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올레크가 밝힌 회상에 따르면, 그들은 〈둘 다 깊은 생각이나 자기 성찰 없이> 약혼한 뒤, 몇 달 만에 화려하지 않은 결혼식을올렸다. 결혼을 빨리 한 이유는 로맨스와는 별로 상관없었다. 엘레나는 결혼으로 그의 승진 가능성을 높여 주고, 그는 그녀에게 모스크바를 빠져나가는 수단이 되어 줄 터였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KGB식의 정략결혼이었다. - P47

덴마크에서 비밀 간첩들의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이 자리에 가겠느냐는 제안이 오자 올레크는 주저 없이 기쁘게 받아들였다. 킴 필비가 1933년 KGB에 포섭된 뒤에 밝힌 심정과 비슷했다. - P47

2
고름손 삼촌

나중에 한 MI6 요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련의 공산주의제보다 서구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도시 하나를 고른다면, 코펜하겐보다 더 나은 곳은 별로 없을 것이다.> - P49

소련 대사관은 코펜하겐 북쪽 크리스티아니아 거리에 있는 치장벽토 주택 세 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깨끗한 정원이 넓게 뻗어 있고 스포츠 센터와 사교 클럽이 갖춰져 있어서 소련 대사관이라기보다는 웅장한 정문이 있는 호텔처럼 보였다.
(중략)
완전히 세뇌된 KGB요원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이런 자유를 맛보고 나서 여기에 남고싶다는 충동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 P50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스무 명의 관리 중 진짜 외교관은 고작 여섯 명이고, 나머지는 KGB나 소련군 첩보 기관인 GRU 소속이었다. 이곳의 레지덴트인 레오니드 자이체프는 매력적이고 양심적인 요원이었으며, 자기 부하들이 대부분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부정직하다는 사실, 아니 대개 이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 P50

 요원 대부분은 덴마크인과 만난 이야기를 거짓으로 만들어냈다. 가짜 영수증을 만들고 거짓 보고서를 쓰는 방법으로 자신에게 지급된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중앙은 코펜하겐에 파견된 직원 중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심지어 덴마크어를 아예 한 마디도 못 하는 사람도 몇 명이나 되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 P51

어느 날 올레크는 신호 장소인 공중화장실 창턱에 구부러진 옷을 놓아두었다.
어떤 불법 스파이에게 미리 지정된 버려진 편지함에서 현금을 가져가라고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 불법 스파이가 이 메시지를 잘 받았다고 답하려면, 같은 장소에 맥주병 뚜껑을 놓아두어야 했다. - P51

스파이들 사이의 신호 체계에서 진저비어도 평범한 맥주와 같은가? 아니면 여기에 또 다른 의미가 있는건가? 레지멘투라로 돌아와 동료들과 밤새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그는 문제의 그 스파이가 두 종류의 병뚜껑을 똑같은 것으로 보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P52

올레크는 어머니의 결혼 전 성(姓)인 <고르노프>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며 몇 달 동안 덴마크인들과 친분을 다진 끝에, 어느 교사 부부를 설득해 <살아 있는 편지함> 역할을맡기는 데 성공했다. 불법 스파이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올레크는 덴마크 경찰관 한 명과도 친구가 되었으나 몇 번 그를 만나고 난 뒤 자신이 그를 포섭하는 건지 아니면 그반대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 P52

1957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청년 축전에서 KGB의 지시로 어떤 미국 여성을 유혹했다. 4년 뒤 소련 대사관의 공보 담당관으로 영국에 배치된 그는 노조 학생 단체, 여러 주류 단체에서 정보원을 포섭했다. 그는 낭랑한 상류층 말씨의 영어를 구사했으며, 여기에 영국식 옛 표현들을 곁들였다. - P53

1965년에 그가 영국의 암호 담당자를 포섭하려다 실패하자, 영국 보안국은 즉시 그를 포섭하려고 시도했다. 영국의 첩자가 되라는 제의를 거절한 뒤 그는 외교상 기피 인물로 판정되어 모스크바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고도 그의 열렬한 영국 사랑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 P53

 어느 날 올레크는 코펜하겐 홍등가를 찾았다가 포르노 잡지와 성적인 장난감 등을 파는 상점에 순간적인 충동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거기서 동성애 포르노 잡지 세 권을사서 집에 가져와 옐레나에게 보여 주었다. <난 그저 흥미를 느꼈을뿐이다. 동성애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이잡지들을 벽난로 위에 두었다. 소련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가 거기 드러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인간으로서 꽃을 피웠다. 아름다움, 무척 활기찬 음악, 훌륭한 학교,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 주는 개방적인태도와 유쾌함에 비하면, 소련이라는 광대하고 황량한 강제 수용소는 일종의 지옥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 P54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사라진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덴마크 안보 정보국Politiets Efterretningstjeneste (PET)은 아주 작지만 대단히 유능한 기관이었다. 이 기관의 임무는 <덴마크를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안전한 나라로 유지하는 데 위협이 되는 작전과 활동의예방, 조사, 격퇴>로 명시되어 있었다. PET는 올레크 고르디옙스키가 바로 그런 위협 중 하나라고 강력히 의심했으므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 소련의 젊은 외교관이 코펜하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 P55

덴마크 정보국은 (고르노프, 구아르디예체프, 고름손 삼촌 등의 이름을 지닌) 고르디옙스키가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KGB 스파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어느 날 올레크와 옐레나는 경찰관 친구 부부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두 사람이 집을 비운 동안, PET 직원들이 그들의 아파트에 들어와 도청 장치를 심었다. - P56

. 유부남인 소련의 정보관계자가 동성애 포르노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을 약점으로 협박하는 것이 가능했다. 덴마크 정보국은 이 사실을 꼼꼼히 기록해서 일부 동맹국에게 전달했다. 서구 정보 파일에 포함된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의 옆에 처음으로 물음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 P56

그의 결혼 생활에 이처럼 금이 가고 있을 때, 소련 블록 내에서는땅이 뒤흔들리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1968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제1서기이자 개혁주의자인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소련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화를 지향하기 위해 여행과 언론에 대한 제한과 검열을 완화했다. 둡체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세워, 비밀경찰의 권한을 제한하고서구와의 관계를 개선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유선거를 실시하겠다고약속했다. - P58

모스크바의 KGB 본부는 체코의 개혁 실험을 공산주의 자체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보았다. 냉전에서 소련에 불리한 쪽으로 저울을 기울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 P59

1968년 초, 서른 명이 넘는 KGB 불법 스파이들이 체코슬로바키아로 침투했다. KGB 국장 유리 안드로포프는 그들에게 체코의 개혁 운동을 방해하고, <반동적인> 지식인 서클에 침투해 프라하의 봄을 지지하는 저명인사들을 납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KGB의 공작원들은 대부분 서방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체코슬로바키아로 갔다. - P59

(전략). 그러나 1968년에 중앙은 파우스트라는 암호명을 쓰는 이스파이가 피해망상에 걸렸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빼내기로 했다.
1968년 4월, 바실리 고르디옙스키는 우샤코프를 약물로 잠재운 뒤핀란드를 거쳐 모스크바로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KGB는 우샤코프를 정신 병원에 넣었다가 풀어 준 뒤 해고했다. 바실리는 <흠잡을데 없이 임무를 수행한> 공로로 KGB 메달을 수상했다. - P60

바실리는 프라하의 봄을 깎아내리고 파괴하려는 KGB 작전의 선봉에서 활약했다. 아버지처럼 그도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올레크는 형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형이 벌이고 있는 비열한 짓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두 형제는 그때도 그 뒤에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 P61

1968년 8월 20일 밤, 2천 대의 탱크와 20만 명이 넘는 군대가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었다. 소련군이 주력이었지만, 다른 바르샤바 조약국들의 파견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경악과 혐오를 느꼈다. 성난 덴마크인들이 코펜하겐의 소련 대사관 앞에 모여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며 그는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침공은 그가 봉직하는 정권의 진정한 본질을 훨씬 더 노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였다. - P62

덴마크 정보부는 그가 아내와 나눈 이 위험한 대화를 틀림없이 포착해서, <고름손 삼촌>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KGB라는 기계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톱니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터였다. 그렇다고 그가 딱히 서방에 접근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덴마크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정보국에 그의 감정을 알리려는 시도, 감정적 측면의 <스치는 접선>같은 것이었다. - P63

서방은 이 신호를 놓쳤다. 올레크가 손을 뻗었으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덴마크 안보 당국이 중간에 가로채서 처리하는 정보가 워낙 많기 때문에, 작지만 의미심장한 올레크의 신호는 눈 에띄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 P63

올레크의 덴마크 근무가 끝나갈 무렵, 모스크바에서 연락이 왔다. <작전 활동 중단. 그곳에 남아 분석하되 작전은 이제 없다.> 모스크바 중앙은 덴마크인들이 올레크 동무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가 KGB 요원임을 그들이 알아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중간에 가로챈 무선 통신 내용을 보면, 올레크가덴마크에 도착했을 때부터 평균 이틀에 한 번씩 그에게 미행이 붙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련 대사관 직원 누구보다도 높은 빈도수였다.  - P64

어느 서독 외교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그는 젊은 덴마크 남성과 대화를하게 되었다. 그 청년은 유난히 친절했으며,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함께 술을 마시러 가자고 청했지만, 올레크는 집에 가야 한다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그 청년은 덴마크 정보국의 공작원이었고, 그날의 대화는 올레크를 동성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 P64

PET는 이 계책이 왜 실패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KGB 요원이라서 그 유혹 시도를 알아차린 걸까? 아니면 그들이 내세운 <미인>이 그의 취향이 아니었나? 진실은 단순했다. 올레크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것. 그는 상대가 수작을 걸고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 P65

소설과 달리 첩보 작전이 정확히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프라하의 봄이 끝난 뒤 올레크는 서방 정보국에 은근한 신호를 보냈지만 상대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P65

그는 다시 S부에 배치되었고, 옐레나는 외국 외교관에 대한 도청을 맡은 KGB 제12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가 배치된 곳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대사관과 외교관을 도청하는 팀이었는데, 그녀의 계급도 중위로 높아졌다. 결혼 생활은 이제 기껏해야 <일을 위한 관계> 정도였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자기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없었다. 아니, 함께 살고 있는 모스크바 동쪽의 우울한 아파트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아예 별로 없었다. - P66

1970년 봄, 영국의 젊은 정보 요원 제프리 거스콧은 얼마 전 캐나다에서 온 <인물 파일>을 뒤적이고 있었다. (중략). 하지만 겉과 속이그만큼 다른 사람도 없었다. 한 동료는 거스콧이 <소련 첩보계에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피해를 입힌 인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 P67

1965년 거스콧은 막 개혁의 물결이 시작되던 체코슬로바키아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3년 동안 그는 프리드라는 암호명을 가진 스파이를 관리했는데, 프리드의 정체는 바로 체코 정보국 직원이었다. - P67

거스콧의 책상에 다니첵이라는 암호명으로 놓여 있는 파일은 스타니슬라프 카플란이라는 체코 정보국 하급 관리가 최근에 망명한일에 관한 것이었다.
카플란은 프라하의 봄 직후 불가리아로 휴가를 떠났다가 자취를감췄다. 그러고는 얼마 뒤 프랑스에 나타나 프랑스 정보국에 정식으로 망명 신청을 했다.  - P68

카플란의 파일에는그가 꼽은 사람 100여 명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체코슬로바키아인이었고 소련인은 다섯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유독눈에 띄었다.
카플란은 자신처럼 장거리 달리기를 즐기고 KGB에 들어가기로예정되어 있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와의 우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올레크가 <분명한 정치적 환멸의 징후>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 P68

거스콧은 추적을 잘 피하고 유능하며 어쩌면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있고 한때 자유로운 사상을 품었던 이 KGB 요원이 서방에 다시나타난다면 접근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고 고르디옙스키 파일에적어 두었다. 이렇게 <흥미로운 인물>로 <점> 찍힌 올레크에게는 선빔이라는 암호명이 부여되었다. - P69

1971년 9월 24일, 영국 정부는 소련 정보 요원 105명을 추방했다.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스파이 추방이었다. 풋Foot 작전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이 대규모 추방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이미 얼마 전부터였다.  - P69

KGB의 첩보 활동이 점점 뻔뻔스러워졌기 때문에 영국 보안국, 즉 MI5는 그들을 치고 싶어 안달하고 있었다. 방아쇠가 된 것은 소련 편물업계 대표로 행세하던 KGB 요원 올레크 리알린의 망명이었다. - P70

소련은 풋 작전으로 완전히 기습을 당한 꼴이었다. 제1주요부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 P70

어느 날 밤 올레크는 「BBC 월드 서비스」 방송을 몰래 듣다가, 풋작전의 여파로 덴마크가 그의 옛 동료 세 명, 즉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KGB 요원들을 추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오전 그는 덴마크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이 소식을 언급했다. 5분 뒤 그의 전화기가 울리더니, 수화기 속에서 귀가 멀 것 같은 호통이 쏟아져 나왔다. 「고르디옙스키 동무, 덴마크에서 추방이 있었다는 헛소문을 계속 KGB 내부에 퍼뜨리며 돌아다닌다면 처벌이 있을 것이오!」 야쿠신의 목소리였다. - P71

(전략).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올레크를 KGB로 이끈 형 바실리 고르디옙스키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올레크의 승진이 빨라졌다.
바실리는 오래전부터 술을 심하게 마시는 편이었다. 동남아시아에 갔을 때 간염에 걸려 의사에게서 두 번 다시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그는 계속 술을 마셨고 서른아홉이라는나이로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KGB는 그에게 완전한 군인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 P72

 소련은 덴마크에 비자를 신청하면서, 고르디옙스키가 소련 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코펜하겐에 다시 갈 것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그의 실제 직책은 과거 미하일 류비모프가 맡고 있던자리, 즉 KGB 제1주요부의 정치 정보 담당관이었다.
올레크가 KGB 요원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으므로, 덴마크가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올레크의 귀환을 허락한 뒤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런던에도 이사실을 알렸다. - P73

참조

미하일 류비모프의 회고록은 『불한당 레지덴트의 기록Notes of a Ne‘er-Do-WellRezident (1995)과 『내가 사랑하고 싫어한 스파이들Spies I love and Hate」(1997)에 수록되어 있다. 바실리 고르디옙스키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한 활동에 대해서는크리스토퍼 M. 앤드루와 바실리 미트로킨이 쓴 『미트로킨 아카이브 The MitrokhinArchive (1999)를 참고하라. - P73

3
선빔


덴마크 코펜하겐의 MI6 지부장인 리처드 브롬헤드는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P75

키가 크고, 미남이고, 옷차림 또한 흠잡을 데가 없고, 언제나 농담을 던지며 술 한 잔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브롬헤드는 코펜하겐 외교관들의 파티에서 금방 친숙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은밀한 임무를 <해찰>이라고 표현했다.
리처드 브롬헤드는 실제보다 훨씬 더 멍청하게 보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영국인 중 하나였다. 사실 그는 대단한 첩보원이었다. - P76

브롬헤드가 <골리기 작전>이라고 명명한 이 일에 브룬은 휘하의 가장 유능한 부하 직원인 옌스 에릭센과 빈터 클라우센을 배치했다. <옌스는 키가 작지만 콧수염을 길게 길렀고, 빈터는 덩치가 대략 커다란 문과 맞먹을 만큼 거대했다. 나는 그 둘을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³라고 불렀다. 우리는 무서울 정도로 죽이잘 맞았다.> - P77

그들이 고른 사냥감 중에 KGB 요원이라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브라초프가 있었다. 클라우센은 그를 미행하다가 그가 코펜하겐의특정한 백화점에 들어가기만 하면 장내 방송 시스템을 이용해서 이렇게 말했다. 「KGB사의 브라초프 씨는 지금 안내 데스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된 뒤, KGB는 브라초프를 모스크바로 돌려보냈다. - P77

올레크의 비자가 발급되었다. MI6는 브롬헤드에게 새로 발령받은 이 사람에게 접근해 가까이 지내다가 적절한 때가 오면 의사를타진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PET는 상황을 계속 알려 달라면서도, 덴마크에서 MI6가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 P78

정치 정보 담당관은 불법 스파이와는 상관이 없고, 적극적인 비밀정보 수집과 서방 사회를 뒤엎으려는 시도가 주요 임무였다. 이말은 현실적으로 첩자, 접촉자, 정보원을 물색하고 포섭해서 관리하는 일을 뜻했다. - P78

 다른 서방 국가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덴마크 국민 중에도 소련의 지시를 기꺼이 따를 만큼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돈을 받고기꺼이 정보를 넘기는 사람(돈은 첩보 세계의 윤활유다), 또는 돈이 아닌 다른 방식의 설득이나 강압이나 유도에 취약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 P78

올레크는 덴마크 생활과 문화에 쉽사리 다시 섞여 들어갔다. 미하일 류비모프는 모스크바로 돌아가 영국-스칸디나비아과의 고위직을 맡았고, 올레크는 그의 후임이었다. 그가 새로이 맡게 된 이 첩보 활동에는 짜릿한 재미가 있었지만 좌절도 있었다 - P79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인 게르트 페테르센은 덴마크사회주의 인민당의 지도자였으며, 나중에는 유럽 의회 의원이 되었다. KGB가 제우스라는 암호명을 부여하고 <비밀 접촉자>로 분류한페테르센은 덴마크 외교 정책 위원회에서 뽑아 온 군사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 그는 아는 것이 많고 주량도 아주 셌다.  - P79

직업적인 면에서 올레크는 KGB의 사다리를 타고 매끈하게 위로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말이 아니었다. 모스크바에서 2년을 보내면서 공산정권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이 더욱 심해졌고, 덴마크로 돌아온 뒤에는 소련의 속물근성, 부패, 위선에 대한 절망이 깊어졌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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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스프링필드의 마르크스주의자

제임스 M. 윌리스

E. B. 화이트가 경고하기를, "유머는 개구리처럼 해부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뭔가를 죽이게 된다.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인간만이 그 내장을 보고 낙심하지 않을 것"¹이라고 했다. - P335

16_스프링필드의 마르크스주의자

1 E. B. White, "Some Remarks on Humor." In The Second Tree from theCorner (New York: Harper, 1954), p. 174. - P435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좋은 농담을 즐길 줄 모르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코미디-그중에서도 『트리스트럼 샌디』 스타일의 소설-를 쓰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 P335

사려 깊은 웃음

이 쇼는 뭔가를 웃기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 중 하나를 정의하는 용도로 코미디 세미나에서 활용될 수 있다. 바로 부조화incongruity다. - P337

 물론 이 코미디는 예술의 ‘비현실성‘에 의존한다.  - P338

전복은 인식이 있은 연후에만 가능하며, 부조화에 기반한 모든 코미디가 그러하듯 «심슨 가족» 또한 적어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일반적인 방식을 재고해볼 것을 요구한다. ‘정상적인‘ 세계관에서 아버지는 이타적이어야 하고, 충실한 가장은 어떤대가를 치르고라도 가족을 보호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 - P338

(전략).
이 대목의 유머가 관습적 행동과 태도에 대한 우리 인식에 의존하긴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차원에서도 웃기는 건 그 ‘관습적 사고와 행동의 어떤 결함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희생양 만들기와 고정관념 씌우기, 추상적인 정치적 관점이 개개인에게 여파를 초래한다는 사실의 망각,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모순을 보지 못하는 것, 호머는 이 모돈 항목에서 유죄다. - P339

풍자는 이를테면 슬랩스틱보다 한층 더 지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기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시청자들은 첫째로 지금무엇이 조롱의 대상인지를 이해해야 하고, 둘째로 이상적인 세계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 P340

그러므로 코미디 전통에서 «심슨 가족처럼 전복적인 코미디는 현대사회 특유의 위선, 가식, 과도한 상업주의, 불필요한 폭력 등을 폭로하고 그 너머에 좀더 나은 게 있음을 제시하고자 할 것이며 또 명백히 그러고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심슨 가족» 같은 풍자 코미디는 자본주의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우리를 잠시 떼어놓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341

 마이클 라이언의 정의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한 사회가 그 사회를 구조화하는 전제들을 자동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주입하는 믿음, 태도, 감정적 습관을 기술한다. 직접적 강압이 없이도 사회 권력을 보존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다"⁴ - P341

4 Michael Ryan, "Political Criticism,"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eds.
Douglas Atkins and Laurie Morrow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89), p. 203. - P436

한편 마르크스주의자가 볼 때 (지성, 인식,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웃음은 주로 관객이 사회를 구조화하는 전제들을 자동으로 재생산하고 ‘사회 권력을 보존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주입에 저항하게끔 돕는다. 서로 경쟁하고 이를테면 외모로 개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습관은 자본주의 가치 체계에 깊이배어 있으며 이는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 P342

거만하게 위에서 아래로

자본주의 가치에 기반한 사회에서 정치·사회 풍자는 정의상 언제나 그 사회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므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에버그린 테라스*가 내 집처럼 편안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그렇지 않다. 사실, 대중의 머릿속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공산주의와 동의어라면 (이 둘을 연관시킬 이유는 충분하다) «심슨 가족》의 많은 팬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스프링필드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 심슨에 집 주소 - P344

분위기를 깨는 카를 마르크스는 스프링필드에서 환영받지 못할 테지만, 희극 배우 그루초 막스는 몇몇 에피소드에 아빠와 캠핑을>에서 히버트 박사 주위에 몰려든 구경꾼 중 한 명으로) 직접 등장하거나하고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하필이면!-<엄마의 새 옷>*에서 인용구로 등장한다.

* 원제는 <스프링필드 계급투쟁의 장면들scenes From the Class Struggle in Springfield>이다. - P346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인 시청자가 보기에 <엄마의 새 옷>의 마지막장면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다. 비록 상류 계급을 제대로 풍자하긴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심슨 가족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와서 크러스티 버거 가게라는 좀더 익숙한 환경에 모여 앉아 있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 P347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 때문에, 아마도 계급투쟁이라는 개념 전체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어쨌든 주로 리사가 자본주의의 파괴적 경향에 가끔씩 잽을 날리긴 해도, 마지가 크러스티 버거 같은 쓰레기장에서 ‘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마지 자신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적 순간에 근접하지만, 결국 현상황을 묵묵히 조건부수용하는 쪽으로 물러나고 만다. - P349

엥겔스 자신은 오늘날 자주 인용되는 한 젊은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가가 "자신이 서술하는 사회 갈등에 대한 미래의 역사적 해결책을 접시에 담아 독자 앞에 대령할 필요는 없다"⁵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일은 일부분 독자-아니, 이 경우에는 시청자-스스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슨 가족》의 작가들은 심슨 가족에 대한 공감은 물론 어려움을 겪거나 견디는 어떤 이들에 대한 공감도 사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한 듯 보인다. - P349

5 Frederick Engels, Letter to Minna Kautsky. In Marx and Engels onLiterature and Art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6), p. 88(한국어판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마르크스 엥겔스 문학예술론 미다스북스,2015, 엥겔스, 민나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에서(1885.11.26)」). - P436

노동자에 대한 묘사를 예로 들어보자. 리사의 논평은 제쳐두고라도 우리는 작가진이 골프 치는 무리를 풍자했으니 노동자 편을 들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전자의 집단에 대한 무시를 감안할 때 비합리적인 가정은 아니다. 하지만 «심슨 가족》에서 이런 공감이나 감정이입은 확대되지 않는다. - P350

노동자 파업을 다룬 또 다른 에피스트에서, 교사들은 "A는 애플 Apple, B는 임금 인상Rain" "내놔, 내놔Gimme Gimme Gimme"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스프링필드 모터쇼》의 테마는 "미국의 노동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이제 61퍼센트과 마약을 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캐릭터가 그들의 직업으로 규정되고 식별되는데, (신속히 처치된) 프랭크 그라임스를 제외하면 그 대부분이 서투르거나, 낙오했거나, 무능하거나, 사기꾼이거나, 게으르거나,
알랑대거나, 못 배웠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범죄자거나, 아니면 (물론그 명백한 본보기인 호머 심슨처럼) 그냥 우둔하다. - P350

슈퍼볼 광고를 패러디한 장면이 가톨릭교회의 노여움을 사자, 이 쇼의 제작책임자는 재방송 때 핵심 대사한 줄을 수정했다. 이러한 수정 압력은 심지어 전복적이라고 하는 쇼에조차 기업의 통제가 미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이 부재한 풍자에서는 리비전(수정) 또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 P351

 리사와 알바니아인 교환학생 사이에 싸움이 붙었을 때, 호머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한 구절을 내뱉는다.


애들아 싸우지들 마라,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리사의 말도 어찌면 맞고 자본주의라는 기계가 노동자의 피를 기름칠해서 돌아간다는 아딜의말도 어쩌면 일리가 있을 거야. <교환학생 바트>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호머가 하는 말을 전부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재치 있는 대사로 가득 찬 이 쇼에서 또 하나의 재치 있는 대사에 불과한 것일까? 호머의 통찰은 그가 내뱉은 다른 말들과 같은 무게를 띠는 것일까? - P352

갈수록 문제

«심슨 가족》이-전통적인 풍자와 달리 - 더 나은 세상의 개념을 암시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밀레니엄 전환기 미국의 삶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포스트모던 텔레비전의 절정으로서, 문학적 언급, 문화적인유, 자기반영적 패러디, 속사포 같은 유머, 부조리하게 아이러니한 상황을 섞어 끓인 이 잡탕찌개는 파편화되고 해체되고 모순된 자본주의 세계의 완벽한 묘사이자 필연적인 결과다. - P354

죄르지 루카치 같은 일부 마르스크의 비평가들과 어쩌면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신은 《심슨 가족》의 캐릭터들이 현실적 존재의 추상적 의인화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 비현실적 성격을 들어 이 쇼를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이 쇼가 인간의 개별적 자질을 인간의 효용 가치보다 덜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좀더 정확히 묘사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 P355

<심슨 가족>이 대중에게 인기 있고 보수적인 비평가들이 이 쇼를용인한다는 것은, 우리가 현대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얼마나 만족하고있는지를 입증한다. 몬티 번스가 말하듯이.

이봐, 스필버고, [오스카어] 신들러하고 나는 쌍둥이같이 닮았다고 둘 다 공장주인 데다, 둘 다 나치를 위해 포탄을 제조했지. 하지만 내 포탄은 작동했다고, 젠장! <스프링필드 영화제>

여기서 우리가 웃는 이유는, 번스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인정하고있는지에 무지하다는 데 경악하기 때문일 것이다. - P357

<심슨 가족>은 웃긴다. 이 쇼는 우리에게 기대를 심어주었다가 꺾어버리며, 우리를 데리고 직진으로 폭주하다가 아무 경고 없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급회전하여 우리의 의표를 찌른다. 이 쇼는 도전하고, 도발하고, 우리의 경계와 주의를 집중시키고, 기성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많은 부르주아 가치의 공허함을 폭로하곤 한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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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처리실

드디어 미술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후고는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보존 처리실로보내집니다. 보존 처리실은 미술품의 상태를 검사하고 보존 처리를 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은마치 수술실과 아틀리에, 연구실, 사진 촬영실,
사무실을 합친 것처럼 생겼어요. 보존 처리실에서사용되는 많은 도구와 기계들은 치과나 시계 수리공방에서도 사용되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섬세한기구들로 아주 정확하고 정밀한 작업을 할 수있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회화, 종이, 액자, 조각, 그리고 동시대 미술 담당 보존가가 보이네요.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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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은 안경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며 말했다.
"자네는 학파 사람 같지 않은데."
"학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하지만 나는 대답할 길이 없었다.
"이름은?"
"네모입니다."
"그건 이름이라고 할 수 없는데." 도서관장은 약간 기분이 상한 듯했다.  - P332

솔직히 말했건만 도서관장은 내가 얼버무렸다고 생각한 것같았다.
"바깥에서 오는 건 불길한 인간들뿐이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마왕이 정해." - P333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꼭대기를 헤치며 지나는가 싶더니 우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바다 위를 활주하듯 이동하고 있었다.
포대 섬은 순식간에 뒤로 멀어져 갔다. 앞쪽 바다를 보니 로프웨이의 지주가 되는 철골이 점점이 서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것이라곤 그것뿐, 움직이는 것은 철탑에서 무리 지어 날개를쉬는 바닷새 정도였다.
어느 순간 작은 섬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하늘에서 그림물감 한 방울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 P334

한 번 보이고 나니 어째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섬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섬이 있군요!" 나는 경탄했다.
"물론 있어요. 당연하잖아요."
마왕의 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 P334

"저는 제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가 죽어 있나요?"
마왕의 딸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를 붙들며 웃었다.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은데요."
"당신들은 다르죠." - P335

나무들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이자 마왕의 저택이 눈 아래나타났다. 로프웨이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섬 반대편 비탈에 있기 때문이었다. 콘크리트 2층 건물 앞마당의 종려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주위는 고요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사야마 쇼이치를 따라 학파 관측소를 찾아갔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지붕까지 이어지는 휑뎅그렁한 현관홀, 무기질적인 콘크리트 벽, 서늘한 냉방 저택 내에 감도는 비현실감은 관측소와 매우 비슷했다.
"아버지는 서재에 계세요."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는 당신 혼자 가요. 계단을 올라가서 왼쪽 방이에요." - P337

나는 서재를 가로질러 창으로 다가갔다.
저물어 가는 태양에 물든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때 바다 저편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열차가 보였다. 관측소 섬에 표류한 날 동틀녘의 바다를 달려간 그 열차였다. 나는 얼마 동안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문득 뒤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열차에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군."
나는 흠칫 놀라 돌아봤다.
하지만 실내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 P338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을 겁니까?"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여도 보이지 않지."
나는 서안 앞을 벗어나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 앉았다. 그리고 눈앞의 공간을 응시했다. 서안 너머 유리창으로 바다와 하늘이 보였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하고 자신에게 일렀다.
다음 순간 서안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 P339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물론 알지."
"그럼 ・・・・・・ "
"나한테 알아내려고 해봤자 소용없어. 기대에 부응해 주지못해서 미안하네만 말이지. 물론 자네 심정은 이해해. 자네한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 바다에서 자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거든. 학파의 무법자들과 마찬가지로 멋대로 내 영토에 침입해 왔어. 딸을 도와준 것은 고맙지만 따져보면 자네가 스스로 초래한 사태야. 특별 취급할 이유가 못되네." - P340

마왕은 자상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서안에 놓인 카드 상자가 신경 쓰였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마왕은 나무 상자 뚜껑을 열고 안에서 카드를 꺼내 훑어보았다. 대체 뭘 하는 걸까. - P341

(전략).

마왕은 눈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재미있군."
그 순간 나는 가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됐다. 목이 바싹말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마왕의 눈은 창밖에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처럼 텅 비어 있었다. 얼마 동안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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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85년 5월 18일

KGB의 방첩 담당 부서 K부에서 이것은 일상적인 도청 작업이었다. - P15

한 시간 뒤 그들의 작업이 끝났을 때 이 아파트의 거의 모든 구석에 KGB의 눈과 귀가 심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옷장 안의 옷과 신발에 방사성 가루를 뿌렸다. 방사능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KGB가 방사능 탐지기를 사용하면 착용자의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농도의 방사성 가루였다.  - P15

몇 시간 뒤 러시아의 고위급 정보 요원 고르디옙스키가 런던에서 출발한 아에로플로트 항공기를 타고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착륙했다.
KGB의 올레크 안토니예비치 고르디옙스키 대령은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 P16

단단한 운동선수 같은 몸집의 고르디옙스키는 북적거리는 공항에서 자신 있게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미약한 두려움이 부글거렸다. KGB 베테랑이며 소련의 충실한 비밀 요원인올레크 고르디옙스키가 사실은 영국의 스파이였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영국의 해외 정보국인 MI6에 포섭된, 녹턴이라는 암호명의 정보원은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첩자 중 한 명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 P16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도 이 소련 첩자가 준 엄청난 정보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두 지도자 모두 알지못했다. 심지어 고르디옙스키의 젊은 아내도 남편의 이중생활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P16

고르디옙스키가 KGB의 레지덴트(레지덴투라라고 불리던 KGB해외 지부의 지부장을 지칭하는 러시아어)로 임명되자, 그에 관한 정보를 아는 소수의 MI6 요원은 몹시 기뻐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소련의 최고위급 정보 요원이 된 고르디옙스키가 소련 첩보망의 가장내밀한 기밀에 접근해 KGB의 계획에 대해 미리 서방에 알려 줄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7

런던의 안가(家)에서 급히 소집된 회의에서 MI6의 담당관들은 고르디옙스키에게 가족과 함께 망명해 영국에 남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회의의 참석자들은 모두 이번 일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알고 있었다. - P17

M16 요원들은 고르디옙스키의 비상 탈출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핌리코라는 암호명의 이 계획은 7년 전 영원히 실행할 일이 없기를바라며 작성된 것이었다. MI6는 그때까지 소련에서 누군가를 탈출시킨 적이 없었다. 하물며 KGB 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교하고위험한 탈출 계획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이었다. - P17

 공항은 감시 때문에 항상 분위기가 딱딱했는데, 그날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았다. 고르디옙스키는 만약 KGB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소련땅에 발을 디딘 순간 체포되어 이미 KGB 감방으로 끌려가고 있을것이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택시에 올랐다. - P18

(전략). 그런데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 번째 잠금장치, 이 아파트 건물이 처음 지어질 때 설치된 것으로 열쇠를 넣어 돌리게되어 있는 구식 잠금장치가 잠겨 있기 때문이었다.
고르디옙스키는 이 세 번째 잠금장치를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 잠금장치의 열쇠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18

누군가가 그의 정체를 알렸다. KGB가 그를 감시 중이었다. 동료 스파이들이 그를 염탐하고 있었다. - P19

1

KGB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의 인생은 KGB 그 자체였다. KGB가 그를 형성하고, 사랑하고, 비틀고, 망가뜨리고, 나중에는 거의 죽일 뻔했다. 소련의 첩보 기관 KGB는 그의 심장과 혈관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 P23

KGB (<국가 보안 위원회>를 뜻하는 Komitet GosudarstvennoyBezopasnosti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는 지금껏 만들어진 모든 정보기관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광범위한 곳이었다. 스탈린이 만든 첩보망의 직속 후계자인 KGB에는 국외와 국내 정보 수집, 국내 보안 강화, 국가경찰의 역할이 모두 결합하여 있었다. - P23

서방 세계의 눈에 KGB라는 머리글자는 공포 정치와 대외 공격및 체제 전복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얼굴 없는 관료 마피아가 경영하는 전체주의 정권의 모든 만행을 짧게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KGB의 엄격한 통치하에 사는 사람들의 시각은 달랐다. 그들이 공포 속에 복종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공격을 막아내는 보루, 공산주의를 수호하는 친위대로 KGB를 우러러보는 마음도 있었다. 이 특권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 P24

이 기관에서 한번 일을시작한 사람은 평생 그 일을 놓지 않았다. <전직 KGB 사람이라는것은 존재하지 않는다.>¹ 전직 KGB 요원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말이다.

1 블라디미르 푸틴이 FSB에서 한 연설. Anna Nemtsova, "A Chill in the Moscow Air."
뉴스위크2006년 2월 5일 자에서 재인용. - P24

그의 아들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아버지고르디옙스키는 신념 때문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에 가담해야 할 때도 결코 흔들림 없이 당에 헌신했다. 1932년에 그는 카자흐스탄의 <소비에트화>에 참여해, 소련 군대와 시민을 먹일 음식을 농민들에게서 징발하는 작전을 기획했다. 그 결과 발생한 기근으로 약 150만 명이 죽었다. 안톤은 국가가 초래한 기아를 바로 코앞에서 직접 보았다. 그리고 그 해에 국가 보안을 맡은 기관에 들어갔다. - P25

혁명이 내부의 치명적인 위협과 맞닥뜨렸다는 스탈린 동지의 발표가 나오자 안톤 고르디옙스키는 반역자들을 솎아내는 데 일조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시행된 대숙청은<국가의 적>을 대대적으로 일소하는 작업이었다. - P25

<첩자 한 명을 놓치느니 무고한 사람 열 명이 고통받는 편이 낫다.>NKVD의 니콜라이 예조프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 P25

NKVD도 내부 직원들을 조사해서 숙청하기 시작했다. 한창 피가 낭자하게 흐르던 무렵에는 고르디옙스키 일가가 살던 아파트 단지가 6개월 동안 열두 번도 넘는 불시 단속을 당했다. 체포는 밤에 이루어졌다. 가장이 가장 먼저 끌려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다음에 끌려가는 식이었다.
이때 국가의 적 중 일부를 적발한 사람이 바로 안톤 고르디옙스키였을 가능성이 있다. <NKVD는 언제나 옳다>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분별 있는 말이자 완전히 틀린 결론이었다. - P26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관계가 돈독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 - P28

집안의 어른 중 누구도 진정한 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숨 막히는 획일주의가 지배하던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속으로 몰래 다른 생각을 품는 것은 가능했지만, 가족에게조차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 P28

 어느 날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옹호하는 순진한 연설문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어학실에서 녹음해 동료 학생들 몇 명에게 들려주었다. 그들은 기겁했다. 「이거 당장 없애 버려.
올레크 두 번 다시 입에 담지도 말고」 덜컥 겁이 난 올레크는 혹시 학생 중 누가 자신의 <급진적>인 견해에 대해 당국에 알리지 않았을지 걱정스러웠다. 학교 안에도 KGB의 첩자들이 있었다. - P29

국제 관계 대학교는 소련 최고의 엘리트 대학으로, 헨리 키신저에게 <소련의 하버드>³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외무부가 운영하는 이 대학은 외교관, 과학자, 경제학자, 정치가, 그리고 스파이를 길러 내는 최고의 훈련 기관이었다. 올레크는 역사, 지리, 경제, 국제 관계를 공부했으나, 모든 학문은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왜곡된 형태로 전달되었다.

3 Tatiana Smorodinskaya, Karen Evans-Romaine, Helena Goscilo (eds.), Encyclopediaof Contemporary Russian Culture (Abingdon: Routledge, 2007)에서 재인용 - P30

대학 도서관에는 해외 신문과 정기 간행물 몇 종이 들어와 있었다. 비록 심하게 편집된 상태였어도, 세상을 언뜻 들여다볼 수는 있었다. 올레크는 조심스레 이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서구에 대해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의심받을 수 있었다. 가끔은밤에 「BBC 월드 서비스」나 「미국의 소리」 방송을 몰래 듣기도 했다. - P30

구가 친해진 학생 중에 대학 육상 팀 소속으로 역시 달리기를 즐기는 스타디슬라프 카플란이 있었다.
(중략).
 두 청년은 서로의 포부가 충돌하지 않고 생각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유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공산주의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올레크는 카플란이 솔직하게털어놓는 의견에 짜릿한 흥분과 미약한 경계심을 느꼈다.  - P32

스탄다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올레크가 우상처럼 숭배하던 형 바실리였다. 바실리는 당시 전 세계에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소련의 비밀 요원, 즉 <불법 스파이>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 P32

첫 번째 종류는 소련 외교관이나 영사관 직원, 문화 담당관이나 무관, 공인된 언론인이나 무역 대표 등 공식적인 위장 신분을 갖고 활동했다. 외교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 <합법적>인 스파이들이 설사 발각되더라도 간첩 혐의로 기소될 위험이 없다는뜻이었다. 그들은 해당 국가에서 외교상 기피 인물 판정을 받고 추방될 뿐이었다. - P32

 반면 <불법> 스파이 (러시아어로 넬레갈)에게는 공식적인 지위가 전혀 없었다. 대개 그들은 가명으로 만든 가짜 여권으로 돌아다녔으며, 어떤 나라에 배치되든 눈에 띄지 않게 섞여 들어갔다(서구에서 이런 스파이들은 공식적인 위장 신분이 없다는 뜻의 non-official cover 를 줄여 NOC라고 불린다). KGB가 전 세계에심어 놓은 불법 스파이들은 평범한 시민 행세를 하며 신분을 숨기고 파괴적인 활동을 했다. - P33

 그들은 공식적인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활동했으므로, 흔적이 남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없고 외교관의 보안 채널로 통신을주고받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대사관에서 신분을 인정받은 스파이들과 달리, 그들은 방첩 수사관들이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모든 소련 대사관에는 상설 KGB 지부, 즉 레지덴투라가 있고, 다양한 공식 신분을 지닌 KGB 요원들이 레지덴트(MI6CIA의 표현으로는 지부장)의 지휘를 받아 움직였다. - P33

KGB는 국제 관계 대학교 내에도 사무실을 두었다. 여기 소속된 요원 두 명은 자질이 보이는 학생들을 찾는 역할을 했다. - P34

올레크는 대학 시절이 끝나갈 무렵 6개월 동안 현장을 경험할 수있게 동베를린으로 파견되었다. 소련 대사관의 통역관 직책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신이 난 올레크는 동독에 대한 브리핑을 받으러 S부로 오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 P34

하루아침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어도, 올레크는 KGB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당국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능이고, 복종은 각인된 습관이었다. - P35

그해 크리스마스에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가짜 신분으로 살고 있는 바실리와 합류했다.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는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는 이야기는 바실리에게 하지 않았다. 그의 형 바실리는 이미 KGB의 정식 요원이었으므로, 그렇게 이념적으로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 P36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에게 1962년 7월 31일부터 KGB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이미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면서 왜 그 이데올로기를 집행하는 기관에 들어갔을까? KGB일은 해외여행의 가능성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 P37

민간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에 올레크는 스탄다 카플란과 함께 흑해 해안에서 열린 학교의 방학 캠프에 참가했다. 카플란은 한달 더 대학에 남아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막강한정보국인 SB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두 친구는 곧 소련 블록을 위한 첩보 활동에서 동맹이자 동료가 될 예정이었다. - P38

KGB의 <붉은 깃발> 엘리트 훈련 아카데미는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숲속 깊은 곳에 위치했으며, 101 학교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당이 죄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에 죄수를 노출시켜 저항 의지를 꺾어 버리는지하 고문실 101호를 무의식적으로 연상시키는 얄궂은 이름이었다. - P39

<감시를 의식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훈련된 첩보원임이 드러날 수 있다. <첩보요원은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KGB 교관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외국인이 대놓고 미행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감시 기관이 눈치챈다면, 한층 더 비밀리에 더 집요하게, 더 독창성을 발휘해서 작업하게 될 것이다.>⁴

4 Leonid Shebarshin, "Inside the KGB‘s Intelligence School," Espionage History - P39

감시 없이, 또는 심지어 감시받는 중에도 정보원과 접선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비밀 작전의 핵심이다. 서방의 첩보 용어로, 정체를감춘 채 활동하는 요원은 <블랙>으로 불린다. KGB 훈련생들은 정확한 장소에서 특정 인물과 만나는 시험, 정보를 특정 장소에 놓아두거나 가져오는 시험, 미행 여부와 방식을 알아내는 시험, 겉으로드러나지 않게 미행을 따돌리는 시험, 깨끗하게 드라이클리닝을 완수하고 지정된 장소까지 오는 시험을 연달아 치렀다. - P40

그는 <신호 장소>를 설정하는 법, 즉 공공장소에 비밀 신호를 남겨 놓는 법을 배웠다. 예를 들어 가로등 기둥에 분필로 그려 놓은 표시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스파이에게는 특정한 시각에 특정한 장소에서 만나자는 뜻이 될 수 있었다. - P40

올레크는 자신의 첫 첩보명을 선택했다. 소련과 서구의 정보기관들은 가명을 선택할 때 같은 원칙을 사용했다. 본명과 같은 머리글자의 흡사한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누가 스파이를 본명으로 부르더라도, 그의 첩보명만 아는 사람들이 잘못 들었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구아르디예체프>라는 이름을 골랐다. - P41

모든 정보기관에 공통적인 모험심 덕분에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KGB를 직장으로 선택한 것은 그곳에서 하게 될 활동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비밀은 강력한 유대를 낳는다.  - P41

바실리 고르디옙스키는 제1주요부의 불법 스파이 부서인 S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술고래가 되었는데, 일을 마친뒤 대량의 보드카를 마시고도 정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높이 치는직장이었으므로 그것이 딱히 약점은 아니었다.  - P42

올레크는 형처럼 해외를 돌아다니며 신나는 비밀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발령받은 곳은 모스크바의 S부였다. 거기서 그는 불법 스파이들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 P42

올레크는 멋들어진 외국 어딘가에서 비밀 요원으로 일하는 대신 서류나 뒤적이게 되었다. 문서를 작성하는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불법 스파이에게는 그럴듯한 과거를 지닌 가짜 인생, 새로운신분, 위조서류가 필요했다. 그들 각자를 유지하고, 지시를 내리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 위해서는 신호 장소, 버려진 편지함, 스치는 접선을 복잡하게 구성해야 했다. - P43

S부의 복도에서 올레크는 역사상가장 큰 성공을 거둔 불법 스파이 중 한 명인 코논 트로피모비치 몰로디, 가명 <고든 론즈데일>을 소개받았다. 1943년에 KGB는 죽은캐나다 어린이 고든 아널드 론즈데일의 신원을 훔쳐 몰로디에게 주었다. 북미에서 자란 덕에 흠잡을 데 없는 영어를 구사하는 몰로디/론즈데일은 1954년 런던에 정착해 주크박스와 풍선껌 기계를 파는유쾌한 영업사원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포섭해 이른바 포틀랜드 스파이망을 만들었다. - P43

CIA 첩자의 첩보로 체포된 몰로디는 간첩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영국 법원은 재판 때도 그의 본명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올레크와 처음 만났을 때 몰로디는 모스크바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영국인 회사원과 교환되어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였다. - P44

그러나 반(半)은퇴 상태인 소련 스파이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국인 킴 필비였다. 1933년에 NKVD에 포섭된 그는 MI6에 근무하면서 KGB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다가 결국 1963년 1월에 소련으로 망명했다. 영국 정부를 깊이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 P44

소련 정보기관들은 아주 초창기부터 윤리적인 제약과 상관없이 움직였다. KGB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전쟁, 언론 조작, 역정보, 위조, 협박, 납치, 살인을 계획했다. 제13부,
즉 특수 임무부는 파괴 활동과 암살 전문이었다. 소련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지만, 외국의 동성애자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KGB는 동성애자들을 포섭했다. - P45

KGB는 직원들이 국내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멋대로 들여다보았다. 소련에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요원들은 반드시 결혼해서 자녀를낳고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결혼한 요원은 아내와 가족들이국내에 인질처럼 붙잡혀 있으니 해외 근무 중에 망명할 가능성이낮다는 계산과 통제가 모두 작용한 결과였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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