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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서 살인사건이라는 거죠?"
"일단 여기에 시체가 있으니까. 그게 한 가지 증거야." 모자 장수는 대답했다.
"시체라니, 이 껍데기?"
험프티 덤프티가 죽으면 껍데기 말고 뭐가 남겠어?" 3월 토끼가 말했다. - P41

"이 녀석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빌이 말했다. "머리가 이상하거든." - P41

"그럼 사고일지도 모르겠네요."
"사고? 무슨 사고?"
"그러니까 담 위에 앉아서 장난치다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거죠." - P42

 모자 장수는 순식간에 담 위로 기어올랐다. 험프티 덤프티는 여기 앉아 있었어."
"아주 미끌미끌한걸요."
"여기에 기름이 뿌려져 있었어."
"어째서 그런 짓을?"
"험프티 덤프티를 미끄러뜨리기 위해서지, 자살하려고 일부러자기 아래에 기름을 뿌리는 녀석이 있겠어?" - P42

"고작 기름만 가지고는 상황증거로서 약하지 않을까?" 빌이 말했다.
"여기에 증거가 하나 더 있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담에서 뛰어내려 비교적 크기가 큰 껍데기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험프티 덤프티의 등 부분이야." - P43

"범인을 찾아내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건 증명이 아니야."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죠."
"그야 누군가가 범인이겠지. 살인사건이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특정 인물을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예요." - P43

"그것참, 당연히 특정 인물이 범인이겠지. 불특정 인물이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예를 들어… 예를 들어 3월 토끼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예요."
"난 아니야! 믿어줘! 난 무고해." - P44

3월 토끼가 손자국에 세제를 묻히고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무슨 짓이에요?" 앨리스는 소리를 질렀다.
험"프티 덤프티 등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있잖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등이 기름투성이라고. 누구든 기분 나쁠 거야.‘ - P44

"3월 토끼가 증거를 인멸했어요."
"이미 증명했으니까 증거는 필요 없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말했다.
"아직 필요한데. 범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요."
"아까 너 3월 토끼가 범인이라고 했잖아." 빌이 말했다. - P45

"그래, 3월 토끼를 의심한다면 너도 의심해야 공평하지."
"내게는 험프티 덤프티를 죽일 이유가 없어요."
"너. 험프티 덤프티랑 무슨 일로 다뤘다면서."
"다투기는 누가요. 난 험프티 덤프티에게 시에 대해 물어봤을뿐이에요. 그랬더니 험프티 덤프티가 별안간 기분이 나빠져서 내게 무례하게 굴었다고요. 그뿐이에요."
"험프티 덤프티가 무례하게 굴어서 네가 울컥했다. 아니야?" - P45

"뭔가 생각났나, 도마뱀."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 물었다.
"응, 생각났어."
"좋아. 빨리 말해. 그때나랑너랑……….
"앨리스는 알고 있었어."
뭐? 무슨 이야기야?
"뭘 알고 있었는데?"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다고 했어."
그 이야기야? - P46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험프티 덤프티는 오늘 살해당했어. 그렇게 빨리 정보가 전해질리 없다고."
"험프티 덤프티는 언제나 그렇잖아요." - P46

"다른 험프티 덤프티?"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요. 험프티 덤프티는 하나뿐이에요."
"그렇다면 네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야. 험프티 덤프티는 오늘죽었으니까."
"그럼 그 기억은 도대체 뭐죠?" - P47

"조사 끝났어." 느닷없이 히죽히죽 웃는 얼굴이 공중에 나타났다.
"수고 많았어, 체셔 고양이야."
"무슨 조사요?" 앨리스가 물었다.
"목격자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했지." 3월 토끼가 설명했다. - P48

"공작 부인이 직접 여기 올 리 없지. 공작 부인은 지금 아기를키우느라 바쁘다고."
"진짜 아기는 아니지만, 앨리스가 말했다.
"쉿."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 그리고 빌과 체셔 고양이가 거의 동시에 입술 앞에 집게손가락을 세웠다. - P48

"그런데 흰토끼는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난대?"
"당일이라면 오늘 말이죠?"
"난 틀린 표현 안썼어!" 모자장수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아요. 틀렸다고 지적한 거 아니에요."
"오늘 흰토끼는 순찰시간에 늦을 뻔했다."
"녀석은 늘 목에다 시계를 걸고 다니면서 왜 시간을 못 지키는거지?" - P49

"지시는 내가 내린다!" 모자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그건 나중에 하고 우선 목격 증언을 들려줘."
"그 담은 정원 한복판에 있으니까 정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도 험프티 덤프티에게 다가갈 수 없어. 그리고 흰토끼가 도착했을 때 정원 안에는 험프티 덤프티밖에 없었지."
"정원 한복판에 담이 있다니 어떻게 된 거죠? 담은 부지의 경계선에 세우는 거잖아요." - P49

"입구는 거기뿐이에요?"
"거기뿐이야. 다른 곳은 담에 둘러싸여 있어서 안에 못 들어가."
"역시 바깥쪽에도 담이 있구나."
"담이란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한 물건이니까." - P50

"짐승들은 다 알지." 모자 장수가 말했다. "냄새나 적외선 같은걸로 말이야. 당연히 흰토끼도 알아차릴걸."
"그럼 그거 아닐까요? 이 세계는 때때로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랑 이어지잖아요.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죠."
"공간 왜곡을 말하는 거야?" 체셔 고양이가 물었다.
"그걸 공간 왜곡이라고 불러요?" - P50

"여왕 폐하의 정원 부근은 비행 금지야. 이곳 상공은 늘 감시받고 있어서 하늘로는 접근할 수 없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정말로요? 못 믿겠는데요."
느닷없이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앨리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 P51

"흰토끼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뜻인가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
"하지만 흰토끼한테 살인을 저지를 기회가 있었던 건 확실해요."
"그것도 조사해뒀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 P52

"즉 그 전에 정원에 들어갔다가 그 후에 정원에서 나온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 의견에는 이의 없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딱 잘라 말했다. "만약 흰토끼가 누군가를 목격했다면 이제 이 사건은 해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P52

"그럴까요? 만약 그 인물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백이 없어도 상황증거로 판단컨대 그 녀석이 범인 확정이지.
적어도 재판에서는 승산이 없어."
"판사는 누군데요?"
"여왕 폐하겠지. 어쩌면 국왕 폐하일지도 모르지만 국왕 폐하는 여왕 폐하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실질적으로 똑같아." - P53

"하지만 그렇게 번거로워지지는 않을거야. 흰토끼가 정원에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고 증언했거든. 그리고 그 인물은 국왕의 시종과 말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현장에서 달아났어." - P53

"그게 누군데요? 가르쳐줘요."
"그렇게 알고 싶어?"
"예, 거기 모자 장수가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빨리 오해를 풀고 싶어요." - P53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그거 요즘 유행하는 표현이에요?" 앨리스가 말했다.
"앨리스, 너야."
"엥?" 앨리스는 입이 떡 벌어졌다. - P54

"넌 우연히 암호가 일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역시 암호구나."
"난 그렇게 말했지."
"그렇다면 즉.....… 안돼. 역시 말 못 하겠어." - P55

"이론은 나중에 생각하면 돼. 일단 현상을 분석하지 않으면 이론은 나오지 않아 그거 알아? 상대성이론은 어떤 상황에서든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신기한 현상에서 탄생했다고."
"하지만 말 안 할래. 말하면 분명 이상하다고 비웃을 테니까." - P56

"응. 하지만 혹시 망상이 아닐까 싶어서………. 앗, 어쩌면 지금 네가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내 망상일지도 몰라."
"그렇게까지 의심이 많으면 자기 정신 상태도 못 믿게 돼."
"지금 그야말로 내 정신 상태가 못 미더운 상태야." - P56

"그럼, 뭔데? 네가 어떻게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
"나도 너랑 똑같은 체험을 했으니까."
"우리 둘의 꿈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P57

"뭐가 객관적인 현상인데?"
"이상한 나라가 실제로 있다고 가정하는 거야."
"내 머리보다 네 머리가 더 걱정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알아?"
"수입 면도기야?" - P57

"단순한 꿈이 아니야. 두 세계의 특정 인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
"무슨소리야?"
"이쪽 세계에는 나, 이모리 겐이 존재하고 저쪽 세계에는 도마뱀 빌이 존재해.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의 꿈이다른 쪽의 현실에 해당해." - P59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어."
"그랬지. 하지만 그건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가 자기들 맘대로 그렇게 믿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들은 증거를 제시했어."
"증거라니, 흰토끼의 헛소리?" - P59

"어차피 꿈속 이야기인걸, 뭐."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만약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면네 인생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야."
"절반? 꿈은 깨면 끝인데?"
"반년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같은 상황의 꿈을 꾼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 꿈 일기를 써보기로 했지." - P60

‘그럼 질문을 바꿀게." 이모리는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꿈 말고 기억나는 꿈 있어?"
"당연하지."
"예를 들어 어떤 꿈?"
"어떤 꿈이라니・・・・・・ . 엥?"
"어떤 꿈인데?" - P60

"그럼 시간을 주면 다른 꿈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좋아,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한번 해봐." 이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아리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 P61

"기억났어?"
"깜빡 잊어버렸을 뿐이야.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꾼 꿈을 싹 다 잊어버렸다고?"
"싹 다 잊어버린 건 아니야."
"그럼 무슨 꿈이 기억나는데?"
"..... 이상한 나라・・・・・・ ." 아리는 꺼져 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P61

아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난 지금까지 한 종류의 꿈밖에 꾼적이 없는 것 같아."
"안 믿길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터 매일 꿈 일기를 쓰면 점점 믿음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넌 이제부터 내가 매일 밤 감옥에 갇힌 꿈을 꿀 거라는 거구나." - P62

"세계관찰, 이 세계와 이상한 나라 양쪽을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두 세계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더라."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병원에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은 기분이들어."
"어째서?"
"보통은 자신의 망상이라고 여길 거야." 
"너도 자신의 망상이라고 생각해?"
"아니.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잖아. 하기야 너 자신이 내 망상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 P63

"아니, 그게 아니라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너 말고 한명 더 있
"뭐라고?" 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이야기를 빨리 했어야지."
"일단 네가 정말로 앨리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어." - P63

"오지 씨도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었어."
"하지만 아까 오지 씨는 그냥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래. 그냥 안면이 있는 사이지. 특별히 두터운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야." 이모리는 말을 이었다. - P64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어. 하지만 사실이 명백해지니 연구자로서 흥미가 동하더라고. 도대체 이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궁금했지."
"알아냈어?"
"아니, 겨우 가설을 세우고 있는 단계야." - P65

"네게 들려줘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잖아."
"지금까지 이야기한 거 아니야?"
"지금까지 한 이야기도 충분히 중요해.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전제로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네게 정말로 중요해."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병원 문닫겠어." - P67

"만약 앨리스가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체포되면 어떻게 될까?"
"아까도 말했지만 감옥에 갇히겠지."
"판사가 여왕이라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지. 여왕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목을 쳐라!‘라고 말하니까. 하지만 실제로 목이 댕강 잘린 사람은......" - P67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려줄게. 네 마음은 충분히 굳센 것 같으니까." 이모리는 심호흡을 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오지 씨의 아바타라는 험프티 덤프티였어." - P68

"그래. 두 세계의 죽음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모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럴 경우, 앨리스가 사형을 당하면 현실세계의 너도 죽어." - P68

숲 속에는 사람 눈(혹은 짐승의 눈)이 많기 때문에 앨리스와 빌은 해안으로 왔다.
그러나 여기라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떨어진 모래 언덕 뒤편에서 그리핀과 가짜 거북이 엿보고있고, 그 바로 옆에서는 바다코끼리가 어린 굴을 속이고 있는 참이었다. - P69

"지금 지구라고 했는데, 역시 여기는 지구가 아니구나."
"뭐, 그렇다고 결정된 건 아니지만. 뭐, 여기는 그다지 지구 같지 않으니까."
"역시 넌 이모리 같지 않아. 이모리는 좀 더 명석한걸." - P70

"확실치는 않지만 몇 명에게 미묘한 반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 그들은 한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거나 꿈의 내용을 자세히 듣고 싶어 했어."
"그 사람들한테는 가설을 들려주지 않았어?"
"아무 준비도 없이 공개해도 될지 망설여졌거든. 혹시 진짜 무슨 음모라면 큰일 날지도 모르잖아." - P70

"그럼 다음에 지구에서 잠이 깼을 때 보여줘 아무튼 그 목록에나도 실려 있었던 거구나."
"아니. 넌 목록에 없었어."
"그럼 왜 나한테 암호를 가르쳐준 건데?"
"도박이었어."
"도박?"
"앨리스와 구리스가와 아리의 이미지는 아주 비슷해. 그리고 넌 음모가 유형이 아니야."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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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가서 설명 드릴게요. 절대 예원이 나가지 않게 해주세요. 너무 걱정 마시고요. 제가지금 갑니다.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다급한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것은 옥순도 마찬가지였다. 전화가 끊어지자 그녀는 더욱 불안했다. 이 상황을 이해시켜줄 마지막 줄이 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 P48

딸이 거기에 서 있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로 자신을 향해 웃고있었다. 점퍼 하나 없이 이 겨울에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걸까 생각하기도 전에 예원의 손을 잡고 있는 웬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 P49

예원은 선우의 옷 중에서 고무줄로 된 트레이닝복을 꺼내 아이에게 입혔다. 아이의 작은 복사뼈 위로 바지가 껑충 올라갔다. 티셔츠는 몸을 죄었다. 예원이 옷자락을 매만지며 해사하게 웃었다. - P49

대문을 넘는 자신을 물끄러미 보는 시선을 그때의 옥순은 알지 못했다. 청소를 마친 후장을 보러가려고 화장대에 올려둔 지갑을 예원이 보는 것도 말이다. - P50

없었다. 예원이.
지갑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 P50

"네, 장모님."
-이 서방, 이걸 어쩌나!
장모님의 목소리는 기절하기 직전의 사람 같았다.
-자네랑 통화하는 사이에 예원이가 사라졌어! - P51

예원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아이의 작은 머리가 연신 가게 쪽으로 향했다. 아이의 시선 끝에는 주황색 망에 담긴 구운 달걀과 꼬치 어묵 같은 것이 있었다. 아니면 옆에 있는 사탕이나 과자, 초콜릿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예원은 문득 걸음을멈추었다.
"뭐 먹을래?" - P52

버스에 올랐다. 버스표에 있는 좌석 번호를 확인하며 안쪽으로들어갔다. 예원이 가진 티켓은 18번과 19번 좌석이었다. 앉으려는데 아이가 머뭇거렸다. 아이의 눈이 안쪽 자리에 가 있었다.
"창가에 앉을래?"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뿐이었지만, 아까처럼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 P52

그때 예원은 창 너머 승강장으로 달려오는 선준을 보지 못했다. 봤다고 해도 달라질 일은 없었다. - P53

차 한 대가 예원의 앞을 거칠게 막아섰다. 예원은 한 팔을 내뻗으며 아이를 감쌌다. 차의 조수석 유리창이 밑으로 내려갔다. 앉아 있는 것은 선준이었다. 화를 내는 건지, 울고 싶은 건지 알 수없는 얼굴이었다. - P54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인 줄이나 알아?"
집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선준이 소리를 질렀다. 뒤따라 들어오는 예원은 여전히 로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큰 눈을 깜박이며선준의 얼굴을 보던 예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무릎을 굽히고 앉아 로운의 신발을 벗겼다. - P55

"아까 병원에서 불렀던 노래 있지? 그거 불러봐. 응?"
로운은 멀뚱히 정면만을 보고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며 예원이 선준을 향해 웃었다. - P55

문득 금평 경찰서에서 발견됐다던 시신이 떠올랐다. 선우의 것과 비슷한 목걸이는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불고 시간이 오래되어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고. 어쩌면 지금쯤 선우가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 P56

"얘는 우리 선우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선준에게도 절망이 찾아왔다. 이런 소리를 할때마다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선우를 잃었다는 것을. - P57

"편식도 안돼. 알았지? 다음 반찬은 꼭 김치 먹기?"
아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있는 선준은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입술을 깨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더 이상무시할 수는 없었다. - P57

미친 건 아닌가. 차마 그 소리를 뱉지 못하고 장모님의 말은 끊어졌다. 입으로 뱉는 순간 현실이 될까 두려운 마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선준은 너무 걱정 마시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뱉었다. - P58

"원장님, 저 이선준입니다."
몇 번이고 전화를 받지 않은 선준에게 민서진은 대뜸 원망을 터뜨렸다. 선준은 보이지도 않을 민서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상황도 대충 알렸다. - P58

충동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가능성이 있어요. 선우라고 믿고 싶은 거지 정말로 착각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잘못된 걸알고도 지금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작용하고 있을 거예요. 힘들더라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게 좋아요. - P58

"괜찮아, 이리 와."
로운은 그대로 앉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말끄러미 예원을 보았다. 예원이 웃으며 부드럽게 로운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이끄는대로 로운은 천천히 일어나 욕조 안으로 몸을 들였다. - P59

이것 역시 3년 전에 사용했던 것이다. 이 집의 모든 것은 3년 전에 머물러 있었고,
3년 만에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 P60

 3년 전 여섯 살이었던 선우가 입던 잠옷이니 로운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단추 사이사이가 벌어지고 팔과 다리가 쑥 올라온 옷을 입은 로운을 보니 더욱 화가 났다. 선준은 예원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고 거실 가운데에 세웠다.
"자, 봐! 저 애가 정말 선우라고?" - P60

 사진 속의 선우는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은 손에 쥐면 빠져나갈 정도로 가늘고 부드러웠으며, 쌍꺼풀이 없었고 눈 끝이 둥글게 휘어져 순해 보였다. - P61

예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 마구 저항하던 어깨의 움직임도 멎었다. 예원의 고개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선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바닥으로 툭 떨어진 눈물은 예원의 것이었다. - P61

"우리 선우였으면 좋겠어. 이젠 이젠 찾았으면…………. 이젠 찾고 싶어."
예원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선준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녀를 당겨 안았다. 이렇게 끌어안고 지탱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P62

"선우다."
"뭐?"
선준이 놀란 눈으로 로운을 보았다. 로운이 벽에서 뗀 시선을 천천히 선준에게로 향했다. 로운의 작은 입술이 선준을 향해 똑똑히 말했다.
"이선우예요."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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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의 후속작을 먼저 읽고 첫 작품을 읽는 것이다.









맞은편에서 흰토끼가 달려왔다.
조끼에서 시계를 꺼냈다. "큰일 났다! 늦겠어."
이 토끼가 특별히 시간 개념이 없는 건지, 원래 토끼라는 종족자체가 시간을 지키는 능력이 모자란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는 늘 이 모양이었다. - P5

 어쩐지 좀 더 지루하지만 차분한 일상이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거기 비켜, 메리 앤! 늦을 것 같아! 알잖아!"
앨리스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뒤에서 누가 말을 붙였다. - P5

"있지. 암호를 정해두자."
돌아보자 도마뱀 빌이 서 있었다.
"암호? 무슨 소리야?"
"암호란 같은 편이라는 걸 식별하기 위해 비밀리에 정해놓는 말이야." - P6

"너, 아는 이들 모두에게 지금이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다니는 거니?"
빌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모두에게 말하면 의미가 없잖아. 이이야기는 같은 편에게만 했어."
어머. 빌은 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P6

"왜냐니, 암호가 없으면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할 수 없잖아."
"판단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난 같은 편이잖아."
"그러니까 암호를 정해두지 않으면 앨리스가 같은 편인 줄 모른대도."
"그럼 적이라도 상관없어."
빌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건 곤란해. 앨리스는 같은 편이니까." - P7

"암호는 다음에 다시 정하자."
"왜?"
"얘가 있어서." 앨리스는 호주머니를 가리켰다.
"호주머니가 사방팔방 퍼뜨릴까봐? 그 녀석은 대개 과묵하니까 괜찮아." - P8

"아까 앨리스가 털 뭉치라고 했어."
"아니. 안그랬어. 네가 그랬지..
"내가 털 뭉치라고 하니까 앨리스가 ‘그래‘라고 했잖아."
"그건 털 뭉치"라는 뜻이 아니라 ‘호주머니의 내용물은 털 뭉치같은 것‘이라는 뜻이었어." - P8

"앨리스는 털 뭉치 같은 게 신경 쓰이는 거야?"
"그래, 그냥 털 뭉치가 아니니까."
"그냥 들어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얼마 주고 샀는데?"
"안샀어. 친구니까."
"친구한테 샀다고?"
"아니, 친구한테 안 샀어."
"그럼 친구 아님 한테 샀구나."
"친구 아님한테도 안샀어. 만약 그런 단어가 있다면 말이지만." - P9

"털 뭉치치고는 하지만 겨울잠쥐로서는 보통인가?"
"겨울잠쥐? 왜 갑자기 그런 뚱딴지같은 녀석 이야기를 하는거야?"
"쉿!" 앨리스는 입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다 들려. 호주머니에 들어 있으니까."
"맙소사!" 빌은 호들갑스럽게 머리를 끌어안았다.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비밀로 한 거야?" - P10

"그래도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지금은 암호를 말하지마."
"겨울잠쥐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암호를 가르쳐달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겨울잠쥐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암호를 말하지 말라는 거야." - P10

"그럼 같은 편 말고 다른 사람에게 새나가면 곤란하지 않아?"
"뭐? 그럼 겨울잠쥐는 적이야? 어디서 그런 정보를 입수했어?"
빌은 눈을 반짝였다. - P10

"겨울잠쥐가 적과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
이 녀석이?" 빌은 겨울잠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통자는 늘 이렇게 푹 잠들어 있는 건가?"
......
"잠이랑 내통은 상관없어. ・・・・・・ 하지만 이렇게 잠이 많으면 내통자답다고 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 P11

"나안자!" 겨울잠쥐가 말했다.
앨리스와 빌은 말없이 겨울잠쥐를 관찰했다.
겨울잠쥐는 눈을 감은 채로 숨을 색색 내쉬었다. - P11

"겨울잠쥐 같은 편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럼 암호가 새나가도아무 문제 없어."
"엥? 그렇게 쉽게 믿는 거야?"
년 겨울잠쥐를 의심해?"
"설마."
"그렇겠지. 나도 이 녀석을 의심하지 않아. 게다가 만일 이 녀석이 적이라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다고. 그럼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잖아."
"깔보지 마!" 겨울잠쥐가 소리쳤다. - P12

"아무튼 겨울잠쥐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찬성이야. 빨리암호인지 뭔지를 말해줘."
"알았어. 내가 먼저 ‘스나크는‘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럼 너
"부점이었다."
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알았지? 비밀이 새나갔나?"
"누구한테서 비밀이 새나갔다는 거야?"
빌은 겨울잠쥐를 노려보았다. - P13

"음. 너, 겨울잠쥐 앞에서 암호를 말한 적 있어?"
"응. 있어. 정확하게 따지자면 난 앞쪽 절반을 말했고, 나머지는네가 말했지만."
"방금 전에 우리 둘이 말한 거?"
"기억 안나?" - P13

"그래. 아까 처음 말했어. 그 전에는 내 머릿속에만들어 있었지."
"그런데 겨울잠쥐를 의심하다니 사리에 어긋나잖아."
"하지만 내가 암호를 가르쳐주기 전에 네가 이미 알고 있었으니겨울잠쥐를 의심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은데."
"아니야. 겨울잠쥐는 무고해." - P14

 빌은 이마를 탁 쳤다. "내가 배신자였을줄은 꿈에도 몰랐어."
"안심해, 빌, 너도 배신자가 아니야."
"어떻게 알아?"
"넌 배신자 유형이 아니거든. 게다가 네가 배신자라면 너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야." - P15

"큰일이다!" 시종들과 말들이 그렇게 외치면서 눈앞을 달려갔다.
"뭐야? 왜 그래?" 빌이 물었다.
"왕의 시종과 말들이 허둥대는 걸 보니 답은 하나야."
"누가 배신자인지 알아낸 거야?"
"그게 아니라 틀림없이 담에서 떨어졌어."
"뭐가 담에서 떨어졌는데?" - P16

"그래서 누가 떨어졌는데?"
"진심으로 묻는 거야?"
"응."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의 시종과 말이 달려갔는데 모른단 말이지."
"응."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험프티 덤프티." - P17

"잠깐 기다려." 앨리스도 허둥지둥 뒤를 쫓았다.
"여왕님의 성 정원이야." 빌은 달리면서 손가락질했다.
빌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팍삭 찌그러진 뭔가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거대한 하얀색 껍데기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검붉은 뭔가도. - P17

험프티 덤프티 주변에 두 명이 서 있었다. 뭐, 사람은 아닐지도모르지만 아무튼 사람 취급하는 것이 여기 방식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명이 3월 토끼와 미치광이 모자 장수라는것이 확실해졌다. - P18

"범죄?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을 뿐이잖아요? 그렇다면 사고죠."
모자 장수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험프티 덤프티는 살해당했어. 이건 살인사건이야.‘ - P18

구리스가와 아리는 침대에서 흐느적흐느적 기어 나와서 자명종 시계를 썼다. 언제나처럼 징그럽게 사실적인 꿈이었다. 한창 꾸고 있을 때는 이것이 꿈인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오감이 전부 뚜렷하다(엄밀히 말하자면 그 감각 자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만). - P19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머리가 이상한 인물과 동물이 사는 세계의 꿈만 꾸는 걸까? - P19

최근에는 이 꿈만 꾼다. 혹시 매일 꾸고 있나? 설마.
어제 꾼 꿈을 떠올려보자.
어제는 그 세계 꿈을 꿨다. 어제는 말이지. 이틀 연속으로 꾸는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저께 꾼 꿈을 떠올려보자.
분명 그 세계 꿈이었던 것 같아. 우연히 사흘 연속꿨을 뿐이지만,
그저께는 어땠더라?
어쩐지 그 세계 꿈을 꿨던 것 같은데,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 P20

고작 꿈일 뿐인데 어쩐지 굉장히 신경쓰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꿈 일기라도 쓸걸 그랬어.
그래. 꿈 일기.
시험 삼아 지금부터 써볼까? 날짜와 함께 꼬박꼬박 적어두면 심리적인 뭔가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 P21

‘스나크는 부점이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아. 하지만 이 말은 빌한테 듣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가. 그럼 혹시 그 세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표현일까? 그렇다면 빌은 정말 얼빠진 녀석이야. - P22

"무슨 일 있었어요?" 아리는 한 살 많은 대학원생 다나카 리오에게 물었다.
"나카노시마 연구실의 오지 씨가 돌아가셨대."
"예?" - P22

"갑작스레 병이라도 걸리셨나요?"
"달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둥글둥글한 체형이니까 당뇨병이나 순환기 계통 질환이 바로 떠오르지? 하지만 아니야. 추락사래." - P22

"분명 자살은 아닐 거야." 리오가 불쑥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자살할 사람이 아닌걸. 그렇지 않아?"
"나는 오지 씨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 P23

"혹시 일정에 여유가 있을 만한 분 모르세요?"
"여유? 그런 사람은 아니지......"
"짐작가는 분이 계세요?"
"뭐, 여유롭다면 여유롭지만 여유하고는 좀 다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여유가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뭐, 별난 녀석인 것만은 틀림없어." 대학원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요?"
"이모리야 이모리 겐, 알아?" - P25

"너, 모레 증착 장치 쓰려고 예약했지? 그거 양보해주지 않을래?"
이모리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목 아파?"
"생각 좀 하느라고." - P26

"그렇게 애매해? 모레인데?"
"모레 일은 모레 일이니까. 오늘은 오늘 할 일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하지만 너 지금 텔레비전 보고 있었잖아."
"그래. 그게 오늘 할 일 중 하나야." - P26

"생각해내야 할 게 또 하나 늘었군."
"생각해내지 않아도 돼. 내가 가르쳐줄게. 오지 씨 말이야."
"오지?"
"오지 씨 이름도 까먹었어?"
"아니, 그건 기억나. 하지만 나랑 친한 친구라니 처음 듣는 소린데. 어쩌면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네." - P26

"아아, 생각났다!" 이모리는 아리의 얼굴을 가리켰다. "넌 구리스가와야."
"계속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 하지만 생각해내야 할게 한가지 더 있어. 그게 더 중요해." - P27

꼭 그렇지만도 않아 무슨 실험을 할 건지 들어볼 수 있을까?"
아리는 낙담하면서도 자신의 실험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아하, 전극을 형성하기만 하면 되는 거로군."
"뭐, 요컨대 그런 셈이지."
"그럼 스퍼터* 장비를 쓰면 돼."
"스퍼터 장비라니 좀 거창하지 않아?"


* 증착에 사용되는 장비의 일종 - P28

"왜? 아직 더 남았어?"
"한 가지만 더."
"그러고보니 뭔가 생각해내야 하는 게 있다고 그랬지?"
"중요한 일이야."
"생각이 안 나는데 중요하다는 건 알아?"
"신기하게도 말이지." - P29

"오지 씨는 역시 사고였을까?"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없을 거야. 사고나 자살이나 타살이겠지."
"병으로 죽은 걸 빼면 당연히 그 세 가지 중 하나지 뭘."
"하지만 아주 묘해."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 사람은 자살할 사람이 아니야." - P30

"옥상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흔들다가 균형을 잃은 거야."
"나잇살이나 먹은 성인이 옥상 가장자리에서 다리를 흔들까?"
"글쎄. 뭐, 사람마다 사정과 취향이 있을 테니." - P30

"자살할 거라고 생각했구나."
"자살할 것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인간은 돌발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으니까. 난 몸을 숨기고 경찰이나 소방서에 연락하려고 했어. 그때 오지 씨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기울었지."
"스스로 뛰어내린 거야?"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다음 순간 오지 씨는 떨어지고 말았어." - P31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뭣 때문에?"
"당연히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지."
"미안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진상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사고라고 느꼈든, 살인이라고 느꼈든 그건 어디까지나 인상의 문제라고 몇 명한테 이야기를 들어본 해결은 불가능해." - P33

"잠깐만. 너 이 사건에 흥미가 있어?" 이모리는 아리를 불러 세웠다.
"음. 글쎄? 흥미가 없지는 않다는 느낌이려나?"
"자기 주변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보이는 반응과 별반 다를 바없군. 하지만・・・・...
"하지만 뭐?"
"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P34

"아니, 아마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럼 지금 당장 증명해봐."
"아아, 좋아." 이모리는 아리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역시 얘 무서워.
이모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나크는."
전기 충격과도 같은 오한이 아리의 온몸을 엄습했다. - P35

안 된다. 여기서 대답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아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이제 평온한 인생으로 돌아갈 수없다. - P36

무릇 세계는 처음부터 이랬는걸. 그렇지?
아리는 각오를 굳혔다.
"부점이었다."
세계가 확 바뀌었다. - P36

"토끼 당신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도움? 뭘 돕는데?"
"살인사건 수사 말이에요."
"살인이라고? 참 뒤숭숭한 세상이로구나!"
"살인사건을 수사한다고 말한 건 당신이잖아요." 앨리스는 기분이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 P37

"파충류가 뭐야?" 빌이 물었다.
"너 같은 녀석이지."
"그러니까 ‘너는 너 같은 녀석이냐‘고 물은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마치 내가 바보 같잖아?"
"나는 나 같은 녀석이야."
"알았다!" 3월 토끼가 외쳤다. "이 녀석은 티라노사우루스티렉스라고." - P38

"조직 단위로는 이건 엄연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것들이 통합된 험프티 덤프티는 죽었어. 이제 어디에도 없지."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 말했다.
"움찔움찔할 때마다 즙이 흘러나와서 징그러운데요."
"그거 안됐군. 허나 스프라고 생각하면 괜찮을걸." - P39

"잠깐만!" 3월 토끼는 모자 장수를 손으로 제지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봐줘."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나?"
"내게 특별한 날이야."
"네게?"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 날이라고."
"어? 그랬어?" 모자 장수가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우연하게도 나도 오늘이 생일이 아닌 날이야."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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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책만 읽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보니 마지막은 추리-소설도 아니네.

미스터리의 인기를 반영하듯 매년 수많은 신인 작가가 데뷔한다. 그 자체는 별문제가 아닌데 죄다 ‘기대의 대형 신인‘
이라고 떠드는 게 문제다. 일테면 재작년 『붉은 얼굴의 악마』
로 대일본스릴소설대상을 수상한 사루타 고분고로 말하자면, 민속학 지식은 신음을 내뱉을 정도로 놀라웠으나 허접한 줄거리와 얄팍한 인물 묘사에 두 번째 작품 이후로는 고전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 P245

전작은 산속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의 전개를 붉은 귀신 춤이라는 전통 예술과 엮어 그린 좋은 작품이었다. 거기서 별다른 변주 없이 이번 무대 역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촌락이다.  - P246

전작은 분명 아이를 낙태하면 붉은 귀신이 덮친다는 전설이 모티프였는데 이번에는 갓파다. 같은 방법을 몇 번이나 써야 속이 시원하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 P246

이런, 이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네. 『붉은 얼굴의 귀신』에서는 마을에 온 산부인과 의사가 살해됐는데 그것을 오락사업장의 사장으로 바꾼 데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번 작품에 창의성이라는 건 어디 있나. 양쪽 발이 파랗게 칠해진 이유도 붉은 얼굴의 귀신에서 사체의 얼굴을 붉게 칠한 이유를 살짝 손본 느낌이다. - P247

전문 분야인 탓인지 민속학 얘기만 나오면 글이 뜨거워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의 줄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얘기를 내내 읽어야 하는 독자 처지가 되어 보란 말이다. 한편 인간을 그리는 데는 전혀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차례로 인물이 등장하는데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 P247

그런 와중에 마지막으로 밝혀진 진범은 의외랄 것도 없다. 주인공외에는 이 인물만 제대로 그리고 있으니 당연하다. - P247

감상을 솔직히 적었을 뿐이라고 몬마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해 『파란 발의 갓파』를 고른 것도 아니다. 편집부에서 다음에는 이 책을 부탁한다고 해서 썼을 뿐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루타 고분고는『붉은 얼굴의 귀신』을 읽었을 때부터 관심을 놓았다. - P248

몬마는 미스터리 평론가다. 원래는 취미로 읽었을 뿐인데동료인 미스터리 마니아의 추천을 받아 몇 번인가 동인지 같은 곳에 서평을 쓰다 보니 그게 본업이 되어버렸다. - P248

 화제작, 신인상 수상작은 물론이고 베테랑 작가나 주목받는 작가의 책도 다 봐야한다. 매달 여러 출판사에서 몬마에게 신간을 보내는데 아무리 정리해도 높이 쌓인 책이 거대한 피라미드로 변하고 만다. - P249

몬마는 일정을 적어놓은 수첩을 펼쳤다. 오늘이 파란 발의 갓파 마감일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앗!"
일정표를 보고 그는 소리를 질렀다. 파란 발의 갓파 마감이라고 적힌 옆에 이런 메모가 있었다.
긴초샤의 오기 씨가 의뢰한 서평, 최대한 호의적으로…………. - P249

"이거 참!" 저도 모르게 한탄이 나왔다. 지금부터 원고를다시 쓰는 건 힘들다. 아니, 그보다 이 책을 어떻게 칭찬한다말인가. - P250

남자가 내민 명함에는 『쇼혹스판매 주식회사 영업소장 요미 요미타』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다.
"무슨 일이시죠?"
"네. 저희는 이번에 고성능 독서 기계를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일반 판매에 앞서 독서를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에게 모니터를 받아 얼마나 편리한지 시험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 P250

말도 안 되는 칭찬에 몬마는 조금 진저리를 치면서도 나쁜기분은 아니었다. 도대체 뭐냐고 묻고 말았다.
(중략)
"일테면 너무 바빠 많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몸이아파 읽을 수 없다거나,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시간도 있으나 좋아하는 책이 없어 읽고 싶지 않다거나." - P251

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책을 낭독해준다는 거군요. 하지만 그럴 바에는읽는 게 낫죠. 낭독을 듣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졸리기도 하고." - P252

"단순한 낭독 기계 같은 걸 권하려고 굳이 찾아뵌 건 아닙니다. 쇼혹스는 말입니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하고 감상을 적어 서평으로 출력할 수 있답니다."
"아니, 설마?" - P252

"자, 읽히고 싶은 책이라도 있나요?" 요미가 물어왔다.
"그렇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면, 하고 몬마는 『핸드 컬렉터』를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뭘 하게 할까요? 감상이라도 쓰게할까요?"
"아니, 일단 요약이 좋겠네. 줄거리를 알고 싶어." - P253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을 게 있겠냐는 듯 자신에 찬 표정으로, 요미가 물었다.
"아주 좋네." 몬마가 말했다. "하지만 요약뿐이잖나. 다음은 감상이나 서평을 쓸 수 있느냐는 문제지."
"쓸 수 있습니다. 조금 해볼까요?"
"그렇게 해주게." - P255

"아아, 자, 어떠십니까?" 몬마가 또 손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이제 쇼혹스의 성능은 거의 이해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러네." 몬마는 팔짱을 꼈다.
실은 그의 머릿속은 이미 이 기계를 들여놓기로 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다. 터무니없는 요금을 낼 수는 없었다. - P258

"아니, 그런가? 공짜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요미는 고개를 숙였다. "어떠세요? 시험해보시겠습니까?" - P258

"그럼 또 다음 달 후기를 들으러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요미는 돌아갔다.
몬마는 기계로 다가가 그 표면을 쓰다듬었다.
정말 편리한 걸 얻었네…………. - P259

몬마가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천천히 일어나 "네, 몬마입니다"라고 하품하면서 말했다.
"앗! 몬마 씨입니까? 소설 긴초샤의 에모토입니다."
"아, 안녕하신가? 좀 전에 원고를 보냈는데 벌써 읽었나?"
몬마는 발밑에 놓아둔 책을 들었다. 네코즈카 시노라는 여성 작가가 쓴 『또 다른 밤』이라는 호러 소설이다.  - P262

사실 이번에는 직접 읽고 서평을 쓰려고 했는데 도입부만 읽었는데도 잠들고 말아, 결국은 이것도 쇼혹스에게 맡겼다.
이 새로운 병기 덕분에 몬마의 작업량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자신이 읽지 않아도 줄거리를 알 수 있고 서평까지 완성해주니까 당연하다. - P263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문제가 좀………." 에모토는 말끝을 흐렸다.
"문제라니 뭐지?"
"아니, 그게, 몬마 씨는 이번 주 『주간 분후쿠』를 읽으셨습니까?"
"분후쿠? 아니, 아직 안 읽었는데, 그게 왜?" - P263

"그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화제작은 여러 잡지가 다루지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몬마는 가볍게 말했다.
"아뇨, 도모비키 씨가 『또 다른 밤』의 서평을 쓴 건 괜찮습니다.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아, 이건 어디까지나 착오인 듯한데 조금 전 몬마 씨가 보내주신 원고 내용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 P264

몬마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짚이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일단, 도모비키 씨의 서평을 팩스로 보내드릴까요?"
"응, 그래. 그렇게 해주게." - P265

도모비키, 이 자식・・・・・….
틀림없었다. 도모비키 덴스케도 역시 쇼혹스를 손에 넣은것이다. 그것을 사용해 일을 마구 처리한 게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최근 도모비키의 업무량이 늘어난듯했다. - P265

"그런데 확인 좀 하지. 『또 다른 밤』은 내 맘대로 써도 되겠나? 꼭 칭찬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건 상관없습니다. 몬마 씨는 그 작품을 그리 높이 보지않으시나요? 도미비키 씨는 상당히 칭찬했는데요." - P266

전화를 끊은 후 몬마는 바로 또 다른 밤을 쇼스에 넣고 평가 모드를 ‘쓴소리‘에 맞추고 서평을 출력했다. 그 일은 몇분 만에 끝났다. 그걸 바로 소설 긴 편집부에 팩스로 보냈다.
"원고, 잘 받았습니다." 팩스를 받은 에모토가 가벼운 말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책을 다뤄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군요. 도모비키 씨가 정교하다고 평가한 부분을 몬마 씨는 너무 비틀었다고 하고, 도모비키 씨가 농밀하게 느낀 부분이 몬마 씨에게는 장황한 게 되니까요.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 P266

"기계 상태는 나쁘지 않은데 아주 곤란한 일이 일어났네."
"아니 ・・・・・・ 무슨 일이?"
"당신, 이 기계를 나말고 다른 평론가에게도 줬지? 도미비키 덴스케나 다이안 료키치나."
"앗! 잘 아시네요." 헤헤헤, 요미는 머리를 긁적였다. - P267

"그 점에 관해서는 다른 분들에게도 의견을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 도모비키와 다이안뿐만 아니라?"
"아니, 평론가분들 외에 작가 몇 분에게도 드렸습니다."
"왜 작가가 이런 기계를?" - P267

"그리고 이건 대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요미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말했다. "문학상 심사위원을 하는 선생님에게도 큰 호평을 받고 있죠. 특히 대여섯 개의 심사위원을 맡은 선생님은 모든 작품을 읽느라 정말 고생이라고"라며 킥킥대고웃었다. - P268

"그 밖에도 작가끼리 대담해야 하는데 상대 작가의 작품을하나도 읽지 않았을 때도 유용하다고."
"이런, 이런! 그럼 업계에 상당히 퍼져 있다는 건데. 내가쓴다는 것도 들켰겠네. 잠깐! 그럼 출판사 녀석들이 쇼혹스를 도입하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이미 분후쿠출판과 탄탄샤 등이 주문하셨습니다." - P268

"그러니까 같은 기계를 출판사가 도입하면?"
"그러니까." 요미는 조금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기존형에는 그런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이 좋아하실 만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 P269

"이 유닛을 설치한 상태에서 이제까지 선생님이 쓰셨던 서평을 소스가 읽게 합니다. 그럼 컴퓨터가 선생님의 버릇이나 기호, 가치관 등을 기억합니다. 많이 읽히면 읽힐수록 그정밀도는 올라갑니다. 선생님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책을 읽히고 서평을 쓰게 하면 선생님의 개성이 담긴 원고가 완성되난 방식입니다." - P270

"이 성능을 이해하셨다면 결코 비싼건 아닌데." 그렇게 전제하고 요미가 가격을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몬마는 순간정신이 아득해졌다. 외제차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조금 어떻게 해줄 수 없나?"
"아이고, 좀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들은 다 그 가격에 계약하셨습니다." - P270

몬마는 들고 있는 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다음과 같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경원의 아이』 …………A
『딱딱한 이마』 …………A
『발바닥의 어둠』…………A
『사람 얼굴 부스럼』………B
『개죽음을 당해봐』…………C
『죽이면 죽일수록 죽일 때』 ・・・・・・ C
이 결과는 만약 몬마가 직접 작품을 읽었을 때 어떤 평가를 줬을지를 쇼혹스가 예상한 것이다.  - P272

보아하니, 도모비키와 다이안도 같은 서류를 들고 있었다. 요즘에는 쇼횩스 사용을 아무도 숨기지 않았다.  - P272

그 말을 듣고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논의를 접고 3자 대전 모드로 결과를 내도 괜찮겠죠?"
"어쩔 수 없지."
"맞아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 P273

그 컴퓨터에서는 전화선 세 개가 나와 있었다. 각각의 회선은 몬마를 비롯한 심사위원의 집에 있는 쇼혹스와 연결어 있었다. 인간끼리 논의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기기끼리 싸우게 하기로 이번 모임 전에 결정했다. - P273

그러자 요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도라야마 씨는 아직 그리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요."
"안 팔리죠." 노골적으로 불쾌한 목소리를 냈다. - P275

"아이고! 일단 제 말을 들어보세요. 그런데 도라야마 씨가쓰고 있던 원고를 잠깐 빌리겠습니다. 원고지여도 좋고, 파일이어도 좋습니다."
"뭘 하려는 겁니까?"
"그건 보고 즐기시길." 요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P275

그 종이를 보고 도라야마는 앗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주인공 등장을 두 페이지 정도 빨리 넣는다.
■ 32페이지의 격투 장면을 다섯 줄 늘린다.
■ 45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정계 설명은 삭제.
■ 58페이지, 부스지마 가즈오 더 불쾌하게 묘사.
■ 63페이지, 베일에 가려진 중국인을 하나 더 늘린다.‘ - P276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이건 현재 나온 쇼혹스의 기능을 거꾸로 이용한 장치, 이름하여 쇼혹스 킬러입니다."
"쇼혹스 킬러?"
"요컨대 말입니다, 쇼스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 상품을 개발한 우리는 어떻게 소설을 쓰면 높은 평가를 받는지다 압니다. 이 쇼혹스 킬러는 그걸 조언하는 기계죠." - P276

"물론 평론가에 따라 평가가 나뉘는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베스트셀러 탑텐을 보면 알 수 있듯 1, 2위를 다투는 작품은 어느 평론가나 A를 줍니다. 쇼혹스킬러는 그 수준을 목표로 하죠." - P276

도라야마의 의문을 듣고 요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흔들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쇼혹스 킬러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기위한 기계는 아닙니다. 쇼가 높은 평가를 주는 소설을쓸 수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쓴 소설을 읽어봤는데솔직히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 P277

이런, 이런! 또 한 대 팔았네……….
요미는 도라야마의 방을 나온 후속으로 중얼거렸다.
쇼스에 이어 쇼혹스킬러의 판매도 순조로웠다. 팔리지않는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 기꺼이 샀다. - P278

요미와 동료들은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느긋하게 책이나 읽고 있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다. - P278

기묘한 시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주제에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책이 그리팔리지 않는데도 베스트셀러 탑텐이 발표된다.
(중략)
독서란 도게체 뭘까, 요미는 생각한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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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다. 정말로.



2. 절대 공간은 외부의 물체와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공간으로, 언제 어디서나 균등하고(homogeneous)⁶¹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상대 공간이란 절대 공간 중에서 이동 가능한 일부분으로, 그 크기는 공간과 물체의 상호관계로부터 결정되며, 상식적인 관점에서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 P54

3. 물체가 점유한 공간은 절대 공간 또는 상대 공간의 일부로서 물체의 위치나 표면과는 다른 개념이다. 동일한 물체는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지만, 표면적은 모양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P54

4. 절대 운동(absolute motion)이란 물체의 위치가 하나의 절대적 장소에서 다른 절대적 장소로 이동하는 현상이고, 상대 운동은 상대적인 위치가 변하는 현상이다. 항해 중인 배의 선실에 놓인 임의의 물체는 배와 함께 움직이고 있으므로 배에 대한 상대적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 P55

시간의 순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공간의 순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에 놓인 사물의 위치는 임의로 바꿀 수는 있지만, 공간 자체를 빵 썰 듯이 잘라서 그중 한 부분을 다른곳으로 옮길 수는 없다. - P56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본질이어서, 순서를 바꾸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공간상의 위치는 절대적인 개념이며,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절대 운동뿐이다. - P57

"절대 운동 및 절대적 정지 상태"와 "상대 운동 및 상대적 정지 상태는 원인과 결과가 다르고 운동의 특성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정으로(즉 절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물체들은 상대방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정지된 상태를 유지한다. - P57

그러므로 물체의 절대운동을 서술하려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움직이는 물체를 기준으로 삼아 서술한 운동은 절대 운동이 아니라 상대운동이다. 절대적으로 정지된 영역에서는 모든 물체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물체들 사이의 거리도 변하지 않는다. - P59

 처음에는 양동이의 회전 속도가 물보다 빨라 파이는 정도가 그리 크지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양동이와 물이 똑같은 속도로 회전하면서 물의 중심부와 테두리의 수위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 P60

각 물체의 진정한 운동 상태를 파악하여 겉보기 운동겉으로 드러난 운동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눈에는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는 물체만 보일 뿐, 절대 운동의 기준인 공간 자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¹¹


11) 우리는 물체를 통해 공간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지한다. 모든 물체를 남김없이 걷어낸 "텅 빈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P62

앞으로 이 책에서는 "운동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차이로부터 운동을 알아내는 방법"과 "주어진 운동으로부터 운동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내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이것은 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이기도 하다.¹⁴




14) 뉴턴은 절대 운동을 알아낼 수 있다고 했지만, 위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은 가속 운동이 개입된 경우뿐이다(원운동은 가속 운동이다. 물체가 등속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그 물체의 진정한 속도, 즉 절대 속도를 알아낼 길이 없다. 어떤 기준을 정해도그 기준이 완전하게 절대적으로 정지 상태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 맹점을 파고든 끝에 상대적 운동만 관측 가능한 우주의 특성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특수 상대성 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이다. - P63

제1법칙

모든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 상태나 등속 직선 운동 상태¹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1) 일정한 속도오 직선 궤적을 따라가는 운동 상태. - P67

제2법칙


운동 상태가 변하는 정도는 물체에 가해진 힘에 비례하며, 변하는 방향은힘이 가해진 방향과 같다. - P67

제3법칙

모든 작용(action, 힘)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reaction)이 수반된다. 다시 말해서, 두 물체 사이에 교환되는 힘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 - P68

 즉 한쪽의 운동을 방해하면서 다른 쪽의 운동을 똑같은 정도로 촉진하는 것이다. 물체 4가 물체 에 힘을가하여 운동 상태를 바꿔놓으면 작용과 반작용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6의 운동 상태는 4가 겪은 변화만큼 반대 방향으로 변한다. 여기서 "운동의 변화는 속도의 변화가 아닌 "운동량의 변화"를 의미한다. - P69

부가법칙 1

방향이 각기 다른 2개의 힘이 한 물체에 동시에 가해졌을 때, 양변의 방향이 두 힘의 방향과 같은 평행사변형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이 평행사변형의두 변의 길이는 두 힘이 같은 시간 동안 개별적으로 가해졌을 때 물체가 이동하는 거리와 같다고 하자. 그러면 두 힘이 동시에 가해졌을 때 물체가 이동하는 방향은 전술한 평행사변형의 대각선 방향과 같으며, 같은 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는 대각선의 길이와 같다. - P69

부가법칙 2

그러므로 한 물체에 서로 비스듬한 방향(AB와 BD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힘은 하나의 힘 (AD 방향)으로 대치할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하나의 힘은방향이 다른 2개의 힘으로 분해할 수 있다. 이런 식의 합성과 분해는 다양한 역학적 실험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 P71

조금 비정상적인 수레바퀴를 상상해보자. 바퀴의 중심은 0이고 OM과 ON은 바귓살인데, 길이가 같지 않다(ON) OM보다 길다). 두 바살의 끝, 즉 M과 N에는 각각 A와 P라는 추가 달려 있다. MA와 NP는 두 추를 매달고 있는 줄을 나타낸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상태에서 바퀴를 돌리는 힘, 즉 회전력의 크기를 계산하는 것이다. - P71

0를 지나면서 MA, NP와 직각으로 만나는 직선 KOL을 그려보자.
ON OM보다 길다고 했으므로 OL은 OK보다 길다. 다음으로, OL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려서 MA와 만나는 점을 D라 하고, OD를 연결하는 직선 OD를 긋는다. 그리고 에서 OD와 평행한 선을그어서 OD의 수선(직각을 이루는 선과 만나는 점을 C라 하자. - P71

줄에 걸리는 무게는 줄의 길이와 무관하므로, 두 추가 걸린 지점을 M과 L대신 K와 L, 또는 D와 L로 대치해도 줄의 장력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추가 가하는 힘의 크기가 선분 AD와 같다고 가정하면, 이 힘은 AC 방향과 DC 방향의 두 성분으로 분해할 수 있다. AC 방향 성 - P72

반면에 DC 방향 성분은 OD 방향으로 난 바퀴살을 살과 수직한 방향으로 잡아당기는데, 이 힘은 OD와 길이가 같은 OL에 수직한 방향으로 힘이 작용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추 P와 A 의 무게 비율이 DC와 DA의 길이비율과 같으면(즉 P의 무게 : A의 무게=DC: DA이면) 바퀴의 양쪽에 똑같은 힘이 작용하여 어느 쪽으로도 돌지 않고 평형상태를 유지하게된다. - P72

부가법칙 3


주어진 물리계의 총운동량은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각 부분의 운동량의 합에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운동량의 합을 뺀 값이며,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총운동량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 P74

두 물체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작용-반작용을 교환하여 첫번째 물체의 운동량이 증가했다면, 두 번째 물체의 운동량이 감소하여 총운동량은 변하지않는다.⁴ - P74

예를 들어 구형 물체 A가 2라는 속도로 직선을 따라 움직이고, 질량이 A의 1/3인 구형 물체 B가 10이라는 속도로 A를 따라간다고 가정해보자. 운동량은 질량에 속도를 곱한 값이므로 A와 B의 운동량비율은 6:10 이다. 편의상 의 운동량을 6, B의 운동량을 10이라 하자. 그러면 이 물리계의 총운동량은 16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두 물체가 충돌(사실은 추돌)하면서 A가 3 또는 4 또는 5 의 운동량을 추가로 얻었다면, B는 이에 해당하는 운동량을 잃을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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