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왜 사야마 쇼이치는 『열대』 첫머리에 일부러『천일야화』를 인용했을까요.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 말의 인용에 숨은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P162

아라비야 책방 주인이 그려준 약도 덕에 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호렌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리문 밖의 작은 선반에 낡은 도기며 목각 호테이가 늘어 놓여 있었습니다. 가게 앞에 노부부가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습니다.
저는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서 오세요."
귓전에서 속삭이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 P162

"멋진 곳이군요."
"감사합니다."
"아는 분이 자주 오셨다고 하던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전에는 기타시라카와에 있었다고 하죠?"
"저희 아버지가 계실 때군요. 제가 아직 어렸을 때겠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게를이전했습니다. 벌써 30년쯤 전이랍니다." - P163

훌륭한 상점은 반드시 하나의 닫힌 세계를 이루고 있는 법입니다. 언뜻 보면 맥락 없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지만 각 물건에 담긴 작은 이야기가 서로 공명해 불가사의한 조화를 자아냅니다. 호렌도가 딱 그런 곳이었습니다. - P163

 이곳 또한 『열대』 탄생의 자취일지 모릅니다.
가게 안을 둘러보던 저는 구석에 있는 작은 선반을 발견했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달마 인형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하나같이 - P164

저는 카드 상자를 열어봤습니다. 언뜻 보면 빈 듯 보였지만 낡아서 변색된 카드 몇 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앞쪽 카드에는 기이한 시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대는 밤의 날개로 새벽을 어둡게 하는구나."
그러나 그대는 내게 대답한다.
"아니, 한 조각 구름이 달을 감추었을 뿐." - P164

"이거 카드 상자죠? 오랜만에 보는군요. 지금은 쓰는 사람도별로 없을테죠."
"거기 있는 물건들은 아버지가 남긴 거예요. 왜 그런 걸 소중히 간직한 걸까요. 지금에 와선 알 수 없겠죠."
"그대로 보관하고 계시는군요."
"아버지가 거기 계시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저를 쳐다봤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눈은 상냥해 보이면서 불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 P165

"이곳을 가르쳐 준 것도 그 사람이거든요. 지금은 도쿄에서 살지만 전엔 요시다산에 집이 있었다더군요." - P165

주인의 표정이 부드러워진 듯 보였습니다. 그녀는 차를 제게권하며 말했습니다. "지요 씨라면 알죠."
"그러시군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요. 바로 얼마 전에도 오셨는데요."
저는 지요 씨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 P166

호렌도 주인이 들려준 것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긴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주었습니다.
"사야마 씨의 비밀 말씀입니다만, 그 사람이 모습을 감춘 것과 관계있을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모르겠군요." - P171

지요 씨의 아버지 나가세 에이조 씨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원래 사야마 쇼이치는 에이조 씨가 고용한 학생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었나. 사야마 쇼이치는 무엇을 감추고 있었나. 왜 모습을 감추었나. 그런 수수께끼들은 『열대』와 관계있나. 떠오르는 의문을 노트에 적어 봐도 연관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P174

"실은 지난번 뵈었을 때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답니다."
"뭐죠?"
"그날 지요 씨는 뒷문으로 도망치셨어요."
"도망쳤다고요? 왜죠?"
"모르겠습니다. 친구분도 놀라시더군요."
"......지요 씨는 혼자 오신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동행자는 호렌도 주인도 이제껏 본 적 없는 노년의 남자였다고 합니다. - P172

"이것저것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지요 씨가 오시면 이 전화번호로 연락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내일밤까지는 교토에 있을 예정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만." 저는 말했습니다. "뒷문으로 나가도 될까요?" - P173

걸음을 떼려는데 주인이 "잠깐만요" 하고 불렀습니다.
(중략)
"혹시 ‘보름달의 마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확인하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P174

‘보름달의 마녀‘라는 이름을 들은 게 우연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중략)
보름달의 마녀에게 간다.
그 말에는 분명히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 P175

밤의 날개. 그 아름다운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때 저는 제 기억 속에서 그 말을 찾아낼 때까지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됩니다. 스스로도 다소 편집증적이다 싶습니다만저도 어떻게 할 수 없더군요. 머리에 먼저 떠오른 것은 소설가 로버트 실버버그의 「밤의 날개Nightwings』라는 작품이었습니다. - P176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느닷없이 이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대는 밤의 날개로 새벽을 어둡게 하는구나.‘
그러나 그대는 내게 대답한다.
"아니, 한 조각 구름이 달을 감추었을 뿐."

(중략)
호렌도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목제 카드 상자. 거기에 남아있던 카드에 적힌 비슷한 글귀 - P176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제가 독립할 때 이전 가게 단골손님이 지어주셨답니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읽어본 적이 없지만요. 추리소설만 읽어서말이죠."
"『천일야화』라고요?"
"아세요? 『아라비안나이트』랍니다."
"이 책 말씀입니까?" - P178

주인은 제 문고본을 그녀에게 들어보이며 "마키 씨" 하고 불렀습니다. "이거 흔치 않은 손님이 오셨는데요."
"처음 아니에요?" 여자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가들었으면 기뻐하셨겠네요." - P178

(전략)
"할아버님께서 이 가게 이름을 지으셨다고 하셨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제가 『천일야화』를 읽게 된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거든요. 꽤 기이한 이야기인데요."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군요."
"흥미로워요." - P181

할아버지가 화가이셨기 때문에 제가 작업실에 자주 놀러갔거든요.
할아버지는 소위 고독한 예술가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느긋한 신선 같은 분이셨어요. 작업실에서 작업할 때 손주가 주위를 얼쩡거려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시며 ‘방해해 주는 편이 딱좋지‘라고 말하셨답니다.  - P181

원래 공업소였다 보니 작업실이 아주 넓었거든요. 할아버지는 그곳에 별별 물건을 다 가져다 놓으셨어요. 작품과 화구, 온갖 자료와 과거의 기록들도 있었죠. 게다가 할아버지는 취미가
‘발명‘이셨던 분이라 거기에 쓰는 도구도 있었답니다. 도움이되는 발명은 하나도 없었지만요. - P182

그런데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허락해 주지 않으신 게 있었습니다.
작업실 뒤에 작은 단층집이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 P182

. 포기하고 어머니한테 여쭤봤더니 "거긴 도서실이야"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어머니도 안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 P183

그러다가 제가 시조에 있는 화랑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돼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예요. 무척 슬펐지만 각오했던 일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된 게 이치하라의 작업실이에요.
할아버지는 그곳에 아무거나 다 가져다 놓으셨어요. 물건을 처분하는 걸 싫어하셔서 별의별 게 다 뒤죽박죽되어 있었어요. - P183

땀을 훔치면서 작업실을 정리하는데 어렸을 때 제가 그렸던 그림이 나와서, 할아버지는이런 것까지 안 버리고 갖고 계셨나 싶어 괜히 눈물이 그치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작업실 뒤에 있는 단층집을 ‘어쩌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 P184

"그 단층집이 어째 무서워요."
제가 그런 말을 했더니 부모님도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오빠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겁을 준 탓이라고 말하더군요. "내가 대신 열어주지."
"나도 가마." 아버지도 말씀하셨습니다. - P185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단층집은 마물의 보금자리도 뭣도 아니었어요.
그밖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안은 정말 쾌적한 ‘도서실‘이었던 거예요. 바닥에는 페르시아 양탄자를 깔았고 아주 편해보이는 소파며 앤티크 테이블, 램프가 놓여 있더군요. 그리고 세 벽에 전부 책꽂이를 짜 넣었고요. - P186

하나 마음에 걸린 건, 『천일야화』가 참 많다는 거였어요.
당신은 아시지 않을까 싶은데, 『천일야화』는 아랍어 원전을번역한 것, 영어로 번역된 버턴 판을 중역한 것, 마르드뤼 판에 갈랑 판 같은 프랑스어 판을 중역한 것도 있습니다.  - P186

다양한 번역판 『천일야화』를 빼면 나머지 책들은 잡다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옛날 책 같은 게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책도 있고, 일본 작가의 책이 있는가 하면 번역본도 있고, 하드커버가 있는가 하면 문고본도 있었습니다. 맥락이 전혀 없는거예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아무도 들여놓지 않을 정도였으니이 장서에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죠. - P187

"할아버지도 책에 뭔가 쓰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그렇군. 한번 볼까."
저희는 책꽂이 책을 훑어봤습니다.
제가 별 생각 없이 꺼낸 책은 이자와 나쓰키의 『마티아스길리의 실각マチアス•ギリの失脚』이었어요. 책장을 넘기다가 전 숨을 훅 들이마셨습니다. 천일야화 속에 이미 나타난다‘라는문장에 검은 밑줄이 그어져 있는 거예요. 옆에 있던 야나기 씨를 봤더니 야나기 씨도 놀란 표정으로 들고 있던 책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야나기 씨가 들고 있었던 건 요시다 겐이치의『서가기書架記』였죠, 옆에서 봤더니 차례 중에서 ‘마르드뤼 역 『천일야화』‘에 밑줄이 그어져 있더군요. 그 다음 제가 꺼낸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여뀌 먹는 벌레』였는데, 그 소설도『천일야화』와 관련된 부분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 P189

"그럴 만도 해. 별다를 게 없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놨으니까.
의식해서 찾아보지 않으면 놓치고 넘어갈 거야. 그나저나 이걸로 납득이 가는데 스티븐슨의 『신 아라비안나이트』가 있고 이나가키 다루호의 『일천일초이야기』있어. 『천일야도화』에서 촉발돼서 쓴 작품들이지." - P190

할아버지의 단순한 취미였을까요.
하지만 도서실에 모아놓은 막대한 책을 보다 보면 어쩐지취미만은 아닌 듯한 집념이 느껴지는 거예요. - P190

역을 향해 걷는데 야나기 씨가 중얼거렸습니다.
"건물이 어째 묘하군."
"야나기 씨 생각에도 그런가요?"
"그 문도 창문도 어딘가 이상해. 게다가 말이지, 자네하고 거기 있는 동안 줄곧 누가 쳐다보는 느낌이 드는 거야. 대체 뭐였을까." - P190

"도서실은 어떻게 됐는지요?"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 할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고싶어 거기에서 『천일야화』를 여러 번 읽었답니다. 온갖 이야기가 머리에 새겨졌어요. 혹시 임금님이 제 목을 베려고 하면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를 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할아버님께서 남기신 수수께끼는 풀렸습니까?"
수수께끼는 지금도 수수께끼예요." - P191

저는 미키 씨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물론 『열대』 때문입니다. 시라이시 씨는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가설을 기억하시는지요? 학파 멤버들이 읽은 『열대』는 모두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이본‘이었다는 가설 말입니다. - P193

제가 말을 마치자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네요"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윽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불안하지 않으세요?"
"뭐가 말이죠?"
"작가인 사야마 쇼이치는 사라졌고 지요 씨라는 사람도 사라졌어요. 같은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 생각은 안 드세요?" - P194

그 뒤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마키 씨가 쫓아온 겁니다.
"교토시 미술관에 가보세요." 그녀는 속삭였습니다. "참고가될지 모르겠지만요."
"미술관이라고요? 뭐가 있는데요?" - P194

"이런 시간에 죄송합니다. 이마니시라고 합니다."
"이마니시 씨?"
"호렌도에서 명함을 보고 연락 드렸습니다." 상대방은 말했습니다. "지요 씨를 찾으신다죠?"
그 순간 저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
"지요 씨 친구 분이시군요?" - P195

"그 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내일 만날 수 있을까요? 이마데가와 거리에 ‘신신도‘라는 커피집이 있습니다. 거기서 오후 1시는 어떻습니까?"
제가 당혹해하면서 승낙하자 상대방은 느닷없이 이런 말을했습니다.
"『열대』를 읽었습니까?" - P195

 지난밤은 너무 피곤해서 노트를 쓸 수없었기 때문에 자기 전에 단어만 먼저 메모해 뒀던 겁니다. 키워드만이라도 적어 놓으면 나중에 기억을 재현하기가 쉬워집니다. 단어들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어제 있었던 일을 되도록 정확하게 노트에 메모했습니다.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 P197

 말할 것도 없이 『천일야화』 말입니다.

아라비야 책방에서 읽은 『천일야화』
호렌도의 카드 상자에서 발견한 『천일야화』 속의 시
그 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폰토정의 술집 ‘밤의 날개‘
그 술집에서 『천일야화』 이야기를 한 마키라는 여성
그녀의 할아버지가 남긴 『천일야화』 관련 서적 컬렉션

폰토정 술집에서 마키 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 P197

조사해 보니 교토시 미술관은 헤이안 신궁 옆에 있고 호텔에서도 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마니시 씨를 만나기로 한것은 오후 1시이니 미술관을 둘러볼 시간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 P198

이득고 서양화가 전시된 큰 방에 들어갔을 때 안쪽 벽에 걸린 그림 한 장이눈에 띄었습니다. (중략)
소개문을 읽은 순간 전율했습니다.
<보름달의 마녀, 마키 노부오, 1984〉
그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 P199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홀로 황무지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이쪽을 등지고 황무지 너머로 이어지는 모래 언덕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군청색 하늘은 해가 진 다음 같기도 하고 해 뜨기 전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면 왼쪽 뒤로 하얀 궁전이 동그마니 그려져 있습니다.
사막의 궁전. - P199

문득 모래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해 눈을 떠보니 저는 어둑어둑한 공간에 있었습니다. 미술관 전시실과는 전혀 다른 장소인 듯했습니다. 눈이 점점 어둠에 익자 성당처럼 천장이 높은 홀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 P200

저는 놀라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림 속 사막의 궁전에 있었던 겁니다.
그때 홀 안쪽 어둠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 P200

모습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는 저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상대방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보름달의 마녀인가?"
그러자 발소리가 뚝 멎었습니다.
그리고 텅 빈 공간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케우치 씨세요?" - P201

"말씀드릴 게 많은데 시간이 없어요. 폭풍이 오거든요."
그러더니 당신은 서둘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케우치 씨가 교토로 가신 다음에 나카가와 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나카쓰가와 씨는 『열대』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어요. 『열대』는 실로 마술적인 책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열대』 안에 있다고요."
"『열대』 안에 있다고요?" - P202

 먹구름 속을 번개가 용처럼 내단고, 천둥이 우르릉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에 관해 생각난 게 있어요. 마왕이 하는 말인데…………‘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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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이 없는 술은 불법

 미국 정부는 사람이 마시는 알코올은반드시 곡물, 포도, 과일과 같은 천연원료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중략). 사실 석유로 알코올을 만들어도 천연알코올과 화학적으로 동일하고 안전하며 맛도 똑같다. (중략) 이유는 역사와 관계 있는데, 알코올값을 비싸게 유지하고, 주류 사업의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 P16

천연알코올을 이루고 있는 탄소는 식물에서 온 것이고, (중략)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우주에서 오는 우주선의 영향으로 방사성을 띄게 된다. 우주선은질소분자와 충돌해서 방사성탄소인 C-14로 바뀐다. - P16

전기차보다 빔산 배터리

(중략)
유명한 전기차인 ‘테슬라 로드스터‘에는 차체 전체 중량의 44퍼센트에 달하는 500Kg짜리 배터리가 탑재되어 있다. ID당 120달러로 치면, 배터리값만13만2,000달러다. 전기 자동차의 연비 계산은 16만km마다 교체해야 하는배터리의 가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는 테슬라 사에서는 3만 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수명이 다 된 배터리 수명은 3년)를 교체할 수 있다고 하지만여전히 배터리에 드는 연간 비용만 1만 달러나 된다! - P20

최근 소비자 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3년 동안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운행할 경우기름값을 2,000달러 정도 절약할 수 있지만 배터리 교체에는 1만 달러가 든다고 한다(나도 프리우스를 한 대 갖고 있지만 충전식으로 개조할 생각은 없다).
왜 아직도 굴러다니는 자동차 중 대부분이 석유 자동차인지, 전혀 신기할게 없다. - P20

다이아몬드보가 더 예쁜 큐빅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아름다움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그 아름다움 때문에 비싼 것이 아니라 그저 비싸기 때문에 비싼 것이다. (중략). 물리학자들은 큐빅이 좀 더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덜 반짝거리게 만들려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 P92

16퍼센트만 빛나는 백열전구

 일반 전구의 필라멘트에서 나오는 빛의 84퍼센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열방사, 즉 적외선이다. 전구는 필라멘트가 뜨거울수록 더 효율이 좋다. 효율이 좋다는 것은 에너지 중 더 많은부분이 가시광선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중략) 사실 필라멘트는 타는 것이 아니라 필라멘트의금속 성분이 고온에 조금씩 증발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금속이 증발하고 나면 필라멘트는 끊어진다. - P86

불규칙한 자기극

(전략). 극이 바뀌려고 할 때는 우선 몇 백 년에 걸쳐 자기장이 사라진다. 그 후엔 수천 년정도 실제로 자기장이 없는 시기가 이어지다가 자기장이 돌아오는데 종종반대 방향이 된다. 그런 경우를 ‘지자기 반전‘이라고 부른다. 만약 돌아온자기장이 원래와 같은 방향이라면 지자기 외유(magnetic excursion)라고부른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지자기 반전은 약 80만 년 전이었다. 이론은 많지만 아직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나도 내가 세운 이론으로 논문을 냈지만 아직까지도 옳은지 아닌지 밝혀지지 않았다.) - P104

유기농 채소가 더 위험하다

 (전략) 저명한 생화학자 브루스 에임스가 연구한 결과 식물들은 자신을 먹으려고 하는 벌레와 그밖의 생물들을 죽일 수 있는 독소를 만들어내서 저항하는 것을 발견했다. - P114

. 반면에 유기농 작물 재배자들은 자연 저항력을 가진 작물들을 고르는데, 달리 말하면 전신이 독으로 가득한 작물을 키우는 셈이다. 이런 독소가 농도가 낮을 땐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암을 유발할 수는 있다. - P114

TNT보다 강력한 초콜릿

 TNT가 폭약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에너지의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수천 분의 1초 동안에 에너지를 발산할 수있기 때문이다.  - P136

TNT 1g은 1kcal(킬로칼로리) 정도의 에너지밖에 없지만, 초코칩 쿠키1g (우리가 사랑하는 초콜릿, 버터, 설탕 덩어리 과자 말이다)은 5kcal나 된다. - P136

거울과 홀로그램

 거울과 홀로그램의 원리를 알아보자.
홀로그램에서는 레이저가 표면을 비추면 전자가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이는 전자는 빛을 만들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없는 물체를 보게 된다.
거울에서는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표면을 때려 전자가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이는 전자가 빛을 만들고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없는 물체를 보게된다.
설명이 거의 똑같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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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우리 쌀 100퍼센트에 우리 누룩을 쓰고, 감미료를 넣지 않은 막걸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의 주류(主流는 밀과 입국, 그리고 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술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술꾼의 깊은 고민이 아닐수 없다. - P249

‘재래식 막걸리‘가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 중 큰 부분은서민들과 함께해 온 시간일 것이다. 끼니를 때울 양곡도 모자라던 시절,
1961년 주세법 개정으로 탁주와 약주에 백미의 사용이 제한되고, 1966년에는 쌀을 사용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막걸리는 오로지 밀로만 빚게 됐다. - P249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렇게 만들어진 밀, 입국, 감미료 막걸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술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현대사의 질곡을 타넘었다. 1960년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우리 곁에 존재해 오고 있는 것이다. - P250

 할아버지인 故 이종진 창업주의 뒤를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동중 대표는 1978년부터 아버지를 도와 양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혼란스러운 것이 많았어요. 원료, 제조 방법을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하다 보니 처음에는 쌀로 만들던 것을 밀가루로 만들어라, 옥수수가루로 만들어라. 그러다가 쌀 생산량이 많아지니 다시 쌀로만들어라. 그러다 보니 술맛도 안정되지 않고 변화가 많았죠. 품질도 일정하지 않다 보니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술이 출고되는 일도 있었는데 특히나 여름철에는 그런 술이 달구지나 자전거에 실려 가다가 후발효가 일어나는 바람에 터져버리는 일도 많았죠" - P251

벽면에는 그때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19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정겹게 느껴질 만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탱크 앞에 길게 줄지어 있는 플라스틱 말통,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양푼 주전자,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호스로 그 통에 술을 채우는 일꾼, ‘양촌‘이라고쓰인 막걸리 통을 싣고 기다리는 소달구지와 자전거. 막걸리가 본격적으로 병입돼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78년이니, 그 이전의 풍경일 것이다. - P251

이동중 대표가 술을 내왔다. 양촌양조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만들어왔고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인 양촌 생막걸리다. - P252

"사람들 입맛이 그동안 단맛에 적응하다 보니, 술 만드는 사람들이 감미료를 과하게 넣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은 단맛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쓴맛만 가릴 정도로 넣습니다. 들어가는 감미료도 자연에서 추출한 효소 처리 스테비오사이드고요." - P252

(전략), 초기의 사카린에서 좀 더 천연 물질에 가까운 아스파탐으로, 그리고 아예 스테비아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자연 물질 스테비오사이드로 변화해 왔다. (중략). 이것을 넣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쟁은음식에 MSG를 넣는 것이 맞나 틀리냐 하는 것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옳고 그름보다는, 어느 정도의 가격대에 맞춰 어떤 제품을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 P253

"출고가가 1,500원입니다. 많이 싸죠. 막걸리의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가격 조정을 하려 해도 어렵습니다."
기존의 막걸리가 ‘서민의 술‘이라는 지위를 굳건히 지켜온 데는 이렇듯 서민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가격 정책과 그 가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양조업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양촌양조에서 부리는 가격의 마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술은 양촌 생동동주다 - P253

공정의 편이성과 술맛의 풍부함을 둘 다 놓치지 않기 위한 선대 양조사들의 연구의 산물이다. 이 술의 출고가는 3천 원대. 하지만 입에서는 옅은 사과와 바닐라의 향이 느껴진다.  - P254

 우렁이쌀은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이용해 재배한 친환경 무농약쌀을 말한다. 이동중 대표의 농업대학교 동기 중에서 그간 쌀농사만을 연구해 온 분이 농사지은 우렁이쌀을 원료로 2016년부터 우렁이쌀 손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P254

 또한 커다란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감미료 무첨가 막걸리에도 도전해,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찹쌀을 원료로 한 우렁이쌀 드라이를 내놓았다. - P254

"시중에는 비싼 술 많잖아요. 저희는 일반 소비자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가격을 많이 올릴 수가 없죠.
좋은 원료로 만들고도 저렴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술을 접할 수 있게 하는게 술 만드는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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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작품: 뉴욕

뉴욕은 유럽이고 아시아고 아메리카 대륙이에요.
뉴욕은 모든 것이죠.
-비비안이 이웃에게 한 말 - P103

비비안은 지구상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남을 곳을 촬영하기위해 간절한 마음을 안고 뉴욕에 돌아왔다. - P103

프랑스에서 가져온 박스 카메라를 들고서 비비안은 높은 산봉우리가 아니라 지붕을, 시골이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이전 실험을 바탕으로 위와 아래를, 그림자와 빛을 촬영했다. - P103

았다. 순수한 것, 뒤틀린 것 모두에서 아름다움을 찾았고, 사람들 대부분이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쏟아질 듯 풍성한 꽃도, 넘쳐흐를 것 같은 쓰레기도 모두 사진에 담았다. (중략). 대칭, 패턴, 질감은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비비안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비비안의 작품을 이루는 기본 요소였다. - P104

비비안은 할머니 외제니가 오래전에 일했던 롱아일랜드에서 선조의 유산을 물려받은 부유한 가정에 보모로 들어갔다. 첫 직장이었다. - P104

 이 긴 여름 동안, 비비안은 은행가 그렌빌 케인 Grenville Kane의 자손인워커 집안 아이들을 촬영했다. 이제 막 손질을 마친 정원의 산뜻한 잔디밭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가족 전용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아이들을사우샘프턴의 비치 클럽에서 상류층 사람들과 함께 있는 아이들을 사진에 담았다.  - P104

비비안이 사우샘프턴에서 찍은 사진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략) 열정적으로 둘, 혹은 여러 명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누더기조차 제대로 걸치고 있지 않은 시네콕의 아이들은 섬세한 드레스를 입고 리본을 맨 워커 아이들과 너무나도 달랐지만, 똑같이 사랑스럽다. - P104

많은 사람이 비비안은 약자의관점으로 세상을 보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층과 동일시했다고 말한다. - P106

사우샘프턴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비비안은 외제니가 그랬던 것처럼 장차 고용주가 될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1951년 11월에 비비안은 설탕왕국인 판홀Fanjul과 리온다 Rionda (각각 쿠바의 설탕 회사. 옮긴이)와 인연이있는 가족과 함께 쿠바로 여행을 갔다. - P106

. 방갈로 앞에서 가족들을 찍었고, 아이들은 학교 앞에서 찍었다. 카를로스 판훌Carlos Fanjul의 장난꾸러기 토끼들은 쿠바 여행에서 비비안이 찍은 가장 멋진 사진 가운데 하나다. - P107

 비비안은 놀이로 아이의 정신을 빼앗은 뒤에 재빨리 마분지 상자에 앉히고, 몸을 숙여말을 걸면서 사진을 찍었다. 1952년 1월 24일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열리는 유명한 5인의 프랑스 사진작가전 Five French Photographers>을 보려고 눈 덮인 길을 나섰다.  - P107

맨해튼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비비안에게 뉴욕의 공원들은 아이를 돌보는 동안 흥미로운 피사체를 만날 수 있는 사진 촬영에 최적의 장소였다.
뉴욕의 축소판인 센트럴파크에서 비비안은 젊은이와 노인, 부자와 가난한사람, 멋쟁이와 꾀죄죄한 사람을 찍을 수 있었다.  - P108

비비안은 십대 시절을 보낸 어퍼 이스트사이드로 종종 돌아갔고, 보모일을 하지 않을 때면 64번가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에밀리 오마르는 여전히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지만 비비안의 초기 작품에 몇 차례 등장한 뒤로는 사진에서 찾을 수 없게 된다.  - P110

비비안의 집에서 모퉁이를 돌면 철도 아파트 railroad Hat (19세기 중반 뉴욕에서부터 도시의 과밀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공동주택, 각각의 방이 일렬로 연결되어 있어 철도 아파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옮긴이)가 나오는데, 그곳에는 세 자매가 살고 있었다. 1951년 어느 날, 세 자매 가운데 큰언니인 소피 란다초Sophie Randazzo가 비비안을 만났다.  - P111

. 소피 란다초의 막냇동생인 애나 란다초는 이제는 80대가 되어 퀸즈에 살고 있는데, 비비안의 뉴욕 지인 가운데 유일하게 연락이 닿은 사람이었다.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은 애나는 60년 전의 친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 P111

 비비안은 "수수한 갈색 트위드 정장을 입고 다녔으며, "무릎을 덮으려고 계속 치마를 잡아당겼다." 여름에는 실내에서도 모자를 썼지만 옷은 조금 더 부드럽고 가벼운면 드레스를 입었다. - P111

1951년 가을, 비비안은 일요일에 두 번에 걸쳐 란다초 가족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자연광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정식으로 초상 사진을 찍는 것은 그때가 처음일 가능성이 큰데도, 비비안은 전문 사진작가처럼 행동하며 정확하고 자신 있게 현장을 이끌었다. - P112

 비비안은 말이 많았고 다른 젊은 여자들처럼 가십을 좋아했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을 뿐,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애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유쾌하고 정중했어요.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하지 않는 한은 말이에요. 틀린 말을 하면,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었죠"라고 했다. - P112

그날 찍은 사진을 두 장씩 인화한 비비안은 란다초 가족에게 한 세트를주었다. 애나는 비비안이 자기 집 옥상에서 찍은 사진을 모두 알아보았다.
그녀는 비비안의 다른 사진을 본 적은 없지만, 자기 가족을 찍을 무렵에비비안이 거리로 나가 부랑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 P114

란다초 자매는 비비안이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교류한여자친구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란다초 자매의 집도 스무 차례 정도 방문한 뒤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 P114

1952년의 학기가 끝나고 비비안은 철마다 고용 계약을 맺던 오래된 방식을 버리고 1년짜리 계약을 했다. 맨해튼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 사는 조앤이라는 어린 소녀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 P114

그해 여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비비안의 사진은 정사각형으로 바뀐다. 값비싼 최고급 카메라를 장만한 것이다. 비비안의 영감과 재능에 잘어울리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카메라, 롤라이플렉스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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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죽어 본 중에 가장 멍청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같다.
막 26시를 지났고, 나는 거친 돌바닥에 큰대자로 널브러져있었다. 사방이 어찌나 캄캄한지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9

기억 속 마지막 몇 분은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이미지와 소리 들로 조각조각 나 있다. 베르토가 크레바스 입구에 나를 내려 준 기억이 났다. 부서진 얼음 조각들과 함께 크레바스 아래로 내려간 기억, 걸어간 기억이 났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남쪽 벽 위쪽에 바윗덩어리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원숭이 머리처럼 생긴 바위였다.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왼발이 허공을 디디면서 그대로 추락했다. - P10

추락하면서 어딘가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부러졌을까? 그럴수도 삐었을까?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통증을 느낀다는 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겠지? - P11

[RedHawk]: 작은 구덩이도 아니었어, 미키. 엄청나게 컸다고. 이친구야. 대체 왜 그랬어?
[Mickey7]: 바위를 구경하고 있었어.
[RedHawk]: .......
[Mickey7]: 원숭이처럼 생긴 바위였거든. - P11

[RedHawk]: 음, 난 네가 빠진 지점의 상공 200미터 위를 선회하는 중이라 네가 보내는 메시지도 겨우 받고 있어. 너 엄청 깊이 빠졌어, 이 친구야. 게다가 여기는 크리퍼들 구역이야. 너를 구출하려면 고생도 죽어라 하고 위험도 감수해야 하겠지. 너도 알겠지만 익스펜더블(본작품에서 소모품 역할을 하는 작업자를 가리킨다-옮긴이)에 그만한 희생을 할 이유는 없잖아. - P12

[RedHawk]: 미키, 왜 이래? 동정심 유발 작전이라니. 진짜 죽는것도 아니잖아. 돔으로 돌아가면 네 손실 보고서를 올릴 거야. 임무중 손실이니까. 마샬이 재생을 반대할 리도 없잖아. 내일이면 재생탱크에서 나와서 네 침대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Mickey7]: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것참 편리하겠구나. 그동안 나는 구덩이에서 죽어 가고 말이야. - P12

. 겁쟁이 같은 베르토 녀석. 나를 구하러 오지 않다니 믿기지 않았다.
아 내가 무슨 소릴 한담. 날 구하러 올 턱이 없는 녀석이지 - P13

이 일을 하다 보면 죽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실제로 죽음의 과정을 밟고 있지 않을 때 그런다는 얘기다. 이제껏 한 번도 얼어 죽은 적은 없다. 물론 상상해 본 적은 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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