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동물에게 의식이 있음을 옹호하는 누적 논증

(중략). 하지만 상식적 믿음을 버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것을 반대하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동물의 의식 문제라는 특정한 경우나 일반적인 경우나 할 것 없이 상식에 호소하는 일이어떤 믿음이 진리임을 혹은 합당함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 P132

두 번째 언급할 점은, 이 또한 앞서 말했지만, 동물이 정신적 삶을 영위함을 함의하는 방식으로 동물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일상 언어가 상황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32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언어가 교정이나 개선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에 기댄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상 언어에 기대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일상 언어의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고쳐야 하는 강력한 이유를 제시할 입증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 P132

그러나 우리가 동물에게 정신적 삶을 부여하는 말하기 방식이 명쾌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방해가 되는가? 동물에 대해 좀 더 명쾌하고 좀 더 신중하고 덜 ‘의인화하여‘ 말하는 방식이 있는가? 이에 답하고자할 때 오늘날의 심리학자 헵(D. O. Hebb)의 발견보다 더 적절한 것을 찾을수는 없을 것이다. - P133

그러나 감정과 태도에 대한 ‘의인화한 서술‘이 허용되자,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이점들을 빠르고 쉽게서술할 수 있게 되었고, 신참 연구자들은 이 정보를 가지고 동물을 별문제없이 다룰 수 있었는데, 이는 그러한 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현대 철학자 개리스 B. 매튜스(Gareth B. Mattews)는 협의 발견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자들은 방법론적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어떤 동물은 두려워하고, 또 어떤 동물은 신경질적이고, 또 어떤 동물은 부끄러워한다는 데에 꽤 쉽게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동물이 성미는 급하지만 인간에게 우호적이라고 자연스럽게 묘사했고, 또 다른 동물은 우리가 흔히 말할 때처럼 인간을 미워한다고 묘사했어요.⁴²

42) D. O, Hebb, "Emotion in Man and Animal," Psychological Review 53(1946): 88(GarethB. Matthews, "Animals and the Unity of Psychology." Philosophy 53, no. 206[October1978]: 440)에서 인용. - P134

협과 그의 동료들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여러 동물들에 대해말할 때 일상적으로 쓰는 정신주의적(mentalistic) 언어 대신에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비정신주의적(nonmentalisic) 언어를 사용할 경우 아무것도얻지 못하고 상당히 많은 것을 잃게 되리라는 것이다. 동물에 대해 말할때 일상 언어가 적절하고, ‘의인화된 서술이 없는 언어가 실패한다고 해서그 자체가 동물이 정신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 P134

동물에 정신적 삶을 부여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과 관련해서 언급할 세번째 점은 (최소한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에서) 단지 인간에게만 의식을한정해서 부여하려는 데카르트와 같은 시도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의식과관련해서 인간이 특별하다고 본다면 그런 주장을 지지하는 논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증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 - P134

그렇다면 인간이 그리고 인간만이 의식적이라는 논제를옹호할 수 있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이는 비생물학적이고 비생리학적이며 비해부학적이라고 일컬어지는어떤 것, 한마디로 인간의 비육체적인 특성에 의존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선택한 길인데, (비물질적인) 인간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았을 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P135

물론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이 우리가 동물이 정신적 삶을 영위한다고 생각하는 바와 상충한다면, 우리의 구상은 틀어지게 될 것이다.
예컨대 며칠 굶은 생쥐에게 치즈를 줄 경우 생쥐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비데카르트주의자들은 이 동물이 결국 제멋대로 구는 ‘기계‘가 아닐까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 P135

. 이렇게 보았을 때, 동물의 행동방식은 그 자체가 동물이 정신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할 근거를 제공한다. - P136

상식에 입각한 판단, 그리고 정신주의적 용어를 이용해 동물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분명히 유용하다는 사실이 진화론이 함의하는 바에 부합하듯이, 이러한 발견 또한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와 부합한다.  - P136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이유를 들어 어떤 동물에 의식이나 정신적인 삶을 부여할 수는 없다. 이렇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것을 모두 모으면 동물의 의식에 대한 누적 논증(cumulativeargument for animal consciousness)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된다. 그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동물에게 의식을 부여하는 것은 상식적 세계관의 일부이다. 이런 믿음을 버리려는 시도는, 데카르트의 시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적절한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2. 어떤 동물에게 의식을 부여하는 것은 일상적인 언어 사용에 잘 부합한다.
협과 그의 동료들의 실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말하기 방식을 개선하고 변경하려는 시도 역시 적절한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3. 동물들에게 의식을 부여하는 것은 동물이 불멸적(비물질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의하거나 가정하지 않으며, 그래서 사후 세계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제시되고 옹호될 수 있다.
4. 동물의 행동 방식은 동물이 의식을 갖는다고 보는 것과 일관된다.
5. 의식에 대한 진화론적인 이해는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 인식 능력을 부여하는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 P136

1.10 어떤 동물이 의식이 있는가?

누적 논증은 위의 1부터 5까지의 논점을 통해 동물에게 의식을 귀속시키는 입장이 강화될 경우 그러한 귀속을 정당한 것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해 다음 조건이 만족되면 어떤 동물이 의식이 있다고 본다. (1) 의식 귀속이 상식적 세계관과 일치한다. (2) 정신주의적 용어로 동물에 대해 말하는것이 일상 언어와 잘 어울린다. (3) 동물에 의식이 있다고 본다고 해서 동물에 비물질적인 마음(영혼)을 부여하는 견해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4) 동물의 행동은 동물에 의식을 귀속하는 것과 일관된다. (5) 동물에 대한 상식적인 믿음들,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말하기 방식, 동물의 행동은 모두 진화론의 원리에 입각해 옹호할 수 있다.  - P138

의식의 유무를 가늠하는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를 결정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자신 없어한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서의 우리의 판단이 쓸모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의 나이와 키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이가 들었고 키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지않는가? - P140

의인화와 인간 쇼비니즘

. 가령 과부인 에임스가 "우리 고양이가 중동의 긴장 상태와 핵 쓰레기 저장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먹지 않고있어요"라고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가능한 한 최대한 점잖게 표현하자면이 경우 과부는 고양이의 지적인 교양에 다소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140

앞서 인용한 적이 있는 동물 생리학자 그리핀은 다시 한번 가감 없이 이러한 부분을 지적한다.

동물들이 정신 경험을 할 가능성은 종종 의인화라고 묵살당한다. (...) 정신경험이 단일 종에만 특별하게 부여된다는 이러한 믿음은 인색할 뿐만 아니라자만심이 가득 찬 생각이다. 다른 많은 특성들과 마찬가지로 정신 경험은 널리퍼져 있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더 커 보인다.⁴⁵

그리핀이 자만심이라는 낱말을 쓰고 있는 것에 특별히 관심이 간다. 그는 동물이 정신적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그들이 결점을 갖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45) 같은 책, p. 104. 강조는 추가함. - P141

다른 모든 형태의 쇼비니즘과 마찬가지로 인간쇼비니즘은 우리 자신에게 또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에게 가장 중요하거나 감탄스럽다고 생각되는 특성들을 우리 자신 또는 우리가 속한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개체들 역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거부한다. 이것은 남성 쇼비니스트들이 자신들만이 훌륭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 P142

1.11 요약과 결론

. 1절에서동물의 인식을 부정하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논의를 소개했고, 그의 입장에 대한 도전을 회피하려는 다양한 방법들을 개괄했다(1.2), 데카르트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간의 핵심적인 의견 차이는 동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관련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 P142

나는 데카르트에 반대하여, 언어 사용 여부를 의식을 갖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검사 방식으로 이용할 경우 몇몇 동물들(예: 침팬지와 고릴라)도 정신적인 삶을 가질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더욱 근본적인 측면에서 나는 데카르트가 의식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검사 방식에 의존하고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P143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도덕 이론은 인간이 정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가정한다(예를 들어 우리가 욕망이나목표를 가지고 있고, 만족하거나 좌절하고, 감정을 느끼고, 즐거움과 고통을 경험한다고 가정한다). 이를 가정하지 않을 경우 도덕 이론은 어떤 것에 대한 이론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제기될 수 있는 회의적인 도전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면서 인간이 정신적인 삶을 영위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동물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작업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 특이 사항은 아니다(1.6). - P143

이론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해 볼 경우(1.8), 데카르트의 입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만약 이론을 단순하게 유지한다면(즉 우리가 [인간과 비인간] 육체,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기본적인 지상의 실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데카르트의 입장은 자신이 비물질적으로 간주하는 마음이 어떻게 육체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 P144

논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의식의 소유 여부는 누가 또는 무엇이 비물질적인(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별개이다. 이에 따라 의식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질문은 종교적 편향성과 무관하게 접근할 수 있다. 동물의 행동은 그들을 의식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과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진화론은 전형적인 의식적 존재(즉 인간)와 가장 유사한동물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과 유사하다고 보는 견해를 지지한다. 다른 종류의 동물들도 의식적일 수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포유류가 의식적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인화가 아니다. - P144

 호모사피엔스 외에 다른 많은 동물을 정신적인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편견에 빠진 자들이며, 인간 쇼비니즘, 즉 우리(인간)가 너무 특별하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생명체라는 자만심의 희생양들이다. 이 장에서 제시한 논증과 분석을 통해 나는 이러한 자만심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⁴⁷

47) 조지 피처(George Pitcher)는 도움이 되는 비판을 해줌으로써 이 장과 다음 장에서 범할수 있는 수많은 오류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그의 도움에 감사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포기할 것을 조언한 몇 가지 착상을 그대로 유지했는데, 그 때문에 나는 내가 견지하는 모든 입장에 그가 동의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해야 할 또 다른 사람은 내 동료 해롤드 레빈(Harold Levin)이다. 그는 나와 함께 동물의 인식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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