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key7]: 응, 확실해. 너무 깊이 들어왔어. 그리고 바닥에 너무 세게떨어진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날 데려가도 결국은 폐기처분하게될 거야. [BlackHornet]:..... [BlackHornet]: 알겠어. 네가 선택한 거야. - P16
[BlackHornet]: 죽을 때 말이야, 미키. 네가 파이브처럼 끝나지는않았으면 좋겠어. 무기는 있어? [Mickey]: 아니. 떨어질 때 버너(본 작품에서 일종의 지향성 에너지무기를 가리킨다-옮긴이)를 잃어버렸어. 솔직히 있었어도 사용했을까싶어. 빨리 끝낼 수는 있었겠지만....... [BlackHornet]: 그래, 나쁘지 않았을 텐데. 칼은 있어? 쇄빙 도끼는? [Mickey7]: 아니, 없어. 그런데 쇄빙 도끼로 대체 뭘 할 수 있지? - P17
통신이 가능한 범위의 경계에 멈춰 있는 모양이었다.
[BlackHornet]: 백업은 해 뒀지? [Mickey7]: 최근 6주 동안은 안 했지. [BlackHornet]: 왜 업로드를 안 했어?
지금은 그 질문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다.
[Mickey7]: 게을러서지, 뭐. - P18
이쯤에서 사고 실험을 한번 해 보기로 하자. 여러분이 잠자리에 들면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모든 희망, 꿈, 두려움, 소망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전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아니다. - P19
그 모든 죽음의 경험에서 괜찮은 점이 있다면 내가 진짜로 어떤 면에서는 빌어먹을 불멸이라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미키1이 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로 살았던 삶을 기억한다. 뭐, 그의 마지막 몇 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 P20
만약 내가 이 동굴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호흡기를 뗀다면 나는 내일 아침 미키8으로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의심이 든다. 나샤와 베르토는 차이를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성 너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0
역시 수상했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동굴 중 하나를 골라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난 뒤, 나샤에게 가만히 앉아 얼어 죽기만을 기다리진 않을 거라고 말해 둘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샤가알았다면 내가 진짜로 죽기 전까지 베르토가 손실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 P21
나사가 나를 구하러 오겠다고 강력하게 우기지 않은 이유는 내가 심하게 망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가벼운 두통에 시달리면서 손목을 살짝 삔 상태로 일어나 동굴 안을 배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샤는 당장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구하러 왔을 것이다. 내가 원하든원하지 않든. 그럴 수는 없었다. 나샤는 지난 9년 동안 나에게 찾아온 유일한 행복이었고,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P22
당장은 괜찮지만 땅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게 된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동굴 입구를 덮고 있던 얇은 얼음막을 밟고굴러떨어질 때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였다. 밤이 되면 기온은영하 30도 이상으로 떨어지고 바람도 그치지 않고 불었다. 나가는 길을 찾는다면 해가 뜰 때까지 안에서 기다리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 P23
동굴 두 개가 교차하는 지점을 지날 때면 소리가 앞에서 나는지 뒤에서 나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반쯤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거기,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소리의 정체가 서있었다. 녀석은 크리퍼와 생김새가 비슷했다. - P23
맞서야 할까, 아니면 도망쳐야 할까? 어느 쪽도 좋은 선택이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손바닥이 보이도록 양손을 들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녀석이 반응을 보였다. - P24
방어할 틈도 없이 녀석의 턱뼈들이 내 다리 사이와 오른쪽 어깨, 허리를 감싸더니 나를 들어 올렸다. 녀석의 앞발이 내가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녀석의 목구멍이 리드미컬하게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입속에는 검은 이빨이 겹겹이 나 있고 그 뒤로 뜨거운용광로처럼 생긴 식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은 나를들어 올리고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P25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헷갈렸지만 우선 녀석과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동굴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동굴 막다른 벽에서 조금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몇 초 후에야 오큘러가 몇 시간 만에 가시광 범위의 광자를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6
그 순간, 9살 무렵 미드가르드의 시골 할머니 댁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략) 나는 양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거미를 들어 올렸고, 뾰족한 다리로 손바닥 여기저기를 훑으며 돌아다니는 거미의 움직임을 느끼며 아래층 현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중략) 거미가 허둥지둥 내 손에서 벗어날때, 마치 내가 자애로운 신이라도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벽에 난 구멍으로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눈덮인 돔 기지 지붕이 보였다. 내가 거미였던 셈이다. 나는 거미였고, 동굴 안에 있는 저 녀석이 방금 나를 마당에 풀어 주었다. - P27
하지만 한동안은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만 알고 있어야 할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 P28
돔에서 반경 100미터는 보안경계선으로 정해져 센서 탑, 회전 버너 포탑, 각종 덫과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태 우리가 본 커다란 동물이라고는 크리퍼뿐이었고, 그들은 센서가 감지할 수 없는 눈 속으로 이동했기에 이런 장치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그저 관행이겠거니 생각했다. - P28
"그렇지. 밖에서 발견한 거라도 있어?" 있다마다. 중량 우주선만 한 크리퍼를 만났어. 그런데 그 녀석이 내가 돔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동굴 밖까지 데려다줬다고. 지각이 있는 생물이 틀림없어 멋지지? 안 그래? "아니." 내가 답했다. "그래, 항상 그렇지 뭐. 마샬이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까, 그렇지 않아?" - P59
경비대에 미키8으로 등록한 사람이 아직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베르토가 게으름을 피워 준 덕분에 무척이나 번거로운 절차를 밟지 않고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에게 이런 상황이 생긴 것 역시 베르토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쉽지 않았겠지만, 어젯밤 베르토가 장비를 갖춰 돌아왔다면 동굴에서 나를 꺼내줄 수도 있었다. - P30
지금 보니 부러진 것 같지는 않지만, 손목이부어 있고 보라색으로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적어도 몇 주는고생깨나 할 것 같다. 그러고 나면 베르토에게 연락해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지. 나에게도 내가 살아 돌아왔다고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 P38
나는 두 걸음 안으로 들어서며 방문을 닫았다. 문고리가 딸깍하고 잠기는 소리에 그의 눈이번쩍 뜨였다. "저기." 내가 말했다. 그는 반쯤 몸을 일으켜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대체 뭐야……………." 나를 발견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망할, 난 미키8이구나, 그렇지?" 그가 말했다. - P31
2장
익스펜더블이 필요한 사람들은 ‘익스펜더블이 돼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듣기에는 훨씬 좋다. 내가 멍청하게 그 말에 넘어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P32
사실, 그들이 나에게 뭘 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익스펜더블 자리를 차지하려면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조종사도 아니고, 의료진도 아니었다. 유전학자나 식물학자, 우주생물학자도 아니었다. 우주선의 말단 직원조차도 못됐다. 쓸 만한 기술이 전혀 없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미드가르드를 벗어나고 싶었고,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했다. 우리가 정착한 후 200년 만에 처음으로 우주선이 발사될 예정이었고, 그 우주선에 타려면 익스펜더블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 P33
하지만 그웬의 장황한 설명을 다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으니, 상륙거점에서는 위험하거나 치명적인 임무가 정말 많이 생겨나고, 내가 그런 임무에 정말 자주불려 가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 P34
하지만 실제로는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치명적인 방사능에 노출되어야 하는 임무를 비롯한 여러 작업은 기계보다 인간의몸이 훨씬 더 오랫동안 견딜 수 있었고, 기계로는 할 수 없는의학 실험과 관련된 임무도 있었다. 게다가 상륙거점에서는 익스펜더블이 기계보다 교체하기 훨씬 쉬웠다. - P34
그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전히 이 임무를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나는 자신감 있어 보이려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런 것 같은데요." 그웬은 계속 나를 뚫어져라 보았고 나는 이마에 땀방울이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35
(중략),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당신, 정신이 아예 안드로메다로 가 버린 겁니까?"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아니요,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요." "내 이야기를 듣기는 했나요? 당신이 맞닥뜨릴지 모를 끔찍한 일들 말이에요." - P35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제가 방사능에 피폭될 수도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리며 진이 빠진채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자살할 수도 있지 않나요? 약을 먹고 눈을 감고 새롭게 태어나면 되니까요. 그러려고 백업이란 걸 하는 게 아닌가요?" "네,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실제로 익스펜더블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웬이 더 이상은 말을 하지 않으려 해서 내가 물었다. "뭘 안 한다는 거죠?" - P36
"반스 씨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죠.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임무를 맡으려고 하나요?" 그녀는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고 모은 두 손 위로 턱을 고였다. "그러니까 제가 한두 번쯤 죽더라도 어차피 저는 불멸의 존재 아닌가요?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녀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한숨 소리가 더컸다. "그래요. 당신이 멍청한 건 알겠군요. 차별은 하지 않는게 우리 방침이지만, 이 경우 문제는 개척지 탐사에서 익스펜더블 미션이 실제로도 대단히 중요한 임무라는 거예요. (후략) - P37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임무에 몇 명이나 지원했는지 알아요?" "어, 아니요." "맞혀 봐요. 이번 탐사 임무에 지원한 사람은 수만 명이었어요. 관심을 보인 조종사만 600명이 있었고요. 조종사를 몇 명이나 뽑는지 알아요?" (중략) 그녀가 말했다. "두 명이요. 두 명을 뽑는 자리에 600명이 지원했어요. 주말에 취미 삼아 비행기를 몰아 본 사람들도 아니에요. 600명이 저마다 엄청난 경력을 자랑한다고요. (후략)." - P38
마리코 베리건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물리학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간인 듯했다. 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또한 마이코 베리건이 개자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이야기와는 관련이 없지만. - P39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다시 익스펜더블 이야기로 돌아가면 말이죠, 지원자가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 그 자리를 맡겠다고 자원한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당신이 저 문으로 걸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이 자리를 채울 누군가를 징집할 권한을 의회에 요청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어요. 적성 검사 점수를 보면 당신이 완전히 멍청이는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이 하는 일이 그러니까………… 역사가라고요?" - P39
그웬은 약 5초쯤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쉬었다. "어떤 경우에도 지금 당신이 지원한 이 자리는 취미가 될 수없어요. 분명 하나의 임무이고, 맡게 된다면 절대 중도에 포기할 수 없어요. 반스 씨, 이 행성에서 이 임무에 자원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 P40
"이 임무에 자원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징발까지 고려했다면서 제가 이 임무를 맡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뭐죠?" 그녀는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리며 답했다.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반스 씨. 아마도 당신이 꽤 착한 사람처럼 보였나 보죠. 나는 이 임무를 쓰레기 같은 인간한테 맡기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블릿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악수를 청했다. "뭐 어쩌겠어요. 당신이 이 일을 맡게 되었네요. 승선을 환영합니다." - P41
그웬이 내게 물어야 했으나 묻지 않은 질문이 있다. 나는 대체 미드가르드의 무엇이 그토록 싫었길래 내장이 녹아내릴 수도 있는 임무를 맡으려고 했을까? - P41
미드가르드 사람 중에 돈 문제를 겪는 사람은 없다. 미드가르드도 유니언에 속한 다른 모든 행성처럼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산업과 농경업이 자동화되어 있고 정부는 수확물을 인구수로 나누어 배급한다. 미드가르드는 어떤 면으로 보나거의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 P43
하지만 미드가르드에는 별볼 일 없는 학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웬이 아주 친절하게지적했듯 역사를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큘러를 한 번 깜박이면, 또는 태블릿을 몇 번만 두드리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든 알 수 있었다. - P43
내게 주어지는 생활비는 먹고 살기에 충분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내가 발코니 밖으로 몸을 던진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 P44
그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는 수건질을 계속했다. "나도 알아, 멍청아 네가 재생 탱크에서 깨어나던 날을 나도 기억한다고. 식스나 파이브, 스리까지 싹 다 기억한다고. 네 기억이 곧 내 기억이니까." "전부는 아니야. 한 달 이상 업로드를 안 했거든." "아주 잘하는 짓이다. 고마워서 어쩌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놓치기 아까울 만큼 좋은 일은 없었으니까." - P46
그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검은 머리가 아직 뻣뻣하고 반들거렸지만 적어도 이젠 가닥가닥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수세미로 두세 번쯤 박박 문질러 닦아 내기 전까지는 여전히 떡이 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제 어쩌지?"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 역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다 말고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뭐가?" 그가 말했다. - P47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세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왜 이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 둘중 하나는 없어져야 해." - P48
처음 착륙했을 때 배급량은 기본적으로 하루 1400킬로칼로리였고, 지방을 뺀 체중과 작업 일정에 따라 추가되었다. 지금까지 두 차례 배급량을 줄였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수경재배탱크에서 거의 아무것도 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략) 말하자면, 유니언에서 여러 명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극도로 금기시하지 않더라도 중복된 익스펜더블까지 먹일 만큼 식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 P49
"우리끼리 말싸움해 봐야 소용없어.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아니라고."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물론 에잇의 말이 맞는다. 누군가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식당에서 계산서를 누가 먼저 낚아채느냐 같은 문제와는 달랐다. 사이좋게 차례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 P50
내가 말했다. "잘 들어 방법이 생각날 거야. 난 옷 좀 갈아입고 씻을게. 넌 3층 화학 샤워장에 가서 보존액 찌꺼기를 씻어내. 그리고 30분 뒤에 사이클러 앞에서 만나자" - P51
잠시 눈을 붙이려는 찰나, 조용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들어와" 내가 말했다. 문이 휙 열렸다. 베르토가 머리를 들이밀고 방 안을 살피더니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 P52
"그래? 식스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는 다시 나를 보았다. "그럴 수도 잘 모르겠네. 그게 중요한가?" "응. 중요한 것 같은데. 너는 조종사 아냐? 최후를 맞을 때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뭐야?" 베로토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답했다. "무엇 때문에 죽음에이르게 됐는지 알리는 것." - P53
베르토가 말했다. "식스랑 세븐 모두 같은 이유였어. 크리퍼떼에 당했지." "그랬구나, 그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고 나는 뭘 하고 있었는데?" 베르토가 한숨을 쉬었다. "너는 마샬이 내린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명령에 따라 순찰 중이었지. 마샬은 지난 몇 달 동안 너에게 돔 근처 크레바스를 파악하고 크리퍼가 있는지 정찰하는 임무를 맡겼어.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마샬은 그 임무에 굉장히 집착하는 것 같았어." - P54
"웅, 일이 잘못됐어. 내가 세븐을 거의 내려 주자마자 별안간 놈들이 쌓인 눈 더미에서 튀어나왔어. 스무 마리, 아니 서른마리는 됐을거야. 내가 바로 위에서 날고 있었지만 구조 장비를 내려 주기도 전에 세븐은 갈기갈기 찢겨 버렸어." 죽어 가는 나를 내버려 두고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은 이해했다. (중략) 베르토가 식스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했을까? - P55
나는 당연히 사령부에 보고서를 제출하러 갈 마음이 없었다. 우선 에잇과 이야기를 마쳐야 했다. "알잖아. 사실 나 아직도 정신이 덜 깼어. 먼저 가서 아침 먹어. 나는 낮잠 좀 잘게. 그러고 일어나서 경비대에 등록한 다음에 사령부에 보고하러 가자." 베르토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뭔가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챈 것 같았다. - P56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기운이 흘렀다. 이런 게 불길한 예감일까? 베르토가 말했다. "저기, 너 괜찮은 거야?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며 여태 왼손을 이불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베르토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다. - P57
물론 지금 상황은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우선 다른 미키들은 자기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죽게될 확률은 에잇이 내 등에 칼을 꽂지 않는 이상, 50대 50이다. 그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아는 데서 오는 평화가 있다. 내가 오늘 아침에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망에도, 불안에도 먹잇감이 되어 준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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