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있는 그대로의 엉덩이
내 기억 속 첫 번째 엉덩이는 내 엉덩이가 아니라, 우리 엄마의 엉덩이다. - P6
꼬마였던 내가 유일하게 본 어른의 나체는 엄마의 몸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여자의 몸이 엄마 몸처럼 생긴 줄 알았다. - P7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엉덩이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팔꿈치나 무릎 같은, 생리학적 기능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신체 부위와는 다르다. 엉덩이는 보기엔 우스울지 모르나 의미와 뉘앙스로 범벅이 된 대단히 복잡한 상징이며, 그안에는 유머·성·수치·역사가 한가득 품어져 있다. - P7
몸 뒤쪽에 달린 엉덩이는 남들에겐 아주 잘 보이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다소 낯선 부위다. 자기 엉덩이를 보려면 사방이 거울인 탈의실에 들어가거나, 침실에서 손거울을 들고 삼각 측량 비슷한 번거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스마트폰을 기묘한 각도로 들이대야 한다. - P8
엉덩이를 일컫는 단어들조차 명쾌함에 저항한다. 우리가엉덩이를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단어가 아니라 완곡어법에 속한다. - P9
나이가 들면서 나는 엉덩이를 차츰 다른 단어로 부르는 실험을 해나갔다. ‘Ass‘는 좀 더 어른스럽고 그만큼 음란하게 느껴졌다(우리가 "욕"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욕치고는 가벼웠고 못되기로는 꼴찌였다. - P9
오늘날 식료품점 계산대옆에 꽂혀 있는 타블로이드 잡지와 TV 토크쇼에서는 힙합과 컨트리 장르 음악에서 사용하던 단어를 빌려 ‘booty‘ 아니면‘badonkadonk‘라고 부른다. - P10
그런데, 진짜 적절한 단어는 뭘까? 그러니까, 기본적인 단어 말이다.(중략). 엉덩이에 대해서는 "둔부buttocks"라는 뻔한 선택지가 있긴 한데, 실생활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 - P10
나는 의료 용어에서 가장 실용적인 단어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외과 의사인 친구에게 의사들은 엉덩이를 뭐라고 부르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직장 결장을 전공한 의사들(아마 엉덩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제일 많을 사람)은 ‘rear (어떤 것의뒤쪽, 궁둥이)‘나 ‘bottom‘을 쓴다고 알려줬다. - P10
우리와 엉덩이가 이루는 완곡한 삼각관계에서, 엉덩이에관한 생각들은 엉덩이 자체보다 그걸 보는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엉덩이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누가, 언제, 왜 보는지에 달렸다. - P11
엉덩이는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법이 없다. (중략). 엉덩이는 워낙 변덕스러운 상징이라서, 그 풍부한 의미들을 헤집어 살펴보고 조사하면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알 수있다. - P11
성인이 된 자기 몸을 지금과 같이 느끼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 P12
나와 내 몸이 맺은 관계 이야기가 그리 극적인 편은 아니다. 그 이야기가 내 흥미를 잡아끄는 건, 오히려 상당히 전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 P16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엉덩이가 섹시하다는 말을 들은 건2003년이었다. - P17
(전략). 다시 말해 나는 내 엉덩이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는 아니고 몇몇 사람이) 욕망하는 성적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또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되어버렸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그 몇몇 사람은 거의 언제나 남자였다. 퀴어인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성별과 사귀어봤지만, 내 엉덩이에 대한 재평가는 주류 이성애자 문화에서 기인하는 듯했다. - P18
이 책은 수수께끼 같은 엉덩이를 둘러싼 생각과 의미들의실타래 몇 개를 따라가 보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지금까지도 계속 울림을 일으키는지 탐구하려는 시도다. - P20
(전략). 이들을 모두 만나본 다음 나는 큰 엉덩이가 점점 주류에 편입되고 백인 기준의 미적 이상과 흑인 신체 및 문화의 전유가 다시금 정점을 찍은 지난 30년동안, 엉덩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탐구할 것이다. - P21
이런 프로젝트는 결코 모든 사람의 바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모든 엉덩이의 역사와 의미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건 시도조차 못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엉덩이 중에서도 여성의 것에 집중한 건, 단순히 내가 여자라서다. - P21
항문과 엉덩이의 상징적 의미가 서로 관련될 때도 있다. 하지만 여성의 엉덩이는 보통 저만의 개별적 상징을 지니며, 성적인 차원에서나 다른 차원에서나 항문의 다양한 기능과 반드시 연결된 건 아니다. - P22
내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건 패권을 잡은 주류 서구 문화, 즉 정치와 경제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들,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사람들, 광범위한 기준과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영속시키고 강요해온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엉덩이가 해석되고 표현되는 방식이다. - P22
과학·정치·미디어·문화에서 오랫동안 권력을 쥐어온 백인남성·이성애자는, 몸에 따라붙는 의미들에 과도한영향력과 통제권을 행사해왔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일탈인지, 무엇이 주류이고 무엇이 변두리인지에 관한 생각들을 발명하고 강요했다. - P23
물론 내가 유색인종 사회나 다른 민족, 과거 문화에서 엉덩이가 지닌 의미에 관해 알아본 바는 직접 경험이 아니라 타인의 기록과 연구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편 내 몸에 관한 내 경험은 구체적이며, 내가 엉덩이로 인해 느낀 수치심은 내가 성장한 특정한 맥락에서 온 것이기에 절대 보편적이라고 할수 없다. - P24
이쯤에서 엉덩이에 관해 내가 다룬 것 외에도 매혹적인 연구 분야들이 많다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 P24
나는 연구 과정에서 하나의 신체 부위가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에 몇 번이고 놀랐다. 하지만 여성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비슷비슷했다. - P27
엉덩이는 우리더러 시선을 돌리라고, 낯 뜨거운 수치심을느끼지 않는 척 키득키득 웃으라고, 눈을 굴리며 딴청을 피우라고 요구한다. - P27
1장
기원
근육
만일 당신이 190만 년 전 어느 날 케냐의 한 메마른 호숫가 앞에 서 있었더라면, 최초의 엉덩이 달린 고인류라 알려진존재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¹ 그는 유인원보다는 현대 인간에 더 가까웠다.² - P33
1장, 기원
근육
1. M. D. Rose, "A Hominine Hip Bone, KNM-ER 3228, from East Lake Turkana, Kenya,"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63), no. 4 (1984): 371-78.
2. Jonathan B. Losos and Daniel E. Lieberman, "Four Legs Good, Two Legs Fortuitous: Brains, Brawn, and the Evolution of Human Bipedalism," in (In theLight of Evolution: Essays from the Laboratory and Field) (Greenwood Village, CO: Roberts and Company, 2011). - P364
기어오르기에 적합한 민첩하고 유연한 다리와 발, 유인원 같은 콧구멍, 털복숭이 몸, 엄청난 양의 식물을 씹어 삼킬 수 있게 해주는 큼직한 아래턱까지. 다만 엉덩이는 납작하고 작았다(엉덩이라고 부르기도 뭐할 정도였다). - P34
응게네오는 수백만 년 동안 조약돌과 조개껍데기 등의 퇴적물이 쌓였을, (중략).⁷ 유심히 관찰해보니 더더욱 확실해졌다. 고인류발견 전문가가 또 한 번 일을 낸 것이다. 응게네오가 발견한건 화석 KNM-ER 3228이라는 이름이 붙은, 190만년 전호숫가를 걸었던 남성 고인류의 오른쪽 골반뼈였다. 이는 그때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골반뼈였으며 그 뒤로도 이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 P35
7R. E. Leakey, "New Hominid Fossils from the Koobi Fora Formation in NorthernKenya," Nature 261, no. 5561 (July 17, 1976): 574-76. - P364
19세기 과학자들은 인종 위계를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일환으로, 엉덩이에 관해서도 견고한 유사 과학을 만들어냈다. 다만 20세기에는 엉덩이에 관해 풍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 P36
하버드 대학원을 다닐 때 리버먼은 "인간의 첫 달리기는그 실력이 형편없었으며, 달리기는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적응"이었다고 배웠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달리기를 조금 더 빨라진 속보 정도로, 아주 적합한 형태는 아닌 이족보행의 부산물 정도로 이해했다.¹⁰ - P36
10 Dennis M. Bramble and Daniel E. Lieberman, "Endurance Running and theEvolution of Homo," (Nature 432), no. 7015 (November 18, 2004): 345-52. - P365
(전략). 그런 결론에 이른 계기는 실험실 돼지들이 러닝머신에서 빠르게 걷는 모습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돼지 운동 연구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동료 데니스 브램벌Dennis Bramble이 실험을 보러 연구실에 들렀다. 브램벌은 돼지들이 달릴 때 머리가 제멋대로 양옆으로 돌아가는데, 그건 아마 움직일 때 머리를 고정하는 특별한 인대(목덜미인대라고 부른다)가 없어서일 거라고 지적했다. - P37
브램벌과 리버먼은 안 그래도 달리기가 단순히 이족보행의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 진화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고 주장하는(당시 많은 생물학자에게 무시당한) 논문을 읽은 참이었다.¹⁴ - P37
14David R. Carrier et al., "The Energetic Paradox of Human Running and HominidEvolution" (E), (Current Anthropology 25), no. 4 (1984): 483-95. - P365
화석 기록을 계속 살펴보던 리버먼과 브램벌은 인간을 달리게 만들어주는 거의 모든 신체 특징이, 인류의 조상들이 이족보행을 시작한 시기 전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포착했다.¹⁵ 이 사실을 두고, 그들은 고인류가 ‘달리기를 하기 위해이족보행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했다. - P38
15 인간의 유골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일의 역사는 식민주의와 과학적 인종차별의유산과 깊이 엮여 있다. 그 길고도 불편한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다루겠다. 리버먼과 브램벌이 살펴봤던 뼈는 구석기 시대에 속하니만큼 세라 바트먼의 유해를 수집하는 일과 결이 다르지만, 자연사 컬렉션은 주로 하버드 대학 같은 서양의 기관에 보관되며 여기서와 같이 아프리카에서 펼쳐지는 더 큰 식민지 프로젝트에 속하기도 한다. - P365
이 발견을 시작으로 리버먼은 인간이 달릴 때 엉덩이가 하는 역할에 관한 폭넓은 연구에 돌입했다. - P38
(전략). 리버먼은 대화하러 온 내게도 똑같은 실험을 권했다. 다만내 경우에는 근육이 움직이는 걸 느끼려면 손바닥을 더 꾹 눌러야 했는데, 내 엉덩이엔 근육 말고도 많은 게 달려 있어서였다. - P39
1983년 이래 매년 10월이면 애리조나 프레스컷시의 엷은공기 속에서, 활기찬 블라인드 판매원 론 배럿Ron Barret이 개최하는 경주가 열린다. 경주의 이름은 단도직입적으로 <인간대 말>이다. - P40
극악의 확률로 보이지만 실제로 <인간 대 말> 경주에선 매년 말을 이기는 주자가 적어도 한 사람은 나왔다. 리버먼 본인도 승자였다(그의 기억으로는, 그가 참여한 해 거의 모든 말을 이겼다고 한다. "저는 중년 교수일 뿐인데 말이죠!" 그가 덧붙였다. 모든 말을 이긴 인간 주자는 아직 없었다.²⁴ - P42
24 인간의 지구력과 달리기에 대한 정보는 리버먼과 브램벌을 인터뷰한 내용 및 다c: Bramble and Lieberman, "Endurance Runningand the Evolution of Homo"; Losos and Lieberman, "Four Legs Good";Lieberman et al., "Human Gluteus Maximus"; and Dennis Bramble, "HowRunning Made Us Human: Endurance Running Let Us Evolve to Look the WayWe Do," (Nature), 432. no. 7015, November 18, 2004. - P366
리버먼은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호모 에렉투스가 숲에 머물러 살다가 초원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생활양식을 바꾸었을 때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 P44
하지만움직임이 비교적 느린 호모 에렉투스가 어떻게 빠르게 달리는 네발짐승을 따라잡아 사냥할 수 있었을까? - P44
다윈을 비롯한 진화 생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몸이빠른 사바나의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이 이족보행의이점 덕분이라고 추정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손이 자유로워창과 활과 화살 같은 사냥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호모 에렉투스가 도구로사냥했을 가능성은 적다. - P45
리버먼에 의하면 닉 쿠리가 <인간 대 말> 경주에서 승리할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존재하는 이유는 초기 인류가 많은 네발짐승에겐 없는 특별한 이점을 지니도록 진화해서다. 네발짐승은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빠른 속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다. - P45
인간이달리는 속도는 네발짐승 대부분이 속보하는 속도보다 아주 살짝 빠르다. 우리의 두 다리 위에 붙은 밀도 높은 특수한 근육의 집합체 덕분이다. 인간의 엉덩이 근육은 복잡한 안정화 도구에 속한다.²⁵ - P-1
25이 문단과 바로 위 문단에 담긴 정보의 출처는 다음 논문이다. Lieberman et al., "Human Gluteus Maximus." - P366
진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도 점점커졌다. 뇌 조직을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열량이 필요하다. 게다가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은 매일 2,500칼로리를 섭취해야만 했다.²⁶ 사바나에서 이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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