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보면 저 ‘부교수‘ 캐릭터는 어떻게 ‘부교수‘가 된 거지?

아리는 숨을 삼켰다.
살해당한다.
"이게 뭔지 아니?" 히로야마 부교수가 아리에게 물었다.
"총인가요?"
"총이라면 총이지. 이건 타정총이야."
"역시 총이군요." - P279

"가까이 오지 마요." 아리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무섭지?"
"예. 하지만 울고불고할 정도는 아니에요."
"정말? 그럼 이제 안전장치를 풀게." 히로야마 부교수는 타정총을 조작했다. - P280

"난 모두에게 메리 앤이 살인범이라고 알릴 거예요. 그러면 이상한 나라에서도 수사에 진전이 있겠죠."
"그런 짓 해봤자 아무 소용없어."
"왜 소용이 없죠?"
"난감쪽같이 달아날 수 있거든." - P281

"날 공갈하니 간 한번 크구나, 구리스가와 히로야마 부교수는 말했다.
아리는 히로야마 부교수가 이 무슨 생뚱맞은 말을 하나 싶었다.
공갈? 내가 히로야마 선생님을 공갈했다는 거야? 그런 턱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다니 뭘 어쩌자는거야? - P281

범인을 밝히는 데 성공했는데 내 입장이 전보다 더 위태로워지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앨리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숲 속 나무줄기에 기대앉아 있었다. 설마 히로야마 부교수, 즉 메리 앤이 그런 식으로 달아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P283

게다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지금도 증거가 아예없는 건 아니고 말이야.
"아가씨?" 후드를 푹 눌러쓴 인물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예? 왜요?"
"실례지만 앨리스 씨 아닌가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가 지긋한 여자 같았다. - P284

"사형 날짜가 잡혔나요?"
"당신이 사형을 면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값싼 위로는 집어치워요."
"값싼 위로가 아니에요. ・・・・・・ 그럼 이렇게 말하면 믿겠어요? 진......
범은 메리 앤이에요. 아니지. ‘이었어요‘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 P284

"어딘지 알려드릴 수는 없어요. 절 따라오세요." 후드를 쓴 여자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앗! 기다려요."
갑자기 발아래가 물결쳤다.
하늘이 일그러지고 땅이 솟구쳤다. - P285

여자가 달건너편으로 가버렸을 때는 거의 절망에 빠졌지만, 다음 순간 앨리스는 갑자기 어느 집 앞에 서 있었다.
"다 왔어요." 후드를 쓴 여자가 말했다.
"여기 어디에요?" 앨리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숲 속에 있는 독채 같았지만 이상한 나라에 그런 집은 아주 흔하다.
"모르시겠어요? 최근에 여기 오신 적이 있을 텐데요." - P286

"앨리스 씨, 메리 앤이 진범이라는 증거를 찾고 계시죠?"
"예. 그래요."
"전 그 증거를 제공할 수 있어요.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 P287

앨리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다.
찰칵.
목 언저리에서 소리가 났다.
뭐야?
등불이 켜졌다.
뭐야. 등불이 있으면 처음부터 켤 것이지. - P287

"개 목걸이, 잘 채워졌네." 후드를 쓴 여자는 손에 쇠사슬을 쥐고 있었다. 쇠사슬은 앨리스의 목에 채워진 고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후드를 쓴 여자가 쇠사슬을 세게 당겼다.
앨리스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P288

"기분 나쁘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이 집 기억 안나?"
"밝아지니까 알겠네요. 여기는 흰토끼의 집이에요."
"그래. 여기는 흰토끼의 집이니까 이제 아무도 안 살아." - P288

"이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건 휜토끼와 메리 앤뿐‥………. 당신, 메리 앤한테 열쇠를 얻었어요? 그런데 메리 앤은 어떻게 죽었죠?"
"네가 목격자잖아?" - P288

"넌 그녀가 진범임을 규명했어. 그리고 그 사실을 공개하려고했지. 그녀 입장에서는 협박이라고 할 수 있어."
"범인을 규명하는 게 무슨 협박이에요. 선생님에게서 뭘 빼앗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과연 그럴까? 네가 증거를 내놓으면 그녀는 사형당할지도 몰라." - P289

"하지만 그때 당신은 확실히 죽었어요."
"죽다니, 히로야마 도시코 말이니? 그래, 확실히 죽었지. 하지만 메리 앤은 죽지 않았어."
"당신, 히로야마 선생님의 아바타라가 아닌 거예요?" - P289

"지구에서 너희는 두 세계의 관계를 게임에 비유했다고 들었는데?"
"예. 이모리는 그렇게 말했죠."
"게임 캐릭터는 네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네 분신이지." - P290

"그건 게임과 좀 다른 점이지만 두 세계의 규칙상 죽고 말아."
"하지만 당신은 살아 있잖아요."
"그야 그렇지. 게임 캐릭터가 죽으면 너도 죽니?" - P290

앨리스는 갑자기 숨을 삼켰다. "즉, 이 세계의인간과 동물이 본체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아바타라라고요?"
"그래. 반대인 줄 알았니?"
"내가 가짜거나 사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건지구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 P290

"난 어쩐지 두 세계가 대등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대등하지 않아. 진짜는 이쪽 세계고, 지구는 그냥 꿈이야."
"꿈? 내가 꾸는 꿈?" - P291

"흰토끼는 해답에 거의 접근했어. 그는 이 집의 비밀 지하실에서 연구를 해왔지. 난 그 연구 성과를 몰래 훔쳤어. 앨리스, 너도 대답의 일부는 알고 있을 거야."
"난 아무것도 몰라요."
"트위들덤과 트위들다. 그 두 사람은 흰토끼의 조수였던 적이있어." - P291

"글쎄, 모르겠어. 하지만 붉은 왕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야. 숲속에서 자고 있는 건 그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 메리 앤은 바닥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찼다. - P292

앨리스가 바닥 아래를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책들과 메모지가 흩어져 있었고, 한복판에는 기묘한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헐벗은 산에 빨간 술이 달린 뾰족한 수면 모자를 씌워놓은 것처럼 보였다. - P292

"저건 붉은 왕이야."
"붉은 왕은 숲 속에서 자고 있을 텐데요.‘
"그는 이 세계에 널리 퍼져 있어. 숲 속에서 자고 있는 모습은불거진 마디 하나에 지나지 않지. 숲 속에 있는 붉은 왕과 여기 있는 붉은 왕은 서로 이어져 있고, 그 가치는 동일해." - P292

"다시 한번 잠들 때까지 지구는 소멸되지 않을까?"
"잠들면 지구는 부활하나요?"
"응. 하지만 흰토끼의 연구에 따르면 완전히 똑같은 지구로 돌아오지는 않는가 봐 조금씩 다르지. 예를 들면 이상한 나라에서 생긴 일을 동화로 쓴 지구도 생길지 몰라. 어쩌면 앨리스 네가 주인공으로 나올지도 모르지. 그럼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쯤 되려나?" - P293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만약 나랑 당신 체취가 비슷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제일 먼저 의심받았겠죠."
"운도 실력 중 하나야. 그런데 너희가 날 자꾸 궁지로 몰아넣었지. 그래서 죽이는 수밖에 없었어." - P294

"뭘 꾸물거리고 있어? 시간을 벌려고 해봤자 허사야." 메리 앤은 앨리스의 목에 칼을 댔다.
"지금 여기서 날 죽이면 변명할 수 없을 텐데요."
"변명 같은 거 안해. 네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만인걸." - P294

두 사람은 2층 방으로 들어갔다.
메리 앤은 앨리스를 침대에 앉혔다.
"이제 평생 걸어 다닐 일은 없을테지." 메리 앤은 앨리스에게 족쇄를 채웠다. - P295

"먹인다고요? 음식을 갖다 주겠다는 건가요?"
"과자 같은 거라도 괜찮다면, 봐, 마침 여기에 쿠키가 있네." 메리 앤은 접시에 담긴 쿠키를 권하고 자신도 아득아득 씹어 먹었다. - P295

"잠자코 있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거라고? 순진하기는."
어림짐작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야. 휘둘리면 안 돼.
오른쪽 다리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 P297

"어머, 눈치챘니? 그래. 이 쿠키에는 그 버섯 성분이 들어 있어.
네가 옛날에 먹고 커졌다 작아졌다 한 버섯 말이야."
"왜 그런 짓을 했죠? 커져서 날 으깨기라도 하려고요?"
"그러면 좋겠지만 네가 타살당한 시체로 발견되면 곤란해. 너자신이 살인귀인데 네가 살해당하면 다른 살인자가 있다는 게 들통나잖니" - P297

"그래서 어쩌려고요? 앞으로 계속 불안에 떨며 사느니 차라리 자수해서 편해지는 게 어때요?"
"웃기고 있네. 난 훨씬 영리한 방법을 찾아냈어."
"그게 뭔데요?"
"사고로 죽으면 돼." - P298

"넌 목걸이와 팔찌 발찌를 한 채 버섯이 든 쿠키를 먹고 말았어. 그리고 운 나쁘게도 그대로 잠들었지."
"목걸이를 한 채 쿠키를 먹고 잠드는 게 뭐 어때서요?"
"몸이 커질 거야."
"그건 알아요. 당신도 커졌으니까." - P298

앨리스는 절규했다. "다리가 다리가………."
"왜 그러니?" 메리 앤은 생글생글 웃었다.
앨리스는 자기 다리를 보았다. 족쇄가 발목을 파고들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근육도 반쯤 잘려나갔다. - P299

"체질에 따라 먼저 커지는 부위가 다른데, 넌 다리부터 커지는모양이구나."
그래. 다리가 먼저 커졌어. 그래서 일단 다리가 아픈 거야. 그럼 다음은 어딜까? - P299

과연, 일단 발목이 잘려나가고, 다음으로 손목이 잘려나가고,
마지막에는 목이 잘리는 거야.
그다음에 메리 앤이 개 목걸이와 수갑, 족쇄를 목걸이와 팔찌, 발찌로 바꿔치기하는 거지. - P299

"더 이상 무의미하게 죄를 짓지 말아요. 정직하게 자수하라고요."
"그거야말로 무의미한 짓이지. 난 벌써 네 명이나 죽였어. 자수해도 사형당할 게 뻔하다고. 사형을 면하려면 방해꾼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야 해." - P300

논리적으로는 모순이 없는 것 같네. 메리 앤, 히로야마 선생님보다도 훨씬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아. 하지만 나도 그냥 맥없이 죽기는 싫다고.
앨리스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후 몸으로 메리 앤을 들이받았다. - P301

증거를 메리 앤의 악행을 증명할 증거를 남겨야 해.
증거는 있어. 여기 있어.
앨리스는 호주머니를 눌렀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이 증거도 위험해. - P302

"작아지면 격자 구멍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메리 앤이말했다. "하지만 작아지는 버섯을 찾을 시간은 없을 거야."
앨리스의 허리께가 부풀어 올라 치마가 찌지직 찢어졌다. - P302

"그거 뭐야? 보여줘!" 메리 앤 앨리스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하지만 앨리스의 팔은 너무 굵어진 뒤였다. 격자에 꽉 끼어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그거, 나한테 불리한 물건이야?" 메리 앤이 물었다. - P303

"네 팔은 지금의 열배로 굵어질 거야. 격자에 끼었으니 싹둑 잘리겠네. 아프겠다."
"어차피 수갑 때문에 잘릴 거잖아요."
앨리스의 손목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 P303

"확정 ・・・・・・ 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팽창된 목이 개 목걸이에 압박당해 잘록해졌다.
"센척하기는."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거짓말."
"아니요. 거짓말. ・・・・・ 아니에요・・・・・・ 비밀을 ・・・・・ 알고 싶어요?"
. - P304

메리 앤은 피바다를 건너 앨리스의 머리로 다가갔다. "뭐라고말 좀 해봐.
대답은 없었다.
"아아. 그렇구나, 폐가 없어서 말을 못 하는구나." - P305

떨어진 게 아니라 누가 거기에 놓아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메리 앤은 힘을 주어 손을 쫙 펼쳤다.
손에는 아무것도 쥐여져 있지 않았다. - P306

히로야마 부교수는 죽었다. 그 사실이야말로 의미가 있었다.
그 여자는 미쳤다. 그리고 주변에까지 광기를 발산했다.
다바타 조교수는 어제까지 자신이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내왔는지 돌이켜보았다. - P307

"왜 그래프 같은 걸 실었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잖아. 선은 봐도 하나도 모르겠어. 표로 만들란 말이야. 이해하기 쉬운 표로." - P308

"뭐야, 이거? 이런 숫자를 보고 뭐가 뭔지 어떻게 알아? 숫자가 뭘 뜻하는지 말해봐. 그러니까 뭐 어쩌라고? 이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으면 동그라미. 나쁘면 곱표. 표는 동그라미랑 곱표로 표시해. 아아. 보통이면 세모로." - P308

"이리 좀 와봐 시노자키 선생님이 이 표는 쓰레기래. 완전히 엉터리라잖아. 그리고 데이터는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어. 이론을 써 와!" - P309

그러니까 처음 논문에 이론을 똑똑히 써놨잖아. 모르겠으니까 삭제하라고 한 게 누군데 그래!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테니까교수님한테 들고 가.
"이론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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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했어요?
민서진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보호자가 알기 전에로운이를 빨리 요양원에 돌려놓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할 터였다. 선준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죄송해요. 조금 일이 있어서・・・・・・ . 곧 출발할 겁니다." - P78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애를 데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대답도 잘 안 하고 그래서……."
-놀랐잖아요. 또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해서요.
"또라뇨?" - P79

-원래는 안 되지만, 말해줄게요. 선준 씨가 여기까지 로운이를 데려오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사실 로운이는 자해가 심해서 입원한 아이예요.
"자해요?" - P79

쓰레기로 어지러운 거실에서 넘어지면서 테이블에 부딪혀 열여섯 바늘이나 꿰맸다. 그때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의 모습이로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때부터 자해 증상이 생겼고, 점점 그 정도가 심해졌다. - P80

민서진은 로운이 기도원에 들어갔었던 일에 관해서는 모르는것 같았다.
-결국 엄마의 무관심이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거나 다름없죠. - P80

이제는 생경해진 얼굴이었다. 선준은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성마른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대단히 참을성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옆에 그 애 있어?"
-어 있어. 걱정 마. 어떻게 됐냐니까? - P81

- 말해. 어떻게 됐어?
그는 가감 없이 여자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돈을 요구한 것. 그리고 로운의 자해 증상과 지금 자신이 혼란스러운것까지.
들려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예원도 뭔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선준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예원이 침묵을 깼다.
-돈 준비하자. - P81

"이미 집 대출은 한도까지 받았잖아. 잊었어?"
선우를 찾느라 선준은 회사를 휴직했었다. 모아놓은 돈은 바닥났고 대출까지 받았다. 전단지를 제작했고, 선우의 얼굴 변화를 분석한 몽타주를 제작하기 위해 사설 업체에 의뢰했다. 연락이 오는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선우를 찾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먹고, 살아야만 했다. 여기저기서 끌어온 돈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회사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선우를 찾기 위해, 선우를 찾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 P82

하지만.…………. 이번엔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그 기저에 경찰이 발견했다는 시신의 존재가 깔려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 확인해도 안 늦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쓰레기일까.
"차라리 경찰에 얘기해서 확인해볼까?" - P82

 경찰들은 선우를 찾아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두 사람을 앉혀놓고 질문에 질문을 이어갔다. 선우가 실종된 것이 두 사람으로부터 기인했다는 증거를 찾고 싶은 사람들 같았다.  - P83

양 형사가 의자를 끌어내 털퍼덕 앉았다. 선준에게는 의자를 내어주지 않았다. 선준은 양 형사 앞에 선 채로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내놓았다.
"이 계좌번호를 추적하면 소유자의 주소 같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요?" - P85

"이런 사이비들 뻔하지, 뭘 그런 거에 속아요? 애들 앞세워 이선준 씨 같은 사람들 관심 끌고, 그다음에 돈 받아내고, 점점 더크게 뜯어내 재산 탕진시키고 끝! 장사 하루 이틀 해요?"
"장사요?"
선준의 눈썹 끝이 스윽 올라갔다. - P85

"부탁할게 있어서."
정세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는 것을 선준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정세는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뭔데? 뭐든지 말해. 돈 부탁만 아니면."
그는 웃었다. 선준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 P88

[죄송합니다. 선우 관련된 제보가 있어서 확인하느라 늦었습니다. 로운이는 잘 데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출발할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두 걸음도 채 걷지 못했을 때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예상했던대로 민서진의 답장이었다.
[오늘 안에 데려오지 않으면 유괴로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 P89

"돈 나올 구멍이 어디 있어?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잊었어? 이젠 돈 빌릴 데도 없어."
전화기 너머의 예원은 조용했다. 그러면 지금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느냐고 소리칠 줄 알았으나 그녀는 침묵을 선택한 듯했다. - P90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무의식적으로 선준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베란다가 주차장으로 나 있는 데다 3층이라 금방 눈에 들어왔다. 다 죽어버린 회분이 베란다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 P91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와는 뭔가 달랐다. 뭐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선준은 곧 베란다 창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심장 근처가 서걱거렸다. 불안감을 증폭시키려는 것처럼 예원이 베란다로 나왔다. - P91

그때였다. 이불이 크게 펄럭이며 호를 그었다. 예원의 몸이 이불을 따라 허공에 빨려 들었다.
달려가는 선준의 눈앞에서 예원이 추락했다. - P92

-돈 나올 구멍이 어디 있어?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잊었어? 이젠 돈 빌릴 데도 없어.
선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 이자는 벌써 세달째 연체 중이었다. 선준이 일을 하지 못한 기간 동안 주변에 빌린 돈만 해도 셀 수가 없었다. - P93

날이 선 선준의 말투도 이해가 되었다. 일하러 다니기 시작한 선준을 비난해왔다. 사실은 그저 화풀이일 뿐이었다. - P93

‘관심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아이‘
"로운아."
물방울을 만지던 로운이 큰 눈을 치켜떴다.
"내가 가자고 했을 때, 왜 나 따라왔어?" - P94

휘둥그레졌던 로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작은 눈 끝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아이답지 않은 미소였다.
"따뜻해서." - P94

‘관심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아이.‘
예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거짓말이어서는 안 된다. 예원은 다시 로운에게 물었다.
"정말로 우리 선우, 네가 본거지?" - P95

선준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이비 종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막막한 기분보다는 오히려 눈앞이 훤히 뜨이는 것 같았다. 들어가는 데만도 돈을 요구하는 사이비 종교라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 P96

필요한 건 돈이었다.
"잠깐만 여기에 있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로운을 앉혀두고 예원은 방으로 들어갔다. 화장대 아래 서랍을 열어 두 개의 파일을 꺼냈다. 보험 서류였다. 이미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최대한 받아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 P96

보험료 보장내용은 유효했다. - P96

선준은 예원이 선우의 옷을 사다 두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 말라는 싸움 끝에 선준은 죽은 아이를 기리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 P97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선우의 흔적이 아니라 선우였다.
"이거 가지고 안방에 들어가서 놀고 있어."
로운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아이가 가지고 놀던 물방울은 흔적도 없이 말라 있었다. 예원은 다시 색종이 묶음을 내밀었다.
"우리 선우는 개구리 잘 접었는데. 개구리 접을 줄 알아?"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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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 Helen Fischer 박사는 사랑에는 3단계의 과정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중략)
사랑의 1단계는 욕정입니다.
(중략)
 2단계는 특정 대상을 발견하였을 때의 끌림입니다.
 (중략)
마지막 3단계는 관계가 형성되는 애착입니다.
 (후략) - P181

동물학자 니코틴버겐Niko Tinbergen,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 카를폰 프리슈Karl von Frisch는 동물에게서 다양한 고정행동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이 태어나 처음 본 동물을 엄마라고 믿고 따르는 오리의 모습입니다. 남성에게서도 대표적인 고정행동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성이 지나가면 그쪽으로 고개가 무조건 돌아가는 행동입니다. - P181

영국의 크레이그 로버트Craig Robert 박사는 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 더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하라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대부분 두 사진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반면 남성들은 두사진에서 차이를 느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왼쪽 사진의 여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남성들이 왼쪽 사진을 선호하는이유는 가임기 때 촬영한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 P182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여성은 외모보다는 남성의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여성의 뇌는 상대적으로 계산에 빠릅니다. - P183

동물의 세계에도 이러한 법칙이 작용합니다. 특히 상대를 고르는 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뿔논병아리의 암컷은 수컷을 선택할 때 3단계의 테스트를 거칩니다. 첫번째 단계는 지구력 테스트입니다. (중략)
두번째는 순발력입니다. 물 위를 뛰다가 어느 순간 암컷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이때 각도를 튼 암컷을 잽싸게 따라가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수컷 또한 짝짓기 후보에서 탈락합니다. - P184

마지막 3단계 테스트가 남았습니다. 사냥 실력입니다. 물위를 뛰어다니다가 멈춰 서서 물속으로 들어가 빠른 시간 안에 물고기를 잡아와야합니다. 너무 늦게 나오면 암컷은 이미 떠나고 없습니다. - P185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번식에 꼭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요?
사랑과 같은 감정이 없어도 번식이 가능하다는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 P185

교미 과정이 독특하기로 유명한 사마귀의 번식에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만들어내는 뇌가 방해가 되는 경우입니다. - P186

그러한 수컷이 기회를 포착해 교미를 시도하는 순간 암컷은 의심 가득한 수컷의 뇌를 먹어버립니다. 사마귀는 머리가 없어도 한동안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본격적인 교미가 진행됩니다. - P187

 그래서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교미를 하고 나면 헤어집니다. 결혼제도 같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P187

사랑이 욕정과 끌림의 단계를 넘어 정으로 사는 애착 단계로 넘어가먼 이미 뇌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 P188

최근 들쥐를 통한 실험을 통해 이에 관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들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가정을 꾸리지 않고 바람을 피우는 외도형 들쥐 미도우 볼과 가정적인 들쥐 프레리볼입니다. - P188

 가정적인 들쥐 프레리 볼은 바소프레신 신호를 받는 유전자가 굉장히 많이 발현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과학자들은 바소프레신 수용체를 바람을 잘 피우는 미도우 볼의 뇌에 주입해 유전자를 발현시켜 보았습니다. 그러자 미도우 볼이 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 P188

동물의 뇌에도 좋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부위가 있고 그로 인해 사람과 쥐 간에 좋은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좋은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뇌의 중요한 기능이며, 이를 활용하면 우울증과 같은 뇌 질환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았습니다. - P189

최근 <네이처>지에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사랑회로는 분노 회로와 매우 가까이 이웃하고 있어서 서로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 P189

 예를 들어 교육현장에서 증가하는 학교폭력은 폭력 행위 자체를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경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학생들이 우정을 쌓고 서로 좋은 감정을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줌으로써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있습니다. - P189

 우리는 종종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신경세포가 바로거울신경입니다. - P190

위험에 빠진 친구의 모습을 보고 교감하면서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 뱀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사육사는 감동을 받았고 두 마리 생쥐를 모두 구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생쥐를 이용해 실험해 본 결과 자신이 잘 아는 생쥐일수록 도움을 주는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P191

결국 번식이나 열정적인 사랑을 위해서만 좋은 감정이 필요한 것이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협력하며 어려움들을 이해하기 위해 좋은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번식을 넘어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더욱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능을 합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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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 지 아직 갈피를 못 잡았다.

무슨 소리가 났다. 인간이 활동하는 것처럼 부스럭부스럭하는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육식동물이 배가 고파서 신경이 곤두섰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여기는 공작 부인의 집 뒤뜰에있는 광이니까. 설령 공작 부인이 육식동물을 키운다고 해도 광같은 곳에서 키우지는 않겠지. - P221

이상한 나라에 사는 짐승은 두 종류다. 하나는 지구의 짐승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야생동물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빌이나 3월 토끼, 그리고 체셔 고양이처럼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의인화된 동물이다. - P221

아니지. 공작부인이 들어오라고 했으니까 이미 허락은 받은 셈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들어가야겠지.
아아, 골치야. 머릿속이 좀 복잡해졌어. 이럴 때 이모리였다면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될 텐데.
그러고 보니 범인에 대해 생각난게 있었던가. 도대체 뭐였더라? - P222

훈노*하는 밴더스내치!
빌은 낙관적인 도마뱀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쾌활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였다.
하지만 이 순간, 빌은 절망했다.

* 원문에서는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낸 단어 ‘frumious‘를 연기가 피어오를 만큼화를 낸다는 뜻인 ‘이부리쿠루에루(燥)狂之石)‘로 표현했다. 여기서는 미칠 광)자를 빼고 성낼 노(怒) 자를 넣어 ‘분노(怒)‘와 비슷한 발음이 되도록 옮겼다. - P225

하지만 어차피 걸을 수 없으니 기뻐하고 있을 때는 아니군. 그런데 꼬리는 또 자라겠지만 다리는 어떨까? 꼬리도 뼈는 재생되지않는 거였나? 그렇다면 다리는 이제 글렀군. 정말 불편하겠는데.
깜짝 놀랄 만한 포효가 들려왔다.
내 꼬리랑 다리를 다먹어치웠나? 배가 불렀으면 좋으련만 분명 아직 모자라겠지. 도망치는 게 좋겠어. - P227

그리고 확실히 기억났다.
그래, 공작 부인이 범인이라니 말도 안 돼. 난 완전히 착각하고있었어. 앨리스랑 미치광이 모자 장수랑 3월 토끼에게 알려야 해. - P229

밴더스내치는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빌은 자신의 입과 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29

"꺼림칙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관련된 일이에요."
"뭔데?"
"진범에 대한 정보가 나왔어요."
"뭐?" 젓가락에서 튀김이 툭 떨어졌다.
"실마리를 잡았는지도 모르겠어요." - P231

"다잉 메시지요."
"누구의 다잉 메시지?"
"이모리의 다잉 메시지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빌의 다잉메시지지만."
"빌이 남긴 다잉 메시지가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 P231

"예. 아마도 밴더스내치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빌을 덮쳤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숨통을 끊지 않은 것 같아요." - P232

"도마뱀은 목숨이 참 질기구나."
"예. 아마도 밴더스내치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빌을 덮쳤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숨통을 끊지 않은 것 같아요."
"먹지 않을 거면 왜 죽였지?"
"인간이 사냥을 하는 것과 똑같죠. 놀이예요." - P323

"즉, 그 두 사람은 틀림없이 범인이 아니에요."
"그건 빌이 굳이 지적해줄 필요도 없는 사실이잖아?"
"그렇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다잉메시지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 P232

"당연하기 때문에 범인이 그냥 넘어간 거죠. 범인의 이름을 직접 쓰기라도 했다면 지원을 거예요."
"확실히 당연한 사실을 적으면 범인은 그냥 넘어가겠지.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지 않나?",
"당연하지만 의미가 있어요. 이 다잉 메시지는 진범을 찾는 사람이 뭔가에 주목하기를 바라고 남긴 거예요." - P233

"모르겠지만 추정은 할 수 있죠. 이 말인즉슨 유일하게 신뢰할수 있는 사람은 공작부인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왕도 무고하잖아?"
"여왕을 신용할 수 있겠어요?" - P233

"선생님 지시를 받으라는 뜻 같은데요."
"내 지시를 받으라니, 난 좋은 방법이 하나도 안 떠오르는걸."
"정말로요? 뭔가 생각나는 것 없으세요? 뭐든지 상관없어요."
"정말로 마음에 짚이는 게 전혀 없어. 분명빌의 착각이야. 아니면 이모리가 날 과대평가했는지." - P234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누구 이야기를?"
"제 이야기요. 그리고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거라면 편해서 좋겠다. 어서 이야기해봐."
"당초부터 제일 큰 의문은 ‘왜 흰토끼는 앨리스가 살인 현장에갔다고 말했는가?‘였어요." - P235

"흰토끼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니?"
"아니요. 흰토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뭐야 그게? 모순되는 말이잖아."
"모순은 없어요. 흰토끼는 앨리스를 목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목격했다고 단단히 믿은 거예요." - P236

"그럼요. 흰토끼는 눈이 상당히 나빴어요. 빌이 눈앞에 있는데도 누구인지 못 알아봤을 정도라고요."
"그렇게 눈이 나쁜데 사건 현장에 앨리스가 있었다고 단언한 거구나." - P236

"동물들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남을 인식할 수 있대요. 예를 들면 냄새나 적외선, 초음파, 전자파 같은 것을 감지해서 흰토끼는 냄새로 남을 식별했어요. 그러니까 체셔 고양이처럼 모습을감출 수 있다고 해도 흰토끼는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래. 즉, 흰토끼는 시각으로 앨리스를 확인한 건 아니었다는뜻이지." - P236

"다니마루와 니시나카지마 두 형사님한테 상의하는 건 어떨까요?"
"으음. ・・・・・・ 글쎄? 그 사람들한테 상의하는 건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해. 그 사람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공작 부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그렇다면 누굴까? 공작부인의 일꾼인가?" - P237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말이 있어요. ‘범인이 우연히 안 사실을나불나불 지껄인 인물이 있어."
"뭐야 그게?"
"이모리가 남긴 말이에요. 정확하게는 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은 말이지만요." - P238

"나도 급해 자, 추리를 완성하자. 일단 진범의 이름을 알려줘."
아리는 히로야마 부교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건 바로 당신이에요, 메리 앤."
"멋진 추리로구나.‘ - P240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내가 범인인 줄 알았니?"
"일단 범인이 메리 앤임을 알아낸 이유부터 이야기할까요?"
"그건 대충 짐작이 가. 하지만 확인하고 싶으니 들려줘."
"흰토끼는 늘 나를 메리 앤으로 착각했어요. 겉으로 보기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말이죠. 하지만 무리도 아니에요. 흰토끼는눈이 나빴으니까요. 그래서 냄새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 P240

"휜토끼는 험프티 덤프티가 살해당했을 때 정원을 드나든 건 앨리스뿐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흰토끼가 앨리스와 메리 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용의자는 앨리스와 메리 앤 두 사람인 셈이죠.
그리고 난 앨리스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므로소거법에 따라서 범인은 메리 앤이에요."
"아까워라."
"지금 추리에 뭔가 틀린 점이라도 있었나요?"
"안 틀렸어. 정답이야." - P241

"그런 실수를 한 기억은 없는데."
"무리도 아니죠. 실수한 건 오히려 흰토끼였으니까요."
"흰토끼가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거니?"
"앨리스를 메리 앤으로 착각했어요."
"그거야 늘 그랬잖아?"
"예.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했죠." - P242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좋은 사람이야. 요전에도 빌을위해서 깜짝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어."
"그게 뭐 어때서?"
"그 말을 듣기 얼마 전에 리오 씨가 내게 ‘깜짝 파티에 관해서 이모리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 당일까지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라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뭐? 휜토끼는 내게도 깜짝 파티 이야기를 했어." - P242

"아아. 알았다. 흰토끼, 다나카 리오는 널 메리 앤이라고 생각한거구나." - P242

"이모리는 알아차렸을까?"
"분명 최종적으로는 알아차렸겠죠. 그리고 빌도 죽기 직전에 알아차렸을 거고요."
"공작 부인이 범인일 리 없다.‘ 일부러 다잉 메시지를 그렇게 쓴 거구나." - P243

"하지만 ‘공작 부인이 범인일 리 없다‘라면 당신이 지우지 않으리라고 예상했겠죠."
"넌 내가 공작 부인이라고 믿었잖니. 그래서 오히려 유리할 것같았어." - P243

"그래요. 그렇게 당신을 의심하자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들어갔어요. 흰토끼는 앨리스와 메리 앤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은 메리 앤밖에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살인 현장에서 목격된 사람은 메리 앤이고, 그건 바로 당신이다." - P244

"난 아무도 안 죽였어. 모두 사고나 병으로 죽었지. 아아. 한 명은 살해당했구나. 하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야."
"험프티 덤프티는? 그리핀은? 휜토끼는? 빌은?"
"아아. 그 사람들이라고 할까, 짐승들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메리 앤이지. 꿈속에 사는 메리 앤이 마찬가지로 꿈속 등장인물인 짐승들을 죽인 거라고. 그런 꿈을 꾼 것도 죄니?" - P244

"그래, 매일 잠이 깨면 바로 꿈의 내용을 정리해뒀거든. 놀랍게도 난 계속 같은 세계의 꿈을 꾸고 있었어. 꿈속에서 나는 흰토끼에게 고용된 가정부 메리 앤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메리 앤도 현실 세계를 기억해내기 시작했어."
"당신은 자신과 메리 앤이 동일 인물이라고 인정하는 거로군요." - P245

"그건 나중에 이야기할게. .......그러다가 난 두 세계의 규칙을 알았지."
"규칙?"
"죽음의 규칙 말이야. 이상한 나라는 느긋하고 바보스러운 세계로 보이지만 위험이 숨어 있지."
"여왕이 목을 친다든가?"
히로야마 부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여왕이 목을 치라고 명령해서 목이 날아간 사람은 하나도 없어. 위험한 건 맹수야." - P246

"응. 저쪽에서 아는 사람이 죽자 거의 동시에 이쪽에서도 아는 사람이 죽었어. 뭐, 사고나 질병 등 그때마다 사인은 다양만."
"우연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 P247

"당신 주변에 기름을 뿌리고 있어."
"이봐, 질 나쁜 농담은 그만두지 않겠어?"
"농담? 나 농담 싫어해."
"그런 짓을 하면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을까?"
"그래. 떨어뜨리려고 기름을 뿌리는 거야."
"그만둬." 험프티 덤프티는 메리 앤의 팔을 붙잡았다. - P252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지구에서는 아주 가까운 사이야."
"지구? 어떻게 내가 꾼 꿈을 알고 있는 거지?"
"나도 똑같은 꿈을 꾸니까. 사실은 꿈이 아니지만." 메리 앤은험프티 덤프티 등을 밀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누가 내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거야?" - P252

"뭘 사과한다는 거니?"
험프티 덤프티는 온몸이 거의 다 벽에서 밀려난 상태로 안간힘을 쓰며 벽 가장자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거야. 네 출세를 방해한걸 사과할게."
"그럼 내가 누군지 알아차린 거로군." 메리 앤은 입가를 일그러뜨려 웃었다. - P253

"아니. 네 이름은 알아. 시노자키 연구실의 부교수잖아."
"뭐야. 기억하네."
"하지만 난 시노자키 선생님이 아니야."
"응? 진짜?" 메리 앤은 힘프티 덤프티의 등에서 손을 뗐다.
"진짜야. 난 지구에서 나카노시마 연구실에 소속된 박사 연구원 오지 다마오라고." - P254

"반대로 하는 거야. 시노자키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냐고 물어보면 되잖아. 그럼 시노자키 선생님 혼자한테만 말하면 되니까."
"아하, 그것참 좋은 방법이네."
"자, 오해인 걸 알았으니 냉큼 내 곁에서 물러나주지 않겠어?
바로 옆에 서 있으니 아무래도 불안해서 말이야." - P255

"굴을 양손에 넘칠 만큼 가득 담아서 산 채로 단숨에 삼키면 그야말로 맛이 끝내줘." 메리 앤은 그리핀에게 말했다. - P257

"턱이 빠지면 큰일이잖아."
"큰일은, 혹시 빠지더라도 내가 끼워줄게."
"그래? 그럼 안심이군." 그리핀은 부리를 더 크게 벌렸다.
그리핀의 턱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앗・・・・・・." 그리핀이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 P261

그리핀은 메리 앤의 손을 떨쳐내려고 했다.
메리 앤의 눈초리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왼손으로 그리핀의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굴을 쑤셔 넣으려고 했다.
그리핀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달아나려고 했다. - P262

메리 앤은 소리 높여 웃었다. "왜 그래? 놀랐어? 그래. 당신은 죽는 거야."
그리핀은 힘없이 양손을 휘저었다.
"내가 뭔가 오해했다는 거야? 땡, 나는 오해하지 않았답니다. 시노자키 선생님." - P262

"자업자득이야. 모처럼 연구실이 증설됐는데 날 새 교수로 추천하지 않았잖아. 젊은 조교수한테 느닷없이 연구실을 맡기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P263

그리핀은 드디어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는지 손을 뻗어 메리 앤의 목을 잡았다.
"어쩌려고? 누가 먼저 죽이는지 해보자는 거야? 좋아. 당신이압도적으로 불리하기는 하지만 이제 당신의 뇌에는 산소가 모자랄 거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지, 지금부터 내 목을 졸라도 그렇게 쉽게는 죽일 수 없을걸."
그리핀의 날카로운 손톱이 목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 P264

하지만 메리 앤은 손에 계속 힘을 주었다.
그리핀이 죽거나 기절하면 반드시 목에서 손을 뗄 거야. 하지만 내가 방심해서 그리핀이 숨을 쉬면 내 목을 단숨에 부러뜨려버리겠지. - P264

아무래도 진짜 죽은 듯했다.
"살인자! 살인자!" 굴들이 소란을 피웠다.
메리 앤은 품에서 돗바늘을 꺼내 굴을 한 마리씩 꿰었다.
"고마워. 너희들한테 아주 큰 신세를 졌어. 헛되이 목숨을 잃은게 아니라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 그러니까 기쁘게 죽으렴."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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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읽고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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