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좋은 책이다. 그래서 양장본으로 구비하고 싶다.






저항과 반란

자본주의는 규율에 복종하는 노동계급, 즉 기업이 이윤을 남기도록 임금을 받고 기꺼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대개 사람들은 규율과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며 직·간접적으로 저항할 방법을 찾는다. - P127

가운데 하나가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독일 민간설화에 나오는 난쟁이-옮긴이)의 이야기다. 민간설화는 단순히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있다. 그것은 민중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대개 민간설화는 인간의 옳고 그른 행동에 따른 결과를 극적으로 표현한 도덕적인 이야기다. 예컨대제인 슈나이더(1989)는 룸펠슈틸츠헨 설화가 근세 유럽의 아마포산업의 발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 P127

우리는 이 설화가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농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예컨대 당시에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가 아마포 생산이었다. 아마포는 아마의 짚으로 아마실을 자아낸 것이었다. 아마실로 짠 옷감은 시장에서 황금 동전을 받고 팔았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짚으로 황금을 자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128

 더 나아가 이 설화에는 악마와의 약속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가는 첫 번째 태어난 아기다. 따라서우리는 여기서 부의 생성은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돈 세례식을 통해 아이의 영혼을 팔아넘기는 것처럼 반드시 사회적 · 개인적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발견한다. - P128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지만 이슬람교는 마법이나 혼령을 믿는 토착신앙과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1980년대 말레이시아의 조립공장 관리자들, 특히 미국인과 일본인 관리자들은 뜻밖에도 공장 안에서 신들림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상황에 직면했다(Ong, 1987년,
204쪽). - P128

또 다른 미국계 반도체 공장은 여성노동자 15명이 신들림에 걸리자 문을 닫고 말았다. 공장의 인사책임자에 따르면 신들린 여자애들이 흐느껴 울면서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장 관리자들은그런 현상이 점점 확산되는 것처럼 보이자 곧바로 다른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보냈다. - P129

아이화 옹은 말레이시아 여성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멸감이나 인간관계의 혼란과 같은 구체적인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콜롬비아 농민들이 임금노동에 대해 아이의 영혼을 팔아 돈 세례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방식이다. - P129

결론

이 책의 중요한 전제는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지 않고는 오늘날 세계와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 즉 인구증가나 기아, 빈곤, 환경파괴, 보건 전쟁, 종교적 격변 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 P130

여기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특징을 블랙박스로 나타냈다. 블랙박스의 목적은 돈을 더많은 돈으로 바꾸고 금전적 투자를 받아 그것에 이윤과 배당금, 이자를 덧붙이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볼 때 이런 과정은 콜롬비아 농민들이 세례를 받은 돈에 기대하는 행동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이다. - P130

우리는 블랙박스가 그런 전환과정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알기 위해 해외에 조립공장들이 증가하는 모습과 블랙박스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의 창출과 세분화, 통제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노동은 민중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거나 그들이 생계를 꾸려나가던 소규모 산업을 파괴함으로써 생겨났다.  - P130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산업이나 기업에 있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선망받는 일자리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로 경쟁적이고 값싼 노동력 공급이 절실한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피하고 싶은 일자리들로 점점 더 분리된다. - P130

자본주의 경제는 값싼 노동력의 공급을 늘리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노동력을 규율에 따라 복종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공장 조직을 이용할 수도 있고 시간 개념을 재정립할 수도 있으며 가정이나 교회같은 전통적 사회기관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런 새로운 형태의 규율이 존재함에도 속내를 감춘 간접적인 비판 형식, 돈 세례식이나 신들림, 룸펠슈틸츠헨 설화 같은 도덕적 이야기를 통하는 아니면 노동조합 결성 같은 직접적인 반발 형태를 취하는 자신들의 저항의지를 나타내다. - P131

 그 블랙박스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어떻게 진화했을까? 무엇보다도 상인은 어떻게 해서 그리고 왜 자본가로 발전했을까?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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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내 거야!"
완전히 미친 여자였다. 이런 병원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복도에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때문이었다. 로비에서 크리스마스 기념음악회를 한다는 현수막도 보았다. - P34

전단지를 게시판에 붙일 때였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복의 소매를 걷어 올린 여자가 예원의 전단지를 가로챘다. 한 손에 흰 종이로 접은 비행기가 들려 있었다. 이건 비행기 접는 종이가 아니라고, 처음엔 조용히 말해줬지만 엉망인 제 머리만큼이나 여자는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 P35

눈이 뒤집혔다. 그것도 모르고 여자는 찢어진 종이는 필요 없다는 듯 바닥에 내팽개쳤다.
퍽!
여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나가떨어졌다. 여자의 코와 입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예원의 주먹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로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며 두 사람을 보았다. - P35

"아뇨, 오히려 너무 자주 와도 안정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원장님이 그러셔서요."
선준의 맞은편에 앉으며 심명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힘들겠다. 사람 사는 일이 참・・・・・"
"그래도 여기에 입원시켜야 제가 일하러 왔을 때라도 좀 들여다볼 수 있죠." - P33

보안실은 1층 가장 안쪽이었다. 관계자 외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선준이 노크를 하자안에서 가벼운 목소리로 응답이 들려왔다. 회색 페인트를 칠한나무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갔다.
"어서와." - P32

"자식은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마누라는 정신병원에 가둬놓은 놈이 안색 좋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죠."
커피 잔 안으로 시선을 던져 넣었다. 안 봐도 심명훈의 안쓰러운 눈길이 자신을 향했던 걸 선준은 알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매일같이 받았던 시선이다. 이제는 그것이 무겁다. - P33

"예원 씨! 예원 씨!"
심명훈이 예원의 팔에 매달렸다. 그사이 경보 벨을 들은 간호사와 의사가 달려나왔다. 푸른 옷을 입은 보호사들이 심명훈을제치고 예원의 어깨를 뒤로 젖혔다. 예원이 여자에게서 떨어져나가며 뒤로 나자빠졌다. 보호사들은 그대로 예원을 눌렀다. - P36

예원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딛고 선 땅이 조금은 안정될지도 모른다는 선준의 희망도 무너지고 있었다.
선준은 그대로 돌아섰다. 다시 보안실로 들어가 두고 온 가방을 집어 들었다. 출입문으로 향하던 그가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로비를 비추는 CCTV 화면이 보였다. 엎어진 자세로제압당했던 예원이 어느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 P36

그대로 갈 거야? 날 이렇게 버려두고?
이를 갈며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저런 사람에게 선우일지도 모르는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얘기는 절대 꺼낼 수 없었다.  - P37

예원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정신을 모았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팔다리가 무겁고 욱신거렸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자신을 누르던 수많은 손들. 그 와중에 주사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선준을 본것도 같았는데 병실에는 그가 없었다. - P38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맨발에 꿰신었다. 철제 침대를 붙잡으며 간신히 문밖으로 향했다. 복도로 나가자 노랫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뜨끈한 기운이 눈시울을 적셨다.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갈망하던 노래였다.
어디지.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 P39

예원은 눈을 크게떴다. 안쪽의 한 테이블에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노래는 그아이에게서 들려온 것이었다. 젊은 간호사 하나가 아이의 입에마이크를 대고 있었다. 옆에서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박자에맞춰 손뼉을 쳤다. 선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예원은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몇 살쯤 되었을까? - P39

그때였다. 밖에서 들어온 보호사 하나가 아이의 어깨를 살짝잡았다. 아이의 노랫소리가 끊겼다. 동시에 길을 잃은 것처럼 예원의 발도 우뚝 멈췄다.
"로운아, 엄마가 보러 오셨어."
로운이라고 불린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P40

"이제 로운이 자해 증상 많이 사라졌어요. 집에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통원 치료 받으시는게 어떠세요?"
원장 민서진은 맞은편에 앉은 정주희에게 따뜻한 어조로 말했다. 로운을 입원시킨 지는 1년이 가까워져갔지만 민서진이 그녀를 본 것은 세 번뿐이었다. - P40

정주희는 스물네 살이었다. 로운을 열여섯 살에 출산한 셈이었다. 남편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정주희는 물끄러미 테이블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퇴원해도 된다는 말에도 기쁨 같은감정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한참 만에 정주희가 말했다.
"꼭 데려가야하나요?" - P41

민서진은 말을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보호사가 로운을 데리고 왔다. 성마른 시선으로 휴게실을 둘러보다가 정주희를 발견하고는 기계처럼 히쭉 웃는 로운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 P41

"로운아, 엄마가 보러 오셨네."
로운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정주희는 조금 전 민서진이 자신을곤란하게 하는 말을 했을 때처럼 테이블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준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민서진은 낮은 한숨을 쉬며 보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보호사가 로운을 정주희의 맞은편에 앉혀주고 바깥으로 나갔다. - P42

아이의 짧은 다리가 철제 의자 아래에서 덜렁거렸다. 점점 다리를 세게 흔들었다. 의자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났다. 발끝으로 책상 아랫부분을 두드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턱턱 두드리자 조화를 꽂은 책상 위의 화병이 조금씩 옆으로 옮겨갔다. - P42

 로운이 그걸 물끄러미 보는 사이 그녀는 면회실을 나갔다.
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로운은 그걸 집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이 병원엔 돈을 쓸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 P43

일정 시간이 되면 보호사가 면회실로 와 확인을 하기는하지만 엄마가 5분도 채 안 지나서 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것같았다.
너무 커서 손을 덮는 환자복 상의를 걷고 로운은 작은 손으로손잡이를 잡아 돌려 면회실의 문을 열었다. - P43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며 로운의 어깨를 잡았다. 아이는 무덤덤하게 여자를 보았다. 여자가 황급히 로운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몇 살이니?"
로운이 그녀를 보았다.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아홉 살이지?" - P43

로운은 다시 몸을 돌려 병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여자가 소리쳤다.
"선우야!"
로운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 P44

"예원 씨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 어린이 환자를 같이 데리고 나간 것 같아요!"
스피커폰에서 들려오는 민서진의 외침에 선준은 그대로 병원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차머리가 크게 돌았다. CCTV 설치건으로 방문하기로 한 약속 같은 것은 머리에 남지도 않았다. - P45

선준은 곧장 CCTV 기계에 달려들었다. 직접 컴퓨터를 조작해 녹화된 영상을 불러냈다. 병원 정문의 CCTV 영상이었다.
"아침 9시 8분이야." - P45

무언가를 본 선준이 버튼을 눌렀다. 영상이 멎었다. 다시 다이얼을 돌려 천천히 앞으로 감았다. 탑차옆으로 예원의 모습이 설핏 보였다가 사라졌다. 직원들이 정신이 팔린 틈에 벽을 따라 바깥으로 나간 것이 확실했다. 손을 잡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작은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다. - P46

전화를 받지 말까 하다가 할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닿지 않으면 얼마나 불안해하실지도 알고 있었기에 계속 전화를 피할 자신이 없었다.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에서 곧장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르게 홍분한 그녀의 말은 선준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 서방, 이게 무슨 일인가? 예원이가 왔어!" - P47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와 부서졌다.
-어머니, 예원이 잘 잡아두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 가요!
사위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예원이를 잃어버렸었구나, 직감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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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디 적힌 글일까?

다음 날, 업무차 희망 요양원에 간 선준은 심명훈을 만나기 위해 보안실을 찾았다. 보안실은 1층 가장 안쪽이었다. 관계자 외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문앞에 붙어 있었다. 선준이 노크를 하자안에서 가벼운 목소리로 응답이 들려왔다. 회색 페인트를 칠한나무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갔다. - P32

심명훈은 열세 대의 CCTV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병원의 정문과 1층 로비, 그리고 각 병동의 복도를 비추는화면이 떠 있었다. 심명훈이 선준을 사무실 중간에 놓인 원형 테이블로 안내했다. - P32

"아뇨, 오히려 너무 자주 와도 안정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원장님이 그러셔서요."
선준의 맞은편에 앉으며 심명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힘들겠다. 사람 사는 일이 참・・・・・"
"그래도 여기에 입원시켜야 제가 일하러 왔을 때라도 좀 들여다볼 수 있죠." - P33

"자식은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마누라는 정신병원에 가둬놓은 놈이 안색 좋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죠."
커피 잔 안으로 시선을 던져 넣었다. 안 봐도 심명훈의 안쓰러운 눈길이 자신을 향했단 걸 선준은 알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매일같이 받았던 시선이다. 이제는 그것이 무겁다. - P33

"뭐죠, 저 사람?"
"누구?"
심명훈이 고개를 돌렸다. 선준이 가리킨 화면 안에서 예원이어떤 중년 여성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종이 한 장의 끝과 끝을 쥐고 서로 놓지 않고 있었다. 선준이 벌떡 일어섰다.
그 종이가 무엇인지 그는 알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끝을찔렀다. 선준은 그대로 보안실에서 뛰쳐나갔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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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세금을 내기 싫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 제10회

기어이 여기까지 왔군, 하가는 아사히카와역 앞에 서서 생각했다. 이쓰미 야스마사는 이 거리에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해. - P9

"그럴 겁니다. 이 메시지에 따르면." 하가는 가죽 코트 주머니에서 한 장의 메모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불가해한 숫자와 알파벳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쓰미 야스마사가 남긴 유일한 단서였다. 이 몇 개의 문자를정리하면 ‘ASAHIKAWA‘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어젯밤이었다. - P10

덜컹덜컹 덜커덕.
계단 아래에서 격렬한 소리가 났다. ‘택시에 타자‘까지 컴퓨터 화면에 친나는 키보드 위의 손을 멈추고 방을 나왔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 무슨 일이야?" - P11

그것은 하마사키 회계사무소에서 온 서류였다. 소장인 하마사키 고로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구였다. 나는 소설가가 된 지 10년인데 올해 웬일로 수입이 많았던 터라 내년 확정 신고를 대비해 얼마 전 하마사키에게 상담하러 갔었다.
지금까지는 확정 신고는 혼자 적당히 했는데 그렇게 처리할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적었다. - P12

처음에 나는 그 숫자를 멀거니 바라봤다. 그다음에는 자세히 들여다봤고 마지막에는 0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중략)
"당신, 정신 차려요." 이번에는 아내가 내 몸을 흔들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잖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런 바보 같은, 엉터리 금액을, 어째서? 하하하!" - P12

"여보, 어쩌지? 이렇게 큰돈은 우리한테 없는데, 어쩌면좋지?" 아내도 울었다.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고말았다.
"하마사키를 불러." 나는 아내를 향해 결연하게 말했다. - P13

"서류를 봤나 보군." 하마사키는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봤어." 내가 말했다. "넋이 나갔지."
"그랬겠지. 아! 고맙습니다." 아내가 내온 커피를 하마사키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서 이 숫자는 뭔데? 농담 아니야?" - P13

"저기, 어떻게 안 될까?" 나는 하마사키에게 말했다. 한심하게도 아부를 떠는 듯한 말투가 되어버렸다.
"좀 더 빨리 얘기했으면 여러모로 손을 썼을 텐데 벌써 12월이라." 하마사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최대한 영수증을 모으는 게 전부야. 그게 가장 빨라." - P14

"뭔데? 다 제대로 된 영수증일 텐데.‘
"제대로 되어 있긴 한데." 하마사키는 파일을 열었다. "우선 이거야. 4월에 여행을 갔더라. 여행지는 하와이"
"맞아. 그게 왜?" - P14

"야! 취재 여행이면 되잖아.‘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너, 올해 쓴 작품 속에 하와이가 전혀 나오지 않았잖아?" - P15

"우와!" 다시 울고 싶어졌다. "그럼 하와이 여행비를 경비로 공제할 수 없어?"
"그런 셈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그럼, 내년에 쓸 작품에하와이를 넣을 계획이라고 하면 되잖아. 그럼, 할 말이 없을텐데." - P15

물론 농담이었는데 하마사키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표정으로 "맞아"라고 말했다. "친한 세무서 직원에게 들었어. 사디스트 기가 있는 사람을 우선 뽑는다고." - P16

"거기에 하와이를 넣을 수 없어?"
하마사키의 말에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말도 안 돼. 홋카이도가 무대라고 하와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 P16

"그럼 내 말대로 해. 게다가." 하마사키는 파일로 시선을돌리고 이어 말했다. "하와이에서 쇼핑을 무척 많이 했더군. 골프도 치고, 이것도 가능한 이유를 대야 할 텐데."
"이유?"
"그러니까 정당한 이유지, 일테면 주인공이 하와이에서 쇼핑이나 골프를 하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오면 그를 위한 취재라고 주장할 수 있지." - P17

"죄다 경비에 넣기 어려운 것들이야. 일테면 이 여성용 코트 19만5천 엔이라는 영수증, 이거, 부인을 위해 샀지?"
"올해 1월에 세일 할 때 샀어. 그게 왜 안 되는데?"
"안 될 건 없지. 부인 사랑으로는 좋아. 다만 경비로는 힘들어." - P18

"그리고 이거." 하마사키는 그렇게 말하고 다른 영수증을꺼냈다. "신사 용품이야. 양복과 셔츠, 넥타이와 구두까지 총33만8천7백 엔짜리."
(중략)
"일본 미스터리 작가 협회 파티에 입었어. 그리고 화보 촬영에서도 입었고." - P18

"안 입어." 내가 말했다. "사적인 시간에 아르마니 양복을입는 사람이 있겠냐? 보통 때는 반바지에 티셔츠면 충분하지. 너도 알잖아."
"나는 알지. 하지만 세무서는 그런 데 까다로워." 하마사키는 미간에 팔자 주름을 잡았다.
쳇, 나는 혀를 찼다. - P19

"소모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에 사용하고 나면 다른 데는 사용할 수 없는 게 명백한 것들이어야 해. 일테면 필기구라거나."
"필기구도 일이 아니라도 쓸 수 있잖아!"
"그러니까 비율의 문제야. 양복은 일 외에도 입을 때가 많다고 세무서 마음대로 생각하는 거지." - P19

"경비는 되는데 소모품은 아니야."
"뭐? 왜?"
"영수증에 따르면 구매 가격이 22만 엔이야. 20만 엔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고정 자산이 되지. 그러니까 감가상각 항목으로 경비에 올려야 해." - P20

"그리고 이거 노래방 기계를 샀네."
"부부 공통 취미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거 다 합쳐 수십만 엔인데, 그것도 감가상각이야?"
"아니, 이건 다행히 할부라 그럴 필요는 없어." - P20

"소설을 쓰는 데 노래방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까. 세무서는 반드시 지적할 거야."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하와이 여행도, 코트도, 아르마니도, 노래방 세트도 경비 처리가 안 되고, 컴퓨터도 몇 푼 안되는 돈만 인정되고. - P21

"그런 큰돈이 어디 있겠냐?"
"종종 벌어지는 일이야. 갑자기 수입이 늘어난 것까지는좋은데 세금을 까먹고 다 써버리는 경우 말이야."
"다른 사람 일이라고 태평하게 말하지 말지!" - P21


"그럼 주민세는………….
"대충 계산해보니." 하마사키는 계산기를 꺼내 손바닥 위에서 탁탁 두드리며 계산했다. 그리고 그 금액을 얘기했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정신이 멀어졌다. 앗, 기절하네, 라는자각이 있었다. - P22

"왜 코트를 꼭 찢어야 하는데?" 나는 옆에 서 있는 하마사키에게 물었다. 이런 장면을 적어 넣게 한 사람이 그였다.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로 여자 코트를 찢은 적이있는 것으로 해야지. 그럼 실험 재료비로 코드를 겅비에 넣을 수 있어. 다만 세무조사가 들어오면 그 코트는 어딘가 숨겨야 해." - P24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하가도 옷을 벗고 싶어졌다.
그는 아르마니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도 벗었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켜서 그 옷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르마니 옷은 활활 탔다. 끝내는 구두까지 벗어 불꽃 속에 던졌다. 가죽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제 후련하네." 하는 트렁크 팬티만 입은 모습이었다. - P24

"정말 올드하네. 좀 더 새로운 노래는 몰라?" 하마사키가옆에서 말했다.
"하와이 노래 같은 거, 갑자기 나오지 않아."
"뭐 됐다. 이런 식으로 종종 노래를 작품 속에 넣어줘. 그럼 자료 및 자료 검색 기자재로 노래방 세트를 경비에 넣을수 있어." - P25

"자, 여기서부터가 문제야."
"지난번 연재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장면이 나왔어. 이쓰미야스마사가 남긴 유일한 단서였지. 그 몇 가지 문자를 정리하자 ‘ASAHIKAWA‘라는 답을 일단 냈다고. 그걸 어떻게 다루지?" - P26

"잠깐만요! 여기에 이상한 게 적혀 있어요." 시즈카가 방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가는 그곳을 봤다. 그러자 벽구석에 칼 같은 것으로 새긴 문자가 있었다.
‘KASAGANAI, ITSUMIYORI‘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 P27

하는 수첩을 펼치고 볼펜으로 거기에 ‘ASAHIKAWA‘라고 적었다.
"여기서 카사를 없애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어? 우산이요?"
"우산・・・・・・ 그러니까 K, A, S. A요."
하가는 ‘ASAHIKAWA‘에서 K, A, S, A의 네 글자를 지웠다. 남은 글자는 ‘HIAWA‘였다. - P28

"하면 할 수 있네! 역시 프로 작가야." 하마사키도 감탄한듯 말했다.
"이제는 무대를 아사히카와에서 하와이로 바꾸고, 원래 줄거리대로 쓰면 되겠어."
"무슨 소리야? 명목에 넣기 힘든 영수증이 아직 많다고." - P29

"이 정도면 평범한 여행객처럼 보이겠죠?" 하는 양손에종이봉투를 들고 말했다.
"맞아요. 하와이에 와서 쇼핑을 전혀 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기겠죠." - P29

"하지만 단서가 하나도 없어요."
"아닙니다. 단서는 있습니다. 이쓰미는 골프를 밥보다 좋아했어요. 하와이에 와서 골프를 치지 않을 리 없습니다. 하와이의 골프장을 돌면 반드시 뭔가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P30

"물론 그렇죠. 그러므로 조금 힘들 수도 있겠으나 우리도실제로 각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 그러네요. 힘들겠네요."
둘은 근처 골프용품점에 들어가 골프 세트와 캐디 백, 골프화, 그리고 골프웨어를 골고루 갖추었다. - P30

 하마사키가 말했다. "다른 영수증 더 없어? 1만이나 2만 같은 소액이 아니라 수십만 정도의 영수증."
"없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긴자 같은 비싼 거리의 술집에서 놀지도 않고 작업실을 따로 빌리지도 않았으니까."
"소설 매수는 어때? 아직 여유가 있어?" 하마사키가 물어왔다. - P31

 주인공들은 몇 개의 골프장을 돌았고 크루즈를탔고 쇼핑한 후 끝내 별다른 수확 없이 일본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리타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는 구사쓰 온천에 갔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올가을에 갔던 온천 여행의경비를 털기 위해서다. - P31

"어때?" 하마사키가 물었다.
"안 돼. 아무래도 쓸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영수증 다발을 하마사키에게 건넸다.
"어디 좀 보자." 그는 그렇게 말하고 종이 다발을 쭉 훑었다. 조금 후 그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지?" 내가 말했다.
"목욕탕 개축 공사에 50만 엔, 자동차 수리 19만 엔 ・・・・・" - P32

"하지만." 하마사키는 턱에 손을 댔다. "목욕탕과 자동차를 일 때문에 일부러 부쉈다면 설명이 될 듯도 한데."
"뭐, 뭐라고?"
"소설을 쓰는 데 아무래도 필요해서 일부러 부인 친정의목욕탕과 자동차를 망가뜨린 것으로 하지. 하지만 그대로 둘수는 없으니까 수리 비용은 네가 낸 것으로 하자." - P33

"그걸 생각하는 게 자네 역할이지. 아, 그리고 다음 고액영수증은・・・・・…." 하마사키는 아내가 가져온 영수증 다발을 넘겼다. "걸개 20만 엔, 항아리 33만 엔 ・・・ 이건 뭐죠?"
"아버지가 골동품을 좋아해요." 아내가 말했다. - P33

"여보, 그리고 이건 못 쓰겠지?" 아내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받아들고 보니 그건 슈퍼마켓 영수증이었다.
소고기, 파, 두부, 실곤약, 달걀・・・・・・ 오늘 밤의 스키야키 재료가 거기에 적혀 있었다. - P34

"이상하네, 어디가 현관이지?"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시즈카가 말했다.
그것은 자세히 보니 기묘한 건물이었다. 전체가 하얀 벽토로 덮여 있었다. 출입구 없이 창도 작은 것 하나가 전부였다.
하는 유일한 창문 밑에 차를 대고 자동차 보닛을 밟고올라가 작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안은 캄캄했다. 자세히 보니 어둠 속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 P35

차에 탄 하는 일단 최대한 후진했다. 그리고 차의 방향을 건물에 맞추고 이번에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충격이 하가의 몸을 덮쳤다. 차는 앞부분이 찌그러졌다. 건물도 벽이 거의 무너져 있었다. - P35

 이번에는 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데 그곳은 아무래도 목욕탕 같았다. (이 장면을 쓰기 위해 목욕탕과 차의 파괴 실험이 필요. 각각의 수리비를 경비로 처리) - P36

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얀 바탕에 선명한 무늬가 그려진 고이마리 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흉기인 듯하네요." 하가가 말했다. (고이마리라는 걸 쓰기 위해 골동품에대해 취재, 사들인 자료 몇 점을 경비로 처리) - P36

그 아이섀도는 올해 유행하는 색으로 장미색깔의 립스틱과 맞춰산 것이다.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화장에 대해 취재, 자료로 산 화장품 수십점 요금을 경비로 처리) - P36

시즈카는 도로 옆에 서서 미니스커트를 살짝 올리는 대담한 모습으로 히치하이크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차도 세워주지 않았다.
"이럴 리 없는데." 시즈카는 분한 나머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를 가는 연습하다가 의치 파손, 경비 처리) - P37

"이상하네. 어디로 사라졌지?" 하가가 중얼거렸다.
화재 현장에서 몇 가지 물품이 발견되었다. 우선 여성용기모노 다섯 벌이 재가 되어 나왔다. 그중 한 벌은 오시마 비단이었다. 모두 새까만 재가 되었다. (실제로 태우는 실험. 기모노 다섯 벌 분량을 경비처리) - P38

또 진주 목걸이와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도 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목걸이와 반지를 경비로) - P38

"아, 그러니까" 수사원이 말했다. "소고기, 파, 두부, 곤약,
달걀・・・・………." (이들 식품을 태웠을 때, 어떻게 되는지 조사하기위해 실험했다. 재료비는 경비 처리) - P39

그런데 3월 20일, 나는 지방 세무서의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필요 경비의 명세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나는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 제10회』의 원고 복사본과 함께 서류를 제출했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경비 대부분을 인정받지 못했다. - P39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 제10회를 쓴 이후 어떤 출판사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도 연재가 중단되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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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즐거워라.

소설 읽기의 즐거움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천로역정』존 비니언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올리버 트위스트』찰스 디킨스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모비 딕』 허먼 멜빌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해리엇 비처 스토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귀향』 토머스 하디
『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붉은 무공 훈장』 스티븐 크레인
『암흑의 핵심 』조셉 콘래드
『환락의 집』이디스 워튼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소송』프란츠 카프카
『토박이』 리처드 라이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1984』 조지 오웰
『보이지 않는 인간』 램프 엘리슨
『오늘을 잡아라』 숄 벨로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이탈로 칼비노
『솔로몬의 노래』 토니 모리슨
『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소유』 A.S. 바이어트
『로드』 코맥 매카시 - P87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것은 열린 문틈 너머로 한 줄기 빛을 일별하는 것과 같다. 보이지 않는 방 안에 무엇이 있는가? 독자는 세목들이 전체적으로 제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몸을 내민다. 문 바로안쪽의 혼란스러운 무늬는 알고 보면 병풍식 가리개의 가장자리다. - P89

서둘러 열리는 문도 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들과 머릿수건을 쓴 여자들의 무리는 헤스터 프린(너새니얼 호손의『주홍 글자』의 여주인공)이 아기를 팔에 안고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며 보스턴 감옥 주위에 모여 있다. - P89

스티븐 크레인의 『붉은 무공훈장』에서 휴식 중인 군대는 조만간 자리에서 일어나 동요할 것이다. 파란 군복을 입은 병사들은 동료들과 시비가 붙기도 하고 셔츠를 세탁하기도 하고 모닥불 주위에 몸을 웅크리고 모여 있다. 질척거리는 흙탕길은 아침 햇살에 곧 마르기 시작한다. - P90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화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양로원에서 보낸 전보는 구체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사실은 주인공의 마음에 한두 차례 파문을 일으킬 뿐이다. 장례식 참석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이 간략하게 그려진다. 버스를 놓칠 뻔한 후 겨우 양로원에 도착하고,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어머니의 시신이 안치된 방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굳이 보려 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 P90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훨씬 여유만만하다. 총살형 집행대원들 앞에 대령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훌쩍 마콘도의 마을로 되돌아가 일상적 삶의 느긋한 무늬를 그린다.  - P90

소설의 긴 역사에서 초기에 해당하는 소설은 문이 거의 대번에 활짝 열린다. 21세기가 가까워 오면서 문들은 닫힌 채로 요지부동이거나 좀더 천천히 뻑뻑하게 열리거나 한 번에 눈곱만큼씩만 열리기 시작한다. 그렇더라도 독자 여러분은 1604년 스페인에서 출간된 최초의 소설 『돈키호테』의 유명한 첫 구절과 훨씬 이후인 1972년 이탈로 칼비노의 이중 액자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의 첫 구절 사이에서 뜻밖의 닮은 점을 발견할 것이다. - P91

여러분은 이탈로 칼비노의 신작 소설을 막 읽으려는 참이다. 긴장을 풀어라. 집중하라. 다른 모든 생각들을 쫓아 버려라. 여러분 주위의 세상을사라지게 만들어라.¹ - P91

5장 소설 읽기의 즐거움
1. Italo Calvino, William Weaver 옮김, 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New York:Harcourt Brace and Co., 1991), 3쪽. - P768

 오로지 세르반테스와 칼비노만이 책 읽기에 들어서자마자 "이것은 한 권의 책이다. 그저 믿는 칙만 하라. 알겠는가?"라며 독자를 일깨워 준다. - P91

소설이란 관습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관습이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으레 예상하게 되는 규칙을 말한다. 어떤 관습들은 시각적이다. 분홍색 표지의 문고판에 반쯤 벌거벗은 주인공이 그려진 책 한 권을 집어들면 독자는 "이를 데 없이 더운 7월의 밤에 한 청년이 숙박 중인 에스골목에 자리 잡은 하숙집의 다락방에서 나와 주저하듯 케이 교를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²가 아니라 "에반젤린은 늘씬한 종아리 주위에 늘어뜨린 젖빛 모슬린 가운을 쓸어 모으며 계단 꼭대기에 멈춰 서 있다."는 식의 문장을 읽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첫 문장. - P92

제대로 훈련된 독자라면 글쓴이가 관습을 언제나 액면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자기 아버지가 "노팅엄셔에땅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화자는 걸리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P92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너선 스위프트는 문학과 여행기의 초기 양식을 이용해 당시 사회 관습을 조롱한다. 하지만 여행기가 무엇인지 선지식이 없다면 스위프트가 꼼꼼하고 검증된 세부 사항을 고의적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음미하지 못할 것이다. - P93

고대에는 산문으로 씌어진 긴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은 18세기 대니얼 디포와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의 손을 거쳐 등장하게 되었다. 디포는 여행자 이야기의 관습을빌려서 『로빈슨 크루소』를 만들어 냈다. 리처드슨은 한 명의 인물이 작성한 일련의 편지들로 이뤄진 전통적인 ‘서간체‘ 형식을 사용하여 『파멜라』를 탄생시켰다. - P93

바로 개별적인 인간의 내면적 인생에 대한 성찰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산문으로 씌어진 긴 이야기란 한 나라의 이야기를하거나 하나의 관념을 설명하거나 스펜서의 『요정 여왕』에 나오는 것처럼 일련의 미덕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건등이 연달아 뒤죽박죽 일어나고 평면적인 인물들로 넘쳐나는 서양 장기판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 P94

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외로운 천재였다. 디포와 필딩, 리처드슨은 새로운 종류의 문학으로 꽃핀 하나의 문학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한 인물의 내면적 인생을 탐험하는 산문 서사다. - P94

 로망스는 현대의 연속극과 대체로 비슷하다.
18세기 비평가의 말을 빌리면 로망스는 "그럴듯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찬미받는 지명인사와 관련되어 있다. 로망스는 가볍고 도피적이어서 여성에게 적합한 읽을거리였다. (여성의 두뇌는 ‘진정한 인생‘과 맞붙어 싸우는 데 이르지 못했으며, 그래서 여성이 환상물을 읽는 것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 P94

반면 소설가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소설들은 낮익은 상황에 처한 진짜 인간들을 다루었다. 새뮤얼 존슨이 1750년에 썼듯이 소설가들은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의해서만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인간, 인류와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진짜 발견될수 있는 열정과 자질, 그 열정과 자질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진짜 인생의 상황을 보여 주려"³했다.


3. Samuel Johnson, "On Fiction", Rambler 제 4호 (1750년 3월 31일 자) - P94

18세기의 지식인들은 오늘날 유기농식품 마니아들이 정제설탕의 위험성을 떠들어퍼뜨리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독자를 타락시키는 소설의 영향력에 대해서 탄식했다. 목사들은 소설 읽기가 매춘과 간통에다 지진의 증가를가져올 것이라고 대중에게 경고했다.(1789년 런던의 한 주교가 한 말이다.) - P95

청교도주의뿐만 아니라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을 부와 여가를 추구하는 사회의 수준을 통해 상승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도록 부추기는 자본주의에 의해서도 개인적 자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자아는 더는 고정되어 이동할 수 없고, 태어날 때 정해져 평생 절대 바뀌지 않는 책임을 부과하는 봉건 체계의 일부가 아니었다. 자아는 자유로웠다. - P95

소설가들은 개인을 찬양했다. 고통받지만 열정적인 샬럿 브론테의 여주인공들이 그랬고, 자신들을 보호해 주면서 동시에 방해하는 사회의 규제를 받는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이 그했으며, 간통을 하고 고통받는 너새니얼 호손의 목사가 그랬다. 그리고대중은 소설을 돈을 주고 사서 읽었다. - P96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읽는 책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진정한 가치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오프라 효과라고 부르자) - P96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대중적인 독서를 하는 대부분 여성중 중산층 여성은 소설책을 살 만한 돈과 읽을 만한 여유가 있었지만 좀더 엄격하고 남성다운 ‘고전‘을 감상하는 데 필수적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몰랐다는 데 있었다. 학자인 찰스 램이 비꼬았듯이 소설이란 "여성 독서 인구 전체를 위한 옹색한 지적 진미"였다.(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어린이용으로 개작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 P96

고딕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폐허가 된 성당에서 고대의 주술과 미쳐버린 아내들로부터, 그리고 햇빛과 거울을 피해다니는 신비스러운 귀족 남성들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이런 인물로 설정되어 폭넓은 인기를 얻은 자로, 앤 래드클리프가 쓴 『우돌포의 신비』의주인공 에밀리를 들 수 있다. - P97

하지만 대부분의 본격 문학 작가들은 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선호도 때문에 환상적인 요소들을 배제했다. 소설은 사회적인 양심도 계발시켰다. 찰스 디킨스와 그에 비견할 만한 미국 작가 해리엇 비치 스토는 이야기를 통해서, 약자의 뼛골을 뽑아 부를 구축한 시장 경제의 부당함에 일침을 가하고자 했다. - P97

소설 장르의 초기 작가들은 자신이 쓴 이야기의 허구성을 거리낌없이 지적했다. (세르반테스는 독자에게 말한다. "나는 이 책이 두뇌의 산물이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한 것이 되기를 바라곤 했다.") 하지만 이후의 소설가들은 이런 식으로 서사에 끼어드는 것을 피했다. - P98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철학은 소설가를 일종의 과학자로 변모시켰다. 소설가는 장면을 선택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모든 세부 사항을 과학자처럼 기록했다. 따라서 리얼리즘 소설들은 분량이 상당히 긴 경향을보였다. 리얼리즘의 아버지인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시골마을에 사는 실제 인물의 초상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상상 속 세계의 지도와 설계도를 그렸다. - P98

 차츰 리얼리즘 소설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헨리 제임스의 등장인물은 낭만적인 레더스타킹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숲에서 인디언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호손이 만들어 낸 고통에 빠진 목사처럼 불가해한 낙인으로 곪아 가지도 않고 죄의식으로 죽어가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직장 생활을 하며 천정이 높은 먼지 쌓인 방에서 악다구니하듯 먹고살고 ‘평범한‘ 세상 사람들처럼 남부끄럽지는 않지만 대단한 전율은 없는 남자와 결혼한다.⁵ - P99

5. 리얼리즘은 영미 소설의 주요 운동 가운데 하나다. George J. Becker는 지난 1949년Modern Language Quarterly 에 게재한 논문 "Realism: An Essay in Definition"("리얼리즘‘을 정의하려는 첫 번째 시도 가운데 하나)에서 리얼리즘이 다음과 관련된다고 제시한다.
1) 관찰과 문헌을 통한 세부 묘사.
 2)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라 평범한 경험을 그리려는 시도 
3) "인간 본성이나 경험에 대한 주관적이거나 이상적인 관점이 아니라 예술가가 성취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객관적일 것." 이 주제를 다룬 자세한 내용은 다음 두 편의 비평을참조하기 바란다. 

Lionel Trilling, "Reality in America", The Liberal Imagination (NewYork: Anchor Books, 1957)과 Erich Auerbach, Mimesis: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in Western Literature (Princeton, N. 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3) 참조. - P768

 오늘날에도 스릴러, 과학 소설, 환상 소설, 종교 소설에 이르기까지 ‘비범한 사건을 그리는 이야기들은 지적으로 국외자 취급을 받고 진지한 비평적인 찬사를 받을 가치가 없는 ‘대중‘ 장르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리얼리즘은 그 지류들을 만들어 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는 물리적인 묘사보다 심리적인 묘사에 좀 더 주력한 ‘심리적 리얼리즘‘을 완성했다
- P99

헨리 제임스의 형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 사고의 무질서하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을 묘사하기 위해서 1900년에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다.
콘래드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까지 이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의식의 흐름‘은 물리적인 풍경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와 심리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 글쓰기 방식이다. - P99

이런 과정이 너무 지나치면 초기 리얼리즘에서 발견되는 연못과황야에 대한 늘어지는 세부 묘사와 마찬가지로 싫증날 수도 있다. 하지반 20세기 초반의 작가들은 의식의 흐름 기법에 매혹되었다. 포크너의소설 속 인물들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드물며,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즈』에서 널리 알려진 대로 원서로 45쪽에 당하는 밀도 있는 의식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율리시즈』는 언제나 현대 양서 목록에 포함되지만 읽어 내기가 무자비한 정도이니 이 책에서는 목록에서 제외했다.) - P100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섰다. 세부 사항에 대한 주의 깊은 목록 작성을 포함하는 리얼리즘 양식은 우리 주위에 아직도 남아 있다. 돈 드릴로는 『화이트 노이즈』에서, 창문에 기댄 화자가 창밖으로 보이는 대학생들이 첫 수업에 들어서는 모습을 묘사하며 소설을 시작한다. - P101

소설의 바탕에 깔린 사상은 리얼리즘 전성기 이후로 바뀌었다. 소설은 일반적으로 ‘모더니티‘를 거쳐서 ‘포스트모더니티‘로 이동했다고 간주된다. 이 두 가지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티가 등장하기 전까지 누구도 모더니티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포스트모더니티란 그저 ‘모더니티의 뒤를 잇는‘ 것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 P102

 예를 들어 비평가 제임스 블룸은 모더니즘이 "밀도와 특유의 모호함. 그리고 스스로가 중재자이자 중재받고 있다는 소설가 자신의 저지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고 정의했는데, 이 내용은 우리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⁶ 다른 대부분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명료하지 않다.


6. James Bloom, Left Letters (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22), 7p - P102

빅토리아 시대인들은 삶이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더니스트들은 ‘실제 인생‘이 사실상 이해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실제 인생‘은 혼돈스럽고 무계획적이며 아무런 길잡이도 없다.
모더니스트의 ‘과학적인 문체‘는 혼란스러우며 소설을 어떠한 결론으로 깔끔하게 이끌어 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 P102

하지만 모더니스트들은 이야기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모더니즘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측면 가운데 하나가 속물근성이었다. 모더니스트들은 대중을 불신했고 교육받은 소수의 엘리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에즈라 파운드와 같은 몇몇 탁월한 모더니스트들은 파시즘을 지지하며 민주주의를 냉소했다. 이들은 특히 ‘대중 소설‘에 대해 격분했다. - P103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가를 책 판매의 불가피함에 매달린 ‘노예‘라고 탄식했다. 그녀는 "플롯도 없고 희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니며 사랑에 대한 관심도 없고 수용될 만한 문체로 비극적 결말을 맺지도 않는 자유로울 수 있는 소설을 열망했다. E. M. 포스터는 "아 저런, 그렇지, 소설은 이야기를 하는거지."라고 말했지만 그가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문학 시장이 "그토록 지급한 격세유전의 형식인 이야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포스터와 울프 모두 나중에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으니, 결국 시장에서 명백한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 P103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10대 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게 말한다. "누가 너를 대장으로 만들어 줬어?" 그리고 E. M.
포스터에게 말한다. "누가 당신을 소설의 권위자로 만들었지? 죽은 백인 남자인 당신을 당신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진정한 인생의 진실을 안다고 하는 모더니즘의 주장을 거부한다. - P104

『돈키호테』와 『천로역정』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개인적 자아는 장애물을 헤치고 사회의 위선에 맞서 승리를 구가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 P104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들은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시도하지않았다. 왜냐하면 ‘독창적인‘이라는 말은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조적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사회에 대해서, 출생 이후부터 인간을 형성하는 정보의 홍수에 대해서 썼다. - P105

포스트모더니즘은 존 버니언의 설교만큼이나 무거운 교훈이 될 수도 있으며, 『화이트 노이즈』는 청교도식의 우화적인 인물만큼이나 가차없이 자신의 요점을 주입시킨다. (돈 드릴로가 이후에 쓴 좀 더 방대한 소실『지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진실‘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는 세인들을 위해서 결론을 외치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크다. - P105

문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활기를 일부 잃어버리기 시작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단일한 ‘운동‘은 없었다.(이런 것들은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더 쉽게 눈에 띄는 법이다.) - P106

이런 기법을 메타픽션이라고 한다. 진짜인 척하는 가짜 세계를 창조하지 않고, 메타픽션은 솔직하게 이것이 이야기일 뿐이라고 인정한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 위로 발걸음을 뗄 때 작가는 우리 뒤에 서서 이렇게 외친다. "여러분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마세요!" 칼비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 P106

소설의 존재가 탄생시킨 초기 몇 년간의 긴장, 즉 진짜와 허구적인것, 환상과 실재, 소설과 로망스 사이의 긴장은 드디어 그렇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사건들이 다시 한번 가능해지고 그것을 이용하는 소설들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자신만의 이름표를 갖게 되었다. 심지어 플롯은 사소하긴 하지만 복귀하기까지 했다. - P106

장르가 처음 생기고 400년이 흐르면서 소설 쓰는 직업은 이미 성장을 마쳤다. 그래서 메타픽션 최고의 소설가들은 이야기꾼이나 심지어로망스 작가라는 호칭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리얼리즘과 그에 관련된 형식들이 부과하는억압을 헐겁게 해 주고 리얼리스트와 자연주의자들의 시대에 빼앗겼던 상상력에 일부나마 힘을 되찾아 주었다. - P107

소설 제대로 읽는 법

1단계: 문법 단계 독서

소설을 처음으로 통독할 때 아주 간단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후에 그들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 P107

제목과 표지, 차례를 본다. 

독서 일기장과 연필을 가까이 두고 제목이 있는 지면과 뒤표지를 훑어본다. 책에 저자나 역자의 약력이 있다면그것 역시 읽는다.
저자나 역자가 쓰지 않은 서문은 넘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읽으면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기회를 갖기도전에 그 책에 대한 해석을 지니게 될 것이다. - P108

등장인물의 목록을 만든다.
 독서 일기장의 제목 바로 아래나 비어있는 왼쪽 면 정도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지위,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소설에서 한 인물의 이름이 두 개나 그 이상이라면 목록을 작성한 덕분에 인물들을 착실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 P109

각 장의 주요 사건을 간략하게 적는다.

 각 장을 끝낼 때마다 독서일기장에다가 한두 문장으로 주요 사건을 묘사해 본다. 그 문장들은 플롯의 세부적인 요약이 아니라 기억 촉발제가 되어야 한다. 각 장을 주요사건 하나로 제한해 본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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