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하루에 최소 2명꼴로일하다 죽는다. 작년 한 해에만 644명이 죽었고,
611명이 다쳤다. 이것도 그나마 ‘공식‘ 기록이다.
공식이라는 보수성에 기대면 실제로 더 많을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못하는 사망자가 하루에 2명 이상 매일 발생하는나라가 한국이다. - P89

이쯤 되면 ‘그럼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왜살까‘라고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을떠나자면서 ‘탈한국이 답이다‘라고 말하는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곳에서 훌쩍 떠나버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떠나고 싶어도 도저히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 P90

집권하기

예를 들어,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어떤법안을 표결로 통과시킨다고 해도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면‘ 거부권을 발동시킬 수 있다.
그러고도 ‘민주주의‘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사실은 한국의 민주화 이후부터 2022년 초까지만해도 이렇게 ‘마음에 안 든다‘라는 이유로 법안을 거부하는 대통령은 없었다.  - P92

이에 나는 여행자 당신이 애초에 한국에서얼마나 거주하려고 했을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당신께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간절히 요청한다. - P93

꼭 그런 사람이 있다.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데 자존심만 세서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다가 나라를 절망에 빠트리는 인물 말이다.  - P94

비결은 역시나 이 가이드북에서 명시한것들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다. 남성우월주의로 무장하고, 서울을 대한민국의 전부로 여기고,
학벌과 인맥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회적 약자와소수자를 대놓고 차별하고, 공정과 정의의 잣대를 기득권 남성 중심에 두고, 공동체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내 이익만 열심히 추구하면 대통령되기 어렵지 않다. - P94

.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딱 두 가지를 건드려야 한다. 세금과 부동산이다. 둘 다개혁하겠다고 외치라는 게 아니다. 세금은 줄이고 부동산 가격은 올리겠다는 기조로 설득해야 한다. - P95

가이드북을 표방한 이 책은 사실상 여행자당신께 보내는 구조 요청이다. 나는 이 행성에 있는 어느 누가 한국의 대통령이 된다 해도 이 나라의 기이한 형태를 바로 잡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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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인터넷 밈,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인터넷 밈이라는 유령이...

망했다. 아 뭘 쓰지. - P8

심영은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엄청나게 큰 인터넷 밈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 P8

우선 첫 문장을 보고 당황스러웠을 독자에게 사죄하고 싶다. 편하고 쿨하고 섹시한 첫 문장을 쓰려고 과욕을 부리다가실패했다. 이러려고 이 책을 쓰려고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원고 조지고 올게!" 외치며 책상 앞에 앉아도 언제나 조져지는 건 나인 법이다. - P9

이 책은 석사학위논문(이라고 쓰고 흑역사라고 읽는) <한국인터넷 밈의 계보학-드라마 <야인시대> 밈 이미지에 대한 매체적 연구>를 단행본으로 고쳐 쓴 것이다. - P9

다만 이 책은 인터넷 밈 오타쿠가 만족할 만한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터넷 밈의 역사는 한국 인터넷 서브컬처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내용이며 누구든지 검색을 열심히 하면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 P9

이 책의 관심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인터넷 밈을 정보성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최신 인터넷 밈을 소개하려 해도 책이 출간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죽은 밈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위험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책은 콘텐츠나 밈 마케팅 입문서¹가 아니다.

1 이 책이 인터넷 밈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식은 밈 마케팅 혹은 콘텐츠에서이야기하는 방식과 판이할 것이다. - P10

그런데 인터넷 밈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정작 답하기가힘들다. 석사논문을 쓰는 동안에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생각해보자. 신촌 오거리를 걷고 있는데 행인이 문득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것은 전혀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밈의 정의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 P11

은어나 유행어라 부르기에도,
웃긴 사진이나 영상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가 모자라다. - P11

음지에서 유통되는 인터넷 밈이 없다는 일부 인터넷 밈 덕후의 불평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여백이 부족하므로 이 책에 굳이 그런 인터넷 밈에 대해서 적지는않겠다. - P11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과 일상을 감각하는 방식에 사진과 영화 등 이미지의 탄생이 준 영향처럼, 인터넷 밈이 우리에게 준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² 이를 위해 고전으로 불리는 인터넷 밈을 파헤치는 고고학의 시선을 빌리고자 한다.

2 이는 발터 벤야민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쓴 문장이 모티프가 되었다. "역사의 광대한 시공간 내에서는 인간 집합체들의 존재 양식이 총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지각 양식도 변한다. 인간의 지각이 어떻게 조직화되었는가즉 인간의 지각을 발생시키는 매체는 자연적 조건들에 의해 제약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조건들에 의해서도 제약되어 있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 축음기 등 아날로그매체가 생겨난 1900년대 초반을 관찰하면서 이 말을 남겼다. 언뜻 복잡해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말이다. 시대별로 유행하는매체에 따라서 사회가 달라지고 우리가 대상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도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 P12

1장에서는 밈과 인터넷 밈 개념에 관한 여러 선행연구를 정리하며 인터넷 밈의 개념을 최대한 좁히려고 한다. (중략). 2장에서는 인터넷 팀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는 합성 소스를 설명한다. - P12

4장에서는 한국에서 인터넷밈이 자라나게 되는 사회적인 감수성을 분석하고, 일베 등 문제가 되는 정치적인 밈을 분석한다. 5장에서는 영화를 통해서인터넷 밈이 예술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AI 시대의 인터넷 밈을 그려내면서 인터넷 밈이 우리의 예술적인 표현 수단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려 한다. - P13

책의 출발이 된 논문을 지도하신 서현석 교수님과 기꺼이 심사를 맡아주신 오영진 교수님, 심보선 교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지금 없었을 것이다.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신 갈로아(김도윤) 작가님과 임지은 작가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P14

뒤늦게 이야기하는 바지만 책의 첫 문장을 허투루 쓴 것은아니다. 수십 개 가까이 되는 첫 문장 후보 중 하나를 겨우 골랐다. 나름대로 책 전체를 압축하려고 쓴 것이기에, 이 책이 다룰 내용 대부분이 첫 문장 리스트에 있다. - P14

첫 문장 후보 리스트³
1. 오늘 인터넷 밈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 모르겠다.
2. 행복한 움짤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움짤은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3. 이 몸은 합성 소스이다. 뜻은 아직 없다.
4. 인기깨나 있는 합성 소스에게 합성할 잉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다.
5. "크아아아아" 밈 중에서도 최강의 인터넷 밈이 울부짖었다.
6. 나는 병든 병맛이다………… 나는 악한 병맛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병맛이다.
7. 부끄러움 많은 인터넷 엽기를 보냈습니다.
8. 박제가 되어버린 합성 소스를 아시오?
9. 인터넷 밈,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10. 합성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인터넷 밈이었다.

3 아 참, 안톤 체호프의 권총 법칙에 따르면 작품에 한번 등장한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하는 법이다. 첫 문장 후보 리스트에 있는 열 개의 문장은장이나 절의 제목으로 재탕될 것이다. - P15

훔쳐 온 첫 문장의 출처는 적어두지 않으려 한다. 독자가 검색으로 느끼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는 않다. 출처를 일부러 명시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자르고 편집하고 도둑질하는 불펌이야말로 밈화, 즉 인터넷 밈이 생산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P15

* 초상권 및 저작권 문제로 게재 허가를 받지 못한 이미지는 QR코드로대체해 삽입하였다. 왜 싣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더했다. 불법과 합법, 비윤리와 농담 사이에 있는 인터넷 밈의 복합성이더욱 잘 드러날 것이다. 독자를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초대하고 싶다.
*나무위키 등 여러 웹사이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관계에 여러논란이 있는 인터넷 밈의 경우, 검색을 통해 암묵적으로 다수가 정설이라 동의하는 정보를 서술했다. - P16

1장
인터넷 밈, 매체에 타라

매체학으로 본
인터넷 밈의 탄생 배경 - P17

피어나! 너 내 미미 ・・・ 밈이 되어라
-밈 개념의 정립과 그 발전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쓴 《이기적 유전자》에서만든 신조어다. 재현,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mimeme‘를 유전자를 뜻하는 영어 ‘gene‘과 운율을 맞춰 ‘meme‘으로 변형시켰다. - P18

도킨스가 초점을 둔 것은 밈 하나하나가 아니라 계속 복제되고 전파되는 밈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도킨스의 밈은 모방을 통해서 전승되는 모든 문화적인 정보를 뜻하면서도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기도 한다. - P18

비록 과학적 사실인 유전자의 전달에 문화 현상을 빗대어표현하는 것이 무리수라는 비판이 있기는 해도, 밈은 여전히잘 쓰이는 개념이다. 문제는 무엇이든지 밈이라고 이야기할 수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것을 재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복제라고, 이전에 없던 것을 생산한 발명이나 창조적인 예술에 대해서는 문화적인 돌연변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 P19

그렇다면 인터넷 밈은 무엇인가? 인터넷에서 전송되는 모든 파일을 인터넷 밈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도킨스는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자 인터넷이 밈을 퍼뜨리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 P19

지금도 수많은 글에서 인터넷 밈을 설명할 때 밈의 개념을사용한다. 보통 한 개념어의 어원이나 유래가 그 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터넷 밈은 전혀아니다. 밈이라는 개념에서 그저 "유행하고 번진다"라는 느낌만 빌린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 P20

 인터넷 밈 개념의 부조리와 모호성으로 인터넷 밈 연구가 어려워졌다고 호소하는 연구자도 있을 정도다.²


2 김민형, 2021, <팬덤의 수행성 연구- 인터넷 밈과 시민 참여문화>, <기호학 연구》, 66(0), 참고, - P20

더 정확히는, 인터넷밈의 뜻이 원래 밈의 뜻을 대체했다는 것이야말로 복제품이 원본을 압도하는 인터넷 밈의 매력이겠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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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계속 강조할 보통의 한국인이란,
‘한국에 거주하는 중장년 남성의 시선에 어긋나지않는 상태를 뜻한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남성이라는 성별에 권력이 편중된 국가다. - P3

지침을 하나둘 따르다 보면 당신을 ‘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이가 없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당신이 노동현장에서 해고되거나 소외되는 일, 특정 무리에서 배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P4

그럼 한국에 오신 우주 여행자 여러분을 환영하며, 한국에 계신 한국인 여러분을 위로합니다.

어두운 시절에,
안내자 희석 - P4

성염색체는 고민 없이 XY를 선택하자.
성염색체의 여러 유형 중 XY와 XX가 가장 많은데,
이 중에서 XY 성염색체만이 당신을 한국에서살기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당신의 행성이나별에선 ‘성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XY 성염색체 선택은 기호가 아닌 필수다. - P11

한국에는 가부장제라는 풍습이 있다. 쉽게말해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풍습이다. 그렇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남자라면 무조건 권한을 쥘 수 있다. - P12

한국에는 12년 주기로 순환하는 ‘띠‘ 문화가 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매해 지정된 열두 마리의 동물이있고 각 동물이 해당하는 해에 태어나면 ‘동물+띠‘
출생으로 분류된다. - P13

그런데 이 말띠 해에 여성으로 태어나면 해당 출생자의 평생 운수가
‘드세진다‘라는 주장이 한국인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었다. 당연히 과학적 근거도 없고 증명된 사실도없으나 보통의 한국인 다수가 이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 P13

나는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살아남아서 지금 당신께 가이드북까지 쓰고 있다. - P13

당신이 한국 남자로 한국살이를 시작하지않으면, 일몰 이후(일몰 전에도 비슷하지만) 거주지바깥을 혼자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없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위험을감수해야 한다. - P14

여성 대상 범죄 가해자들은 99%가 한국남자들이다(100%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하라고 외치고 설득하면 안 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남자들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 P14

직업군은 천차만별이지만, 전 직업군에서 우대하는 사항이 있다. 바로 ‘한국 남성‘이어야 할 것. 남성이여성에 비해 일을 더 잘한다는 객관적인 증명도없고, 남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아닌데 모든 직업군에서 한국 남성을 선호한다. - P15

한국은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여전한나라다. 믿기 어렵겠지만, 같은 직업군인데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승진과 급여에 차이가 있는것이다. - P16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소통할 때도 당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따라 돌아오는 태도가 다르다. 그냥 모든 것이 여성에게 불리하니까 당신은 더 이상의고민도 하지 말고 당장 XY 성염색체를 선택하길 바란다. - P16

학벌주의 찬양하기

지구의 여러 국가와 비슷하게, 한국도 교육 기관을 생애 주기별로 구성하고 있다. - P22

당신은 반드시 서울대학교 출신이어야 한다.
권력과 카르텔이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우주여행자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권세를 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23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등이다. 각 대학 구성과 순서는 시대에따라 조금씩 바뀐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유치한 기준으로 사람의 됨됨이까지 일렬로세우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미성년에서 - P23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 치르는, 1년 중 단 한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그 시험만 잘 보면 된다는식이다. 불합리하고 야만적인 시스템이지만,
이걸 뜯어고치기란 매우 어렵다. - P23

부산 소재의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지역 대학 졸업자라는 이유로 나의 모든 능력을 의심받을 때도 있었다. 내 실수가아니라 일터의 대표자가 실수한 사안인데도 내가 비명문대 출신이라서 무조건 내가 잘못이해했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 P24

누군가는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도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에 포함되지 않아 승진이막히고, 또 누군가는 똑같이 입사했던 사람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본인보다 더 많은임금을 챙겨가는 경우를 봐야 했다. - P24

 한국의 학벌 문화는 철저한 사대주의다.
서울대가 진리라면 미국 하버드 대학교는 신앙이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경력만으로권력의 꼭대기 층에 앉을 수도 있다. - P25

학벌과 능력 중 무엇이 더 우선인가를물었을 때 우주 여행자 당신의 대답은 무엇일까.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으나 업무 이해도가 매우떨어지는 사람, 지역 소도시 대학교를 졸업했으나 업무 이해도가 월등히 뛰어난 사람.  - P25

. 이미 한국의 유수 기업들은 서류 평가과정에서 학벌을 기준으로 삼는다. 요즘은 그렇지않다,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 피해의식이다.
능력 위주로 선별한다 등 그럴싸한 변명은 많지만 결국 돌고 돌아 학벌 중심이다. 학벌이 좋으면 머리도 좋으니 당연히 합격자 명단에 상위권대학 출신이 많은 거라고 성토할 수도 있겠다. - P26

혹시 아는가. 서울대 출신 남자라는 이유로대통령도 덜컥 시켜줄지. - P27

부동산에 영혼 걸기

우주 여행자 당신이 살던 곳은 어떤 형태의거주지를 갖추고 있었는지 잠시 떠올려 보자. 그 거주지는 당신이 소속된 행성이나 별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제공되었는가. - P28

한국의 거주지, 즉 부동산으로 일컫는 주거시장은 기이한 경제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재산이나 소유물을 넘어 하나의 계급,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미 당신이 거주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 P28

우주 여행자 당신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가, 부정적으로보는가?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냐고 물으면 당신은 아직 보통의 한국인이 아니다. - P29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에선 집값이낮아질수록 분노 지수가 높아진다. ‘내가 살때보다 비싸야 많이 남겨 먹는다‘라는 신념이확고하기 때문이다. 중고 물품은 새 제품보다 싸게파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면서, 부동산에 있어서는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P30

이미 집을 여러 채 소유하며 무주택자들을 옥죄는 부자들도, 부자들이 소유한여러 채의 집 중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평생을 달리는 무주택자들도 집값 하락에 부정적이라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 P30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나눠주고, 생계를 겨우이어가는 사람에게 평균 정도의 소득을 보장해주고, 능력주의에 국한하지 말고 다 같이 잘사는 방향을 고려해 보자고 하면 보통의 한국인은 비웃음과 조롱을 건넨다. - P31

실제로 한국 보수 정당의 한 국회의원은 "임대 아파트에사는 사람들 중 정신질환자가 많이 나온다"라는말을 사석이 아닌 공석에서 발설하기도 했다. - P32

한국 정부는 집을가진 자에게 한없이 너그럽다. 10억짜리 아파트를보유한 사람이 1년에 총 300만 원을 세금으로 내는것도 과하다고 깎아주려는 정부다. - P33

비건을 유별나게 보기

비건이라는 삶의 방식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채식 방법 중 하나다. 육류와 어패류등을 섭취하지 않고, 오직 채식으로만 이뤄진 식단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 P64

(전략), 나아가 동물권을 위해 힘쓰고있다. 나 역시 이러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비건을 ‘지향‘하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우주 여행자 당신이 보기에도 이 삶의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가기란 너무나 힘들다. - P64

 서울에는 비건식을 제공하는식당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여럿 존재한다. 그에 반해 비수도권에는 비건식이 제공되는 식당이 거의 없는 지역이 다수이며,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매우 제한적인 메뉴에 불과해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없다. - P65

비건 식당이 이토록 적은 데는 여러 원인이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동물권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P65

일각에서는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조금 바꿔서 물어보고 싶다. 수요가 없는 게 아니라,
수요가 없는 것처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 P66

공정과 팩트에 집착하기

우주 여행자 당신이 지금 갖추고 있는 모습, 한국남자의 모습으로 매일 강조해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공정‘과 ‘팩트‘다. - P82

문제는 한국 남자들이 외치는 공정과 팩트는 모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 P82

우주 여행자 당신도 이 행성에서 보통의 한국인으로 살아가려면 한국남자들의 잣대를 잘 습득해야 한다. - P82

 한국 남자에게 유리할수록 보통의 한국인이 열광하는 공정과팩트에 가깝게 인식된다. - P83

한국 남자들이 말하는 공정과 팩트의예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난 십수 년간 울부짖었던 것 중 대표적인 사안만 아래에 정리했다. - P83

① 군복무

한국 남자들은 징집제 대상에 여성도포함돼야 공정하다고 말한다. 군복무를 마친사람만 ‘1등 시민‘으로 인정하려고 만든 이 군복무 제도의 구조나 역사를 말끔히 지운 채, 왜 남자들만 군대에 가느냐고 운다. 정말로 운다.
분노에 차서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지만, 정부나 헌법기관이 아닌 여성에게만 화낸다. - P83

③ 성폭력

한국 남자들은 ‘성폭력‘의 기준이 공정하지않으며, 이에 따른 ‘미투‘ 운동 역시 한국 남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한국 남자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절대 도망칠 수 없는 상태에서가해진 성폭력만이 ‘진짜 성폭력‘이라고 주장한다. - P84

④ ‘한남‘의 범위

‘한남‘에 대한 비판을 두고 "나는 그런 남자가 아닌데 왜 한국과 남자라는 보통명사를 합쳐서 욕하느냐"라며 우는 한국 남자들이 있다.
본인은 예외로 두어야지 이렇게 ‘팩트‘에서 벗어난,
‘공정‘하지 않은 비판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외치는 편이다. - P85

같은 가해자,
동조자인데 자기만 빼달라며 운다. 우주 여행자 당신도 앞으로 ‘한국 남자‘ 혹은 ‘한남‘이라는표현에 발끈하면서 "전 그런 남자들이랑 달라요"라고 말하면 자연스러운 한국 남자로 인식될 것이다. - P85

한국에 무난하게 정착하려면 이런 비참한것을 잘 수행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실제 한국 남자들은 이것들이 잘못됐다는 걸 진심으로모른다. 몰라도 잘 살아간다. - P86

무책임한 나라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은 국가의 의미를상실하고 있다. 통치 조직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을뿐더러, 한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소홀히하고 있다.  - P87

가이드북 집필일 기준으로 가장 최근의 참사였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만 봐도 금방 알 수있다. 안전 대책 미수립, 참사 후 핵심 관계자의책임 회피, 참사 피해자 입 막기, 진상조사 방해등을 국가가 주도하는 중이다. - P88

대형 참사 외에도 한국 국민은 일상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범죄 피해가 극심하지만, 이에 따른 응당한 엄벌은 없다. - P88

마법의 문장 중 가장 유명한것들은 다음과 같다.

① 초범이라서
② 범행 당시 심신미약이라서
③ 앞날이 아직 창창한 나이라서
④ 깊이 반성하고 있어서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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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그런데 이 모티프는 셰익스피어가 쓴 가장 충격적인 비극인 또다른 작품에서도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한 약혼녀의 선택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모티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유사점을 가진 채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상자의 선택이라는 모티프와 연결되어 있다.  - P278

이로 인해 단지 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불행해진다.
이것 역시 세 여인 사이에서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을까? 세 여인중 가장 젊은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고, 따라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인이 아닐까? - P278

이제 똑같은 상황을 소재로 하는 신화와 민담과 문학 작품들의많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목동파리스도 세 여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번째 여인을 선택했다. 신데렐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두 언니를 물리치고 왕자님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던 셋째였다. - P278

코델리아, 아프로디테, 신데렐라 그리고 프시케의 경우로 한정해서 이야기해 보자. 세 여인이 자매 사이인 것으로 보아, 비록 그중 한 여인만이 선택된다고 해도 이들이 동일한 가계의 구성원으로 구상되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 P279

이 특징들은 또 어떤 통일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이 특징들이 모든 예에서 똑같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코델리아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또 납처럼 광채를 발하지도 않는 벙어리처럼 <사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⁵ - P280

「아름다운 헬렌이라는 멜락과 할레비의 대본 속에서는 미의 경연에서 다른 두 여신이 어떤 제안을 해왔는지 파리스가 상세히열거한 다음 아프로디테가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전하고 있다.

세 번째 여인, 아! 세 번째 여인이여...……….
세 번째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구나.
상을 받는 자는 그러나 바로 그녀…….

만일 우리가 <침묵>에서 위의 요약된 인용 속에 들어 있는 특이점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침묵은 꿈속에서 일반적인 죽음의 표상>임을 일러 주기 때문이다.⁸ - P281

마찬가지로 몸을 숨긴다거나, 신데렐라를 찾아 나선 매력적인왕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찾을 수 없는 환경에 있다거나 하는 것은 꿈속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의 상징이다. 이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 들어 있는 한 교훈에서 납의 그 <창백함>이 연상시키는 분명한 창백함만큼이나 명료한 것이다.  - P282

나는 여기서 그림의 민간 설화 중에서 「열두 형제」¹⁰라는 이야기를 이용해 보려고 한다. 옛날 한 왕과 왕비가 살았는데, 그들은 딸을 낳지 못한 채 아들 열두 형제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이 말했다. <만일 열세 번째 아이가 딸이면 아들들은 모두 죽을것이다. 열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왕은 열두 개의 관을 준비시켰다. 그러자 열두 형제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깊은 산속으로 몸을 피했고, 그들은 만나는 모든 소녀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다. - P282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여섯 마리 백조」¹¹에서도 새로 변해 버린 형제들이 구원을 받는다. 다시 말해 그들의 누이가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들은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처녀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하고, 급기야 왕과 결혼함으로써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다. 온갖 악의적인 험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않은 채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 P283

다시 말해 그녀는 죽음 그 자체이자 죽음의 여신이기도 한 것이다.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전위 덕분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속성들이 다시 신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전위 중 우리를 가장 덜놀라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의 여신이라는 경우다. 왜냐하면 현대적으로 번안되어 제시될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죽음 자체는죽은 사람을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284

2

호메로스가 기록한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신화에서는 오직 모이라 한 신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인화하고 있었다. 이 유일한 여신 모이라가 세 명의 자매로 이루어진 무리로(드물게는 두 명의 여신으로 이루어진 무리로) 변모하는 과정은 아마도 모이라의 여신들과 근접해 있던 다른 신들, 즉 미의 세 여신이나 시간의 여신들과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P285

세 여신은 계절을 대표하는 신들이 되었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3이라는 숫자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여신을 표현하는 데 3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쓰이게 된 것 같다. 실제로 고대인들은 초기에는 겨울, 봄, 여름 세 계절만을 구분했었다. 가을은 훗날 그리스-로마 시대에 와서야 추가된다. 예술에서 자주 시간의 네 여신을 형상화해 낸 것도 이때다. - P286

호라이라고 불리는 계절의 여신들은 시간과 관계를 유지하고있었다. 그들은 이 관계를 우선 1년의 사계절을 통해 나타냈고,
훗날에는 하루의 시간대를 나타내는 데까지 배려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계절의 여신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을 지칭하는 선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¹⁴

14 프로이트는 독일어로 시간을 뜻하는 Zeit를 쓴 다음에 괄호를 하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시간을 뜻하는 heure와 ora를 첨가해 놓았다. - P286

이러한 자연 인식은 인간의 삶에 대한 개념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자연의 신화가 인간의 신화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기상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생각되었던 여신들이 운명의 여신들이 되는 것이다.  - P287

자, 이제 다시 우리의 관심사인 세 자매 사이의 선택이라는 모티프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여러 상황을 우리가 행했던 해석에 삽입시키려고 할 때, 이 상황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 뿐이며, 또 우리가 시도했던 해석들의 분명해 보이던 내용과도 모순된다는 사실을 참담한 기분으로 깨닫게 된다. - P287

(전략), 아퓔레의 이야기 속에서는 사랑의 여신과 비견될 만한 미의 여신이기도 했다. 반면에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이었고, 『리어왕』에서는 단 하나 남은 충직한 딸이었다. 이보다 더 분명한 모순을 다른 어떤 곳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 P288

어떤 유형의 모순들이나 완전히 상반된 것들이 서로를 대체하는 현상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행하는 분석 작업에 심각한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P288

우리가 행하는 작업의 성과도 이렇게 숨어 있는 모티프들을 찾아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이라의 세 여신은 인간 역시 자연의 작은 일부분이고, 따라서 죽음이라는 고정불변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인간에게 깨닫게 하는 인식의 결과다.  - P288

신화 속에서는 죽음의 여신이 사랑의 여신이나 인간적 형상을 띤 그 외의 다른 등가물들로 대체된다. - P289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조차도, 비록 이미 오래전부터 페르세포네, 아르테미스, 그리고 세 개의 몸을 갖고 있는 헤카테와 같은 다른 신들에게 음부의 역할을 양보하기는했어도, 여전히 지옥과 일정한 관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동 지역 사람들이 숭배하던 모성의 대여신들은 모두 생산자일뿐만 아니라 파괴자이기도 했고, 또 생명의 여신이자 죽음의 여신이기도 했다. - P289

물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몇 가지 부차적인 현상들에 의해 상태가 훼손되지 않을 만큼 최초의 신화에 가해진 변화들이 심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자매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쩔 수없이 세 번째 여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290

 작가들에게서는 우리가 다룬 모티프가 탄생 신화로 수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신화가 변형되면서 약화되었던 탄생신화의 강렬한 느낌을 우리는 다시 경험하게 된다. 문학 창조자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신화에 가해진 변화들을 그들이 다시 회복시키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우리는 부분적으로나마 기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 P291

 이 사실로 인해 이야기의 전제를 이루고 있는 유산 배분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은 황당하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인간이 여인의 사랑을 단념하지 못한 채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P292

대대로 전해 내려온신화 속에는 영원한 진리가 휘장에 가려진 채 숨어 있었고, 늙은왕에게 사랑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라고, 그래서 임종의 거부할 수 없는 필연성과 친숙해지라고 충고하고 있다.
작가는 죽어 가는 한 늙은 사내로 하여금 세 여인 중에서 한 여인을 선택하도록 해서, 이 오래된 선택의 모티프를 좀 더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도록 했다. 작가는 욕망의 변화에 의해 훼손된 신화에 의지함으로써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고, 그러면서 다시 훼손된 부분을 손질했다. - P295

도스토옙스키와 아버지 살해¹

도스토옙스키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인간적 면모들 속에서 우리는 네 가지 모습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즉 그는 작가였고, 신경증 환자였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자로서 윤리주의자였으며,
또 죄인이기도 했다. 우리를 당황케 하는 이 다양성 속에서 과연어떻게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인가?

1 이 글은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도스토옙스키의 전반적인 성격에 관한 것으로, 그의 마조히즘, 죄의식, 간질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이중적 태도 등이 논의된다. 두 번째 부분은 도박에 탐닉한 도스토옙스키의 심리에 초점을맞추고 있으며, 뒤이어 그와 같은 도박에 대한 탐닉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주를 이룬다. - P541

실제로도 의문이 생긴다. 자신 속에도 유혹이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 유혹에지지 않은 채 저항하는 사람이 윤리적이리라. 매번 죄를 지은후 매우 윤리적인 덕목들을 앞세우며 뉘우치지만 반복해서 죄를짓고 후회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도덕성의 본질이 단념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 P542

도스토옙스키가 치렀던 윤리적인 싸움들의 결과 역시 결코 영광스러운 것들이 아니다. 한 개인의 충동이 요구하는 것과 그것을 막아서는 사회 공동체의 제약을 화해시키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치른 후 그는 뒤로 물러서고 만다. 그는 이러한 물러서는 자세 속에서 세속적인 권력과 영적인 권위에 동시에 굴복했다. - P542

인류의 문화가 그에게 빚진 것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그가 신경증 때문에 이런 실패에서 벗어날수 없었다는 사실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의 높은 지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은 신경증이 없었다면 그에게 사도들이 걸었던 생명의 길과 같은, 다른 길을 열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 P543

그에게는 실제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두 가지 심리적인 동기가 있었고, 이 두 가지 동기는 범죄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끝이없는 자아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고, 강한 파괴 욕구를 갖고있었다. 이 두 가지 동기 사이의 공통점이자 외부로 나타나는 표현의 조건이 되는 것은 사랑의 부재, 즉 다시 말해 다른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대상을 가치 있게 여겨야 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지적은 그가사랑받고자 하는 대단한 욕구를 갖고 있었고, 또 사랑할 수 있는엄청난 능력도 소유하고 있었다는 상반된 그의 모습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 P543

그를 쉽게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었던 도스토옙스키가갖고 있던 매우 강한 파괴 충동은 그의 삶 속에서 주로 자기 자신에게로 향했고,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부로 향했고) 그렇게 해서 피학대 음란증과 죄의식의 형태를 띠고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 점을 통해 언뜻 보아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학대 음란증적 특징들이 남아있었고, 이러한 특징들은 그의 신경과민과, 남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는 강한 성향과,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 용서하지 못하는 편협함들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며, 또 그가 작가로서 독자들을 대하는 방식 속에서도 나타난다. - P544

도스토옙스키의 복잡한 인성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끌어냈는데, 하나는 양적인 것이었고 나머지 둘은 질적인 것이었다. - P545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경증은 어떤 방법을 통해 드러나는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을 간질 환자로 여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했다. 이는 졸도와 근육 경련과 그 결과로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무기력 증상 등을 수반하곤 했던 신경증의 가혹한 발작 등에 근거해 자신이 내린 판단이었다. - P545

우선 두 번째 문제부터 다루어 보자. 여기서 간질과 관련된 모든 질환들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떤 결정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546

하지만 이 모든 특징들은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들이다. 혀를 깨물거나 요실금을 수반하기도 하는 이 갑작스러운 발작은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위험한 간질 상태에까지 이를 수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잠시 동안의 의식 불명이나 단순한 현기증으로 끝날수도 있고, 때로는 마치 무의식의 지배에 들어간 것처럼 잠시 동안 자신이 모르는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P546

 다른 경우들에 대해서도 흔히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이고,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와 똑같은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간질에 걸린 사람은 마비되고억압되었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이 병에는 또한 비록 병의 중요한 구성 요소는 아니지만, 쉽게 알 수 있는 지능 저하와 심각한 두뇌 손상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발작은 정신이 완벽하게 발달한 사람들이 충분히 통제되지 못한 과도한 감정 상태를 보일 때에도 나타난다.  - P547

도스토옙스키의 간질은 두 번째 종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을 확실하게 입증해 낼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일어난 발작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을 그의 정신 활동 전체 속에 위치시킬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알려진것이 거의 없다. 발작에 대한 묘사들도 거의 아무것도 일러 주지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작과 그의 생활 사이의 관계에 대한정보들도 군데군데 빠진 것이 많고 자주 상호 모순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 P548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아버지 살해 Vatetötung와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운명 사이에는 분명한 관계가 있었고, 이 관계는 많은 전기 작가들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현대 심리학의 새로운 경향>을 참고하도록 인도하기도 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 속에서 가장 가혹한 정신적 충격을 읽어 낼 수 있을 것만 같고, 나아가 이 사건에대한 도스토옙스키의 반응 속에서 신경증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가 보고 싶어진다. - P549

6 이와는 반대로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설명을 포함한 대부분의 설명에서는 시베리아 유배 중에 간질병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신경발작증에 대한 그와 같은 자전적 설명을 믿지 못할 이유가 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대개 그런 환자들의 기억은 그 불쾌했던 연관관계를 중단하고 싶은 심리로 허위의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감옥에 투옥되었던 그 기간 동안 그의 병리적 상태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원주 - P549

우리는 죽음과 관련된 이러한 발작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고, 그 의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⁷ 이 발작들은 죽은 자와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은 자와 동일시하는것일 수도 있고, 아직 살아 있지만 죽기를 원하는 자와 동일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7 프로이트는 1897년 2월 8일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프로이트 편지 58). -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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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들

욕구 불만이 심해지면 인간은 신경증 환자가 된다는 명제를 우리는 정신분석적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욕구불만은 물론 리비도와 관련된 것이고, 이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논의가 요구된다. - P366

스스로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고, 또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어떤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병에 걸리는 일이 종종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의사처럼 목격할 때면, 사람들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P366

(전략)

위의 두 경우는 상이한 것이긴 하지만, 욕망이 충족되는 것과 함께 기쁨이 사라지면서 병이 나타났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한다.
이러한 사례들과 인간은 욕구 불만에 의해 신경증 환자가 된다는 명제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풀 수 없는 모순이 아니다. 욕구불만을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생각하면 모순은 해결된다. - P368

갈등은 바로 이때 신경증의 가능성과 함께, 다시 말해 억압된 무의식에의한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얻어지는 대리 만족과 함께 발생한다.
내적인 욕구 불만은 모든 경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만, 이렇게 실제로 일어나는 외적인 욕구 불만이 미리 자리를 준비해 놓기 이전에는 작용하지 않는다. 성공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예외적 - P368

신경증의 형성 과정이 보여 주는 잘 알려진 상황들과 이러한 경우의 차이점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리비도 집중의 내적 강화를 통하여 이제까지는 용납되었고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던 환상이 두려운 상대로 바뀌는 반면, 우리가 지적한 경우들에서는 갈등을 촉발시킨 계기가 외부 현실의 변화에 있다는 점뿐이다. - P369

성공을 위해 강인하고도 냉정하게 싸워 왔지만 성공을 거둔 후쓰러지고 마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레이디 맥베스일 것이다. - P369

무엇이 강철과도 같은 그녀의 성격을 이렇게 꺾어 놓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의 성공 뒤에 오는 환멸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원래는 착하고 여느 여성들처럼 부드러웠던레이디 맥베스였는데 일부러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토록 긴장된 상태에서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었고, 또 원래 오래 견딜 수 없는 이런 상태 속에서 쉽게 무너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러한 급격한 파멸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친숙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더욱 깊은 어떤 동기들이 있다고 가정해야만 할 것인가? - P372

셰익스피어의 연극 속에서 단지 야망의 비극만을 보려고 한다면 위에서 지적한 점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살 수 없는 존재인 맥베스에게 자신의 뜻에 반대되는 예언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 P373

그에게는 아이들이 없다.
-『맥베스』, 제4막 3장

이 선언은 이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또 맥베스의 변화를 헤아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가 내 아이들을 죽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이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 P374

맥베스에게 아이가 없었다는 것과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다는 것은 대를 이어간다는 성스러운 일에서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응징이었다. - P375

 홀린셰드가 보기에는 맥베스를 왕위에오르게 했던 덩컨의 살해와 그가 그 후에 저지른 다른 범죄들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는데, 이 10년 동안 맥베스는 가혹했지만 정의로운 왕으로 통치를 한 것으로 보였다. 그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 10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 뱅쿼와 자기 자신의 운명에 관계되는 예언들이 실제로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괴로운 염려가 깊어 가면서였다. - P376

계속 좌절되기만하는 아이를 낳겠다는 희망이 한 여인을 망가뜨리고 한 남자를광포하게 만들기에는 일주일 동안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² 이것은 모순이다.

2 다메스테터J. Damesteter의 『맥베스 Macbeth』(1881)-원주. - P377

그렇다면 의심 많은 야심가와 철가면을 쓴 채 선동을 일삼던 여인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두려움 없는 광포한 자로, 또 회한에 짓눌려 병이 든 여인으로 변모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 P377

작품이 공연되는 동안 작가는 물론 그의 예술을 통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고, 또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받았던 감동을 연극이 끝난 후에 작품의 심리적인 메커니즘에 근거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 P377

왜냐하면 이렇게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합리화할 수있는 것은 그것이 논리적인 수미일관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 현실의 개연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에 한해서이기 때문이고,³ 또 만일 사건들이 전개되는 시간이 극 속의 분명한 지적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단 며칠로 축소되지 않고 불분명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해도 극적 효과는 여전히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가령 리처드 3세가 자신이 죽인 왕의 관을 앞에 놓고 앤에게 청혼하는 경우를예로 들 수 있겠다-원주 - P378

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한 성격을 빈번하게 두 인물로 나누어서 표현했고, 이 두 인물을 서로 합쳐 하나로만들지 않는 한 각각의 인물에 대한 이해는 완전해질 수 없다. 맥베스와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될 수있고, 따라서 레이디 맥베스를 자율성을 지닌 하나의 독립된 인물로 간주하면서 그의 반쪽인 맥베스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의 성격에 일어난 변화를 살피려고 한다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 P378

(전략)

만일 이러한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 앞에서도 왜 그녀가 성공을거두었으면서도 낙담을 했고, 급기야 병에 걸려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밝힐 수 없다면, 이제 우리는 또 다른 한위대한 극작가가 제공하는 좀 더 나은 기회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이 또 다른 극작가는 시종 엄밀함을 유지한 채 인물들의 심리적인 움직임을 정확하게 이끌어 갔다. - P380

 남편의 도덕관에 대한 부인의 믿음을 이렇게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후 레베카는 부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목사와 은밀한 불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집을 떠나야겠다는 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암시를 준다. - P381

이렇게 해서 레베카와 로스메르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목사는 레베카와의 관계를 순수하게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우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부에서 중상과 비방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로스메르의 마음속에서도 부인의 자살 동기에 대한 괴로운 의혹들이 점점 고개를 든다. - P381

그녀 스스로 4막에서 이 질문에대해 답을 하고 있다.

끔찍한 것은 행복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모든기쁨을 내게 허락했다. 그런데 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바로 이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는 그동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윤리 의식이 다시 깨어나 죄의식을 느꼈던 것이며, 그래서 기쁨을 맛볼 수 없었던 것이다. - P382

이 말을 하기 얼마 전에 그녀는 이 변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로스메르스홀름이 내게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 집은 나의 성격과 힘을 잘라 내고 있었어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고요! 망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은 이제 영원히 지나가 버렸어요. 나는 움직일 힘을 잃어버렸다고요. 로스메르, 아시겠어요.

레베카는 로스메르와 신학교 교장이자 그녀가 쫓아낸 부인의 남동생이었던 크롤에게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죄인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후에 이렇게 설명한다. - P383

물론 그녀가 로스메르스홀름의 분위기와 덕망 있는 로스메르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아 자신도 변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모든 존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선언할 때 그녀의 이러한 증언을 의심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 P383

막이 내리기 직전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녀의 고백이 끝났을 때, 로스메르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질렀던 죄악을 용서한다. - P384

물론 그녀는 자신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자유스럽게 세상을 떠돌 때 저질렀고, 그래서 누구에게도 책임질 이유가 없는 이 관계가 그녀에게는 로스메르의 아내에 대한 범죄보다도 더 그와의 결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생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84

그러나 크롤은 그녀의 이런 반박을 보기 좋게 꺾어 버린다.

당신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내 계산은 정확한 것입니다. 베스트 박사는 임명받기 한 해 전에 이곳에 잠시 들른 적이 있습니다. - P386

수수께끼 같은 레베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한 가지밖에는 없다. 베스트 박사가 자신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을 때, 이것은 그녀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충격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박사의 의붓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내의 정부(情婦)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크롤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고백했음에 틀림없는 이 관계들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었다. - P387

이제 우리는 어쨌든 이 과거가 그녀에게는 결혼을 결심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큰 죄악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 P387

지금까지 우리는 레베카 베스트를, 날카로운 이성의 통제를 받는 것이긴 해도 입센이라는 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상상.
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있는 현실의 인간인 것처럼다루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제기되었던 이의에대해 답하려고 한다. 이의 제기는 정당한 것이다. - P388

문학 창조의 피할 수 없는 규약들로 인해 이런 경우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것이다.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기가 아니었던, 이보다깊이 숨어 있는 동기는 관객들 혹은 독자들의 안락한 지각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은 채 가려져 있어야만 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관객들과 독자들은 견디기 힘든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또강력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끝내 훼손되고 말았을 것이다. - P389

(전략)
이런 이유로 해서 로스메르의 청혼을 거부하도록 했던 죄의식은 크롤의 폭로를 들었을 때 레베카로 하여금 고백하게 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던 죄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 P391

정신분석 작업을 하는 의사는 하녀든 가정 교사든, 아니면 간호사든 젊은 처녀가 한 집에 들어오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여인이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강렬하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근거를 둔 공상을 하는지 알게 된다. 이 공상의 결론은 늘 이런저런 식으로 여주인을 사라지게 하고, 대신 그녀의 남편을 차지하는 것이다. - P391

(전략), 단지 문학과 의학의 완벽한 일치를 간략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작업을 통해 우리는흔히 그렇듯이 욕구 불만의 결과로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결과로 병을 일으키는 윤리 의식의 힘은 거의 모든 죄의식의 경우에서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관계, 즉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392

세 상자의 모티프

Das Motiv der Kästchenwahl(1913)프로이트의 편지에 의하면 이 글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1912년 6월이었기에 결국 이 글이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의 일인 셈이다. 1913년 7월 7일 페렌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세 딸을 염두에 두었음을 밝히고있다. - P373

1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에 나오는 즐거운 장면 하나와 비극적인장면 하나를 통해 나는 최근 한 작은 문제에 봉착하여 그 문제를풀 수가 있었다.
즐거운 장면이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장면으로 구혼자들이 세 개의 작은 상자들을 앞에 놓고 선택하는 장면이다.  - P275

(전략). 이렇게 해서 그는 약혼자를 얻게 되었는데, 운명이 걸린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젊은 처녀의 마음은이미 납으로 만든 함을 선택한 구혼자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두구혼자는 각자 자신이 선택한 금속을 칭찬하고 다른 두 금속은깎아내리면서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설명했다. - P275

상자들의 선택이라는 신탁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단지 그는 이 이야기를 『게스타 로마노룸GestaRomanorum』¹이라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 하나를 다시 따왔을 뿐인데, 이 텍스트의 이야기 속에서는 황제의 아들을 차지하기 위해한 처녀가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²

1 작자 미상의 중세 이야기 모음.
2 브라네스G. Brandes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896) 참조-원주.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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