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는 에마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한편, 예전에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얼마나 달콤하고 몽롱하고 뜨거운 느낌이었는지 떠올리고는 우울해했다. 정말 그랬다. 전에는 모든 것이 전혀 달랐다. 훨씬 더 아름다웠고, 훨씬 더 즐거웠으며, 활력도 훨씬 넘쳤다! - P156

(전략), 저녁이면 나숄트네 집 현관에 앉아 리제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가리발디라고불리던 이웃 노인 그로스요한이 살인강도인 줄 알고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일 년 내내 매달 무언가에 빠져 지냈다. 때로는 풀 베는 일에, 때로는 클로버 수집에그러다 다시 낚시나 가재잡이에 빠져 지냈다가 홉 수확철, 자두 수확철, 감자 굽는 철, 타작철이 오기를 기다렸으며, 중간중간 찾아오는 일요일과 축제일을 고대했었다. - P157

이제 그 모든 것은 사라져버렸다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 끝나버렸다. 처음에는 리제 곁에서 보내던 저녁 시간이 다음에는 일요일 오전의 금붕어잡이 놀이가 사라졌고, 그리고 동화책 읽는 시간이, 홉 수확과 정원의 물레방아가 차례로 사라졌다. 아, 전부 어디로 가버린 걸까? - P157

억압받고 기만당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랫동안 갇혀 있던샘물처럼 끊임없이 샘솟았다. 한스는 기억 하나하나에서 그 시절에 실제로 느꼈던 것만큼 뜨거움과 열정을 경험했다. - P158

오래된 돌다리 근처 한스의 집은 매우 다른 모습의 두 길이만나는 모퉁이에 있었다. 두 길 중 한스의 집이 속한 길은 마을에서 가장 길고 넓은 중심 거리인 게르버 거리였다. - P158

게르버 거리에는 관청 건물이 전혀 없었지만 웅장한 문이 달린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은 저택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 호감을 주는 밝은 박공지붕들을볼 수 있었다. 집들이 거리 한쪽에만 늘어서 있고 맞은편에는통나무 울타리 아래로 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친근하고 쾌적하며 밝은 느낌을 주었다. 게르버 거리가 길고 넓은 데다 밝고 웅장하며 고상했다면 매의 골목은 정반대였다. - P159

갓 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한스는 매의 골목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남루한 차림의 불량한 금발 소년 무리와 함께 그 골목에서 유명했던 로테 프로뮐러가 들려주는 살인 이야기를 듣곤 했다. 로테는 작은 여관 주인과 함께 살다가 이혼하고 오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여자였다. 젊은 시절에는 대단한 미인으로 많은 공장 노동자들을 애인으로 두고 있어서 그녀를 놓고 갖은 추문과 칼부림이 일어났다고 한다. - P160

여덟 살 소년 한스는 그곳에서 핑켄바인 형제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엄하게 금지했는데도 한스는 그 형제와 일 년가량 우정을 맺었다. 두 형제의 이름은 돌프와 에밀이었다. 골목소년들 중 가장 약아빠진 그들은 과일을 훔치거나 숲에서 소소한 불범행위를 저질러 유명해졌다. - P160

매의 골목 아이들 중 한스가 가장 가깝게 지낸 아이는 헤르만 레히텐하일이었다. 고아인 레히텐하일은 몸이 약했지만 또래보다 조숙했고 독특한 면이 있었다. 그 아이는 한쪽 다리가짧아 목발을 짚고 다녔기 때문에 골목 소년들의 놀이에 끼지못했다. 매우 야위고 턱이 유난히 뾰족했으며, 아이답지 않게 말수가 적었고 창백하고 고통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 P161

핑켄바인 형제는 한스와 한차례 다투고 나서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은 반면, 말이 없던 절름발이 레히텐하일은 싸우지도 않았는데 한스를 떠나갔다. 그는 2월의 어느 날 옷가지가 걸쳐진 의자에 목발을 기대놓은 채 작고 초라한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열이 올라 그대로 조용히 세상을 떠나버렸다. 매의 골목에서레히텐하일은 금방 잊혀졌지만 한스는 그 친구와의 좋은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 P162

오래된 시골 학교의 엄격한 교사의 아들이었던 포르슈는 성경의 절반을 외우고, 수많은 격언과 도덕적인 잠언도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이나 하얗게 세버린 머리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앞에서는 난봉꾼처럼 굴었으며 툭하면 술독에 빠졌다. 조금 취한 상태가 되면 기벤라트의집 모퉁이 길가에 있는 돌 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격언을 퍼붓곤 했다. - P163

열쇠 수리공 브렌들레 역시 사업이 망하고 방치된 작업장까지 엉망진창이 되자이 골목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는 반나절 내내 작은 창가에앉아 활기찬 골목을 불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종종남루한 차림으로 지저분하게 돌아다니는 이웃집 어린아이를발견하면 귀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온몸에 파란 멍이 들도록 꼬집고 괴롭히면서 굉장히 고소해했다. - P164

힘이 세고 무뚝뚝한 공장장은 왠 지식인종 같아서 무서운 존재였다. 이 무시무시한 건물에서 요정처럼 이리저리 다녔던 리제는 모든 아이들과 새와 고양이와개들의 보호자이자 어머니였다. 인정이 가득한 그녀는 동화 이야기와 노래 가사도 많이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멀어진 이 세계에서 한스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꿈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 P165

한스는 몇 번이고 다시 매의 골목을 찾아갔었다. 그곳에서 정겨운 어스름과 익숙한 악취, 예전과 똑같은 모퉁이와 빛이 들지 않는 계단을 발견했다. 여전히 문간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앉아 있었고, 지저분한 금발꼬마들이 소리 지르며 날뛰고 있었다. 기계공 포르슈는 늙을 대로 늙어서 한스를 알아보지 못했고, 한스가 머뭇거리며 인사하자 경멸하듯 신경질을 냈다. - P166

굽은 계단과 돌이 깔린 문간을 지나 어두운 계단을 더듬어올라가 창고에 이르렀다. 창고에는 잘 펴서 걸어놓은 가죽들이 있었다. 지독한 가죽 냄새와 함께 자욱한 기억의 연기가 갑자기 솟아올랐다. - P166

어스름이 깔린 가죽 공장 뜰에 평화가 넘실거렸다. 담 너머로 희미하게 철썩대는 강물 소리 외에는 서걱서걱 감자 깎는소리와 리제의 이야기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리제는 성 크리스토포루스(그리스도를 짊어진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천주교 성인의 이름, 사람들을 몸에 태워 강을 건네주는 일을 했는데 하루는 어린아이를 건네주다가 너무 무거워 넘어졌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세상의짐을 모두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였다-옮긴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밤에 어린아이 목소리가 강 건너편에서 성 크리스토포루스를 불렀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P167

 6장

의사는 물약과 간유, 계란과 냉수욕을 처방해주었다. 그 모든 처방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모든 건강한 인생에는 의미와 목표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젊은 한스에게는 벌써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 P168

자신도 가을과 함께 소멸하고 잠들고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젊음이 이를 거부하고 조심스럽고 끈질기게 삶에 집착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는 누렇게 되었다가 갈색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들이며 숲에서 피어나는 우윳빛 안개를 지켜보았다. - P169

방앗간 앞마당에는 크고 작은 압착기들과 수레며 바구니, 과일 포대, 물통, 거름망, 양동이와 나무통, 산더미같이 쌓인 갈색 과일 찌꺼기, 나무 지렛대,
손수레와 빈 마차가 흩어져 있었다. 압착기가 돌아가며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를 내며 투덜거렸다. 대부분의 압착기는 초록색 칠이 되어 있었다.  - P169

누구든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본다면 주스 한 잔만 달라고 청하여 한 모금 맛볼수밖에 없으리라. 맛보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두 눈이 촉촉해진 채 달콤하고 행복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게 되리라. 달콤한 과일 주스의 기쁘고 강렬하고 근사한 향기는 먼데까지 퍼져 대기를 가득 채웠다. 이 향기야말로 성숙과 수확의 꽃이자 한 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 P170

 부드러운 5월의 봄비, 속삭이는 여름비, 다정한 봄 햇살과 따갑고 뜨거운여름 태양, 서늘한 가을 새벽이슬, 희고 붉게 핀 꽃잎들, 수확을 앞둔 과일나무의 잘 익은 적갈색 반짝임, 그 외에도 즐겁고 아름다운 일들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누구에게나 찬란하게 빛나는 계절이었다. - P170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수백 명이 서로 외쳐대는 소리가 대단했다. 모든 목소리에서 분주함과 흥분감과 기쁨이 넘쳐났다.
"여기야, 하네스, 이쪽이야! 이리 좀 와봐! 한잔 마셔봐!"
"에 거참 고맙네만 너무 많이 마셔서 배가 아플 지경이야."
"자네, 50킬로그램에 얼마나 줬나?"
"4마르크 줬네. 하지만 맛은 끝내준다네. 자, 마셔보게!"
가끔 작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과 자루 하나가 터지는 바람에 사과들이 온통 땅을 뒹굴게 된 것이다.
"맙소사, 내 사과들이! 여보게들, 이것 좀 도와주게!" - P171

올해도 몇 명의 심술쟁이 노인들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직접주스를 짜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뭐든 더 잘 알고 있었고, 과일이 넘치게 풍년이었던 예전의 축복받은 해에 대해 떠들었다.
그 당시에는 뭐든지 더 싸고 품질도 좋았고 설탕을 섞는 일 같은건 생각도 못 했으며 나무에 과일이 달리는 것부터가 아주달랐다고 했다. - P172

"내가 말이야." 노인이 변명하듯 투덜거렸다. "예전에 저런거 열 개쯤은 거뜬히 먹었는데 말이야."
그러고는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며 커다란 사과를 열 개쯤 먹어도 거뜬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 P172

한스는 갑자기 근심에 싸였다. 에마가 그냥 가버렸으면 하고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에마는 계속 머무르며 웃고 떠들고 어떤 농담도 노련하게 받아넘겼다. 한스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존댓말을 써야 하는 소녀들과 어울리는 일은 그러잖아도 고역인데, 이 아가씨는 활달하고 수다스러운 데다 한스를 보고 주저 없이 말을 걸어왔다. - P174

. 그녀는 또한 골목 소년들마다 불러서 "사과 하나 줄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고는예쁘고 빨갛게 익은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 양손을 등 뒤에 숨긴 채 "오른손이게, 왼손이게?" 하고 맞혀보게 했다. 그런데 매번 사과는 아이들의 대답과는 다른 손에 있었다. - P175

한스는 슬슬 무리에서 빠져나가 집에 가려고 했다. 그때 플라이크가 손에 지렛대를 쥐여주며 말했다.
"자아, 조금만 더 해줄 수 있겠니? 에마가 거들어줄 거다. 나는 작업장에 가봐야 하거든." - P175

한스는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에마와 대화를나누었다. 에마가 웃으면 따라 웃었고, 말도 안 되는 그녀의 장난에 손가락을 뻗어 겁을 주기도 했고, 두 번이나 그녀가 주는주스 잔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동시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집안일을 하는 하녀들이 저녁마다 문간에 남자들과 함께 서 있던 기억, 이야기책 속의 어떤 문장들, 헤르만 하일너에게 받았던 입맞춤 ‘여자애들‘과 ‘애인이 생기면 어떤지‘에 대해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 남학생들 사이에 오가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 P177

그때부터 한스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녀의 시선을피했다. 하지만 에마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과 양심의 가책을 동시에 느끼며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 P178

모든 것이 설레고 아름다웠고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과일찌꺼기로 배를 불린 참새들이 요란하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늘이 이토록 높고 아름답고 그립도록 파랬던 적은 없었다. 강물 역시 청록빛으로 웃는 거울같이 이렇게나 맑았던 적이 없었다. 강둑에 부딪혀 이토록 눈부신 물보라를 일으켰던 적도 없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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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have high hopes
포부가 크다, 낙관적으로 보다
to be optimistic; to have a great ambition
유래 hope는 ‘기대(expectation), 가망(promise)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뒤에 전치사 for나 of가 올 수도 있고, to부정사가 올 수도 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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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면아이

우리 정서의 구조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다. 성인의 정서 인형 내부에서 뭔가 덜거덕거린다면 그 안에는 상처 입은 어린아이의 정서 인형이 들어 있다.
요쉬카 브라이트너, 『귀한 내면아이』 - P12

1년 전만 하더라도 내면아이에 관한 책은 임신부들이나 읽는 줄 알았다. 남성들에게 파트너의 생물학적 과정에 대해 정보를 아주 많이 주기는 하지만 그들 자신의 정신생활을 위해서는 별 의미 없는 책들 가운데 한 권이라고. - P13

내면아이에 몰두하는 일은 내 문제의 원인을 없애는 데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나는 이 문제가 불러온 결과를 매일 신중하게 줄여갔다. - P13

내가 마흔세 살이 되어서야 내 내면아이의 아버지가 된 여러이유 중 하나는, 지금 별거 중인 아내와 피임하지 않은 채 싸웠기 때문이다. 카타리나의 문제 해결 방식은 늘 무척 효율적이었다.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 언제나 아내의 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었다. - P14

지금까지 내 분노 폭발은 그저 사소한 일에 한정되었다.
밤에 집 건너편 공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에게 각 얼음을 던졌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의뢰인들에게는 변호사로서 일부러틀리게 조언했다. - P15

그렇게 9월 초 어느 비 내리는 저녁, 휴가에서 돌아온 지일주일 되던 때 나는 다시 요쉬카 브라이트너의 문 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은 지 거의 반년 뒤였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일단 문 앞에서 내 안을 들여다봤다.
지난 반년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때는 봄이었고, 여름이 목전이었다.
지금은 가을이고, 겨울이 가까워졌다. - P16

내 삶은 원래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행복해야 했다. 지난 반년 동안 나는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에 사랑과 마음을 듬뿍 쏟아부어 그 영역을 늘 꿈꾸던 대로 바꾸었다.
심신이 마비될 것 같은 대형 로펌의 정규직에서, 재정적으로 단단한 안전장치를 확보해둔 개업 변호사가 되었다. - P16

지난 몇 달 동안 일어난 모든 변화는 반년 전 내가 드라간을살해한 일과 관련이 많았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나에게는 꽤 중요한 행운이었다. 앞으로도 아무도 몰라야하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드라간의 이름으로 그의 범죄 조직을 계속 운영했다. 또한 드라간 일당에게는 그들의 보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 P17

내 인생의 오류는 단 하나의 오류도 일어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내 현재는 과거보다 아름다울지 몰라도 미래는 엄청나게 두려웠다.
이것이 스트레스였다. 이 스트레스를 명상으로 다스릴 수있었다. 하지만 원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명상은 다람쥐 쳇바퀴를 늦췄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그곳에서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시 요쉬카 브라이트너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 P18

하지만 나를 무겁게 억누르는 사건들은 말할 수 없었다.
지난봄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해.
그 후로 지속하고 있는 이중생활에 대해서도 입 다물어야지.
보리스 이야기도 물론 절대 하지 않을거고. - P19

내 삶과 딸의 삶을 구하려고 내가 반년 전 납치한 보리스.
하지만 살인이 싫어 그냥 살려두고 싶은 보리스. 내가 살인을 거부했다는 살아 있는 증거인 보리스. 그러나 나는 그를 평생 포로로 잡아둘 수도, 언젠가 풀어줄 수도 없었다. 그의 미래에 대해 나는 여전히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했다.
지금 살아 있는 게 부담스럽지만 죽더라도 똑같이 나에게부담이 될 보리스,
보리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겠군. - P19

내가 재킷을 벗는 동안 그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빤히바라봤다.
"달라지신 것 같네요." 그가 가치 중립적으로 말했다.
나는 나를 내려다봤다. 반년 전에는 맞춤 정장과 명품 옷을입었다. 오늘은 나도 청바지에 티셔츠, 스웨터와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 P21

"오래간만에 뵙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가 물었다.
나는 미지근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곰곰이 생각했다. 사람을 네 명 죽였고, 예전 고용주를 협박했고, 딸이 유치원에 자리를 얻도록 유치원의 예전 경영자를 위협해 지분을 팔라고 강요했고, 러시아 마피아를 납치했지. 이 중 이번 상담에서 다룰만한 것은 전혀 없군. - P22

"그런데 있잖아요, 당신이 제게 전화해 상담 예약을 요청한계기가 있을 겁니다. 그렇죠?"
"네." 산장 종업원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상담하러 오게 된, 예기치 못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일이 내 내면아이에 매우 깊이 몰두하는 첫걸음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내면아이는 내가 6개월 전쯤 안도하며 그만뒀던 일, 그러니까 명상 살인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조만간 재개하게 할 존재였다. - P24

2
휴가

휴가의 의미는 차단이다. 일상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자극을 철저하게 차단할수록 긴장 완화는 극대화된다. 차단은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로 들어오는 부담스러운 소식을 휴가지에서만난 사람과의 대화로 대체하라.
요쉬카 브라이트너, 『추월차선에서 감속기 명상의 매력』 - P25

"아내는 저와 같은 침대를 쓸 때면 수면 안대와 귀마개를사용한답니다. 그러니 무척 일방적인 대화가 되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성생활의 부재 때문이 아닙니다."
"2분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여기에 온 이유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일단 제게 전화한 계기부터 이야기하죠. 여기 온 이유는 그다음에 다루기로 하고요. 더 길게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가족 여행을 가셨다고요. 계속 말씀해보세요." - P27

"왜 알프스로 가셨죠?"
세 살배기를 데리고 마요르카로 가서 여행 첫날, 그리고 특히 마지막 날을 공항에서 술에 취한 패키지 여행객들 틈에서보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 세속적으로 들릴 것 같았다.
"저희는 산에 꼭 가고 싶었답니다." - P28

농장은 두 마을 사이의 분지에 놓여 있어 목가적이었다. 통신망 서비스를 벗어난곳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컸다. 이곳에서 디지털 디톡스는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이었다. 디젤 모터는 사람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목적에 맞게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데 사용됐다. - P28

나는 한시간반째 어깨에 에밀리를 태우고 있었다. 딸의 눈으로 다시 한번 산꼭대기와 케이블카를, 소들이 풀 뜯는 초원을 본다는 게 기뻤다. 카타리나가 이렇게 느긋한 것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다른 사람들 험담을 하지 않았다. - P29

 날씨가 환상적이어서 어느 자리에서든 탁 트인 알고이 지방의 그림 같은 풍경이 거의 100킬로미터까지 내다보였다.
"에밀리와 배낭을 내려놓자 가루 설탕을 뿌린 김이 오르는카이저슈마른(오스트리아식 팬케이크-옮긴이) 한 접시와 얼음처럼 차가운 알름두들러 (탄산음료- 옮긴이) 한 병과 반짝반짝윤이 나는 란트예거(납작한 반건조 소시지옮긴이)만 있으면 완벽하게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도요."
"왜요?" 브라이트너 씨가 물었다. - P30

"아니, 그게 아니라 왜 하필 그런 음식들의 조합이냐고 질문한 겁니다. 김이 오르는 접시, 가루 설탕을 뿌린 카이저슈마른,
얼음처럼 차가운 알름두들러, 반짝반짝 윤이 나는 란트예거 모두 무척 구체적이고 눈에 보일 듯 그림 같은 표현이라서요." - P30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자, 계속 말씀해보시죠."
그의 대답에 잠시 당황했지만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카타리나는 양지에 앉아 있고, 에밀리는 산장 옆 초원 가장 가까이 있는 소에게 달려가고, 저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 P31

"전 그저 정중하게 물어보려던 건데..." 나는 이 산장에서어쩔 수 없이 보내게 된 휴가의 일부를 평화롭게 만들고 싶어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쉬는 시간입니다." 서빙하러 금방 온다던 닐스는 몸을 돌려 휴식 시간을 시작하고는 오직 자기 휴대전화 시중 만들었다. - P32

나는 "금방 갑니다"라는 말이 병참학적 장애물에 걸려 실패하지 않도록 화장실에 가기 전에 우리를 찾는 데 필요한 모든정보를 알려줬다.
"알겠습니다... 저흰 입구에서 세 번째 테이블에 앉아 있어요. 쉬는 시간이 끝나고 보면 금방 눈에 띌 겁니다. 바깥 테이블은 거의 모두 비어 있으니까요."
"예, 예." 닐스는 이번에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닐스와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모두에게 더 나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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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
및 대안의 분석

개관 및 학습 포인트

정책 결정은 정부의 의사결정 행위다. 이론적 차원에서 정부의 결정은 다양한 모형이 있다. 다양한 모형은 정부의 결정에 대해 합리성과 권력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결정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성‘을 가진 합리적 존재로부터 조직 내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조직 과정‘의 정치적 존재로 다양하게 바라본다. 합리적 존재 여부는 소수의 결정자를 가능하게 하는 반면 정치적 존재는 다수의 결정자를 제시한다. - P138

■ 정책 결정의 의의와 중요성

즉,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구성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예측하고, 예측된 정책 수단 간의 비교분석을 통해 ‘선택‘하는 과정이 ‘정책 결정‘이다. - P139

2 정책결정모형의 유형 기준으로서 합리성과 권력(결정 권한)

이미 오래전 사이먼(Herbert A. Simon, 1948)은 행정의 핵심은 의사결정이라고 간주했고 왈도(Dwight Waldo, 1955)는 행정을 고도의 합리성을 갖는 협동적 인간행동이라고규정했다(박종민, 2008:14).
정책학은 고도의 합리성을 요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적합한 처방을 제시하려면 합리적 의사결정이 전제돼야 한다. - P139

1) 합리성의 개념 및 의의

어떤 개념은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막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호하고 잘 잡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합리성도 이러한 개념 중의 하나다(백완기, 1983: 395). 행정학은전적으로 합리성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베버(Max Weber) 이후 이문제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다루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 P140

이때의 기술적 합리성은 직접적으로 인간생활을 강제하고 규제하지만, 그 영역의 범위는 주로 이해타산의 문제에 한정된다. 따라서 추상적 가치나 이념적가치를 다루지 않는다. 기술적 합리성은 그 가정이나 성격상 제약점이 많이 있으나 합리성의 가장 기본적인 차원인 이해타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경제학이나 전통적 행정학에서 합리성의 대명사로 취급돼 온 것이 사실이다. - P141

최종원(1995: 132)은 일상생활에서나 학문 연구에서 합리성은 대체로 경제성, 효율성또는 능률성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어진 목표와 제약 조건에 따라서 목표 달성을 위한 대안 선택 시 다양한 대안들 중 최소의 비용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하는 행위 또는 동일 비용으로 최대의 목표 산출을 얻을 수있는 대안을 선택하는 행위를 합리적인 선택을 이성적 의사결정이라고 간주한다. - P141

첫째, 이치에 맞는 논리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성(理性)인 추론을 요구한다. 어떤행동을 취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를 추론하는 과정에서 이치에 맞는 논리를사용한다는 뜻이다. (중략)
둘째, 행동 방안을 선택하기 전에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사전에 그 결과를 검토한다는 뜻이다. - P141

셋째, 의식적인 인지 과정은 무의식적인 선택, 감정적인 선택, 어떤 영감에의한 선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정책문제에 대해서는 이해 관련자들이 다양하고, 미래상황도 불확실하며, 예측되는 결과 자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의하는 선택이 이뤄지기란 매우 어렵다. - P142

3 정책결정 이론모형

1) 합리성(上) • 권력(上): 합리모형, 만족모형, 최적모형

(1) 합리모형

① 배경 및 특징

이성에 근거한 분석적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합리모형은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에 정책문제와 관련된 정보. 지식을 구할 수 있고, 이에 관련된 모든 답안을 찾을 수있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리모형은 이성적추론 과정을 통해 사인전에 결과를 검토하고 무의식적인 선택, 감정적인 선택, 어떤 영감에 의한 선택과는 의식적인 인지 과정을 거치게 된다. - P143

사이먼(Herbert A. Simon)이 ‘합리적 선택킈 고전이론(Classical theory of rational choice)‘이라 명시하는 합리모형은 포괄성 (comprehensiveness)을 강조하는 모형이며, 완전분석적 합리모형이라 한다(김지원. 문병기, 2012).

첫째, 문제 정의다. 정책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서 명확히 정의하며, 명확한 정의는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이끌어 낸다.
둘째, 바람직한 목표 설정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한 최적의 목표를 명확히규정한다. 이때 상위 목표와 하위 목표 간의 관계성과 우선순위를 정한다.
셋째, 대안의 탐색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안을 광범위하게 탐색한다.
넷째, 결과 예측이다. 각 대안들이 선택됐을 때 나타나는 모든 결과를 예측한다.
다섯째, 대안 간 비교평가를 수행하는 것이다. 각 대안들의 예측되는 결과를 추구하는 가치에 비춰 비교 및 평가한다.
여섯째,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 P144

(3) 최적모형

① 배경 및 특징

최적모형(optimal model)은 정책 결정에 경제적 합리성과 함께 직관, 판단력, 창의력과 같은 초합리적 요소까지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보는 모형이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통합한 규범적 처방적 모형이다. 정책 결정의 유형에서 합리성과 직관이 포함된 정책결정모형이다. 최적모형은 기존의 합리성에 초합리성(직관)을 포함하게 된다. - P146

③ 모형에 대한 평가: 비판 또는 장·단점

최적모형에 대한 평가는 초합리성에 대한 비판과 연결된다. 우선, 초합리적 요소를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둘째, 가치. 목표 · 가치 기준을명확히 하기 위한 노력에 비해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 P147

(3) 합리성(下) • 권력(上): 휴리스틱, 전망이론

(1) 휴리스틱스

① 배경 및 특징

휴리스틱(heuristices)는 불충분한 시간이나 정보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나, 체계적이면서 합리적인 판단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어림짐작의 방법이다(한국심리학회, 2014). 사이먼(Simon, 1955)이 주창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은 휴리스틱을 잘 설명하는데,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적이라는 것에서 출발해 휴리스틱을 사용해서 과제를 단순화시킨 후 후기에 규법적(normative)인 의사결정 규칙을 사용하고, 단순한 과업 상황에서는 처음부터 최종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규범적 규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3) ‘제한된 합리성‘이란 다양한 의사결정 상황에서 인간의 인지적인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의사결정 문제를 인지적 한계 안에서 다를 수 있는 범위로 축소시키고, 간단해진 과업의 수행에 한해 규범적 규칙을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중구, 2000: 105). - P149

2 모형의 내용

둘째, 가용성 휴리스틱이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최근 발생한 사례에 초점을 두고 특정 사건의 발생 또는 확률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기억에서 잘 떠오르는 대상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리는 현상을 말한다(Folkes, 1988).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상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는 현상은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 또는 인지적수월성(cognitive fluency) 이론의 원리와 비슷하다(Reggev. Hassin, & Maril, 2012). - P150

넷째, 감정 휴리스틱이다. 감정 휴리스틱이란 어떤 사건이나 정책문제를 판단할때 경험으로 형성된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슬로빅 외(Slovic et al., 2000)는 감정과 의사결정 과정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감정 휴리스틱을 제시했다. - P150

제3절 지방소멸

1.의의

지역정책과 관련된 최근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지방정부 인구소멸이다(서인석 외,
2021), 과거 일본, 미국 등의 지방정부 파산의 이슈 수준을 넘어 지방소멸(지역소멸)은존립의 문제로 여겨진다. 사실 지방소멸은 최근 우리사회에 대두되는 가장 심각한 미래문제일지도 모른다(김진형, 2020: 56).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 인구감소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면서 결국에는 대도시만 살아남는 ‘극점사회‘가 도래할 수도(이건웅, 2020: 128) 있는 것이다. - P293

한편, 정부는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정부에 지원할 수 있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했다.⁶ 구체적으로, 지역 주도의 지방소멸 대응 사업 추진을 위한 재정 지원을 목적으로, 연 1조 원(광역 25%, 기초 75%) 10년(2022~2031년)간 지원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지원대상은 서울, 세종을 제외한 광역자치단체 15개와 인구감소지역 89개 및 관심지역 18개 기초자치단체 등 총 122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했다.

6) https://www, mois.go.kr/frt/sub/a06/b06/localextinctionFund/screen, do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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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신과
종교의 탄생

타락한 문화들이 지닌 다른 많은 특징처럼, 우리는 ‘신‘이라는 개념을 워낙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게 실제로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외계인 관찰자의 관점에서보면 인간이 최소한 지난 6,000년 동안 전능하고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그들을 보살핀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사가 끝없는전쟁들로 가득하다는 점이나, 지위와 부에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만큼이나 당혹스러워 보일 것이다.  - P246

원시적 영혼신앙
그럼에도 이상한 점은 전쟁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들도 인간만큼오래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처럼 신들에 대한 믿음은 타락의 특별한 특징이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의 종교는 유신론이 아니다. 즉, 신들의 숭배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 P247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아잔데족에게는 ‘음보리‘라는 최고존재의 관념이 있다. 그러나 인류학자 에번스 프리처드는 그와 연관된 공식 행사는 하나뿐이며 거의 실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누군가 음보리에게 기도하거나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² - P248

11 산과 종교의 탄생

2) Evans-Pritchard, 1971. - P418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대륙의 온타리오와 오클라호마의 레나페 인디언들은 최고의 존재가 세상을 창조했으며 그들이 가진모든 것을 주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가장 높은 열두 번째 하늘에 있기 때문에 거의 주의를 기울일 수가없다. 그들은 매일의 일출과 뇌우 그리고 모든 바람에 존재하는
‘마니 토와크‘, 즉 최고 존재의 대리인들에게 대부분의 관심을 쏟는다.⁴ <인류 사회들Human Societies>에 나온 렌스키의 통계에 따르면 수렵채집 사회들의 단 4퍼센트와 단순 원예 사회들의 10퍼센트만이 인간들의 도덕적 행동과 관련 있는 창조신의 개념를 갖고 있다.⁵ - P248

4) Eliade, 1967.
5) Lenksi, 1978. - P419

 원시종교에는 두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신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우리는 앞에서 이들 중 하나에 대해언급했다. 즉 세상 전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는 생기를불어넣는 힘이 스며들어 있다는 원시인들의 인식이다. - P249

원시종교의 두 번째 중요한 측면은 복수로 지칭하는 ‘영혼들(spirits)‘에 대한 개념이다. 보통 영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들과 영혼들로서 늘 존재하는 자연의 영혼들이다. 그것들은 어디에나 있다. 모든 사물과 모든 현상에는 특별한 영혼이 관계되어 있다. B. 볼라지 이도우가 아프리카 전통 신앙에 대해쓴 것처럼, "땅의 어느 지역이든, 어떤 사물이든, 또는 생물이든 그 자신의 영혼을 갖지 않거나 영혼이 살지 못하는 것은 없다."⁹ - P250

9) Idowu, 1975, p.174. - P419

영혼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미신과 환상의문제라고 추정하는 것은 상식인 듯하다. 프랑스의 종교학자이자철학자인 오귀스트 콩트*는 우리의 조상들은 의식이 있는 존재였으므로, 모든 자연현상도 그것들의 내면적 존재와 함께 살아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¹¹

* 실증주의를 창시한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이라는 용어도 그가 만들었다. 인지 발달을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 실증적 단계로 구분하는 3단계설을 주장하였다. - P251

11) Hamilton, 1995. - P419

모든 나무, 바위, 강은 영혼의 힘과 함께 살아 있으며, 그것들 자신의 영혼과 존재를 가졌다. 그리고 아마도 자연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원시인들은 사물들이 단순히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에서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존재라는 의미에서도 활동적이고 자주적인 힘들이라고 믿게 되었다. - P252

여신 종교

영혼의 힘으로서 신에 대한 믿음은 신, 사원, 성직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관념들이 나오기 이전의 ‘구종교(old religion)‘였을 것으로 보인다. - P252

 옛날의 인간들은 분명히 여성적인 형태를 숭배했고, 여성들의 출산능력에 대해 커다란 외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유럽과 중동 지역을 통해 많은 수의 작은 여성 신상이 발견되는 것을 두고 판단하건데, 작은 여성 신상이 그들의 중요한 예술 형식이었던 것으로보인다. - P253

여신들은 타락 이후 시대 초기에는 확실히 일부에 의해 숭배되었다. 숭배된 여신들은 지상과 천국을낳은 수메르의 여신 남무, 이집트의 여신 누트, 크레타의 여신 아리아드네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여신숭배의 후기 국면을 원시적 영혼 종교와 가부장적 일신론적 종교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로 볼 수 있다. - P254

선사시대 여신 종교 사상은 일부 선사시대의 사회들이 모성중심이었다는 믿음과 비슷한 종류의 오류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선사시대 사회들이 가부장적이 아니었다고 해서 반드시 모성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아이슬러는 지적한다. 실제로는 지배에 대한 이념 자체가 전혀 없었으며, 어느 한 성이 다른 성을 억압하지 않았다. - P255

신들의 탄생

오귀스트 콩트와 제임스 프레이저 같은 과거의 종교학자들도 오래전의 인류 사회는 신들을 갖지 않았다고 믿었다. 콩트는 원시적 인간들은 그가 ‘주물 숭배적 단계*라 부르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믿었는데, 이는 다신교와 일신교 단계 전에 나온다.²² - P255

22) Hamilton, 1995. - P419

당시의 전형적인 생각대로, 콩트와 프레이저는 원시종교를 계층의 제일 하층부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유일신 종교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인간을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게 하는 일반적인 진보의 한 부분이었다. - P256

처음에는 다신교가 있었다. 사랑의 신, 전쟁의 신, 농사의 신등 수백의 다른 신들이 있어서 생활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관장했고, 다른 마을이나 산과 강 그리고 각각의 가족들을 돌보는 지역신들도 있었다. - P256

처음에 오래된 영혼 종교의 흔적들은 새로운 신의 종교들과 뒤섞였다. 앞에서 주장했던 대로 과거의 여신은 남신과 영혼 사이, 일종의 중간 단계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여성의 정신은 자연에 훨씬 더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자연과 같이 치유하며 돌보는 특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P257

 그리스에서도 유일신 이전의 단계가 있었는데 ‘유테이아‘는 카시러의 표현대로 ‘사람을 식물이나 동물과 연결시키는 자연의 친족•혈족‘이었다.²⁵
그러나 이러한 측면들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면, 모든 유명한 신들은 남성이었으며, 영혼의 힘은 하나의 밀교적 개념으로만 존재했다. - P257

25) Cassirer, 1970, p.91. - P419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타락한 특징들이 전체적으로 강화되어 가는 현상 -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지던 모성선호주의가 사라져 가는것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는 기원전 2000년경에 발생했는데, 아마도 자의식의 심화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일신교도 자의식의 심화에 따른 결과였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유일신 종교는 기원전 14세기경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원전 1350년에서 기원전 1334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한 왕. 아멘호테프 4세라고도 하4며 왕비는 네페르티티이다. - P258

그러나 이러한 종교들이 그렇게 넓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원인은 아마도 그 종교들이 타락 이후의 정신에 이상적으로 들어맞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 하나의 신만이 있다는 생각, 즉 전능한 아버지 같은 형상이 우리를 항상 보살피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하며, 우리의 선행에 보상하며, 완전한 복종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깊은 정신적 결핍을 분명히 만족시켰다. - P259

자아폭발에 대한 반응으로의 신

자아폭발이 어떻게 원시의 영혼 종교의 막을 내리고, 일신교를 만들어냈는가?
사실, 우리는 이미 질문의 첫 번째 질문에는 답을 했다. 영혼종교는 자아폭발과 함께 온 정신에너지의 재분배로 인해 끝이났다. 이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에서 영혼의 힘의 존재를 자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 P260

타락한 인간들은 부분적으로는 이 영혼의 힘에 대한 인식을상실한 데 대한 반응으로 신이 필요했다. 이제 세상은 차갑고, 낮설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장소였으며 실존주의 철학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사람들의 삶은 ‘부조리하고‘ 불필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들의 개념은 이 문제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세상을 좀 더 온유하고 덜 무질서한 장소로 보이게 하려는 방법이었다. - P260

여기서 D. H. 로렌스는 신에 관한 사상이 고립감으로부터 어떻게 떠올랐는지를 설명한다.

아주 고대의 세계는 완전히 종교적이었고 무신론적이었다. 전제 우주는 살아 있었으며 사람의 육신과 접촉하고 있었다. 신에 대한 생각이 차지할 여지가 없었다. 개인이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가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단절에 빠져들면서 비로소 신에 대한 개념이 생겨났다. 인간과 우주 사이에끼어들기 위해서였다. 신과 신들은 인간이 단절감과 고독감에빠져들었을 때 그 사이로 들어온다.³⁰

이 구절은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신은 인간과우주 사이에 개입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고독감을 완화시켜주는것에 관한 문제다. 타락한 인간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그들이 - P261

30) Lawrence, 1971, p.88. - P419

신은 부차적인 기능도 있었다. 타락한 인간들은 영혼의 힘에대해 몰랐으므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영혼들의 개념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의인화된 신들이 이 역할을 떠맡고 모든 것을 설명하게 되었다.  - P262

다른 관점들

아메리카에 처음 정착한 많은 유럽인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기도도 하지 않고 사원이나 교회도 짓지 않았으므로 비종교적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종교와 일상생활은구별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이 그들 주위에 어디에나, 언제나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신을 숭배하기 위해 교회나 사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 P262

원시인들에게는 교회나 절 같은 특별한 경배의 장소도 없을 뿐 아니라, 특별한 종교 주간도 없고, 성직자들과 같은 종교 전문가들도 없다. 이것의 핵심은 물론 그들이 영혼의 힘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상 전체가 성스러운 곳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배의 장소는 필요 없었다. 모든 바위, 모든 물줄기가 영혼으로 가득 차 있으니 다른 모든 장소들 같이 성스럽고 특별하다. - P263

모든 바위, 모든 물줄기가 영혼으로 가득 차 있으니 다른 모든 장소들 같이 성스럽고 특별하다. 그리고 신성함은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항상 존재하므로인간과 신들 사이에서 중개자로서 행동할 종교 전문가들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영혼의 힘에 대한 인식을 상실하면서 이 모든 것이변했다. 종교는 일종의 취미가 되었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활동에 추가해 실행하는 것이며,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 P263

신의 모양을 한 구멍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종교가 보상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소외와 억압과 가난에 대한 반응으로 발달시킨 환상이라고 보았다.³³ 프로이트는 종교가 문명으로 인해 생겨난 궁핍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라고 믿었다
- P264

33) Marx, 1959. - P419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는 모두 종교가 인간 발달의 특정 단계에서만 필요할 뿐이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국가가 도래하면 종교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종교를 만들어낸 소외와 억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64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유토피아 국가가 실현된다 해도타락한 정신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 또는 최소한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얻을 다른 방도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타락한 정신은 공산주의 국가 자체를 막아서겠지만.) - P265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종교라는 마약은 우리가 쉽게 구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자아폭발이 우리에게 선사한 강력한 사고(추리·판단) 능력이 자아폭발의 부정적인 영향, 즉 종교를 통한 위로가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과학은 종교의 2차적 기능인 세계를 설명하는 과제를 떠맡았으며 그 과정에서 1차적 기능을 무력화했다. - P266

그 문제를 처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영성 또는 영적 발달을 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영성을 종교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영성이란 아주 순수한 의미에서는 기도 성경• 천국 • 설교자 심지어는 신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 P266

다시말해, 그것들은 우리의 정신적 불화로 인한 증상을 처리하기보다는 정신적 불화를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다음에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변형적 체계 사용을 통해 우리는 종교 그리고 우리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다른 형태의 보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 - P267

01

인류는
무엇이 잘못되었나

만약 외계인이 있어서 지난 수천 년 동안의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을 관찰해 왔다면 인류는 아주 망가진 과학실험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일 것이다. 혹은 다른 외계인들이 놀라운 지적 능력과 독창성을 가진 완벽한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 지구를 실험 장소로 선택했다는 가설을 제기할 수도 있다.  - P15

그런가 하면 인류의 창조성에 대한 훌륭한 업적도 들어갈 것이다. (중략) 또 위대한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의 지혜나 직관도 넣을 수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의식 있는 생명체로서 자신의 정신적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한쪽 측면에서 위대한 발전이 있으면, 다른 측면에서는 발전이 없어 상쇄되고 마는 것이 자연법칙이다. 위대한 재능은 항상 위대한 결함을 동반한다. 천재성은 있었지만 정신적 불안과 우울증, 사회성 결핍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던 반 고흐나 베토벤 같은 위대란 예술가들은 생각해 보라. - P16

인류 사회의 특징 1-전쟁

역사가 기록된 이후 인류 사회에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전쟁, 가부장제 사회적 불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는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가장 극도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종이기도 하다. 역사책을 읽을때 우리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말한 대로 "인류사에 분명히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죄의식"¹을 느끼지 않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 P17

1. 타락의 역사

01 인류는 무엇이 잘못되었나

1) In Wilson, 1985, p.4. - P411

사람들은 종종 전쟁은 선천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 원인으로 남자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증가 또는 세로토닌의 감소와 같은 화학물질들을 들기도 하고, 인간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불사하는 이기적인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이론, 진화를 기존의 생명체 중심으로 보지 않고 유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는 같은 제목의 책에서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일종의 생존기계이며, 스스로를 복제하려는 이기적 유전자들의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 P17

그러나 전쟁이 선천적이라는 견해에는 중요한 모순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전쟁은 인류 이외의 다른 동물의 왕국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이 어느 정도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영장류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인간처럼 호전적이지는 않다. - P18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대로 "인간이 자연적인 서식지에 사는 침팬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선천적인‘
공격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⁵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은 영장류보다 더 평화롭다. 물론 많은 동물이 먹이를 획득할 목적으로 다른 종의 동물을 죽이기도 한다. - P19

5) Fromm, 1974, p.103. - P411

동물학자 글렌 바이스펠트가 지적한 대로 "동물은 종종 ‘쉿‘ 하는 소리를 내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등의 방법으로 먼저 상대를 위협한다. 공격은 최후의 수단이다."⁷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동물들은 상대를 달래려는 신호를 보내거나 개가 넘어져서 구르는것 같은 항복을 뜻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러면 싸움은 즉각 중단되고 살육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류는 이와 같은 살육 억제 본능을 갖지 않은 매우 드문 종의 하나다. - P19

7) Weisfeld, G.,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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