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경 마침내 심문을 위해 카타리나 블룸을 아파트에서 연행할 때, 결국 그녀에게 수갑은 채우지 않기로 했다. 바이츠메네는 수갑을 채우라고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플레처여경과 자신의 조수 뫼딩과 함께 잠깐 대화를 나눈 후 그러지않기로 결정했다. - P23

 "내 이름은 카타리나 브레틀로이고, 결혼 전 싱은 블룸입니다. 나는 1947년 3월 2일 쿠이르 지방의 마을 게멜스브로이히에서 태어났습니다. (후략) - P34

"(전략) 1961년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모인, 쿠이르 출신 엘제 볼터스하임 부인의 도움으로 그곳 게르버 씨의 정육점에서 가정부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거기에선 이따금 판매 일도 도와야 했습니다. 1962년에서 1965년까지는 대모인 볼터스하임 부인의 도움과경제적 후원으로 그녀가 교사로 일하고 있던 쿠이르 생활과학아카데미에 다녔고, 아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후략)" - P24

"(전략) 페너른 박사님은 나에게 야간 강습 및 평생교육과정을 다니도록 허락해 주었을 뿐 아니라 국가가 공인한 가정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박사님은 매우친절했고 아주 아량이 넓었습니다. 시험을 치른 후에도 나는 그집에 머물렀습니다. 1969년 말, 페너른 박사님은 회계 업무를 담당했던 대기업들의 엄청난 탈세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습니다. (후략)" - P25

나한테 그동안 저축해 둔 7,000마르크 정도가 있었고, 블로르나 부부가 30,000마르크 신용 대출에 보증을 서 주었기때문에, 1970년 초에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 내가 매달 부담해야 할 최소 금액이 대략 1,100마르크에 달했지만,
블로르나 부부가 월급을 계산할 때 내 식대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심지어 매일 먹고 마실 것을 슬쩍슬쩍 쥐여 주어서, 나는 아주 절약하며 살 수 있었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었습니다. - P27

세무서에는 자영업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세금과 보험금은 내가 직접 지불하고, 소득세 신고 등의 일은 전부 블로르나 사무실에서 무료로 처리해 줍니다. 1972년 초부터 나는 1968년형 폴크스바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P27

하흐의 말대로, 그녀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할수도, 이런 심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게 분명하다. 바이츠메네가 커피와 빵을 맛있게 먹고 나서 와이셔츠 깃부분의 첫 단추를 끄르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아버지처럼 보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아버지처럼 행동했을 때, 블룸은자신을 감방으로 호송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 P28

 오전에 아파트 욕실에서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욕실 문 앞에서 감시했던 두경찰 중 한 명이 그녀에게 "한 잔 대접하겠다"고 했음에도, 그녀는 한사코 자신이 돈을 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 일로 두 경찰과 플레처 부인은 카타리나 블룸이 유머러스하지는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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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이 오래 걸린 까닭은, 카타리나 블룸이 놀랄 정도로 꼼꼼하게 모든 표현을 일일이 검토했고, 조서에 기록된 문장을 하나하나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 P30

블로르나 부부를 가리킨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놓고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벌어졌다. 조서에는 "나에게 친절한"이라고 쓰여있었는데, 블룸은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선량한"이라는 단어가 유행에 뒤진 것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이 단어 대신 "호의적인"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그녀는 화를 냈으며, 친절과 호의는 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자신에게 보여 준 블로르나 부부의 행동을 선함으로 느꼈다고 주장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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