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골라스 말이 맞아. 어떤 두려움이나 의구심이 우리를 좀먹더라도, 도전해오지도 않는 노인을 불시에 쏠 수는 없어. 대기하면서 좀 더 상황을 보자고!" - P20

•팡고른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군. 그렇지 않나?"
영상 레코드는 계속 돌아갔지만 그는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암호화된 메시지의 요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집회에서 미처하지 못한 말이라도 있단 말인가?" - P20

대충 감이 오기 시작했다. 벤은 신중하게 스카치 병의 뚜껑을 닫고 단단히 잠갔다. 혼자서 노우저를 타고 가야 한다. 여러입식지에서 선발된 십여 명의 동료들과 합류하게 될 것이다.
기능 범위는 5, C급 임무, K4 호봉, 업무 연한은 최장 2년 도착하는 즉시 완전한 연금 및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현재 그가맡은 업무를 무효화하는 최우선 명령을 이미 수령했으므로,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다. 떠나기 전 업무 인수인계를 할 필요조차도 없다. - P21

 레코드를 껐기 때문에 간달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방금 한말을 취소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냐. 지금은 아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고는 기다렸다. 정적을 몸으로 느끼며, 전축 스위치에 한 번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시작할수도, 끝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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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어・・・."
소년은 중얼거렸다.
그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상념에 비해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표현이었다. 허나 현재 그의 심정을 이토록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말도 없으리라. - P55

소년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 다시 말해 사람. 어쩔 도리 없을 만큼 사람만이 그의 시야 가득히 넘쳐흐르고 있다. 시각은 오후 6시경. 회사와 학교에서 귀가하려는 사람들이 불어날 무렵이다. 아직 절정에 달하지는않았지만 사람을 ‘군집‘으로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한 인구밀도였다. - P55

샐러리맨 같은 남자의 어깨가 자신과 부딪친다. 무의식중에사과하려 했으나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개의치 않고 가버렸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죄, 죄송합니다!" 하고 웅얼거리고는 개찰구에서 약간 떨어진 기둥으로 걸어가 기대어 섰다. - P56

한 번도 살던 동네를 떠난 적이 없고 초중학교 때의 수학여행은 두 번 다 빠졌다. 스스로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즈음, 도시마구에 있는 사립고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생긴 신설학교이며 성적은 중상 정도지만 도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가까운 학교에 다닐수도 있었지만, 옛날부터 도회지를 동경했다는 점과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 간 친구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 P56

"실패한 걸까아.…."
자신의 존재 따윈 눈에도 안 들어올 것 같은 사람들의 무리에 압도되고 만다. 자신의 일방적인 착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과연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먹혀버릴 것만 같았다. - P57

그리고 그는 거기서 소꿉친구의 얼굴을 발견했다.
"어, 어라.... 키다?"
"질문형식이냐? 그렇다면 그에 응해주지. 셋 중에서 골라라.
① 키다 마사오미 ② 키다 마사오미 ③ 키다 마사오미." - P57

"와아, 키다! 정말 키다니?"
"내가 3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고안해낸 멋진 농담은 무시하기냐... 정말 오랜만이다!"
"어제 채팅방에서 만났잖아...그건 그렇고 너무 변해서 놀랐어-. 설마 머리를 물들였을 줄이야! 그리고 그 농담 썰렁해." - P58

"그럼 갈까 일단은 밖으로 나가자. 기분은 그야말로 GO 웨스트, 서쪽 입구인 척해놓곤 세이부 방면으로 향하는 나는야 교활한 안내인."
"그렇구나. 근데 서쪽 입구랑 세이부 쪽 입구랑은 어떻게 달라?"
"...이런." - P59

"... 너도 꽤나 독설가라니까."
마사오미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으나 단념한 듯 한숨을 쉬며 읊조렸다. - P59

유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미카도에게는 이곳 말고는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TV 드라마 등으로 유명한 장소이며 한 군데 더 생각나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음,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는 어때."
"오오, 나도 그 드라마 봤어. 소설이랑 만화도 다 갖고 있지."
"아, 아니, 드라마 말고 웨스트게이트파크 자체 말이야." - P60

"아니, 나도 주워들은 이야기라 정확하게는 몰라. 숫자 자체는꽤 될 테고, 컬러 갱이나 폭주족 이외에도 위험한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더욱이 일반인 중에도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놈들이 여럿 있거든.... 하지만 너는 일부러 싸움을 걸거나주먹질을 할 녀석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그 외에는 사기꾼이나수상한 장사꾼을 조심하고 갱이나 폭주족 냄새 나는 놈들에게만 가까이 안 가면 될 거야." - P61

두 사람은 지하도가 좁아지는 장소로 들어서서 지상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로 다가갔다.
(중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나오자 사람이 밀집된 공기는그대로였지만 주위의 경치가 180도 바뀌었다. - P62

간혹 그러한 세력권안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에게 말을 걸기도했지만 그러한 광경마저도 흘려보내듯 인파는 끝없이 움직였다. - P62

그 감동을 솔직하게 전달했더니 마사오미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그럼 담번엔 신주쿠 시부야에 데려가줄게. 하라주쿠도 좋겠군, 컬처 쇼크 받을걸. 아키하바라도 좋고・・・ . 사람 떼가 신기하면 경마장에 데려가줄까?"
"사양할래." - P64

"이 위의 도로가 수도고속이야. 아, 그렇지. 지금 걸어온 곳이 60 거리. 그거 말고 선샤인 거리라는 곳도 있지만 시네마 선샤인은 60 거리에 있으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 아차, 모처럼온 건데 안내해줄 걸 그랬네."
"아냐, 다음에 해도 돼." - P64

"아-, 아니, 유마사키 씨랑 카리사와 씨는 아는 사람, 사이먼이랑 시즈오는 아까 말했지. 왜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놈 중둘이야. 하긴 그중 헤이와지마 시즈오(平和島靜雄)는 평범하게살면 말을 걸 일도 없을테고, 눈에 뜨인다 해도 달아나면 그만이지만." - P65

소년 같은 얼굴을 한 청년의 순진한 질문에, 마사오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늘을 올려보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이 대답을 내놓았다.
"우선은 바로 나다!"
".....3^0.5점." - P65

"응 - 여럿 되지만 야쿠자나같은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네가 연관될 것 같은 놈이라면, 지금 말한 둘 말고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자식은 위험하니까 절대 가까이하지 마. 하긴 신주쿠에 서식하는 사람이니 만날 일도 없겠지만." - P66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마사오미는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아-, 신경 쓰지 마. 요란할 뿐이지 딱히 나쁜 이름은 아니니까. 네가 이름에 걸맞게끔 당당하게 행동하면 아무도 불평하는 녀석은 없을 거라고." - P67

"....다라즈?"
"응. 완다라즈의 다라즈."
"또 이상한 예시를・・・ 그건 어떤 팀이야?"
방금 전까지는 소극적이던 미카도가 웬일인지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재촉한다. - P67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신호 너머에 있는 날카롭게 디자인건물을 따라 걸었다. 건물 안에는 세련된 차가 전시되어 있어건물의 형태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미카도가 잠시 건물과 차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별안간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 P68

"너는 운이 좋아."
"어?"
"도쿄에 오자마자 괴담을 목격하게 됐으니까."
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눈만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반짝거렸다. - P68

헤드라이트가 없는 새까만 오토바이에 올라탄 인간의 모습을한 그림자‘.
그것이 차 사이를 누비고ㅡ두 사람의 앞을 소리도 없이 지나갔다. - P69

그것은 한눈에도 기묘한 존재였으며, 마치 소리가 울리는 범위만을 현실에서 도려낸 듯한 위화감을 풍겼다. 길을 가는 사람들 절반 가량이 발길을 멈춘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림자‘
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P69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는 헬멧 안에 눈길을 주었다. 헬멧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머리 부분에서는 시선이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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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편지>에서 왕비는비밀스러운 편지를 도둑맞게 됩니다. 곤경에 빠진 왕비는 사설탐정인 뤼팽에게 편지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하는데, 아무도 찾지 못한이 편지를 뤼팽은 손쉽게 찾아냅니다. 은밀하게 숨겨두었을 것이라생각한 편지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편지꽂이에 허술하게 꽂혀있었던 것입니다. - P43

우리가 선택적인 집중을 하면 시야에 맹점이 생기고 가까운 곳에 있는 것조차 찾지 못하는 착각에 빠진다고 합니다. - P43

. 사용 방법을 잘 모를 때 우리는 설명서를 찬찬히 읽어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에 관한 사용설명서는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 P44

심리학이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사람의 IQ는 변하지 않습니다. - P44

건강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수시로 검사하지만 기억력이나 연산력과같은 기본적인 사고능력은 크게 변하지 않기에 검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 P44

간섭 현상은 머릿속에 비슷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원하는 정보를꺼내려고 할 때 비슷한 것들끼리 서로 나가려 간섭하다가 아무것도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 P44

(중략) 교사에게 수십 명의 영희중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 "선생님 저 영희에요"라고 말한다면 머릿속에서 무려 수십 명의 영희가 서로 내가 나가겠다며 다투다가 결국엔 아무도 나가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건망증입니다. - P45

두 번째로 변하지 않는 것은 성격입니다. - P45

IQ와 성격은 상당부분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즉 유전적인 영향이 강합니다. 실제로 행복에 관해 연구하는 심리학자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P45

 아난다마이드의 단위 면적당 비율은 민족마다 다른데 14%밖에 되지 않는 대표적 민족이 우리와 유전적으로 유사한 중국의 한족입니다. 북유럽 계열의 백인은 21%, 나이지리아인들은 무려 45%나 됩니다. 그들이 낙천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P45

 이들은 우리가 쉽게 건드려볼 수 있고 작은 변화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창의성, 리더십, 통찰력 등 복합적인 능력이 성격보다 관점과 더 큰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P46

사실 우리나라는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 P47

 2002년 전국민이 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위를 하는 일이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즉 우리나라는 동질적이기 때문에 한마음이나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만, 그렇기때문에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관점입니다. - P48

 사실 연습을 통해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노련해지는 것과 지혜롭고 똑똑해지는 것은 무관합니다. 즉 아무리 공부하고 연습해도 관점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 P48

이들 카드는 한 면에는 모음이 있고 뒷면에는 무조건 홀수가 있습니다. 4장의 카드에이 규칙이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알아보려면 두 장의 카드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카드일까요? - P48

구청 공무원이 어느 날 술집에 갔는데 그곳에는술을 마신 A, 23세의 B, 술을 마시지 않은 C, 19세의 D가 있습니다. 술집이 미성년자는 음주를 할 수 없다는 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검사해 보려면 두 명만 확인하면 되는데 과연 누구일까요?  - P49

 무언가에 익숙하고 친숙해진다는 것은 우리를 논리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다만 좀 더 빨리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껏 우리는 그것을 교육이고 훈련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 P49

우리가 일을 못하는 이유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인지적 구두쇠이기 때문입니다.  - P50

인류의 사망, 즉 호모사피엔스 사망의 압도적 이유도 질병이나 전쟁이 아닌 굶어죽는 아사였습니다. 인간이 배고픈 것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간 지는 2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노력을 해야 했을까요? - P50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는 우리의 뇌를 10W짜리 전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을 할 때 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고 여깁니다. - P50

이렇듯 생각하는 것에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었던 우리인류는 생각을 줄이고 그 에너지를 식량을 구하는 데 주로 사용하면서 생존해 왔습니다. 그 습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 P51

인간이 인지적 구두쇠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멀티태스킹입니다. - P51

내가 잘할 수 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도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갉아먹습니다.  - P52

껌을 씹으면서 단어를 외우면 씹지 않으면서 단어를 외울 때보다 기억력이 20% 가까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껌 씹기라는 멀티태스킹조차 우리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참고로 껌을 씹고 난 뒤 껌을 뱉고단어를 외우면 뇌 영역이 활성화되어 더 잘 외울 수 있습니다. - P52

우리가 일을 못하는 두 번째 이유를 말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옆의 그림을 보면서 글자의 색을말해 보세요. - P52

 이 실험은 미국의 심리학자 존 리들리 스트룹John Ridley Stroop이 고안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라 스트룹 효과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단어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단어의 의미와 글자의 색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색상을 말하는 반응속도가 늦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 P53

우리는 글자를 보면 먼저 읽어버리는 습관 때문에 색을 먼저 보지 못하고 실수를 합니다. 우리가 일을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습관입니다. 때때로 무언가를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습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P53

원하지 않는 일이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덮어씌워야 합니다. TV를 보면서 자꾸 무언가를 먹는 습관이 있다면 그 손으로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 P53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는 자신의 책 《의지력의 재발견》에서 사람의 의지로 나쁜 습관을 없애는 것은 허황된 착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담배를 끊었을 때,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의지력이 있으면 참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의지력이 떨어지면 금연을 참기 어려워집니다.  - P54

금연하는 데 쓰던 의지력을 부하에게 화를 내지 않는 데사용했다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막는 방법은 그것을없애는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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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와 ‘통고‘. 좀 고지식해보이는 단어.






12월 2일, 나는 승진이 인가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 P94

나는 로라의 유괴에 <나락의 아이들>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단 하나라도 머리에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버블 데이>에 수태한 뇌 손상 환자의 납치는 그들의 범죄 전력에는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달리 뚜렷한 용의자들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선례가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이 부조리한 범죄에서 <나락의 아이들>의 냄새가 난다는 점은 부정할 길이 없다. - P99

나는 테러리스트들,
특히 <나락의 아이들>을 상대할 만큼의 보수를 받고 있지는 않다. 놈들은 고맙게도 내 목숨을 다시 노릴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마치 실패를 아예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이 방침은 운 좋게 놈들의 마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듯했다) 놈들에게 또다시 내 존재를 부각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P100

그래, 로라는 <버블 데이> 혹은 그와 가까운 시점에 수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보일까 무의미한 잡음일까? 전 세계의 경찰 당국은<나락의 아이들>이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들, 이를테면 날짜, 수비학, 행성들의 합 따위 -목록은 이런 식으로 지겹게 이어진다―를 주야로 추적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했지만, 결과는 언제나똑같았다. - P100

<나락의 아이들>의 멤버가 로라의 수태일이 언제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녀의 유괴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그들이 유괴에 관여되었다는 증거로 간주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 P101

나는 이 곤충을 프로그래밍하기 위한 전용 모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자의 두번째칸에는 구식의 순차적 소프트웨어가 든 ROM 칩이 있었다. - P102

 고로, 기묘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순차적 소프트웨어가 가득 들어찬ROM을 필요에 따라 로딩하는 것이 유일한 실제적 대안일 때도 있는것이다. - P103

나는 머릿속의 메뉴에서 내가 원하는 습성 패러다임들을 골라냈고, 프로그램이 그것들을 모기의 신경 스키마용 언어로 인코드할 때까지 5분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신호의 발신 강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손바닥으로 상자를 덮고, 모기의 조그만 뇌에 내 명령을 때려 넣었다. - P103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중에 지나간 거리는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한산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음식을 파는 장사치들이김을 내뿜는 손수레 곁에 서 있었고, 손님들은 자동판매기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그러나 아무 냄새도 안 나는 홀로그램 광고를 무시하고이들 손수레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도 국수를 한 봉지 사서 먹으면서걸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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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내용, 그리고 기피될 법한 내용들.
노골적인데, 이게 출판되었네. 카카오 웹툰 중 ‘부기영화‘에서 ‘중출‘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와 비슷한 충격.


「배설행위」를 즐거운 일로 보느냐 더러운 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문화풍토가 달라질 수도 있다. 대체로 정신주의 (또는 이성주의)적 풍토가 강한환경에서는 배설을 더러운 일로 여기게 되어, 변을보는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기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변비증이 많아진다. - P27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전성.
기였기 때문에 인간중심 · 육체중심·쾌락중심의 문화풍토가 이루어졌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연극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배설」에 두었을 것이다. - P27

이러한 배설기피 의식은 더욱 악순환을 가져와 서구문화를 정신주의와 이성주의 방면으로만 치닫게 했던 것이다. - P28

변을 보기 싫어한다는 것은 이중적 자기은폐나 자기기만 등을 불러 일으켜 강박적 신경증을 가져 오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은 심리적 방어 메커니즘을 통해 스스로의 고통을 오히려 미덕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극단적 정신주의자가 되기 쉽다. - P30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에서, 나치즘을 성적죄의식에 따른 정신적 권위에 대한 마조히즘적 복종심이 만들어낸 집단적 성억압의 산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P31

그런데 프로이트가 특별히 배설의 문제,
즉 성기를 통한 배설과 항문을 통한 배설에 신경을썼다는 것은, 이러한 서구 사회의 육체 멸시, 배설천시의 사조와 무관하지 않다. - P31

그는 모든 성인들의 병적 심리현상이 유아기 때의 거세공포와 구강성욕의 불만족, 그리고 배변을 통한 항문성욕의 불만족 등에 기인한다고 설명하였다. - P31

 그런데 육체에 대해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그 유아에게 배설 기능이 천한 것이고 숨겨 두어야 할 것이라고 계속해서 설명해 나갈 경우, 유아에게는 바로 항문 콤플렉스가 생겨나는 것이다. - P32

서구에서는 줄곧 배설의 문제가 무언가 천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와 중국을대표로 하는 극동문화권에서는 옛부터 「배설」의 문제를 지극히 중요시하였다.  - P32

 중국 한의학의 원조라 불리우는 한대(漢代) 장중경(張仲景)의 명저 <상한론(傷寒論)〉은, 주로 대변이나 소변 또는 땀을 통해병사(病邪)를 배설시켜버리는 처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제(瀉劑)가 처방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셈이다. - P33

물론 서양의 고대의학에도 사하제(瀉下劑)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사하제는 주로 육체의 병만을 다스리는 데 쓰였다. 정신의 병을 육체를 다스려서 고친다는 것을 서구인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암흑시대의 의술은 정신병 치료에 주로 기도나 「마귀사냥」등의 방법을 썼을 뿐이다. - P34

동양철학에서 기(氣)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 기분의 뜻도 되고, 육체적 신진대사의 의미도 되고, 또는 에너지의 의미도 된다. - P34

아무리 영양상태가 좋아도 기가 약하면 병이 생기는 것이니, 이를테면 비만증이나 여러 가지 신경성 질환이 그것이다. - P35

한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을 주로 기에 있다고 보는데, 말하자면 정신적인 원인이 모든 병을 초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 P35

 아리스토텔레스가카타르시스를 「축적된 감정의 배설」의 의미로 썼다면, 이것은 한방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바로 「기가울 체된 것을 해울(解鬱)시키는 것」이 될 것이아. - P36

물론 대리배설이 실제배설보다 불완전한 치료법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며칠씩 대변을 못 보고 있는환자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대변을 보게 해줘야하지, 대리적으로 대변을 보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 P36

문제는 정신적인 배설인데, 육체적인 원인에서가아니라 정신적인 원인으로 축적된 울화 또는 욕구는 대리배설을 시켜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37

정액의 울체는 또 마스터베이션(手淫)의 방법이 있다.


•우와, 표현. 이거 정말 어떻게 출판된 책이지? - P37

정신적으로 축적된 감정의 찌꺼기들을 육체를 통해 대리배설시켜 버리는 방법은, 직접적 행동에 의한 방법과 간접적인 참여의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만약 누군가를 때려 주고 싶을 때, (중략)
 태권도식 벽돌 깨뜨리기 등을 통해서 해결하는 방법이 직접적인 대리배설이고, (중략)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간접적인 대리배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효용으로 카타르시스를 내세운 것은 바로 이 간접적 대리배설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 P38

그런데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이 너무- 순교하고, 철학적이고, 심미적인 뉘앙스를 풍긴다는 곁에 있다. - P38

로마시대의 연극은주로 세네카(Seneca)의 「복수극」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잔인한 장면이 많기로 유명하다. - P39

 그리스 극에서는 이면주제(裏面主題),
즉 「연민과 공포를 통한 카타르시스」가 고상한 표면주제(表面主題)에 의해 교묘하게 은폐된 셈이다. - P39

 <삼국지>의 표면주제는 충성과 의리지만, 이면주제는 권력 획득에의 의지와 잔인한 장면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사디즘적 쾌락의추구이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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