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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작품: 뉴욕

뉴욕은 유럽이고 아시아고 아메리카 대륙이에요.
뉴욕은 모든 것이죠.
-비비안이 이웃에게 한 말 - P103

비비안은 지구상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남을 곳을 촬영하기위해 간절한 마음을 안고 뉴욕에 돌아왔다. - P103

프랑스에서 가져온 박스 카메라를 들고서 비비안은 높은 산봉우리가 아니라 지붕을, 시골이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이전 실험을 바탕으로 위와 아래를, 그림자와 빛을 촬영했다. - P103

았다. 순수한 것, 뒤틀린 것 모두에서 아름다움을 찾았고, 사람들 대부분이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쏟아질 듯 풍성한 꽃도, 넘쳐흐를 것 같은 쓰레기도 모두 사진에 담았다. (중략). 대칭, 패턴, 질감은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비비안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비비안의 작품을 이루는 기본 요소였다. - P104

비비안은 할머니 외제니가 오래전에 일했던 롱아일랜드에서 선조의 유산을 물려받은 부유한 가정에 보모로 들어갔다. 첫 직장이었다. - P104

 이 긴 여름 동안, 비비안은 은행가 그렌빌 케인 Grenville Kane의 자손인워커 집안 아이들을 촬영했다. 이제 막 손질을 마친 정원의 산뜻한 잔디밭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가족 전용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아이들을사우샘프턴의 비치 클럽에서 상류층 사람들과 함께 있는 아이들을 사진에 담았다.  - P104

비비안이 사우샘프턴에서 찍은 사진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략) 열정적으로 둘, 혹은 여러 명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누더기조차 제대로 걸치고 있지 않은 시네콕의 아이들은 섬세한 드레스를 입고 리본을 맨 워커 아이들과 너무나도 달랐지만, 똑같이 사랑스럽다. - P104

많은 사람이 비비안은 약자의관점으로 세상을 보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노동자 계층과 동일시했다고 말한다. - P106

사우샘프턴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비비안은 외제니가 그랬던 것처럼 장차 고용주가 될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1951년 11월에 비비안은 설탕왕국인 판홀Fanjul과 리온다 Rionda (각각 쿠바의 설탕 회사. 옮긴이)와 인연이있는 가족과 함께 쿠바로 여행을 갔다. - P106

. 방갈로 앞에서 가족들을 찍었고, 아이들은 학교 앞에서 찍었다. 카를로스 판훌Carlos Fanjul의 장난꾸러기 토끼들은 쿠바 여행에서 비비안이 찍은 가장 멋진 사진 가운데 하나다. - P107

 비비안은 놀이로 아이의 정신을 빼앗은 뒤에 재빨리 마분지 상자에 앉히고, 몸을 숙여말을 걸면서 사진을 찍었다. 1952년 1월 24일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열리는 유명한 5인의 프랑스 사진작가전 Five French Photographers>을 보려고 눈 덮인 길을 나섰다.  - P107

맨해튼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비비안에게 뉴욕의 공원들은 아이를 돌보는 동안 흥미로운 피사체를 만날 수 있는 사진 촬영에 최적의 장소였다.
뉴욕의 축소판인 센트럴파크에서 비비안은 젊은이와 노인, 부자와 가난한사람, 멋쟁이와 꾀죄죄한 사람을 찍을 수 있었다.  - P108

비비안은 십대 시절을 보낸 어퍼 이스트사이드로 종종 돌아갔고, 보모일을 하지 않을 때면 64번가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에밀리 오마르는 여전히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지만 비비안의 초기 작품에 몇 차례 등장한 뒤로는 사진에서 찾을 수 없게 된다.  - P110

비비안의 집에서 모퉁이를 돌면 철도 아파트 railroad Hat (19세기 중반 뉴욕에서부터 도시의 과밀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공동주택, 각각의 방이 일렬로 연결되어 있어 철도 아파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옮긴이)가 나오는데, 그곳에는 세 자매가 살고 있었다. 1951년 어느 날, 세 자매 가운데 큰언니인 소피 란다초Sophie Randazzo가 비비안을 만났다.  - P111

. 소피 란다초의 막냇동생인 애나 란다초는 이제는 80대가 되어 퀸즈에 살고 있는데, 비비안의 뉴욕 지인 가운데 유일하게 연락이 닿은 사람이었다.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은 애나는 60년 전의 친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 P111

 비비안은 "수수한 갈색 트위드 정장을 입고 다녔으며, "무릎을 덮으려고 계속 치마를 잡아당겼다." 여름에는 실내에서도 모자를 썼지만 옷은 조금 더 부드럽고 가벼운면 드레스를 입었다. - P111

1951년 가을, 비비안은 일요일에 두 번에 걸쳐 란다초 가족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자연광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정식으로 초상 사진을 찍는 것은 그때가 처음일 가능성이 큰데도, 비비안은 전문 사진작가처럼 행동하며 정확하고 자신 있게 현장을 이끌었다. - P112

 비비안은 말이 많았고 다른 젊은 여자들처럼 가십을 좋아했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을 뿐,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애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유쾌하고 정중했어요.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하지 않는 한은 말이에요. 틀린 말을 하면,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었죠"라고 했다. - P112

그날 찍은 사진을 두 장씩 인화한 비비안은 란다초 가족에게 한 세트를주었다. 애나는 비비안이 자기 집 옥상에서 찍은 사진을 모두 알아보았다.
그녀는 비비안의 다른 사진을 본 적은 없지만, 자기 가족을 찍을 무렵에비비안이 거리로 나가 부랑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 P114

란다초 자매는 비비안이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교류한여자친구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란다초 자매의 집도 스무 차례 정도 방문한 뒤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 P114

1952년의 학기가 끝나고 비비안은 철마다 고용 계약을 맺던 오래된 방식을 버리고 1년짜리 계약을 했다. 맨해튼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 사는 조앤이라는 어린 소녀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 P114

그해 여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비비안의 사진은 정사각형으로 바뀐다. 값비싼 최고급 카메라를 장만한 것이다. 비비안의 영감과 재능에 잘어울리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카메라, 롤라이플렉스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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