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합류한 뒤 나기는 주차장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들 틈새에서 나기를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는 조금 당황했지만 마주 손을 흔들었다. 나기의 어머니를 발견한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P17
"근데 정말 볼수록 신기해. 이 많은 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추운 날씨에 아주 작은 물방울을 뿌려서 얼리는 거야. 특수한 모양의 프로펠러를 이용하면 물방울을 5㎛(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쪼갤 수 있대. 그럼 공기와 닿는 표면적이 넓어져서 물이 빠르게 얼어 눈처럼 변하는 거지." - P20
"물질은 압력과 온도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잖아. 얼음에 압력을 주면 얼음이 녹으면서 표면에 수 마이크로미터의 얇은 물층이 생겨 스키는 표면이 매끈한데다 왁스도 발라져 있어서 물과 만났을 때 쉽게 미끄러지는 거야." "아, 아하, 그렇구나. 하하하." - P21
지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는 날다람쥐 모양의 점프 슈트를 입고 있었다. 눈밭에 인형이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지오는 당황했지만, 그보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고글을 벗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오뚝한 코에 선명한 쌍꺼풀, 얇고 곧게뻗은 눈썹은 방금 TV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줬다. 지오가 넋을 잃고 앉아 있자 소녀가 조금은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 P22
지오는 거듭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소녀를 유심히 살펴봤다. 분명 방금 전과 똑같은 옷과 짧은 스키에 똑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지오는 구미호에게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방금도 부딪히지 않았어요?" "네? 아닌데.… 아, 아마 제 쌍둥이였을 거예요." - P23
지오는 날다람쥐 소녀가 다른 사람과 충돌하기 직전에 그녀를 뒤에서 붙잡고 함께 쓰러졌다. 활강 중이던스키어는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을 피해 방향을 바꿨다. 지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글을 벗고 소녀에게 소리쳤다. "큰일 날 뻔했잖아요! 저기 표지판 못 봤어요?!" - P25
잠시 후,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로프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능숙해 보였다. - P26
방학 동안 학교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목성관 앞엔 360°로 회전하는 롤러코스터 레일을 일부 떼어온 것 같은 커다란 구조물이 생겼다. 슬로프-고리-슬로프 형태로 이어진 이 구조물은 15m 정도 높이로 ‘지혜의 고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야외에 설치된 여러 조형물 외에도 일부 교실이 새롭게 단장해 복도엔 페인트 냄새가 남아 있었다. - P27
아쉬워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금슬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졸업까지 쓸 수 있는 아지트가 있잖아." "맞아. 근데 우리가 졸업하면 아지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지오가 물었다. - P28
졸업을 생각하면 리나는 벌써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구들과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어떤 학교에 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지만, 복권이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무리였다. 무용과가 유명한 예술고등학교의 학비는 부수 비용을 빼고도 연간 10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 P29
"선서, 저희 신입생 일동은 재학 중 학칙을 지키고 학업에 충실하며, 대한민국의 과학 발전을 위한 창의적 인재로 거듭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XX년 3월 2일 신입생 대표 노.인.성." - P30
그날 미로는 한 대형 기획사의 핵심 인물에게서 명함을 받았다. 미도와 함께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당부와 함께. 미로는 1분 먼저 태어난 미도를 처음으로 언니라고 부르고, 무릎을 꿇고 빌다가, 나중엔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까지 했다. 하지만 미도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 P31
결과적으로 졸업 때까지 미로는 미도를 공부로 이기지못했지만, 대신 과학특성화중학교에 나란히 합격했다. "봐봐, 애들도 물어보잖아. 지금이라도 마음 바꿔서…." "그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했잖아." - P32
입학식이 끝난 후, 강당에서는 특별활동 홍보가 이어졌다. "저희 과특중 e-스포츠부는 지난해 전국 LOL(라일락의 전설, Legend of lilac) 학교 대항전에서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지금부터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P33
무대에 선 지오의 얼굴을 본 순간, 미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가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탈춤 왕자님이 우리 학교 선배였다니!‘ - P34
"아, 나 얼마 전에 흥미로운 소문을 들었는데." "뭔데?" "개학식 때 문자로 수상한 링크가 날아왔잖아. 금슬이 너도 받았지?" "응. 프로젝트 가디언즈인가 하는 그거? 난 게임 광곤 줄 알고 지웠는데?" "들어가 보니 그냥 허접한 그래픽 게임이라 나도 지웠거든? 근데 그 게임에서 문제를 풀면 돈을 준대. 5000포인트가 쌓이면 문화상품권 번호를 받는 식으로." - P35
미도가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심하고있을 때, 미로가 그녀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야, 생뚱맞게 무슨발레냐? 방송댄스면 몰라도" "어? 방송댄스부는 없던데?" "내가 만들 거야. 이 학교는 5명만 모이면 새로운 부를 만들수 있대." - P37
미도는 미로가 있어야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섭섭했지만, 지오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이 더 기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오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P37
"아, 나미션 나왔어. ‘지도에 표시된 알을 찾아 둥지에 넣어라." "몇 번 푸니까 나왔어?" "10번 전에 지수가 말한 대로야." - P40
잠시 후, 나기와 친구들은 나무 밑에서 투명한 유리병과 핀셋을 발견했다. 병 안엔 투명한 액체가 절반쯤 담겨 있었는데, 그속에 콩알만 한 하얀색 구슬이 가라앉아 있었다. 유리병을 살펴보던 금슬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 P41
나기는 신중하게 핀셋으로 구슬을 집었다. 구슬은 보기보다가볍고, 무른 느낌이 있었다. 핀셋으로 구슬을 꽉 잡았다 놓자 구슬 표면에 흠집이 났다. 표면이 긁힌 부분은 은색을 띠었다. 액체 속에서 구슬을 꺼내자 은색 표면은 곧 광택을 잃고 하얀색으로 변했다. - P41
지수가 나기의 다리를 꽉 잡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기가구슬을 둥지 안에 떨어트리자, 연기와 함께 불꽃이 튀며 구슬이 물 표면에서 마구 굴러다녔다. 지수는 팔을 움찔하긴 했지만 침착하게 한 걸음 물러나 나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 P42
"아마 비콘(beacon) 기능을 활용한 트릭 같아. 나트륨이 녹아서 물의 전기 전도도나 피에이치(pH)가 변하면 주변에 있는 핸드폰에 성공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겠지." - P42
"일단 병을 열었을 때 기름 냄새가 났어. 알칼리 금속은 반응성이 커서 공기 중의 수분이나 산소와 반응하니까 기름에 보관하거든 그리고 무게도 가벼웠어." "속이 비어 있는 걸 수도 있잖아?" "그래서 핀셋으로 조금 세게 잡았더니, 흠집이 나면서 찌그러졌어. 알칼리 금속은 칼로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무르거든. 그리고 긁힌 부분이 은색이었다가 밖으로 꺼냈을 때 하얗게 변하는 걸 보고 알칼리 금속이라 확신했어." - P44
알칼리 금속은 물과 만나면 격렬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서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깜짝 놀라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둥지가 있었던 곳의 높이를 생각하면 의자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만했다. - P44
MISSION 2 황록액 안개를 모아라
a. 천왕관 203호 과학실1로 오세요. - P47
테이블 위엔 아래쪽에 탄소 전극이 달린 H 형태의 유리관과 직류 전원 공급 장치, 클램프, 삼각 플라스크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직류 전원 공급 장치의 빨간 선을 시험관 우측에 연결하고, 검은 선을 좌측에..…." 금슬은 안내에 따라 실험 기구를 연결했다. - P48
상황을 지켜보던 금슬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염소 가스!" "맞아, 이 안에 있는 액체엔 염소화합물이 녹아 있을 거야. 아마도 소금 (NaCl) 같은 거겠지." - P54
"염소 가스는 물에 녹아 염산이 되기 때문에 폐와 기관지에심각한 손상을 줘 금슬이는 환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염소가스를 포집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아 이런 실험으로 생기는 가스는 소량이지만, 밀폐된 환경이라면 위험할 수 있어." - P54
공전하는 천체들은 타원 궤도를 그리지만, 그 정도는 조금씩달랐다. 궤도가 원에서 벗어난 정도를 ‘궤도 이심률‘이라고 하는데, 완벽한 원의 경우 궤도 이심률은 0이고 1을 넘어가면 공전운동을 하지 못하고 쌍곡선을 따라 탈출하게 된다. 지구의 궤도 이심률은 0.017로 원에 가깝지만 수성은 0.206 정도로 살짝눌린 타원 모양이다. 0.967의 궤도 이심률을 가진 핼리 혜성의궤도는 쿠키를 옆에서 본 것 같은 모양이다. 이렇게 궤도 이심률이 증가할수록 타원의 두 초점은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게 된다. 에리스의 궤도 이심률은 0.44였다. - P62
"명왕성은 다른 목성형 행성들과 달리 크기도 작고, 궤도이심률도 커서 때로는 해왕성 궤도 안쪽을 지난다. 이런 이유로 명왕성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2005년, 명왕성보다 크고 멀리 있으면서 위성까지 가지고 있는 에리스가 발견되면서 명왕성은 2006년에 에리스와 함께 왜행성으로 분류된다. 관측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와 비슷한 왜행성은 계속해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P66
"마름모 가운데 저항이 있는데 합성저항을 어떻게 구했어?" "음.… 힌트만 알려줄게. 휘트스톤 브리지.." "휘트스톤 브리지... 아! 대각선에 있는 저항끼리 곱한 값이서로 같으면 마름모 가운데 있는 선에는 전류가 안 흐르니까빼고 계산해도 되는구나!" "맞아. 저항이 2개씩 들어 있는 병렬 저항만 구하면 돼." - P78
비슷한 시각, 인성은 태한과 교실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인성이 태한에게 소리쳤다. "건물 한 군데씩 나눠서 찾아보자는데 너는 뭐가 불만이야?" 말했잖아. 아이디어는 내가 냈으니까, 노가다는 너희 둘이서하라고." "네가 그렇게 잘났어?" "내가 잘난 게 아니면 네가 못난 거지." - P79
인성이 이를 뿌득 갈았다. 만만한 상대였다면 바로 발차기든 주먹이든 날렸겠지만 태한은 인성보다 키도 크고 단련된 몸을가지고 있었다. 태한이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격투기라도 배웠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성은 그런 불확실한 싸움에 앞으로의 체면을 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싸움을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바꾸기로 했다. - P79
"뭘 믿고 이렇게 나대?" "공부, 학생의 본분이 공부 아냐?" "참 나, 그래서 뭐 공부로 붙자고? 문제집 놓고?" "이번 중간고사, 10만원빵 어때?" - P80
미로는 얼굴을 붉히며 핸드폰을 낚아채 성큼성큼 교실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왁자지껄하게 들려오는 교실 소음이 그녀의 심기를 다시 불편하게 했다. 발끈한 미로가 씩씩거리며 걸어가고 있을 때, 낯선 번호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Han 양팔 저울 - P82
미로는 메시지 내용을 곱씹었다. 달의 중력은 지구 중력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만약 달에서 평범한 저울에 6kg짜리 물건을 올려놓으면 1kg으로 표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분동으로 무게를 재는 양팔 저울은 지구에서도 달에서도 똑같이 사용할수 있다. 물체와 저울의 맞은편 분동에 작용하는 중력이 똑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P83
의상을 갈아입은 리나는 커튼 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앞선 학생은 <돈키호테> 키트리 베리에이션을 추고 있었다. 콩쿠르에선 이렇게 기술적으로 화려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편이었다. 리나는 다시 불안해졌지만, 천천히 심호흡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 P85
"아 싫어~ 공부하기 싫어~" 아이처럼 떼쓰는 리나의 모습에 나기는 피식 웃었다. 평소의 굳센 리나도 좋지만,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오늘 하루만 놀까?" "...정말?" "응. 뭐 하고 싶어?" - P87
"여! 너희도 꽃구경 왔구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지오의 목소리에 나기와 리나는전기에 감전된 듯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두사람 사이에 공간이 생기자, 지오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기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오에게 물었다. - P88
며칠이 지나고, 중간고사 2일째가 끝났다. 인성은 궁지에 몰런 기분이었다. 시험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태한이 몇 점 앞서고 있는 게 문제였다. 인성은 50만 원짜리 내기에서 지는 것보다 자신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는 게 더 두려웠다. 소문이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 P91
만약 자신이 이번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한다해도 태한에게 진다면 졸업 때까지 ‘1등에게 주제 모르고 깝치다가 참교육당한 2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 상황만은 피해야 했다. - P91
"... 뭔데?" "내일 아무 과목이나 80점 밑으로 깔아줘. 100만원 줄게." "100만 원은 무슨 구라도 적당히 쳐야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태한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인성의 품에서 나온 지폐 다발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 P92
"아깝네. 벼락치기하다가 4교시 때 좋았어." "... 쿨거래 감사요." 인성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등엔 식은땀이 흐르고있었다. 인성이 태한에게 받은 지폐를 높이 들고 외쳤다. "매점 갈 사람! 내가 쏜다!" "와아아!" - P92
MISSION 4 포스가 함께하길 (May the Force be with you)
a. 화관 102호에서 광선검을 찾으세요. b. 화관 메인홀에서 광선검을 높이 들어 빛나게 하세요. - P93
"이거다 싶은 건 없는데 일단 난 손전등에 한표." 인자는 선반 위에 놓인 손전등을 들어보였다. 지오는 인자의 추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금슬은 아래쪽 선반에서 빨간색 막대기를 들어 보였다. - P94
"다들 이거 봤어? 레이저포인터야." 레이저 포인터의 등장에 순간 분위기가 술렁였다. 금슬과 인자는 고민에 빠졌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을때 지오가 손전등, 불꽃 신호기, 레이저 포인터를 손에 들고 물었다. - P95
네 사람은 비품을 바리바리 들고 화성관 메인홀로 향했다. 1층에 있는 메인홀은 건물 중앙에 있는 커다란 오픈 구조 공간이었다. 3층 천장에 있는 채광창까지 막힘없이 트여 있는 공간은 백화점에라도 온것같은기분이 들게 했다. 메인홀이 가까워질 무렵, 낯선 구조물이 네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P95
"이거 설마...?" 인자와 나기가 서로를 동시에 바라봤다. 바로 다음 순간, 구조물 앞에 있는 액정에 60초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 P96
"이거 받아!" 카운트는 어느새 5초를 남겨 놓고 있었다. 나기와 인자는 철근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형광등을 높게 들어 보였다. 형광등을 건네받은 금슬 지오도 두 사람의 행동을 따라 했다. ‘빠직 - 빠지지지지직 - 빠지직!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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