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던 바로 그책이다. 아내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했었다. 2005년 7월, 3년 동안 조현병에 시달리던 작은아들 케빈이 스물한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우리 집 지하실에서 스스로 목을 맨 뒤 10년 동안 나는 그 약속을지켜왔다. - P9
뒤이은 5년은 ‘치유‘ (사실은 적응)라는 지옥과도 같은 과정이 달갑지 않은 멸균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병이 다시 우리 가족을 강타했다. 살아남은 큰아들 딘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 P9
딘은 병이 가져온 최악의 영향을 끈질기게 극복해냈고, 내가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온전한 정신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닥친 이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타격을 두 번째로 경험하면서, 내가 이 주제를 건드려서는 안 될 이유의 목록은 더욱 길어졌다. - P10
미시건의 한 음악학교에 기타를 공부하러 가 있던 시절, 작은아들 케빈이 봄 댄스파티에서 함께한 데이트 상대와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온 적이 있다. 난생처음 갖게 된 흰 야회복 재킷을 입은 모습이었다. - P10
그러니 사생활은 내가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항이었고, 나는 그이유만으로도 이미 더 할 말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이유들, 더 강력한 이유들이 있었다. - P11
게다가 생각해보면, 솔직히 누가 조현병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하겠는가? 나라면 읽고 싶지 않을 것이다. - P11
그러나 톨스토이를 흉내 내어 말하자면, "나는 조현병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조현병은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 알고 보니 조현병은 파워스 집안에 유독 관심이 많았고, 내가 아무리 무관심하려 해도 그 사실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 - P11
조현병schizophrenia. 만성적이고 치료가 안 되는 뇌의 질병, 그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유전적 돌연변이에, 또 부분적으로는 외적 경험, 다시 말해 ‘환경적 경험에 있다(적어도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데, 사실 조현병에 관한 한 확립된 진실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직 없다). 조현병은 인간의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큰 두려움을 자아내는 병으로, 100명 중 평균 한 사람 이상에게 나타난다. - P12
조현병은 재앙 같은 병이긴 해도 여러 가지 범주, 저마다 다른 지속 기간을 지니고 다양한 병세를 포괄하는 많은 정신질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인구 중 4분의 1은 살아가는 동안 모종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고 추정한다. - P12
여러 가지 파괴적인 정신질환 중에서도 조현병은 정신의 이성적처리 과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정신건강에서 조현병이 차지하는 위치는 육체건강에서 암이 차지하는 위치와 같다. 즉,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약탈자이자 여간해서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다. - P13
정신질환이 급작스럽게 발병했을 때, 특히 병상과 시설 부족 때문에 치료가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임을 감안할 때, 정신질환자를 환자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억지로 붙잡아둬야 하는가(즉, ‘비자의 개입을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주장들이었다. - P13
버몬트주와 몇몇 다른 주에서는 ‘비자의‘ 환자들을 응급실에 둘 수는 있지만, 치료를 허가하는 법원 명령이 없으면 의사가 약물을 투여할 수 없다. 버몬트주의 일부 환자들은 정신증이 발병한 채로 법정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두세 달씩 기다리기도 한다. - P14
정신증 상태의 환자들이 사실상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음을감안하면, 언뜻 보기에는 신속한 ‘비자의 치료가 가장 이의의 여지가적은 조치로 여겨질 수 있다. - P14
그들이 비자의 치료를 반대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약물 자체를 향한 불신이다. 항정신병 약antipsychotic drugs들은 1950년대 이후 계속 진화해왔지만 본질적으로 실험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때로는 환자를 안정시키기보다 오히려 해를 입히기도 하며, 효과적인 약이라 해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 P14
게다가 널리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제약업계가 개개인에 맞춘 꼼꼼한 치료는 뒷전으로 미루고 환자의 상태가 양호한지 심각한지, 심지어 약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고려하지 않은 채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처방하고 보는 의사들과 정신과 의사들에게 금전적 이득을 안겨온 것도 사실이다. - P14
버몬트주 의회는 봄 내내 그 법안을 두고 토론했고, 6월에는 주지사가 몇 가지 타협안을 반영한 법안에 서명하여 법으로 만들었다. 내가 이 공청회와 법안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법의 장단점을 다시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그 사건이 나에게 촉발한 깨달음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 P15
위원회 회의실의 반짝반짝 윤을 낸 기다란 책상 앞에 불편한 자세로 줄지어 앉아 간간이 목청을 가다듬던 그들 대부분은 버몬트 사람들의 유니폼과도 같은 평범한 청바지나 청치마에 플란넬 셔츠 차림이었고, 거의가 머리도 빗지 않은 데다 남자들은 수염도 다듬지 않은 모습이었다. - P15
그들의 절실한 존재감이 그 방 안에서 눈앞에 구현된 그들의 모습이 내 존재를 뒤흔들었다. 그들이 출석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심오하고 근본적인 인간성 때문이었다. - P16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내밀하고 절절한 방식으로 정신질환을 목격했던 내가, 울었던 내가, 미동도 할 수 없었던 내가, 뒤흔들린 인간의 정신이 지어낼 수 있는 가장 정교하고 사악하리만치 ‘달콤한‘ 꿈, 그러니까 케빈이 살아 있지만 다시는 기타를 치지 않겠다고 버티는 반복적인 그 꿈을 포함하여 온갖 꿈들로 채워진 수년을 견뎌온 내가, 하고많은 사람 중에 다름 아닌 그런 내가 정신질환자들이 구체적인 육체의 형태로 내 앞에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다니. - P16
몬트필리어 공청회가 끝나고 겨우 3주가 지났을 무렵, 나는 소환영장에 의해 공개된 일련의 이메일을 채운 섬뜩한 내용에 아연실색했다. - P16
신병동 관리 부실 의혹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 환자가굶어 죽었고, 몇몇 환자는 다른 환자들과 의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그중 임신이 된 경우가 최소한 한 건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3월 27일에 쓴 이메일에서 워커는 스캔들이 자신의 선거운동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내가 이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이건 절차 문제일 뿐 정책 문제는 아니니까"라고 썼다. - P17
나는 책을 쓰지 않겠다던 결심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침묵해왔던 10년이 자기 방조에 빠지는 것을 막는 길이라 정당화해왔던 바로 그 침묵이 사실은 자기 방조였음을 깨달았기때문이다. - P17
나에게는 그들이 이제 소리 내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겠다고, 무관심과 부인의 목소리,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고 말하는 목소리에 반박하겠다고 결심한 듯 보였다. - P18
선하고 양심적이며 없어서는 안 될 그 모든 사람들, 그리고 서글플 정도로 수적으로 열세인 사람들. - P18
정신질환이라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주제를 다루는 이 일에서, 나는 나보다 훨씬 훌륭한 자격을 지닌 수백 명의 저술가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 밟아나간다. - P18
이 책으로 내가 이루려는 목표는 정신질환에 관해 이미 존재하는중요한 저서의 목록을 대체하거나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순하고 자명하며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을 더욱 강력히 알리고 싶을 뿐이다. - P19
그럼에도 결국, 나는 이 책이 쓰이지 않으면 안 되는 책들 가운데하나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저술가들과 분별 있는 독자들이 이를 이해해주리라.) - P19
그런 책은 공허한 책이 될 것이라는 진실, 그 주제에 관해 이미 출판되어 있는(또는 이미 절판된 여러 좋은 해설서들이 있으니, 잘해봐야 있으나 마나 한 비슷한 책을 한 권 더하는 일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쓸모없는 책이 될 수도 있었다. - P20
하나는 조현병 나라에 사는 동료 시민을 납득시키는 일이다. 그들의 고난이 끔찍하기는 하지만 혼자만 유일하게 겪는 일이 아니며, 부끄러워할 일이나 숨어 살아야 할 이유도 아니라고. - P20
또 하나는 ‘미친 사람‘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그 병의 희생자들이 모두 위험하거나 나약하거나 부도덕한 존재가 아니며, 어떤 식으로든 한 개인으로서 온전한 인간성을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 P20
마지막으로 이 책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이들을 대신하여, 스스로 점잖은 사회라 감히 자처하는 모든 사회를 향해 그 병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한다. - P21
여러분이 이 책을 즐기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이 책으로 인해 상처 입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상처 입었던 것처럼, 상처 입어 행동하기를, 개입하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만, 더 이상 일어날 필요가 없을 때까지 계속 일어날 때에만, 우리는 딘과 케빈이, 정신증으로 고통받는 그들의 모든 형제와 자매가 구원받기를, 그들이 견딘 고통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기를 감히 희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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