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언젠가는 융합기술을 직접 사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들어, 최근 뇌에서 발생하는 전류를포착하여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신호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피험자는 생각만으로 ‘오른손 검지를 움직여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연결된 컴퓨터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 P35

고용주가 뇌와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을 통해 모든 피고용자에게 ‘회사 네트워크‘에 연결하라고 지시한 후, 회사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사용자의 마음속에 억지로 집어넣는 한편 사용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 P35

생명 자체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완전히 인공적인 기술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인공장기나 신경이식 등 인공적인 신체부위가 장차 신체의 일부로간주될지, 그저 필요에 의해 신체에 이식한 이물질로 간주될지는알 수 없다. 발전속도로 볼 때 이것들이 신체에 점점 완벽하게 통합되면서 문제가 무척 복잡해질 것만은 확실하다. - P36

 그때 사람들은 줄기세포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누가 그 과정을 중단시킬 것인가? 치료를 중단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P36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고안할 수 있는 모든 종류, 모든 방식, 모든 형태의 인간강화를 받아들인 뒤에도 수명과 기억력과 신체적인 힘의 한계가존재할까? 아니면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정도로 병들고 닳아빠진 부위를 여기저기 때워가며 비참한 모습으로 살게 될까? - P37

흥미로운 질문은 기술을 통해 강화할 수 없고, 오로지 삶이라는 경험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신적,
정서적, 영적 현상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들은 기술로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영역으로 남을지 모른다. - P37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은 상상 속에 그려진 완벽이라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아니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과정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장할 때 우리의 이상과 가치 또한 함께 성장하며 변화한다.³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길을 꾸준히 찾는 것이 본질적으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기 때문에 인류의 모습이 1천 년 후,
5백 년 후, 심지어 1. 2백 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 P38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술은 하나같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개성, 민주주의, 자율성 등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기술은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떠날 것인지 등 매우 사적이고 민감한 문제에 관한 판단능력에 영향을미칠 수도 있다. 자신의 몸과 뇌에 가해지는 깊은 차원의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제한할 권리를 어디까지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생겨나고 있다. - P39

빅터의 이야기에서 보았듯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휴대폰을 점점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기계와의 상호작용이 늘어난다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와 우리가 실제로 통합되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호해지는 상황을 포함한다. - P39

대다수가 매우 긴 수명을 누리며, 기술의 힘을 빌려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한 개인은 얼마나 자유롭게 그런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을까? 다수는 아니라도 상당수의 사람이 기술적 강화를 거부하거나, 비용을 지불할 형편이 못 된다면 어떨까?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최하층 계급이 될까? 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들을 어떻게 취급할까? - P39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인공지능 연구소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 소장인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기계에 점점 더의존하게 되었다면, 새천년을 맞아 우리는 바야흐로 기계 자체가 되려는 순간을 맞고 있다."⁴ - P40

이런 기술이 생명을 살리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기능 회복술로 도입되기 때문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시력을 회복하거나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기억을 회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유한성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죽으꽈 장애에 대한 공포야말로 가장 칸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응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41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우리편 병사가 고글 따위를 쓰지 않고 적외선을 투시하는 능력과 초인적인 청력, 엄청나게 향상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갖는다는 데 반대하거나 망설일 사람이 있을까? 일단 이런 기술이 군사적으로 폭넓게 사용된다면 민간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 P41

나아가 신체와 뇌를 점점 더 쉽게 조작하게 된다면 장차 우리는무선 컴퓨터 기술, GPS, 기타 첨단기술을 거의 모든 소비제품에 통합시켜 ‘살아 숨쉬는 것들‘과 ‘지능적인 것들‘로 구성된 환경과 점점 더 접촉면을 넓혀갈 것이다. - P41

우리는 스마트한 생활 환경에 금방 의존하게 되어 도대체 옛날에는 이런 것들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오늘날 이메일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2

‘똑똑한‘ 기기들이 우리의 활력징후를 의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린다면, 그 정보는 반드시 어딘가 저장된다. 당연히 해킹당할 수있다. 시장경제에서는 이런 정보가 보험회사나 기타 기업, 심지어 잠재적 고용주에게 팔릴 수도 있다. 개인정보 열람 범위를 세심하게 규제하고 제한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 P42

융합기술은 인류의 고통을 크게 덜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보수주의자들은 신체와 정신 양쪽에서 고통이 완전히 없어진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비롯해 고결한 품성을 함양하는 데 고난과 역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상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 P43

과학계는 인간의 경험을 환원주의적 용어로 생각하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모든 경험은 물리적인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및 전기적 과정의 합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난은 완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완전히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 P43

질병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영생을 누린다고 해도 절망과 외로움, 실망 등 삶의 모든 고난과 의미 추구 과정이 없어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 P44

그러나 기술의 개발 속도에 비해 FDA 등 규제기관의 움직임은 달팽이 걸음이다. 환자들이 기술을 하루 빨리 이용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호소는 각국 정부에 엄청난 압력이다. 결국 인간능력 강화라는 문제는 논의 대상에도 못끼는 경우가 많다. - P44

이들의 지능은 최소한 계산능력에서는 우리보다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적 사회에서 이 존재들은 어떤 권리와 의무를 누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 다를 것인가? - P45

 AI가 고도로 발달한 뒤에도 여전히 인류에게 봉사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미래가 올 것이므로 AI, 나노기술, 유전학을 더이상 발달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P45

안데르스 산드베리는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능력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에서 보듯 천편일률적으로 ‘완벽한 휴머노이드 군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기술과 개인 차원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전례없는 수준의 자아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 P46

2장 : 원래 심장보다 더 좋아요.

TAH는 가교기술bridge technology이다. 영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적합한 생체심장을 이식할 때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방법이란뜻이다. 또 한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원래 심장을 제거한 후(당연히 일단 제거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TAH를 대동맥에 연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반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대동맥은 심장에 바로 연결되는 혈관으로,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는 동맥 중 가장크다. - P51

 하지만 성공하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차분히 따져보기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 터였다.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든 심장을 이식받는다는 생각 자체도 상당히 불편했다. 하지만...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녀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 P51

그렇지 않았다면 남성이나 몸집이 아주 큰 여성에게 맞는 신카디아 70cc형 인공심장을 보통 체구의 여성에게 이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대동맥 연결은 큰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심장의 임무를 이어받은 인공심장은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 P52

인공심장의 좋은 점은 분당 9.5리터의 혈액을 안정적으로 박출한다는 점이다. 콩팥은 기능을 회복했고, 그녀 역시 활력을 되찾았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온몸에 생명이 넘쳤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아이들을 보살폈으며, 필요한 것들을 사러 다녔다. 모든 게 기적 같았다. - P53

 스테이시는 곧 익숙해졌지만 모두가 모른 체하고 참아주지는 않았다. 몸이 좋아지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다녔던 교회를 찾았다. 교회 밖에는 "이제 네 모습 그대로 내가 만나기를 원하노라come as you are"고 씌어 있었다. 예배를 마치자 목사가 다가왔다. 그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신도들에게 방해가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 달라고 했다. - P53

인공심장을 지니고 산 지 196일째,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다. 심장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행운에 기쁘고 마음이설렜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누릴 정도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인공심장을 제거한다니 걱정도 되었다. 생체심장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TAH는 거부반응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혈전 방지제만 꼬박꼬박 복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 P53

최근에는 실제로 가벼운 거부반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몸상태가 너무 좋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것이다. 심장전문의는 이식 후 얼마 안 되어 가벼운 거부반응을 겪은 사람이장기적으로 경과가 더 좋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순위는 명백하다. "저는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가족과 함께 사는 거죠." - P54

 TAH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소형화 추세도 계속되어 더 큰 인공심장과 똑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30cc 모델을 개발 중이다. - P54

인공심장의 잠재적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심장질환은 남녀를불문하고 가장 흔한 사망원인이며, 생물학적으로 적합한 생체심장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건강 문제 없이 오로지 심장 때문에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 P55

심폐 이식 분야의 선구자인 외과의사 마크 플런킷Mark Plunkett을 만나보았다. 그는 켄터키의과대학 흉부외과 과장으로 재직할 때 세 명의 환자에게 TAH를이식한 경험이 있다. 얘기를 나누면서 적합한 기증자가 나서기를기다리며 죽어가는 ‘아픈 사람 중에서 가장 심한 사람들‘의 생명을구하는 놀라운 치료와 인공심장에 대한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있었다. - P55

플런킷 박사는 아주 어렸을 때 진로를 결정했다. 메릴랜드 주 동해안의 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그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외과의사가되겠다고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과 일곱 살 때였던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크리스티안 바나드christiaan Barnard라는 의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대 인간 심장 이식수술을 시도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심장을 이식받은 53세의 남성 루이스 와시칸스키Louis Washkansky는 합병증 때문에 18일밖에 살지 못했지만, 이식수술자체는 성공이었다. - P56

플렁킷은 인공장기이식술에 마음이 끌렸다. 생체장기가 턱없이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말기 환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재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적합한 장기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미국에서만 11만 9천 명에 이른다.
매년 7천 명이 기다리다 사망한다.¹ 가장 큰 문제는 장기기증자가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 P56

 거부반응이 일어나거나 심부전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식심장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고령자라면 몰라도,
어린이는 사정이 다르다. 평생 여러 차례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하며,
그때마다 적합한 기증자를 절박하게 기다려야 한다. - P57

현재 몇 가지 인공장기가 개발을 마치고 시험 중이지만, 인공심장의 기초 기술은 오래 전에 개발되었다. 1963년 폴 윈첼Paul Winchell이 최초의 인공심장을 제작했다. 이를 원형으로 삼아 1983년에는 자빅Jarvik 이 개발한 인공심장이 최초로 인간에게 이식되었다. 이후 인공심장은 점점 정교해졌으며, 이식받은 환자들 역시 점점 오래살게 되었다.  - P57

현재 신카디아 인공심장과 박출량이 같으면서 무거운 백팩을 매고 다닐 필요 없이 가벼운벨트형 배터리 팩만 착용하면 충전되는 형태가 우선 목표다. 그 다음 버전은 피부 밑에 배터리를 이식하는 완전 체내형 심장이다. 그는 모든 것이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전망한다. - P57

 우선 환자는 생체이식수술을 받는 데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다른 이식형 장치나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말기 심부전으로 양쪽 심실이 모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대리야 한다. 환자는 보통 심장전문의, 특히 심부전 전문의를 거쳐 이식전문의에게 의뢰된다. 관상동맥질환, 심장발작, 고혈압, 바이러스성 심근염, 심장판막질환 등심부전에 이른 원인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심각하고, 심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 못할 상태다. - P58

심장 기능이 약해져 주요 장기에 적절히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면 심부전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마침내 주요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휴식을 취할 때조차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양쪽 폐에 혈액과 체액 저류되면서 숨이 가빠진다. - P58

이 정도로 나빠지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괴롭다. 폐에 더 많은 체액이 저류되면숨쉬기가 어렵고 물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눕지 못하고 앉은 채로만 잠들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극심한 피로가 가중된다. 이식전문의에게 의뢰되는 환자는 대부분 이런 상태다. - P59

플런킷 박사는 완전인공심장에 대해 설명하고 짧은 영상을 보여주지만 모든 환자가 선선히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실 굉장히 급진적인 생각이죠.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 P59

하지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대개 인공심장을 제안받은 환자는 시술만 가능하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수락한다. 젊은 환자일수록 더 쉽게 받아들인다. 플런킷 박사에 따르면 유럽에는 인공심장에 크게 만족하여 적합한 생체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데도 인공심장을 고수하는 환자가 상당히 많다. - P60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언제 이 장치를 끌 것인지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플런킷 박사는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가상적인 시나리오를 들어 실명했다.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심한뇌졸중을 겪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해보자. 현재 사용되는 인공심폐장치와 마찬가지로 인공심장은 계속 온몸으로 혈액을 순환시킬 것이다. - P61

의료진은 인공심장의 스위치를 내리자고 권고할 가능성이 높다. 뇌사 상태인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치료를 중단할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는 가혹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 P61

인공심장의 작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무리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가 꺼져가는 삶을 움켜잡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생각하며 크나큰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가족을 떠나보낸 마지막 순간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스위치를 내리는 행위를 살인이라고 생각해 절대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 P62

아직 이런 윤리적 질문에 답할 만큼 많은 연구 결과가 축적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심장 기능 보조장치들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 문제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대략 개념을 잡을 수는 있다. - P62

생명윤리학자 린 잭슨 Lynn A. Jansen은 죽어가는 환자에서 심박동조율기를 끄는 문제에 대해 쌌다. 심박동조율기는 전류를 통해 심장을 규칙적으로 박동시키는 장치다. 심장의 전기적 신호가 크게 불규칙해지면 매우 위험하다. - P63

따라서 가족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점점 자주 벌어진다. 심박동조율기를 계속 작동하도록 두어야 할까?
아니면 조율기를 끄고 자연적인 죽음이 진행되도록 해야 할까? 끈다면 언제 꺼야 할까? 이식받은 환자의 심리 역시 매우 복잡하다.
죽음을 막아주는 마지막 방어벽으로 생각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장치에 의존한다. 심지어 심박동조율기를 몸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 P64

잰슨의 입장은 심박동조율기가 자체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있는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기능을 중단한다면 심박동조율기 또한 의미와 용도를 잃는다. 뇌사 상태인 환자의 몸속에서 혈액이 순환을 계속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생명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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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그가가져온 것은 하얀색과 황금색으로 두툼하게 짠 캐시미어이었다. 해러즈 특유의 얇은 포장지에 싸여 아직 해러즈 백화점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미스더버는 해러즈 포장지를 그 안의 물건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지, 숄을꺼낸 뒤 포장지부터 매끈하게 펴서 원래 모양대로 접어다시 상자 안에 넣고, 상자를 최고의 보물만 놓아두는 장식장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숄을 어깨에 둘러 주고자신을 끌어안는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 P19

「괜찮다면 꽤 오랫동안 여기 머무르게 될 것 같아요.
미스 D. 글 쓸 것이 좀 많거든요.」
「말은 항상 그렇게 하지. 지난번에는 여기서 아예 눌러살겠다고 했잖우. 그래놓고 쪼르르 돌아가버렸으면서.」
「어쩌면 2주나 있을지도 몰라요. 편안히 작업하려고휴가를 냈거든요.」 - P20

「항상 크루즈 얘기를 하시잖아요. 이제 자신에게 선물을 줘야 할 때도 됐습니다, 미스 D.」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이젠 흥미 없어요.」
「지금도 제가 비용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고맙기도 하지.」
「원하신다면 전화 문의도 제가 해드리죠. 저랑 같이여행사에 가는 겁니다. 사실 제가 봐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일주일 뒤에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하는 오리엔트 익스플로러호입니다. 제가 물어봤더니, 취소된 표가 하나있다고 하더라고요.」 - P21

핌은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느님과 제가 힘을 합쳐도 미스 D 를 어디로 옮겨 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 P21

사실 당시 그녀의 부엌에는 아무 이상 없이 작동하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지만, 어쨌든 핌은 그 뒤로 여섯 달마다 한 번씩 현금으로 미리 방세를지불했다. 영수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원 옆에그녀를 위해 나지막한 돌담을 지어 주었다. 그녀의 생일에 그녀를 놀래 주려고 벽돌공을 재촉해서 어느 날 오후반나절 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 P22

 핌은 이곳에서 우편물도 손님도 받지 않았고, 외국어로 된 무선 통신 외에는 아무런 기기도사용하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에게 볼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전화기도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미스 더버에게 자신이 런던에 살면서 정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을 많이 하고, 이름이 캔터베리라는 것만 이야기해 주었다. 자식, 아내, 부모, 애인 등 그와 가까운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었다. 여기 미스 D뿐이었다. - P23

3시간 전 빈에서, 매그너스의 아내 메리 핌은 자기 방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남편이 선택한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놀라우리만치 고요한 세상이 거기에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커튼을 닫지도 않고, 불을 켜지도않았다. 어머니가 그녀를 보았다면 손님 맞을 옷차림을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 P24

둘이 함께 가서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스카치와 음료수를 마셨어야 했다. 매그너스는 보드카를마셨을 것이다. 그러곤 전축에 음악을 걸고 춤을 췄을 것이다. 외교적으로 춤을 추는 핌 부부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매그너스가 워싱턴의 부지부장으로 있을 때는 두 사람의 손님 대접이 정말로 유명했고, 모든 일이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갔다. 매그너스가 농담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자극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동안 메리는 베이컨과 달걀을 요리했다. - P25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지난수요일까지의 일. 지금 중요한 것은 매그너스가 공항에세워 두었던 메트로 자동차를 몰고 저 길을 달려와 잭브러더후드보다 먼저 여기 문 앞에 도착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 P25

시끄러운일도 없고, 문제도 없어, 난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다.」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 <나>가 아니라, 잭 브러더후드였다.
「그 소포 소식은 없나 보지?」 브러더후드가 군인 특유의 풍부하고 자신감 있는 영어로 물었다.
「누구한테서도 소식이 없어요. 지금 어디예요?」
「한 30분 뒤 거기 도착할 거야. 가능하면 그보다 빨리갈 수도 있고, 기다려.」 - P26

핌과 마찬가지로 메리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영국 사람이었다. 머리는 금발이고, 턱은 강인했으며, 성격은 솔직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특징이 하나 있다면 세상을 상대할 때, 특히 외국인들을 상대할 때 살짝 코믹하게군다는 점이었다. 메리의 인생은 훌륭한 죽음의 기록이었다.  - P27

 하지만 상심 끝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메리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의 곁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궁하지않게 살 만한 유산과 지독히 애국적인 영혼, 그리고 도싯의 작은 장원을 남겨 주었다.  - P28

매그너스, 돌아와 당신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란을 피워서 미안해. 당신이 6에이커밖에서도 들리겠다고 한 그 목소리로 브리티시 항공 직원에게 고함을 질러서 미안해. 내 외교관 여권을 막 휘둘러 대서 미안해. 그리고 또........잭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남편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어서 미안해…………. - P28

「아, 진짜.」 메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칠게 쏘아붙인다.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하고, 이 망할 고리나 좀 걸어줘.」
가끔 군인 집안의 전통이 내 말버릇을 지배하기 때문이야. - P30

하지만 메리는 여느때처럼 너무 불안해서 미소도 짓지 못하고, 그에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고용인인 벤첼 씨가 베버의 생선 가게에서 얼음을 가져왔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매그너스가 간다. 매그너스는 항상 간다. 메리의 뺨에 쪽 입을 맞추는 편이 더 현명할 때조차 매그너스는 간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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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재미있게 봤었는데.




세찬 바람이 부는 10월 어느 날의 깊은 새벽,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데번주 남부의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은 낡은 시골 택시를 내렸다. 요금을 치른 뒤 기사가 차를 몰고 떠날 때까지 기다린 그는 힘찬발걸음으로 교회앞 광장을 가로질렀다. 그의 목적지는벨라비스타니 코모도어니 유레카니 하는 이름을 달고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하숙집들이 어두운 불을 밝힌 채 늘어서 있는 계단식 단지였다. - P13

강한 바닷바람이 그의 도회풍 양복을 후려치고,
소금기 섞인 빗줄기가 눈을 찌르고, 물거품이 그의 앞길을 공처럼 굴러갔다. 핌은 그것들을 무시했다. <빈방 없음>이라고 표시된 어느집 포치에 다다른 그는 초인종을울리고 기다렸다. 처음에는 외부의 전등이 켜지기를, 그다음에는 안에서 걸어 잠근 고리를 풀어 주기를 그렇게기다리는 동안 교회 시계가 5시를 치기 시작했다. - P14

「세상에, 캔터베리 씨 아니우?」 뒤에서 문이 열리며 어느 노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살아.
또 야간 침대차를 타고 왔구먼. 미리 전화라도 좀 하지.」「안녕하세요, 미스 더버.」핌이 말했다.「 잘 지내셨어요?」
「내가 잘 지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캔터베리 씨 얼른 들어와요. 그러다 죽을라.」 - P14

「쿡 씨는 위쪽 아파트로 갔어요. 실리아 벤이 그림을그리겠다면서 그 방에 들어갔고, 정말 딱 캔터베리 씨답네.」 미스 더버가 빗장을 걸었다. 「석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다가 한밤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남의 방에 왜 불이 켜져 있느냐는 거라니.」 미스 더버는 빗장을 하나 더 걸었다.  - P15

「벤씨의 딸이지, 딱 들으면 모르겠우. 바다를 보면서그림을 그리고 싶답디다.」 미스 더버의 목소리가 갑자기 딱 바뀌었다. 「이런, 캔터베리 씨, 무슨 배짱이우? 그거당장 벗어요.」 - P16

「세상에 끔찍한 검정 넥타이라니, 캔터베리 씨, 내 집에 죽음을 들여놓을 수는 없어요. 절대 안 돼. 그건 누구때문에 맨 거예요?」
핌은 소년처럼 앳되어 보이면서도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50대 초반인 그는 아직 한창 나이였고, 이곳에서는찾아볼 수 없는 열정과 조급함이 가득했다. - P16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입니다.」 핌은 강한 어조로 말하면서 넥타이를 풀어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미스D에게 그 친구의 이름을 알려 줄 생각도 없고요. 그랬다가는 신문 부고 난을 샅샅이 뒤지실테니까요.」이 말을하는 동안 방명록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그가 지난번에왔을 때 천장에 끼워 준 오렌지색 야간 등 불빛을 받고있는 현관홀의 탁자 위에 방명록이 펼쳐져 있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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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 관리자는 옹 (1990,396~397쪽)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은 틀에 박힌 기계적인 일에 더 잘 집중할 줄 알아요. 그리고 젊은 여성들을 나이 든 사람들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눈요기 때문이죠. 남성들이 아주 미세한 작업을 여덟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기대할 수 없어요. 우리 작업은 여성들을 위해 고안되었지요. (・・・・・…) 남성들을 고용하면 한두 달 안에 모두 달아날 거예요. (…………) 서른 살 아래젊은 여성들은 직무훈련을 시키기도 쉽고 일에 적응도 잘해요." - P116

멕시코 마킬라도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리아 파트리시아 페르난데스켈리 (1983)도 조립공장들이 멕시코 여성들에게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페르난데스켈리는 이 연구를 위해 노동자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여성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이해할 목적으로 한 마킬라도라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녀는 거기서 기업들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성들의 기술 수준이 더 높고, 온순하며,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고된 업무에도 잘 따른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P116

말레이시아의 조립공장이든 멕시코의 조립공장이든 미혼 여성을 더 선호했는데 나이 든 기혼 여성들은 회사 말고도 가정에서 해야 할 다른 일이 너무 많고 대개 야간 교대근무를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혼 여성들은 호봉이 높아서 신규로 들어온 젊은 미혼 여성들이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할 수도 있다. - P117

그러나 조립공장의 고용 현실이 이렇게 된 데는 자본주의의 블랙박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여성노동자나 어린이가 받는 임금은 남성노동자가 받는 임금만큼 많지 않아도 된다. 또한 해외노동자에게는 국내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만큼 주지 않아도 된다. 좀더 확대해서 말하면, 유색인종 노동자들은 백인 노동자보다 임금을 더 적게 주어도 된다. - P117

중요한 것은 그런 사회적 차별과 편견, 즉 남녀차별과 인종주의, 이민자차별이 적어도 어느정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블랙박스의 중요한 비밀이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인가? - P118

첫 번째로 시장이 명확하고 이윤도 상대적으로 확실하게 보장되고 자본 투자도 높고 높은 임금과 적정한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1차산업이 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 제조, 통신, 에너지 같은 산업들은 1차산업에 속한다. - P118

그다음으로 2차 산업이 있는데 패스트푸드, 농업, 전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류 직물산업이 이에 속한다. 2차 산업은 내적으로 격심한 경쟁에 시달리며 불확실하거나 끊임없이 변하는 수요와 낮은 수익률, 비숙련 노동에 대한 의존성이 큰 특징이 있다. 2차 산업은 노동자들에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일자리다. 여기에 속한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가장 낮은 임금을 지불하면서 노동자가 최대한의 산출물을 생산하도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 P118

물론 저임금의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여성을 고용하는 것은 산업 자본주의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온 관행이었다. 여성과 어린이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산업혁명 초기에 공장노동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 P118

 1840 년 영국 직물산업의 경우에는 전체 노동력의 75퍼센트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였다. 조립공장을 해외에 두는 것은 오래전부터 저임금노동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노동력을 이용해오던 자본주의적 노동착취의 현대판 행태에 불과하다. - P119

 그러나 이런 2차 노동시장의 확대는 본국이나 해외에 있는 노동자와 기업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제적 영향을 끼쳤다.

·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되면서 본국에서는 실업자가 늘어났다.

.미국에서 1차 노동과 2차 노동의 격차가 커졌다.

.세계체계 아래 있는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보수가낮고 불안정하며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일자리가 늘었다. - P119

오히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그런 구분의 기준이 된다. 달리 말하면 조립공장에서 여성들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일보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성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비숙련 노동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페르난 데스켈리는 멕시코의류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재봉기술을 배우려고 애쓰다 그들의 일하는 속도를 거의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P119

그러나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2차 노동을 저개발국가로 이전하고 값싼 노동력 저장소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은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막강한 정치적·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기업들은감히 노동조합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더 많은 임금이나 더 좋은 노동조건을 요구하지도 않는 노동계급 가운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부문의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다. - P120

요약하면 기업의 입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값싼 뜨내기 노동력의 주요 원천이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전 세계 조립공장노동자 중 대부분을차지하고 있지만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성들의 지위는 가장 낮기 때문에 직물이나 신발, 플라스틱, 전기용품, 전자제품 같은 것들의 해외 수요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쉽게 반복할 수 있다. - P120

 그들은 여성들이번 돈은 그렇게라도 일하지 않았다면 소유하지 못했을 자원들을 통제할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들이 벌어오는 소득에 가족들이 의존하게 되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자리 창출은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단계이며, 마침내 우리 모두의 삶을 더욱 좋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 P120

반드시 저임금노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여성들이 그런 저임금 일자리를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 아일랜드인들이 깨달은 것처럼 그러면 누군가 다른 집단이 그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 P121

통제와 규율

(중략)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옮겨온 도시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그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고 과거에 자신들이 부인했던 행위들을 자유롭게 시험해볼 수도 있었다. 결국 남성들은 ‘건달‘이라거나 ‘깡패‘라는 오명을 얻었고 여성들에게는 ‘부도덕하다‘거나 ‘헤프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따라서 자유노동의 탄생은 한 가지 문제를 유발했다. 당신은 이 새로운 노동력을 어떻게 통제할것인가? - P121

예컨대 20세기 벽두에 뉴욕 시에서는 수천 명의 젊은 여성들이 공장에취직했다. 그들은 새롭게 눈뜬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들이 번 돈으로 쇼핑을 하고 데이트도 즐기고 춤추러 가기도 하고 코니아일랜드 같은 위락지구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그것을 부도덕하다고 본일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 P121

19세기 미국과 영국에서처럼 말레이시아나 멕시코 같은 나라의 젊은남녀들도 일자리를 찾아서 고향을 떠나 새로 조립공장들이 세워진 도시로 이주했다. 그것은 그동안 그들을 짓눌렀던 가족과 교회가 부과한 전통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따라서 그들은 이제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 - P122

말레이시아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공장에 다니는 여성들의 도덕성이 느슨해졌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는데,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크다. 말레이시아 언론들은 공장에 다니는 여성들을 쾌락을 추구하고 서양의 소비문화에 푹빠진 낭비벽이 심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매춘에 대한 기사는 ‘섹스에 빠진 공장 여성‘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는다. - P123

그러나 상류층 여대생들은 공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데이트나 영화 관람을 해도 사회로부터 그런 주시를 받지는 않았다.
심지어 학계나 종교계, 정부 인사들도 젊은 여성들의 도덕성 실종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담이나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전통적으로 주로 가사에 전념하는 여성들보다 하루에 3시간을더 일하는데도 여성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 P123

자본주의 기업은 믿을 수 있는 훈련된 노동력을 요구한다. 옛날식 규율은 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규율이 그것을 대체해야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 P123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회사 목표에 순응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이용한다(Ong, 1987. 169쪽).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에게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한 공장의 사훈을 살펴보자.

•한 가족 만들기
•노동자 양성
•회사와 나라에 충성, 동료에게 신의. - P124

종교 역시 규율의 수단으로 이용된다(Ong, 1987, 185쪽),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정부기관에 이슬람 율법에 따라 사법권을 집행하는 특별 부서들이 있다. 예컨대 현행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이슬람교도들은 서로 가까운 친척이나 결혼한 사이가 아닌 남녀가 ‘사적 공간에 둘만 있는 경우‘에 할왓khalwat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될 수 있다. 반드시 섹스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섹스를 제안한 것만으로도 벌금을 물거나 여러달 동안 감옥에 들어갈 수 있다. - P125

그다음으로 공장 자체의 규율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18~19세기 공장들은 감옥을 본떠 만들어졌다. 오늘날 조립공장들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레이시아 조립공장노동자들은 때때로 유리 칸막이가 있는공간에서 일하며 감시를 받는다. 예를 들면 한 공장에서는 감독관 3명과현장주임 12명이 530명의 직공들을 관리한다. 지나치게 감시가 심한 현장주임들은 여성노동자들이 기도실이나 진료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것까지 일일이 간섭하면서 공장의 규칙을 그야말로 강압적으로 적용한다. - P125

그리고 조립공장은 말레이시아 노동자들에게 노동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서양의 공장 중심적 사고를 주입한다. 오늘날 조립공장의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든 반드시 순응해야 하는 사고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어린 소녀들은 가사나 밭일을 도왔다. 그들의 활동은 오늘날 공장에서 시행하는 노동시간이나 작업규칙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 P126

반면 공장에 다니는 여성노동자들은 날마다 8시간씩 계속해서 일해야하는데, 중간에 두 차례 15분의 휴식시간과 30분간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또한 그들의 작업일정은 달마다 바뀐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으로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현장주임들의 지나친 감시에 시달린다. 화장실에 가려고 작업대를 잠시 비울 때는 허락을 얻어야 한다. 출근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작업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데도)벌금을 물어야 한다. - P126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전통사회의 시간개념이 자본주의 시계의 시간개념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자기나름의 방법들을 개발했다. 옹(1987, 112쪽)은 결혼한부부 한 쌍의 사례를 들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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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든 상관없이 다가오는 반납일.
뭔갈 하는 것 같지만 한 것 같지 않은 주말.







도덕이란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 될 때 고통을 주게 된다. 생쥐스트의 주장을 풀어서 말하자면 아무도 죄 없이 덕스러울수는 없다. 법률이 화합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원리들이 이룩해야 마땅한 통일이 깨진다면 그 순간부터누구에게 죄가 있다고 할 것인가? - P220

생쥐스트는 외친다. "덕이 아니면 공포정치를." 자유는 청동 빛을 띠며 경직되어야 했고, 그리하여 국민의회의 헌법초안에는 사형 제도가 등재되고 말았다. 절대적 미덕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관용의 공화국은 가차 없는 논리에 의해 단두대의 공화국을 초래한다. 몽테스키외는 이미 이 논리가 사회타락의 원인들 중 하나라고 고발하면서, 권력 남용은 법률이 그것을 예견하지 못할 경우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 P221

테러 (공포 정치)

사드와 동시대인이던 생쥐스트는 사드와 다른 원리에서 출발했지만 사드와 마찬가지로 범죄의 정당화에 이른다. 생쥐스트는 물론 사드와 정반대다. 사드의 주장이 ‘감옥의 문을 열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덕을 증명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면국민의회 의원의 주장은 ‘그대의 덕을 증명하라,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들어가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P221

생쥐스트가 창안해 낸 그런 진지함은 지난 두 세기간의 역사를 너무나도 따분한 흑색 소설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수반의 자리에 앉아서 농담을 지껄이는 자는 전제 정치로 기울기 쉽다." 이쯤 되면 놀라운 격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그 당시 전제정치에 대하여 조금만 비난을 해도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 P222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격언조의 말들은 마치 국민의 예지 그 자체인 양울려 퍼지고 무슨 학설을 이룰 듯한 그의 정의들은 엄격하고 분명한 계율처럼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제반 원리는 온건해야 하고 법률은 잔혹한 것이라야 하고 형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단두대 스타일이다. - P223

만약 파당들이 이 꿈을 방해하려 들 경우 정열은의 논리를 과장될 정도로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당이 존재하는 이상 원리들이 어쩌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원리는 손댈 수 없는 것이기에 죄는 파당에게 있게 된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도덕으로, 귀족 정치는 공포정치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러나 귀족들의 파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화파도 고려해야 하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입법 회의와 국민의회의 활동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 P223

이성도, 자유로운 표현도, 통일을 체계적으로 확립할 수 없을 경우라면 이색분자를 잘라내버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두대의 칼날은 이렇게 하여 꼬치꼬치 따지는 역할을 맡게 되며 그 기능은 오로지 반대 의견을 논박하는 데 있다. "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악당이 단두대에 항거하려고 압제에 항거하고자 하다니!" 생쥐스트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단두대는압제의 가장 명백한 상징들 중 하나였을 뿐이니 말이다. - P224

단두대는 합리적 통일을, 국가의 조화를 확보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공화국을 정화 - 얼마나 적절한 낱말인가 하고 일반 의지와 보편적 이성을 거역하는 부정한 자들을 일소해 준다는 것이다. 마라¹²¹는 색다른 어투로 이렇게 외친다. "사람들은 내가 박애주의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한다. 아!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내가 다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소수의 목을 벤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말인가?" 소수라면 반대하는 파당 말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모름지기 역사적 행위란 이 정도의 대가는 치르게 마련이니까.


121) 장폴 마라 (Jean-Paul Mara, 1743~1793). 대혁명 후 9일 대학살의 선동자 중 한 사람. - P224

게다가 그는 대량 학살에 임하여 다음과 같이 외침으로써 그 수술 작전의 치유적 성격을 훼손했다. "달군 쇠로 놈들에게 낙인을 찍어라, 놈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 버려라. 그들의 혀를 쪼개 버려라." 그 박애주의자는 이처럼 더할수 없이 단조로운 어휘를 동원하여 창조를 위한 살인의 필요성을 밤낮으로 써 내려갔다. - P225

그러나 생쥐스트의 비극은, 보다 고차원적인 이유와 보다 심오한 요구 때문이긴 하지만, 때때로 마라와한목소리로 합창을 했다는 데에 있다. 파당파당끼리, 소수파는 소수파끼리 연합하게 되자 마침내 단두대가 과연 만인의 뜻을 위하여 기능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생쥐스트는 끝까지, 그것이 미덕을 위하여 기능하므로결국 일반 의지를 위하여 기능하는 셈이라고 잘라 말할 것이다. - P225

보편적 무구함이 동경해 마지않는 잃어버린 낙원은 점점 멀어져간다. 내란과외전의 절규로 가득찬 불행의 땅 위에서 생쥐스트는 조국이 위협받을 경우 만인이 다 유죄라고 선언한다. 이는 자신과 자신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국외의 파당들에 대한 일련의 보고서들, 프랑스 공화력 9월 22일 자로 선포된 법률, 그리고 1794년 4월 15일 자경찰의 필요성에 관한 연설 등은 모두 그의 이러한 전환의 단계들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 P226

로베스피에르를 변호하기 위하여 행한 연설에서 그는 명성도, 생명을 부지하여 살아남는 것도 부정하면서 오직 추상적 섭리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는 동시에 그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 미덕이란것도 역사와 현재 외에는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으며 그 미덕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배력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 P226

 그러자 죄는 인민에게 있고 마땅히 무죄한 것이어야 하는 원칙을 가진 권력은 죄가 없게 되었다. 이토록 극단적이며 피비린내 나는 모순은 훨씬 더 극단적인 논리에 의존하거나 침묵과 죽음 속에서 원리들을 마지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생쥐스트는 적어도 이러한 요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P227

 자신의 원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인민의 덕과 행복 속에서 절정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자신이 아마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달은 그는 자기가 인민에게절망하게 되는 날에는 칼로 자결해 버리겠노라고 공공연히 선언함으로써 미리 배수진을 쳤다. 이제 바야흐로 그는 절망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가 공포 정치를 회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마비되고 원리는 약화되었다. 남은 것은이제 음모자들이 쓰고 다니는 붉은 모자¹¹²뿐이다. 독한 술이 미각을 마비시키듯 공포 정치가 범죄에 대한 무감각을 가져왔다."


122) 프랑스 대혁명 때 자유의 상징으로 쓰고 다니던 모자 - P227

그러자 생쥐스트가 그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얼굴을 딴 데로 돌려 버린다.
악의 공범자가 되든가 아니면 악을 보고도 모른 체하는 증인이 되든가 둘 중 하나인 삶이라 하더라도 잃은 것은 별로 없다. 만약 타인들을 죽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죽여야 한다고 했던 브루투스는 결국 타인들을 죽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너무나 많아서 그 모두를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 P228

생쥐스트는 죽기 얼마 전, 로베스피에르를 젼호하는 연설에서 자신의 행동의 그 위대한 원리를 재확인하는제 이 원리는 머지않아 그 자신의 처형에 적용된다. "나는 어느 파당에도 속해 있지 않다. 나는 모든 파당들을 분쇄할 테다." 그는 이처럼 일반의지의 결정, 다시 말해서 국민의회의 결정을 미리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현실을 송두리째 거슬러 자신의 원리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기를 수락했다. 왜냐하면 국민의회의 의견이란 오로지 어느 한 파당의 웅변과 열광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 P229

 7월의 파리, 그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생쥐스트는 보란 듯이 현실과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목숨을 원리의결정에 내맡긴다고 공언한다.  - P229

국민의회가 그의 처형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그가 단두대의 칼날 아래 목을 들이미는 순간까지 그는 시종 침묵을지킨다. 이 오랜 침묵이야말로 그의 죽음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그는 역대 왕좌주위에 침묵이 지배하고 있음을 개탄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 자신은 그토록 많이, 그토록 멋지게 말하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순수 이성‘
과 합치되지 못하는 인민의 전제와 수수께끼를 다 같이 경멸하면서 그 자신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P230

"모든 돌은 자유의 건축물을 위하여 다듬어진다. 여러분은같은 돌을 가지고 자유의 신전을 지을 수도 있고 자유의 무덤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생쥐스트는 말했다. 그런데 『사회 계약론』의 원리들은 자유의 무덤을 만드는 일을 주관했다. 나중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나타나 그 무덤의 출구를 봉쇄해버리게 된다. 그래도 양식을 잃지 않았던 루소는 『사회 계약론』의 사회가 오직 신들에게만 적합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 P230

 이 의미심장한 변화를 조레스¹²⁵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인민들이 바로 법이다. 우리는 반항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반항하는인간들은 튀일리궁¹²⁶에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그처럼 쉽게 신이 될 수는 없다. 낡은 신들 자체도 단번에 죽지는 않는다. 그래서 19세기의 여러 혁명들은 장차 신의 원리를 완전히 청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파리 시민들은 왕으로 하여금 인민의 법에 굴복하게 하기 위하여 왕이 또다시 원리의 권위를 회복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 봉기한다.



125) 장 조레스(Jean Jaures, 1859~1914). 프랑스의 정치인, 철학자, 역사학자, 사회당 당수를 역임했다.
126)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 기거했던 궁전. - P231

그리하여 앙시앵 레짐은 프랑스에서 결정적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1848년 이후에는 새로운 체제가 확고히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1914년까지의 19세기 역사는 앙시앵 레짐하의 군주 정치에 대한 인민 주권 회복의 역사이며 민족자결주의의 역사인 것이다. - P231

새로운 복음의 설교자로서 그들은 동지애의 근거를 로마인들의 추상적 법에서 찾고자 했다. 그리고 만인에의한 인정을 전제로 하는 법률을 신의 계율에 대치시켰다. 왜냐하면 그 법률은 일반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법률은 자연의 미덕 속에서 정당성을 발견하고, 그런 다음에는 자연의 미덕이 역으로 그 법률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것이었다. - P232

 그러나 오직 자코뱅이라는 하나의 당만이 옳다고 선포되는 순간부터 그 논리는 무너지게 되고 그 덕은 추상적인것이 되지 않기 위해 정당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18세기의 부르주아 법률가들은 그들의 인민이 쟁취한 정당하고도 살아 있는 수확 원리들을 자신들의 원리들로 짓눌러 버림으로써 두 가지의 현대적 허무주의를 마련한 것이다. 개인적 허무주의와 국가적 허무주의가 그것이다. - P232

생쥐스트는 침묵하는 인민의 이름을 빌려 나타나게 될 이러한 전제정치를 예견했었다. "교묘한 범죄는 일종의 종교를 자처하고 악인들은 신성한방주 속에 들어앉게 되리라." 그야말로 이것은 피할 수 없는것이다. 만일 큰 원리들에 토대가 없다면, 그리고 만일 법률이입법자의 일시적 기분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한다면 법률은 이제 자의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혹은 강요되기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셈이다. - P233

 그러나 신은 적어도 육화될 수 있는 구체성을 잃었으므로 어떤 도덕적 원리의 이론적 존재에 불과하다. 부르주아 계급은 19세기 전체에 걸쳐서 오직 이러한 추상적 원리에만의거해서 지배해 왔다. 다만 생쥐스트만큼 의연하지 못한 부르주아 계급은 어떤 경우든 그와 반대되는 가치들을 실천하면서 이 원리를 그 알리바이로 이용했다. - P234

 러시아 공산주의는 모든 형식적 도덕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통하여 일체의 상위 원리를 부정함으로써 20세기의 반항적 과업을 완수한다. 19세기 왕의 사역자들의 뒤를 이어 신의 시역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반항적 논리를 궁극에까지 밀고 나가서 지상의 세계를 인간이 신으로 군림하게 될 왕국으로 만들고자 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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