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서문

K. S. 스타니슬랍스키의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대해


이 책에는 실현되지 못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의 준비 자료를 수록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책을 무대적 형상을 창조하는 과정인 ‘시스템‘의 두 번째 부분으로 할애하려고 했다. - P5

배우가 무대에서 살아 있는 전형적인 형상을 창조하기위해서는 배우 자신의 예술 법칙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주의와 상상력, 진실의 감정, 정서적 기억, 표현력 있는 목소리, 조형성, 리듬감 및 내적 외적인 배우의 기술 등 기타 모든 요소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 P6

스타니슬랍스키는 극장의 창조적 안일함과 관습에 맞서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으며, 그는 평생 행동을 통해 발전하는 인물이었다. - P7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창조적 삶의 여러 시기를 언급하고, 공연과 역할의 창조 방법과 길에 대해 그의 관점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료들은 최종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창조적 메소드영역에 있어서 스타니슬랍스키의 끊임없는 탐구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P7

스타니슬랍스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진보의 가장 무서운 적은 편견이다. 편견은 속도를 늦추게 하고, 발전의 길을 막는다"(전집 중 1권, 617쪽). - P8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배우로서의 성숙기에 무대 창조에 대한 과학적 방법과 방법론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이것은 ‘예술 문학 협회‘와 므하트에서 20년 동안 연기와 연출 작업을 경험한 덕택이었다.  - P9

므하트 설립자들은 사고(思考)가 없고, 오락에 치우친 레퍼토리,
배우 연기에 있어 관습적이고 나쁜 연극성, 거짓 파토스, 배우의 보여주기식 연기 앙상블을 망치는 스타 시스템에 맞서 싸웠다. - P9

19세기 러시아 극장에는 희곡에 대한 작업에서도 그러한 방식이 존재했다. "극단에서 희곡을 낭독한 후 배우들에게 역할을 배분하고서 텍스트 대본을 낭독하게 했다. 낭독 중 공연 참여자들은 이따금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충분한 시간이 없어배우에게 작가의 작품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남겨두었다"라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당시 무대 작업 메소드의 특징을 써놓고 있다.
그는 연출가와 배우들의 만남을 연습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 P10

공연 준비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가 써놓은 이러한 장면들은 당시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연습 작업 과정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당연히 그러한 메소드로는 희곡 및 역할의 내적인 내용의 발견과 배우의 앙상블 형성, 무대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완성도를 획득하지 못했다.  - P11

창조 작업 활동의 초기에 스타니슬랍스키와 네미로비치단첸코는 희곡의 내적·사상적 본질을 드러내며 연출가가 배우들과 작업에 착수하기 훨씬 이전부터 외적인 무대적 구현 형식의 일반적인 특징을 미리 결정짓고서, 공연의 총보를 면밀하게 설계하는 방식을 폭넓게 사용했다. - P12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가로서의 상상력은 정말 의외의 대담한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났는데, 이는 극한의 삶의 진정성으로 관객을 감동시켜 배우가 무대에서 묘사된 삶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P12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종종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측면에 빠졌는데, 이는 오래된 극장의 관습적이고 루틴적인 방법에 대한 날카롭고 열정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P13

ㅇㄴ내안 요구가 매우 높아졌다.
스타니슬랍스키는 1902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대중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일부 독백과 멋진 장면이나 멋진 작품에서 어떤 역할이 잘 연기하는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중은 감정적으로 감각과 섬세한 이해를 통해 지적인 사람들이 전달하는 문학 작품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1902년 수첩에서, 므하트 박물관, K. S., No. 757, p. 25). - P13

무대적 방법을 개선하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끊임없는 열망은 그에게 개인적인 창조 경험과 동시대 및 이전 시대 연극인의 모든 경험을 깊이 이해하고 일반화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 P14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첫 10년의 시기가 끝날 무렵 배우 예술에 대한스타니슬랍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활동이 다소 조화로운 구조를 형성했다고 한다. 1908년 10월 14일 극장 기념일 보고서에서 그는 예술의 새로운원칙을 발견했는데, "이는 아마도 조화로운 체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므하트의 지난 10년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기념해야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 P15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첫 10년의 시기가 끝날 무렵 배우 예술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활동이 다소 조화로운 구조를 형성했다고 한다. - P15

새로운 탐구의 시각을 통해 스타니슬랍스키는 사전에 연출가의 총보를구성했던 이전 방법을 비난했는데, 이는 작업의 첫 단계에서부터 창조 작업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외적 형식과 역할의 내적이고 심리적 그림을 배우들로 하여금 준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 P16

하지만 므하트의 창조적 삶의 첫 단계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적 전제주의는 어느 정도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당시젊은 극단원들은 엄청난 창조적 과제를 독립적으로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P16

새로운 창조적 원칙을 가장 심도 있게 실행한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첫 공연은 <시골에서 한 달> (1909)이었다. 이때부터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극단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점차 실제로 연극 작업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 P18

그러나 ‘시스템‘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배우 창조 작업에 있어 스타니슬랍스키의 새로운 견해에 대한극단원들의 인식 부족과 창조적 메소드인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대한 연구 부족에 있었다. - P18

명확히 확립되고 검증된 무대 작업의 실제적인 메소드의 부재는 삶으로서의 ‘시스템‘의 도입을 방해했고, 스타니슬랍스키가 이끈 혁신에 대한 ‘모스크바 예술극장‘ 극단원의 냉담함을 불러일으켰다. - P19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원고에서 무대적 형상을 만드는 창조 과정의 몇 가지 순간을 강조하고 있다.  - P20

자료의 축적과 자료의 이론적 이해 및 일반화의 먼 길을 거친 스타니슬랍스키는 사전 초안과 대략적인 스케치로부터 <지혜로부터 슬픔> 재료를바탕으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대한 대대적인 서술로 전환했다. - P22

스타니슬랍스키는 지혜로부터 슬픔> 재료를 바탕으로 한 "역할에 대한작업" 원고를 1916년부터 1920년까지 몇 년간에 걸쳐 준비했다. 초안 성격을 띠는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큰 관심을 받았다. 이것은 혁명 이전 시대에 확립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과정으로 스타니슬랍스키의 관점을 가장 완벽히 설명하고 있다. - P23

메소드를 제시한 최초 버전과는 달리 여기서는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과정을 인식, 체험, 구현, 영향이라는 네 개의 시기로 명확히 구분했다. 각 시기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역할의 배우의 접근에 대한 일련의 일관된 단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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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혁명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생성형 AI를통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풀수있을 거라고 기대된다는 것입니다. - P83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공장자동화는 되는데 데스크워크 자동화는 안 될까?" 이유가 있습니다.  - P84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하루를 분 단위로 분석했습니다. 아침9시부터 저녁 5시까지 8시간동안 뭘 하는지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실제로 사람들이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됐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일을 위한 일 Work for work (WAW), 그러니까 ‘잡일을 하는데 낭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P84

문제는 대부분의 인간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걸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 P86

인간과 컴퓨터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의 가장 큰 문제가바로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뭐냐하면, 인간이 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 명령어를 기억할 필요는 없더라도, 그 명령어가 있는 메뉴까지 가는 길을 찾기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P87

덕분에 GUI의 시대가 끝나고CUI Conversational User Interface, 즉 대화형 인터페이스 시대가 시작됐다고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P88

지브리 열풍,
어떤 점에서 새로웠을까?

최근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회자된 큰 발전은 2025년 3월 26일 오픈 AI가 공개한 이미지 제너레이터입니다. 전 세계 인터넷이 난리가 났습니다. - P88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림 그리는 AI는 이미 2023년즈음에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이미지 제네레이터가 달리DALLE나 미드저니 Midjourney와 뭐가 다를까요?  - P88

(전략). 그래서 오픈 AI는 완전히 다른 방법, 오토리그레시브Autoregressive 방법을 썼습니다. - P90

딥마인드가 2024년 12월 16일에 공개한 비오2 veO2는 프롬프트로 영상을 만들어 줍니다. "고글 낀 강아지가 수영하는 장면" 하면 그대로 잘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2025년 5월 21일 공개된 비오는 이제 영상만을 넘어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배경 소리까지 만들어줄수있습니다. - P92

현재 유튜브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틱톡입니다. 소비자들이무료로 콘텐츠를 올리고, AI가 콘텐츠를 관리하니까 훨씬 효율적입니다. 대놓고 말해서 유튜브는 경쟁 자체가 안 됩니다.  - P93

5년, 10년 후, 길게 봐도 20년 후에 AGI가 등장하면 사람들이 여유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래사회에서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가 반도체보다 더 큰 비즈니스가 될 겁니다. 도서를 포함한 콘텐츠 비즈니스이지요. - P94

AI의 미래와
제반 기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트랜스포머 모델은 비효율적이어서 GPU 없이는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독점하다 보니 생산 능력과 수요가 맞물리지 않습니다.  - P95

이게 엔비디아의 두 번째 리스크입니다. 생산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니 기다리다 지친 기업들이 차라리 우리가 만들자‘라고 나설 수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구글입니다. - P96

에릭 슈미트 전구글 CEO는 2024년 10월에 한 인터뷰에서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솔직해지자. 기후변화는 어차피 막을수 없다." - P96

슈미트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AGI 개발을 안하면 될까?" 그러곤 답했습니다. "구글이 안 하면 오픈 AI가 하고, 미국이 안하면 중국이 할 거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모두가뛰고, 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슈미트의 제안은 "AGI를 더 빨리 만들어서 기후 문제를 인공지능에게 맡기자"라는 것입니다. - P97

오픈 AI CEO 샘 올트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년 안에전 세계 소비자들이 인터넷처럼 생성형 AI를 매일 쓸 것이다." - P97

. 2024년에는 샘 올트먼이 한국에 와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협상하기도 했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탈락했습니다. 대신 대만의 TSMC가 선택됐지요 - P98

(전략).
하지만 이제 세계화는 끝났습니다. 그 대신 시작되는 것은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냉철하게 보면 세상이 다시 정상화‘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절대로 이게 좋은 변화라는 의미에서 ‘정상‘이라고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 P99

세계화 시대에는 CPU, GPU, 메모리를 여러 곳에서 나눠 만드는게 효율적이었지만, 이제는 한 나라, 한 회사가 전부 만드는게 합리적입니다. 이를 2.5D, 3D 로드맵이라고 합니다. - P100

2025년 1월 백악관에서 오픈 AI, 소프트뱅크, 오라클, 트럼프 대통령이 AGI를 위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논의했습니다. 최대 700조원을 투자해 오클라호마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데이터 센터를 짓는 계획입니다. - P100

AI 시대의 도래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기존의 지정학적 질서를 재편하는 인류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 P101

멀티모달 AI와
형태 전쟁

(전략).
AI가 문장만 처리할 때는 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GPU 수십만 개가 확보되고, 멀티모달 학습이 가능해지면서 기계가 세상을 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이미 대부 - P103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5~6년 후 AI가 세상을 알아보며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소비자가 세상을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뭘 통해서 보여줄까요? 지금은 휴대폰밖에 없습니다. - P104

인간은 팔이 두 개뿐인 영장류입니다. 팔자원의 50%가 계속 휴대폰에 묶여 있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휴대폰은 주머니나 가방에 있어서 세상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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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푸스 데이의 새로운 미국 본사이자 회담 센터인 머리 힐은 뉴욕의렉싱턴 가 243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1만 2천 평방미터짜리 빌딩은 4천7백만 달러 이상이라는 가격이 매겨져 있고, 붉은 벽돌과 인디애나석회암으로 치장되어 있다. - P48

이른 저녁, 마누엘 아링가로사 주교는 자신의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전통적인 검정 사제복을 입고 작은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허리에 자줏빛 띠를 둘렀을 테지만, 오늘 밤은 일반인들과 섞여서 여행할 참이었다. - P48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은 아링가로사는 창문을 통해 어두운 대서양을 내려다보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주교는 자기만의 별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전투는 승리할 것이다.‘ - P49

현재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4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므로 오푸스 데이의 힘은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오푸스 데이의 건물과 교육센터심지어 대학교까지 찾아볼 수 있다. 오푸스 데이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재정도 가장 안정된 가톨릭 교파였다. - P49

"많은 사람들이 오푸스 데이를 뇌를 세척하는 종교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초보수적인 기독교의 비밀 분파라고도 합니다. 어느 쪽입니까?"
기자들이 가끔 묻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주교는 끈기 있게 대답했다.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톨릭 교리를 열심히 따르는 일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 P50

(전략).
슬프게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오푸스 데이의 감시 네트워크(ODAN)라고 알려진 새로운 감시단체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볼수 있었다. 이 단체의 인기 웹사이트인 www.odan.org는 오푸스 데이구회원들의 증언을 빌려, 오푸스 데이 가입을 경고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오푸스 데이를 ‘신의 마피아혹은 ‘그리스도의 제사‘로 치부하고 있다. - P51

비행기가 포르투갈의 해안을 통과할 때, 아링가로사의 사제복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 전화기가 진동했다. (중략).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번호를 알고 있고, 그 사람이 이 휴대 전화기를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흥분된 감정으로 주교는 조용히 대답했다.
"네?"
"사일래스가 쐐기돌의 행방을 알아냈소. 돌은 파리에 있소. 생 쉴피스 교회 안이오." - P52

8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일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알비노는 물이 담긴 작은 대야 앞에 서 있었다. 등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문질러, 붉은 피가 물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P52

‘예수님의 메시지는 평화… 비폭력...... 사랑.
이것은 사일래스가 처음으로 받은 가르침이다. 그는 이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적들이 이 말을파괴하려 하고 있다.
‘힘으로 신을 위협하는 자들은 힘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확고부동한 힘과 말이다.‘ - P53

6

보안 철문을 기어 나온 로버트 랭던은 대화랑의 입구 바로 앞에 서있었다. 랭던은 길고 깊은 협곡 같은 화랑 입구를 응시했다.  - P54

"바닥에 있는 저것・・・・・・ 카라바조의 작품입니까?"
쳐다보지도 않고 파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략).
"도대체 저 그림이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겁니까?"
파슈는 움직이지 않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곳은 범죄 현장입니다. 랭던 씨.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저 캔버스는 관장이 벽에서 잡아 뜯어낸 것입니다. 관장은 그렇게 해서 보안 시스템이 움직이게 한 거죠." - P55

파는 그들이 막 기어서 통과한 철문의 쇠창살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오렌지색 딱지가 매달려 있었다.
"PTS 팀이 철문에서 탄흔 잔재를 찾아냈습니다. 범인은 쇠창살 사이로 총을 쐈고, 소니에르 씨는 여기서 홀로 죽어갔습니다."
랭던은 소니에르의 시신이 담긴 사진을 떠올렸다.
‘경찰은 소니에르 스스로 했다고 하는데………….‘ - P55

랭던과 파슈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자크 소니에르 씨가 이렇게 멀리까지 갔습니까?"
"소니에르 씨는 위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서서히 죽어갔을 겁니다.
십오 분에서 이십 분 정도 걸렸겠지요. 분명히 소니에르 씨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랭던은 섬뜩해서 돌아보았다.
"보안요원이 도착하는 데 십오 분이나 걸렸습니까?"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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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경제학자들의 입장


경제 성장과 인구 조절 문제나는 외면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약함과 실망의 눈물이었다. 여자는 왜 첫아이로 딸을 원할까?
그들은 내게서 아이를 데려갔다. 칼리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나중에 많이 낳을 수 있어. 네겐 시간이 많아"
-카밀라 마르간다야. 『체 안의 꿀 Nectar in a Sieve』에서


요즈음 서점은 아시아의 부상에 관해 상세하게 다룬 책들로 가득하다.  - P60

아시아의 경제호황이 과대 선전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경제적 성과라는 수준에서 볼 때 이는 전적으로 사실이다. 한 세대 만에가난한 농민에서 도시인에 가까운 소비자로 변모한 쑤이닝 주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륙 전체에서 빈곤율이 낮아졌다.¹ - P60

경제성장뿐 아니라 많은 아시아인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평생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지난 30년 동안 목격했다. 베트남,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네팔은 모두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 P61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문화며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극심하고 갑작스러운 생존 경쟁에 대해 불평하지만 한편으로 서울의 쇼핑몰은 일중독자들의 편의를위해 새벽 4시에 문을 연다. 중국은 산업혁명 때의 서구를 능가하지는 못하더라도 비견될 정도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 P61

개발은 어느 정도까지는 여성의 지위를 사회학 이론이 예상하는것만큼 올려놓았다. - P61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정치적 권리가 향상된 시기에 전체 인구에서 여성과 여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했다.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이 의회에서 여성의 정당한 몫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성은 더는 인도 인구의 50퍼센트를 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 P62

고등교육을 받은 부부가 교육 수준이 낮은 부부보다 여아낙태를더 많이 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크리스토프 길모토 같은 외국인만이 아니었다. 인도의 학자들에게도 이런 모순은 충격을 주었다. - P63

1970년대 말까지 인구학을 이끈 맬서스 학파의 예측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 조절과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낳았고 그중 많은 프로그램에 서구의 자금이 지원되었다. (중략). 과잉 인구예방은 지구 환경뿐 아니라 성장에도 바람직하다. - P63

규제가 없는 인구 증가가 개발도상국의 자원에 무리를 주고 빈곤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의 원조국들은 내심 가난보다는 세계의 힘의 균형과 특히 빈곤의 결과 중 하나라고 믿었던 공산주의의 확장을 더 많이 걱정했다. - P64

1952년 록펠러가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에서 열린 인구문제 관련 회의에 일단의 미국 유력 인사들을 모으면서 인구 조절 운동의힘이 합쳐졌다.⁹ 가난한 개발도상국에 인구 조절책을 전달할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윌리엄스버그인Williamsburg Inn에 모든 사람이 모이자 경제학자 이저도어 루빈이 자신들의 공통된 두려움을 표현했다. - P65

때때로 서구의 원조국들은 인구 조절 목표를 채택했는지 여부에따라 다른 형태의 원조를 함으로써 부와 소가족 간의 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만들기도 했다.  - P66

를 위한 식량지원법 Food for Peace Act‘에 서명했다.13) 1969년에 세계은행 총재이자 전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자문위원회에 "(전략). 의료 시설은 일반적으로 출생률 감소와 그로 말미암은 인구 폭발 방지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¹⁴ - P66

관심은 곧 광적인 상태로 고조되었다. - P66

하지만 이들이 생각해낸 일부 전략은 모욕에 가까웠다. 1967년에 디즈니는 인구협회를 위해 <가족계획 Family Planning〉이라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후략).¹⁸ 영화에서 현대식 기기들로 둘러싸인 부유한 소가족의 가장으로 묘사되는 도널드 덕은 "가족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곤 없이 병약하고 불행했을 것"이라고 말한다.¹⁹ - P67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영향 아래 놓인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이 가족계획을 경제개발 전략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출생률 목표를 명시했다.²⁰ - P67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일 때 처음 가족계획을 추진했다. 나중에 독재자 리콴유는 세 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부부에게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주택수당을 지급하지 않게 했으며 넷째와 다섯째 자녀 출산을 "반사회적 행위"로 여겼다.²¹ - P67

서구의 기관들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인구 조절책은한 자녀 정책으로 절정에 달했다. 1966년 시작된 중국의 문화혁명은 세계와 고립된 채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고립된 국가였음에도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고 인구 조절 지지자들은 중국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 P68

사실 중국공산당에게 엄격한 인구 정책은 갑작스러운 이념 전환을 뜻했다. 맬서스는 한때 반공산주의자로 악마 취급을 받았고 1974년만 해도 중국은 인구 위기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거부하기 위해 지어낸 ‘허위 경보‘라고 항의했다.²² - P68

 한 자녀 정책의 검토에 참여했던 상하이 사회과학원의 경제학자랑중탕은 "선진국들은 로마클럽의 견해를 개발도상국에 확산시켰"다고 말했다.²⁴ - P69

중국 관료들은 출생률을 낮추는 것이 1인당 국내총생산을 늘리는 투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복잡하지만 그 성과를 나누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것은 달성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³³ - P72

1980년 9월 25일에 발표될 때부터 한 자녀 정책은 중국이 선진국대열에 합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설계되었다. 어떤 면에서 그 의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 P72

1950년대 일부 분석가들의 가정과 달리 총출생률은 무한정 계속상승하지 않았다. 한 국가의 사망률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국가가 개발을 향해 나아간다면 어느 지점에서 출생률이 사망률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 P73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 변형된 형태가 구소련 공화국들과 동유럽일부에서 나타났다. 철의 장막이 내려지고 동유럽권 국가들이 힘들게 경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아이를덜 낳거나 결혼을 미루었다. - P74

경제개발은 그 결과로 탄생한 도시화, 교육, 새로운 직업 기회와더불어 부모들의 성차별을 약화시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발에 출생물 급락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각각의 출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부모들이 여아 태아를 낙태할 가능성은 증가했다. - P74

3장  경제학자들의 입장

1. India: Achieving Rapid and Inclusive Growth, Sustainable Development, http://tinyurl.com/2g2fjgp.

9. Matthew Connelly, "Population Control in India: Prologue to the Emergency Period",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December 2006, 633

14. Connelly, Fatal Misconception, 263.

18. Connelly, Fatal Misconception, 264.

19. Goldberg, Means of Reproduction, 71,

20. Seungsook Moon, Militarized Modernity and Gendered Citizenship in South Korea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5), 81.

21. Connelly, Fatal Misconception, 181, 265.

22. John Shields Aird, Slaughter of the Innocents: Coercive Birth Control in China (Washington,
D.C. AEI Press, 1990), 6.


24. Hvistendahl, "Has China Outgrown", 1458.


33. Hvistendahl, "Of Population Projections".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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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을 뜨니 콘크리트 바닥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벌거숭이였다. 양팔이 욱신거렸지만, 움직이려고 하자 차가운 금속이 팔목을 압박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은 작고 좁다란 창고였다. - P121

P5는 나의 현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시간은 정확히 알고 있다고 P5는 주장했다. 1월 5일, 15시 21분이다. - P121

뒤늦게 머릿속에 들어 있는 <BDI> 본사 건물의 내부 배치도에서 이 방과 치수가 일치하는 방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결과, 각 층마다 이런 방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P122

좋다. 난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일까?
<BDI>가 광고 문구 그대로 생물의학 분야의 위탁 연구기관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지 유괴 행위에 가담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는 종류의 연구기관이다.  - P122

이런 가설이 점점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이 점점 길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케이시의 증언. 이 건물 지하실의 구조. 특별히 고안된 감옥을 에워싼벽들 사이로 로라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 이런 일들은 단 하나의 새로운 가설로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 P123

로라는 힐게만 병원에서 정말로 탈출했던 것이다. 자력으로 두번씩이나. 바로 그 탓에 유괴당했던 것이다. - P123

만약 로라가 통상적인경비 대상이 아니라 어떤 실험의 피험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면, 그녀가 전혀 다른 시스템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 P123

모두 완벽하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유일한 문제는, 나 자신이 그런 가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로라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잠긴 방에서 아무런 도구도 없이 탈출할 수 있었단 말인가? - P124

사내는 문간에 서서 총으로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옷을 입어."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잘난 척하지도 않고, 호전적이지도 않다. - P125

느닷없이 여자 목소리가 말한다.
"누가 당신을 고용했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몰라." - P126

"사실대로 얘기하고 있어. 난 의뢰인의 이름을 몰라. 익명의 인물에게 고용됐으니까"
"그리고 그 익명 뒤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건 내가 의뢰받은 일이 아냐" - P127

동료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보았자 금세 들통이 날 것이 뻔하다. 위장되고 완벽하게 방호가 된 소프트웨어를 공공 네트워크상에서 돌리고 있으며, 내가 실종될 경우 모든 정보를 뉴홍콩 경찰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해 놓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 P128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는 뭘 알고 있지?"
"광고에 나와 있는 것들밖에는 생물학 분야의 위탁 연구"
"그럼 우리가 왜 로라 앤드루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어."
"하지만 가설은 세웠을 거 아냐." - P128

내가 진실에 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증명해 줄 터무니없는 가설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지난 여드레에 걸쳐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모든 가설들을, 아무리 불완전한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되풀이해 말했다. <X>사와 선천성 장애 소송과 탈출의 명인 로라에 관한 가설은 제외하고 말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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