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
라는 말은 아마도 공정한 표현이 못 될 것이다. 그녀보다 추한외모의 여자는 사실 그 밖에도 많을테니까. 하지만 내 인생과어느 정도 친밀한 관련을 맺고, 내 기억의 토양에 나름대로 뿌리내린 여자들 중에서는, 그녀가 제일 못생겼다고 해도 큰 지장이 없지 싶다. - P151

그녀를 가령 ‘F*‘라 부르기로 하자. 여기서 본명을 밝히는 것은 몇 가지 디유로 적절하지 않다. - P151

그리고 만약 이 글을 본다면 당연히 자기 얘기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라고 표현해도, F*는 아마 조금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 P152

그런 의미에서, 그렇다, 그녀는 실로 범상치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범상치 않음은 결과적으로 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녀 주위로 모이게 했다. 자석이 오만 가지 형태의 유용무용한 쇠 부스러기를 끌어당기듯이. - P152

나는 아름다운 여자도 몇 명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이 사람은 예쁘다‘고 인정하고, 시선을 빼앗길 만한 여자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아름다운 여자들은 적어도 그중 많은 이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덮어놓고 즐기지는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 사실이 적잖이 신기했다. - P153

그에 비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혹은 못생겼다는것을 나름대로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어떤 아름다운 여자에게도 어딘가 보기 싫은 구석이 있듯이, 어떤 못생긴여자에게도 어딘가 아름다운 부분이있다. - P154

그런 작용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본질인지 혹은 그저 시각적 착각인지는 내가 판단하기 버거운 문제다.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F*는 그야말로 빛의 트릭스터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 P154

 나이도, 키도, 가슴의 모양이나 크기도, 그녀의 ‘아름답지 못함=못생김‘
앞에서는 전혀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 하물며 엄지발가락 발톱모양이나 귓불의 길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 P155

그가 나를 F*에게 소개했고, 우리는 함께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사람도 우연히 이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요컨대 셋 다 각자 혼자서 콘서트에와 있었던 것이다. - P155

F를 처음 보고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당연히, 정말 못생겼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척 당당하게 미소 짓고 있었기에 곧 그런 식으로 생각한 내가 내심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한동안 담소하는 사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녀의 외뮤에 나는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았다. - P155

 왜냐하면 그녀의 강한 개성 -혹은 ‘흡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평범하지 않은 외모가 있기에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F*가 풍기는 세련미와 추한 외모의 크나큰 격차가 독자적인 다이너미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 P156

그녀의 얼굴이 어디가 아름답지 않은가못생겼는가를 구상적으로 묘사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제아무리 온갖 말을 동원해 정밀하게 묘사하고 설명한들, 그녀의 외모가 지닌 특이성의 실체를 읽는 이에게 전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P156

 한 부분 한 부분에는 이렇다 할 결함이 없다. 하지만 그 부분들이 하나로 조합되면 누가 봐도 틀림없는, 유기적이고도 종합적인 추함이 생겨난다(좀 이상한 비유지만 그 과정은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케 한다). - P157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첫머리에서 행복한 가정은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썼는데, 여자 얼굴의 비추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싶다. - P157

하지만 F*가 업은 원숭이는 무척 다양한 얼굴을 가졌고, 털은동시에 몇 가지 빛깔을 결코 빛나지는 않을지언정복합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 원숭이의 인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날의 날씨며 풍향에 따라, 또한 시각에 따라 상당히 크게바뀌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 P158

두번째로 F*를 만났을 때, 나는 그 점을 어느 정도(아직 적절한 표현을 찾지는 못했지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의 추함을이해하는 데는 나름대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직관과 철학, 윤리 같은 것도 필요하다. 또한 아마 약간의 인생 경험도 요구될것이다. - P158

공연장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녀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때 F*는 여자 친구와 함께였다. 날씬하고 몸집이 작은 미인 친구였다. F*는 따지자면 키가 큰 편이다. 나보다 조금 작은정도다.
"저기, 좀 걸어가면 괜찮은 술집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같이와인이라도 마시는 거 어때요?" 그녀가 말했다. - P159

그렇게 나와 F * 둘만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낙담한 것은 아니다. 이미 F*라는 여자에게 상당히 개인적인 흥미를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F*는 무척 고상한 차림이었고, 파란색 실크 드레스가 한눈에도 고급스러웠다. 착용한 액세서리도 실로 완벽했다. - P160

나와 그녀는 그날의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는 데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다. - P160

우리는 피아노곡을 좋아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물론 오페라도 듣고, 교향곡도 듣고, 실내악도 듣는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피아노 독주곡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애호하는 작품이, 신기할 만큼 정확히 겹쳤다. - P160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는 가끔 너무 빤한 대목이 거슬린다. 해석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브람스의 피아노곡은 가끔 들으면 멋지지만, 매일 듣다가는 피곤해진다. 가끔은 따분하기도 하다.  - P161

우리가 이의를 제기할 바 없이 훌륭한, 이른바 궁극의 피아노곡으로 선택한 것은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몇 곡과 슈만의 피아노 작품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곡만 남긴다면 뭐가 좋을까? - P161

그래요. 딱 한 곡만 하고 F*는 말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가져갈 피아노곡.
어려운 질문이다.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슈만의 <사육제>"라고 나는 끝내 마음먹고 말했다. - P161

 나중에 밝혀진 바로, 양손 관절을 힘주어 열 번 꺾는 것은 그녀가 긍정적으로 흥분했을 때마다꼭 나오는 버릇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사실을 몰랐으니 그녀가 무슨 이유에선가 화가 난 줄 알았다. 아마 <사육제>라는 선택이 부적절했나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옛날부터 슈만의 <사육제>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 P162

 만화경처럼 아름다우며 인지를 초월해 지리멸렬히 펼쳐지는 슈만의 그 피아노곡을 남기기 위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평균율과,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소나타와 웅장하고도 차밍한 3번 콘체르토를, 눈 딱 감고 포기해버릴 수 있는가? - P162

"당신 취향이 꽤 괜찮네요. 그리고 그 용기에 감탄했어요. 음, 나도 그렇게 할래요, 슈만의 <사육제>만 남기기로."
"정말로?"
"네. 정말로, 나도 <사육제>는 옛날부터 무척 좋아했어요. 아무리 들어도 신기하게 질리지 않아요." - P163

노트에 따르면(나는 각각의 연주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사육제>를 연주하는 콘서트에 갔고, 총 마흔두 장의 <사육제> 레코드와 CD를들었다. 그리고 그 연주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했다. - P16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다‘ 하고 수긍할 만한 연주를 꼽으려 들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했다. - P164

연주가 아무리 기교적으로 완벽하다 해도, 그것을 구사하는 방법이 음악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육제>라는 곡은 그저 무기질적인 손가락 운동으로 전락해버린다. 매력의 태반이 사라져버린다. 사실 대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난곡이다.  - P164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생애를 통틀어 슈만의 음악을 즐겨 연주했지만, 어째서인지 <사육제>는 정규 녹음을 남기지 않았다. 스바토슬라프 리흐테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언젠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사육제>를 꼭 들어보고 싶다는 건 나 하나만의 소망이 아닐 것이다. - P164

참고로 슈만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 그 음악의 훌륭함을 알아준 이는 거의 없었다.  - P164

기성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새로운 낭만파 음악을 시도하려 했지만, 많은 동시대인의 눈에는 확실한 기초와 내용이 결여된, 익센드러한 작품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대답할정도의 익센트리시티가 낭만파 음악을 전진시키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지만, - P165

물론 <사육제>만 들은 것은 아니고 때로는 모차르트도 듣고 브람스도 들었지만, 직접 만나면 반드시 누군가의 <사육제>에 귀기울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내가 서기를 맡아서 우리의 의견을 요약하고 기록했다. 그녀가 우리집에 온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그녀의 집으로 가는 쪽이 훨씬 많았다. - P165

열 살 정도 아래의 이성과 그렇게 자주 만나면 보통은 가정에서 파란이 일 만도 한데, 내 아내는 그녀에게 조금도 신경쓰지않았다. 무관심의 가장 큰 이유가 그녀의 외모였음은 굳이 말할필요 없으리라. - P166

F*의 남편을 만난 적은 없다(그녀에게 자식은 없었다). 우연히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남편이 부재중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남편이 없는 시간을 골라 나를 집으로 불렀는지. 그도 아니면 남푠이 대부분의 집을 비우는 건디는 알 수 없었다. - P166

또한 그녀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어느 지방 출신이고, 어떤 가정에서 자랐고, 어떤 학교를 나와서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개인사에 대해 질문하면 모호하게 얼버무리거나 말 대신 미소로ㅍ응할 뿐이었다.  - P167

하지만 음악 이외의 면에서 그녀는 내게 거의 수수께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녀는 자기가 말할 생각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부추기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 P168

그녀는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중략)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살던 사람이니까." - P169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뗄 수 없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살짝 미소 지었다. "하지만 설령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아래 또다른 민낯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 P170

"하지만 그런 것을 볼 수 있었던 로베르트 슈만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어. 매독과 분열증과 악령들 때문에."
"그래도 이렇게 환상적인 음악을 남겼잖아. 다른 사람들은 쓸수 없을 비범한 곡을 썼어." 그녀는 말했다. - P170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라디오방송에서 슈만의 소나타 F단조를 녹음한 적 있어." 그녀가 말했다. "그 얘기 들어봤어?"
"아니, 못 들어온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슈만의 그 3번 소나타는 듣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이나 (아마도) 적잖이 에너지가 소비되는 곡이다.  - P171

나는 그녀를 어떤 의미에서는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성적인 관계를 갖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아내의 판단이 맞았던 셈이다. - P171

내가 그녀와 자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그 가면의 미추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 P172

텔레비전에 나온 그녀를 처음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그때 나는 내방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여자친구가 뉴스에 나오는데?" 아내가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F * 라는 이름을 입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다. - P172

F*는 경찰서로 보이는 건물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서, 짙게 선팅한 승합차에 올라타는 참이었다.
그 짧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의심의 여지 없이 F*였다. 웬만해서는 그녀의 얼굴을 착각할 수 없다. 수갑을 찬 듯, 앞으로 내민 양손 위에 어두운색의 코트가 덮여 있었다. 여경 두 명이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있었다.  - P173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서는 평소에 볼 수 있던 생생한 무언가가 사라져 있었다. 혹은 의도적으로 가면 너머에 은닉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F*의 본명을 밝히고, 대형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서에 체포된 경위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주범은 그녀의 남편이고, 며칠 전에 이미 체포되었다. - P173

 그런데도 F*와 그 경이적으로핸섬한 남자가 한 지붕 아래 - 다이칸야마의 세련된 맨션에서 -평범한 부부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매우 곤혹스러워지는 것이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도 뉴스로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엄청난 미추의 격차에 경악했을 테지만, 내가 그때 느낀 위화감은 훨씬 개별적인 것이자 깊고 국소적인 것이었다. - P174

두 사람이 체포된 혐의는 자산운용 사기였다. 대충 투자회사를 날조해서 높은 이율을 약속하고 일반 시민에게서 자금을 모아서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끌어온 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굴리며 돌려 막는 조잡한 수법이다.  - P174

 그 남자와의 관계성에 범죄의 소용돌이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어떤 부정적인 힘이 내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그녀의 개인적인 악령이 몰래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P175

많은 사람은 어째서인지 진부한 거짓말에 이끌린다. 혹은 거꾸로 그 진부함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사기꾼이 끊이지 않고,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 또한 끊이지 않는다. -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