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 (전략) 나는 페드랄베스가 아니라 굳이 슬픈 추억이 서려 있는 산 코스메 같은 동네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중략) 지구인들은 여러 범주로, 특히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 중 하나다. 내가 보는 부자와 빈자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이런 것 같다. 부자들은 그들이 가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손에 넣거나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돈을 내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돈을 낸다. 부자들이 향유하는 면세는 이전부터 내려오거나 최근에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거나 속임수일 수도있지만, 결과적으로 다 똑같다. 한 - P27
21:30 우주 비행선으로 돌아가야겠다. 내가 페드랄베스 수도원 앞에서 나를 해체하는데, 바로 그때,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오던 수녀가 내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한다. - P28
12일
08:00 구르브, 여전히 연락 없다. 비가 내린다. 세찬 비다. 바르셀로나에 비가 내릴 때는 단순히 내리는 게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퍼붓는다. - P29
09:10 나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자 텔레비전에 눈길을 던진다. 출연자들은 다양한데, 하나같이 인간들뿐이다. 가만히들여다보니 우리 별에서 다들 좋아하는 퀴즈 게임과 유사하지만 내용은 훨씬 조잡하다. - P29
09:55 나는 훌리오 로메로 데 토레스로****(그의 그림에 나오는 우산을 쓴 모습)으로 변신하고 동네에 있는 바르*****로 간다. 나는베이컨에 달걀 프라이 두 개를 후딱 먹어 치우고 조간신문을뒤적이기 시작한다. 지구인들은 개념 인지 시스템이 지극히 원시적이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문을 통해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 에스파냐 코르도바 출신의 화가.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물화를 남겼다. ***** 형태와 종류가 다양한, 대중적이고 전통적인 에스파냐식 소규모 카페나 레스토랑. - P30
10:30 카라히요*를 마셨더니 왠지 씁쓸해진다. 나는 비행선으로 돌아와서 파자마를 입고 몸을 누인다. 오늘은 하루 종일쉬어야겠다. 나는 무료한 시간도 때울 겸 지구 안팎에서 명성이 자자한 현대 에스파냐 소설에 관한 체계적인 책 읽기에 들어간다.
* 뜨거운 커피에 독한 술을 가미한 음료 - P31
13:50 나는 시에라 모레나 저축은행*에 들어선다. 업무 종료십분 전이다. 지금 나는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피오 12세**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다. 은행은 신뢰를 중시하는곳이다.
* 작가가 지어낸 가상의 은행. 시에라 모레나 지역은 한때 절도범들의 피신처였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가톨릭 교황 - P32
13:55 (전략), 이런저런 명목으로 최고의 이자와 혜택과 재정 수익이 보장된다는 내용도 덧붙인다. 나는 25세타짜리 동전을 예치금으로 내민다.
13:57 창구 직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한참 열을 올리던 입이 닫힌다. 창구 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 P32
13:59 당좌 예금 계좌가 열렸단다. 나는 업무 마감일 초전에 단말기를 조작한다. 25 페세타에 ‘0‘을 열네 개나 더 붙이는것은 나한테는 일도 아니다. 나는 유유히 은행을 나선다. - P33
14:45 나는 잠시 (십오 분 동안) 고민하고 있다. 나 혼자서 어물전 잔치를 벌일 것인가. 나는 잔치를 미루기로 한다. 구르브가 돌아오면 규율을 어긴 벌을 주기 전에 함께 즐거운 식사를하면서 해후의 기쁨을 나누어야겠다. - P33
17:00 식품 매장에서 흑오리 햄 칠백 개를 구입한다.
17:10 야채 매장에서 당근 0.5킬로그램을 구입한다.
17:20 자동차 매장에서 마세라티 한 대를 구입한다.
17:45 가전제품 매장에서 가전제품을 종류별로 모두 구입한다. - P34
18:30 주류 매장에서 1952년산 와인 바론 모우초이르 모케다섯 병과 가정용 와인 엘 펜타테우코 8리터짜리 한 병을 구입한다.*
*작가가 지어낸 가상의 와인들. - P34
19:00 보석 매장에서 금장 롤렉스 손목시계를 구입한다. 자동 태엽 방식이자, 방수성이자, 반(反)자성이자, 절대 내진성이란다. 하지만 나는 시계를 ‘인 시투(in situ)‘, 즉 ‘바로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낸다. - P35
20:00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는 방금 전에 쇼핑한 모든 물건을 분해한 다음,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채 홀가분하게 걷기 시작한다. - P35
21:03 빗방울이 떨어진다. 딱 네 방울이다. 그러더니 이내 무지막지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하수구를 빠져나온 생쥐들이 콜론**으로 기어오른다. 나 역시 가까운 타스카***로 몸을 피한다. - P36
** 콜럼버스 광장에 세워진 콜럼버스 탑을 가리킨다. ‘콜론‘은 콜럼버스의 에스파냐식 이름이다. *** 대중적인 선술집. - P36
21:10 밖에서 흠뻑 맞은 빗물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나는 비노 틴토**를 한 잔 주문한다. 굳은 몸을 술로 데울 요량이다. 나는 꼬치 막대기로 타파스 *** 한 조각을 찍다가 흠칫놀란다.
** 검붉은 포도로 빚은 에스파냐풍 적포도주. ***다양한 요리를 접시에 조금씩 담아 내놓는 에스파냐의 대표적인 술안주이자 간식. - P37
21:30 (전략) 그렇지만 그들로서는 이런 식의 기본적인 문장조차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109328745108y34-19 <poe8vhqa9enf087qjnrf-09aqsdnfňn9q8w3r4v21dfkf=q3wy oiqweq3u 109-853491926rn Infp24851ir09348413k8449f385j9c830c82 = 34 utt2egu-34851mfkfg-231fgklwhgq0i2ui34756-13ir2487-2349r20i45u62-4852ut-34582-9238v43 597 46 82 = 3t984589672394ut945467 = 2-3tugywoit= 238tej 93 46 7523fiwuy 6-23f3yt-238984rohg-2343ijn87b8b7ytgyt6543766687by79 - P37
21:30 (전략) 지구인들은 말을 할 때 오만상을 찌푸리고 손짓 발짓을 동원하다가 급기야 괴성까지 내지른다. 그들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한계성 탓이다. - P38
21:50 (전략). 그런데와인 색깔이 이상하다. (중략) 그러나 나는 트리니트로톨루엔**이 확인되자마자 분석을 포기한다. 종업원이 빈 잔을 다시 채워 준다.
**강력 폭약(TNT) 성분. - P38
22:00 내가 씩 웃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손님이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게 아니라 느닷없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실없이 웃었다고 대답한다. - P38
22:05 (전략). 교황의 외모(와 실체)로 감추어진 나를 알아본 것이다. 그러더니 구도자가 될 거라고, 구도하는 자는 신앙심이 깊다고 말한다. - P39
22:12 신앙심이 돈독한 손님이 나한테 그런 말은 뻥끗도 하지 말라고, 내가 술값을 냈으니 안주는 자기가 계산하겠다면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안주도 내가 주문했고, 그러기에 계산도 내가 해야 한다고 우긴다. - P39
22:24 여태 카요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참다못해 재떨이로 계산대를 내리치면서 항의한다. 그 바람에 재떨이와 계산대의 대리석 상판이 깨진다. 종업원이 다시 와인을 내놓는다. 그러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손님 한 사람이 답례로 솔레아*를 몇 곡 부르겠다고 한다.
*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적인 노래와 춤 - P40
22:41 (아마도 22시 41분이었을 것이다.) 노래하던 손님이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다가 알본디가스* 접시에 틀니를 떨어뜨린다. 그런데 노래하던 손님이 틀니를 주우려고 접시에 손을 대자, 그를 지켜보던 종업원이 케소 데 볼라"로 그의 머리를 때리며 이제 그만하라고, 이번 주만 해도틀니로 사기 행각을 벌여 알본디가스를 여덟 접시나 훔쳐 먹었다고, 그렇지만 자기는 그런 사람(이해를 못 할 사람)이 아니라고, 장부에 기입하겠다고 경고한다.
* 아랍에서 유래한 에스파냐풍 미트볼. - P41
23:00 혹은 24:00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고 묻던 손님이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는 자기 생각이 잘못된 적이없고, 잘못된 생각을 끝까지 고집한 적도 없지만, 안타깝게도세 가지 불행스러운 일들이, 다시 말해 하나는 타고난 불운이. 다른 하나는 술과 도박과 여자에 빠진 것이, 마지막은 자신이원하지 않은 힘 있는 자들에 대한 원망이 자신의 성공을 옭아맸다고 한탄한다. - P41
??:?? 마침내 주방에서 내가 주문했던 카요스가 스스로 걸어 나오고 있다. 그사이 천박한 여자가 자기는 자신 있게 스스로를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이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끝내주는 여자였다고, 그로 인해 자기 구역에서 오클라호마의 폭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강변한다. - P42
??:?? (중략) 나는 울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눈물을 그치라고, 그녀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위로한 다음, 그녀와 기꺼이 결혼할 용의가 있지만 내가 외계인인 데다 다른 행성으로 가는 여정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안타까워하는데, 그녀는 남자들이 나처럼 그런 식으로 자기를 기만했다고 반박한다. - P42
??:?? (중략). 그러자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의 애인이, 그러니까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고 물었던 사내가 이제 됐다고(무엇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만 입을 다물라고 다그치는데, 그녀가 남의 말을 잘 받아치는 그녀가 자기 입을 다물게 하지 말라고, 자기를 낳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조차도그러지는 않는다고, 그가 자궁에서 나오지 않으면 대체 어디서 나왔느냐고 쏘아 댄다. - P42
그 와중에 솔레아를 부르던 가수는 손으로 알본디가스를 한 움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고, 종업원이 프라이팬으로 가수의 복부를 정확히 가격하여 배속에 들어갔던 것을(혹은 그것과 비슷한 것을)토해 내게 만든다. 그때다. 누군가가 들이닥친 것은 국립경찰두 명이다. 나는 경찰이 들고 있던 곤봉을 빼앗아서 다른 경찰을 때리고, 곤봉을 빼앗긴 경찰도 신나게 때린다. 그런데 상황이 심상찮다. 나는 서둘러서 나를 해체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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