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책은 ‘생각에 관한 생각‘이었다.

두 가지 게임이 있습니다. A는 1억 원을 딸 확률이 100%인 게임이고, B는 1억 원을 딸 확률이 89%, 5억원을 딸 확률이 10%, 아무것도 따지 못할 확률이 1%인 게임입니다. 당신은 어떤 게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사람들은 5대 5의 비율로 A와 B를 선택하겠다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 P13

이때 모든 사람들이 A를 선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억‘을 ‘조‘로 바꾸는 것입니다.  - P13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1억 원을단돈 100만 원으로만 바꿔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를 선택한다는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B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월등히 높습니다. 왜 우리는 돈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 아닌 ‘모험적‘일까요? - P14

다음 게임을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C는1억 원을 딸 확률 11%와 아무것도 따지 못할 확률 89%의 게임입니다. D는 5억 원을 딸확률 10%와 아무것도 따지 못할 확률이 90%인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C를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P14

 게임 C와 D는 A와 B에서 각각 1억 원을 딸확률을 89%씩 뺀 것입니다. A와 B에서 똑같은 양을 빼낸 것이 C와 D인 셈이죠. 계산 대로라면 A를 선택했던 사람은 C를 선택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 P14

이는 인간이 일관적일 필요가 없으며 일관적이면 오히려 이상한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인 셈입니다. - P15

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그렇다면 우리 생각의 본질은 어떻길래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 P15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컴퓨터인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승 4패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러자 인간의 실패로 인한 인류 재앙까지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 P15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미 1997년에 기계와의 대결에서 쓰다쓴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 P15

2011년에는 왓슨이라는 컴퓨터가 미국의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무려 74회 연속으로 우승한 켄 제닝스ken Jennings를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 P17

이를지켜본 결과, 인간에게는 매우 경이로운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잠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무엇일까요?"
"과테말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는 무엇일까요?" - P17

 지금 당신 역시 모른다고 대답하거나 생각했다면, 인간의 위대하고, 놀랍고,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인간의 특별한 능력은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 P17

 컴퓨터는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대답하는 데 반드시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 P17

그런데 우리 인간은 모른다는 판단을 1초 안에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안다‘는 것에 있어서는 이미컴퓨터에 졌고, 앞으로도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에 있어서는 영원히 컴퓨터를 이깁니다. - P18

모르니까 찾아보면 되고, 모르니까 포기하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면서도 무한한일을 할 수 있습니다. - P18

우리 안에는 또 다른 나, 그리고 내 생각을 보는 더 높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내 안에서 나의 능력과 지식, 그리고 내가 아는 앎의 정도를 모니터링하는 것이죠. - P18

 메타인지는 입력된 정보가 나와 ‘친한가‘, ‘친하지 않은가만 확인하기에 재빨리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 P18

사실 우리는 어중간하게 친한 정보를 오히려 더 어려워합니다.
주변 사람에게 영국 총리 이름을 물어보면 곧바로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브렉시트‘ 등 영국에 관해 어중간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P19

지금껏 당신이 평생 살아가면서 1만 번의 실패를 맛보았다면 그중 절반은 자신의 메타인지에 속은 결과입니다. - P19

 인간이 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도 이 메타인지 때문입니다. 일이든, 사람이든, 기계든, 공부든 자주 봐서 친숙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 P19

 갑자기 자동차가 고장나면 남자들은 자신 있게 보닛을 열어봅니다. 금방이라도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아채고 고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이럴 때는보험사를 부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처입니다. - P19

우리나라에서 이런 실패가 잘 일어나지 않는 유일한 곳이 바로 제주도입니다.
렌터카가 훨씬 많은 그곳에선 대부분의 자동차와 운전자가 친하지않습니다. 그들은 자동차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험사에 전화를걸어 더 큰 실패를 미리 방지합니다. - P20

지금부터 메타인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커닝‘이라고 크게 다섯 번만 외쳐보세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워싱턴입니다. 링컨이라고 대답했다면 메타인지에게 속은 것입니다. - P20

이번에는 ‘다섯 개라고 크게 네 번만 외쳐보세요.
"리어카의 바퀴는 몇 개일까요?"
네 개라고 대답했다면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리어카 바퀴는 두개입니다. - P20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에 5초만 친숙함을 느껴도 메타인지는 고집을 부립니다. - P20

하지만 능력과 실패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메타인지를 한번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초등학교에 가서 3학년 1반부터 4까지 똑같은 재료를 주고 30분간 똑같은 일을 시킵니다. 그러면 네반 모두 비슷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 P21

우선 1반에 가서 그림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도형을 주고 각자 마음에 드는 것 다섯 개를 골라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독특한 형태의도형에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뒷감당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P21

이번에는 2반에 가서 말의 간격만 살짝 벌려줍니다. 마음에 드는것 다섯 개를 고르라는 말만 하고 교실을 나갑니다. - P21

 1반 아이들은 잘 고르지 않았던 특이하고 재미있는 형태의 도형을 제각각 고릅니다. 그때 다시 교실로 들어가지금 고른 것으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라고 합니다. 한숨을 쉬거나 곤란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보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골랐기 때문에 비슷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 P22

3반에서는 도형을 커튼 뒤에 가려놓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1반과 2반에서 했던 말의 순서를 거꾸로 합니다. 먼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든다면 무엇을 만들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 P22

 이야기를 들은 다음 커튼을 올리고 조금 전에 너희들이 말한 것을 여기 있는 도형 다섯 개를 골라 만들어보라고 합니다. - P22

4반에서는 3반과 같은 과정을 거친 뒤 다섯 개를 고른 아이들에게 옆 사람이 고른 것과 바꾸라는 하나의 과정을 추가합니다. - P22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평범한 초등학교의 3반 4반 아이들이 만든 결과물은 매우 창의적입니다.  - P22

우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머리가 좋은 것과 같다고 여깁니다.
머리가 좋은 것은 IQ가 높은 것이라고 합니다. 메타인지는 IQ보다 훨씬 무서운 능력입니다. - P23

거창한 목표를 말하거나 생각한 뒤에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도구를 받았습니다. 이때 그들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엇일까요? ‘도구를 낯설게 보는 것입니다. - P23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큰 착각을 합니다. 인간은 거창한 꿈을 꾸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나 재료, 행위도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착각은 일상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 P23

 자신의 목표와 행동의 크기를 일치화시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착각적 통제감‘이라고 말합니다. - P24

실제로 메타인지가 무언가를 낯설게 보지 않고 익숙하다고 여기는 순간 우리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봐도 우리가 그 대가를 많이 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P24

 당시 운송수단을 만들던 전문가들이 증기기관을 손에 쥐기 전까지 가장 익숙했던 것은 마차였습니다. 그들은 인류사를 바꿀 새로운 물건을 가지고도 낯설게보지 않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것에만 미련을 둔 나머지 마차도 아니고 증기기관차도 아닌 실패작을 만들어냈습니다. - P25

한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연필은 1565년에 발명됐습니다. 연필은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필기구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우개는 1770년이 되어서야 발명됨니다. 연필을 발명해 놓고도 무려 100년이 넘도록 지우지 못하고 조심히 써온 것입니다. - P25

더 가슴 아픈 것은 연필과 지우개, 이 두 가지가 만나는 데에만 100년이 더 걸렸다는 사실입니다. - P25

우리는 모두 지혜를 가지고 있다, 활용하지 못할 뿐

1930년대 활동한 카를 딘커Kart Duncker라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풀기 어려워하는 문제를 만들기 좋아했습니다. - P25

위에 악성 종양이 있는 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시경이나 개복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입니다. 유일한 치료법은 최근에 개발한 레이저를 몸 바깥에서 안쪽으로 쏘는 것입니다. 문제는 레이저로 위의 종양을 제거하면서 중간의 다른 신체 조직도 파괴되어 종양을제거하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을 정도로 레이저를 약하게 쏘면 종양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이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 P26

정답은 약한 레이저를 여러 군데에서 쏘는 것입니다. 레이저 하나하나는 모두 약하지만 여러 곳에서 쏘아댄레이저가 위장에서 하나로 합쳐지면 다른 신체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종양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 P26

 우리나라 대학뿐 아니라 외국의 수많은 대학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단 10%에 불과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강연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여러 방향에서 병력을 분산해 동시에 요새를 공격해서 함락시키는 3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주었을 때의 결과입니다. 동영상을 다본 뒤 10분쯤 지났을 무렵 학생들에게 레이저로 종양을 정리하는 문제를 내면 30%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 P26

이것이 바로 불과 20년 전에 심리학자들이 알아낸 지혜와 지식의 차이입니다. 지식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새로 배워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반면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이미 내 머릿속에 있지만 다른 영역에 있기에 그걸 가져와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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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는 현실에서 격리된 상황. 양아치들의 뇌는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달아나지도 못한 채 몸은 조금 전까지의 지령을충실하게 따르려 할 뿐이다. 나이프를 쥔 리더는 악몽을 꾸는표정으로 눈앞의 ‘그림자‘를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한순간의틈을 놓치지 않고 ‘그림자‘ 의 복부를 향해 용수철마냥 나이프를 찔러 넣었으나ーーー. - P40

칼날에 부딪힌 검고 날카로운 덩어리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 P40

그것은 ‘그림자 자신의 키에 필적할 만큼 거대한ー‘양 날의 낫‘이었다. - P41

-칸라 님이 입실하셨습니다.
《튕겼어용. 오늘따라 회선도 나쁘고 하니 이제 그만 잘래용.》
[즐꿈.]
[하던 말은 어쩌고요? 도타 횽은・・・]
《담에 이야기할게용. 후후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 P43

그후 리더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 몹시 비현실적인 광경을 본 다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 있을 만큼 대담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본 거대한 낮의 모습이 눈에띄지 않았다. 역시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무엇이 어찌됐든 지금의 상황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P43

"저기 저기요. 잠시만요자... 잠시... 잠시시시시, 마, 마요."
자신의 입에서 패배자나 쓸 것 같은 경어가 튀어나온다.
현재 자신의 신변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기는 했으나, 본능적인 공포로 그의 의사를 각성시키는 데에는 간신히 성공했다. - P44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고, 실패하지 않게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며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눈앞의 ‘그림자‘는 완전히 예상밖이었기에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 같았던 도망이라는 수단도 어이없이 막힌 지금,
양아치는 급기야 사면초가 상태에 놓였다. - P44

‘그림자‘는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대응하는 양아치를 보며말없이 서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가 싶더니 별안간 그에게 등을돌리고는 주차장 안에 있는 한 대의 트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P45

그것은 양아치가 ‘작업‘에 쓰는 차였다. 상대의 의도는 알 수없지만 이 ‘그림자‘는 자신들을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 저것말고도 차들이 여러 대 있음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차로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 P45

-이봐, 잠시만 안 돼, 안 된다고!
의중을 알 수 없는 ‘그림자‘ 의 행동 때문에 양아치는 간담이서늘해졌다. 지금까지는 눈앞의 그림자‘에 대한 공포로만 가득했으나 이제는 그에 더해 완전히 다른 공포마저 솟았다. - P45

눈앞의 비현실적인 공포, 또 하나는 몹시 현실적인 공포.
-저 트럭 안을 들켰다간 경찰은 둘째 치고 자칫했다간 처분되고 만다고! - P46

목표인 트럭까지 10미터가량 남았을 때 ‘그림자‘는 조용히 멈춰 섰다.
뒤에서 희미하게 들려온 차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그것을알아차리고 뒤돌아봄과 동시에 요란한 엔진 소리가 주차장 안에 울려 퍼졌다. - P46

직전까지 끌어들이고 나서 옆으로 뛸 셈이었으나, 공포에 쫓긴 양아치의 집중력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림자‘ 의 다리가 보일락 말락 구부러진 순간 양아치 역시 단숨에 핸들을 꺾었다. - P47

양아치는 차 전체에 전해진 충격에 기분 좋은 쾌감을 느끼며속도를 급히 떨어뜨렸다. 완전히 정차하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운전석에서 튀어나가 끝장을 낼 셈으로 쇠파이프를 들었는데ー
"?!"
땅에 쓰러진 ‘그림자‘ 훨씬 앞에 검은 덩어리가 구르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 P47

그러나 양아치가 놀란 것은 헬멧이 얹혀 있던 ‘그림자‘의 몸때문이었다.
"모.... 목...."
원래 목이 있어야 할 부분에 아무것도 없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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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토요일.
한 척의 배가 파도를 가르며 미에현 이세만에 떠있는 작은 섬으로 가고 있었다. 정원열명의 관광용 낚싯배로,
검은 야구 모자를 옆으로 돌려 쓴 선장이 키를 잡고 있다. 승선한 승객은 네 명뿐이라 배 안은 충분히 여유로웠다. - P301

핑크색 폴로셔츠 위에 남색 재킷을 걸친 퉁퉁한 남자에게장단을 맞추듯 양복 남자도 살짝 얼굴을 누그러뜨렸지만 눈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가느다란 눈에는 어딘가 냉혹함이 감돌았다. - P302

멋대로 좌석 밑 수납고를 들여다본 세번째 남자는 30대초반, 청 소재의 재킷과 와이드팬츠,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이고 양쪽 귓불에 디자인이 다른 피어스를 한 그는 들뜬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호화로운 크루저보다 이런 배로 섬에 건너가는 게 더 재미있지 않아요? 기껏해야 30분이면 도착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P302

쇠락한 어촌 항구를 출발한지 벌써 20분이 지났다. 노란머리 남자가 일어나서 "저거다!" 하고 갑판에서 큰 소리로외치자 선실 안에 있던 세 사람도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 왼쪽 대각선 앞에 기복이 평탄한 작은 섬이 보였다. 퉁퉁한 남자가 그곳이 목적지가 맞는지 물어보려 하자..... - P303

"해적섬이라 별로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섬이지만 이름이 낭만적이야. 와아, 바람이 기분 좋아!" - P303

"그래, 섬에서 유일한 건물처럼 보이는군."
두 중년 남자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직심이라는 건 속칭이야."
바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노란 머리 남자 앞에서 아는 척했다. - P304

"사전 조사를 하신 거예요?"
"어떤 섬인지도 모르는 곳에 태평하게 상륙할 수는 없잖아.."
"으음, 초대한 사람의 정체도 모르는데요." - P304

퉁퉁한 남자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어깨를 으쓱했다.
"불편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재미지 보고, 연락, 의논 같은시시한 굴레에서 벗어나서 후련한걸. 통신이 안 되는 건 현대 리조트가 갖춰야 할 훌륭한 조건일지도 몰라." - P305

"숙소가 바로 보이니까 안내받을 필요도 없네요. 저 길을쭉 따라 올라가면 되는 거죠?"
가장 젊은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제일 먼저 배에서 내렸다. 나머지 세 사람도 짐을 챙겨 상륙하자, 배는 곧바로 부두에서 떨어져 뱃머리를 돌렸다. - P305

바지 정장을 입은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섬의 첫인상을말했다.
"리조트 호텔의 현관이니 이 주변은 말끔하게 정비하겠죠 아직 공사를 시작할 기미도 안 보이지만." - P306

노란 머리 남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완만한 비탈을 올라갔다. 그 뒤를 따르는 세 사람의 감상은 다들 비슷했다.
‘완전히 어린애로군.‘
‘이런, 이상한 사람이 끼었네.‘
‘얼마나 훌륭한 호텔에 묵게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저사람이 분위기를 망칠 거야.‘ - P306

그때 커다란 쌍여닫이문이 벌컥 열렸다. 마흔 안팎의 남녀로, 남자는 예복에 나비넥타이, 여자는 메이드 복장을 입고 깊숙이 고개를 숙이더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입을 맞추어 엄숙하게 말했다. - P307

안에 들어가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화려할지 모른다는 기대도 배신당해, 누군가 "마치 회사의 휴양 시설 같다"는 말도 했지만 실제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1층 라운지에서 웰컴 드링크를 받고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가 메일에 적어 보낸 서프라이즈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겁니다." - P307

"다망한 우리를 이런 벽지에 불러들였으니 그에 합당한대접을 해줘야지. ‘그‘의 위엄이 걸린 문제야."
"위엄?"
이시무라의 말을 듣고 긴 다리를 꼭 사오토메 유나가 중얼거렸다. - P308

"근본까지는.....… 비밀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요. 인터넷을 이용해 대부호가 된 현대의 전설이기도하고요. 연휴 초반 며칠을 할애해서 초대에 응한 건 ‘그‘를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남자든 여자든 분명 독특한사람이겠죠." - P308

"초대장을 프린트해 왔어요. 음, 마지막 부분을 볼까요?
‘완전히 새로운 재미로 가득한 해적섬은 실로 천국에 가장가까운 섬입니다.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서프라이즈가 기다립니다. 귀하가 영상 크리에이터로 다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다는 점은 충분히 알지만 초대하고자 합니다. 부디 만사 제쳐놓고 방문해주십시오. 덴스케 올림." - P309

"그렇죠. 덴스케라고 하면 시대의 총아인데 그런 ‘그‘가초대해줬으니 허영심을 자극받았죠. ‘앞으로는 사업에도 관여하려 합니다. 때문에 비즈니스 세계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계신 구로세님께서 제가 준비 중인 새로운 리조트를 보시고 유익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영광입니다‘라고 하니……게다가 이시무라 선생님도 함께 가신다니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 P309

그들을 맞이한 나비넥타이 남자가 등을 꽂꽂이 편채로다가왔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단정한 생김새였지만 감정을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뭔가 전부 체념한 사람의 표정 같기도 했다. - P310

초대 손님들은 크나큰 호기심과 함께실내로 들어갔다.
‘애개, 뭐야 언제 놀라게 해준다는 거야?‘
‘생각보다 좁은데. 침대가 높아서 누워서도 바다가 보이는 게 유일한 장점이군.‘
‘어라, 시시한데. 그냥 평범한 방이잖아.‘ - P310

"두 번째 배가 도착했나?"
소파에 몸을 깊이 묻고 있던 이시무라 마사토가 엉거주춤일어섰다. 그들이 타고 온 어선이 나머지 초대 손님들을 데려온 것이다. 그 배라면 한 번에 모두 태울 수도 있지만 사람들마다 항구에 도착하는 시간이 달라서 두 번 왕복하게 되었다. - P311

"일란성 쌍둥이니까 얼굴도 똑같아요. 실망했죠?"
"그렇지 않아. 당신도 미남이야. 대도시원스럽고 눈매가 약간 거친 것도 좋아."
두 사람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시무라와 구로세는 창가로 다가가 접안하는 배를 바라보았다. - P312

 남편의 이름을 들와은 인재파견 회사 사장이 "근면해 보이는 이름이야, 고생할팔자인가" 하고 웃는 바람에 사오토메가 눈살을 찌푸렸다. - P312

"어떤 분들일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것 같던데."
갑갑한 양복에서 캐주얼한 삼베 셔츠로 갈아입은 구로세는 두 손바닥을 문질러댔다. 요요도착한 사람은 남녀세명. 그중에 후타쓰기 톰과 똑같은얼굴은 없었다. - P313

초대 손님이 모인 라운지에서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두번째 배로 섬에 도착한 사람은 여자 둘에 남자 하나 사오토메 유나가 수첩에 메모를 하자 후타쓰기 톰이 들여다보려했다. - P313

복스러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사람 가리지 않고 명함을내민 것은 에노키 도모요였다. 예순을 바라볼까 말까 하는나이로 그녀가 이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것은 틀림없다. 큼직한 붉은 테 안경 속에서 자그마한 눈동자를 쉴새없이 굴리고 있다. 오사카에서 고급 요양 시설을 운영한다는데, 회사 이름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 P314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말하는 우도 만사쿠는 초대 손님들 중에서 최연소인 스물아홉 살 언뜻 보면 자신의 운동선수 타입인데 등을 구부리고 작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말했다. "내성적이라"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라고 자꾸 변명을했다. - P315

"자네 쌍둥이 동생은 어떻게 된걸까?"
이시무라의 말에 후타쓰기가 어깨를 으쓱 움츠렸다.
"모르겠어요. 급한 용무가 생긴 것 같았으니 결국 못 오게된 건지, 덴스케에게 메일로 연락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도 모르시죠?" - P316

"여기에 멀쩡한 전화기는 있겠지? 뭔가 연락 온 건 없나?"
"아니요, 아직은 연락 온 게 없습니다."
"후타쓰기 씨의 남동생이 전화하면 알려주게." 이시무라는 톰을 돌아보며 물었다. "남동생 이름은?"
"짐입니다. 자비로운 꿈이라고 쓰고 짐이라고 읽습니다." - P316

"귀로 들었을 때 국적을 알 수 없는 이름은 사양하고 싶었지만요. 위엄과 관록 있는 이름이 좋은데. 겐지로처럼." - P317

"어머, 귀여워라."
하루야마 미하루가 감탄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덩달아몇 사람이 벽난로를 에워쌌다.
"해적섬 마스코트일까요? 정교한데요. 제가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 - P317

받침대에는 졸리 로저가 그려져 있었다. 해적기에서 흔히보는 해골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두 개의 뼈가 그려진 마크로 죽음과 공포의 상징이다. - P318

"서양식이라야 한눈에 해적인 줄 알잖아요." 에노키가 안경 속에서 실눈을 떴다. "저는 왼쪽에서 네번째 인형이 특별히 마음에 드는군요. 수염을 기르고 나이프를 들고 있는 해적이 아이가 가장 듬직해요. 사오토메 씨는 어느 게 마음에들어요?" - P318

‘어느 타이밍에 어떤식으로 놀라게 해주려는 걸까? 내일아침, 눈을 뜨면 여기가 베르사유 궁전처럼 바뀌어 있다거나? 설마‘ - P319

모바라 부부가 무슨 음료를 마실지 묻더니 와인과 맥주,
우롱차를 가져왔다. 호스트 없이 저녁 식사가 시작되어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일단 이시무라의 주도로 건배를 했다. - P319

"덴스케 씨가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몰래카메라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는 말이야? 설마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려고."
"글쎄요, 안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 P320

식사 중에는 이시무라와 에노키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다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어떤 일을 하십니까?" "고향은?" 하고 질문거리는 충분했다. - P320

"저, 후타쓰기 씨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거대한 대야가 떨어지는 영상 밤중에 배꼽 잡고 웃었어요."
"고맙습니다. 대야가 에베레스트에 충돌하는 효과음을 찾느라 고생했어요. 제법 그럴싸했죠?" - P321

"웃기는 예술 작품입니다. 통신이 되는 세계로 돌아가면꼭 봐주세요. 그 작품은 어째선지 북미와 남미에서 엄청 반응이 좋아서 곧 조회 수가 500만을 넘을 것 같습니다."
"굉장하군요." - P321

"그나저나." 구로세가 말했다. "서프라이즈는 대체 뭘까요?"
옆자리에 앉은 이시무라가 그 어깨를 툭 쳤다.
"구로세 씨, 그건 일단 머리에서 지웁시다. 우리가 잊었을때를 노려서 뭔가를 할 속셈이겠지요. 머리 위로 대야가 쿵떨어진다거나. 하하." - P322

후타쓰기가 말을 꺼냈을 때, 양쪽 구석에 놓인 스피커에서 서글픈 기타 아르페지오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어본 적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세 명, 레드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계단> 도입부라고 생각한 사람이 두 명. - P323

후타쓰기가 얼빠진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덴스케는 얼굴만 안 비치는 게 아니라 목소리도 철저하게 숨기는 건가? 일부러 합성한 어색한 목소리를 빌리다니,
음침하군."
로버트 플랜트의 노랫소리를 타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 P323

하루야마가 외치자 기계 목소리가 말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당신들의 악행을 차례대로 알려주겠다. 서로 ‘그건 너무하네‘ 하고 비난해보시지.
무작위로 먼저 구로세 겐지로 ‘
지명된 남자가 스피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 P324

"성공한 사람을 질투해서 만들어낸 비열한 거짓 소문을믿다니. 황당하군."
 구로세의 말은 무시당했다. - P324

‘다음, 사오토메 유나, 당신, 무슨 목적으로 변호사의 길을선택했지? 지성도 감정도 없는 곤충이 본능대로 잎사귀를먹듯 사법시험 공부만 하고, 법의 정신은 눈곱만큼도 배우지 않았지. 대학에서 한스 켈젠의 법철학은 듣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범죄 수준의 의료과실이나 중대한 노동재해 사건도 태연히 덮을 수 있는 거겠지. 당신을 보고 있으면 변호사가 ‘악의 먹이사슬‘에서 정점에 서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아. 목숨으로 갚도록.‘ - P325

"다음으로 이시무라 마사토, 이 이름도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금전욕과 지배욕으로 새까맣게 얼룩진 인간이 성스러운 인간이라니. 뇌물로 배가 터지도록 사리사욕을 채운것도 국민으로서는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구로세의 뒷배가 되어 법의 해석을 왜곡해온 죄가 깊다. 인간쓰레기들의 조합이 수많은 비극을 낳았어. 당신과 구로세는 공동정범이다. 목숨으로 갚도록." - P325

‘다음, 후타쓰기 톰과후타쓰기 짐. 천재 영상 크리에이터라니 아주 재미있어. 당신들 작품,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의아이디어를 훔친 것만 평이 좋지. 그건 좋다고 쳐……… 형제가 함께 마음껏 악행을 저지르고 있더군. 양심이 없으니 어렸을 때부터 약자응 괴롭히고, 협박하고, 스무 살이 넘은 뒤에는 사기에 가까운 동아리 활동으로 돈을 긁어모았지. 형은 불법 촬영물로 한 여성을 자살하게 만들었고, 동생도 여고생에게 약물을 주사해 쇼크사에 빠트렸어. 당신들은 두 사람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악마가 되는 것 같으니 이곳에서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 둘 다 용서하지 않겠다. 목숨으로 갚도록.‘ - P326

‘다음, 하루야마 미하루 당신, 약 1년 전 비 오는 밤, 음주운전으로 노인을 차로 치어 숨지게 했지. 4월 11일에 있었던일이다. 믿을 수 없는 강한 악운 덕분에 지금까지 무사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당신이 죽인 건 오로지 불우한 아이들을 구하는 일에 겸허하게 인생을 바친 성인 같은 사람이었다. 인간에게도 아직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 희망의 빛. 그런 사람을 부주의한 사고로 살해한 것만으로도 엄벌이 마땅한데 당신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주위에서 띄워주는 대로 희희낙락 살고 있지. 너무 끔찍해. 아무리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목숨으로 갚도록‘ - P326

‘다음, 에노키 도모요. 당신의 고급 요양 시설에서는 치먀 입소자를 상습적으로 학대해서, 내가 알아낸 것만으로도 세명이 사망했다. 개별 사안에 대해 담당했던 간병인들에게도책임이 있겠지만 이는 이익만 우선하는 썩어빠진 경영 방침과 가혹한 통제가 낳은 참혹한 살인이야. 지금도 계속되는 연쇄살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신을 이 섬에서 살려서 내보내진 않겠다. 목숨으로 갚도록‘ - P327

‘다음, 우도 만사쿠有作이 이름도 아주 아이러니해제대로 일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만들어보지 않았잖아. 자기를 유명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시스템 엔지니어인 척 소개했지만 당신, 사실은 유치하고 더러운 크래커잖아. 아제르바이잔의 발전소를 해킹해서 큰 정전을 일으켰지. 그 일로 다섯 명의 시민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지? 더군다나, 더군다나……… 가상화폐를 조작해 내 재산을 훼손하려 한 죄는막중하다. 목숨으로 갚도록‘ - P327

‘다음, 모바라 쓰토무와 모바라 가오리‘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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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 미술잡지 <아트뉴스ARTNEWS>는 매년 세계200대 컬렉터‘를 선정해 발표한다.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그것도수년간 지속적으로 영예를 안은 한국인이 있으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부부, 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이들이 세운 미술관의 소장품 전시를 통해 그 컬렉션이 얼마나 화려하고 다양하며 고가인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 P261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는 ‘컬렉터=재벌‘ 혹은 ‘미술품 구입자금=기업 비자금‘
이라는 의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 P261

된 중산층이라 불리는 봉급자 중에서 몇십만 원, 몇백만 원수준의 작품을 할부로 사 모으는 ‘소액 컬렉터‘도 많다. - P261

사람들은 왜 그림을 살까? 미술품은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즉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아무리부자라고 한들 모차르트 교향곡을, 톨스토이의 소설을 아무도 못 듣고 못 보게 한 채 혼자 탐닉할 수는 없다. 뮤지컬, 발레, 연극 등도 마찬가지다. 공연장을 통째 빌려 그날 하루쯤 혼자 관람할 수 있을지언정 두고두고 독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림은 언제든 내 방에서 혼자, 혹은 내가원하는 그 누군가와 감상할 수 있다. - P262

 컬렉터들에게 미술품이 위의 물건들과 다른 이유는 ‘로망‘의 여부다. - P262

 예술에 대한 사랑,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 예술품 소유자로 사회적 존경을 받는 상류층 신분,
이런 ‘워너비의 로망‘이 욕망이라는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이룬다. 이는 필자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미국의 문화잡지 <에스콰이어>가 이미1970년대에 발표한 것으로 너무나 분명한 정리인지라 지금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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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조현병 환자라면 어떨까? 우리 조상들 모두 당연한 수순을 따르듯 누구나 조현병에 걸렸었다면?
조현병이 인간 의식의 기본적인 상태라면? - P59

기괴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사실 이런 질문은 현대의 진지한 학자들이 ‘조현병이란 무엇인가‘라는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제기해온 내용이다. - P59

 심리학 교수이자 저술가인 리처드 놀Richard Noll은 조현병의 근원과 원인과 관련하여 이렇게 썼다. "현대의 독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도달한 과학 지식의 수준 앞에서 겸손하게 구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 P60

신경정신의학자들과 관련 직군의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서야 몇가지 근본적인 가능성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 P60

우리가 ‘조현병‘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의 질병 또는 ‘하나의 범주로 정의되는 질환‘이 아니라, 몇 가지 독특한 뇌의 기능 이상들이 조합된 흔치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 기능 이상들은 본질적으로는 유전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머리카락 색이나 눈동자색 같은 직접적인 유전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성격을 띤다. - P60

유전적 이상이 있다고 해도 환경적 조건에 자극되지만 않으면 조현병이 발병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조현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환경요인은 스트레스로, 태아기와 아동기 초기 그리고 청소년기에 받는스트레스가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뇌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편성하느라 각종 혼란에 가장 취약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 P60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의 과잉 공급을 초래함으로써 해를 입힌다. 코르티솔은 평소에는 간과 근육조직에서 고에너지의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생명 유지를 돕는 ‘스트레스 호르몬‘이지만, 글리코겐의 쇄도를 억제하라는 임무가 떨어지면 어느 의료 옹호활동가의 표현처럼 "공공의 적 제1호"로 바뀔 수있다. 스테로이드호르몬‘이 흘러넘칠 정도로 차오르면 체중증가, 고혈압, 심장병, 면역계 훼손, 콜레스테롤 과잉이 일어난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조현병의 도화선이 된다. - P61

많은 과학자들은 스트레스가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시냅스가지치기 pruning‘ 과정에 특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추측한다. - P61

과학자들은 조현병의 증상을 양성과 음성, 인지 증상의 세 부류로나누는 데 대체로 동의하며, 그중 양성 증상이 가장 극적이다. 양성증상은 형체와 존재 그리고 가장 흔하게는 목소리로 이루어진 상상의 세계로 환자를 손짓해 부른다. 일부 조현병 환자들은 그런 목소리와 환각을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 P61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 환각을 행동으로 옮겨 폭력적이고 치명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랴하기도 한다. - P62

인지 증상에는 기억상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들리는 말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 정보를 치리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유용한 행동을 취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 등이 포함된다. - P62

권위 있는 이론들이 점점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문외한인나로서는 신경정신의학적 발견의 초창기에 등장한 한 권의 책에서느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 - P62

제목은 거북할 정도로 거창하지만, 줄리언 제인스는 인간이 사고하는 이유와 방식, 특히 인간이 자신에 관해 사고하는 이유와 방식에 관해 이례적으로 대담하고 독창적이며 설득력 있게 논한다. - P63

유니테리언파 목사의 아들인 제인스는 심리학으로 들어서기전 극작가이자 배우로 살면서 갖게 된 비임상적 관점들을 자기 견해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 30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오늘날 우리가 정의하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의식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P63

 인류는 ‘소리의 권위‘에복종하고, 대체로 본능에 의지하는 종이었다. 자신의 생각 속으로 들어온 독자적인 존재의 것으로 여겨지는 목소리를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따랐다는 얘기다. - P63

제인스의 이론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자면 (과도한 단순화는 그 책의469 페이지 전체를 인용하지 않고서 그의 주장을 논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3000년 전 인간 뇌의 두 반구는 수백만 가닥의 섬유로 연결되어있기는 했지만 명확한 분업 체계에 따라 서로 거의 독자적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 P63

제인스는 이 우반구를 "신적인 부분"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인간이 들은 소리가 자리하는 장소였는데, 소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말소리로, 실제로 발화된 것이든 상상의 소산이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 P64

자급농업과 유목의 시대, 인구가 점점이 흩어져 분포하고 사회적 복잡성이 비교적 덜했던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양원적 뇌의 두 반구가 서로 거의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 P64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 목소리는마치 외부의 다른 존재에게서 온 것처럼 우리 안에서 메아리친다. 제인스는 사실상 오늘날 일상적으로 듣는 목소리조차 우리에게 일종의 복종을 명령한다고 주장한다.  - P64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보다는 그가 짧은순간이나마 우리의 일부가 될 것을 허용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잠시 유보하는 것이다".  - P64

책의 뒷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현재 우리가 조현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 인류 역사로 보자면 기원전 400년경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로서 시작되었다." - P65

사실 신경학적 지식이 있는 독자들에게 제인스의 주장들은 기상천외한 소리로, 너그럽게 봐준다 해도 당시 이뤄지던 여러 발견에 무지한 탓에 심각하게 허술한 주장을 내세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P65

 나 역시 흐릿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대여섯 번인가 짤막하게 그런 목소리를 경험한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에도 그 목소리는 정말 실제처럼 들렸다. 대부분 막잠에 빠져들 때나 막 잠에서깨어날 때였지만, 분명 꿈속에서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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