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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콘크리트 바닥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벌거숭이였다. 양팔이 욱신거렸지만, 움직이려고 하자 차가운 금속이 팔목을 압박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은 작고 좁다란 창고였다. - P121

P5는 나의 현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시간은 정확히 알고 있다고 P5는 주장했다. 1월 5일, 15시 21분이다. - P121

뒤늦게 머릿속에 들어 있는 <BDI> 본사 건물의 내부 배치도에서 이 방과 치수가 일치하는 방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결과, 각 층마다 이런 방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P122

좋다. 난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일까?
<BDI>가 광고 문구 그대로 생물의학 분야의 위탁 연구기관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지 유괴 행위에 가담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는 종류의 연구기관이다.  - P122

이런 가설이 점점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이 점점 길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케이시의 증언. 이 건물 지하실의 구조. 특별히 고안된 감옥을 에워싼벽들 사이로 로라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 이런 일들은 단 하나의 새로운 가설로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 P123

로라는 힐게만 병원에서 정말로 탈출했던 것이다. 자력으로 두번씩이나. 바로 그 탓에 유괴당했던 것이다. - P123

만약 로라가 통상적인경비 대상이 아니라 어떤 실험의 피험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면, 그녀가 전혀 다른 시스템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 P123

모두 완벽하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유일한 문제는, 나 자신이 그런 가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로라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잠긴 방에서 아무런 도구도 없이 탈출할 수 있었단 말인가? - P124

사내는 문간에 서서 총으로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옷을 입어."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잘난 척하지도 않고, 호전적이지도 않다. - P125

느닷없이 여자 목소리가 말한다.
"누가 당신을 고용했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몰라." - P126

"사실대로 얘기하고 있어. 난 의뢰인의 이름을 몰라. 익명의 인물에게 고용됐으니까"
"그리고 그 익명 뒤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건 내가 의뢰받은 일이 아냐" - P127

동료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보았자 금세 들통이 날 것이 뻔하다. 위장되고 완벽하게 방호가 된 소프트웨어를 공공 네트워크상에서 돌리고 있으며, 내가 실종될 경우 모든 정보를 뉴홍콩 경찰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해 놓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 P128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는 뭘 알고 있지?"
"광고에 나와 있는 것들밖에는 생물학 분야의 위탁 연구"
"그럼 우리가 왜 로라 앤드루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어."
"하지만 가설은 세웠을 거 아냐." - P128

내가 진실에 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증명해 줄 터무니없는 가설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지난 여드레에 걸쳐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모든 가설들을, 아무리 불완전한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되풀이해 말했다. <X>사와 선천성 장애 소송과 탈출의 명인 로라에 관한 가설은 제외하고 말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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