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역할에 대한 작업


〔<지혜로부터 슬픔>〕
((1916-1920))


1장

인식의 시기¹


※역할에 대한 작업은 크게 네 개의 시기로 이루어진다.
인식, 체험, 구현, 상호 행동. - P85

1. (역할과의 첫 만남


(전략).
역할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첫인상은 순결하고 신선하다. - P85

첫인상은 씨앗이다. 나중에 어떠한 방향 전환이나 변화가 있더라도 이후의 작업 기간 중, 배우는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첫인상의 씻기지 않는 흔적을 가장 사랑하고, 그 첫인상을 드러내는데, 만일 계속해서 발전시킬 가능성을 앗아가면 배우들은 그 첫인상을 그리워한다. - P86

나는 지금 이 책의 서두에서 역할과의 첫 만남에 어떻게 착수하는지를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배우들의 예술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용어들을 우리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86

선입견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강요된 의견을 통해 만들어진다. 작품과역할에 대한 자신의 관계가 구체적인 느낌이나 생각으로 정립되지 않은 초기에는 타인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 것은 위험하고, 그것이 옳지 않은 의견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 P87

만일 배우가 타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경우, 처음에는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해주는 것이 좋은데, 왜냐하면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요하는 위험부담 없이 다른 이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배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 P87

배우의 언어로 볼 때 인식한다는 것이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작품과 역할을 처음으로 대면할 때 배우가 이성보다는 창조적 감정에 더 많이 의지하도록 해야 한다. - P88

처음으로 작품을 전달하는 낭독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낭독자에게도 아직까지는 몇 가지 실제적인 조언밖에 할 수 없다. (중략). 낭독자는 텍스트에 전반적으로 저절로 드러나 있는 방법들을 통해작품의 근본적인 사상과 내적 행동의 주요 발전 라인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 P89

배우가 첫 낭독에서 즉각 모든 본질과 이성, 감정으로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이처럼 행복하지만 드문 경우가 발생한다면, 모든 법칙, 메소드, 시스템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의 창조적 본성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이 낫다. - P90

어째서 어떤 지점들은 우리 안에서 즉시 소생하여 감정으로 데워지는데, 어떤 지점들은 오직 지적인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일까? - P90

작품과의 대면이 항상 낭독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흔히 그것은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어떤 작품들은 그 정신적 본질이 매우 깊게 숨겨져 있어 거기까지 파 내려가야 한다. - P91

(전략). 이러한 작품들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한다. 반복되는 각각의 낭독에서도 첫 낭독 때 언급했던 내용들을 따라야 한다.⁴ (중략).
그러나 첫인상은 올바르지 않거나 잘못된 것일 수 있다. - P91

안타깝게도, 모든 배우들이 첫인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배우들이 작품과의 첫 만남을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P92

첫 낭독에서 도저히 작품이 이해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올바르지 않고 거짓되게 이해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 P92

2. 분석


인식의 방대한 준비 기간의 두 번째 순간을 나는 ‘분석 과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분석이란 작품과의 만남의 연장이다.
분석은 인식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부분을 연구하여 전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 P93

(전략). 하지만 예술에서는, 분석 그 자체로 그리고 분석을 위해 사용된 이성적 분석은 해롭다. - P93

분석은 인식과 같은 의미이지만, ‘우리의 언어로 이해한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다. - P93

우리의 창조와 인식적 분석의 대부분은 직관적이다. 첫 낭독 이후의 생생하고 순결한 인상은 다른 무엇보다 더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다. - P94

인식적 분석은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중략). 다시 말해, 의식적 준비 작업을 통해 무의식 직감적인 창조가 탄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 P95

몰입하면서 인식하고, 인식하면서 더 강하게 몰입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불러일으키고 지탱하는 것이다. 분석은 인식에 필수적이고, 인식은배우를 몰입하게 하는 자극제를 찾는 데 필수적이며, 배우의 몰입은 직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필수적이고 직감은 창조적 과정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 분석은 창조에 필수적이다 - P95

훌륭한 작품에는 배우가 몰입할 수 있는 그러한 지점들이 많이 있다. 배우는 형식의 아름다움에도, 편지의 스타일에도, 글의 형식에도, 운문의 운율에도, 내적 형상에도, 외모에도, 감정의 깊이에도 생각에도, 외적 줄거리에도, 기타 다른 것에도 몰입할 수 있다. - P96

감정이 침묵한다면, 감정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이자 조언자인 이성을 찾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성이 자신의 부차적인,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 P97

이성의 분석이 더 디테일하고, 다면적이고, 깊을수록 감정의 창조적인 몰입과 무의식적인 창조를 위한 정신적 재료에 필요한 자극제를 찾을 희망과 기회가 많아진다. - P98

(전략).
따라서 인식적 분석의 라인은 작가가 말 텍스트로 전달한,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작품의 외적 형태로부터 대부분이 오직 무의식으로만 느낄 수 있는 작가가 전달하고 있고 보이지 않게 자신의 작품에 깔아둔 작품의 정신적 실체로 향하게 된다. - P100

작품과 역할의 삶의 외적 상황들 중 연구와 이해가 가장 용이한 것은 사실의 평면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분석과 텍스트 발췌가 시작되어야 한다. - P100

똑같거나 매우 비슷한 일이 어떤 새로운 작품을 만나든 어느 정도 반복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들의 외적 삶을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 P102

사실들의 삶의 평면에도 미래에 대한, 그리고 여러분이 기다리고, 원하고, 만드는 사건들에 대한 꿈이 있다. 어떤 것들은 결혼을 기다리게 하고, 다른 것들은 죽음을, 또 다른 것들은 출발을, 또 다른 것들은 도착을 기다리게 하는 등이다.¹⁵ - P105

사실 자체가 삶의 방식, 조건, 일상에 의해 생산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외적 사실들로부터 일상의 평면으로 더 깊게 침투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 P105

하지만 생활상은 그것이 인간 정신의 삶과 진실된 열정을 설명하고 밝하는 정도로만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신의 삶은 생활상에 영향을 미치고, 생활상은 정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P106

문학적 분석.²⁰ 문체적 라인, 즉 그리보예도프 언어의 아름다움, 운문의 편함, 운율의 예리함, 단어의 정확성, 기발함을 평가한다. - P108

이 모든 평면을 말 텍스트를 통해 연구할 수는 있지만, 그저 대략적으로만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작가가 무대장치, 대소도구, 방의 위치건축, 조명, 그룹화, 제스처, 행동, 행동양식에 대해 말하는 것을 탐구하고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 P108

미학적 평면, 미술적 측면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막의 공간(intérieur-실내장식)(배경-옮긴이),
플랜(건축의 절반)은 배우 행동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뒤에 라파엘로의 장식이 걸려 있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모형도는 나를 무대 전면, 즉 프롬프터 옆에 서 있게 하고, 이것은 배우에게 가장 힘든 것이다(살비니 7미터, 두세 4미터).²² - P109

3. 외적 상황들의 생성과 소생


기나긴 준비 기간의 세 번째 순간을 나는 외적 상황의 생성과 소생의 과정이라고 부를 것이다. 인식의 두 번째 단계에서, 즉 분석 단계에서 내가사실들의 존재 자체만을 확인했다면, 이제 외적 상황의 생성과 소생 과정에서는 사실 자체를 낳았거나, 사실 안에 숨겨져 있는 그 본질을 인식해야한다. - P110

이성을 통해 얻은 건조한 재료를 소생시키는 일은 우리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자 중 하나, 즉 배우의 상상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새로운 창조 순간부터는 작업이 이성의 영역에서 상상력의 영역으로, 배우의 꿈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 P111

배우는 꿈을 사랑해야 하고 꿈을 꿀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창조 능력 중 하나이다. 꿈, 즉 상상력 없는 창조는 있을 수 없다. - P112

창조적 상상 작업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배우의 꿈의 과정은 어떻게 흐르는 걸까?
다양한 형태의 배우의 꿈과 상상의 삶이 존재한다. 우선 상상 속에서는 내면의 시선을 통해 모든 시각적 이미지들, 즉 생물, 인간의 얼굴, 그들의외모, 풍경, 사물들의 물질적 세계, 물건들, 배경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내면의 귀로 모든 소리들, 즉 멜로디, 목소리, 억양 등을 들을 수 있다. - P112

실제로 초반에 상상력은 그 사람들 자체가 아닌, 그들의 외모가 아닌, 그저 그들의 차림새와 머리 모양만을 보여준다. 마음의 눈으로 얼굴 없는 그 옷들이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P115

따라서 내 상상의 삶에서 나의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생겼다. 이건 좋은 징조이다. 물론 공감은 감정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감정에 가까워진다. - P118

자기 꿈의 관객이 될 수 있지만, 꿈의 등장인물이 될 수도 있다. 즉 상상으로 만들어진 상황, 조건, 삶의 구조, 배경, 사물 등의 한가운데 내가 나타나서, 이제는 외부 관객으로서의 나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위치하는 것들만을 보는 것이다. - P119

4. 내적 상황의 생성〔과 소생〕



(전략). 정신적 삶의 내적상황을 마음속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는 감정적으로 그 삶을 분석하고, 인식하고, 소생시킨다. 인식의 이 과정에서 창조적 재료의 분석 및 소생 과정전체가 지속된다. - P120

이것으로 충분하다! 무엇하러 스스로를 속이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상상의 창조도 아니고, 생생한 꿈의 삶도 아니고, 진정한 존재의 느낌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자기기만, 자기 자신과 자기의 상상에 대한 강요이다. - P121

나는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하는데, 일단은 오직 무생물을 대상으로 한다. 상상 속에서 여러 방 안에 가구와 물건들을 완전히 재배치하고, 물건들을 옮기고, 그것들을 문지르고 살펴본다. 상상 속의 이 모든 시도들이 존재(나는 있다)의 느낌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122

내가 살아 있는 것들, 대상들, 그것들과의 만남을 상상으로 더 많이 훈련하고, 친밀감과 사실적인 현실성을 느낄수록, 새로운 이 중요한 조건 속에서 내 확신은 더 커져갔다. - P123

습득한 기술 덕분에 나는 내가 행하는 모든 것, 내 상상의 삶 속 나의 있음, 존재를 매우 빠르게 믿었다. - P125

나는 내면의 귀로 그 노래를 듣고 마치 살아 있는 대상의 존재, 즉 신체적으로 그와 가까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살아 있는 대상을 느끼는 것은 그것의 몸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정신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 P125

나는 내 의지 또는 감정의 광선들, 즉 내 일부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그에게서 그의 정신의 일부를 취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광선 방출과 광선 흡수 훈련²⁷을 한다. - P126

우리의 상상 속 세계에서는 초대받지 않아도 누구든 찾아갈 수 있다. 아무도 기분 나빠 하지 않고 다들 맞이해 준다. - P127

상상 속에서 집밖으로 나가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더 이상 그 어떤 것으로도 배우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 (중략), 안타깝게도 새로운 만남은 내 주의를 오래 끌지 못했다. (중략).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다. 이 모든 만남과 교제는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대상의 신체적 가까움과 느낌을 위해 훈련된 것이었다.  - P129

상상 속 행동과 다가오는 사건들에 대한 투쟁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나는 내 안에 기적적인 전이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³⁰
기적적인 전이의 순간 내적인 상황의 진정한 값어치를 이해할 것이다. 그것들은 외적 • 내적 삶의 사건들에 대한 개인적 관계와 다른 사람들과의상호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 P133

1부

역할에 대한 작업
〔<지혜로부터 슬픔>〕
((1916-1920))
므하트 박물관의 아카이브에는 저자의 원래 구상에 따라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이라는 책을 위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원고 노트 열한 개가 보관되어 있다. ‘표현의 기교
‘재현의 예술‘, ‘체험의 예술‘이라는 제목의 처음 세 개 노트(므하트 박물관, K. S., No.705~707, 이것은 므하트 박물관의 스타니슬랍스키 문학 아카이브에 보관된 자료에 대한추가 참조를 위해 문서의 일련번호만 표시함)는 책의 이론적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있어 일종의 소개에 해당된다.
노트 TV에서 시작하여 XI(No. 571~580)로 끝나는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스타니슬랍스키에 의해 ‘실제 작업으로 명명되었다. 그것은 재료인 <지혜로부터 슬픔>을 통해 역할에대한 배우 작업의 창조적 과정 분석에 해당된다.



1. 원고 No. 679~682, 684를 수록한 것이다.

(중략).

4 스타니슬랍스키는 H. 입센과 M. 마테를링크의 많은 희곡을 복잡하고 깊이 숨겨진 심리적 내용을 가진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중략).

15 여기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희극 지혜로부터 슬픔의 등장인물들의 미래를 특징짓는, 더 정확하게는 미래의 전망을 작품의 사실 리스트로 제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트가 원고에 없기 때문에 "그리보예도프 자신은 이에 대해 무엇을 말할까?"와 관련된 문구는 우리가 생략했다.
『지혜로부터 슬픔』 텍스트에는 배우가 필히 알아야 할 희극 주인공들의 미래에 대한 많은 진술이 있다. 예를 들어, 몰찰린과 헤어지고 난 뒤 소피아는 어떻든 지루한 하루를 보낼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데이트를 기다린다.

가세요. 우리는 다시 하루 종일 지루함을 참을 거예요.

몰찰린은 소피아와 결혼하여 자신의 경력을 강화하고 싶은 유혹적인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어렵게 얻은 지위를 무너뜨릴 수 있는 파무소프의 분노를 두려워한다.
리자는 영주의 분노와 파무소프의 구애를 두려워하고, 바텐더 페트루샤와 잘되기를꿈꾸며, 소피아와 몰찰린의 로맨스를 도운 것에 대해 끔찍한 대가를 예상하고 있다.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지금
나와 몰찰린, 그리고 마당에 있는 모든 이에게.

파무소프는 마리야 알렉세브나 공주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 평판에 대해 생각하고, 딸을 위해 유리한 결혼을 준비하는 문제로 바쁘다.
스칼로브는 장군의 지위를 꿈꾸고 있다.
차츠키는 소피아와 화해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만, 예기치 못한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그가 없는 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소피아와 파무소프와의 관계 외에도 1막은 주변 사회에 대한 차츠키의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며, 이 사회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예시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명확히 하기는 스타니슬랍스키에게 있어 역할의 관통 행동에 대한 배우의 중요한 인식의 순간으로 간주되었다.

(중략).

20 다른 많은 글과 마찬가지로 "문학적 분석"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이 원고는 개인의 생각에 대한 대략적인 초안으로 스타니슬랍스키는 나중에 원고를 완성할 생각으로기억할 것들을 메모해 놓았다.
다음은 다른 원고에서 가져온 문학 분석에 대한 추가 자료이다.

문학적 분석은 내 전문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 대신 전문가 중 한 명이 배우의도움을 받아 작품과 역할에 대한 문학 분석을 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를 바랄 뿐이다.
문학 분석은 단순하고 실제적이어야 하며, 과도한 이성적인 것으로 창조 작업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창조 작업의 순간에 감정에서 이성으로, 가슴에서 머리로 중심을 옮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우는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성뿐만 아니라 주로 감정의 분석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있다.
배우의 문학적 감각과 느낌은 어떻게 개발되는가? 작가의 예술과 언어 창조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 문제는 전문가들에게바라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실제 작업을 위해 문학 분석을 우리 예술의 요구 사항에 적용하게 하라.
또한 배우들은 작가가 위임한 작품 전체를 마스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관객의 눈앞에서 능숙하게 행동을 시연하여 작품의 예리한 곳을 강조하고 부차적인 곳을 가릴 필요가 있다. 배우는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작가의 작품이 지닌 단점을 숨길 수도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배우들은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처럼,
기계공이 자신의 메커니즘으로 기계를 다루는 것처럼 작품을 마스터할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희곡의 구조와 그것의 구성 부분을 개별적으로나 전체적으로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문 기법과 그의 개인적 특성도 알아야 한다.
기계공은 개별 부품과 그것의 작동법을 연구하여 메커니즘을 익힌다. 이를 위해 기계공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연구한 구성 부품에 따라 기계를 분해하고재조립한다. 기계공과 마찬가지로 배우는 작가의 문학 작품의 구조나 메커니즘을 개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즉 그는 그것을 구성 요소로 분해해야만 한다(므하트 박물관, K. S., No. 676, pp. 99~100).

(중략).

22 스타니슬랍스키는 항상 극장에서 회화 작업을 무대 작업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는 배우에 대한 관심을 제쳐두고 무대를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틀로 여기는 화가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스타니슬랍스키에 따르면 외적이고 표현적인 측면은 작품의내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목적에 기여해야 한다. 무대 미술가와 작업하면서 그는 무엇보다도 무대적 행동의 전개에 도움이 될 무대 모형도를 만들려고 했다.
순전히 회화적 원칙을 거부하면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장치의 조각적, 건축적, 회화적 요소 하나하나를 전체로 결합하고자 했다.
연출가와 무대 미술가는 극중 인물들을 위해 진실되고 전형적인 환경을 무대 위에 조성함으로써 배우들이 공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진정으로 공감하고, 자신의 예술적허구를 진실로 믿게 하며,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유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최고로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타니슬랍스키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미장센, 배우에게 편안하고 동시에 삶 자체와 같이 다채롭고 독특한 모형도를 모색했다.
스타니슬랍스키에 따르면 배우를 프롬프터 부스 근처 프로시니엄에 서게 하는 모형도는 주변 무대 배경으로부터 배우를 차단하고, 무대에서 행동이 일어나는 것에 주의를 가지는 관객과 얼굴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에 힘들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무대적조건에서는 역할의 내적 라인을 놓치기 쉽고, 형상에 대한 외적 표현의 길로 빠지기쉽다.
한편 살비니와 두세에 대해 말하면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분명히 P. 자코메티의 희곡『시민의 죽음』에서 코라도 역할의 살비니와 A. 두마-아들의 『동백꽃을 든 여인』에서마르가리타 고티에 역할의 두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내의 남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14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 화가 코라도가 집으로돌아온다. 코라도와 아내가 만나는 장면에서 살비니는 몇 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르가리타 고티에 역할을 맡은 두세는 사랑하는 아르만이 떠난 후 엄청난 휴지를 유지하며 관객과 마주하는 프로시니엄에 서 있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오페라-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하는 동안무대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고전적인 휴지의 예를 자주 언급했다.

(중략).

30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생각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밝히고자 했으나 원고에 그 예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관련 내용을 생략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게 뭐지? 지금말하고 있는 상태를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더 쉽다. 내가 내 친구에게 가서 끔찍한 상태에 있는 그를 발견한다고 상상해 보라(예: 죽은 아내를 질투하는 친구)"(이 예에대한 설명은 전집 중 2권, 401쪽 참조).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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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유이가 상대의 의견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칸즈위안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쉬유이가 정보를 캐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태도를 굽히는 척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 P255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조사하고, 그다음엔 사망자의주변 인물들을 조사하죠. 원한 관계가 있는지......."
"또 그들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을 조사하겠죠." 칸즈위안이 쉬유이의 말허리를 잘랐다. "바이천의 자산을 조회해보지 않으셨죠?" - P256

"저는 ‘자산‘을 물었습니다만 그 집이 누구 명의로 되어 있는지 아세요?" 칸즈위안이 옆집과 사이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셰바이천의 어머니 아닌가요?"
"바이천이에요." - P256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어요?" 쉬유이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아들을 싫어하셨어요." 칸즈위안이 쓴웃음을지었다. - P257

쉬유이는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결제자 명단에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셰자오후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단칭맨션으로 달려왔을 뿐, 그에 대한 다른 정보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셰자오후에 대해 조사도 해보지 않고 절 찾아오신 건가요?" 칸즈위안이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을 꾸짖는 선생님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 P258

"한 달 동안 쉴 틈 없이 바빴죠." 칸즈위안이 화이트보드를 두드리며 셰자오후 사진과 그 옆에 쓰여 있는 파란 글씨들을 가리켰다. - P259

쉬유이가 화이트보드에 붙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티셔츠와 칠부바지를 입고 가슴에 파란 슬링백을 멘 차림으로 빨간택시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모습이 탄아이잉의 클럽 사진 속 인물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 P260

"온라인 쇼핑몰과 택시 운전 부업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10여년 전 보험왕으로 끗발을 날렸던 사람이니까 지금 자기 처지에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고, 불법적인 수단으로 큰돈을 벌 궁리를 할 거라는 건 합리적인 추측이 아닐까요?" - P260

"여기서 30년 가까이 살았으니 보고 들은 게 많죠. 2009년인가 2010년쯤에 셰자오후가 메이펑 아주머니에게 돈을 빌려달랬다가 거절당하자 행패를 부린 적이 있어요. 그때 대화를 엿들었는데 자오후가 수십만 달러를 빚지고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있다고 했어요. (후략)." - P261

"셰바이천의 외삼촌이 이 사건과 관련 있다는 걸 알면서 왜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쉬유이가 불만을 속으로 누르며물었다. - P262

"시신을 아주 가까운 곳에 보관하는 거죠. 교외에 파묻는 것보다는 집에 보관하는 게 나아요. 일단 운반해야 한다면 시신을 통째로 옮길 경우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시신을 토막 내서 들고 옮기기 편한 크기로 만드는 게 여러모로 좋습니다." - P264

쉬유이는 며칠 동안 조사해 칸즈위안에게 입수한 정보의 진위를 확인했다. 셰자오후의 개인정보는 기본적으로 모두 사실이었다.  - P265

그런데 셰자오후의 호시절은 7년 만에 막을 내리고 모든 게원점으로 돌아갔다. - P266

2008년 셰자오후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 마흔셋에 르둥보험에서 해고되고 보험모집인 자격도 박탈당했다. 그 무렵 르둥보험에서 근무했던 사람은 당시 회사에서 한 구역매니저가 염정공서²에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 P266

"그때 셰자오후가 다른 비리도 저질렀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고객과 짜고 보상금을 허위로 타냈다거나, 고객과 하룻밤자는 대가로 액수가 큰 계약을 따내라고 부하 여직원에게 강요했다거나...... 또 무슨 비밀이 있는지는 몰라도 퇴사한 직원의 고객은 항상 그 팀에서 데려가더라고요." 그가 말했다. - P267

야간에 택시 운전을 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치가 얏신스트리트에서 잠복하다가 셰자오후의 택시를 보았다. 차량 번호를 통해 그 택시의 차주가 누구이고 어떤 택시회사에 임대를 주었는지 확인한 뒤 셰자오후가 그 회사에 고용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 P268

"셰자오후에게 확실히 혐의가 있긴 하군요." 회의에서 아싱이 말했다. - P268

"논리가 맞지 않아. 그럴 계획이었다면 처음부터 셰자오후의 존재를 감추지 않고 그에게 혐의점이 있다는 걸 슬쩍 귀띔해줬겠지. 그게 자신에게 더 유리하니까." 아싱이 말했다. - P269

"칸즈위안과 손잡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자치가 반대했다. "그가 셰자오후와 공범인지도 모르잖아요. 함께 범행해놓고 경찰을 이용해서 상대를 제거하려는 걸지도 몰라요. 셰자오후를 제거하고 셰메이펑을 꼬드겨 집을 독차지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잖아요?" - P269

"아싱 선배는 칸즈위안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거예요? 저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에요." 자치가 말했다. - P270

"선배 말이 맞다고 쳐요. 그래도 칸즈위안이 셰바이천이 범행을 저지르고 두려워서 자살한 걸로 위장했을 수도 있잖아요?" - P270

"그 추리는 그가 셰자오후를 추적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 때얘기지. 자신의 다른 인격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가설이었어. 그가 정말 이중인격을 갖고 있어서 자기 자신이 범인인 줄 모르고 셰바이천의 외삼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거라면 두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일주일 넘게 감시했지만 정신이 이상하다고 의심할 만한일은 없었어. 매일 완차이에 차를 몰고 갔던 이상한 행동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걸로 밝혀졌잖아." - P272

"칸즈위안이 범인이든 아니든 그에게 일부 증거를 보여주고 의견을 들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샤오후이가 자치와 아싱을 번갈아 보았다. "그에게 죄가 없다면 똑똑한 그의 의견이 수사에 도움이 될 테고, 만일 그가 정말 범인이라면 우리에겐 범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겠죠. 스스로 허점을 드러내길 기다릴 수 있고요." - P272

"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쉬유이가 기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격했다.
"뭐죠?" - P274

"셰바이천이 그 온라인 친구가 누군지 말하지 않았나요?"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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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비 불균형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놓쳤다고 이를 감춘 정부를 책망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에 《국립과학원회보 Proceedings of the NationalAcademy of the Sciences》에 실린 한 연구는 미국의 특정 아시아인 집단 사이에 성감별 낙태가 불안할 정도로 흔하며 한동안 그래왔다고 밝혔다. - P79

인구조사는 미국 인구의 2퍼센트가 안 되는 중국계, 인도계, 한국계 미국인들 사이에 낙태가 널리 퍼져 있음을 시사했다.⁵¹ - P79

많은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에들런드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많았다. 1886년 미국에 온 뒤 매춘부터 남녀 양성자까지 다양한 주제와 씨름했다. 우리가 두 구역을 지나기도 전에 에들런드는 종교사와 진화생물학에 관한 식견을 입증해 보였다. - P80

낙태 반대 활동가들은 이미 《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에들런드의 연구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 P80

중국인 부부의 남아 선호 사상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지적되는 연금 부족 문제를 예로 들며 그녀가 말했다. "미국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있어요. 미국에는 한 자녀 정책이 없죠. 그래도출생 성비 문제가 존재해요." - P81

그렇다면 미국에서 성별 선택을 하는 집단은 어떻게 설명할 수있을까? (중략). 아시아계 미국인의 출생률은 여성 한 명당 1.9명으로 미국의 소수집단 중에서 가장 낮다.⁵² - P81

51. Almond and Edlund, "Son-Biased Sex Ratios".
52. "U.S. Birth Rate: Still Fueling Population Growth", online discussion, Population Reference Bureau, March 22, 2007, http://tinyurl.com/29memvr. - P377

5장

제국주의자들의 입장

열강의 착취가 퍼트린 여아 살해 관습



경험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국가와 정부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P100

1789년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인도의 조세 징수 현황을 살피기 위해 조너선 덩컨을 파견했을 때 그는 새로운 유형의 식민지 관료의 표본이었다.
(중략).
신입 사원들은 ‘오리엔탈리스트‘라고 불렸는데(2세기 뒤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페르시아어와 벵골어를 할 줄 알았던 덩컨은 그중에서도 매우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 P101

오리엔탈리스트들의 도착은 인도에서 동인도회사가 식민주의 논리로, 즉 불공정한 경제적 지배를 윤리적·종교적 논리로 은폐하는 쪽으로 전환했음을 뜻했다.  - P101

덩컨이 10월에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동인도회사의 총독 찰스 콘월리스 경에게 자신이 발견한 내용에 대해 편지를 쓴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덩컨은 조금도 과시하는기색 없이 "저는 다음 사실을 확신하며 실제로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관례상 용납되는 일이라 해도 그러한 범죄 행위를 정부에 알리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라즈쿠마르족 사이에서는 딸의 양육을 거부하게 함으로써 딸을 살해하는 일이 관행처럼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편지에 썼다.⁴ - P102

덩컨은 콘월리스 경에게 라즈쿠마르족이 딸을 살해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조사관들이 기록한 것처럼 아마도 여자아이가 없는 마을을 우연히 발견했을 것이다. 아무튼 덩컨은 여아 살해가 라즈쿠마르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갈망과 관련있다고 추측했다. - P102

그 뒤 1795년에 콘윌리스 경은 덩컨을 남쪽으로 1,4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봄베이로 전출시키고 그 도시의 총독으로 승진시켰다. (중략). 결과는 놀라웠다. 120만 명이 거주하는 한 정착지에서 매년 약 2만 명의 여아가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⁹ - P103

그리하여 방대한 문서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영국 관리들은 열정적인 기록 보관자들이었고 몇 년간 작성된 보고서들에는 여아 살해와 함께 인간 제물과 순사*의 예가 딱딱한 도표와 수치, 과장된 해설이 곁들어져 열거되었다. 


*殉死. 남편의 시체와 살아 있는 아내를 함께 화장하던 인도의 옛 풍습옮긴이 - P103

이 시기에 나온 한 해석이 특히 인상적이다. 「동인도회사 관리 : 진보의 역사 The Administration of the East India Company: A History of Progress」는 존스튜어트 밀의 후임으로 동인도회사의 정치 기밀부 서기관으로 임명된 영국의 군사학자 존 윌리엄 케이가 1853년에 발간한 뻔뻔스러울 정도로 편파적인 논문이다. - P104

사실 서구에 영아 살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까지 유럽에서는 태어난 지 며칠 혹은 몇 달 동안은 생명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 P104

19세기에 대부분의 서구인은 영아 살해를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유럽과 식민지 미국에서 부모들이계속해서 몰래 아기를 죽였고 19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영아 살해가 급증했다.*

* 1864년 영국에서는 전체 살인 사건 중 영아 사망이 61퍼센트를 차지했다. - P105

케이는 "이 기독교 국가에서 영아 살해라는사악한 범죄가 안타깝게도 점점 증가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라고썼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이고 예외적인 범죄일 따름이다.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많은 세대에 걸쳐 영아 살해가 관습이었다.¹⁸ - P105

인도인들이 많은 수의 여아를 살해했다는 사실은 이제 아주 분명해졌다. 하지만 좀 더 광범위한 사안, 즉 부모들이 여아를 살해한 이유는 다루기 까다로운 문제였다. 신뢰성 있는 인구 기록이 있었다면 케이가 쓴 것처럼 영아 살해가 실제로 "많은 세대에 걸친 관습"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 P106

 심지어 동인도회사의 사학자 케이도 "영아 살해와 힌두 신앙 간에는 관계가 없음을 특유의 심술궂은 표현으로 인정했다. "이 사람들이 믿는 기괴한 종교의 계율이나 본보기에서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거의 유일하게 예외적인 야만적 관습이다."²² - P107

하지만 종교가 이런 관행의 원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원인일까? - P107

 식민주의자들이 언급한 문제는 승혼으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 P107

하지만 식민지 조사관들은 자신들이 조사한인도의 결혼 관습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다루었다. 이들은 결혼 관습을 이해하면 여아 살해 근절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착각아래 결혼 비용을 "신랑과 함께 온 사람들에 대한 식대와 동물의 먹잇값", "사위가 처가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줄 현금" 같은 매우 구체적인 항목으로 분류한 상세한 표를 그렸다.²⁵ - P108

이러한 사회적 병폐에 대한 처방은 어김없는 개입이었다. - P109

5장 제국주의자들의 입장


4. Jonathan Duncan, letter to Lord Cornwallis, October 2, 1789, in Selections from theDuncan Records (Benares: Medical Hall Press, 1873), 134.

9. L, S, Vishwanath, "Efforts of Colonial State to Suppress Female Infanticide: Use ofSacred Texts, Generation of Knowledge",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May 9, 1998, 1104-1112.

18. Kaye, Administration of the East India Company, 545.

22. Kaye, Administration of the East India Company, 552.

25. Vishwanath, Female Infanticide, 95.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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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가 바뀌는 시점에 하버드 천문대와 인연을 맺었을 때만해도 헨리에타 리비트는 자신이 천문학의 영역에서 거리를 잴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발견해 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의 경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오늘날조차도 헨리에타 리비트는 업적에 비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과학자다. - P221

 1922년, 하버드 천문대 천문학자 솔론 베일리(Solon Bailey. 1854~1931)는 리비트의 사망을 알리는 글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리비트는 청교도 조상들이 세운 엄격한 가치를 물려받았다. 그는 언제나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책임감과 의무감, 충성심이 매우 강했다. 그는 작은즐거움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끈끈한 가족의 헌신적인 구성원이었던 그는 이기적이지 않고 이해심 깊은 우정을 맺었다. 자신의 원리에 변함없이 충실했으며 자신의 종교와 교회에 마음을 다했다. 그는 모든 것에 감사할줄 아는 재주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밝은 천성까지 소유했다. 리비트는 매우 과묵했고 내향적이었지만 자신의 일에는 대단히 열중하는 사람이었다. - P222

6장


4) Solon Bailey‘s obituary of Henrietta Leavitt, Popular Astronomy 30, no. 4 (April1922): 197-199. - P797

리비트는 1895년에 하버드 천문대의 자원봉사자가 되면서 천문학에대한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는 천문대장 에드워드 피커링이 고용한 10여 명의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 P223

리비트의 개인사는 과학 분야에서 여성 과학자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19세기 말에 전문 직업인으로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미국의 여성 과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유럽은 이보다 더 적었다. - P224

천문학은 다른 쪽에 비하면 여성에게 기회를 많이 준 과학 분야였다. 우선 고등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별의 위치를 관측하거나 크기를 재는 일들이 여성의 몫이 되었다. - P225

과학사가인 파멜라 맥(Pamela Mack)에 따르면 1875년부터 1920년까지 160여명의 여성이 미국의 여러 관측소에 고용되었다. 그중 가장 고용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이 하버드 천문대였다. 피커링 대장이 1876-1919년 사이에 뽑은 여성 인력만 40명을 넘었다.⁸
에드워드 피커링은 1846년 비컨힐로 알려진 보스턴의 상류층 동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하버드 대학의 로렌스과학부(Lawrence Scientific School)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 P225

8) Pamela Mack, "Women in Astronomy in the United States, 1875-1920" (B. A.
Honors Thesis, Harvard University, 1977), chapter 4. - P797

이후 20년 동안 천문학의 구심점은 별의 위치와 운동을 관측하는 연구 방향에서 물리적인 대상으로서 개개의 별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어떻게 에너지를 방출하는것일까? 별의 밝기와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범주에 속한 다른 종류의 별이 존재하는 것일까?  - P226

피커링의 여성 ‘컴퓨터들은 천문대에 속한 두 개의 방에서 일했다. - P227

피커링이 하늘을 찍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1907년경, 그는 리비트에게 천구의 북극 방향에 있는 별의 밝기를 재라는 임무를 할당했다. 다른 모든 별들의 밝기를 비교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 P227

하지만 리비트는 구경도 다르고 노출 시간도 제각각인 33개의 망원경으로 찍은 277개의 사진을 받았다. 우선 33개의 서로 다른 망원경의눈금을 보정해서 서로 다른 데이터를 비교해야만 했다. 결국에 그는 이일을 해냈다. 북극표준성계열(North Polar Sequence)이라는 유명한 방법으로 말이다. - P228

당시에 변광성의 밝기가 왜 달라지는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가설은 변광성이 쌍둥이별이라는 것이었다. 하나의 별이 다른 하나의 별 주위를 타원 궤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면 별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 P228

리비트는 어떤 별이 변광성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양화/음화(포지티브 네거티브) 매칭법을 썼다. - P228

일단 변광성을 확인하면 그 별의 변광 주기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시간대에 더 많은 사진들을 찍어 본다. 예를 들어 그림 6.1은 네 가지 변광성의 빛의 주기를 보여준다. - P229

리비트는 혼자서 2,400개 이상의 변광성을 찾아냈다. 이는 리비트의 발견 이전에 알려진 변광성 수의 두 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 P230

리비트는 세페이드라는 특정 변광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1784년에 처음 발견된 것으로, 3일에서 15일 주기로 눈에 띄는 노란색의 ‘거대한 변광성이다. - P230

리비트가 조사한 세페이드 변광성들이 모두 소 마젤란 성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었다. 이 변광성 간의 거리가 지구와의 거리에 비해 매우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230

리비트는 자신의 놀라운 발견에 매우 기뻤다.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와 겉보기 밝기 간의 관계를 양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었다. - P231

그 누구도 이 둘 사이에 이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사실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가 왜 변화하는지를 설명하는 당시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보면 주기와 본래 밝기 간에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 P231

리비트가 조사한 세페이드 변광성들이 모두 소 마젤란 성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었다. (중략). 즉 모든 별들이 우리로부터 대략 비슷한 거리에 있다는 얘기이다. - P230

그 누구도 이 둘 사이에 이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사실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가 왜 변화하는지를 설명하는 당시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보면 주기와 본래 밝기 간에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 P231

 우주의 표지는 다음의 세 가지 특성을 가져야 한다. (1)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 본래 밝기를 알려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구로부터 별까지의 거리를 별의 본래 밝기와 겉보기 밝기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3)주 공간에 충분할 정도로 많이 흩어져 있어야 한다. - P232

리비트의 논문을 보면 하버드 대학 천문대에서 논문을 발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막강한 천문대가 스스로 저널을 만들어 출판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리비트가 아닌 피커링 대장이 논문 저자로 사인되어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 P232

리비트가 쓴 논문의 핵심은 등급과 주기 간의 관계를 잘 나타냈다는것이다. 별의 주기가 증가할수록 등급은 떨어진다. 즉 주기는 등급에따라 달라진다.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주요 내용이 있다. "이 변광성들은 지구로부터비슷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이들의 주기는 분명 이들이 실제로 방출하는 빛과 연관이 있다."  - P233

리비트의 법칙을 완성하는 데 필요했던 핵심적인 부분은 보정 (calibr-ation)이었다. 리비트는 소 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샘플 변광성 24개의 본래 밝기에 관해서는 상대적인 비율밖에 구할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세페이드 변광성들의 상대적인 본래 밝기는 알아도 각각의 본래 밝기는 알지 못했다. - P234

1913년, 리비트의 논문이 발표된 다음 해에 덴마크 천문학자 아이나르 헤르츠스프룽(Ejnar Hertzsprung, 1873-1967)은 소 마젤란 성운보다 지구와 훨씬 더 가까운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다. 운동 성단법을 이용하면 거리를 측정할 수도 있었다. 그는 별까지의 거리와 겉보기등급으로부터 별의 본래 밝기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별의 주기를 관측한 다음, 리비트의 그래프에서 특정 주기가 본래 밝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지정할 수 있었다. 이제 마침내 보정이 끝났다! - P234

세페이드 변광성은 흔하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이미 전에 말한 것처럼 이 별들은 탁월한 우주 표지가 된다 - P235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빛의 덩어리, 즉 성운이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성운까지의 거리를 알아내지 못했고 그것들이 우리 은하에 속한 별인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1924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안드로메다성운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을 찾아냈다. - P236

결국 안드로메다는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거대한 은하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허블은 계속해서 다른 성운들의 거리를 재보았다. 그리고 상당수가 우리 은하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하라는 사실을 밝혔다. - P236

오늘날에는 우주 망원경을 통해 2천만 광년까지의 세페이드 변광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간단히 따지면, 주기-광도 법칙은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를 500광년으로부터 2천만 광년까지 확장했다.측정 가능한 우주의 공간이 무려 10¹⁴배나 늘어난 것이다. - P237

하버드 천문대에서 리비트의 직함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수‘였다. - P238

1925년,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의 한 과학자 위원이 리비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를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올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리비트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 P238

소마젤란 성운에 존재하는
25개 변광성의 변광주기


이하의 내용은 소마젤란 성운에 있는 25개 변광성의 변광주기를 다루고 있으며 작성자는 리비트임. - P239

1904년에 잠정적인 밝기 등급을 이용해서 소마젤란 성운에 있는 25개 변광성을 측정한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 17개의 주기는 H.A. 60,4번 논문의 표 6에 나와 있다. - P239

. 표 1은 지금까지 밝혀진 25개 변광성의 주기를 보여준다. 주기가짧은 것부터 나열해 두었다. 첫 다섯 열은 각각 하버드 천문대에서 붙인 번호, 밝기 곡선에서 알 수 있는 최대 및 최소 수치, 율리우스 적일로 2,410,000부터 지난 기간을 날짜 수로 환산한 것, 주기 일수이다. - P240

선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최대 밝기이고 다른 하나는 최소 밝기이다. 곡선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다는 데 주목하자. 그림 2의 경우 가로축은 로그로 표현한 주기이고 세로축은 그림 1과 마찬가지로 밝기이다. 최대 밝기와 최소 밝기 모두 점을 이을 경우 직선이 되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 P241

25개의 변광성을 관측하고 알게 된 사실로 볼 때 항성의 분포와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의문점들이 생기게 된다. 성단과 성운의 관계, 밝기 곡선의 형태 간 차이, 주기의 극단적인 범위 등이 그것이다. 우리 천문대에서 두 개의 마젤란 성운에 존재하는 2천여 개의 변광성 전부에 대해서 밝기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바란다.


1912년 3월 3일
에드워드 피커링 - P242

14
생물에너지 생산

오늘 아침에 먹은 베이글이
날 움직이게 한다

핸스 크레브스 (1937) - P455

에너지는 자연이라는 시장의 통화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 P457

그렇다면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는 어디에서 출발한 에너지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걸까. - P457

그렇다면 이 에너지는 어디에서 만들어진 걸까? 오늘 아침에 내가 먹은 베이글 속의 탄수화물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에너지다. - P458

에너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물리학의 기본적인 개념이었다. - P458

반면 생물학에서는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가 상당히 짧다. 2장에서 이야기했지만, 물리학과 화학이 생물학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물질과 그렇지 않은 물질이 서로 다른 법칙을 따른다는 철학적인 믿음과 맞서야 했다. - P459

 특히 현대적인 에너지보존법칙이 1840년대에 정립되면서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와 위에 등장했던 마이어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동물이 독립적으로 소비하는 에너지는 음식물의 화학적 분해에 의해서만 공급된다는 내용이었다. - P459

19세기 말, 두 명의 독일 생리학자 아돌프 오이겐 픽(Adolf Eugen Fick, 1829~1901)과 막스 루브너(Max Rubner, 1854~1932)는 마이어와 리비히의가설을 정량적으로 자세히 시험해 보았다. 그들은 몸에 열이 나고, 근육이 수축하는 등의 신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정량화해서 음식에저장된 화학에너지와 비교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1그램의 지방, 탄수화물, 그리고 단백질이 얼마만큼의 에너지에 해당하는지를 알아냈다. - P459

1937년, 37세의 독일 생화학자 핸스 애돌프 크레브스는 음식물로부터 에너지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발견했다. 크레브스와 여타 과학자들은 오늘날 크레브스 회로로 불리는 이 과정이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에게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했다. - P460

구체적인 사항을 제쳐 두자면, 어떻게 음식이 에너지로 전환되는지에대한 큰 그림은 18세기 말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과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 (Antoine-Laurent Lavoisier. 1743~1794)가 처음으로 그려냈다. - P460

그렇다면 연소반응에서는 어디에서 에너지가 오는 걸까. 모든 형태의 연소는 원자 속 전자의 전기적 반발에서 시작된다.  - P461

1930년에 이르자 과학자들은 화학결합에서의 에너지를 상당 수준으로 이해했다. 생화학자들도 라부아지에 반응이 식에서처럼 한 단계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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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르몬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조절하는

숨겨진 리모컨

윌리엄 베일리스와 어니스트 스탈링 (1902) - P53

19세기 중반, 독일 생리학자 카를루트비히 (Carl Friedrich Wilhelm Ludwig, 1816-1895)는 키모그래프(kymograph)라는 장치를 발명했다. 키모그래프는 원통에 거무칙칙한 그래프 종이가 길게 감긴 형태의 기록 장치다. 원통이 천천히 돌아가면 심장이나 동맥, 또는 내장과 같은 생체의 주요활동이 종이에 기록된다. - P55

1902년 1월 16일, 런던 대학의 한 작은 실험실에서 두 명의 과학자는 키모그래프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 P55

지금까지 이 두 과학자, 그러니까 윌리엄 베일리스와 어니스트 스탈링이 한 것은 러시아의 위대한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1936)가 수년 전에 했던 실험을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 P56

당시 베일리스는 41세였고 스탈링은 35세였다. 생물학을 전공한 베일리스와 의학을 전공한 스탈링이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스탈링이 런던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1890년이었다. 3년 후 베일리스는 스탈링의 누이와 결혼했다.
두 남자는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 P56

베일리스의 스타일이 느린 속도로 정교하게 연구하는 것이라면 스탈링은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베일리스는 스탈링과의 공동 연구를 제외하곤 혼자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스탈링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고 세부적인 면은 동료에게 떠넘겼다. 베일리스가 지식적인 측면에서 강했다면 스탈링은 과감했고 직감이 뛰어났다.  - P57

장은 분명히 췌장에 신호를 전달하고 있었다. 사돈지간인 두 과학자는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정신을 차린 후 공장에서 점액을 떼어내 혈관에 직접 삽입했다. 그러자 다시 췌장이 이자액을 분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장 벽 점액에서 화학적 메신저를 발견했던 것이다.  - P58

1902년 9월 12일에 발표된 그들의 기념비적인 논문의 서론 부분을 보면 이 두 과학자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 P58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이렇게 최초의 호르몬을 발견했다. - P58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2000년 전에 이미 발견된 신경을 추적하다가 신체 내에서 의사소통과 조절을 담당하는 두 번째 체계를 발견했다. 이 두 체계는 베일리스와 스탈링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 P59

1900년에 생물학의 미개척지는 물리학에 비해 훨씬 광활했다. 미개척지로는 생명의 기원, 어떤 미생물이 질병을 전달하는지에 관한 질병학과 세균학, 종의 진화,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분열하여 간세포나 심장세포로 분열하면서 몸을 이루는지에 관한 발생학, 부모의 형질이 자녀에게 이어지는 유전학, 그리고 생체 기관의 구조와 기능이 있었다. - P60

물리학처럼 생물학도 지난 50년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 세균과 질병에 대한 연구는 미생물과 유기체가 병을 일으킨다는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의 ‘세균설(germ theory)‘과 콜레라와 결핵을 일으키는 세균을 발견한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의 업적덕분에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 - P60

베일리스와 스탈링이 우연히 호르몬을 발견한 일은 모든 미개척 분야뿐 아니라 생물학이란 학문이 시작된 이래 줄곧 사람들을 괴롭혀온 주요한 주제를 건드렸다. 그건 바로 생물과 무생물이 다른 법칙을 따르냐는 것이다. - P61

우리 인간의 의식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 있을까. 물리학과 화학으로 인간 정신의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문제다. - P62

19세기 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이 난해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에서 막연한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면서 관심사가 점차 바뀌었다. 화학과 물리학이 생물학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신경을 통한 의사소통은 물리학으로 쉽게 정리되었다. 소화와 호흡은 분명화학적이었다. 그러나 조절과 억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외부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 P63

호르몬의 발견으로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우리 몸의 명령 기관과 통제 센터를 찾아냈다. 그들의 발견은 새로운 의사소통 체계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P63

플랑크의 양자 논문을 비롯한 현대 물리학 대부분의 논문이 매우 난해한 것과 달리 1902년에 발표된 베일리스와 스탈링의 논문은 개념적으로 간단하고 읽기도 쉽다. 그들은 이자액 분비에 관한 연구로 글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두 과학자들은 파블로프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했다. - P64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세크레틴의 화학적 조성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보편적인 물질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개, 토끼, 사람, 원숭이에서 같은분비 작용을 가진다는 것도 확인했다.  - P65

세크레틴 연구 후에도 두 과학자의 영광은 계속되었다. 베일리스는 전기가 세포막을 통과하는 물질을 옮길 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했다. 이후에는 생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 효소의 작용을 자세히연구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외상으로 인한 쇼크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는 ‘검생리식염수 주사(gum-saline injection)‘가 체액의 손실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해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 P65

스탈링 역시 『인체생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Human Physiology [1912])』라는 두꺼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개정되었고 국제적인 표준 교재로 쓰인다. 이 위대한 두과학자는 15년 동안 긴밀하게 함께 했지만 각자 따로 책을 집필했다. - P66

췌장 분비의 메커니즘

윌리엄 베일리스, 어니스트 스탈링


1. 역사적 고찰髙徑

오래전부터 췌장의 작용은 소화기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베르나르¹는 위장이나 십이지장에 에테르를 주입할 때에 췌장 분비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으며, 하이데하인²은 췌장분비의 시간적 추이를 위장과 장에서 일어나는 소화작용과 관련하여 연구했다. - P68

파블로프는 산에 의해 자극되는 췌장 분비를 반사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분비액의 조성이 다양한 이유는 음식에 대한 췌장의 놀랄 만한 민감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68

산이 십이지장에 들어갈 때 췌장 분비가 나타나는 메커니즘은 포피엘스키⁴와 베르트하이머, 레파지⁵의 독립적인 연구에서 좀 더 자세히 조사되었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미주신경 및 내장신경을 절개한 상태나 척수를 파괴했을 때, 심지어는 태양 신경총을 완전히 제거했을 때에도 산이 십이지장에 들어가면 췌장 분비가 일어난다. - P69

 췌장 분비는 신경 채널이 아니라, 소장의 윗부분 점막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에 의해 나타나며, 이 물질이 혈류를 타고 췌장의 샘-세포로 운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⁷ - P70

II. 실험 방법

모든 실험은 모르핀을 주입한 후 A.CE. 혼합물로 마취시킨 개를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개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인공호흡을했다. 이는 양 미주신경들이 분리되었을 때에 특히 필요하다. - P70

IV. 결정적인 실험

1902년 1월 16일, 실험 전 18시간 동안 음식을 준 체중 6킬로그램의암캐에게 실험 3시간 전에 모르핀을 주사했고, 실험 중에는 추가로A.C.E.를 주입했다. 장간막 대동맥과 복강 제2경추(頸椎)근처의 신경 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했으며 양 미주신경을 잘랐다. 고리모양 장의 양 끝을 묶었으며 장간막 신경을 조심스럽게 절개하고 분리해장 조각이 동맥 및 정맥으로만 실험동물에 연결되도록 했다.  - P71

그러나 이것이 본 실험의 중요한 점이며, 전체 연구의 전환점인데ㅡ같은 산용액 10cc를 무력화한 장에 주입했을 때도 비슷한 효과가뚜렷하게 나타났다. - P71

본 실험의 다음 단계는 명백했다. 즉, 장의 한 부분을 원형으로 잘라내고 점막을 뜯어낸 후모래와 0.4퍼센트 염산으로 문지른 다음, 덩어리와 모래를 제거하기위해 면사를 통해 여과한 후 추출물을 정맥에 주입한다. 결과는 그림 2에 나타나 있다. - P72

본 실험에 대한 플뤼거의 반대 의견에 대해 혈관벽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신경-채널이 배제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위에 기술된 실험 내용으로 보자면 신경이 제거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다. - P73

Ⅴ. 세크레틴의 성질과 작용

세크레틴은 비휘발성이어서 용액을 증기에 통과시켰을 때 증류물에나타나지 않았다. 양피지에 투석되기는 하지만 쉽지 않다. 오스본 박사가 만든 재(ash)를 가했을 때 차이가 없으므로, 세크레틴 용액의 작용은 무기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 P74

세크레틴의 작용방식.

 이 문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혈압을 내리는물질(간단히 하기 위해 강하제라고 부름)이 췌장 분비를 자극하는 물질과 같은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혈압 강하를 일으키는 혈관 확장이 췌장 분비의 원인이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75

세크레틴 작용의 일반적인 조건.

 지금까지 논한 바에 의하면 췌장 분비에대한 작용은 실험동물의 상태와 완전히 무관했다. 음식에 대한 개의 소화 단계에도 무관하여, 먹이를 준 시점으로부터 20시간 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 P75

다른 실험동물들과의 관련.

. 지금까지 기술된 모든 실험들은 개에 대해 시행되었지만 다른 동물에서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용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실험 결과 고양이, 토끼, 소, 원숭이, 인간 및 개구리의 십이지장에서 얻은 세크레틴이 개의 췌장 분비에 동일하게 작용했음을 알았다. - P76

VIII. 생체 내 세크레틴의 귀결

세크레틴 주입에 의한 췌장액의 분비는 10분을 넘지 못하며 5분 후에는 신속한 분비가 정지되므로 주입된 세크레틴은 혈류로부터 사라지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세크레틴을 반복 주입한다면 췌장액을 연속적으로 분비시킬 수 있어 피로 현상 없이 8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¹¹ - P76

XIII. 결론의 요약

1. 췌장액의 분비는 작용은 산성 유미액이 십이지장에 주입될 때에 일어나고 그 양은 주입된 산의 양에 비례한다(파블로프). - P78

3. 세크레틴은 세포에서 생성되는 전구체로부터 만들어지는 듯하며, 물과 염기에는 녹지 않고 끓는 알코올 중에서 파괴되지 않는다. - P78

5. 세크레틴 주입에 의해 분비되는 췌장액은 ‘엔테로키나아제(장내 효소의 일종)‘가 첨가되기 전에는 단백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녹말 및 지방에 작용하고 지방에 대한 작용은 내장액의 첨가에 의하여촉진된다. 이것은 정상적인 췌장액의 성질이다. - P78

9. 점막의 산 추출물은 혈압을 떨어뜨리는 물질을 가지는데 이 물질은 세크레틴이 아니다. 박리된 상피세포를 산으로 처리함에 의하여 혈압강하제가 없는 세크레틴을 만들 수 있다.

(중략).


Journal of Physiology (1902) - P79

■ 참고문헌

1. Physiologie expérimentale, II. p.226. Paris, 1856.
2. Hermann‘s Handbuch d. Physiologie, V. p. 183. 1883.


4. Gazette clinique de Botkin (Russ.), 1900.
5. Journal de Physiologie, III. p. 335.1901.


7. 이 연구의 주요 결과에 대한 예비 초록은 (Proc. Roy. Soc. LXIX, p. 352. 1902)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 보고된 실험은 1902년 3월에 완료되었으나, 외부 사정에 의해 발표가 미루어졌다.


11. 세포에는 조직학적인 변화가 있었고, 현재 이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데일 박사는 고갈의징후를 볼 수 있었다. - P79

6

우주의 크기

2차원의 하늘을 3차원으로 보여준
세페이드 변광성

헨리에타 리비트 (1912) - P215

청명한 밤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주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증이생겨난다. 암흑의 우주 공간에서 반짝거리는 저 작은 점들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들은 대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얗고 엷은 띠의 정체가 뭘까? - P217

인간의 문명은 이런 의문들을 풀어 보려고 애써 왔다. 기록상으로 가장 오래된 우주론은 바빌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다. - P217

우주에 대한 생각에 논리와 추론을 더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545)*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문학의 창시자, 우주론 또는 체계적인 철학적 세계관을 전개한 최초의 사상가로 불린다. - P217

우주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검증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거리를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천문학의 역사에서 거리를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큰 골칫거리였다. - P218

망원경으로 본다고 해도 그렇다. 만약 우리가 별의 본래 밝기(intrinsicluminosity)*를 알고 있다면 우리 입장에서 보이는 그 별의 밝기로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중략). (어떤 물체의 본래 밝기와 그 물체까지의 거리, 그리고 그 물체의 겉보기 밝기 간의 관계는 수식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의 값을 알고 있다면 다른 하나의 값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별은 저마다 다른 밝기를 띠고 있다. 

*이 장에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천문학 용어인 광도 대신에 밝기로 표현했다. - P218

1912년, 한 여성 천문학자가 우주의 거리를 재는 잣대를 발견했다. 하버드 천문대에서 일하는 헨리에타 리비트였다. 청각장애를 가지고있으며 신앙심이 깊은 그는 세페이드(Cepheid)라고 부르는, 특정한 별의 본래 밝기를 잴 수 있는 법칙을 찾아냈다. - P219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의 거리를 측정해 보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 그리스인들은 행성들이 각각의 이동 궤도에서 다른 위치에 있을 때행성들의 위치를 측정하고 여기에 기하학을 적용하여 태양과 행성들간의 거리 비율을 상당히 정밀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 P219

최초로 태양까지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한 사람은 프랑스의 천문학자장 리세(Jean Richer, 1630~1696)였다. 1672년, 리셰는 조수들과 함께두 곳의 천문대에서 화성의 방향을 측정했다. 관측 지점 중 한 곳은 파리였고 다른 한 곳은 프랑스령인 남미의 가이아나 해변에서 가까운 카옌 섬이었다. (여기에서 화성의 방향은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을 배경으로 했을 때 화성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태양의 경우 일식일 때를 제외하고선 이 방법을 활용할 수없다. 태양이 너무 밝아서 배경이 되는 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P220

몇 년 후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들의 거리를 계산해 냈다. 여기에서 뉴턴은 별의 밝기를 태양의 밝기와 같다고 가정했다. - P220

1838년 경,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Friedrich Bessel, 1784-1846)을 비롯한 여러 천문학자들이 가까운 별들에 대한 시차를 측정했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시차 역시 매우 작기 때문에 이를 관측하기 위해서 천문학자들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관측 지점을 선택했다. 바로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공전궤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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