 실체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해석과직관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사드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임상의학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P46
새도매저키즘의 실체에 대한 믿음은 대체로 오해와 부주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언뜻 보기에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는 당연히 서로 어울릴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 P46
진짜 새디스트는 결코 매저키즘적인 피해자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쥐스틴느』에 등장하는 한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해자가 고통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한다. 그들은 제 발로 이곳에 걸어들어 오는 소녀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매저키스트 역시 새디스틱한 박해자를 원하지 않는다. - P47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그 고유한 세계에서 분리하여 추상적한 실체로만 다루게 되면 혼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일단 그들은 그것들을 둘러싼 고유의 환경에서 분리하여 살과 뼈를 제거하고 나면 서로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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