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보손의 검출
유럽 입자물리연구소
2011-2013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에걸쳐 있는 직경 27킬로미터의 대형 입자가속기(LHC)는 현재까지 만들어진 가장 거대한 기계이자 과학실험실이다.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운영하는이 장치는 두 가지 입자 빔을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쏘아서 여러 개의 검출기와 가까운 곳에서 충돌시킬 수 있는원형 입자가속기로 구성된다. 

- P217

 당시만 해도 이론적으로만 알려졌던 힉스 보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였다. 양성자가 충돌하면 다양한 아원자 입자가 방출될 것으로 추정됐지만, 힉스 보손을 포함한 대부분이 너무 빨리 붕괴되어 사라지는 바람에 곧바로 검출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연속적으로 진행되는붕괴 과정(붕괴 채널)을 포착하고 기록하기 위해 검출 범위가최대에 달하는 ‘아틀라스(ATLAS)‘가 마련됐다. - P217

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 가운데 어느 것으로도 입자마다 질량이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입자의 질량은 다른 입자로부터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 P217

 그러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 아직까지 밝혀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대형 강입자가속기(LHC)가 2013년과 2014년에 업그레이드되어 훨씬 더 높은 에너지로 일어나는 충돌을 연구할 수 있게 되어, 힉스 보손 외에 다른 입자가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지 파악할 수있는 데이터가 앞으로 계속해서 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 P216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인 피터 힉스(Peter Higgs, 1929)는 1964년,
나중에 자신의 이름이 그대로 붙여진 힉스 보손의 존재를 예상한 인물이다. - P217

골드버거는 실험을 통해 펠라그라가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고 증명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1937년이 되어서야 콘라드 엘버헴(Conrad Elvehjem)이 골드버거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니아신(비타민 B3)을분리해 내고 그 물질이 펠라그라 예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했다. - P26

20세기 초 미국 남부 지역에는 펠라그라로 치사 상태에 이른 환자들이 급증했다. 1914년, 골드버거는 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 P27

펠라그라 환자의 손과 발을 묘사한이 그림은 1814년 이탈리아의 의사 빈센초 치아루기(Vincenzo Chia-rugi)가 그린 것이다. 펠라그라는 미국 남부 지역에서 특히 맹위를 떨쳤지만, 20세기 초에 세계적으로널리 알려진 질병이었다. - P27

오물 파티
조셉 골드버거(Joseph Goldberger)
1915-1916

조셉 골드버거는 2년간 조사와 연구를 실시한 끝에교도소 수감자나 정신병원에 수용된 사람들은 펠라그라에 걸리는 반면 이들을 돌보는 간수나 간호사는 그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펠라그라가 감염성이 있는 질병이 아니며 부실한 식생활로 발생하는 병임을 암시하는 특징이었다.  - P27

클라이트먼은 매머드 동굴에서 실험을 진행한 후에 수면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1939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적인 저서 ‘수면과 각성(Sleep and Wakefulness)」에는 수면에 관한 기존의 문헌 자료가 정리되어 있어이 분야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 P32

수면과 각성주기
너대니얼 클라이트먼(Nathaniel Kleitman)
1938 - P32

 켄터키 주에 있는 매머드 동굴은 자연광이 들지 않고 온도가 12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곳이라, 수면 패턴을 연구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였다. 폭 20미터, 높이 8미터인 이 동굴은 지하 40미터 깊이에 위치했다. 그는 조수인 브루스 리처드슨(Bruce Richardson)과 함께 1938년 6월 4일부터 그곳에서 하루를 28시간 단위로 살기 시작했다.  - P32

두 사람은 ‘낮‘으로 정한 시간에 두 시간 간격, ‘밤‘으로 정한 시간에는 네 시간 간격으로 체온 변화를 기록했다. 그렇게 32일을 보낸 두 사람이 마침내 동굴에서 나오자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 P32

학문의 길에 접어든 직후부터 수면을 연구하기 시작한 클라이트먼은 은퇴할 때까지 연구를 지속하여 90대까지 수면 연구에 매진했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폐지된 뒤에는 맥주로 인한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 P32

동굴 실험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얻지 못했다. 리처드슨은 하루가 28시간 단위로 바뀌어도 적응을 한 것같았지만 클라이트먼은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클라이트먼은 현대 수면 연구의 아버지라는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 P33

DNA가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유전학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염기쌍에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유전 정보가 저장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사람의 유전체 분석 등 생명의 원리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파악할 수 있는 중추적인 연구들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다. - P36

DNA는 훨씬 더 오래전인 1869년에 스위스 생물학자 프리드리히 미셔(Friedrich Miescher)에 의해 최초로 분리되었지만, 유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1944년에 오즈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가 DNA의 역할에 관한 이론을 제기하고 8년 뒤에 실험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 P37

결정 분석 전문가로 이미 명성이 높았던 프랭클린은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DNA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DNA는 각기다른 두 가지 형태로 밝혀져 각각 A-DNA와 B-DNA로 불렸는데, 프랭클린은 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실험장비와 샘플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 P37

. 그 사진을 본 두 사람은, DNA가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구조를 제안한 논문은1953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되었는데 왓슨과 크릭의 발견에 큰 자극제가 된 프랭클린의 DNA 결정 연구와 엑스선 회절 이미지도 함께 실렸다. - P37

러더퍼드의 실험으로 원소의 양전하가 원소 중심에 위치한 작은 핵 속에 단단히 밀집되어 있으며, 핵 주변을 음전하가 구름처럼 듬성듬성하게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전까지의 생각처럼 음전하가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새로운 원자 모형은 물질의 구성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열었고, 아원자 입자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입자 물리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도 이 실험을 계기로 탄생했다. - P148

20세기 최고의 실험 과학자로 널리 인정받는 러더퍼드(1871-1937)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캐번디시연구소(Cavendish Laboratory)에서 맨 처음 공부한 학생으로, 그곳에서 J. J. 톰슨(J. J. Thomson)을 만났다. 1908년에는 원소 붕괴와 방사성 물질의 화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수상했다. - P149

가이거는 이온화 방사능을 측정하는 계수기를 발명했는데,
아직 초기 버전이던 이 계수기를 이용하여 러더퍼드와 함께알파 입자가 굴절되는 이상 현상을 관찰하다가 금으로 된 박편을 이용한 실험을 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 P149

원자의 구조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909-1913

 이 실험은 러더퍼드의 조수였던 한스 가이거(Hans Geiger)와 어니스트마르스덴(Ernest Marsden)이실험의 대부분을 직접 수행한 점을 고려하여 ‘가이거-마르스덴 실험‘으로도 불린다. - P149

 실험 방법을 몇 차례 다듬어서 재차 실시한 후 러더퍼드는 알파 입자를 이렇게 튕겨나가게 할 정도가 되려면 원자의 중량이 중심에 모여 있고, 그 부분은 높은 선하를 띨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P149

피치 낙하 실험은 자칫 사소한 실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단 아홉 방울만 떨어졌다는 사실은 이 피치 샘플의 평균 점도를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가와 같은 여러 가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오랫동안 과학계의 관심을 얻고 있다. 또한 이 실험은 과학자와 일반인 모두에게과학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즉, 실험 하나가 완료되기까지 수십 년이 소요될 수도 있고, 때로는 처음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의 일생을 넘어서 여러 세대에 걸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P152

파넬(1881-1948)은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세인트존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1904년에 호주 멜버른 대학교에 신설된 물리학과의 첫교수로 임용됐다. 1911년에는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로 옮겨서 학교측의 후원을 받아 유도계수의 고정밀 측정법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 P153

실온에서는 고체처럼 보이고 망치로 치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하지만, 콜타르 피치는 액체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파넬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던 학생들에게 아주 단순한 실험으로도 액체임을 증명해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P153

피치 낙하 실험
토머스 파넬(Thomas Parnell)
1927-현재

영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파넬은 1927년에 역사상 최장기간 이어질 실험을 준비했다. 학생들에게 콜타르피치의 놀라운 특성을 증명해 보이려고 시작한 실험이었다. - P153

 파넬은 월과 연 단위로 피치 방울이 깔때기 아래에 있는 그릇으로 떨어지는 시점을 기록했다. 파넬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단 두 방울이 떨어졌다. 총 여섯 방울이 떨어진 후 이 실험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자 현재까지 나온유일한 논문이 1984년에 발표되어, 피치의 점도가 물에 비해 1조 배가량 더 높다고 추정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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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들은 어떻게 세상 만물을 만드는 걸까? 이런 질문을 탐구하는 물리 분야를 ‘응집물리‘라고 한다. 원자들이 결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만나야 한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둘러싼 전자들로 되어 있으니, 서로 가까워지면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은 전자다. 따라서 결합의 주인공은 전자다.  - P197

전자들은 어떻게 원자들을 한데 묶을까?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의 3차원 구조에 따라 다양한 답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단순한 상황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디테일보다 본질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 P199

얼핏 생각하면 전자들은 이웃 원자의 전자들과 몸을 맞대고 찌그러져 있을 것 같지만 양자역학은 우리의 예상이 틀렸음을보여준다. 각 껍질의 전자들은 마치 안개같이 고체 전체에 스며들듯이 퍼지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 P199

이런 전자의 상태를 ‘띠band‘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띠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 전체가 만들어낸 가상의 구조물이드. 죽어고 결정으로 된 물질은 이웃항 구 원자를 접착지로 붙이는 방식으로만 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00

물질에 전기장을 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즉, 물질의 한쪽에는 전원의 양극, 다른 쪽에는 음극을 연결하는 것이다. 원자핵은양(+)전하니까 음극으로 끌려가고, 전자는 음(-)전하니까 양극으로끌려갈 거다. 하지만 이들은 원자라는 물질의 최소단위를 형성하고 있다. - P200

하나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물질이다. 원자핵과 전자가 각각 음극과 양극으로 끌려가기는 하지만 자기 위치에서 조금 벗어나는 정도로만 끌려간다. 그 움직임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런 물질을 ‘부도체라고 부른다. - P201

아니, 원자를 이루는 전자가 어떻게 원자를 벗어나 물질 내부를 물 흐르듯 움직일 수 있을까? 금속이 보여주는 익숙한 현상이지만 물리학자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물질을 ‘도체라고 부른다. - P201

그렇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모든 원자들이 만든 총체적 구조, 즉띠에 놓인 전자가 전류를 만드는 것이 틀림없다. 이걸로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부도체는 왜 존재하나? 여기도 띠에 존재하는 전자가 있다. 띠에도 추가적인 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 P201

도체의 띠를 ‘전도띠 conduction band‘. 부도체의 띠를 ‘원자가띠valence band‘라고 부른다. 띠가 갖는 이런 추가적인 속성은 양자역학이 결정한다. - P202

전류가 흐르는 동안 도체 내의 전자는 금속 내부를 마음대로 휘젓고다닌다. 물질이 원자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렇게 자유로이 흐르는 전자를 ‘자유전자‘
라 부른다. 자유전자는 모든 원자들이 만든 총체적 구조를 타고 흐른다. - P202

 도체에 따라 증가비율은 같지 않은데, 그 비를 전기전도도라 부른다. 전도도가 클수록 전기가 잘 통한다고 보면 된다. 전도도의 역수를 ‘저항이라고 부르는데, 저항이 작아야 전기가 잘 통한다. - P203

지난 100여 년간 응집물리의역사는 바로 이 저항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전기저항 관련 연구만 추려봐도 트랜지스터(1956년),
초전도이론(1972년), 터널링(1973년), 고체물성이론(1977년), 양자홀효과(1985년, 1998년), 고온초전도 (1987년), 거대자기저항(2007년), 그래핀(2010년), 위상상전이 (2016년) 등이 있다. - P203

 전도띠의 시각에서는 저항이 왜 있는지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띠에 대해 설명할 때 중요한 가정이 있었다. 바로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원자라는 규칙적인 방해물이 있을 때,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운동할 수 있다.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기괴한 결과다. - P201

. 사실 이부분은 전공자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양자역학의 세상에서는 일정 간격으로 놓인 장애물은 없는 거나 같다. - P204

 고체에 불순물이 없어도 온도가 높아지면 저항이 커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더 격렬하게 요동치는데, 이는 원자들의 규칙적인 구조가 더많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04

그런데 1911년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불순물이 들어 있는 도체의 온도를 절대 0도로 낮추는 실험에서 온도가 0도에 이르기도 전에 도체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초전도라 부르는 현상으로 이후 1950년대에 가서야 그 이유가 설명된다. 1986년에는 아주 높은 온도에서도 특정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견된다.  - P205

 이것은 기존의 초전도 이론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데, 이를 고온초전도라 부른다. 이 현상의 발견자들에게는 1987년노벨물리학상이 주어졌지만, 아직 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 P205

인공지능에게 타자란

<엑스마키나> - P207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가진 인공지능로봇 에바가 인간 남성 칼렙을 유혹한다. <엑스마키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이나는 흔한 질문을 이성 간 연모의 감정과 복잡하게 뒤섞어놓았다. - P207

2014년 러시아 연구진이 만든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필자도 유진 구스트만과 인터넷으로 10분 정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처음 5분간은 대충 인간이라믿을 만했다. 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 "저 같은 어린아이에게그런 질문은 하지 마세요"라며 말을 돌린다. - P208

인공지능이 분야에 따라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모두 인정하는 바다. 컴퓨터보다 더하기를 더 빨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구글보다 검색을 더 빨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 P208

이제 컴퓨터가 생각하거나 판단한다는 것은 0 또는 1로 된 일련의 수열을 역시 0 또는 1로 된 다른 수열로 바꾸는 거다. 튜링은모든 수학적인 연산 과정을 0 또는 1로 된 수열의 조작으로 구현할수 있음을 증명했다. 여기서 조작이란 한 번에 하나의 비트를 읽어서 수행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격한 문법이 필요하다. - P209

반면,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는 세포들의 집합체다. 뉴런은 전기신호를 입력받아 다시 전기신호로 출력하는 역할을 한다. 입력은 수천에서 수만 개의 다른 뉴런으로부터 들어온다. 들어온 전기신호가 누적되어 어느 임계값을 넘으면 외부로 전기신호를 내보낸다. 이게 하나의 뉴런이 하는 일의 전부다. - P210

 시냅스의 특징은 그 세기가 변할 수 있다는 거다. 당신 손아귀의 힘이 세다면 약하게 손을 쥐어도 옆 사람에게 신호가 쉽게 전달될 것이다.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면 쥐어도 옆사람이 모를 거다.  - P210

 학습 과정에서 어느 시냅스가 어떻게 강화되는지 알 필요 없다. 사실 알기도 힘들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의 원리도 이와 같다. 신경망회로의 노드라 불리는것들 사이의 결합강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학습이다. - P211

컴퓨터와 달리 여기에는 논리적 문법이 없다. 그냥 무수한 반복학습을 통해 입력과 출력이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인간이 만든 신경망회로도 인간의 뇌 못지않은 직관을 가진다는 것을
‘알파고-이세돌‘ 시합은 보여주었다. 어차피 인간의 뇌도 적당한
‘입력-출력‘이 연결되도록 하는 장치일 뿐이다. - P211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며, 우리는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가질 수 있을까, 기계가 우리를 지배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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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내용도 있지만, 근데 이건 ‘여자‘만 필요한 정보는 아닌데.






임대차 계약서를 먼저봅시다. 정해진 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당사자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써도 되지만, 대부분 공인중개사가 마련한 통일된 양식을 사용합니다. 셀프 계약하는 분들을 위해 법무부에서 마련한 표준계약서가 있지요. - P15

<계약서에 꼭 들어가야 할 사항>
① 목적물이 되는 부동산
② 임대차 기간
3. 보증금과 월세의 액수 및 지급시기

이렇게 세 가지 내용이 반드시 확정되어야 해요. - P15

임대차 계약 존속 중 발생하는 수리 및 비용 부담에 대해서 사안에 따라 누가 부담할지 등을 미리 정하면 좋아요 - P16

 처음부터 해석에 따른 분쟁의 여지를 막기 위해 "수리비 10만 원 미만은 임차인이, 10만 원 이상은 임대인이 부담한다."라고 정해 놓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 P16

가까운 등기소나 법원 인터넷등기소 사이트 http://www.iros.go.kr에서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어요. [부동산] 탭의 [열람/발급하기] 메뉴 중 [열람하기] 메뉴로 들어갑니다. 부동산 구분을 선택하고 주소를 입력하거나 지도로 찾을 수도 있답니다. - P16

① 표제부: 부동산의 소재와 물리적 특성에 대해 기재된 곳
- 건물일 경우 지어진 날짜 층수, 주재료 등 확인 가능
② 갑구: 소유권에 관한 사항이 기재된 곳
③ 을구: 소유권 외의 권리관계가 기재된 곳


먼저 갑구를 통해서는 소유권 변동을 알 수 있답니다. 소유권이 변동된 사유가 무엇인지-상속,증여, 매매 등 변동 시기는 언제인지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 P17

 또한 현재 소유자에 대해서 압류 기록이 많을 경우 채권자가 많다는 뜻이고, 보증금이 확보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의하는 게 좋아요. - P17

그다음은 소유권 외의 권리가 표시되는 을구를 살펴볼까요? 편의상 ‘소유권 외의 권리‘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소유권 외의 물권物權‘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는 곳이에요. 물건에 대한 권리는 종류와 내용이 법으로 딱 정해져 있어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물권을 창설하거나 개조하지 못해요. - P18

주택 임대차라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내역이 있지는 않은지 ‘근저당 설정‘을 유의 깊게 보면 됩니다. 다음에 설명할 ‘확정일자는 후순위 권리자보다 우선하여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다는 뜻이므로, 그보다 앞서서 근저당권 등 권리를 가진 사람은행 등이 있다면, 내 보증금 회수권이 밀릴 수가 있겠죠! - P18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동산 전세 계약‘을 체결할 때 세입자가 갖게 되는 권리는 법으로 정한 ‘전세권물권‘이라기보다 개인들이 합의로 만들어낸 계약상 권리에 불과해요.
따라서 세입자가 보증금을 내고 임대차 계약을 하더라도, 그 임차인의 권리는 부동산등기부에 기재되지 않는 것이죠. - P19

즉 임대차 계약 기간이 존속하는 중에는 소유자가 바뀌더라도, 비록임대차 계약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임대인과 똑같은 권리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 거예요. 따라서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가 없고, 임대차 계약 종료 시에는 새로운소유자를 상대로 보증금반환청구를 할 수 있어요.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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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포장재에 알레르기 원료가 표시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적으로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성분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 P204

초콜릿이 알레르기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초콜릿은 여러 가지 원료가 혼합되어 있는 복합적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원료를 포함할 수 있으므로 초콜릿 제품의 원료를 표시할 때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을 포장재에 표시하고 있다. - P205

의무적으로 표시하지 않는 원료라고 해서 알레르기가 없다는 것은 아니고 아직 법적으로 표시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이해이다. - P205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3년부터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을 표시하도록 성분표시제를 도입했는데 현재 13개의 알레르기 유발식품을 지정해 놓고 있다. 난류,우유, 메밀, 땅콩, 대두, 밀, 고등어,
게, 새우, 돼지고기, 복숭아, 토마토, 아황산류 등이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는 성분이다. - P205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문헌은 아직없다. 초콜릿을 먹고 알레르기가 생겼다면 카카오 외의 다른 원료로인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 P207

카카오에 들어있는 카카오폴리페놀은 면역조절 기능이 인정되고있고 감기 예방, 알레르기 억제효과 또한 기대되고 있다. 또 카카오폴리페놀에 포함되어 있는 플라보노이드에는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을 억제하는 작용도 인정되고 있다. - P207

폴리페놀은 아토피성 피부염이나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고 카카오폴리페놀은 항염증 특성을 가지기도 한다. - P208

60장, 초콜릿과 정크푸드


어떤 식품을 특정 범주로 규정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해야 할 사안이다. 한번 인식되면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P222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좀 더 논리적이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정크푸드는 영양가가 별로 없고 종종 지방, 설탕, 소금, 열량 등이 많은 식품에 대한 조롱기가 있는 용어로 사용된다고 한다. - P223

이와 유사한 용어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이라는 규정을 설정해 놓고 있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한 기준보다열량이 높고 영양가가 낮은 식품으로서 비만이나 영양불균형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어린이 기호식품을 말한다. - P223

 초콜릿의 규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도 초콜릿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도 있을수 있고 당류나 유지로 대부분의 조성을 이루는 저급 초콜릿도 있을수 있다. 그렇지만 초콜릿의 규격에 합당하고 좋은 원료를 사용한다 - P224

초콜릿을 기능 성분을 얻기 위해서만 먹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류를 섭취하기 위해서도 먹을 수 있고 칼로리를 충당하기 위해 먹기도 한다. 입안에서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누리기 위해서도 먹는다. - P225

한가지 덧붙여 말하면 단순하게 카카오 원료의 함량이 같을지라도 사용된 카카오 원료의 품종, 카카오 원료의 가공 방법, 초콜릿 제조방법 등에 따라 플라바놀과 같은 유용한 성분들의 함량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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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
라는 말은 아마도 공정한 표현이 못 될 것이다. 그녀보다 추한외모의 여자는 사실 그 밖에도 많을테니까. 하지만 내 인생과어느 정도 친밀한 관련을 맺고, 내 기억의 토양에 나름대로 뿌리내린 여자들 중에서는, 그녀가 제일 못생겼다고 해도 큰 지장이 없지 싶다. - P151

그녀를 가령 ‘F*‘라 부르기로 하자. 여기서 본명을 밝히는 것은 몇 가지 디유로 적절하지 않다. - P151

그리고 만약 이 글을 본다면 당연히 자기 얘기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라고 표현해도, F*는 아마 조금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 P152

그런 의미에서, 그렇다, 그녀는 실로 범상치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범상치 않음은 결과적으로 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녀 주위로 모이게 했다. 자석이 오만 가지 형태의 유용무용한 쇠 부스러기를 끌어당기듯이. - P152

나는 아름다운 여자도 몇 명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이 사람은 예쁘다‘고 인정하고, 시선을 빼앗길 만한 여자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아름다운 여자들은 적어도 그중 많은 이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덮어놓고 즐기지는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 사실이 적잖이 신기했다. - P153

그에 비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혹은 못생겼다는것을 나름대로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어떤 아름다운 여자에게도 어딘가 보기 싫은 구석이 있듯이, 어떤 못생긴여자에게도 어딘가 아름다운 부분이있다. - P154

그런 작용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본질인지 혹은 그저 시각적 착각인지는 내가 판단하기 버거운 문제다.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F*는 그야말로 빛의 트릭스터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 P154

 나이도, 키도, 가슴의 모양이나 크기도, 그녀의 ‘아름답지 못함=못생김‘
앞에서는 전혀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 하물며 엄지발가락 발톱모양이나 귓불의 길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 P155

그가 나를 F*에게 소개했고, 우리는 함께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사람도 우연히 이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요컨대 셋 다 각자 혼자서 콘서트에와 있었던 것이다. - P155

F를 처음 보고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당연히, 정말 못생겼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척 당당하게 미소 짓고 있었기에 곧 그런 식으로 생각한 내가 내심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한동안 담소하는 사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녀의 외뮤에 나는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았다. - P155

 왜냐하면 그녀의 강한 개성 -혹은 ‘흡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평범하지 않은 외모가 있기에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F*가 풍기는 세련미와 추한 외모의 크나큰 격차가 독자적인 다이너미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 P156

그녀의 얼굴이 어디가 아름답지 않은가못생겼는가를 구상적으로 묘사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제아무리 온갖 말을 동원해 정밀하게 묘사하고 설명한들, 그녀의 외모가 지닌 특이성의 실체를 읽는 이에게 전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P156

 한 부분 한 부분에는 이렇다 할 결함이 없다. 하지만 그 부분들이 하나로 조합되면 누가 봐도 틀림없는, 유기적이고도 종합적인 추함이 생겨난다(좀 이상한 비유지만 그 과정은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케 한다). - P157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첫머리에서 행복한 가정은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썼는데, 여자 얼굴의 비추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싶다. - P157

하지만 F*가 업은 원숭이는 무척 다양한 얼굴을 가졌고, 털은동시에 몇 가지 빛깔을 결코 빛나지는 않을지언정복합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 원숭이의 인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날의 날씨며 풍향에 따라, 또한 시각에 따라 상당히 크게바뀌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 P158

두번째로 F*를 만났을 때, 나는 그 점을 어느 정도(아직 적절한 표현을 찾지는 못했지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의 추함을이해하는 데는 나름대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직관과 철학, 윤리 같은 것도 필요하다. 또한 아마 약간의 인생 경험도 요구될것이다. - P158

공연장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녀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때 F*는 여자 친구와 함께였다. 날씬하고 몸집이 작은 미인 친구였다. F*는 따지자면 키가 큰 편이다. 나보다 조금 작은정도다.
"저기, 좀 걸어가면 괜찮은 술집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같이와인이라도 마시는 거 어때요?" 그녀가 말했다. - P159

그렇게 나와 F * 둘만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낙담한 것은 아니다. 이미 F*라는 여자에게 상당히 개인적인 흥미를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F*는 무척 고상한 차림이었고, 파란색 실크 드레스가 한눈에도 고급스러웠다. 착용한 액세서리도 실로 완벽했다. - P160

나와 그녀는 그날의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는 데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다. - P160

우리는 피아노곡을 좋아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물론 오페라도 듣고, 교향곡도 듣고, 실내악도 듣는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피아노 독주곡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애호하는 작품이, 신기할 만큼 정확히 겹쳤다. - P160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는 가끔 너무 빤한 대목이 거슬린다. 해석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브람스의 피아노곡은 가끔 들으면 멋지지만, 매일 듣다가는 피곤해진다. 가끔은 따분하기도 하다.  - P161

우리가 이의를 제기할 바 없이 훌륭한, 이른바 궁극의 피아노곡으로 선택한 것은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몇 곡과 슈만의 피아노 작품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곡만 남긴다면 뭐가 좋을까? - P161

그래요. 딱 한 곡만 하고 F*는 말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가져갈 피아노곡.
어려운 질문이다.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슈만의 <사육제>"라고 나는 끝내 마음먹고 말했다. - P161

 나중에 밝혀진 바로, 양손 관절을 힘주어 열 번 꺾는 것은 그녀가 긍정적으로 흥분했을 때마다꼭 나오는 버릇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사실을 몰랐으니 그녀가 무슨 이유에선가 화가 난 줄 알았다. 아마 <사육제>라는 선택이 부적절했나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옛날부터 슈만의 <사육제>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 P162

 만화경처럼 아름다우며 인지를 초월해 지리멸렬히 펼쳐지는 슈만의 그 피아노곡을 남기기 위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평균율과,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소나타와 웅장하고도 차밍한 3번 콘체르토를, 눈 딱 감고 포기해버릴 수 있는가? - P162

"당신 취향이 꽤 괜찮네요. 그리고 그 용기에 감탄했어요. 음, 나도 그렇게 할래요, 슈만의 <사육제>만 남기기로."
"정말로?"
"네. 정말로, 나도 <사육제>는 옛날부터 무척 좋아했어요. 아무리 들어도 신기하게 질리지 않아요." - P163

노트에 따르면(나는 각각의 연주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사육제>를 연주하는 콘서트에 갔고, 총 마흔두 장의 <사육제> 레코드와 CD를들었다. 그리고 그 연주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했다. - P16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다‘ 하고 수긍할 만한 연주를 꼽으려 들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했다. - P164

연주가 아무리 기교적으로 완벽하다 해도, 그것을 구사하는 방법이 음악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육제>라는 곡은 그저 무기질적인 손가락 운동으로 전락해버린다. 매력의 태반이 사라져버린다. 사실 대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난곡이다.  - P164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생애를 통틀어 슈만의 음악을 즐겨 연주했지만, 어째서인지 <사육제>는 정규 녹음을 남기지 않았다. 스바토슬라프 리흐테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언젠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사육제>를 꼭 들어보고 싶다는 건 나 하나만의 소망이 아닐 것이다. - P164

참고로 슈만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 그 음악의 훌륭함을 알아준 이는 거의 없었다.  - P164

기성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새로운 낭만파 음악을 시도하려 했지만, 많은 동시대인의 눈에는 확실한 기초와 내용이 결여된, 익센드러한 작품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대답할정도의 익센트리시티가 낭만파 음악을 전진시키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지만, - P165

물론 <사육제>만 들은 것은 아니고 때로는 모차르트도 듣고 브람스도 들었지만, 직접 만나면 반드시 누군가의 <사육제>에 귀기울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내가 서기를 맡아서 우리의 의견을 요약하고 기록했다. 그녀가 우리집에 온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그녀의 집으로 가는 쪽이 훨씬 많았다. - P165

열 살 정도 아래의 이성과 그렇게 자주 만나면 보통은 가정에서 파란이 일 만도 한데, 내 아내는 그녀에게 조금도 신경쓰지않았다. 무관심의 가장 큰 이유가 그녀의 외모였음은 굳이 말할필요 없으리라. - P166

F*의 남편을 만난 적은 없다(그녀에게 자식은 없었다). 우연히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남편이 부재중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남편이 없는 시간을 골라 나를 집으로 불렀는지. 그도 아니면 남푠이 대부분의 집을 비우는 건디는 알 수 없었다. - P166

또한 그녀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어느 지방 출신이고, 어떤 가정에서 자랐고, 어떤 학교를 나와서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개인사에 대해 질문하면 모호하게 얼버무리거나 말 대신 미소로ㅍ응할 뿐이었다.  - P167

하지만 음악 이외의 면에서 그녀는 내게 거의 수수께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녀는 자기가 말할 생각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부추기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 P168

그녀는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중략)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살던 사람이니까." - P169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뗄 수 없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살짝 미소 지었다. "하지만 설령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아래 또다른 민낯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 P170

"하지만 그런 것을 볼 수 있었던 로베르트 슈만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어. 매독과 분열증과 악령들 때문에."
"그래도 이렇게 환상적인 음악을 남겼잖아. 다른 사람들은 쓸수 없을 비범한 곡을 썼어." 그녀는 말했다. - P170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라디오방송에서 슈만의 소나타 F단조를 녹음한 적 있어." 그녀가 말했다. "그 얘기 들어봤어?"
"아니, 못 들어온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슈만의 그 3번 소나타는 듣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이나 (아마도) 적잖이 에너지가 소비되는 곡이다.  - P171

나는 그녀를 어떤 의미에서는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성적인 관계를 갖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아내의 판단이 맞았던 셈이다. - P171

내가 그녀와 자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그 가면의 미추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 P172

텔레비전에 나온 그녀를 처음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그때 나는 내방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여자친구가 뉴스에 나오는데?" 아내가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F * 라는 이름을 입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다. - P172

F*는 경찰서로 보이는 건물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서, 짙게 선팅한 승합차에 올라타는 참이었다.
그 짧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의심의 여지 없이 F*였다. 웬만해서는 그녀의 얼굴을 착각할 수 없다. 수갑을 찬 듯, 앞으로 내민 양손 위에 어두운색의 코트가 덮여 있었다. 여경 두 명이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있었다.  - P173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서는 평소에 볼 수 있던 생생한 무언가가 사라져 있었다. 혹은 의도적으로 가면 너머에 은닉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F*의 본명을 밝히고, 대형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서에 체포된 경위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주범은 그녀의 남편이고, 며칠 전에 이미 체포되었다. - P173

 그런데도 F*와 그 경이적으로핸섬한 남자가 한 지붕 아래 - 다이칸야마의 세련된 맨션에서 -평범한 부부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매우 곤혹스러워지는 것이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도 뉴스로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엄청난 미추의 격차에 경악했을 테지만, 내가 그때 느낀 위화감은 훨씬 개별적인 것이자 깊고 국소적인 것이었다. - P174

두 사람이 체포된 혐의는 자산운용 사기였다. 대충 투자회사를 날조해서 높은 이율을 약속하고 일반 시민에게서 자금을 모아서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끌어온 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굴리며 돌려 막는 조잡한 수법이다.  - P174

 그 남자와의 관계성에 범죄의 소용돌이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어떤 부정적인 힘이 내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그녀의 개인적인 악령이 몰래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P175

많은 사람은 어째서인지 진부한 거짓말에 이끌린다. 혹은 거꾸로 그 진부함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사기꾼이 끊이지 않고,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 또한 끊이지 않는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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