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SF 단편 만화집 세트 - 전2권 - 하우스도르프 연결공간 + 슈뢰딩거의 고양희
반-바지.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절판


인터넷에서 자주 봤던, sf에 관한 좋은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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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윤리학에 있어서도, 윤리학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어려움과 불일치는 주로 아주 단순한 원인에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그 원인은 당신이 대답하고 싶어 하는 물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규명하지 않은 채로 그 물음에 답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이다. - P5

 어쨌든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시도를 아예 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작업을 빠뜨린 결과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철학자들은 ‘예‘나 ‘아니요‘, 그 어떤 대답도 정확하지 않은 물음에 대해 이러한 대답이 참임을 입증하려고 여전히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 P6

즉,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모든 윤리학적 명제가 증명되거나 반박되는, 혹은 확증되거나 의심스럽게 되는 증거의본성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일단 우리가 이 두 물음의 의미를정확히 인정하면, 이러한 물음에 대한 특정의 모든 대답에 대해, 이를 옹호하는 논증이나 반박하는 논증에 정확히 어떠한 종류의 이유들이 관련되어 있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 P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증명과 반박에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관련되어 있는 증거의 종류는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다.
이러한 증거는 두 종류의 명제를, 그리고 오직 두 종류의 명제만을 포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즉, 이러한 증거는 우선 첫째로 해당 행위의 결과와관련된 진리, 즉 인과적 진리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또한 제일의 혹은 자명한 종류의 윤리학적 진리도 포함한다. - P7

따라서 이 책의 주 목적 중 하나는 칸트(Kant)의 유명한 책 제목을 약간 변경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즉, 나는 ‘과학적임을 자임할 수 있는 미래 윤리학을 위한 서론(Prolegomena to any future ethics that can possiblypretend to be scientific)‘에 대해 글을 쓰고자 노력해왔다. 달리 말해 윤리학적 추론의 근본 원칙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노력해왔다. - P8

나의 첫 번째 부류의 윤리학적 명제들은 증명이나 반박이 불가능하다는사실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 가끔 나는 이를 ‘직관‘이라고 부르는 시지웍(Sidgwick) 교수의 용례를 원용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인 의미의 직관주의자가 아님을 알아주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시지윅 교수 자신은 자기의 직관주의와 일반적으로 직관주의라 불리는 상식적인 입론을 구별시켜주는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중요성을 결코 명쾌하게 깨닫지 못한것 같다.  - P9

엄밀한 의미의 직관주의자는 두 번째 부류의 명제, 즉 어떤 행위에 대해 그 행위가 옳다고 혹은 의무라고 주장하는 명제는 그러한 행위의결과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증명 내지 반증할 수 없다고 역설하는 것에 의해 차별화되는 자를 말한다. - P9

이 책이 이미 완성되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다른 윤리학자의 입장에서보다 나 자신의 입장과 훨씬 더 흡사한 입장을 브렌타노(Brentano)의 「옳고 그름에 관한 지식의 기원」¹이라는 논문에서 나는 발견했다. 브렌타노는 다음 네 가지 점에서 나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 같다.

1) Franz Brentano, "The Origin of the Knowledge of Right and Wrong. Cecil Hague영역, Constable, 1902. 나는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썼는데, 나는 이 서평이 The InternationalJournal of Ethics(Oct., 1903)에 게재되기를 희망한다. 나의 입장이 브렌타노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좀 더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나는 이 서평을 언급할지도 모른다. - P10

 즉,
(1) 모든 윤리학적 명제를, 그것들이 단일의 고유한 객관적 개념을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정의된다고 간주하고 있다는 점, (2) 이러한 명제들을 나와 똑같이 두 종류로 날카롭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 (3) 첫 번째 종류의 명제는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점, 그리고 (4) 두 번째 종류의명제를 증명하는 데 관련된 꼭 필요한 증거의 종류에 관한 그의 주장 등에있어서 그의 입장은 나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 P10

지금 내 책을 다시 쓸 수 있다면,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책을 썼을것이며, 그랬다면 훨씬 더 나은 책이 되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나 새롭게 쓴다 해도 나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욕심으로 인해 그에 상응하는 정확성과 완결성은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내가 전달하고자 그렇게 애쓴 생각들을 내가 지금보다 더 모호하게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의심스럽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현재의 내용대로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이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비록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이러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결점으로 가득 차있음을 나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트리니티 대학, 케임브리지(Trinity College, Cambridge)
1903년 8월 - P11

제1장

윤리학의 주제와 대상

1.
우리의 일상적인 판단 가운데, 그 진위 여부에 윤리학이 확실하게 관련되어 있는 몇몇 판단을 지적하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 P39

이러한 것들이 윤리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정작 윤리학의 영역을 규정하려는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참으로 윤리학의 영역은 이 모든 판단에 공통적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판단에만 고유한 그 무엇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포함하도록 규정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 P40

2.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예들에 국한하여 논의하는 한, 이러한 예들은 모두 ‘행위(conduct)‘¹의 물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우리가 말한다고 해도 큰잘못이 없을 것이다. 즉, 이러한 예들은 우리 인간 행위에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나쁜가.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의 물음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 선하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언제나 그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대개 의미하기 때문이다.


:.
1) [역자 주] ‘conduct‘는 명사적 성격이 강한 행위‘로, ‘action‘은 동사적 성격이 강한 ‘행동‘으로구분하여 번역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이 의미상 차이가 없을 때에는 혼용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 P40

물론 윤리학이, 선한 행위가 무엇인가의 물음과 관련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41

즉, 모든 행위가 선한 것이 아니며, 일부 행위는 악하고 또 일부 행위는 아예 선과 무관하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행위 외의 다른 것들도 선할 수가 있다. 만약 행위 외의 다른 것도 선하다면, ‘선‘은 행위 및 다른 것들에 공통적인 어떤 속성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 P42

선 일반에 관해 어떤 확실한 결론을 얻은다음, 선한 행위의 물음을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우리라 나는 기대한다. 왜냐하면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이미 꽤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제일 물음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악인가?"이다. 그리고 이 물음(혹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논의에 대해 나는윤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윤리학은 이러한 논의를 포함함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 P42

3.
그러나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우리 각자가
"나는 지금 선한(good) 일을 하고 있다."고 혹은 "나는 어제 좋은(good) 저녁 식사를 했다."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진술들은, 비록 아마도 틀린 대답일 수도 있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지금 다루고 있는 우리의 물음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 될 것이다.²

2) [역자 주] 영어 ‘good‘은 우리말로 ‘선한‘, ‘좋은‘ 혹은 ‘착한‘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
물론 윤리학 원리에서 무어는 선의 정의 물음을 주로 다루기에 대부분의 경우 ‘good‘을 선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무어는 도덕과 무관한 사물에 대해서도 ‘good‘이라는형용사를 사용한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 역자는 ‘선한‘이나 ‘선‘으로 번역하지 않고, 일상 어법에 맞게 ‘좋은‘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좋은 의자‘라는 표현은 적절하지만, ‘선한 의자‘라는표현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What is good?"의 문장처럼 정의와 연관될 때 이는 그냥 ‘선‘을 뜻하기도 한다. 또 ‘the good‘의 경우도 사물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좋음‘으로,
도덕적 의미로만 사용될 경우에는 ‘선‘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 P43

4.
그러나 "무엇이 선인가?"라는 물음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책은 좋은 것이다."라는 대답은, 어떤 책은 참으로 아주 나쁘기 때문에 명백한 거짓이지만,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될 수도 있다. 그 대부분에 대해나는 다룰 생각이 없지만, 이러한 종류의 윤리 판단은 참으로 윤리학에 속한다. "쾌락은 선이다."라는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 P4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윤리학‘과 같이 덕의 목록을 포함하는 윤리학 저술들에서 내려지는 판단들은 바로 이러한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이는 대개 윤리학과는 전혀 다른 탐구로 간주되고 있는 학문, 즉 훨씬 평이 좋지 않은 결의론(Casuistry)의 실질적 내용을 구성하는 판단과 정확히 동일한 종류의 판단이다. - P44

 아무튼 결론은 보다더 특정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에, 윤리학은 보다 더 일반적인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이는 이 두 학문이 정도에 있어서 다르다는 의미이지 결코 그유에 있어서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이는 비록 부정확하기는 하지만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의 ‘특정의(particular)‘와 ‘일반적인(general)‘
이라는 개념에도 보편적으로 타당하게 적용된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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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장이 되면서 서양의 외교관, 선교사, 상인 등 많은 사람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인천에서 한성까지 가는 방법은 걷거나 우마차를 타는 것뿐이었다. 못해도 열두 시간이 소요되는 길이었기에 사람들은 인천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이동하곤 했다. 이에 눈치 빠른 무역상 호리 히사타로가 제물포항 근처에 이층짜리 목조건물을 세우고 숙박영업을 시작했다. - P59

"네가 말하는 니꼴라 유치원은 대불호텔과 좀 비슷해.‘
말을 마친 진이 얼음이 가득 든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켰다. 날씨가 꽤 쌀쌀한데 춥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뜨거운 라테를 시켜놓고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핸드폰으로대불호텔을 검색했다. 이상했다. 대불호텔은 1978년에 철거되어 터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그가 호텔을 봤을 리없었다. 나는 살짝 짜증을 냈다. - P60

인연이란 참 이상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그때 우리는 친구였고, 아마 그런 관계로 계속 남을 수도 있었다. 아니,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는 어떤 인연도 맺지 않을 수있었다. 하지만 우연은 언제나 어떤 계기를 만들고, 계기는 사람들의 관계를 어떤 시작점 혹은 마침표로 훌쩍 데려다놓는다. - P60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 짧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쩐지 죽이 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별 내용은 없었다. 연예인 이야기 하는 일, 취미, 가본 여행지.
이후 우리는 종종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역시 별다른 의미는없었다. 비슷한 대화가 반복됐다. 연예인, 취미, 여행지. 아, 우리만의 주제가 있긴 했다. 그러니까 엄마들. 다소 유난스럽고 소녀같은 우리 엄마들에 대해서. - P62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그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은연중에 표현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모른 척했다. 그래서우리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늘 다른 사람들에대해 이야기했다. 엄마, 옹주, 황녀, 박지운・・・・・・ 그리고 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음험한 비밀을 알게 된 여인. - P63

.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묘사하는 니꼴라 유치원의 풍경과 분위기가 대불호텔의 빈터와 주변풍경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인천우체국, 일본우선주식회사, 일본제1은행, 답동성당 같은 근대 건축물로 이루어진 인천 중구의풍경을 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아마 내가 그 동네에 직접 가보면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더니 물었다.
"어때? 한번 가볼래?"
나는 조금 당황했다. 물론 나는 가보고 싶었다. 굉장히 흥미가 생겼으니까. - P64

걱정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주고받을 텐데. 아무 일도 없을텐데. 나는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중요한 건 나의 원한이다. 이걸 돌려주는 일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해볼게. 어디 한번 해보자. 나는 진에게 대답했다.
"그래, 가보자. 직접 한번 보지 뭐."


그래서 그 주 목요일 아침, 인천으로 향하는 1호선 전철을 탔다.
그렇게 나는 대불호텔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 P65

그러나 나를 반긴 건 옛 시절의 분위기가 아니라 회색 쇠창살과 그 안의 황량한 빈터였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더 을씨년스러워보였다. 심지어 쇠창살 울타리 입구에는 단단해 보이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진 채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전시관을 목표로 한 건물 재건 공사에 들어가니 완공시까지 출입을 불허합니다. - P65

"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좀 찾아보고 올 걸 그랬다."
진이 옆에서 눈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짜증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근처 생활사 박물관에 한번 가보자며 나를 격려했다. 어쩌면 거기에는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쇠창살 사이를 노려보았다. 봐, 네가 하는 일은 다 이 모양 이 꼴이야. 결국 이렇게 됐잖아?
뭐가?
대체 뭐가? - P66

"저 사람 저기서 뭐하는 거지?"
내가 중얼거리자 진이 옆에서 대꾸했다.
"뭐라고?"
"저기 봐. 사람이 있어. 어떻게 들어간거지?"
그가 쇠창살 가까이 다가왔다.
"어디에?"
"저기 있잖아."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홀린 기분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 P67

나는 그를 쳐다봤다. 보애 이모를 꼭 닮은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웃지 않아도 늘 미소가 걸려 있는 다정한 표정. 그러나 그날그 순간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
"갑자기 외할머니가 요즘 부쩍 그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
"외할머니?"

아, 박지운. - P68

나는 그를 재촉했다. 그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불안한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연주는 녹색 재킷이 잘 어울렸대."
나는 방금 목격한 여자를 떠올렸다. 녹색 재킷을 입은 호리호리한 여자. 그녀가 분명 내 앞에 있었다. 어쩌면 이건 꿈이 아닐지도. 그래. 이건 꿈이 아니다. 결코 꿈이 아니야.
그가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1955년에 대불호텔에서 여자 한 명이 죽었대."
아아, 세상에. - P69

물론 그가 내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다 털어놓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 역시 내 마음을 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매우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피하며 망설이는 순간, 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말로 친구에 불과하구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먼 사이일지도 모르겠구나. - P70

"다 거짓말일 수도 있어. 우리 외할머니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별난 사람이거든."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상관없어." - P71

그리하여 우선, 1918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그해호리 가문은 대불호텔을 중국인 라이더위안?徳?에게 매각했다.
오랜 경영난 때문이었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사람들이 인천에서 굳이 하루를 머물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 P71

자, 드디어 고연주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녹색 재킷이 잘 어울리던 여자. - P72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면서 고연주는 식구들과 헤어졌다.
어머니와 막냇동생은 큰오빠 내외가 사는 서울로 떠났다. 고연주는 따라가지 않았다. 큰오빠에게 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정을 하는 데는 선교사들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고연주가 그들의 숙소에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때 그녀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 P73

소문이 돌았다. 선교사들이 귀국할 때 ‘가장 뛰어난 학생을 데리고 갈 거라고, 그녀는 누군가의 호의가 사라지면 그와 함께 내동댕이쳐질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러기위해서는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교사들을 통해 알게 된 나라 미국. 하나님의 나라 미국, 평등하고 풍요로운 나라 미국, 미국, 미국, 아, 아메리칸드림. 거기에 도착하면 누구에게도신세지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 아름다운아메리칸드림. 그녀는 오직 이 나라를 떠나기 위해 공부했고, 선교사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 P74

뢰이한.

그는 라이 가문의 일원이자 중화루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가문사람들이 이민을 갈 때 함께 가지 않았다. 1955년에도 중화루에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박지운은 전남편이었던 뢰이한에게 들은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어디까지가 박지운이 직접 목격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뢰이한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P78

나는 여전히 그들을 모른다. 어쩌면 모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에 더더욱 매달린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실체를 느껴보기 위해서 이야기의 또다른 등장인물, 지영현을 화자로 내세우면서까지 말이다.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음을 우선 말해두고 싶다. - P79

2부

go away, Eleanor,
we don‘t want you any more,
not in our Hill House,
go away, Eleanor,
you can‘t stay here

- Shirley Jackson, The Haunting of Hill House

1

그들은 목적지가 분명해 보였다. 특히 남자 쪽이 그랬다. 그는툭 불거진 매부리코에 덥수룩한 수염이 눈에 띄는 백인이었는데,
배에서 내릴 때부터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아마 약도인모양이었다. 꽤 믿음직스러운 정보인 듯했다. 확신에 찬 눈길로종이와 항구 주변을 몇 번 번갈아 바라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나갔으니까. 나는 조금 놀랐다. - P83

나는 여전히 어디서든 겉돌았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항구에서,
그리고 당숙모의 집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때문에 나는 저 남자의 위풍당당한 걸음걸이와 여유 있는 표정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이내 큰길을 사이에 두고 그를따라 천천히 걸었다. - P84

그럴 때 연주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매혹된 것 같았다. 그래. ‘매혹‘. 어릴 적, 옆집 친구에게서 배운단어이다. 그 아이는 말했다. ‘매혹되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행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단어를 기억했다. - P84

그 순간,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불쑥 돌렸다. 나는 흠칫 놀라 그 자리에 섰다. 다행히 그가 바라본 건 내가 아니었다. 그는내 뒤쪽의 항구를 가리키며 옆에 선 일행에게 뭐라 뭐라 큰 소리로 떠들었다. 일행 역시 백인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남자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는데,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무표정해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남자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 P85

아주 잠시 나는 그녀와 똑같은 머리를 한 나를 상상해보았다. 뻣뻣한 단발 대신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지닌 나. 머릿결이 반짝반짝 빛나는나. 화려하게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나.... 어색하기짝이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생각났다.
연주. - P86

"손님이 없으니까 아주 별짓을 다 하는구나.‘
정말로 며칠째 손님을 한 명도 못 찾았다. 그리고 벌써 오후 세시가 넘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텅 빈 거리를 혼자 걸었다. 그러다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저 두 사람, 어디로 가는 거지? - P88

"아유 루킹 포호텔? 아이 우드 라이크 투 인트로듀스 유..
여자가 남자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쉽게도 이게 내 영어 실력의 한계였다. 아니다. 이건 실력도 아니었다. 혹시 모를 순간을 위해 연주가알려준 문장을 대충 외워두었을 뿐이다. 나는 늘 한국인들만 상대했다. 어수룩한 부두 노동자들, 가난한 여행자들. 쉴 곳이 필요한 정체 모를 사람들. - P87

와.
이게 웬일이야?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거리를 가로질러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두 사람보다 내가 먼저 대불호텔에 도착해야 했다. 내가 그들을 데려왔다고 말해야 했다. 그들의 생각이나 판단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고연주,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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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 3단계

유전자 오작동 극복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2학년 때 충격적인 수업을 하나 들었다. 응용인지심리학이라는 수업이었는데, 수업 주제는휴리스틱 Heuristic이었다. 당시엔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픈 주제였다.
하지만 이 어려운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인간이 얼마나 멍청한지‘만 배우면 다 얻은 것이었다. - P142

○ SNS와 유튜브 등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1분짜리 자극적인 콘텐츠를 1시간씩 보면서 인생을 낭비한다. - P142

ㅇ 주식이 폭락하더라도 ‘이걸 참아내면 돈을 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막상 가진 주식이 폭락하자 패닉셀panic sell로 엄청난 손해를 본다.
ㅇ 유튜브를 하면 현재 연봉의 10배를 버는 게 확정된,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얼굴 노출이 꺼려져 결국 기회를 포기하고, 최저 시급을 받으며 일을 한다. - P143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처럼 보이지만,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나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밑바닥에서 시작했지만, 유전자 오작동의 개념을 이해한 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우선 인간이 왜 잘못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됐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143

*SNS와 유튜브 등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1분짜리 자극적인 콘텐츠를 1시간씩 보면서 인생을 낭비한다.

→도파민 분비로 기쁨과 쾌락을 느끼는 건 선사시대에 우리의 생존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과일을 발견하거나운 좋게 사냥감을 잡아 가족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경우,
짝을 유혹해 번식에 성공하는 경우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후략). - P144

*길거리를 걷다가 부딪쳐 시비가 붙은 사람의 얼굴을 쳐서 1년치 연봉을 날리고 빨간줄까지 얻는다.
→ <동물의 세계> 등 생태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컷들은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선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불사른다. 수컷으로서 명예가 실추되면 암컷들에게 선택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몇몇의 남성들은 ‘자존심‘, ‘우두머리 수컷의 지위를 지키려는 선사시대의 본능을 따른다. (후략). - P146

* 유튜브를 하면 현재 연봉의 10배를 버는 게 확정된,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얼굴 노출이 꺼려져 결국 기회를 포기하고,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을 한다.
→우리는 평생 절대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 앞에서도 알몸을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이와 비슷하게 여자의 유전자코드에는 ‘대중에게 노출을 최소화하라‘는 명령이 새겨져있다. 선사시대 여성이 많은 남성에게 노출되는 것은 신상에좋은 일이 아니었다. 원치 않는 임신이나 폭행을 당할 수도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대중에게 노출되었을 때 오히려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후략). - P147

‘내가 나보다 잘된 친구들을 안 좋게 본 건, 우두머리 수컷 본능때문에 상대를 적으로 인식한 거야. 학벌이 나보다 낮고 사업이 아닌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도 나보다 돈을 많이 번다면 분명히 배울점이 있을 거야. 지금 상대를 비웃는 건 내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유전자가 오작동하는 거야‘라고 생각을 전환해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자신보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본인을 역전한 사람들에게연락해 자존심을 버리고 조언을 구했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건 유전자의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순리자의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P149

ㅇ『역행자』 확장판을 내면 사람들이 돈 벌려고 환장했다고욕할지도 몰라. 어쩌지? 스트레스받는데 그냥 하지말까?

→인간은 원래 대중에게 공개될 때 스트레스를 받도록 프로그래밍돼 있어. 학교에서 발표할 때도 스트레스를받잖아? 대중에게 망신당하게 되면 평판이 하락할 거라는 두려움에 뇌가 스트레스를 받는 거야. 확장판을 내더라도 어차피 수익 전액 기부에,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거니까 독자들 입장에선 ‘더 좋은 책‘을 얻는 거야. 괜히 평판 유전자 오작동에 휘둘리지 말고 일을 끝마치자. - P150

뇌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1.4킬로그램의 회백질 덩어리, 뇌는 현대 과학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다. 원래 뇌는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멍게는 유충일 때에는 뇌가 있어서 이리저리움직이다가, 한군데 자리 잡고 살게 되면 자기 뇌를 먹어버린다. 이제 움직일 일이 없으므로 뇌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 P152

호모사피엔스가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영장류로가지 쳐지며 진화했듯이, 인간의 뇌 역시 여러 단계의 진화를 거쳤다. 1970년대에 폴 매클린 Paul MacLean이라는 신경과학자는 인간 뇌의 진화를 3단계로 구분하고, 이를 ‘삼위일체의 뇌‘라고 불렀다(3중뇌 가설). 즉 우리 뇌 안에는 포유류의 뇌, 파충류의 뇌, 인간의 뇌가들어 있고, 이 뇌들은 저마다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 3중뇌가설은 칼 세이건이 『에덴의 용』에서 언급하면서 대중화되었다. - P153

진화의 목적은 완벽함이 아니라 생존이다.

진화란 이전의 종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후 자연선택에 의해서 검증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연이 제안하고, 자연이 처분한다"), 어떤 진화도 맨땅에서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즉 진화는 이전 버전 위에 새로 설치된 업데이트나 패치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낡은 버전(레거시 코드)을 내장하고 있어, 이걸 다 지우고 새로 짠 코드처럼 깔끔할 수가 없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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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릴리프웹 Relief Web은 재해 지역 지원 사업에서 세계의 조정자 역할을 한다. 앞선 세대의 재해 피해자들은 그저 상상만하던 일이다. 비용은 4단계 납세자들이 충당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마침내 자연재해에서 스스로를보호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자연재해 사망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 역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 역시 인류의 무지목록에 알려지지 않은 성공 이야기에 추가해야 할 항목이다. - P156

앞으로 뉴스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힌 피해자의 끔찍한 모습을 보았을 때, 이 같은 장기적인 긍정적 추세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언론인이 카메라에 대고 "세계는 단지 더 위험해졌다"고 얘기할 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색의 헬멧을 쓴 해당 지역 구조대원을 보면 이렇게 생각해보라. ‘저들의 부모는 대부분 글을 읽을 줄 모른다. (후략).‘ - P157

거창한 진실과 큰 그림은 그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과감하게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뇌를 식히고 수치를 비교하면서 우리 자원이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공포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위험이 지금은 국제적 공조 덕에 우리에게 가장 적은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 P158

보이지 않는 4000만 대의 비행기

2016년에 총 4000만 대의 상업 항공기가 목적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치명적 사고를 당한 항공기는 10대에 불과하다. 언론이 언급하는 항공기는 당연히 이 10대다. - P159

공포 본능은 워낙 강해서 전 세계가 협력해 위대한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해마다 4000만 대의 무사고 비행기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설사로 죽은 아이들 33만 명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아무렇지도않게 사라지듯이. - P160

전쟁과 갈등

(전략).
오늘날 갈등과 그 갈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그 어느 때보다 적다.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에 살고 있다. 끔찍한 이미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뉴스만 봐서는 믿기 힘든 사실이다. - P161

2011년 3월 11일, 일본 해안 근처 태평양의 약 29km 해저에서 ‘지진단층 파열 현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일본 본토가 약2.5m 동쪽으로 이동했고, 이때 발생한 쓰나미가 1시간 뒤 일본해안을 덮쳐 약 1만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쓰나미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은 장벽을 넘었다. 후쿠시마는 온통 물로 넘쳤고, 전 세계 뉴스는 신체 손상과 방사능 오염의공포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후쿠시마를 탈출했지만 이후 1,600명이더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방사능을 피해 도망쳤지만,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고 보고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1,600명은 탈출 과정 또는 탈출 후에 사망했다. - P163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초기 환경 운동 당시, DDT가 먹이사슬에 축적되어 어류와 조류에도 침투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인기 있는 훌륭한 과학 작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이후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자신이사는 지역에 있는 새의 알껍데기가 점점 얇아진다고 보고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물질을 살포해 벌레를 죽여도 좋다는 생각은, 그리고 이런 행위가 다른 동물이나 인간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신호를 당국이 외면한다는 생각은, 당연히섬뜩했다.
불충분한 규제와 무책임한 회사에 대한 공포가 촉발되었고, 세계적 환경 운동이 탄생했다. - P164

그러나! 대중이 화학물질 오염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거의과대망상 수준에 이르는 부작용이 생겼다. ‘화학물질 공포증chemophobia‘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사정이 이러니 오늘날에도 아동 예방접종, 원자력, DDT 같은주제를 사실에 근거해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불충분한 규제를 기억하다 보니 저절로 불신과 공포가 생겼고, 이 때문에 데이터에 근거한 주장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마비되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나는 사실에 근거해 주장해볼 참이다. - P165

방사성물질 유출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그것을 피해 탈출하다 사망한 노인은 1,000명이 넘는다. DDT는 해롭지만,
DDT가 직접 원인이 되어 사망한 사람이 몇 명인지는 찾을 수 없었다. 1940년대에는 이루어지지 않다가 이후에 실시된 유해성조사를 바탕으로 2002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497쪽분량의 《DDT, DDE, DDD의 독성 분석 Toxicological Profile forDDT, DDE and DDD》을 펴냈다. 2006년에는 세계보건기구가 드디어 모든 과학적 검토를 마치고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마찬가지로DDT를 인간에게 ‘미약하게 해로운 물질로 분류하며, 많은 상황에서 건강에 해로운 점보다 이로운 점이 많다고 보고했다. - P166

화학물질 공포증 탓에 6개월마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나오기도 한다. 흔히 먹는 음식에 합성 화학물질이 극소량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치사량에 이르려면 그 음식을 3년 동안 날마다 화물선 한두 척 분량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도 배웠다는 사람들이 레드 와인을 마시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 문제를 토론한다.
그 물질을 먹고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이 토론의관심사가 못 된다. 공포의 정도는 전적으로 보이지 않는 물질이라는 ‘화학물질‘의 본질에서 나오는 듯싶다.
11 - P167

테러

(전략).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4단계에서는 줄고 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4단계 나라에서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1,439명이었다. 그 전 10년 동안은 4,358 명이었다. 여기에는 최악의 테러인 2001년 9.11 사태로 사망한 2,996명도 포함된다.
그 사건을 제외하면 두 번의 10년 주기 동안 4단계 사망자 수는거의 같은 수준이다.  - P170

 2001년 이후로는 항공기 납치 테러로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사실 4단계 나라에서 테러보다 적은 사망자를 낸 사망 원인은 찾기 어렵다. 지난 20년간 미국 땅에서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3,172명으로, 한 해 평균 159명이다. 같은 기간미국에서 음주로 사망한 사람은 140만 명으로 한 해 평균 6만9,000명에 이른다. 아주 공정한 비교는 아닐 수 있다. - P171

갤럽이 2001년 9월 11일 이후 일주일 동안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사람 51%가 자기 가족도 테러에 희생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14년이 지나도 그 수치는 변함없이 51%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직후와 거의 같은 수준의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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