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산 책, 좋은 책? 난해한 책?
내용은 좋았지만 너무 옛날 티가 많이 나서 완독을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문학연구자로서의 내가 가장 관심깊게공부했던 것은「상징」과「카타르시스」였다. 이 두가지 테마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 P7

그리고 문학의 실제적 효용가치는 도덕적 순치(致)에 있는 게 아니라 본능적 욕구의 상상적 대리배설에 있다고 믿어 카타르시스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 P7

나는 문학의 사상성 문제보다는 문학이 우리 심신(心身)에 미치는 보다 실제적인 효용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말하자면 문학(또는 예술)을 보다 정직하게 향수할 때 얻어지는 구체적인 재미나 쾌감의 문제와, 정신과 육체에 골고루 미치는 실질적 치료 효과의 문제에 천착했던 것이다. - P8

우리나라 문화계는 도무지 자유로운 개성과 돌출적 「변화」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양반주의나 훈민주의(訓民主義)의 문학관이 당연시되고 있고, 독창적 광기나 솔직한 노출은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고 있다. 보다 민중적인 대중문화와「하수도 문화」에 대해 턱없는 멸시와 탄압은 그런 수구적 봉건윤리에 기인한 문화적 후진성에서 비롯된다. - P9

이 책은 17년이라는 긴 기간에 거쳐 집필되고 수정된 것이다.  - P10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를 보고 "서구 퇴폐문화의 무분별한 추종자"라고 비난하는 것만은 참기 어려웠다. 내 세계관과 문학사상의 바탕은오히려 동양의 음양사상이나 <주역(周易)〉, 또는 한방의학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이트의 이론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나는 그의 학설 역시 우리의 전통사상으로 재조명하여 재해석하려고 애썼다. - P11

프로이트나 미셀 푸코 또는 바타이유 등의 서구 사상가들에게는 그들이 아무리 야한 주장을 했더라도 깜빡 죽으면서, 내가 성에 대해 조금 야한 주장이라도 펼치면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며 매도와 조소의 시선을 보내는 게 나로서는 못내 서운하였다. - P11

「정화(purifica-tion)」또는「배설 (purgation)」을 의미하는 말인 카타르시스」는, 비극 또는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직접적인 효용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 P17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플라톤과는 반대로, 이성적인 생활의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감정을 적절히 표출시키고 배설시켜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 P18

실상 카타르시스는 의학적인 뜻이 더욱 강한 말로서, 우리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찌꺼기 (예컨대 숙변[宿便]같은 것)을 사하(下)시켜 병을 치료한다는의미를 가지고 있다. - P19

카타르시스를 피타고라스 학파는「의술을 통한 육체의 정화」라는 말로 사용했고, 히포크라테스는「고통스러운 요소의 제거」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 P19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제8권 「음악론」에서,
음악의 선율에는 논리적인 것과 행동적인 것, 그리고 열광적인 것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고, 음악이 주는 이익은 교육적인 관점과 카타르시스의 관점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P20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음악이든 연극이든 모든 예술이 주는 효용을 우선 의학적인 의미의 카타르시스 효과에 있다고 보고, 거기에 부수적으로 교육적, 종교적 효과가 곁들여진다고 본 것 같다. - P20

그런데도 지금까지 카타르시스의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 구구한 설명이 시도된 것은, 서양인들이 플라톤적 세계관, 즉 이성을 감성보다 우월한 것으로보는 이성주의적 세계관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 P21

이러한 이성우월주의적 세계관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단지 억압된 욕구의 대리적 배설로만 보지 않으려고 하는 갖가지 시도가 이루어졌다. - P21

문학 특히 비극은 단지 무섭고 슬픈 느낌을 자아내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양식이 아니라, 보다 심각하고 의미심장한 인식의 체험을 마련해 주기 위한 양식이라는 주장이다. - P22

낭만주의 시대에는 교훈주의를 약간 벗어나 카타르시스를 「신비로운 쾌감」을 얻는 효과로 보게 된다. - P22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카타르시스 해석은 대체로두 가지 측면, 즉 「배설을 통한 심리적 쾌감」과 「작품을 통해서 얻어내는 지혜, 또는 도덕적 순화나 새로운 인식의 체험」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다. 심미적 측면의 해석도 있으나 이것 역시「쾌감」의 측면에 귀속된다. - P23

하지만 이러한 설명들이 과연 모든 예술 수용행위의 본질을 시원하게 규명해 줄 수 있는 것일까? 
- P23

 또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큰 욕망은 역시 성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극은 과연 성욕까지도 대리적으로 해소시켜 줄 수있는 것일까? - P24

연민과 공포를 비극 또는 모든 문학작품의 가장중요한 감동의 요소로 인정한다면, 결국 우리는 비극 속의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사디즘적 쾌감을 느끼는 것이 된다. 그 반대로 사디즘이라는 도착심리(倒錯心理)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극을 보고 쾌감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연극 속의 비참한상황으로부터 소격(疏隔) 돼 있어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모면되었다고 느낄 때 얻어지는 일종의 「안도감」을 맛보는 것이 된다. - P24

그래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의 본질적 의미와 효용을 밝히는 데 있어, 좀더 융통성있게 넓은 의미로 카타르시스를 수용하려고 한다. - P25

사실 요즘에 와서는 「카타르시스」가 거의 일상어로 굳어져 버린 감마저 든다. 흔히 쓰이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의미와 비슷하게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고, (후략) - P25

그럼 먼저, 카타르시스의 일차적 의미라고 할 수있는 「배설」의 측면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사람의육체적 신진대사는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먹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짜는 것」은 그보다는 덜 중요하게, 아니면 훨씬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실상 먹는 것보다는 「싸는 것」이 더 중요하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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