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는 즐거운 미소로 그 찬사를 받아들였다. "아, 난 전기기사에, 배관공에, 대갈못 잡는 인부에 안해본게 없어요."
"그러면서 학교도 다녔고?"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건축가가 되려고?"
"예." - P202

"그럼 자넨 예쁜 그림과 다과파티 말고도 아는 게 있는 최초의 건축가가 되겠군. 사무실에서 현장에 내보내는 범생이들을 자네도 봐야하는데." - P202

두 사람은 지하 술집 구석 탁자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마이크는 공사장에서 비계가 무너지는 바람에 5층 높이에서떨어져 갈비뼈가 석 대나 나갔지만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사실 그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로크는 건축 업계에서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 P203

"빨강머리, 예외가 하나 있긴 했지." 그가 다섯 번째 맥주잔을 들고 열띠게 말했다. "딱 한 사람 있었는데, 자넨 어려서모를 거야. 하지만 건축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지. 내가 자네나이였을 때 그 사람 밑에서 일한 적이 있어." - P203

"이름은 헨리 캐머런. 아마 죽었을 거야.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까."
로크가 한참 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마이크, 그분은 죽지 않았어요. 나도 그분 밑에서 일했어요."
"자네가?"
"거의 3년 동안." - P204

8

(전략).
키팅이 출장을 떠난 얼마 후에 사환이 로크에게 와서 사장님이 찾으신다고 전했다. - P205

"자네가 캐머런 밑에서 일했던 친구지, 그렇지?" 프랭컨이물었다.
"예." 로크가 대답했다.
"키팅이 자네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더군." 프랭컨은 애써유쾌한 태도를 보이다가 쓸데없는 친절 같아서 그만두었다.
로크가 조용히 앉아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 P206

프랭컨은 자신의 너그러운 제안에 스스로 감동하여 로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로크는 여전히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중략).
프랭컨의 목소리가 저절로 끊겼다.
"사장님, 다나 빌딩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P207

"허락해주십시오. 다나 빌딩을 베끼는 건 아니고 헨리 캐머런이 맡았다면 그가 원했을 방식으로 설계하겠습니다."
"현대적인 방식을 말하는 건가?"
"아 ………… 글쎄요,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죠." - P208

"지금 자네가 날 비판하고 건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 프랭컨이 물었다.
"저는 애원하고 있는 겁니다." 로크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 P209

"사장님은 그 이유를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제게 설계는맡기지 마십시오. 다른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안 합니다. 캐머런의 작품에 따르지 않는 것도요."
"설계를 안 하겠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자네 나중에 건축가가 되려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는 아닙니다."
"오.. 알겠어. 그래서 못하겠다고? 안 하겠다 이거지?" - P210

"지금 당장 이 방에서, 이 회사에서 나가! 바로 꺼져버려!
가서 다른 일자리나 찾아봐! 잘해보라고! 남은 봉급을 챙겨서나가!"
"예, 사장님."
그날 저녁 로크는 퇴근 후에 늘 마이크를 만날 수 있는 지하 술집으로 갔다. 이제 마이크는 프랭컨 앤드 헤이어에서 설계한 공장의 시공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 P211

키팅은 워싱턴에서 돌아오자 곧장 프랭컨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제도실에 들르지 않았기에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프랭컨이 활달하게 그를 맞이했다.
"어이쿠, 이거 반갑구먼! 뭐 마시겠나? 위스키다? 아니면브랜디 조금?"
"아닙니다. 담배 한 개비 주세요." - P212

"건방진 자식! 도대체 그런 놈을 어디서 데려온 거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 딴엔 잘해주려고, 진짜 기회를 줘보려고 파렐 빌딩 설계를 맡겼지. 결국 브렌트가 단순화된 도리아식으로 설계해서 파렐의 승인을 받은 그 건 말이야. 그런데 자네 친구가 그걸 안 하겠다고 거부하는 거야. 이상인가 뭔가 하는 걸 갖고있는 모양이더군. 그래서 내가 내보냈지. 왜 그래? 왜 웃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 봐도 훤해서요."
"그놈을 다시 데려오게 해달라고 조르진 않겠지?" - P214

며칠 동안 키팅은 로크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무슨 말인가 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꾸 미루게 되었다. 그는일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 P215

로크는 자신을 분개하게 만드는 사악한 건축가들 중에서가장 그 정도가 덜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든 다음, 아무런 분노도 희망도 없이 냉정하고 체계적으로 구직에 나섰다. - P215

로크는 이따금 캐머런을 보러 뉴저지에 갔다.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집 포치에 나란히 앉곤 했는데 캐머런은 휠체어에 앉아 무릎에 덮은 낡은 담요에 손을 얹고 있었다. - P216

여름이 지나가고 명단에 든 건축가들을 다 만나본 로크는한번 거절당한 곳들을 다시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업계에 자신의 신상 정보 몇 가지가 알려져 있음을 깨닫게되었다. 어딜 가나 그가 듣는 이야기는 똑같았다. (비록 말투는사람에 따라 달라서 퉁명스럽기도, 소심하기도, 분노에 차 있기도, 미안함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 P-1

9월에 그는 <아키텍추럴 트리뷴>지에 실린 미국 건축가협회 소속 고든 L. 프레스콧의 ‘내일에 길을 내줘라‘ 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 내용은 이러했다. "건축의 비극은 재능 있는 신예들 앞에 가로놓인 고난들이고, 훌륭한 재능들이 그런고 난 속에서 사장되고 있다. 건축은 젊은 피와 새로운 사고의 결핍으로, 독창성과 비전과 용기의 부족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필자는 전도유망한 신예들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용기를 주어 키워주고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P218

고든 L. 프레스콧의 사무실 대기실은 회색과 검정, 진홍색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올바르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대담한 인상을 풍겼다. - P-1

그는 그을린 손에 로크의 도면을 들고 말했다. (중략). "건축은 본래 공리적 개념이고, 문제는 실용주의적 원칙을 미적 추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지. 그 외의 건 아무 의미도 없고." - P219

 그는 다음 도면을 흘낏 보고 맨 뒤로넣었다. "대중의 취향과 대중의 감성이 예술가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 기준이지. 천재란 일반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예외는 예외가 아닌 것을 끌어내기위한 것이고." 그는 손에 든 도면 뭉치의 무게를 가늠해보고는 반 정도를 봤다는 걸 깨닫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 P220

10월의 어느 늦은 저녁, 로크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어져온 많은 날들과 같은 하루였고 오늘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거절의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 P221

로크는 이스트 강으로 이어지는 샛길로 들어섰다. 저 앞에 외로이 켜져 있는 신호등 불빛이 황량한 어둠 속의 붉은 점으로 보였다.  - P222

9

존 에릭 스나이트는 로크의 스케치들을 보면서 석 장을 따로 빼낸 후 나머지는 반듯하게 쌓아놓았다. 그는 그 석 장을 다시 훑어본 후 다른 스케치 뭉치 위에 하나씩 탁,탁, 탁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아주 훌륭해. 과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훌륭해. 오늘밤 뭐하나?" - P223

"좋아! 훌륭해! 내가 원하던 거야. 캐머런 스타일. 다른 종류는 다 있지. 아, 참, 프랭컨에선 얼마 받았나?"
"65달러요."
"흠, 난 미식가 가이처럼 돈을 물 쓰듯 할 순 없네. 50달러가 최고야. 괜찮나? 좋아. 당장 시작하게, 빌링스가 자네에게 백화점에 대해 설명해줄 거야. 난 현대적인 걸 원하네. 알겠나? 현대적이고, 격렬하고, 미친 것. 사람들 눈이 튀어나오게 하는 것. 자제하지 말게. 극단까지 가. 생각나는 묘기는 다 부려. 괴상할수록 좋아. 가세!" - P224

로크는 앞에 놓인 깨끗한 흰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가느다란 연필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연필을 내려놓았다가다시 집어 엄지손가락으로 매끄러운 연필 자루를 부드럽게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연필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는 얼른 연필을 내려놓았다. - P225

그에게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는 다섯 종류의 설계사들을 두고 일이 들어올 때마다 그 다섯 명에게 경쟁을 시켰다.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를 선정한 뒤에도 나머지 네 개 안에서 장점들을 취하여 선정된 안을 개선시켰다. "머리 여섯 개를 모아놓은 게 하나보단 나으니까." 그의 주장이었다. - P226

로크는 자신의 일에 대해 어디까지 기대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의 작품은 전체가 아닌 부분들의 형태로 세워질 것이고 그건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다. - P226

가이 프랭컨은 건설노조 동맹파업에 격분했다. 파업은 노이스-벨몬트 호텔 시공 현장에서 시작되어 뉴욕의 모든 공사장으로 퍼져갔다. 노이스-벨몬트 호텔의 건축회사가 프랭컨앤드 헤이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 P227

와이낸드 신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늘 특권층에 대항하여 보통 사람의 권리를 옹호해왔지만, 법과 질서의 파괴만큼은 지지할 수 없다." 와이낸드 신문들이 대중을 이끄는지, 아니면 대중이 와이낸드 신문들을 이끄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둘이 놀랍도록 보조가 잘 맞는 것은 사실이었다 - P227

프랭컨은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했다. 게일 와이낸드의 부동산 사업이 그의 언론제국보다 더 거대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노이스-벨몬트 호텔은 프랭컨이 처음 맡은 와이낸드 일이었고, 그는 첫 인연이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을 낳을 수도 있다는 계산으로 이 기회에 탐욕스럽게 매달렸다.  - P228

키팅은 사무실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할 말도 없었고다들 그를 슬금슬금 피했다. 그래서 일찍 퇴근하여 쌀쌀한 12월의 황혼 속에서 집으로 걸어갔다. - P229

키팅은 엘즈워스 투히에 관한 최근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짜증나는 파업 문제가 떠올라 그냥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었다. 6개월 전, 엘즈워스 투히는 《돌의교훈》의 성공에 힘입어 와이낸드의 신문 <배너>에 ‘하나의 작은 목소리‘ 라는 제목의 일일 칼럼을 싣기로 계약을 맺었다. - P230

키팅은 어느 편도 아니었으며 파업 자체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키팅은 험악한 침묵 속에서 저녁을 먹었고, 키팅 부인이
"오, 그런데 말이야……." 하고 어디로 향할지 뻔한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자 무뚝뚝하게 말했다. - P231

키팅은 지독한 배신이라도 당한 듯 망연히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 같은 뼈저린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 P232

캐서린은 빗속에서 어깨를 웅크리고 배는 지쳐서 앞으로내밀고 서 있었다. 코가 반들거렸고, 두 눈은 흥분으로 반짝였다. 키팅은 그녀를 바라보며 멈추어 섰다.
캐서린이 그에게 기계적으로 유인물을 내밀더니 시선을 들고 그를 봤다. 그녀는 놀라는 기색 없이 미소 지으며 행복하게 말했다.
"어머, 피터! 이렇게 와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 P233

"그만! 나도 다 알아. 아주 신물이 나. 네 삼촌이나 와이낸드나 빌어먹을 파업에 대한 얘긴 더 듣고 싶지 않아. 여기서나가자."
"오, 안 돼요, 피터! 그럴 수 없어요! 삼촌의 연설을 들어o......." - P234

확성기가 날카롭고 새된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뱉어냈다.
로비에 모인 사람들이 헐떡거렸다. 캐서린이 키팅의 팔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오, 피터! 와이낸드를 말하는 거예요! 와이낸드는 헬스 키친에서 태어났거든요. 오스틴 헬러는 그런 말을 해도 되지만, 와이낸드는 엘즈워스 삼촌에게 분풀이를 할거예요!" - P236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엘즈워스 몽크턴 투히를 소개하겠습니다!"
‘베넷이 내기에서 75센트를 땄군.‘ 키팅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키팅의 뒤통수를 강타했는데, 그건 소리도 주먹도 아니었다.  - P237

키팅은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그는 그 목소리가 말하는것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의미 없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듣고 있었다. 굳이 그 의미를 알 필요가 없었다. - P238

"여기서 나가자." 키팅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난폭했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캐서린이 무의식에서 깨어나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 P239

여러 날 후, 키팅은 도시 전체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집회가 열린 다음 날 게일 와이낸드가 엘즈워스 투히의 봉급을올려주었다는 것이다. 투히는 격분해서 그걸 거절했다. "와이낸드 씨, 당신은 나를 뇌물로 매수할 수 없습니다." - P240

파업이 끝나자 중단되었던 도시 전체의 공사들이 의욕적으로 재개되었고 프랭컨 앤드 헤이어에도 새 일거리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키팅은 밤낮으로 일에 매달려야 했다. 프랭컨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내며 파업 기간 동안 자신이 직원들에게 주었을지도 모르는 상처를 무마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조촐한 파티까지 열어주었다. - P241

. 키팅 역시 기분이 좋았는데 기품 있는 에인즈워스 부인이 천진한 미소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난 정말로 당신이 프랭컨 씨의 동업자인줄 알았어요! 맞아, 회사 이름이 프랭컨 앤드 헤이어인데! 나도 참, 그렇게 무신경하다니! 어쨌거나 변명 같지만 당신은 그 회사 동업자가 될 자격이 충분해요!" - P241

세 시간 후, 키팅은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그 사건에 대해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는 기분이 가벼웠고, 머리도 맑고 힘이 솟았다. 그는 사내 도서관에 가서 새 도면을 최고의 원형들과 비교하기 위해 도면을 활기차게 흔들면서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방을 나섰다. - P242

키팅은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 느낌은 어느 사이인가 사라졌지만 감탄은 남아 있었다. 그는 열성적으로 안내 직원에게 다가갔다.
"누구예요?" 그가 물었다.
안내 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장님 찾아온 분이에요."
"와, 사장님은 복도 많지! 저런 여자를 나한테 숨기고 있었다니." 키팅이 말했다. - P244

10

랠스턴 홀쿰은 목이 안 보였지만 턱이 목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의 턱은 호를 그리며 가슴에 얹혀 있었다. 그의 분홍빛뺨은 늙어서 탄력을 잃어 삶은 복숭아처럼 흐물흐물해 보였다. - P248

랠스턴 홀쿰에게 그런 것들이 허용되는 건 그가 천재이기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건축가협회 대표이기도 했다. - P248

그는 미국 건축계의 한심한 현실과 건축가들의 원칙 없는절충주의를 개탄했다. 그는 역사의 어느 시대에든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정신에 따라야지 과거의 것들을 베껴서는 안 된다고, 현실 속에 예술의 뿌리를 심기를 요구하는 역사의 법칙을 존중해야만 역사에 진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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