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든 상관없이 다가오는 반납일.
뭔갈 하는 것 같지만 한 것 같지 않은 주말.







도덕이란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 될 때 고통을 주게 된다. 생쥐스트의 주장을 풀어서 말하자면 아무도 죄 없이 덕스러울수는 없다. 법률이 화합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원리들이 이룩해야 마땅한 통일이 깨진다면 그 순간부터누구에게 죄가 있다고 할 것인가? - P220

생쥐스트는 외친다. "덕이 아니면 공포정치를." 자유는 청동 빛을 띠며 경직되어야 했고, 그리하여 국민의회의 헌법초안에는 사형 제도가 등재되고 말았다. 절대적 미덕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관용의 공화국은 가차 없는 논리에 의해 단두대의 공화국을 초래한다. 몽테스키외는 이미 이 논리가 사회타락의 원인들 중 하나라고 고발하면서, 권력 남용은 법률이 그것을 예견하지 못할 경우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 P221

테러 (공포 정치)

사드와 동시대인이던 생쥐스트는 사드와 다른 원리에서 출발했지만 사드와 마찬가지로 범죄의 정당화에 이른다. 생쥐스트는 물론 사드와 정반대다. 사드의 주장이 ‘감옥의 문을 열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덕을 증명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면국민의회 의원의 주장은 ‘그대의 덕을 증명하라,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들어가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P221

생쥐스트가 창안해 낸 그런 진지함은 지난 두 세기간의 역사를 너무나도 따분한 흑색 소설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수반의 자리에 앉아서 농담을 지껄이는 자는 전제 정치로 기울기 쉽다." 이쯤 되면 놀라운 격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그 당시 전제정치에 대하여 조금만 비난을 해도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 P222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격언조의 말들은 마치 국민의 예지 그 자체인 양울려 퍼지고 무슨 학설을 이룰 듯한 그의 정의들은 엄격하고 분명한 계율처럼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제반 원리는 온건해야 하고 법률은 잔혹한 것이라야 하고 형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단두대 스타일이다. - P223

만약 파당들이 이 꿈을 방해하려 들 경우 정열은의 논리를 과장될 정도로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당이 존재하는 이상 원리들이 어쩌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원리는 손댈 수 없는 것이기에 죄는 파당에게 있게 된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도덕으로, 귀족 정치는 공포정치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러나 귀족들의 파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화파도 고려해야 하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입법 회의와 국민의회의 활동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 P223

이성도, 자유로운 표현도, 통일을 체계적으로 확립할 수 없을 경우라면 이색분자를 잘라내버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두대의 칼날은 이렇게 하여 꼬치꼬치 따지는 역할을 맡게 되며 그 기능은 오로지 반대 의견을 논박하는 데 있다. "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악당이 단두대에 항거하려고 압제에 항거하고자 하다니!" 생쥐스트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단두대는압제의 가장 명백한 상징들 중 하나였을 뿐이니 말이다. - P224

단두대는 합리적 통일을, 국가의 조화를 확보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공화국을 정화 - 얼마나 적절한 낱말인가 하고 일반 의지와 보편적 이성을 거역하는 부정한 자들을 일소해 준다는 것이다. 마라¹²¹는 색다른 어투로 이렇게 외친다. "사람들은 내가 박애주의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한다. 아!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내가 다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소수의 목을 벤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말인가?" 소수라면 반대하는 파당 말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모름지기 역사적 행위란 이 정도의 대가는 치르게 마련이니까.


121) 장폴 마라 (Jean-Paul Mara, 1743~1793). 대혁명 후 9일 대학살의 선동자 중 한 사람. - P224

게다가 그는 대량 학살에 임하여 다음과 같이 외침으로써 그 수술 작전의 치유적 성격을 훼손했다. "달군 쇠로 놈들에게 낙인을 찍어라, 놈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 버려라. 그들의 혀를 쪼개 버려라." 그 박애주의자는 이처럼 더할수 없이 단조로운 어휘를 동원하여 창조를 위한 살인의 필요성을 밤낮으로 써 내려갔다. - P225

그러나 생쥐스트의 비극은, 보다 고차원적인 이유와 보다 심오한 요구 때문이긴 하지만, 때때로 마라와한목소리로 합창을 했다는 데에 있다. 파당파당끼리, 소수파는 소수파끼리 연합하게 되자 마침내 단두대가 과연 만인의 뜻을 위하여 기능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생쥐스트는 끝까지, 그것이 미덕을 위하여 기능하므로결국 일반 의지를 위하여 기능하는 셈이라고 잘라 말할 것이다. - P225

보편적 무구함이 동경해 마지않는 잃어버린 낙원은 점점 멀어져간다. 내란과외전의 절규로 가득찬 불행의 땅 위에서 생쥐스트는 조국이 위협받을 경우 만인이 다 유죄라고 선언한다. 이는 자신과 자신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국외의 파당들에 대한 일련의 보고서들, 프랑스 공화력 9월 22일 자로 선포된 법률, 그리고 1794년 4월 15일 자경찰의 필요성에 관한 연설 등은 모두 그의 이러한 전환의 단계들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 P226

로베스피에르를 변호하기 위하여 행한 연설에서 그는 명성도, 생명을 부지하여 살아남는 것도 부정하면서 오직 추상적 섭리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는 동시에 그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 미덕이란것도 역사와 현재 외에는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으며 그 미덕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배력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 P226

 그러자 죄는 인민에게 있고 마땅히 무죄한 것이어야 하는 원칙을 가진 권력은 죄가 없게 되었다. 이토록 극단적이며 피비린내 나는 모순은 훨씬 더 극단적인 논리에 의존하거나 침묵과 죽음 속에서 원리들을 마지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생쥐스트는 적어도 이러한 요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P227

 자신의 원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인민의 덕과 행복 속에서 절정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자신이 아마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달은 그는 자기가 인민에게절망하게 되는 날에는 칼로 자결해 버리겠노라고 공공연히 선언함으로써 미리 배수진을 쳤다. 이제 바야흐로 그는 절망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가 공포 정치를 회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마비되고 원리는 약화되었다. 남은 것은이제 음모자들이 쓰고 다니는 붉은 모자¹¹²뿐이다. 독한 술이 미각을 마비시키듯 공포 정치가 범죄에 대한 무감각을 가져왔다."


122) 프랑스 대혁명 때 자유의 상징으로 쓰고 다니던 모자 - P227

그러자 생쥐스트가 그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얼굴을 딴 데로 돌려 버린다.
악의 공범자가 되든가 아니면 악을 보고도 모른 체하는 증인이 되든가 둘 중 하나인 삶이라 하더라도 잃은 것은 별로 없다. 만약 타인들을 죽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죽여야 한다고 했던 브루투스는 결국 타인들을 죽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너무나 많아서 그 모두를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 P228

생쥐스트는 죽기 얼마 전, 로베스피에르를 젼호하는 연설에서 자신의 행동의 그 위대한 원리를 재확인하는제 이 원리는 머지않아 그 자신의 처형에 적용된다. "나는 어느 파당에도 속해 있지 않다. 나는 모든 파당들을 분쇄할 테다." 그는 이처럼 일반의지의 결정, 다시 말해서 국민의회의 결정을 미리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현실을 송두리째 거슬러 자신의 원리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기를 수락했다. 왜냐하면 국민의회의 의견이란 오로지 어느 한 파당의 웅변과 열광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 P229

 7월의 파리, 그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생쥐스트는 보란 듯이 현실과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목숨을 원리의결정에 내맡긴다고 공언한다.  - P229

국민의회가 그의 처형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그가 단두대의 칼날 아래 목을 들이미는 순간까지 그는 시종 침묵을지킨다. 이 오랜 침묵이야말로 그의 죽음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그는 역대 왕좌주위에 침묵이 지배하고 있음을 개탄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 자신은 그토록 많이, 그토록 멋지게 말하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순수 이성‘
과 합치되지 못하는 인민의 전제와 수수께끼를 다 같이 경멸하면서 그 자신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P230

"모든 돌은 자유의 건축물을 위하여 다듬어진다. 여러분은같은 돌을 가지고 자유의 신전을 지을 수도 있고 자유의 무덤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생쥐스트는 말했다. 그런데 『사회 계약론』의 원리들은 자유의 무덤을 만드는 일을 주관했다. 나중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나타나 그 무덤의 출구를 봉쇄해버리게 된다. 그래도 양식을 잃지 않았던 루소는 『사회 계약론』의 사회가 오직 신들에게만 적합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 P230

 이 의미심장한 변화를 조레스¹²⁵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인민들이 바로 법이다. 우리는 반항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반항하는인간들은 튀일리궁¹²⁶에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그처럼 쉽게 신이 될 수는 없다. 낡은 신들 자체도 단번에 죽지는 않는다. 그래서 19세기의 여러 혁명들은 장차 신의 원리를 완전히 청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파리 시민들은 왕으로 하여금 인민의 법에 굴복하게 하기 위하여 왕이 또다시 원리의 권위를 회복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 봉기한다.



125) 장 조레스(Jean Jaures, 1859~1914). 프랑스의 정치인, 철학자, 역사학자, 사회당 당수를 역임했다.
126)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 기거했던 궁전. - P231

그리하여 앙시앵 레짐은 프랑스에서 결정적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1848년 이후에는 새로운 체제가 확고히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1914년까지의 19세기 역사는 앙시앵 레짐하의 군주 정치에 대한 인민 주권 회복의 역사이며 민족자결주의의 역사인 것이다. - P231

새로운 복음의 설교자로서 그들은 동지애의 근거를 로마인들의 추상적 법에서 찾고자 했다. 그리고 만인에의한 인정을 전제로 하는 법률을 신의 계율에 대치시켰다. 왜냐하면 그 법률은 일반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법률은 자연의 미덕 속에서 정당성을 발견하고, 그런 다음에는 자연의 미덕이 역으로 그 법률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것이었다. - P232

 그러나 오직 자코뱅이라는 하나의 당만이 옳다고 선포되는 순간부터 그 논리는 무너지게 되고 그 덕은 추상적인것이 되지 않기 위해 정당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18세기의 부르주아 법률가들은 그들의 인민이 쟁취한 정당하고도 살아 있는 수확 원리들을 자신들의 원리들로 짓눌러 버림으로써 두 가지의 현대적 허무주의를 마련한 것이다. 개인적 허무주의와 국가적 허무주의가 그것이다. - P232

생쥐스트는 침묵하는 인민의 이름을 빌려 나타나게 될 이러한 전제정치를 예견했었다. "교묘한 범죄는 일종의 종교를 자처하고 악인들은 신성한방주 속에 들어앉게 되리라." 그야말로 이것은 피할 수 없는것이다. 만일 큰 원리들에 토대가 없다면, 그리고 만일 법률이입법자의 일시적 기분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한다면 법률은 이제 자의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혹은 강요되기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셈이다. - P233

 그러나 신은 적어도 육화될 수 있는 구체성을 잃었으므로 어떤 도덕적 원리의 이론적 존재에 불과하다. 부르주아 계급은 19세기 전체에 걸쳐서 오직 이러한 추상적 원리에만의거해서 지배해 왔다. 다만 생쥐스트만큼 의연하지 못한 부르주아 계급은 어떤 경우든 그와 반대되는 가치들을 실천하면서 이 원리를 그 알리바이로 이용했다. - P234

 러시아 공산주의는 모든 형식적 도덕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통하여 일체의 상위 원리를 부정함으로써 20세기의 반항적 과업을 완수한다. 19세기 왕의 사역자들의 뒤를 이어 신의 시역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반항적 논리를 궁극에까지 밀고 나가서 지상의 세계를 인간이 신으로 군림하게 될 왕국으로 만들고자 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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