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쿰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댔다. 르네상스 이후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아직 그시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만 하며, 우리의 외적 존재형식 또한 16세기의 위대한 대가들의 본보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현대 건축을 자신과 완전히 다르게 정의하는 소수의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 P249

그는 신비한 힘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곡을 쓰는 작곡가처럼 건축을 했다. 그는 갑작스런 영감을 받아 완성된 건물의 평지붕에 거대한 돔을 얹거나, 아치형 천장이 있는 긴 복도에 금박 모자이크를 장식하거나, 건물 정면의 석회암을 떼어내고 대리석으로 교체했다. - P250

많은 손님이 궁정연회용으로 설계된 거대한 대리석 연회장에서 쓸쓸한 섬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편안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멋지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대리석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성당 지하실에서 울리는 소리 같았다.  - P251

랠스턴 홀쿰 부인이 차 탁자를 맡았다. 손님들은 투명하고 섬세한 도자기 찻잔을 받아들고 우아하게 두어 모금 마신 뒤술 탁자 쪽으로 사라졌다. 위엄 있는 집사 둘이 여기저기 다니며 손님들이 놓고 간 찻잔들을 챙겼다. - P251

랠스턴 홀쿰 부인은 열렬한 여자 친구의 표현대로 ‘작지만지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작은 키가 남모르는 슬픔이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 P252

키팅은 의사당에 대해 찬사를 표한 뒤 모형을 구경하겠다는 핑계로 홀쿰 부인에게서 벗어났다. 그는 적절한 시간 동안 모형 앞에 서서 정향 냄새가 나는 뜨거운 차로 입술을 뎄다. - P253

키팅은 황급히 손님들의 무리에서 프랭컨을 찾았다.
"그래, 피터! 술 한 잔 가져다줄까? 너무 독하지 않은 걸로."
프랭컨이 밝게 말한 뒤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맨해튼(위스키에 베르무트를 섞은 칵테일-옮긴이)도 그리 나쁘지는않아."
"아닙니다." 키팅이 말했다.
"앙트르 누(우리끼리 얘기지만), 완전히 엉망이지, 안 그래"
프랭컨이 의사당 모형을 향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 P254

그는 키팅을 보았다가 도서실을 보았다가 다시 키팅을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좋아, 나중에 원망 말게. 자네가 자청한 일이니까. 가세."
그들은 도서실로 들어갔다. 키팅은 적절한 위치에 멈추어섰지만 눈빛은 부적절할 정도로 강렬했다. 한편 프랭컨은 설득력 없는 쾌활한 태도로 환하게 웃으며 딸에게 말을 걸었다. - P255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건 맞습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요?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내릴 결론이 아버님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키팅이 말했다. - P256

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에요. 물론 강압 같은 건 없었어요. 신문사에서 실내장식에 대한 칼럼 같은 것에 신경이나 쓰는 줄 아세요? 내가 칼럼에 뭐라고 쓰든 아무도 신경 안써요. 게다가 난 의사당 같은 것에 관한 글을 쓸 입장도 아녜요. 실내장식에 싫증이 나서 써봤을 뿐이죠."
(중략).
"그의 의사당이 너무 끔찍해서 혹평해봐야 별 재미가 없을것 같아서요. 그래서 차라리 극찬을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 생각이 맞아떨어졌고요." - P258

"그럼 건축에서 좋아하는 게 뭐죠?"
"건축에서 좋아하는 거 없어요."
"물론 내가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아시겠죠.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왜 글을 쓰는 거죠?" - P258

"고맙습니다. 한 수 배워야겠군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오, 아녜요, 당신은 이런 말 안 좋아하죠. 하지만 와이낸드 신문에 대해 한 말은 진심이었어요. 게일 와이낸드는 내게 동경의 대상입니다. 그를 꼭 만나보고 싶은 소망을 품고있어요. 그는 어떤 사람인가요?"
"오스틴 헬러가 말한 대로 대단한 잡놈이죠." - P259

"직접 대해보면 어떤지 묻는 겁니다." 키팅이 말했다.
"모르죠.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만난 적이 없다고요?"
"그래요."
"오,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들었어요!"
"분명히 그럴 거예요. 퇴폐적인 걸 원할 때 그를 만나게 되겠죠." - P260

"내가 듣기론 모든 사람이 그에 대해 성자 같은 인물이고拜순수한 이상주의자이며 절대 부패할 수 없는......"
"그건 맞아요. 차라리 사기꾼이 훨씬 덜 위험할 거예요. 투하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시금석과도 같아요. 사람들이 그를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죠." - P261

"파티에서는 그런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게 아니죠. 키키가옳아요. 그녀는 나를 싫어하면서도 가끔 나를 초대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녀가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게 너무 분명해서 난안 올 수가 없고요. 사실 아까 랠스턴에게 의사당에 관한 솔직한 내 의견을 말해줬는데 그는 곧이 듣지 않더군요. 그는 환히 웃으며 내게 참 착한 꼬마 아가씨라고 했어요." - P262

도미니크는 벌떡 일어나 몸을 뒤로 젖힌 자세로 손님들 중 가장 매력 없는 70대 노인에게로 걸어갔다.
키팅은 자신도 고든 L. 프레스콧 꼴이 된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일 뿐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 P264

키팅은 그녀가 떠날 때 용케 문간에 있었다.
도미니크가 걸음을 멈추고 매혹적인 미소를 보냈다. 그러고는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아뇨, 집에까지 바래다주지 않아도 돼요. 타고 갈 차가 있거든요. 어쨌든 고마워요."
그녀는 가버렸고, 키팅은 문간에 서서 자신이 얼굴을 붉혔다는 생각에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다. - P265

존 에릭 스나이트가 말했다. "다들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해주게. 올해 들어온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거니까. 알다시피 큰돈은 안 되지만 명예, 연줄이 걸려 있지! 우리가 수주를 따내면 거물급 건축가 몇 명이 배가 좀 아플 거야! 오스틴 헬러가 솔직하게 말해주더군. 그가 접촉한 세 번째 회사가 우리라고, 우리에 앞서 거물급 건축가들이 제시한 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자네들한테 달렸네. 뭔가 다르고 독특하면서도 감각이 뛰어난 것, 다른 것. 자, 최선을 다해보게." - P268

로크에게 스나이트와 함께한 5개월은 공백과도 같았다. 그동안 무얼 느꼈는지 자문해보았더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대답할 게 없을 터였다. - P271

이윽고 어느 늦은 밤에 설계도가 완성되었고, 그는 도면을 앞에 펼쳐놓은 채 여러 시간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 P271

도면은 중국인 학생의 탁자에 놓여 있었고, 헬러가 들어오자 중국인 학생은 공손하게 비켜났다. 그 옆은 로크의 탁자였다. 로크는 헬러를 등진 채 돌아보지도 않고 도면 작업을 계속했다. 스나이트가 제도실로 고객을 데리고 들어오면 직원들은 끼어들지 않도록 교육이 되어 있었다. - P274

"아, 헬러 씨, 몇 가지 고려해주실 점이 있습니다. 물론 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래도 집다운 모습은 있어야 합니다. 장중함과 아늑함의 결합이라고 할까요. 이런 엄격한 느낌의 집에는 몇 가지 부드러운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그게 건축학적인 정답이죠."
"난 그런 건 모릅니다. 인생을 정답대로 살았던 적이 없어서요." 헬러가 말했다. - P275

스나이트는 헬러의 눈치를 보다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 놓고 로크에게 달려들어 고함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놈, 넌 해고야! 당장 나가! 넌 해고야!"
"그럼 우리 둘 다 해고된 거군." 오스틴 헬러가 로크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갑시다. 점심식사 했소? 어디로 좀갑시다. 얘기 좀 하고 싶소." - P276

"그게 내가 원하는 집이니까, 내가 늘 원했던 집이니까. 당신이 그 집을 지어주겠소? 설계도를 그리고 공사를 감독해주겠소?" 헬러가 말했다.
"예." 로크가 대답했다.
"지금 당장 시작하면 얼마나 걸리겠소?"
"8개월쯤요."
"그럼 늦가을까진 되겠소?"
"예." - P277

"이봐요, 난 건축가와 어떤 계약을 맺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알 테니 오늘 오후에 내 변호사가 서명할 수 있도록 당신이 계약서를 작성해줘요, 알겠소?"
"예." - P278

"계약금으로 500달러를 주겠소, 사무실을 구하고 필요한걸 마련해서 일을 시작하시오." 그가 수표책에 서명하면서 말했다.
(중략).
수표에는 ‘건축가, 하워드 로크‘ 라고 쓰여 있었다. - P278

11

하워드 로크는 자신의 사무실을 열었다. - P279

존 에릭 스나이트는 그가 독립하는 걸 반대했다. 로크가 자신의 제도 도구를 챙기러 가자 스나이트가 대기실로 나와 반갑게 악수하며 말했다. "어이, 로크! 그래, 별일 없지? 들어오게, 들어와 할 말이 있네!" - P279

"이 사람, 어제 내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나를 원망하는 건아니겠지? 자네도 알잖나. 내가 좀 이성을 잃었어. 자네가 한 행동 때문이 아니었네. 자네야 그때 당연히 그걸, 그 도면을 고쳐야 했지. 어쨌든 잊어버리게, 유감 같은 건 없는거지?" - P280

"맙소사, 이 사람아, 자네 제정신이 아니군! 지금 혼자 사무실을 차리겠다고? 경험도, 연줄도 또..………… 아무것도 없이!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네. 업계 사람 아무한테나 물어보게. 다들 뭐라고 하나 보라고. 이건 터무니없는 짓일세!"
"아마 그럴 겁니다."
"이보게, 로크, 제발 내 말 좀 듣게." - P281

스나이트는 며칠 동안 로크와 헬러를 상대로 소송을 낼까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선례가 없었기에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 P282

"사무실 잘 구했군. 빛도 잘 들고 널찍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기대할 순 없지. 전망도 불확실하고, 안 그런가, 하워드?"
"그렇지."
차 있
"지독한 모험을 걸었군."
"아마도."
"정말 이대로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인가? 혼자서?" - P283

"하워드, 난 자네의 용기가 감탄스럽네. 사실, 알다시피, 난 자네보다 경험도 훨씬 더 많고 업계에서 명성도 더 높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니까 고깝게 듣진 말게, 어쨌든 나라면 감히 이런 모험을 걸진 않을 걸세."
"그래, 자넨 그럴 거야."
"그래, 자네가 먼저 도약을 했군. 이런. 이렇게 될 줄 누가알았겠나?...... 세상의 행운을 다 거머쥐길 비네." - P284

"피터, 난 확신에 차 있네."
"자격증 따는 건 생각해봤나?"
"신청해놨어."
"자넨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심사가 까다로울 거야."
"아마도."
"자격증을 못따게 되면 어쩔 셈인가?"
"딸 거야." - P285

"난 건축가협회에 안들 걸세."
"협회에 안 들어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넨 이제 자격이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
"협회에서 가입 권유가 올 거야."
"그럴 필요 없다고 전해주게." - P285

"협회 가입을 거부하면 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거야."
"어차피 그들과 적이 될 테니 상관없어."
로크가 사무실을 연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은 헨리 캐머런이었다. - P286

"제 사무실을 열게 됐습니다. 지금 막 첫 번째 계약도 마쳤고요."
캐머런은 두 손을 포개서 지팡이 손잡이를 눌러 지팡이 끝을 땅에 박고 큰 원을 그리며 돌리고 있었다. - P287

"뭔데? 누구 건데? 얼마짜리야?"
그는 조용히 로크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그러다 로크가 가려고 일어서자 갑자기 말했다.
"하워드, 사무실 열면 사진 몇 장 찍어서 보여주게."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죄책감에 젖어 고개를 돌리고 욕지거리를 했다.
"내가 노망이 났나 보군. 못 들은 걸로 하게."
로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88

캐머런은 그 사진을 다시 들었다.
"하워드, 이걸 보게."
그는 사진을 로크에게 보였다.
"간단히 ‘건축가, 하워드 로크‘ 라고만 되어 있지. 하지만이 명패는 사람들이 성문에 새기고 목숨을 바쳐 지키는 좌우명과도 같아. 이 명패는 너무도 엄청나고 암울한 것, 세상의 모든 고통, 자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는지 아나? (후략)." - P289

로크는 날렵한 대들보들과 기둥들이 만든 네모난 하늘들을, 그가 하늘에서 떼어낸 허공의 빈 정육면체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손이 무의식적으로 벽들을 그려 방들을 만들었다. - P290

"형편없는 건축가군. 이런 식으로 일을 방치하다니. 벌써사흘째 자네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네."
"마이크, 어떻게 여길 온 거예요?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죠?" 로크는 마이크가 개인주택 같은 작은 공사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 알면서 그러나, 내가 자네의 첫 작품을 놓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안 그런가? 이게 추락이라고 생각하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 P291

일꾼들은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건설업체 감독들은 그렇지 않았다. 로크는 집을 지을 건설업체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형편이 좋은 업체들은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우린 그런건 안 합니다." "아뇨, 골치 썩히고 싶지 않아요. 작은 공사치곤 너무 복잡해요." "도대체 누가 그런 집을 원하는 겁니까? 그런 괴짜한테는 나중에 공사비도 못 받기 십상이에요. 안 합니다." "그런 건 지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짓는지 몰라요. 건축다운 건축만 하겠습니다." - P292

로크는 일이 필요한 작은 업체를 찾아 공사를 맡겼다. 그업체는 특이한 경험 하나 쌓는 셈치고 공사는 해보겠지만 위험부담이 있다며 실제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공사비를 청구했다. - P292

로크는 낡은 포드를 한 대 사서 필요 이상으로 자주 현장에 드나들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거나 제도 탁자 앞에 서서 억지로 현장을 잊는 것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 P293

로크는 질주하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자신과 그들의 오늘에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트럭 한 대가 반짝이는 화강암 석재를 산더미처럼 싣고 헐떡대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 P294

"하워드, 자네가 나를 위해 지어주고 있는 집이 이토록 마음에 드는 이유가 뭘까?"
"집도 사람처럼 정직할 수 있죠. 집이나 사람이나 정직한경우가 드물긴 하지만요." 로크가 대답했다. - P295

"내가 벌써 그걸 느끼고 있다는 걸 아나? 난 이 집에 들어오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 같네. 단순한 일과조차 정직성이까 품위 같은 걸 지니게 될 것 같아. 자네가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이 집에 맞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들어." - P296

"사실 전 당신 생각은 한 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집만 생각했죠." 로크가 그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어쩌면 그건 제가 당신을 배려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요." - P297

헬러의 집은 1926년 11월에 완공되었다.
1927년 1월, <아키텍추럴 트리뷴>은 지난 한 해 동안 세워진 미국 최고의 집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실었다. 편집자들이 가장 가치 있는 건축 작품으로 선정한 스물네 집의 사진들이 광택이 흐르는 고급 재질의 커다란 지면 12페이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헬러의 집은 거기 없었다. - P297

피터 키팅은 업계 친구들에게 관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난 하워드 로크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데 아주 재주가 뛰어난 친구야, (중략). 그 집은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지은거야. (후략)."
미국 땅에 새로 생기는 건물에 대해서는 빼놓지 않고 의견을 내는 엘즈워스 M. 투히는 헬러의 집에 대해 모르는지 칼럼에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는 하다못해 악평으로라도 독자들에게 그 집에 대해 알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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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일 월요일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 P7

2

2005년 5월 2일 월요일.

알란 칼손은 양로원 건물을 따라 길게 뻗은 팬지꽃 화단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잠시 망설였다. 그는 밤색 재킷과 밤색바지 차림이었다. 발에도 같은 색 펠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 P8

알란은 자기 방에 다시 기어 올라가 신발을 신고 나오는 게어떨까 하고 얼핏 망설였다. 하지만 재킷 안주머니 속의 지갑이 불룩하게 만져지는 느낌에 이대로 떠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알리스 원장이 누구인가? - P8

고개를 돌려 양로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곳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거처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 P9

그는 자기가 저 양로원에 웅크리고 앉아 <이젠 그만 죽어야지>라고 되된 것은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몸뚱이는 늙어서 삭신이 쑤실지라도, 알리스 원장에게서 멀리 벗어나 실컷 돌아다니는 일이 이 친구처럼 여섯 자 땅 밑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지 않겠는가? - P10

이렇게 생각한 백회 생일 파티의 주인공은 무릎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헨닝 알고트손에게 작별을고한 다음, 이 대책 없이 시작된 도피 행각을 계속해 나갔다. - P10

우리가 앞서 말했듯 말름셰핑은 매우 한적한 마을이었고,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망쳐 나온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백 번째 생일을 축하하지 않기로 작정한 이후 지금까지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 P11

사실 알란은 청년의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정신은 천근 같은 두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옮겨 창구까지도달해야 하는 그 힘겨운 작업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다. 마침내 창구에 도착한 그는 왜소한 사내에게 물었다. 혹시 어떤 목적지라도 좋으니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나는 대중교통 수단이있는지, 만일 있다면 차표 값은 얼마나 되는지? - P12

왜소한 사내는 운행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잠시 생각했다.
「3분 후에 202번 버스가 스트렝네스 방면으로 출발해요. 이거면 괜찮겠어요?」알란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왜소한 사내는 다시 알려 주기를, 버스는 터미널 출입구 바로 앞의 주차장에서 출발하며 운전기사에게 직접 차표를 사는 게 더 편할 거라고 했다. - P12

알란은 청년도 좋은 오후를 보내길 바란다고 상냥하게 대답하고는, 자신이 뭔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바로 그거였다. 청년은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알란이 자기 트렁크를 봐주기를 원했다. - P13

청년은 마지막 문장은 듣지도 않았다. 알란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몸을 홱 돌려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백세 노인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또 청년의 무례한 태도에 특별히 역정이 난 것도 아니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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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내용을 듣고 뭘 하는 부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우리들 이웃사촌부의 활동목적,
간단히 말하자면 그건 ‘친구 만들기‘다.

이건 그런 안쓰러운 부활동을 위해 모인 안쓰러운 녀석들의, 개시한 지 열 페이지 만에 히로인 두 명이 토악질을 하는, 너무나도 안쓰러운 일상의 이야기... - P23

하세가와 코다카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있자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슬슬 돌아가려고 도서실을 나섰을 때, 체육복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교실로 향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하교했거나 부활동 중인 탓에, 복도를 걷고 있는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 P25

내가 이 학교에 전학 온 지 이미 한 달. 수업 등을 통해 클래스메이트 전원의 목소리를 들었을 테니, 이런 목소리의 소유자가 있다면 잊을 리가 없다. - P25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사실은 들려오는 게 한 명의 목소리뿐이라는 거다.
아마 휴대전화로 친구와 대화하는 거겠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전화하는 도중에 내가 갑자기 들어가면 그녀는 놀라지 않을까.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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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즐거운 미소로 그 찬사를 받아들였다. "아, 난 전기기사에, 배관공에, 대갈못 잡는 인부에 안해본게 없어요."
"그러면서 학교도 다녔고?"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건축가가 되려고?"
"예." - P202

"그럼 자넨 예쁜 그림과 다과파티 말고도 아는 게 있는 최초의 건축가가 되겠군. 사무실에서 현장에 내보내는 범생이들을 자네도 봐야하는데." - P202

두 사람은 지하 술집 구석 탁자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마이크는 공사장에서 비계가 무너지는 바람에 5층 높이에서떨어져 갈비뼈가 석 대나 나갔지만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사실 그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로크는 건축 업계에서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 P203

"빨강머리, 예외가 하나 있긴 했지." 그가 다섯 번째 맥주잔을 들고 열띠게 말했다. "딱 한 사람 있었는데, 자넨 어려서모를 거야. 하지만 건축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지. 내가 자네나이였을 때 그 사람 밑에서 일한 적이 있어." - P203

"이름은 헨리 캐머런. 아마 죽었을 거야.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까."
로크가 한참 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마이크, 그분은 죽지 않았어요. 나도 그분 밑에서 일했어요."
"자네가?"
"거의 3년 동안." - P204

8

(전략).
키팅이 출장을 떠난 얼마 후에 사환이 로크에게 와서 사장님이 찾으신다고 전했다. - P205

"자네가 캐머런 밑에서 일했던 친구지, 그렇지?" 프랭컨이물었다.
"예." 로크가 대답했다.
"키팅이 자네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더군." 프랭컨은 애써유쾌한 태도를 보이다가 쓸데없는 친절 같아서 그만두었다.
로크가 조용히 앉아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 P206

프랭컨은 자신의 너그러운 제안에 스스로 감동하여 로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로크는 여전히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중략).
프랭컨의 목소리가 저절로 끊겼다.
"사장님, 다나 빌딩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P207

"허락해주십시오. 다나 빌딩을 베끼는 건 아니고 헨리 캐머런이 맡았다면 그가 원했을 방식으로 설계하겠습니다."
"현대적인 방식을 말하는 건가?"
"아 ………… 글쎄요,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죠." - P208

"지금 자네가 날 비판하고 건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 프랭컨이 물었다.
"저는 애원하고 있는 겁니다." 로크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 P209

"사장님은 그 이유를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제게 설계는맡기지 마십시오. 다른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안 합니다. 캐머런의 작품에 따르지 않는 것도요."
"설계를 안 하겠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자네 나중에 건축가가 되려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는 아닙니다."
"오.. 알겠어. 그래서 못하겠다고? 안 하겠다 이거지?" - P210

"지금 당장 이 방에서, 이 회사에서 나가! 바로 꺼져버려!
가서 다른 일자리나 찾아봐! 잘해보라고! 남은 봉급을 챙겨서나가!"
"예, 사장님."
그날 저녁 로크는 퇴근 후에 늘 마이크를 만날 수 있는 지하 술집으로 갔다. 이제 마이크는 프랭컨 앤드 헤이어에서 설계한 공장의 시공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 P211

키팅은 워싱턴에서 돌아오자 곧장 프랭컨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제도실에 들르지 않았기에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프랭컨이 활달하게 그를 맞이했다.
"어이쿠, 이거 반갑구먼! 뭐 마시겠나? 위스키다? 아니면브랜디 조금?"
"아닙니다. 담배 한 개비 주세요." - P212

"건방진 자식! 도대체 그런 놈을 어디서 데려온 거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 딴엔 잘해주려고, 진짜 기회를 줘보려고 파렐 빌딩 설계를 맡겼지. 결국 브렌트가 단순화된 도리아식으로 설계해서 파렐의 승인을 받은 그 건 말이야. 그런데 자네 친구가 그걸 안 하겠다고 거부하는 거야. 이상인가 뭔가 하는 걸 갖고있는 모양이더군. 그래서 내가 내보냈지. 왜 그래? 왜 웃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 봐도 훤해서요."
"그놈을 다시 데려오게 해달라고 조르진 않겠지?" - P214

며칠 동안 키팅은 로크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무슨 말인가 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꾸 미루게 되었다. 그는일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 P215

로크는 자신을 분개하게 만드는 사악한 건축가들 중에서가장 그 정도가 덜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든 다음, 아무런 분노도 희망도 없이 냉정하고 체계적으로 구직에 나섰다. - P215

로크는 이따금 캐머런을 보러 뉴저지에 갔다.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집 포치에 나란히 앉곤 했는데 캐머런은 휠체어에 앉아 무릎에 덮은 낡은 담요에 손을 얹고 있었다. - P216

여름이 지나가고 명단에 든 건축가들을 다 만나본 로크는한번 거절당한 곳들을 다시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업계에 자신의 신상 정보 몇 가지가 알려져 있음을 깨닫게되었다. 어딜 가나 그가 듣는 이야기는 똑같았다. (비록 말투는사람에 따라 달라서 퉁명스럽기도, 소심하기도, 분노에 차 있기도, 미안함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 P-1

9월에 그는 <아키텍추럴 트리뷴>지에 실린 미국 건축가협회 소속 고든 L. 프레스콧의 ‘내일에 길을 내줘라‘ 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 내용은 이러했다. "건축의 비극은 재능 있는 신예들 앞에 가로놓인 고난들이고, 훌륭한 재능들이 그런고 난 속에서 사장되고 있다. 건축은 젊은 피와 새로운 사고의 결핍으로, 독창성과 비전과 용기의 부족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필자는 전도유망한 신예들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용기를 주어 키워주고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P218

고든 L. 프레스콧의 사무실 대기실은 회색과 검정, 진홍색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올바르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대담한 인상을 풍겼다. - P-1

그는 그을린 손에 로크의 도면을 들고 말했다. (중략). "건축은 본래 공리적 개념이고, 문제는 실용주의적 원칙을 미적 추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지. 그 외의 건 아무 의미도 없고." - P219

 그는 다음 도면을 흘낏 보고 맨 뒤로넣었다. "대중의 취향과 대중의 감성이 예술가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 기준이지. 천재란 일반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예외는 예외가 아닌 것을 끌어내기위한 것이고." 그는 손에 든 도면 뭉치의 무게를 가늠해보고는 반 정도를 봤다는 걸 깨닫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 P220

10월의 어느 늦은 저녁, 로크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어져온 많은 날들과 같은 하루였고 오늘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거절의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 P221

로크는 이스트 강으로 이어지는 샛길로 들어섰다. 저 앞에 외로이 켜져 있는 신호등 불빛이 황량한 어둠 속의 붉은 점으로 보였다.  - P222

9

존 에릭 스나이트는 로크의 스케치들을 보면서 석 장을 따로 빼낸 후 나머지는 반듯하게 쌓아놓았다. 그는 그 석 장을 다시 훑어본 후 다른 스케치 뭉치 위에 하나씩 탁,탁, 탁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아주 훌륭해. 과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훌륭해. 오늘밤 뭐하나?" - P223

"좋아! 훌륭해! 내가 원하던 거야. 캐머런 스타일. 다른 종류는 다 있지. 아, 참, 프랭컨에선 얼마 받았나?"
"65달러요."
"흠, 난 미식가 가이처럼 돈을 물 쓰듯 할 순 없네. 50달러가 최고야. 괜찮나? 좋아. 당장 시작하게, 빌링스가 자네에게 백화점에 대해 설명해줄 거야. 난 현대적인 걸 원하네. 알겠나? 현대적이고, 격렬하고, 미친 것. 사람들 눈이 튀어나오게 하는 것. 자제하지 말게. 극단까지 가. 생각나는 묘기는 다 부려. 괴상할수록 좋아. 가세!" - P224

로크는 앞에 놓인 깨끗한 흰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가느다란 연필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연필을 내려놓았다가다시 집어 엄지손가락으로 매끄러운 연필 자루를 부드럽게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연필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는 얼른 연필을 내려놓았다. - P225

그에게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는 다섯 종류의 설계사들을 두고 일이 들어올 때마다 그 다섯 명에게 경쟁을 시켰다.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를 선정한 뒤에도 나머지 네 개 안에서 장점들을 취하여 선정된 안을 개선시켰다. "머리 여섯 개를 모아놓은 게 하나보단 나으니까." 그의 주장이었다. - P226

로크는 자신의 일에 대해 어디까지 기대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의 작품은 전체가 아닌 부분들의 형태로 세워질 것이고 그건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다. - P226

가이 프랭컨은 건설노조 동맹파업에 격분했다. 파업은 노이스-벨몬트 호텔 시공 현장에서 시작되어 뉴욕의 모든 공사장으로 퍼져갔다. 노이스-벨몬트 호텔의 건축회사가 프랭컨앤드 헤이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 P227

와이낸드 신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늘 특권층에 대항하여 보통 사람의 권리를 옹호해왔지만, 법과 질서의 파괴만큼은 지지할 수 없다." 와이낸드 신문들이 대중을 이끄는지, 아니면 대중이 와이낸드 신문들을 이끄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둘이 놀랍도록 보조가 잘 맞는 것은 사실이었다 - P227

프랭컨은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했다. 게일 와이낸드의 부동산 사업이 그의 언론제국보다 더 거대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노이스-벨몬트 호텔은 프랭컨이 처음 맡은 와이낸드 일이었고, 그는 첫 인연이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을 낳을 수도 있다는 계산으로 이 기회에 탐욕스럽게 매달렸다.  - P228

키팅은 사무실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할 말도 없었고다들 그를 슬금슬금 피했다. 그래서 일찍 퇴근하여 쌀쌀한 12월의 황혼 속에서 집으로 걸어갔다. - P229

키팅은 엘즈워스 투히에 관한 최근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짜증나는 파업 문제가 떠올라 그냥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었다. 6개월 전, 엘즈워스 투히는 《돌의교훈》의 성공에 힘입어 와이낸드의 신문 <배너>에 ‘하나의 작은 목소리‘ 라는 제목의 일일 칼럼을 싣기로 계약을 맺었다. - P230

키팅은 어느 편도 아니었으며 파업 자체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키팅은 험악한 침묵 속에서 저녁을 먹었고, 키팅 부인이
"오, 그런데 말이야……." 하고 어디로 향할지 뻔한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자 무뚝뚝하게 말했다. - P231

키팅은 지독한 배신이라도 당한 듯 망연히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 같은 뼈저린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 P232

캐서린은 빗속에서 어깨를 웅크리고 배는 지쳐서 앞으로내밀고 서 있었다. 코가 반들거렸고, 두 눈은 흥분으로 반짝였다. 키팅은 그녀를 바라보며 멈추어 섰다.
캐서린이 그에게 기계적으로 유인물을 내밀더니 시선을 들고 그를 봤다. 그녀는 놀라는 기색 없이 미소 지으며 행복하게 말했다.
"어머, 피터! 이렇게 와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 P233

"그만! 나도 다 알아. 아주 신물이 나. 네 삼촌이나 와이낸드나 빌어먹을 파업에 대한 얘긴 더 듣고 싶지 않아. 여기서나가자."
"오, 안 돼요, 피터! 그럴 수 없어요! 삼촌의 연설을 들어o......." - P234

확성기가 날카롭고 새된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뱉어냈다.
로비에 모인 사람들이 헐떡거렸다. 캐서린이 키팅의 팔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오, 피터! 와이낸드를 말하는 거예요! 와이낸드는 헬스 키친에서 태어났거든요. 오스틴 헬러는 그런 말을 해도 되지만, 와이낸드는 엘즈워스 삼촌에게 분풀이를 할거예요!" - P236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엘즈워스 몽크턴 투히를 소개하겠습니다!"
‘베넷이 내기에서 75센트를 땄군.‘ 키팅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키팅의 뒤통수를 강타했는데, 그건 소리도 주먹도 아니었다.  - P237

키팅은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그는 그 목소리가 말하는것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의미 없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듣고 있었다. 굳이 그 의미를 알 필요가 없었다. - P238

"여기서 나가자." 키팅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난폭했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캐서린이 무의식에서 깨어나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 P239

여러 날 후, 키팅은 도시 전체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집회가 열린 다음 날 게일 와이낸드가 엘즈워스 투히의 봉급을올려주었다는 것이다. 투히는 격분해서 그걸 거절했다. "와이낸드 씨, 당신은 나를 뇌물로 매수할 수 없습니다." - P240

파업이 끝나자 중단되었던 도시 전체의 공사들이 의욕적으로 재개되었고 프랭컨 앤드 헤이어에도 새 일거리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키팅은 밤낮으로 일에 매달려야 했다. 프랭컨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내며 파업 기간 동안 자신이 직원들에게 주었을지도 모르는 상처를 무마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조촐한 파티까지 열어주었다. - P241

. 키팅 역시 기분이 좋았는데 기품 있는 에인즈워스 부인이 천진한 미소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난 정말로 당신이 프랭컨 씨의 동업자인줄 알았어요! 맞아, 회사 이름이 프랭컨 앤드 헤이어인데! 나도 참, 그렇게 무신경하다니! 어쨌거나 변명 같지만 당신은 그 회사 동업자가 될 자격이 충분해요!" - P241

세 시간 후, 키팅은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그 사건에 대해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는 기분이 가벼웠고, 머리도 맑고 힘이 솟았다. 그는 사내 도서관에 가서 새 도면을 최고의 원형들과 비교하기 위해 도면을 활기차게 흔들면서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방을 나섰다. - P242

키팅은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 느낌은 어느 사이인가 사라졌지만 감탄은 남아 있었다. 그는 열성적으로 안내 직원에게 다가갔다.
"누구예요?" 그가 물었다.
안내 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장님 찾아온 분이에요."
"와, 사장님은 복도 많지! 저런 여자를 나한테 숨기고 있었다니." 키팅이 말했다. - P244

10

랠스턴 홀쿰은 목이 안 보였지만 턱이 목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의 턱은 호를 그리며 가슴에 얹혀 있었다. 그의 분홍빛뺨은 늙어서 탄력을 잃어 삶은 복숭아처럼 흐물흐물해 보였다. - P248

랠스턴 홀쿰에게 그런 것들이 허용되는 건 그가 천재이기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건축가협회 대표이기도 했다. - P248

그는 미국 건축계의 한심한 현실과 건축가들의 원칙 없는절충주의를 개탄했다. 그는 역사의 어느 시대에든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정신에 따라야지 과거의 것들을 베껴서는 안 된다고, 현실 속에 예술의 뿌리를 심기를 요구하는 역사의 법칙을 존중해야만 역사에 진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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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갈리다/헷갈리다

이번 시험에는 정답이 헛갈리는(○)/헷갈리는(○) 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이전에는 ‘헷갈리다‘가 ‘헛갈리다‘의 잘못된 표기였습니다. 하지만 복수표준어로 인정되어 이제 ‘헷갈리다‘도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두 단어의 의미는 같습니다. - P172

‘얼굴에 핏기가 없고 창백하다‘는 의미는 ‘핼쓱하다‘가 아닌 ‘핼쑥하다‘가 바른 표기입니다. 일상 대화에서 ‘핼쓱하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은데 틀린 표현입니다.

비슷한 단어로 ‘얼굴에 핏기나 생기가 없이 파리하다‘는 의미의 ‘해쓱하다‘가 있습니다. - P173

갈가리 <부사> ‘가리가리‘의 준말.


갈갈이 <명사> ‘가을 갈이‘의 준말.

- P175

거나하다: 술 따위에 취한 정도가 어지간하다.
‘건하다‘는 ‘거나하다‘의 줄임말입니다.

(중략).

찐하다: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
- P178

-기에/-길래


뭐가 문제기에 (○)/문제길래(○) 안 되는 거야?

‘-기에‘와 ‘-길래‘는 둘 다 표준어입니다. 원인이나 근거를 나타내는 연결어미로 쓰입니다. 과거에는 ‘-기에‘만 표준어였지만 ‘-길래‘도 복수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다만, ‘-길래‘는 주로 구어적인 표현에 많이 쓰입니다. - P180

깨끗이/깨끗히

집을 매일 깨끗이 (○)/깨끗히(X) 청소합니다.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습니다. - P181

1. 우선, ‘-하다‘가 붙는 어근의 뒤에는 ‘히‘로 적습니다.

2. 예외가 있습니다. ‘하다‘가 붙는 어근의 끝소리가 ‘ㄱ‘ 또는‘ㅅ‘인 경우에는 ‘-히‘가 아닌, ‘-이‘로 적습니다.

3. ‘ㅂ‘ 불규칙 용언의 어간 뒤에는 ‘이‘로 적습니다.

4. 첩어 또는 준첩어 명사의 뒤에는 ‘이‘로 적습니다.

5. 부사 뒤에는 ‘이‘로 적습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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