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인기를 반영하듯 매년 수많은 신인 작가가 데뷔한다. 그 자체는 별문제가 아닌데 죄다 ‘기대의 대형 신인‘ 이라고 떠드는 게 문제다. 일테면 재작년 『붉은 얼굴의 악마』 로 대일본스릴소설대상을 수상한 사루타 고분고로 말하자면, 민속학 지식은 신음을 내뱉을 정도로 놀라웠으나 허접한 줄거리와 얄팍한 인물 묘사에 두 번째 작품 이후로는 고전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 P245
전작은 산속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의 전개를 붉은 귀신 춤이라는 전통 예술과 엮어 그린 좋은 작품이었다. 거기서 별다른 변주 없이 이번 무대 역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촌락이다. - P246
전작은 분명 아이를 낙태하면 붉은 귀신이 덮친다는 전설이 모티프였는데 이번에는 갓파다. 같은 방법을 몇 번이나 써야 속이 시원하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 P246
이런, 이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네. 『붉은 얼굴의 귀신』에서는 마을에 온 산부인과 의사가 살해됐는데 그것을 오락사업장의 사장으로 바꾼 데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번 작품에 창의성이라는 건 어디 있나. 양쪽 발이 파랗게 칠해진 이유도 붉은 얼굴의 귀신에서 사체의 얼굴을 붉게 칠한 이유를 살짝 손본 느낌이다. - P247
전문 분야인 탓인지 민속학 얘기만 나오면 글이 뜨거워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의 줄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얘기를 내내 읽어야 하는 독자 처지가 되어 보란 말이다. 한편 인간을 그리는 데는 전혀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차례로 인물이 등장하는데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 P247
그런 와중에 마지막으로 밝혀진 진범은 의외랄 것도 없다. 주인공외에는 이 인물만 제대로 그리고 있으니 당연하다. - P247
감상을 솔직히 적었을 뿐이라고 몬마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해 『파란 발의 갓파』를 고른 것도 아니다. 편집부에서 다음에는 이 책을 부탁한다고 해서 썼을 뿐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루타 고분고는『붉은 얼굴의 귀신』을 읽었을 때부터 관심을 놓았다. - P248
몬마는 미스터리 평론가다. 원래는 취미로 읽었을 뿐인데동료인 미스터리 마니아의 추천을 받아 몇 번인가 동인지 같은 곳에 서평을 쓰다 보니 그게 본업이 되어버렸다. - P248
화제작, 신인상 수상작은 물론이고 베테랑 작가나 주목받는 작가의 책도 다 봐야한다. 매달 여러 출판사에서 몬마에게 신간을 보내는데 아무리 정리해도 높이 쌓인 책이 거대한 피라미드로 변하고 만다. - P249
몬마는 일정을 적어놓은 수첩을 펼쳤다. 오늘이 파란 발의 갓파 마감일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앗!" 일정표를 보고 그는 소리를 질렀다. 파란 발의 갓파 마감이라고 적힌 옆에 이런 메모가 있었다. 긴초샤의 오기 씨가 의뢰한 서평, 최대한 호의적으로…………. - P249
"이거 참!" 저도 모르게 한탄이 나왔다. 지금부터 원고를다시 쓰는 건 힘들다. 아니, 그보다 이 책을 어떻게 칭찬한다말인가. - P250
남자가 내민 명함에는 『쇼혹스판매 주식회사 영업소장 요미 요미타』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다. "무슨 일이시죠?" "네. 저희는 이번에 고성능 독서 기계를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일반 판매에 앞서 독서를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에게 모니터를 받아 얼마나 편리한지 시험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 P250
말도 안 되는 칭찬에 몬마는 조금 진저리를 치면서도 나쁜기분은 아니었다. 도대체 뭐냐고 묻고 말았다. (중략) "일테면 너무 바빠 많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몸이아파 읽을 수 없다거나,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시간도 있으나 좋아하는 책이 없어 읽고 싶지 않다거나." - P251
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책을 낭독해준다는 거군요. 하지만 그럴 바에는읽는 게 낫죠. 낭독을 듣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졸리기도 하고." - P252
"단순한 낭독 기계 같은 걸 권하려고 굳이 찾아뵌 건 아닙니다. 쇼혹스는 말입니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하고 감상을 적어 서평으로 출력할 수 있답니다." "아니, 설마?" - P252
"자, 읽히고 싶은 책이라도 있나요?" 요미가 물어왔다. "그렇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면, 하고 몬마는 『핸드 컬렉터』를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뭘 하게 할까요? 감상이라도 쓰게할까요?" "아니, 일단 요약이 좋겠네. 줄거리를 알고 싶어." - P253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을 게 있겠냐는 듯 자신에 찬 표정으로, 요미가 물었다. "아주 좋네." 몬마가 말했다. "하지만 요약뿐이잖나. 다음은 감상이나 서평을 쓸 수 있느냐는 문제지." "쓸 수 있습니다. 조금 해볼까요?" "그렇게 해주게." - P255
"아아, 자, 어떠십니까?" 몬마가 또 손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이제 쇼혹스의 성능은 거의 이해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러네." 몬마는 팔짱을 꼈다. 실은 그의 머릿속은 이미 이 기계를 들여놓기로 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다. 터무니없는 요금을 낼 수는 없었다. - P258
"아니, 그런가? 공짜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요미는 고개를 숙였다. "어떠세요? 시험해보시겠습니까?" - P258
"그럼 또 다음 달 후기를 들으러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요미는 돌아갔다. 몬마는 기계로 다가가 그 표면을 쓰다듬었다. 정말 편리한 걸 얻었네…………. - P259
몬마가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천천히 일어나 "네, 몬마입니다"라고 하품하면서 말했다. "앗! 몬마 씨입니까? 소설 긴초샤의 에모토입니다." "아, 안녕하신가? 좀 전에 원고를 보냈는데 벌써 읽었나?" 몬마는 발밑에 놓아둔 책을 들었다. 네코즈카 시노라는 여성 작가가 쓴 『또 다른 밤』이라는 호러 소설이다. - P262
사실 이번에는 직접 읽고 서평을 쓰려고 했는데 도입부만 읽었는데도 잠들고 말아, 결국은 이것도 쇼혹스에게 맡겼다. 이 새로운 병기 덕분에 몬마의 작업량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자신이 읽지 않아도 줄거리를 알 수 있고 서평까지 완성해주니까 당연하다. - P263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문제가 좀………." 에모토는 말끝을 흐렸다. "문제라니 뭐지?" "아니, 그게, 몬마 씨는 이번 주 『주간 분후쿠』를 읽으셨습니까?" "분후쿠? 아니, 아직 안 읽었는데, 그게 왜?" - P263
"그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화제작은 여러 잡지가 다루지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몬마는 가볍게 말했다. "아뇨, 도모비키 씨가 『또 다른 밤』의 서평을 쓴 건 괜찮습니다.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아, 이건 어디까지나 착오인 듯한데 조금 전 몬마 씨가 보내주신 원고 내용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 P264
몬마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짚이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일단, 도모비키 씨의 서평을 팩스로 보내드릴까요?" "응, 그래. 그렇게 해주게." - P265
도모비키, 이 자식・・・・・…. 틀림없었다. 도모비키 덴스케도 역시 쇼혹스를 손에 넣은것이다. 그것을 사용해 일을 마구 처리한 게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최근 도모비키의 업무량이 늘어난듯했다. - P265
"그런데 확인 좀 하지. 『또 다른 밤』은 내 맘대로 써도 되겠나? 꼭 칭찬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건 상관없습니다. 몬마 씨는 그 작품을 그리 높이 보지않으시나요? 도미비키 씨는 상당히 칭찬했는데요." - P266
전화를 끊은 후 몬마는 바로 또 다른 밤을 쇼스에 넣고 평가 모드를 ‘쓴소리‘에 맞추고 서평을 출력했다. 그 일은 몇분 만에 끝났다. 그걸 바로 소설 긴 편집부에 팩스로 보냈다. "원고, 잘 받았습니다." 팩스를 받은 에모토가 가벼운 말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책을 다뤄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군요. 도모비키 씨가 정교하다고 평가한 부분을 몬마 씨는 너무 비틀었다고 하고, 도모비키 씨가 농밀하게 느낀 부분이 몬마 씨에게는 장황한 게 되니까요.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 P266
"기계 상태는 나쁘지 않은데 아주 곤란한 일이 일어났네." "아니 ・・・・・・ 무슨 일이?" "당신, 이 기계를 나말고 다른 평론가에게도 줬지? 도미비키 덴스케나 다이안 료키치나." "앗! 잘 아시네요." 헤헤헤, 요미는 머리를 긁적였다. - P267
"그 점에 관해서는 다른 분들에게도 의견을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 도모비키와 다이안뿐만 아니라?" "아니, 평론가분들 외에 작가 몇 분에게도 드렸습니다." "왜 작가가 이런 기계를?" - P267
"그리고 이건 대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요미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말했다. "문학상 심사위원을 하는 선생님에게도 큰 호평을 받고 있죠. 특히 대여섯 개의 심사위원을 맡은 선생님은 모든 작품을 읽느라 정말 고생이라고"라며 킥킥대고웃었다. - P268
"그 밖에도 작가끼리 대담해야 하는데 상대 작가의 작품을하나도 읽지 않았을 때도 유용하다고." "이런, 이런! 그럼 업계에 상당히 퍼져 있다는 건데. 내가쓴다는 것도 들켰겠네. 잠깐! 그럼 출판사 녀석들이 쇼혹스를 도입하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이미 분후쿠출판과 탄탄샤 등이 주문하셨습니다." - P268
"그러니까 같은 기계를 출판사가 도입하면?" "그러니까." 요미는 조금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기존형에는 그런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이 좋아하실 만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 P269
"이 유닛을 설치한 상태에서 이제까지 선생님이 쓰셨던 서평을 소스가 읽게 합니다. 그럼 컴퓨터가 선생님의 버릇이나 기호, 가치관 등을 기억합니다. 많이 읽히면 읽힐수록 그정밀도는 올라갑니다. 선생님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책을 읽히고 서평을 쓰게 하면 선생님의 개성이 담긴 원고가 완성되난 방식입니다." - P270
"이 성능을 이해하셨다면 결코 비싼건 아닌데." 그렇게 전제하고 요미가 가격을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몬마는 순간정신이 아득해졌다. 외제차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조금 어떻게 해줄 수 없나?" "아이고, 좀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들은 다 그 가격에 계약하셨습니다." - P270
몬마는 들고 있는 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다음과 같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경원의 아이』 …………A 『딱딱한 이마』 …………A 『발바닥의 어둠』…………A 『사람 얼굴 부스럼』………B 『개죽음을 당해봐』…………C 『죽이면 죽일수록 죽일 때』 ・・・・・・ C 이 결과는 만약 몬마가 직접 작품을 읽었을 때 어떤 평가를 줬을지를 쇼혹스가 예상한 것이다. - P272
보아하니, 도모비키와 다이안도 같은 서류를 들고 있었다. 요즘에는 쇼횩스 사용을 아무도 숨기지 않았다. - P272
그 말을 듣고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논의를 접고 3자 대전 모드로 결과를 내도 괜찮겠죠?" "어쩔 수 없지." "맞아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 P273
그 컴퓨터에서는 전화선 세 개가 나와 있었다. 각각의 회선은 몬마를 비롯한 심사위원의 집에 있는 쇼혹스와 연결어 있었다. 인간끼리 논의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기기끼리 싸우게 하기로 이번 모임 전에 결정했다. - P273
그러자 요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도라야마 씨는 아직 그리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요." "안 팔리죠." 노골적으로 불쾌한 목소리를 냈다. - P275
"아이고! 일단 제 말을 들어보세요. 그런데 도라야마 씨가쓰고 있던 원고를 잠깐 빌리겠습니다. 원고지여도 좋고, 파일이어도 좋습니다." "뭘 하려는 겁니까?" "그건 보고 즐기시길." 요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P275
그 종이를 보고 도라야마는 앗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주인공 등장을 두 페이지 정도 빨리 넣는다. ■ 32페이지의 격투 장면을 다섯 줄 늘린다. ■ 45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정계 설명은 삭제. ■ 58페이지, 부스지마 가즈오 더 불쾌하게 묘사. ■ 63페이지, 베일에 가려진 중국인을 하나 더 늘린다.‘ - P276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이건 현재 나온 쇼혹스의 기능을 거꾸로 이용한 장치, 이름하여 쇼혹스 킬러입니다." "쇼혹스 킬러?" "요컨대 말입니다, 쇼스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 상품을 개발한 우리는 어떻게 소설을 쓰면 높은 평가를 받는지다 압니다. 이 쇼혹스 킬러는 그걸 조언하는 기계죠." - P276
"물론 평론가에 따라 평가가 나뉘는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베스트셀러 탑텐을 보면 알 수 있듯 1, 2위를 다투는 작품은 어느 평론가나 A를 줍니다. 쇼혹스킬러는 그 수준을 목표로 하죠." - P276
도라야마의 의문을 듣고 요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흔들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쇼혹스 킬러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기위한 기계는 아닙니다. 쇼가 높은 평가를 주는 소설을쓸 수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쓴 소설을 읽어봤는데솔직히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 P277
이런, 이런! 또 한 대 팔았네………. 요미는 도라야마의 방을 나온 후속으로 중얼거렸다. 쇼스에 이어 쇼혹스킬러의 판매도 순조로웠다. 팔리지않는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 기꺼이 샀다. - P278
요미와 동료들은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느긋하게 책이나 읽고 있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다. - P278
기묘한 시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주제에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책이 그리팔리지 않는데도 베스트셀러 탑텐이 발표된다. (중략) 독서란 도게체 뭘까, 요미는 생각한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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