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관‘이란 그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가와미나미의 가슴은 이상하게 설레고 있었다. 암흑관・・・・・・ 암흑관? 설마 설마 ・・・・・ 하는 그런속마음을 뻔히 들여다보듯이 작은 외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도미시게 형님한테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말이야." - P54
"그건 그 나카무라 세이지라고 하는・・・・・…." "으음, 그런 이름이었냐?" 작은 외할아버지는 또 씩 웃으며 말했다. "자 한잔 해라. 다카아키." 따라 준 술을 시키는 대로 비우고 나서 가와미나미는 약간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그 암흑관이란 저택도 나카무라 세이지가?" - P55
"도미시게 형님한테 사건 이야기를 들은 순간, 오래 잊고 있던 그 저택 이야기가 생각나서 계속 마음에 걸리더구나. 나카무라 뭐라는이름 때문에도 기억이 나지만, 그 저택-암흑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고 말이야." - P55
작은 외할아버지는 "그래"라고 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술잔에 새로 술을 따랐다. "끔찍한 사건이 몇 번이나 일어났던 집이란 소문이 있었어.-아, 다카아키. 너도 한 잔 더 할래?" 몽롱한 뇌리에 본 적도 없는 저택, 암흑관의 그림자가 떠올라 불규칙하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계속 출렁거렸다. - P56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가슴에 걸쳐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안전벨트를 묶은 자리다. 벨트를 벗기려고 들어 올린 왼손에서 다른 아픔을 느꼈다. 눈을 돌려 손을 보고, 저도 모르게 신음을 했다. 빨갛다. 피가나고 있었다. 손등에 꽤 큰 상처가 났다. 깨져 떨어진 유리 파편에 벤것일까? - P57
그런데, 아까 그것은 대체? 살펴보니 타이어는 네 개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 펑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 지진이었을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숲의 서늘한 공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조용하다. - P58
다시 한숨을 내쉬며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고, 가와미나미는 차를 등졌다. 쓰러진 풀과 나무에 난 흔적을 더듬어 원래 달리던 길로 돌아갔다. 이 길을 더 가면 문제의 저택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 P60
얼마간 걷다가 I** 마을 상점 주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얼굴 상처 자국을 쓰다듬던 그 손의 움직임. "조심하게"라고 반복하던 그 충고, 그 목소리에 겹쳐져 시시야 가도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조심해, 코난 군. 이제 ‘걱정할 것 없다. 그냥 구경하러 가는 것일 뿐이니까‘ 라고는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 P61
15분도 채 안 걸었을 때였다. 길가에 낡은 팻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혹시 조금 전의 지진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낡은 사각 나무 팻말에, 붉은색 페인트로 적은 빛바랜 각진 글씨 -.
여기부터는 우라도 가문 사유지 무단출입 금지 - P62
요즘 연락이 뜸하기는 했는데, 어디 멀리 가기라도 한 걸까? 그러고 보니 전에 올 가을에는 오이타에 있는 고향집에 잠깐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지금 고향에 가 있는 걸까? 한참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시시야는 역시 부재중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전화를 걸어볼 만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구마시로 슌노스케神代舜之介. - P63
근대 건축사를 전공한 구마시로 씨는 세이지를 직접 담당한 지도교수는 아니었지만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세이지와는 ‘왠지 뜻이 맞았던 모양이다. 연구실 출입은 물론 요코하마에 있는 구마시로씨의 집에도 몇 차례 놀러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 P63
가와미나미가 이름을 대자 히로요는 "어머, 오래간만이네요"라며 기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지내세요? 전 이제 곧 입시라 책을 많이 읽을 순 없지만, 그래도 시시야 선생님 작품은 모두 읽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제가 대학에합격하면 가와미나미 씨와 시시야 선생님도 불러서 축하 파티를 하자고 벌써 계획을 세우고 있다니까요.….…." - P64
"아하, 또 나카무라 군 이야긴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하겠지. 그래. 뭘 묻고 싶은 거지?" "예, 그게 말입니다………." 가와미나미가 구마모토 산속에 있다는 암흑관에 대해 이야기하자. 구마시로 교수는 "으음" 하며 낮게 신음했다. - P65
"글쎄, 어떤 이야기였더라. 원래 있었던 저택의 보수인지 개축인지, 사정이 있어서 그런 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고 분명히・・・그 이상은 아무리 물어도 소용이 없었다. 가령 ‘암흑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물인가 주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 뒤 그 건물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예정에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군"이란 말이었다. - P66
구마모토 산속에 암흑관이라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관이 있다. 내일 혼자 찾아갈 생각이다ㅡ라고.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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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 풍경 자체가 숨을 죽이고 숲 속에 묻혀 있는 것 같았다. 호수가 거기 있었다. 낮게 드리웠던 구름이 어느새 옅어져, 선명한 저넉놀이 펼쳐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붉게 물든 호수가 괴이한 빛을내고 있었다. 호수 위에 섬이 떠 있었다. 성벽처럼 돌을 쌓아올린 벽이 둘러쳐져있었다. 그 너머에 있는 저것이- 저것이 암흑관인가? - P67
암갈색 석재를 쌓아올린 벽에 검게 칠한 평평한 지붕. 여기서는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뭐랄까, 거인을 위해 주문한 돌로된 관해 같은 느낌이었다. 건물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오두막이라고 부르기에는 꽤 중후한 모습이었다. 길 쪽으로 작은 현관이 있었고, 검게 칠한 문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가볍게 노크하면서 가와미나미는 소리쳐 불렀다.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 P68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돌로 쌓은 벽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건-이것도 조금 전 지진 때문일까? 무너진 상태를 보니 며칠전이나 예전에 무너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도 안 계세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 P69
가와미나미는 잔교로 향했다. 배가 한 척 있었다. 고물 왼쪽에 노가 달린, 손으로 젓는 작은 배가 잔교의 말뚝에 로프로 연결되어 있다. 섬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잔교는 상당히 낡아 있었다. - P69
해질녘 호수에 뜬 섬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가와미나미는 문득 의문에 휩싸였다. 대체 나는 무엇을⋯⋯⋯⋯⋯ 의문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두려움이 되어 점점 부풀어올랐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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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부터 높은 석축 담을 따라 완만한 경사의 돌계단이 놓여있었다. 말하자면, 이 섬 전체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인 모양이었다. 가와미나미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지만, 역시 숨이 차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도중에 한 번 벽에 기대어 쉴 수밖에 없었다. - P71
드넓은 집터였다. 얼마나 넓은지는 여기서 봐서는 짐작을 할 수 없다. 문에서 시작되는 오솔길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정원수 사이를지나 안으로 이어진다. 흔히 저녁놀이 질 무렵 귀신들이 움직이기시작할 때라고 하는데, 그에 어울릴 정도로 괴이한 어두컴컴한 공간에 얼핏얼핏 드러나는 건물의 그림자는 날갸를 펼치고 대지에 엎드린 거대한 박쥐를 연상케 한다. - P71
(전략), 어둠 속에 녹아들듯 서 있는 그 검은 탑 앞으로 뻗어 있었다. 원형도 네모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다각형의 탑이었다. 같은 각도로 꺾어진 같은 폭의 벽이 여러 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셀 필요도 없이 가와미나미는 그 벽면의 숫자를 금방 눈치챘다. -열 개. 십각형 탑이다. 이것은. - P73
희미하게 스며드는 바깥의 빛에 이끌려 가와미나미는 창문 하나로 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열자 좁은 발코니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 빛깔을 잃을 것 같은 검붉은 하늘이 보였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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