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어・・・." 소년은 중얼거렸다. 그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상념에 비해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표현이었다. 허나 현재 그의 심정을 이토록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말도 없으리라. - P55
소년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 다시 말해 사람. 어쩔 도리 없을 만큼 사람만이 그의 시야 가득히 넘쳐흐르고 있다. 시각은 오후 6시경. 회사와 학교에서 귀가하려는 사람들이 불어날 무렵이다. 아직 절정에 달하지는않았지만 사람을 ‘군집‘으로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한 인구밀도였다. - P55
샐러리맨 같은 남자의 어깨가 자신과 부딪친다. 무의식중에사과하려 했으나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개의치 않고 가버렸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죄, 죄송합니다!" 하고 웅얼거리고는 개찰구에서 약간 떨어진 기둥으로 걸어가 기대어 섰다. - P56
한 번도 살던 동네를 떠난 적이 없고 초중학교 때의 수학여행은 두 번 다 빠졌다. 스스로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즈음, 도시마구에 있는 사립고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생긴 신설학교이며 성적은 중상 정도지만 도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가까운 학교에 다닐수도 있었지만, 옛날부터 도회지를 동경했다는 점과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 간 친구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 P56
"실패한 걸까아.…." 자신의 존재 따윈 눈에도 안 들어올 것 같은 사람들의 무리에 압도되고 만다. 자신의 일방적인 착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과연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먹혀버릴 것만 같았다. - P57
그리고 그는 거기서 소꿉친구의 얼굴을 발견했다. "어, 어라.... 키다?" "질문형식이냐? 그렇다면 그에 응해주지. 셋 중에서 골라라. ① 키다 마사오미 ② 키다 마사오미 ③ 키다 마사오미." - P57
"와아, 키다! 정말 키다니?" "내가 3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고안해낸 멋진 농담은 무시하기냐... 정말 오랜만이다!" "어제 채팅방에서 만났잖아...그건 그렇고 너무 변해서 놀랐어-. 설마 머리를 물들였을 줄이야! 그리고 그 농담 썰렁해." - P58
"그럼 갈까 일단은 밖으로 나가자. 기분은 그야말로 GO 웨스트, 서쪽 입구인 척해놓곤 세이부 방면으로 향하는 나는야 교활한 안내인." "그렇구나. 근데 서쪽 입구랑 세이부 쪽 입구랑은 어떻게 달라?" "...이런." - P59
"... 너도 꽤나 독설가라니까." 마사오미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으나 단념한 듯 한숨을 쉬며 읊조렸다. - P59
유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미카도에게는 이곳 말고는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TV 드라마 등으로 유명한 장소이며 한 군데 더 생각나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음,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는 어때." "오오, 나도 그 드라마 봤어. 소설이랑 만화도 다 갖고 있지." "아, 아니, 드라마 말고 웨스트게이트파크 자체 말이야." - P60
"아니, 나도 주워들은 이야기라 정확하게는 몰라. 숫자 자체는꽤 될 테고, 컬러 갱이나 폭주족 이외에도 위험한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더욱이 일반인 중에도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놈들이 여럿 있거든.... 하지만 너는 일부러 싸움을 걸거나주먹질을 할 녀석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그 외에는 사기꾼이나수상한 장사꾼을 조심하고 갱이나 폭주족 냄새 나는 놈들에게만 가까이 안 가면 될 거야." - P61
두 사람은 지하도가 좁아지는 장소로 들어서서 지상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로 다가갔다. (중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나오자 사람이 밀집된 공기는그대로였지만 주위의 경치가 180도 바뀌었다. - P62
간혹 그러한 세력권안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에게 말을 걸기도했지만 그러한 광경마저도 흘려보내듯 인파는 끝없이 움직였다. - P62
그 감동을 솔직하게 전달했더니 마사오미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그럼 담번엔 신주쿠 시부야에 데려가줄게. 하라주쿠도 좋겠군, 컬처 쇼크 받을걸. 아키하바라도 좋고・・・ . 사람 떼가 신기하면 경마장에 데려가줄까?" "사양할래." - P64
"이 위의 도로가 수도고속이야. 아, 그렇지. 지금 걸어온 곳이 60 거리. 그거 말고 선샤인 거리라는 곳도 있지만 시네마 선샤인은 60 거리에 있으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 아차, 모처럼온 건데 안내해줄 걸 그랬네." "아냐, 다음에 해도 돼." - P64
"아-, 아니, 유마사키 씨랑 카리사와 씨는 아는 사람, 사이먼이랑 시즈오는 아까 말했지. 왜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놈 중둘이야. 하긴 그중 헤이와지마 시즈오(平和島靜雄)는 평범하게살면 말을 걸 일도 없을테고, 눈에 뜨인다 해도 달아나면 그만이지만." - P65
소년 같은 얼굴을 한 청년의 순진한 질문에, 마사오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늘을 올려보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이 대답을 내놓았다. "우선은 바로 나다!" ".....3^0.5점." - P65
"응 - 여럿 되지만 야쿠자나같은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네가 연관될 것 같은 놈이라면, 지금 말한 둘 말고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자식은 위험하니까 절대 가까이하지 마. 하긴 신주쿠에 서식하는 사람이니 만날 일도 없겠지만." - P66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마사오미는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아-, 신경 쓰지 마. 요란할 뿐이지 딱히 나쁜 이름은 아니니까. 네가 이름에 걸맞게끔 당당하게 행동하면 아무도 불평하는 녀석은 없을 거라고." - P67
"....다라즈?" "응. 완다라즈의 다라즈." "또 이상한 예시를・・・ 그건 어떤 팀이야?" 방금 전까지는 소극적이던 미카도가 웬일인지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재촉한다. - P67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신호 너머에 있는 날카롭게 디자인건물을 따라 걸었다. 건물 안에는 세련된 차가 전시되어 있어건물의 형태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미카도가 잠시 건물과 차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별안간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 P68
"너는 운이 좋아." "어?" "도쿄에 오자마자 괴담을 목격하게 됐으니까." 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눈만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반짝거렸다. - P68
헤드라이트가 없는 새까만 오토바이에 올라탄 인간의 모습을한 그림자‘. 그것이 차 사이를 누비고ㅡ두 사람의 앞을 소리도 없이 지나갔다. - P69
그것은 한눈에도 기묘한 존재였으며, 마치 소리가 울리는 범위만을 현실에서 도려낸 듯한 위화감을 풍겼다. 길을 가는 사람들 절반 가량이 발길을 멈춘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림자‘ 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P69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는 헬멧 안에 눈길을 주었다. 헬멧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머리 부분에서는 시선이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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