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터넷 밈,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인터넷 밈이라는 유령이...
망했다. 아 뭘 쓰지. - P8
심영은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엄청나게 큰 인터넷 밈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 P8
우선 첫 문장을 보고 당황스러웠을 독자에게 사죄하고 싶다. 편하고 쿨하고 섹시한 첫 문장을 쓰려고 과욕을 부리다가실패했다. 이러려고 이 책을 쓰려고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원고 조지고 올게!" 외치며 책상 앞에 앉아도 언제나 조져지는 건 나인 법이다. - P9
이 책은 석사학위논문(이라고 쓰고 흑역사라고 읽는) <한국인터넷 밈의 계보학-드라마 <야인시대> 밈 이미지에 대한 매체적 연구>를 단행본으로 고쳐 쓴 것이다. - P9
다만 이 책은 인터넷 밈 오타쿠가 만족할 만한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터넷 밈의 역사는 한국 인터넷 서브컬처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내용이며 누구든지 검색을 열심히 하면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 P9
이 책의 관심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인터넷 밈을 정보성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최신 인터넷 밈을 소개하려 해도 책이 출간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죽은 밈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위험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책은 콘텐츠나 밈 마케팅 입문서¹가 아니다.
1 이 책이 인터넷 밈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식은 밈 마케팅 혹은 콘텐츠에서이야기하는 방식과 판이할 것이다. - P10
그런데 인터넷 밈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정작 답하기가힘들다. 석사논문을 쓰는 동안에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생각해보자. 신촌 오거리를 걷고 있는데 행인이 문득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것은 전혀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밈의 정의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 P11
은어나 유행어라 부르기에도, 웃긴 사진이나 영상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가 모자라다. - P11
음지에서 유통되는 인터넷 밈이 없다는 일부 인터넷 밈 덕후의 불평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여백이 부족하므로 이 책에 굳이 그런 인터넷 밈에 대해서 적지는않겠다. - P11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과 일상을 감각하는 방식에 사진과 영화 등 이미지의 탄생이 준 영향처럼, 인터넷 밈이 우리에게 준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² 이를 위해 고전으로 불리는 인터넷 밈을 파헤치는 고고학의 시선을 빌리고자 한다.
2 이는 발터 벤야민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쓴 문장이 모티프가 되었다. "역사의 광대한 시공간 내에서는 인간 집합체들의 존재 양식이 총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지각 양식도 변한다. 인간의 지각이 어떻게 조직화되었는가즉 인간의 지각을 발생시키는 매체는 자연적 조건들에 의해 제약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조건들에 의해서도 제약되어 있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 축음기 등 아날로그매체가 생겨난 1900년대 초반을 관찰하면서 이 말을 남겼다. 언뜻 복잡해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말이다. 시대별로 유행하는매체에 따라서 사회가 달라지고 우리가 대상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도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 P12
1장에서는 밈과 인터넷 밈 개념에 관한 여러 선행연구를 정리하며 인터넷 밈의 개념을 최대한 좁히려고 한다. (중략). 2장에서는 인터넷 팀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는 합성 소스를 설명한다. - P12
4장에서는 한국에서 인터넷밈이 자라나게 되는 사회적인 감수성을 분석하고, 일베 등 문제가 되는 정치적인 밈을 분석한다. 5장에서는 영화를 통해서인터넷 밈이 예술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AI 시대의 인터넷 밈을 그려내면서 인터넷 밈이 우리의 예술적인 표현 수단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려 한다. - P13
책의 출발이 된 논문을 지도하신 서현석 교수님과 기꺼이 심사를 맡아주신 오영진 교수님, 심보선 교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지금 없었을 것이다.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신 갈로아(김도윤) 작가님과 임지은 작가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P14
뒤늦게 이야기하는 바지만 책의 첫 문장을 허투루 쓴 것은아니다. 수십 개 가까이 되는 첫 문장 후보 중 하나를 겨우 골랐다. 나름대로 책 전체를 압축하려고 쓴 것이기에, 이 책이 다룰 내용 대부분이 첫 문장 리스트에 있다. - P14
첫 문장 후보 리스트³ 1. 오늘 인터넷 밈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 모르겠다. 2. 행복한 움짤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움짤은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3. 이 몸은 합성 소스이다. 뜻은 아직 없다. 4. 인기깨나 있는 합성 소스에게 합성할 잉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다. 5. "크아아아아" 밈 중에서도 최강의 인터넷 밈이 울부짖었다. 6. 나는 병든 병맛이다………… 나는 악한 병맛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병맛이다. 7. 부끄러움 많은 인터넷 엽기를 보냈습니다. 8. 박제가 되어버린 합성 소스를 아시오? 9. 인터넷 밈,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10. 합성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인터넷 밈이었다.
3 아 참, 안톤 체호프의 권총 법칙에 따르면 작품에 한번 등장한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하는 법이다. 첫 문장 후보 리스트에 있는 열 개의 문장은장이나 절의 제목으로 재탕될 것이다. - P15
훔쳐 온 첫 문장의 출처는 적어두지 않으려 한다. 독자가 검색으로 느끼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는 않다. 출처를 일부러 명시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자르고 편집하고 도둑질하는 불펌이야말로 밈화, 즉 인터넷 밈이 생산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P15
* 초상권 및 저작권 문제로 게재 허가를 받지 못한 이미지는 QR코드로대체해 삽입하였다. 왜 싣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더했다. 불법과 합법, 비윤리와 농담 사이에 있는 인터넷 밈의 복합성이더욱 잘 드러날 것이다. 독자를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초대하고 싶다. *나무위키 등 여러 웹사이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관계에 여러논란이 있는 인터넷 밈의 경우, 검색을 통해 암묵적으로 다수가 정설이라 동의하는 정보를 서술했다. - P16
1장 인터넷 밈, 매체에 타라
매체학으로 본 인터넷 밈의 탄생 배경 - P17
피어나! 너 내 미미 ・・・ 밈이 되어라 -밈 개념의 정립과 그 발전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쓴 《이기적 유전자》에서만든 신조어다. 재현,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mimeme‘를 유전자를 뜻하는 영어 ‘gene‘과 운율을 맞춰 ‘meme‘으로 변형시켰다. - P18
도킨스가 초점을 둔 것은 밈 하나하나가 아니라 계속 복제되고 전파되는 밈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도킨스의 밈은 모방을 통해서 전승되는 모든 문화적인 정보를 뜻하면서도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기도 한다. - P18
비록 과학적 사실인 유전자의 전달에 문화 현상을 빗대어표현하는 것이 무리수라는 비판이 있기는 해도, 밈은 여전히잘 쓰이는 개념이다. 문제는 무엇이든지 밈이라고 이야기할 수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것을 재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복제라고, 이전에 없던 것을 생산한 발명이나 창조적인 예술에 대해서는 문화적인 돌연변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 P19
그렇다면 인터넷 밈은 무엇인가? 인터넷에서 전송되는 모든 파일을 인터넷 밈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도킨스는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자 인터넷이 밈을 퍼뜨리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 P19
지금도 수많은 글에서 인터넷 밈을 설명할 때 밈의 개념을사용한다. 보통 한 개념어의 어원이나 유래가 그 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터넷 밈은 전혀아니다. 밈이라는 개념에서 그저 "유행하고 번진다"라는 느낌만 빌린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 P20
인터넷 밈 개념의 부조리와 모호성으로 인터넷 밈 연구가 어려워졌다고 호소하는 연구자도 있을 정도다.²
2 김민형, 2021, <팬덤의 수행성 연구- 인터넷 밈과 시민 참여문화>, <기호학 연구》, 66(0), 참고, - P20
더 정확히는, 인터넷밈의 뜻이 원래 밈의 뜻을 대체했다는 것이야말로 복제품이 원본을 압도하는 인터넷 밈의 매력이겠다. - P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