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언젠가는 융합기술을 직접 사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들어, 최근 뇌에서 발생하는 전류를포착하여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신호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피험자는 생각만으로 ‘오른손 검지를 움직여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연결된 컴퓨터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 P35
고용주가 뇌와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을 통해 모든 피고용자에게 ‘회사 네트워크‘에 연결하라고 지시한 후, 회사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사용자의 마음속에 억지로 집어넣는 한편 사용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 P35
생명 자체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완전히 인공적인 기술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인공장기나 신경이식 등 인공적인 신체부위가 장차 신체의 일부로간주될지, 그저 필요에 의해 신체에 이식한 이물질로 간주될지는알 수 없다. 발전속도로 볼 때 이것들이 신체에 점점 완벽하게 통합되면서 문제가 무척 복잡해질 것만은 확실하다. - P36
그때 사람들은 줄기세포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누가 그 과정을 중단시킬 것인가? 치료를 중단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P36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고안할 수 있는 모든 종류, 모든 방식, 모든 형태의 인간강화를 받아들인 뒤에도 수명과 기억력과 신체적인 힘의 한계가존재할까? 아니면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정도로 병들고 닳아빠진 부위를 여기저기 때워가며 비참한 모습으로 살게 될까? - P37
흥미로운 질문은 기술을 통해 강화할 수 없고, 오로지 삶이라는 경험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신적, 정서적, 영적 현상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들은 기술로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영역으로 남을지 모른다. - P37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은 상상 속에 그려진 완벽이라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아니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과정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장할 때 우리의 이상과 가치 또한 함께 성장하며 변화한다.³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길을 꾸준히 찾는 것이 본질적으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기 때문에 인류의 모습이 1천 년 후, 5백 년 후, 심지어 1. 2백 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 P38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술은 하나같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개성, 민주주의, 자율성 등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기술은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떠날 것인지 등 매우 사적이고 민감한 문제에 관한 판단능력에 영향을미칠 수도 있다. 자신의 몸과 뇌에 가해지는 깊은 차원의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제한할 권리를 어디까지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생겨나고 있다. - P39
빅터의 이야기에서 보았듯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휴대폰을 점점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기계와의 상호작용이 늘어난다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와 우리가 실제로 통합되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호해지는 상황을 포함한다. - P39
대다수가 매우 긴 수명을 누리며, 기술의 힘을 빌려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한 개인은 얼마나 자유롭게 그런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을까? 다수는 아니라도 상당수의 사람이 기술적 강화를 거부하거나, 비용을 지불할 형편이 못 된다면 어떨까?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최하층 계급이 될까? 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들을 어떻게 취급할까? - P39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인공지능 연구소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 소장인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기계에 점점 더의존하게 되었다면, 새천년을 맞아 우리는 바야흐로 기계 자체가 되려는 순간을 맞고 있다."⁴ - P40
이런 기술이 생명을 살리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기능 회복술로 도입되기 때문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시력을 회복하거나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기억을 회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유한성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죽으꽈 장애에 대한 공포야말로 가장 칸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응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41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우리편 병사가 고글 따위를 쓰지 않고 적외선을 투시하는 능력과 초인적인 청력, 엄청나게 향상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갖는다는 데 반대하거나 망설일 사람이 있을까? 일단 이런 기술이 군사적으로 폭넓게 사용된다면 민간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 P41
나아가 신체와 뇌를 점점 더 쉽게 조작하게 된다면 장차 우리는무선 컴퓨터 기술, GPS, 기타 첨단기술을 거의 모든 소비제품에 통합시켜 ‘살아 숨쉬는 것들‘과 ‘지능적인 것들‘로 구성된 환경과 점점 더 접촉면을 넓혀갈 것이다. - P41
우리는 스마트한 생활 환경에 금방 의존하게 되어 도대체 옛날에는 이런 것들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오늘날 이메일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2
‘똑똑한‘ 기기들이 우리의 활력징후를 의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린다면, 그 정보는 반드시 어딘가 저장된다. 당연히 해킹당할 수있다. 시장경제에서는 이런 정보가 보험회사나 기타 기업, 심지어 잠재적 고용주에게 팔릴 수도 있다. 개인정보 열람 범위를 세심하게 규제하고 제한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 P42
융합기술은 인류의 고통을 크게 덜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보수주의자들은 신체와 정신 양쪽에서 고통이 완전히 없어진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비롯해 고결한 품성을 함양하는 데 고난과 역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상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 P43
과학계는 인간의 경험을 환원주의적 용어로 생각하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모든 경험은 물리적인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및 전기적 과정의 합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난은 완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완전히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 P43
질병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영생을 누린다고 해도 절망과 외로움, 실망 등 삶의 모든 고난과 의미 추구 과정이 없어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 P44
그러나 기술의 개발 속도에 비해 FDA 등 규제기관의 움직임은 달팽이 걸음이다. 환자들이 기술을 하루 빨리 이용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호소는 각국 정부에 엄청난 압력이다. 결국 인간능력 강화라는 문제는 논의 대상에도 못끼는 경우가 많다. - P44
이들의 지능은 최소한 계산능력에서는 우리보다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적 사회에서 이 존재들은 어떤 권리와 의무를 누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 다를 것인가? - P45
AI가 고도로 발달한 뒤에도 여전히 인류에게 봉사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미래가 올 것이므로 AI, 나노기술, 유전학을 더이상 발달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P45
안데르스 산드베리는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능력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에서 보듯 천편일률적으로 ‘완벽한 휴머노이드 군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기술과 개인 차원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전례없는 수준의 자아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 P46
2장 : 원래 심장보다 더 좋아요.
TAH는 가교기술bridge technology이다. 영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적합한 생체심장을 이식할 때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방법이란뜻이다. 또 한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원래 심장을 제거한 후(당연히 일단 제거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TAH를 대동맥에 연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반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대동맥은 심장에 바로 연결되는 혈관으로,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는 동맥 중 가장크다. - P51
하지만 성공하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차분히 따져보기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 터였다.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든 심장을 이식받는다는 생각 자체도 상당히 불편했다. 하지만...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녀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 P51
그렇지 않았다면 남성이나 몸집이 아주 큰 여성에게 맞는 신카디아 70cc형 인공심장을 보통 체구의 여성에게 이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대동맥 연결은 큰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심장의 임무를 이어받은 인공심장은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 P52
인공심장의 좋은 점은 분당 9.5리터의 혈액을 안정적으로 박출한다는 점이다. 콩팥은 기능을 회복했고, 그녀 역시 활력을 되찾았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온몸에 생명이 넘쳤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아이들을 보살폈으며, 필요한 것들을 사러 다녔다. 모든 게 기적 같았다. - P53
스테이시는 곧 익숙해졌지만 모두가 모른 체하고 참아주지는 않았다. 몸이 좋아지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다녔던 교회를 찾았다. 교회 밖에는 "이제 네 모습 그대로 내가 만나기를 원하노라come as you are"고 씌어 있었다. 예배를 마치자 목사가 다가왔다. 그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신도들에게 방해가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 달라고 했다. - P53
인공심장을 지니고 산 지 196일째,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다. 심장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행운에 기쁘고 마음이설렜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누릴 정도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인공심장을 제거한다니 걱정도 되었다. 생체심장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TAH는 거부반응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혈전 방지제만 꼬박꼬박 복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 P53
최근에는 실제로 가벼운 거부반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몸상태가 너무 좋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것이다. 심장전문의는 이식 후 얼마 안 되어 가벼운 거부반응을 겪은 사람이장기적으로 경과가 더 좋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순위는 명백하다. "저는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가족과 함께 사는 거죠." - P54
TAH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소형화 추세도 계속되어 더 큰 인공심장과 똑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30cc 모델을 개발 중이다. - P54
인공심장의 잠재적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심장질환은 남녀를불문하고 가장 흔한 사망원인이며, 생물학적으로 적합한 생체심장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건강 문제 없이 오로지 심장 때문에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 P55
심폐 이식 분야의 선구자인 외과의사 마크 플런킷Mark Plunkett을 만나보았다. 그는 켄터키의과대학 흉부외과 과장으로 재직할 때 세 명의 환자에게 TAH를이식한 경험이 있다. 얘기를 나누면서 적합한 기증자가 나서기를기다리며 죽어가는 ‘아픈 사람 중에서 가장 심한 사람들‘의 생명을구하는 놀라운 치료와 인공심장에 대한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있었다. - P55
플런킷 박사는 아주 어렸을 때 진로를 결정했다. 메릴랜드 주 동해안의 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그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외과의사가되겠다고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과 일곱 살 때였던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크리스티안 바나드christiaan Barnard라는 의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대 인간 심장 이식수술을 시도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심장을 이식받은 53세의 남성 루이스 와시칸스키Louis Washkansky는 합병증 때문에 18일밖에 살지 못했지만, 이식수술자체는 성공이었다. - P56
플렁킷은 인공장기이식술에 마음이 끌렸다. 생체장기가 턱없이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말기 환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재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적합한 장기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미국에서만 11만 9천 명에 이른다. 매년 7천 명이 기다리다 사망한다.¹ 가장 큰 문제는 장기기증자가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 P56
거부반응이 일어나거나 심부전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식심장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고령자라면 몰라도, 어린이는 사정이 다르다. 평생 여러 차례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하며, 그때마다 적합한 기증자를 절박하게 기다려야 한다. - P57
현재 몇 가지 인공장기가 개발을 마치고 시험 중이지만, 인공심장의 기초 기술은 오래 전에 개발되었다. 1963년 폴 윈첼Paul Winchell이 최초의 인공심장을 제작했다. 이를 원형으로 삼아 1983년에는 자빅Jarvik 이 개발한 인공심장이 최초로 인간에게 이식되었다. 이후 인공심장은 점점 정교해졌으며, 이식받은 환자들 역시 점점 오래살게 되었다. - P57
현재 신카디아 인공심장과 박출량이 같으면서 무거운 백팩을 매고 다닐 필요 없이 가벼운벨트형 배터리 팩만 착용하면 충전되는 형태가 우선 목표다. 그 다음 버전은 피부 밑에 배터리를 이식하는 완전 체내형 심장이다. 그는 모든 것이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전망한다. - P57
우선 환자는 생체이식수술을 받는 데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다른 이식형 장치나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말기 심부전으로 양쪽 심실이 모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대리야 한다. 환자는 보통 심장전문의, 특히 심부전 전문의를 거쳐 이식전문의에게 의뢰된다. 관상동맥질환, 심장발작, 고혈압, 바이러스성 심근염, 심장판막질환 등심부전에 이른 원인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심각하고, 심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 못할 상태다. - P58
심장 기능이 약해져 주요 장기에 적절히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면 심부전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마침내 주요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휴식을 취할 때조차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양쪽 폐에 혈액과 체액 저류되면서 숨이 가빠진다. - P58
이 정도로 나빠지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괴롭다. 폐에 더 많은 체액이 저류되면숨쉬기가 어렵고 물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눕지 못하고 앉은 채로만 잠들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극심한 피로가 가중된다. 이식전문의에게 의뢰되는 환자는 대부분 이런 상태다. - P59
플런킷 박사는 완전인공심장에 대해 설명하고 짧은 영상을 보여주지만 모든 환자가 선선히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실 굉장히 급진적인 생각이죠.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 P59
하지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대개 인공심장을 제안받은 환자는 시술만 가능하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수락한다. 젊은 환자일수록 더 쉽게 받아들인다. 플런킷 박사에 따르면 유럽에는 인공심장에 크게 만족하여 적합한 생체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데도 인공심장을 고수하는 환자가 상당히 많다. - P60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언제 이 장치를 끌 것인지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플런킷 박사는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가상적인 시나리오를 들어 실명했다.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심한뇌졸중을 겪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해보자. 현재 사용되는 인공심폐장치와 마찬가지로 인공심장은 계속 온몸으로 혈액을 순환시킬 것이다. - P61
의료진은 인공심장의 스위치를 내리자고 권고할 가능성이 높다. 뇌사 상태인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치료를 중단할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는 가혹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 P61
인공심장의 작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무리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가 꺼져가는 삶을 움켜잡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생각하며 크나큰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가족을 떠나보낸 마지막 순간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스위치를 내리는 행위를 살인이라고 생각해 절대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 P62
아직 이런 윤리적 질문에 답할 만큼 많은 연구 결과가 축적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심장 기능 보조장치들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 문제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대략 개념을 잡을 수는 있다. - P62
생명윤리학자 린 잭슨 Lynn A. Jansen은 죽어가는 환자에서 심박동조율기를 끄는 문제에 대해 쌌다. 심박동조율기는 전류를 통해 심장을 규칙적으로 박동시키는 장치다. 심장의 전기적 신호가 크게 불규칙해지면 매우 위험하다. - P63
따라서 가족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점점 자주 벌어진다. 심박동조율기를 계속 작동하도록 두어야 할까? 아니면 조율기를 끄고 자연적인 죽음이 진행되도록 해야 할까? 끈다면 언제 꺼야 할까? 이식받은 환자의 심리 역시 매우 복잡하다. 죽음을 막아주는 마지막 방어벽으로 생각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장치에 의존한다. 심지어 심박동조율기를 몸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 P64
잰슨의 입장은 심박동조율기가 자체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있는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기능을 중단한다면 심박동조율기 또한 의미와 용도를 잃는다. 뇌사 상태인 환자의 몸속에서 혈액이 순환을 계속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생명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