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를 조성하는 흑백논리는 본질적으로 합리적인 담론과 정반대다. 흑백논리에 내재한 극단론은 실용적인 결론을 짓밟고 건설적인 대화를 무너트린다. - P120

 흑백논리 특유의 호소력은모든 것을 서로 반대되는 극단으로 단순하게 압축하는 능력에있으며, 독재자와 선동가는 오랫동안 이런 점에 매력을 느꼈다. 흑백논리의 부식력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여전히 광범위한 분야에서 예상한 그대로 뻔하게 활용된다. - P121

환원 오류에의 호소는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쉬우며,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고 매끄럽게 설명한다. 이해한다는 착각은 안도감과 확신을 주며, 혼란한 세상에서 심리적인 애착 이불과 보호 토템 노릇을 한다.  - P121

5장

아니 땐 굴뚝에 나는 연기


백신에 대한 막연한 공포


인간은 한결같이 미신을 좋아한다. - P122

스키너는 수많은 인상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유명해졌지만, 그의 경력의 정점은 ‘비둘기 미신‘ 실험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비둘기가 의례 행동을 하면 먹이 보상이 이루어지는 실험은 스키너가 보기에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 P123

백신은 아이들의 발달장애를 낳는가


근본적으로 인간은 둘 이상의 이질적인 현상의 연관성을 탐구하지만, 먼저 일어난 사건이 다음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 P124

 인과관계 오류를 다루는비형식적 오류들은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hoc ergo propter hoc("이것다음에 일어났으므로, 따라서 이것 때문이다)라는 포괄적 용어에 포함되며, 매력적이고 간결한 문구에 해당 오류의 정수를 담고 있다. - P124

수천 년 동안 인간을 괴롭혔던 말라리아라는 재앙을 예로들어보자. - P124

로마 의사들도 말라리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주로 늪이나 습지대 근처에 살며,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불규칙하게 걸린다는 데 주목했다. 이 관찰 결과는 최소한 고대 의학의 기준에서는 합리적이었다. - P125

말라리아와 정체된 공기의 연관성은 오해였지만, 결론은 해롭지 않았다. 오히려 모기가 먹이를 잡고 감염을 퍼뜨리는 장소에서 사람들이 멀어지게 해서, 우연이지만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을 수 있다. 제멜바이스의 손 씻기가 다른 이유로 젊은 산모들의 생명을 구한 것과 비슷하다. - P126

신체의 통합성에 대한 주관적인 근거나 면역계 작용 매커니즘에 대한 완전한 오해를 바탕으로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반대론은 스스로를 제약하기도 하는데, 종교적 관점과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우려를 근거로 백신 반대론이 나타났던1873년의 스톡홀름을 예로 들 수 있다.  - P126

사람들은 백신이 우리 세상을 근본적으로바꾸었다는 사실을 잊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대부분 예방 접종률이 높았고, 끈질기게 백신을 거부하는 비주류를 막아냈다.
백신 거부감은 부글거리며 그림자 속에 숨었고, 상상할 수 있는모든 질병을 백신 탓으로 돌렸다. 대부분 이런 공격은 너무나 괴상해서 무시당했다.**


*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시인이자 병사였던 시그프리드 서순iegfried Suson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 상상력이 부족해 알지도 못하는 고통을 바라보는 집에있는 대다수의 냉담한 안일함"을 매도했다. 서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대량 학살을 향한 대중의 눈먼 냉담을 말했지만, 나는 백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 백신 반대 활동가들의 심리적 특성으로는 결함 있는 추론, 자료보다 일화에 의존하는 경향, 사고 패턴의 낮은 인지 복잡도가 있다. 비평가들이 악의적인 이익 집단의 대리자로 비난받으면서 음모론적 사고가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다. - P128

이 중에서도 늘어나는 발달장애를 향한 우려가 가장 컸다. (중략).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전형적인 특징은 보통 걸음마를 시작하고 예방 접종을 받을 때쯤 나타난다. - P129

2002년이 되자 영국에서 나온 모든 과학 기사의 대략 10퍼센트가 MMR 백신이 위험하다고 떠들었고, 이런 이야기의 80퍼센트는 과학이나 의학 지식이 없는 기자들이 써냈다. - P130

잉크를 거절하지 않는 종이들

전문가와 언론 보도 사이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단절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략). 과학전문기자들이 MMR 백신을 보도할 때는 백신의 이점을 보여주는 증거의 신뢰도는 높지만, 자폐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사실상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 P131

쉽게 속고, 솔직하게 말하면 개탄스러운 많은 언론의 행보 덕분에 웨이크필드의 미심쩍은 주장은 널리 퍼졌다. 백신의 놀라운 효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가 넘쳐나는데도 최종 결과는 극적으로 과장된 백신의 위험이었다.*

* ‘기계적 중립 false balance‘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는 5부에서 다시 다룬다. - P132

《란셋》은 웨이크필드의 논문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라고 인정했으며, 웨이크필드는 그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증거의 파도를 막으려 디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뻔히 보이는 고압적인 시도를 했다.  - P133

이 판결은 웨이크필드를 향한 숭배에 끝을 고하는 종소리였다. 영국 일반의사회는 철저한 조사에 돌입했고, 과학적 사기의 증거를 찾아낸 《란셋》은 웨이크필드의 논문을 철회했다. - P133

MMR 백신에 대한 피해망상은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진정되었지만 그 시기에 고통받은 희생자가 어린이만은 아니었다. 백신을 불안하게 여긴 부모들은 자녀의 예방 접종을 거부했고, 이런 공포는 서서히 세계로 확산되었다. - P136

한때 홍역을 실제로 박멸했던 미국은 홍역 감염률이 풍토병수준으로 높아졌다. 2014년에는 27개 주에서 677건이 발생했고, 이는 20년 만의 최고치였다. 이듬해 디즈니랜드에 갔던 홍역 감염자 1명이 최소 150명의 감염을 일으켰고, 전문가들은 "2015년 홍역 대유행은 기준에 못 미치는 예방 접종 준수율 탓"이라는 데 주목했다. - P136

실체 없는 위험에 대한 불안들

여기까지가 오늘날의 문제 상황이며, 세계보건기구는 처음으로 백신 거부가 세계 보건을 위협하는 상위 10개 항목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 P137

여기에 대한 답으로는 가용성을 들 수 있다. 2000년 초 부모들의 문화 사전에는 홍역에 걸려 죽거나 영구 장애를 입은 어린이의 모습과 이야기가 없다. 여러 해 동안 연구와 공중보건에 들인 노력 덕분에 바이러스가 자주 나타나지 않는 확실한 결과를얻었고, 따라서 부모의 우려도 줄어들었다. 반면 자폐는 일상에너무나 자주 등장했다. - P138

쉽게 얻은 정보나 최근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이 현상은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이라고 부른다. 개념을 평가하거나 의견을 형성할 때 머릿속에 즉각 떠오르는 사례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사실상 사고의 지름길 역할을 한다. - P138

그러나 가용성 편향은 수많은 휴리스틱 중에서 사고 지름길의 하나일 뿐이다. 때로는 질보다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빠른 판단이 유리할 수 있다. - P139

인간의 결정과 반응은 너무나 빨라서 능동적인 사고 자체가관여하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신중히 처리하는 것이 오히려실수일 때 추론을 짧게 줄여서 목숨을 구하려는 이런 경험 법칙이 휴리스틱이다. 물론 휴리스틱은 완벽하지 않지만, 일종의 자동조타장치 역할을 한다. - P1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