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 지 아직 갈피를 못 잡았다.

무슨 소리가 났다. 인간이 활동하는 것처럼 부스럭부스럭하는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육식동물이 배가 고파서 신경이 곤두섰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여기는 공작 부인의 집 뒤뜰에있는 광이니까. 설령 공작 부인이 육식동물을 키운다고 해도 광같은 곳에서 키우지는 않겠지. - P221

이상한 나라에 사는 짐승은 두 종류다. 하나는 지구의 짐승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야생동물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빌이나 3월 토끼, 그리고 체셔 고양이처럼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의인화된 동물이다. - P221

아니지. 공작부인이 들어오라고 했으니까 이미 허락은 받은 셈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들어가야겠지.
아아, 골치야. 머릿속이 좀 복잡해졌어. 이럴 때 이모리였다면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될 텐데.
그러고 보니 범인에 대해 생각난게 있었던가. 도대체 뭐였더라? - P222

훈노*하는 밴더스내치!
빌은 낙관적인 도마뱀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쾌활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였다.
하지만 이 순간, 빌은 절망했다.

* 원문에서는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낸 단어 ‘frumious‘를 연기가 피어오를 만큼화를 낸다는 뜻인 ‘이부리쿠루에루(燥)狂之石)‘로 표현했다. 여기서는 미칠 광)자를 빼고 성낼 노(怒) 자를 넣어 ‘분노(怒)‘와 비슷한 발음이 되도록 옮겼다. - P225

하지만 어차피 걸을 수 없으니 기뻐하고 있을 때는 아니군. 그런데 꼬리는 또 자라겠지만 다리는 어떨까? 꼬리도 뼈는 재생되지않는 거였나? 그렇다면 다리는 이제 글렀군. 정말 불편하겠는데.
깜짝 놀랄 만한 포효가 들려왔다.
내 꼬리랑 다리를 다먹어치웠나? 배가 불렀으면 좋으련만 분명 아직 모자라겠지. 도망치는 게 좋겠어. - P227

그리고 확실히 기억났다.
그래, 공작 부인이 범인이라니 말도 안 돼. 난 완전히 착각하고있었어. 앨리스랑 미치광이 모자 장수랑 3월 토끼에게 알려야 해. - P229

밴더스내치는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빌은 자신의 입과 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29

"꺼림칙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선생님에게도 관련된 일이에요."
"뭔데?"
"진범에 대한 정보가 나왔어요."
"뭐?" 젓가락에서 튀김이 툭 떨어졌다.
"실마리를 잡았는지도 모르겠어요." - P231

"다잉 메시지요."
"누구의 다잉 메시지?"
"이모리의 다잉 메시지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빌의 다잉메시지지만."
"빌이 남긴 다잉 메시지가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 P231

"예. 아마도 밴더스내치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빌을 덮쳤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숨통을 끊지 않은 것 같아요." - P232

"도마뱀은 목숨이 참 질기구나."
"예. 아마도 밴더스내치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빌을 덮쳤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숨통을 끊지 않은 것 같아요."
"먹지 않을 거면 왜 죽였지?"
"인간이 사냥을 하는 것과 똑같죠. 놀이예요." - P323

"즉, 그 두 사람은 틀림없이 범인이 아니에요."
"그건 빌이 굳이 지적해줄 필요도 없는 사실이잖아?"
"그렇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다잉메시지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 P232

"당연하기 때문에 범인이 그냥 넘어간 거죠. 범인의 이름을 직접 쓰기라도 했다면 지원을 거예요."
"확실히 당연한 사실을 적으면 범인은 그냥 넘어가겠지.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지 않나?",
"당연하지만 의미가 있어요. 이 다잉 메시지는 진범을 찾는 사람이 뭔가에 주목하기를 바라고 남긴 거예요." - P233

"모르겠지만 추정은 할 수 있죠. 이 말인즉슨 유일하게 신뢰할수 있는 사람은 공작부인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왕도 무고하잖아?"
"여왕을 신용할 수 있겠어요?" - P233

"선생님 지시를 받으라는 뜻 같은데요."
"내 지시를 받으라니, 난 좋은 방법이 하나도 안 떠오르는걸."
"정말로요? 뭔가 생각나는 것 없으세요? 뭐든지 상관없어요."
"정말로 마음에 짚이는 게 전혀 없어. 분명빌의 착각이야. 아니면 이모리가 날 과대평가했는지." - P234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누구 이야기를?"
"제 이야기요. 그리고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거라면 편해서 좋겠다. 어서 이야기해봐."
"당초부터 제일 큰 의문은 ‘왜 흰토끼는 앨리스가 살인 현장에갔다고 말했는가?‘였어요." - P235

"흰토끼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니?"
"아니요. 흰토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뭐야 그게? 모순되는 말이잖아."
"모순은 없어요. 흰토끼는 앨리스를 목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목격했다고 단단히 믿은 거예요." - P236

"그럼요. 흰토끼는 눈이 상당히 나빴어요. 빌이 눈앞에 있는데도 누구인지 못 알아봤을 정도라고요."
"그렇게 눈이 나쁜데 사건 현장에 앨리스가 있었다고 단언한 거구나." - P236

"동물들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남을 인식할 수 있대요. 예를 들면 냄새나 적외선, 초음파, 전자파 같은 것을 감지해서 흰토끼는 냄새로 남을 식별했어요. 그러니까 체셔 고양이처럼 모습을감출 수 있다고 해도 흰토끼는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래. 즉, 흰토끼는 시각으로 앨리스를 확인한 건 아니었다는뜻이지." - P236

"다니마루와 니시나카지마 두 형사님한테 상의하는 건 어떨까요?"
"으음. ・・・・・・ 글쎄? 그 사람들한테 상의하는 건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해. 그 사람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공작 부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그렇다면 누굴까? 공작부인의 일꾼인가?" - P237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말이 있어요. ‘범인이 우연히 안 사실을나불나불 지껄인 인물이 있어."
"뭐야 그게?"
"이모리가 남긴 말이에요. 정확하게는 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은 말이지만요." - P238

"나도 급해 자, 추리를 완성하자. 일단 진범의 이름을 알려줘."
아리는 히로야마 부교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건 바로 당신이에요, 메리 앤."
"멋진 추리로구나.‘ - P240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내가 범인인 줄 알았니?"
"일단 범인이 메리 앤임을 알아낸 이유부터 이야기할까요?"
"그건 대충 짐작이 가. 하지만 확인하고 싶으니 들려줘."
"흰토끼는 늘 나를 메리 앤으로 착각했어요. 겉으로 보기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말이죠. 하지만 무리도 아니에요. 흰토끼는눈이 나빴으니까요. 그래서 냄새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 P240

"휜토끼는 험프티 덤프티가 살해당했을 때 정원을 드나든 건 앨리스뿐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흰토끼가 앨리스와 메리 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용의자는 앨리스와 메리 앤 두 사람인 셈이죠.
그리고 난 앨리스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므로소거법에 따라서 범인은 메리 앤이에요."
"아까워라."
"지금 추리에 뭔가 틀린 점이라도 있었나요?"
"안 틀렸어. 정답이야." - P241

"그런 실수를 한 기억은 없는데."
"무리도 아니죠. 실수한 건 오히려 흰토끼였으니까요."
"흰토끼가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거니?"
"앨리스를 메리 앤으로 착각했어요."
"그거야 늘 그랬잖아?"
"예.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했죠." - P242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좋은 사람이야. 요전에도 빌을위해서 깜짝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어."
"그게 뭐 어때서?"
"그 말을 듣기 얼마 전에 리오 씨가 내게 ‘깜짝 파티에 관해서 이모리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 당일까지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라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뭐? 휜토끼는 내게도 깜짝 파티 이야기를 했어." - P242

"아아. 알았다. 흰토끼, 다나카 리오는 널 메리 앤이라고 생각한거구나." - P242

"이모리는 알아차렸을까?"
"분명 최종적으로는 알아차렸겠죠. 그리고 빌도 죽기 직전에 알아차렸을 거고요."
"공작 부인이 범인일 리 없다.‘ 일부러 다잉 메시지를 그렇게 쓴 거구나." - P243

"하지만 ‘공작 부인이 범인일 리 없다‘라면 당신이 지우지 않으리라고 예상했겠죠."
"넌 내가 공작 부인이라고 믿었잖니. 그래서 오히려 유리할 것같았어." - P243

"그래요. 그렇게 당신을 의심하자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들어갔어요. 흰토끼는 앨리스와 메리 앤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은 메리 앤밖에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살인 현장에서 목격된 사람은 메리 앤이고, 그건 바로 당신이다." - P244

"난 아무도 안 죽였어. 모두 사고나 병으로 죽었지. 아아. 한 명은 살해당했구나. 하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야."
"험프티 덤프티는? 그리핀은? 휜토끼는? 빌은?"
"아아. 그 사람들이라고 할까, 짐승들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메리 앤이지. 꿈속에 사는 메리 앤이 마찬가지로 꿈속 등장인물인 짐승들을 죽인 거라고. 그런 꿈을 꾼 것도 죄니?" - P244

"그래, 매일 잠이 깨면 바로 꿈의 내용을 정리해뒀거든. 놀랍게도 난 계속 같은 세계의 꿈을 꾸고 있었어. 꿈속에서 나는 흰토끼에게 고용된 가정부 메리 앤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메리 앤도 현실 세계를 기억해내기 시작했어."
"당신은 자신과 메리 앤이 동일 인물이라고 인정하는 거로군요." - P245

"그건 나중에 이야기할게. .......그러다가 난 두 세계의 규칙을 알았지."
"규칙?"
"죽음의 규칙 말이야. 이상한 나라는 느긋하고 바보스러운 세계로 보이지만 위험이 숨어 있지."
"여왕이 목을 친다든가?"
히로야마 부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여왕이 목을 치라고 명령해서 목이 날아간 사람은 하나도 없어. 위험한 건 맹수야." - P246

"응. 저쪽에서 아는 사람이 죽자 거의 동시에 이쪽에서도 아는 사람이 죽었어. 뭐, 사고나 질병 등 그때마다 사인은 다양만."
"우연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 P247

"당신 주변에 기름을 뿌리고 있어."
"이봐, 질 나쁜 농담은 그만두지 않겠어?"
"농담? 나 농담 싫어해."
"그런 짓을 하면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을까?"
"그래. 떨어뜨리려고 기름을 뿌리는 거야."
"그만둬." 험프티 덤프티는 메리 앤의 팔을 붙잡았다. - P252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지구에서는 아주 가까운 사이야."
"지구? 어떻게 내가 꾼 꿈을 알고 있는 거지?"
"나도 똑같은 꿈을 꾸니까. 사실은 꿈이 아니지만." 메리 앤은험프티 덤프티 등을 밀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누가 내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거야?" - P252

"뭘 사과한다는 거니?"
험프티 덤프티는 온몸이 거의 다 벽에서 밀려난 상태로 안간힘을 쓰며 벽 가장자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거야. 네 출세를 방해한걸 사과할게."
"그럼 내가 누군지 알아차린 거로군." 메리 앤은 입가를 일그러뜨려 웃었다. - P253

"아니. 네 이름은 알아. 시노자키 연구실의 부교수잖아."
"뭐야. 기억하네."
"하지만 난 시노자키 선생님이 아니야."
"응? 진짜?" 메리 앤은 힘프티 덤프티의 등에서 손을 뗐다.
"진짜야. 난 지구에서 나카노시마 연구실에 소속된 박사 연구원 오지 다마오라고." - P254

"반대로 하는 거야. 시노자키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냐고 물어보면 되잖아. 그럼 시노자키 선생님 혼자한테만 말하면 되니까."
"아하, 그것참 좋은 방법이네."
"자, 오해인 걸 알았으니 냉큼 내 곁에서 물러나주지 않겠어?
바로 옆에 서 있으니 아무래도 불안해서 말이야." - P255

"굴을 양손에 넘칠 만큼 가득 담아서 산 채로 단숨에 삼키면 그야말로 맛이 끝내줘." 메리 앤은 그리핀에게 말했다. - P257

"턱이 빠지면 큰일이잖아."
"큰일은, 혹시 빠지더라도 내가 끼워줄게."
"그래? 그럼 안심이군." 그리핀은 부리를 더 크게 벌렸다.
그리핀의 턱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앗・・・・・・." 그리핀이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 P261

그리핀은 메리 앤의 손을 떨쳐내려고 했다.
메리 앤의 눈초리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왼손으로 그리핀의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굴을 쑤셔 넣으려고 했다.
그리핀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달아나려고 했다. - P262

메리 앤은 소리 높여 웃었다. "왜 그래? 놀랐어? 그래. 당신은 죽는 거야."
그리핀은 힘없이 양손을 휘저었다.
"내가 뭔가 오해했다는 거야? 땡, 나는 오해하지 않았답니다. 시노자키 선생님." - P262

"자업자득이야. 모처럼 연구실이 증설됐는데 날 새 교수로 추천하지 않았잖아. 젊은 조교수한테 느닷없이 연구실을 맡기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P263

그리핀은 드디어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는지 손을 뻗어 메리 앤의 목을 잡았다.
"어쩌려고? 누가 먼저 죽이는지 해보자는 거야? 좋아. 당신이압도적으로 불리하기는 하지만 이제 당신의 뇌에는 산소가 모자랄 거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지, 지금부터 내 목을 졸라도 그렇게 쉽게는 죽일 수 없을걸."
그리핀의 날카로운 손톱이 목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 P264

하지만 메리 앤은 손에 계속 힘을 주었다.
그리핀이 죽거나 기절하면 반드시 목에서 손을 뗄 거야. 하지만 내가 방심해서 그리핀이 숨을 쉬면 내 목을 단숨에 부러뜨려버리겠지. - P264

아무래도 진짜 죽은 듯했다.
"살인자! 살인자!" 굴들이 소란을 피웠다.
메리 앤은 품에서 돗바늘을 꺼내 굴을 한 마리씩 꿰었다.
"고마워. 너희들한테 아주 큰 신세를 졌어. 헛되이 목숨을 잃은게 아니라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 그러니까 기쁘게 죽으렴."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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