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조현병 환자라면 어떨까? 우리 조상들 모두 당연한 수순을 따르듯 누구나 조현병에 걸렸었다면? 조현병이 인간 의식의 기본적인 상태라면? - P59
기괴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사실 이런 질문은 현대의 진지한 학자들이 ‘조현병이란 무엇인가‘라는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제기해온 내용이다. - P59
심리학 교수이자 저술가인 리처드 놀Richard Noll은 조현병의 근원과 원인과 관련하여 이렇게 썼다. "현대의 독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도달한 과학 지식의 수준 앞에서 겸손하게 구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 P60
신경정신의학자들과 관련 직군의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서야 몇가지 근본적인 가능성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 P60
우리가 ‘조현병‘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의 질병 또는 ‘하나의 범주로 정의되는 질환‘이 아니라, 몇 가지 독특한 뇌의 기능 이상들이 조합된 흔치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 기능 이상들은 본질적으로는 유전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머리카락 색이나 눈동자색 같은 직접적인 유전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성격을 띤다. - P60
유전적 이상이 있다고 해도 환경적 조건에 자극되지만 않으면 조현병이 발병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조현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환경요인은 스트레스로, 태아기와 아동기 초기 그리고 청소년기에 받는스트레스가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뇌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편성하느라 각종 혼란에 가장 취약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 P60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의 과잉 공급을 초래함으로써 해를 입힌다. 코르티솔은 평소에는 간과 근육조직에서 고에너지의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생명 유지를 돕는 ‘스트레스 호르몬‘이지만, 글리코겐의 쇄도를 억제하라는 임무가 떨어지면 어느 의료 옹호활동가의 표현처럼 "공공의 적 제1호"로 바뀔 수있다. 스테로이드호르몬‘이 흘러넘칠 정도로 차오르면 체중증가, 고혈압, 심장병, 면역계 훼손, 콜레스테롤 과잉이 일어난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조현병의 도화선이 된다. - P61
많은 과학자들은 스트레스가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시냅스가지치기 pruning‘ 과정에 특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추측한다. - P61
과학자들은 조현병의 증상을 양성과 음성, 인지 증상의 세 부류로나누는 데 대체로 동의하며, 그중 양성 증상이 가장 극적이다. 양성증상은 형체와 존재 그리고 가장 흔하게는 목소리로 이루어진 상상의 세계로 환자를 손짓해 부른다. 일부 조현병 환자들은 그런 목소리와 환각을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 P61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 환각을 행동으로 옮겨 폭력적이고 치명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랴하기도 한다. - P62
인지 증상에는 기억상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들리는 말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 정보를 치리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유용한 행동을 취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 등이 포함된다. - P62
권위 있는 이론들이 점점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문외한인나로서는 신경정신의학적 발견의 초창기에 등장한 한 권의 책에서느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 - P62
제목은 거북할 정도로 거창하지만, 줄리언 제인스는 인간이 사고하는 이유와 방식, 특히 인간이 자신에 관해 사고하는 이유와 방식에 관해 이례적으로 대담하고 독창적이며 설득력 있게 논한다. - P63
유니테리언파 목사의 아들인 제인스는 심리학으로 들어서기전 극작가이자 배우로 살면서 갖게 된 비임상적 관점들을 자기 견해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 30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오늘날 우리가 정의하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의식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P63
인류는 ‘소리의 권위‘에복종하고, 대체로 본능에 의지하는 종이었다. 자신의 생각 속으로 들어온 독자적인 존재의 것으로 여겨지는 목소리를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따랐다는 얘기다. - P63
제인스의 이론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자면 (과도한 단순화는 그 책의469 페이지 전체를 인용하지 않고서 그의 주장을 논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3000년 전 인간 뇌의 두 반구는 수백만 가닥의 섬유로 연결되어있기는 했지만 명확한 분업 체계에 따라 서로 거의 독자적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 P63
제인스는 이 우반구를 "신적인 부분"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인간이 들은 소리가 자리하는 장소였는데, 소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말소리로, 실제로 발화된 것이든 상상의 소산이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 P64
자급농업과 유목의 시대, 인구가 점점이 흩어져 분포하고 사회적 복잡성이 비교적 덜했던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양원적 뇌의 두 반구가 서로 거의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 P64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 목소리는마치 외부의 다른 존재에게서 온 것처럼 우리 안에서 메아리친다. 제인스는 사실상 오늘날 일상적으로 듣는 목소리조차 우리에게 일종의 복종을 명령한다고 주장한다. - P64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보다는 그가 짧은순간이나마 우리의 일부가 될 것을 허용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잠시 유보하는 것이다". - P64
책의 뒷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현재 우리가 조현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 인류 역사로 보자면 기원전 400년경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로서 시작되었다." - P65
사실 신경학적 지식이 있는 독자들에게 제인스의 주장들은 기상천외한 소리로, 너그럽게 봐준다 해도 당시 이뤄지던 여러 발견에 무지한 탓에 심각하게 허술한 주장을 내세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P65
나 역시 흐릿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대여섯 번인가 짤막하게 그런 목소리를 경험한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에도 그 목소리는 정말 실제처럼 들렸다. 대부분 막잠에 빠져들 때나 막 잠에서깨어날 때였지만, 분명 꿈속에서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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