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공장의 두 팀, 구성력과 원심력 간의 투쟁 - P7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의 수많은 대사 중에서 스크린을 찢고나온 최고의 명대사다. 이것은 원래 극 중 유력 신문의 논설위원이 비리 기업의 총수를 안심시키기 위해 던진 말이었다. - P7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우리와 그들‘을 편 가르려는 이런 태도는 봉건주의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가진다. 인류의 탄생 때부터 수렵 채집기 내내 그리고 최근 1만 년동안의 농경 시대에서도 외집단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상수였다. 즉 그런 태도는 본능이다. - P8
"우크라이나 여성은 강간해도 돼. 대신에 콘돔이나 잘써."²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군 남편에게 러시아인 아내가 전화로 했다는 이 말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 P8
2. 이상규 "우크라 여성은 성폭행해도 돼"..러시아군 여친 충격적 통화내용". 〈매일경제〉, 2022.04.14.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2/04/333372/ - P279
상대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순간 그들을 향한 모든이성적 판단은 해제되고 차별, 혐오, 폭력의 스위치가 거리낌 없이 켜진다. - P8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2차 세계 대전 중에 실제로 총을발사한 병사는 겨우 15~20퍼센트에 불과했다. - P9
이런 ‘심각한 문제‘(전쟁터에 나갔는데 총을 쏘질 않으니)를 해결하고자 군대는 사살을 쉽게 할 수 있게 하는 동기 부여 방법과 훈련법을 개발했고 마침내 베트남 전쟁에서는 85퍼센트의 병사가 총을 발사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살상률은 여전히 낮았다. - P9
인류는 지금 양극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양극화는 극에 달해 인터넷은 이미 내전 중이다. 동지가 아니면적이다. 그냥 적이 아니라 충(벌레)이다. - P10
그러니 정치인들은 통합을 꿈꾸는 게 아니라 분열을 받아먹으며 연명한다. 어차피 국민 통합 같은 가치는 불가능하니 우리 편에게만 예쁨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 P10
자기 집단에만 깊이 공감하는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근 상황이 딱 이렇다. 특정 정치인을둘러싸고 광화문과 서초동 법원으로 갈라진 무리를 보지 않았는가? - P12
공감의 범위는 확장 가능하며 이때의 공감은 단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문명의 물질적 조건이라면 이런 공감력은 가히 문명의 정신적 조건이라 할만하다. - P12
또한 프린스턴대학교의 응용윤리학자 피터 싱어 PeterSinger도 《사회생물학과 윤리The Expanding Circle》라는 책에서인류가 역사를 거듭하면서 자기와 비슷한 존재로 지각하는대상의 범위를 점점 확장해왔다고 주장했다.⁴ 반려 동물이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 좋은 사례다. - P13
4. Singer, P. (1981). The expanding circle. Oxford: Clarendon Press; 피터싱어, (2011), 김성한 옮김. 《사회생물학과 윤리》. 연암서가 - P279
나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감이 미치는 반경을 넓혀야 한다고, 즉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넓이다. - P14
5장
내 혐오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믿음
(전략). 특히 감정 표현이 직설적인 이른바 MZ 세대(1981~2009년에 출생한 세대)는 ‘극혐‘이라는 표현도 자주쓴다. - P115
하지만 왜 우리가 특정 사람이나 행위에 대해 역겨움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외집단에 대한 폄훼는 대개 그들에 대한 역겨움이나혐오 감정을 동반한다.¹ - P115
5장 내 혐오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1. 장대익·이민섭, (2018). <역겨움의 도덕적 지위에 관하여>. 《철학연구》. 122, 51-84. - P285
장대익 · 이민섭은 <역겨움에도덕적 지위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왜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감정이나 직관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 P116
도덕 기반이 흔들릴 때 구토가 나온다
도덕적 직관이 무엇인지를 말하려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근거로 삼는 도덕적 기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와 제시 그레이엄 JesseGraham은 모든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도덕의 토대로서 다섯 가지 기준, 즉 ‘도덕 기반moral foundation‘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기반들은 ‘피해harm‘ ‘공정성 fairness‘ ‘내집단ingroup‘ ‘권위 authority‘ ‘순수성purity‘이다.² - P116
2. Haidt, J., & Graham, J. (2009). Planet of the Durkheimians, wherecommunity, authority, and sacredness are foundations of morality. Social and psychological bases of ideology and system justification, 371-401. - P285
도덕 기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면 누구나 이 다섯 가지 기준을 갖고 있지만 어디에 가중치를 주는지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달라진다. 자유주의자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개방적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에 비해 내집단, 권위, 순수성 기반에 가중치를 덜 둔다. - P117
만일 불평등 상황이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경우라면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 반응 차이가 발생한다. 예컨대 진보 진영은 내집단과 권위 기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체제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불평등한 상황을 타개하려 하겠지만 보수 진영은 집단 내 불평등을 체제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감수할 수 있는 요소로 판단한다. - P117
역겨움은 회피 동기를 주는 대표적 감정인데 신경심리학자 해나 채프먼Hanah Chapman과 애덤앤더슨Adam Anderson은 다양한 유형의 역겨움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에 대해 탐구했다. 그들에 따르면 쓴맛을 느끼는 것은 독을 피하기 위해, 구역질 반응은 감염을 피하기 위해, 도덕적 역겨움은 달갑지 않은 상대와의 상호 작용을 피하게끔 진화했다. - P118
도덕적 역겨움은 부족 본능이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역겨움은 원래 독성이 있는 무언가를 피하게끔 하는 생리적 적응 반응이었을텐데 어떻게 이것이 도덕적 판단으로까지 확장했을까? - P119
예를 들어 근친상간이라는 정보는 미각 체계와는 무관한 입력이지만 이 평가 체계를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역겨움을 유발한다.⁴ 그렇다면 독성 회피 반응으로서의 역겨움이 어떻게 도덕적 판단으로 진화했을까? 그리고 결국엔 갈등을 정당화하는 무기로까지 용도 변경이 되었을까? - P120
4. Rozin, P., Haidt, J., & Fincher, K. (2009). From oral to moral. Science, 323 (5918), 1179-1180. - P285
이런 유형의 사례들을 수집해온 도덕심리학자 하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에 따라 도덕판단을 하고 그에 대한 정당화를 요청받았을 때에야 비로소이유를 찾는다. 그런데 이때 이유를 대려 해도 결국 직관을정당화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기는데 그는 이를 ‘도덕적 말막힘‘현상이라고 불렀가.⁵ - P120
5. Haidt, J. (2001). 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 a socialintuitionist approach to moral judgment. Psychological review, 108(4), 814. - P285
그렇다면 도덕적 말막힘이 발생하는 상황들이 아닌 다른 경우에도 역겨움이 발생하는가? (중략) 로진에 따르면 불공정한 상황에서의 역겨움은이 세 가지 경로(반사, 평가 체계, 비유)를 모두 거칠 수 있다. - P121
하지만 채프먼과 동료 연구자들은 이 세 경로를 구분하고자 한발 더 나아갔다. (중략). 그 결과 놀랍게도 불공정한 상황에서 가장 현저하게 유발되는 표정은 분노보다는 역겨움이었다. - P121
동물을 차로 치는 로드킬 상황과 근친상간은 모두 회피반응을 일으키지만 후자의 역겨움은 ‘이것은 나쁜 행위이며 금지되어야 한다‘라는 신호를 다른 동료들에게 전달하는사회적 기능을 한다. - P122
다윈이 일찍이 관찰했듯이 동물들은 감정을외부로 표현한다. 그런데 동물이 왜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게끔 진화했는지는 과학적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감정이 그저 주위 환경의 변화에 대한 내적 반응일 수는 없었을까? - P122
다시 말해 동물들이 실제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면 그런 감정 표현에는 어떠한 진화적 기능이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바로 그 감정의 기능이란 무엇일까? - P122
윤리학자 대니얼 켈리 Daniel Kelly는 ‘부족 본능‘ 개념을 통해 역겨움의 사회적 기능을 도덕적 역겨움과 연결한다. 그에 따르면 부족 본능은 부족의 생태 환경에 적합한 사회 규범을 따르도록 하는 ‘규범심리학norm psychology‘과 여러 단서들을 바탕으로 자기 부족에 속한 개체와 상호 작용하려는동기를 가지는 ‘종족심리학ethnic psychology‘으로 구성된다. - P123
(전략). 게다가 인류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궤도를 따라가면서 더 많은 규범 준수에 역겨움 감정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 P124
인류는 수많은 규범으로 촘촘히 짜인 집단 생활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적응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존의 역겨움 감정을 이용하게 되었을 것이다.⁶ - P124
6. Kelly, D. (2011). Yuck!: the nature and moral significance of disgust. MIT press - P285
역겨움 반응은 숨기기가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역겨움은 동일 종족에 속한 구성원을 식별하는 기능도한다. - P124
부족 본능의 두 심리 메커니즘(규범 심리와 종족 심리)은역겨움의 기능이 어떻게 사회 · 도덕적 영역에까지 확장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 P124
도덕 본능을 믿지 마라
우리의 마음은 지난 250만 년 동안의 수렵 채집기 환경에서 오랫동안 적응되어온 진화의 산물이다. 도덕 본능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진화하고 작동하는 도덕 본능을 바탕으로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 규범과 연결 짓는 작업은 또 다른 문제다. - P125
°이 두 차원(사실/가치)의 진술을 같은 범주로 간주하는것은 잘 알려진 ‘자연주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올바로 지적했듯이 사실 진술만으로는 당위(가치) 진술들이 도출되지 않는다. - P125
흄의 주장은 되레 사실적 정보의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업데이트 방식으로 인간 도덕성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은 규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 P126
도덕적 역겨움은 보편적 감정이긴 하지만 개인의 발달사와 집단의 진화사에 따라 발생 방식(원인, 강도, 빈도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 큰 집단을 위한 통합적도덕 창구로 사용되기에 부적합하다. - P126
다양한 가치와 경험, 지식을 가진 수많은사람으로 구성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역겨움은 대개제재해야 할 부적절한 직관이거나 발견법 heuristic 정도로 사용해야 할 직관이다. - P126
우리의 도덕 직관은 여전히 수렵 채집기의 작은 부족 사회에 적합하게 반응하고 있는것이다. - P128
이성적인 도덕 판단도 가능한가?
앞서 살펴본 직관적 도덕 판단은 외집단 혐오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오용됐다. 이런 사태를 막고 외집단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이성적인 도덕 판단이 필요하다. - P128
인간의 도덕 문법에 관해 연구해 온 심리학자 마크 하우저 Marc Hauser는 5000명을 대상으로 위의 두 사례에 대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랬더니 실제로 첫 번째 사례에 대해서는 89퍼센트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두 번째 사례에 대해서는 11퍼센트만이 허용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 P131
7. Hauser, M., Cushman, F., Young, L., Kang-Xing Jin, R., & Mikhail, J. (2007). A dissociation between moral judgments and justifications. Mind&language, 22(1), 1-218. - P286
이 차이에 대해서 도덕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사람이 개입된 딜레마personal dilemma와 그렇지 않은 딜레마impersonal dilemma를 은연중에 구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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